전생검신 83권 07화
내가 말했지만 믿기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유망의 저 어마어마한 도기(刀氣)를 설명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순수한 무(武)로 이룰 수 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천문학적인 단위의 힘!
저 정도의 힘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의념 또한 상상하기 힘든 양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고, 눈앞의 유망은 고위신족이니 신력을 의념으로 바꾼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유망은 씩 웃으며 말했다.
“절반쯤은 정답이군.”
“절반이라는 건……?”
“아직 내기 중이 아니었나? 무인이 손에 든 무기를 놔두고 입만 털어서는 될 일이 아니지.”
스윽…….
유망은 갑자기 자신의 도(刀)를 집어넣고는 이번에는 활을 꺼내서 손에 쥐었다. 느릿해 보였지만 예전처럼 ‘자세를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 권능을 써서 틈을 노릴 새가 없었다. 활로 장비를 전환한 유망은 활시위를 매긴 채 말했다.
“이것도 어디 받아보아라.”
투웅!!
방금 전의 도격(刀擊)과 달리 그리 화려하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일발(一發). 평범한 궁사(弓士)의 사격과 같았으며 그렇다고 시공간을 왜곡하는 성질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런 잡념이나 기교가 섞이지 않은 궁시를 보자마자 유망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화살의 끝에 가공할 힘이 맺혀 있다. 방금 전의 일격보다 더 강할 거다.’
자기에게 겁먹었으면 피하라는 소리다.
즉 저 힘을 내가 정면에서 이겨낼 수 있는지 도발하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 화살에 맺혀 있는 패력(覇力)은 겉보기에는 별거 없어 보이지만 별을 몇 개나 파괴하고도 남을 수준이리라.
“……“
나는 유망의 도발에 응할지 피할지를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을 굳혔다.
삼보절기(三步絶技)!!
천(天)과 지(地)의 걸음이 확실하게 회피를 할 공간을 확보한 후 인(人)으로 화살의 마지막 변화까지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퓨웅
오랜만에 쓰는 삼보절기라서 꼬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아무런 문제 없이 내 몸은 잔영을 남긴 채 확실하게 화살을 피했고, 내가 화살을 피한 걸 본 유망은 인상을 찌푸렸다.
“쫄았군.”
휘리릭
나는 몸의 자세를 다잡기 위해 반회전을 하며 유망의 말에 대꾸했다.
“맘대로 생각하십시오. 나는 힘 대 힘으로 겨루면 능히 버틸 자신이 있으나 그건 내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합니다.”
정면으로 힘으로 겨룰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아마 내 모든 신력을 집중해서 방패를 만들거나 했다면 충분히 해 볼 만 했으리라. 그러나 그 겨루기는 내가 지닌 무공의 힘이 아니라 신력의 힘이 9할 9푼을 차지할 게 뻔하므로, 나는 결국 신력으로 싸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신력에 크게 의존치 않기로 마음먹었던 과거의 생각과 위배 되는 것이었고 계속 선을 넘다 보면 의미가 없어지리라 생각한 것이다.
“흐음……?”
그러자 유망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뭔가 불쾌한 듯 말했다.
“네놈도 그런 부류냐?”
“그런 부류라니요?”
“나는 살아오면서 자신이 패배하더라도 무(武)의 순수성을 지키고 싶다는 수련자를 많이 보아왔지. 나는 그런 생각이 제일 불쾌하다고 여긴다.”
“……“
유망이 쩌렁쩌렁 외쳤다.
“백웅. 너는 이미 신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지금의 네 행동은 더더욱 기만일 뿐이다. 무(武)라는 것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오로지 강함을 추구한 끝에 승리를 거머쥐는 걸 의미하는 것인데, 자신이 지닌 힘을 최대한 써보지도 않고 패배를 감내하는 게 어찌 무예라 할 수 있겠느냐!”
쿠르르릉
유망의 호통이 터져 나오자 산천초목이 진동했다. 그가 의도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하늘이 흐려졌으며 거대한 기운 때문에 이 별 자체가 뒤흔들리는 것으로 보였다. 역시 유망 또한 대신(大神)에 못지않은 잠재력을 지닌 존재라서 별 하나쯤은 우습게 박살 내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유망의 호통에 비교하면 인간족 절세고수의 사자후 따위는 일만분의 일도 되지 않으리라.
그러나 나는 유망의 호통을 정면에서 받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마 내 신력이 그에 못지않아서일 확률이 높았다. 뿐만아니라 평소와 달리 나는 상대의 호통에도 마음속으로 찔리거나 괴롭지 않은 탓이 큰 것 같았다.
납득하지 못한다.
납득하지 못하는 설교는 아무리 위세가 대단해도 마음이 꺾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유망에게 차분히 말했다.
“그렇다면 무신이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인 겁니까?”
유망은 생각지 못했던 질문인 듯 자신의 턱을 잠시 만지작거렸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애매모호한 답이군요. 사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습니까.”
“……“
“저도 아직 무예보다는 강함을 추구하는 중이라서 유망 님께 어느 쪽이 옳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편리하게 신력을 써먹는 것도 사실이고 무공의 재능은 밑바닥이라서 건방지게 무예의 극한을 논할 만한 경지에 오르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유망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무예를 약육강식의 관점으로만 대한다면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있습니다.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뭐라고…….”
유망은 심기가 불편해진 듯했지만 바로 분노를 표출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생각에 잠겨서 한동안 말이 없어졌다.
그러더니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는 그런 존재를 본 적이 있구나. 그렇지 않으냐?”
…… 눈치가 뭐 저렇게 빨라?!
나는 유망이 감으로 때려 맞춘다는 걸 다 알고 있었지만, 기가 막힐 정도로 눈치가 빨라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저처럼 재능 없는 놈도 열심히 수련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놈이지?”
“한두 명이 아닙니다.”
“호오.”
그래, 한두 명이 아니다…… 백좌(百座)에 오른 수많은 인물들은 물론이고 아수라, 진소청 등이 그런 경지가 따로 존재함을 입증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보아왔던 절세고수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유망 님이 비전무공을 가르쳐주든 가르쳐주지 않든 상관없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사앗
나는 그렇게 말하며 권(拳)의 기초자세를 잡았다. 가볍게 앞으로 뻗어져 있는 좌수(左手)는 정면을 견제하며, 우수(右手)는 음(陰)의 태세로 상대의 후수를 잡을 준비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권술의 자세와 함께 단단한 하반신의 균형이 고정되며 나는 태극권(太極拳)의 준비가 완료된 것을 느꼈다.
“이 자리에서 무공이란 힘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보겠습니다.”
“……!!”
내 말에 유망은 정말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한 말은, 신력을 섞어 써서 막지 않고 오로지 무공의 기(技)로 돌파하겠다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유망의 이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태도로 나서자 유망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듯했다.
그러더니 유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오로지 신력 하나로 천상천하의 강자들에게 인정받은 자가 그 힘에 의존치 않고 나를 부정하겠다라! 아주 좋은 패기지만…… 그 말을 뒷받침할 실력이 있을지 어디 볼까!”
쿠구구구!!
유망이 이번에는 활을 집어넣고 한 자루의 장검(長劍)을 꺼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은빛 섬광을 내뿜는 검강(劍罡) 같은 게 형성되어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깔끔하고 완벽한 기세를 만들었는데, 나는 아까보다 더욱 정련되어 있는 저 검강을 보자 소름이 돋았다.
‘…… 방금 전의 활보다…… 관통력은 더 높을 거다!’
나는 유망이 어떤 경지에 올라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장비한 모든 종류의 무기를 다룰 수 있으며, 하나하나에 어울리는 무공을 모두 극성까지 익혔다. 수억 년의 시간이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문제는 저 장검은 여태 유망이 싸울 때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데다 지금 막 소환한 거라는 사실이었고, 그 말대로라면 유망이 극성까지 터득한 무기술이 대체 몇 개인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저 검을 피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유망의 검(劍)은 기쾌하게 날아서 단숨에 시공간을 통째로 절단해 버렸다.
거신지무(巨神之武)
성핵단지검(星核斷之劍)
쫘악!!
나는 그 순간 내 전신이 그대로 세 토막 나는 듯한 환영을 느끼고는 전율을 느꼈다. 그러고는 손이 덜덜 떨리는 공포를 느꼈다.
‘크윽…… 제기랄……!!’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깡패 같은 힘이란 말이냐.
이미 적의 공격은 완벽하게 무쌍패(無雙覇)의 범위에 들어왔는데도 힘 하나 때문에 밀리는 기분이 들다니!!
무쌍패(無雙覇)
육합오의(六合悟義)!
‘상대의 힘 그 자체가 양(陽)이라고 해석하는 수밖에 없어!’
그렇게 하고자 하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음(陰)은 철저히 무력(無力)에 가까운 무위(無爲)여야 한다. 하지만 안 그래도 무위전변으로 흘리는 비중이 큰데 과연 가능할까? 이 정도로 비중을 높였던 적은 과거 [옛 지배자]를 상대로 무쌍패만으로 버텼을 때 외엔 없었으므로 걱정되었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순간에 유망의 성핵단지검의 검강을 옆으로 흘려 버릴 수가 있었다. 완전한 상쇄까지도 필요 없었고 거의 무력화시킨 순간에 비껴내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쿠콰콰콰콰콰!!
내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성핵단지검의 기운은 마치 파도처럼 지평선을 가득 가르더니 종래에는 하늘을 두 쪽 내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검기가 너무 강력해서 우주 너머까지 확장되며 뻗어가는 게 틀림없었다.
그 모습을 본 유망이 감탄했다.
“적색거성도 한 번에 쪼개는 내 괴검(怪劍)을 받아내다니! 그 기술은 무엇이냐?”
“……무쌍패!!”
나는 다시 태극권의 자세를 잡으며 외쳤다.
“이 무쌍패는 장삼봉 진인의 최후절학!! 당신의 깨달음이 무쌍패를 넘지 못한다면 나를 해하지 못할 겁니다!!”
“호오, 재밌구나.”
치링!
유망의 손에 또 하나의 장검이 소환되었다. 나는 그의 자세와 무기를 보자 내심 흠칫했다.
‘싸…… 쌍검?’
유망의 입가에 음침한 미소가 감도는 게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기필코 절대적인 힘이 어설픈 기술을 타도한다는 걸 증명해주마!!”
키기기기기…….기긱!!
잠시 후 유망의 양손에 들린 검이 마치 귀신들린 듯한 귀곡성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저 두 자루의 검이 각각 공명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챘고, 잠시 후 한 자루의 검에는 하늘빛의 기운이, 또 한 자루의 검에는 적황색의 기운이 맺히는 중인 게 보였다. 나는 이번 쌍검의 공격은 정말 심상치 않으리라는 걸 느꼈기에 나도 모르게 질문하고 말았다.
“그…… 무공은?”
“나도 놀랐다. 설마 내가 이것까지 꺼내게 할 줄이야.”
유망의 눈에 흉폭한 기세가 감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유망은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깨어나라, 고신(古神) 아쓰트-규엘라쓰여!! 나는 너의 봉인을 한시적으로 해제하노라!”
“……?!”
“깨어나라, 황암(黃暗) 라두클리암!! 나는 너의 봉인을 한시적으로 해제하노라……!!”
쿠구구구!!
잠시 후 유망의 양손에 들려 있는 검이 거대한 기운을 뿜어내며 더더욱 기세를 강화시켰는데, 나는 그 기운이 명백한 신력(神力)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하늘빛을 뿜어내는 검에서는 질서의 신력이 느껴졌으며 적황색의 검에서는 보다 혼돈에 가까운 농밀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 두 개의 검에서 신력이 강화되며 그 위에는 알 수 없는 기괴한 존재들의 환영이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형상을 보자마자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예, 옛 지배자……?!”
틀림없다. 저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지배자의 힘!!
그렇지 않고서는 신력을 저만큼이나 방출하며 존재감만으로 시공간을 왜곡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그 아찔한 힘 때문에 정신이 멍해지자 유망이 말했다.
“거신족은 수십억 년 동안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때로는 타 신격들을 봉인하여 무기에 가두곤 했다. 나는 거신족의 대장로이기도 하니, 이 두 개의 검은 내가 신농께 승전의 증표로 받은 전리품이다. 하나에는 우주의 동쪽에서 명성을 떨치던 고대신이 봉인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외신의 고손자로 불리는 고명한 옛 지배자가 봉인되어 있노라.”
“……“
“우주의 섭리 때문에 완전히 봉인을 해제할 순 없지만 어디 이걸 받고도 기술만으로 이길 수 있다고 지껄일 수 있을지 보겠다!!”
거신지무(巨神之武)
쌍신천룡검(雙神天龍劍)!
콰과과과!!
두 개의 소용돌이 같은 기운이 날아오는 순간, 나는 이걸 피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무쌍패라고 하더라도 이런 무식한 힘 덩어리를 무효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우주의 강자를 상대해 본 나는 알 수 있다.
이것은 충분히 삼황오제의 본체를 살해할 수 있는 일격이다!
심지어 그 순간 흑웅이 내 마음속에 외침을 날리는 게 들려왔다.
[주인!! 지금이라도 뜻을 굽히고 신력을 쓰시오!! 저 쌍신천룡검이라 해도 주인의 신력을 모두 끌어모으면 어떻게든 최소한의 피해로 막을 수 있……!!]
흑웅이 저토록 다급하게 외치는 걸 보면 진짜로 아무리 봐도 무쌍패로는 못 막겠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흑웅의 말대로 지금이라도 내 말을 굽히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이게 바로 거신족에서 삼황 신농 다음 가는 최강의 전사!
제대로 싸우면 삼황오제의 본체조차 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우주에서 수위를 다투는 대전사의 역량인 것이다.
‘빌어먹을…… 그래도 아직 기회는 있어!’
움직여라, 몸아!!
…….
어째서일까, 그 의지와는 반대로 나는 무념(無念) 상태에서 이미 무쌍패를 시전하고 있었다.
“……!!”
나, 나는……?!
그 순간에 나도 흑웅도 어이없어하는 게 느껴졌고 나는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왜일까?
이제 천암비서의 가호도 없는 상태에서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데 대체 왜 나는 이런 객기를……?
그것보다 무쌍패로는 도저히 못 막겠다 생각했으면서도 나는 왜 무쌍패를 쓴 것일까?
그리고 무쌍패의 첫수 무위전변으로 쌍신천룡검에 담겨 있는 고대신과 [옛 지배자]의 신력을 무화(無化)시키는 순간 나는 알 수가 있었다.
내 몸이 그렇게 하고 싶어 했다.
정확히는 삼백 년의 수련시간 동안 고련(苦鍊)해왔던 수행이 반사적으로 내게 강요한 것이다.
쩌엉!!
무위전변으로 끌어낸 패력(覇力)으로도 순간 쌍신천룡검의 안에 담겨 있는 우주적 기운을 상쇄할 수 없었는지 삐끗하는 게 손끝에서부터 느껴졌다. 그리고 손끝에서 시작된 진동은 순식간에 내 몸으로 파고 들어가서, 아주 찰나 간에 내 뼈와 살을 한꺼번에 분리시켜 버렸다.
푸콰콱
‘이, 이 정도의 힘은 생각지도 못…….’
무쌍패가 이론상 아무리 신의 권능이라 해도 모두 무력화시키는 게 가능하지만 그게 불가능한 경우가 있긴 했다. 첫 번째는 사용자의 정기신이 흐트러져서 무쌍패의 시전에 실패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쌍패 무위전변의 강대한 패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상대의 순수한 힘이 더 막강해서 수위를 넘어 버리는 경우였다. 웬만한 [옛 지배자]의 권능이라 하더라도 무쌍패가 못 감당하는 경우는 여태껏 없었기에 두 번째 경우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유망의 [힘]은 말 그대로 무시무시했다. 내가 무위전변으로 모은 패력의 한도를 일순간 넘어 버릴 정도로 순간적인 파괴력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지금껏 세다는 놈들을 숱하게 만나봤지만 거신족 최강전사가 가진 최강의 무기에 최강의 힘까지 불어넣으면 이런 결과가 일어나 버리는 것이다.
쿨럭!!
나는 피를 토해냈다. 전신의 뼈와 살이 흐트러졌는데 이제 살아남으면 이상할 정도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도리어 정신이 육체를 뛰어넘음을 느끼며 도리어 다른 한쪽 손을 내뻗어 부숴진 손의 손목을 붙잡았다.
흔들리면 안 돼!!
콰악
무위전변(無爲轉變)
재귀(再歸) 무쌍패(無雙覇)!
꾸웅……!!
그 순간 나는 또다시 무쌍패를 펼쳤고, 막 내게 쏟아지려 하던 거대한 파괴력은 새로운 무쌍패의 무위전변에 그 위력이 잡아먹혀서 온전히 무화되었다.
터엉!
그러나 나는 쌍신천룡검을 무쌍패로 막은 대가로 전신이 피박살이 났다는 걸 알 수 있었고, 튕겨져 나가서 삼 장 밖에 헝겊 인형처럼 떨어지고 말았다. 내 전신에서 피가 쉴새 없이 흘러서 지면을 적시자, 저만치에 있던 유망이 말했다.
“설마 이걸 막아내다니, 정녕 굉장한 기술이구나. 나는 그 무쌍패를 인정하겠다.”
“……“
“그러나 분명 자신의 말을 철회했다면 그 꼴은 되지 않았을 터. 너는 왜 끝까지 기술만으로 대항한 것이냐.”
나는 잠시 정신을 잃고 있다가 잠시 후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대답했다.
“더 이상 눈 돌리지 않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 더 이상 눈 돌리지 마라.
승과 패를 이유로,
생과 사를 이유로,
동료와 대의를 이유로,
사악과 훼멸을 이유로,
그 수만 가지 이유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려라.
언제까지 재능이 없다고 한탄만 할 셈인가?
눈 돌리고 있는 한, 나에게 솔직해지는 재능이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 솔직해지는 것 또한 재능이리라.
오만가지 이유를 다 무시해 버리고 단 한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하기에.
그런 이기적이고 사악한 솔직함조차 재능이 되는 것이다.
허나 그것은 대의가 아닐지라도 자연(自然)이지 않은가.
“미안…….”
나는 나도 모르게 사과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동료들아.
나는 이기적으로 변하고 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눈앞의 유망을 상대로 내 말을 지킬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내 마음대로 [큰 굴레]를 되돌려놓고 죽는다 하더라도 이해해다오.
‘물러설 수 없어.’
지금까지 쌓아왔던 무(武)의 업보.
진정한 무예의 길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힘만은 아니라는 걸 유망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는, 나 또한 말만으로는 안 된다.
무조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아니, 죽어도 좋다.
그렇게 해야만 내게 다음 뜻을 넘겼던 아수라에게 보답할 수 있으리라.
내가 진정한 무인의 길에 들어섰음을 증명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잠시 후 심호흡을 하며 몸의 상태를 진정시켰고, 이윽고 빠르게 내 몸을 점혈(點穴)했다.
파바바밧!!
순식간에 나는 모든 혈도를 찍었고, 내 호흡이 완전히 가라앉은 걸 본 유망은 흥미로워했다.
“재밌군. 그건 무슨 기술이지?”
“내 목숨.”
“흠?”
저벅…….
나는 세 걸음 앞으로 걸어가서 유망과 꽤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태극권의 자세를 취했다.
지금부터는 절대로 더 이상 공격을 허용하지 않으리라.
…….
유망은 순간 아무런 기척도 없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다시 쌍신천룡검을 휘둘렀다. 지고지순한 그 파괴력은 도리어 아까보다 더한 것처럼 느껴졌고 내가 그 공격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절대 막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였다면 말이다.
터엉!!
“……!!”
유망의 공격은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고, 나는 여전히 태극권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성공해낸 기쁨을 토해내듯이 일갈했다.
“하!!”
쿠웅!!
나는 진각을 밟으며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 그러자 유망은 처음으로 움찔했다.
“네 녀석…….”
쿨룩
목구멍에서 울혈이 치솟아 오르며 남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고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무쌍패에 쓸 수 있는 힘의 한계가 계속 실시간으로 오르고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분은 나쁘지 않군.’
필멸일광(必滅一光)으로 무쌍패를 펼치는 것은 처음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