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556화 (1,455/1,615)

전생검신 83권 04화

[합종연횡이라니 무슨 말이오?]

“좀 이따가 말해 줄게. 그보다…….”

흑웅이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한 듯 반문했지만 나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열심히 닭다리를 먹고 있던 동방삭에게 말했다.

“동방삭. 그러고 보니 너는 무공(武功)을 쓸 줄 아냐?”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벌써 팔뚝만 한 닭다리를 절반 이상 뜯어먹은 동방삭이 멈칫하더니 의아한 기색으로 말했다.

“무공이 뭔데?”

“이런 거.”

나는 곧장 손에 기(氣)를 담아서 전방에 있던 나무로 뛰쳐나가서 정중앙을 타격했다.

꽈릉!!

뇌신권(雷神拳)에 얻어맞은 나무는 그대로 반토막이 나서 부러졌고, 나는 동방삭을 돌아보며 말했다.

“신들이 쓰는 권능이 아니라 대자연에 흐르는 기(氣)의 힘을 육신이나 무기에 모아서 싸우는 기술을 말하는 거다.”

그러자 멀뚱이 보고 있던 동방삭이 말했다.

“거신족 몇 명이 비슷한 걸 하는 걸 본 적이 있군. 그리고 내가 아는 놈 중에 한 놈이 그런 기술을 쓰길래 나도 배운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뭣!! 무공을 알고 있다고?!”

“몇 가지밖에 안 배웠어. 그렇게 잘 하지는 못하지만 내 호신술로 잘 써먹고 있지…… 너는 그 기술을 무공이라고 부르는가보군?”

“그, 그래.”

“근데 너는 니가 물어놓고 왜 놀라냐?”

동방삭이 어이없어했지만 정작 어이없는 건 나였다.

‘지…… 지금은 최소한 내가 살던 시대에서 3만년 혹은 그 이전의 시대! 지금은 문명은커녕 그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는…… 전설의 문명 멤피스와 칼파가 존재하던 초고대야! 아틀란티스보다 더 예전이라고! 그런데 이런 초고대에도…….’

무공이 존재했다고?!

놀라우면서도 왠지 기쁜 마음이 든 나는 급히 말했다.

“동방삭! 네가 익힌 무공을 보여줘!!”

“……꼭 봐야 하냐?”

“못 보여줄 이유라도 있어?”

왠지 껄끄러워하던 기색이던 동방삭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나한테 이걸 가르쳐준 놈이 웬만하면 타인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했거든. 그래도 네 동료가 되기로 했으니 요청대로 보여주마.”

“그야 일문(一門)의 비기(秘技)는 문외불출(門外不出)이니…….”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지만 잘 보라고. 여러 번 펼치기 귀찮으니까.”

그렇게 말한 동방삭은 잠시 후 무예의 자세를 잡더니 권장법의 기수식을 잡았다. 생각보다 더 정돈되어 있는 자세였기에 나는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얼치기 수준이 아냐. 분명히 무예의 명인(名人)에게 배웠다.’

절대지경에 오르면 상대방의 아주 미세한 동작, 숨결, 근육의 움직임만으로도 상대의 수준을 판단할 수가 있었다. 여태껏 보았던 동방삭의 실력과는 천양지차로 달랐기에 내가 놀라고 있을 때 동방삭은 잠시 호흡을 고르더니 안광을 크게 빛냈다.

“흐아아압……!!”

쿠오오오오!!

그 순간 동방삭의 전신이 잠시 부풀어오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고 놈의 전신에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너무 강력한 기(氣)의 소용돌이가 폭발하는 걸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의 위력이 점점 강해져서 순식간에 용오름을 만들어낼 정도가 되었고 동방삭의 기운이 천지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

무슨 이런 내공이?!

나는 벌써 동방삭의 내공이 내가 살던 중원에서 절세고수들을 뛰어넘어 있다는 걸 알아채고는 깜짝 놀랐다. 지금 보여주는 내공만 하더라도 이미 초절정의 극한에 오른 자들을 몇 배나 뛰어넘어 있었으며 호법사자와 비교해야 할 지경이었다.

놀라운 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키이이잉 -

동방삭의 세혈(細穴)과 경맥에서 빛이 새어 나오더니 마치 인간의 피부가 껍질처럼 변한 듯한 환영과 함께 그의 내부에서 광류(光流)가 쏟아져 나왔다. 그 빛의 흐름은 잠시 요동을 치더니 기의 흐름을 몇 배나 강화시키기 시작했고, 마치 이제서야 시작이라는 듯 기세를 더했다.

콰과과광

너무 압도적인 힘의 흐름 때문에 허공에서 몇 개의 부유물이 걸리적거리다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방삭이 만들어낸 용오름은 수십 개로 변해 있었으며 그의 힘은 지금도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그 어마어마한 광경을 보며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설마 이건…….’

그리고 잠시 후 힘이 정점에 이르렀을까? 동방삭이 포효를 토해내며 전방으로 날아갔다.

“후려치기 - !!”

꽈광!!

쿠구구구

동방삭이 산의 한 면을 치는 순간 그가 모았던 어마어마한 내공의 힘이 주먹에 집중되어서 산을 크게 함몰시켰다. 약한 지진이 일어나면서 산천초목이 모조리 들썩일 정도였다. 그가 쳤던 지반이 완전히 붕괴하면서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흔적이 남았고, 동방삭은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머리를 긁적였다.

“자, 됐냐?”

“음 충분…… 으엇.”

나는 동방삭을 보며 흠칫하고 놀라고는 외쳤다.

“너 여자였냐?!”

상체의 옷이 완전히 찢겨져서인지 티가 난다! 절대 크지는 않으나 결코 남성의 가슴이라 볼 수 없는 것 때문에 내가 경악하자 동방삭은 되레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옷이나 만들어주지 그래? 이래서 무공이란 거 쓰기 싫었다고…… 힘을 다 끌어올리면 옷이 다 찢어져서.”

“……“

중성적인 외모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여자였을 줄이야. 목소리도 헷갈렸기에 여태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았다.

내가 군말없이 동방삭의 옷을 창조해서 건네주자 동방삭은 곧장 입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무공은 후려치기, 발차기, 달리기 세 개뿐이야. 지금까지 세상을 여행하면서 이 세 개의 기술만으로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었지.”

후려치기는 권법이고 발차기는 각법(脚法), 달리기는 경공일 게 뻔했다.

나는 동방삭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지금까지 네 기(氣)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기를 숨기고 있었던 거지?”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나는 불신어린 기색으로 동방삭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넌 의념(意念)도 못 쓰는 것 같은데.”

“의념?”

“……“

동방삭은 방금 전 말도 안 되는 파천황(破天荒)적인 공력을 끌어내어서 산을 함몰시켰지만 사실 내가 볼 때는 터무니없이 위력이 낮았다.

‘만일 내가 똑같은 공력을 휘둘렀다면 최소한 그 파괴력의 열 배 이상은 낼 자신이 있다.’

하지만 동방삭은 그저 기의 힘만을 휘두를 뿐 거기에 아무런 가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동방삭이 무예가 뭔지 거의 모르는데다 의념도 쓸 수 없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의념으로 기의 위력을 증폭시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증강효과가 난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 아마 의념 자체도 깨우치지 못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그건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뛰어난 내공을 지니고 있으면서 실력을 숨기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의념의 초고수였기에 의념을 이용해서 내공의 힘을 가릴 수가 있었다. 내공만 미친 듯이 많으면서 의념을 모르는 상태에서 내 이목에서 자신의 내공을 숨긴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내가 어이가 없어하자 동방삭이 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어. 내가 왜 평소에 이 힘을 숨기고 다니냐 이게 궁금한 거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동방삭은 씁쓸해하며 말했다.

“한 때는 이 힘을 써서 신과 싸워보려 한 적도 있었어. 하지만 어느 수준까지는 패줄 수 있지만 진짜 강한 놈들한테는 전혀 통하지가 않더라. 게다가 신들은 어설프게 강하다 싶은 존재가 있으면 굴복시켜서 부하로 삼으려고 질척대니까 차라리 내 힘을 숨기는 게 낫겠다 싶어서 수많은 통로에 힘을 나눠담았지.”

“……?”

“그러니까 평소에는 힘이 겉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아. 방금 전처럼 내가 꺼내고 싶을 때만 그 통로에서 동시에 힘을 꺼내는 거거든.”

힘을 나눠 담았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결국 나는 동방삭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네 팔목을 진맥해 봐도 되겠냐?”

“하던가.”

스스스

나는 동방삭의 몸 속에 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진맥을 하며 동방삭의 몸 내부의 기를 살폈는데, 그 순간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

세, 세상에…….

단전(丹田)이…… 백 개가 넘어?!

‘아, 아냐! 단전이 아니라…… 일부러 세맥과 혈도를 뭉쳐서 마치 단전인 것처럼 의사단전(擬似丹田)을 만들었어 !! 근데 이런 걸 만들어봤자 원래 단전보다 기가 쌓이는 속도가 수십 배는 느린 데다가 힘의 전달속도도 너무 느려서 의미도 없을 텐데……?!’

이런 짓을 할 바에야 세맥을 타통하고 경맥을 굵게 만들어서 진기의 이동속도를 빠르게 하는 게 실전에서는 수십 배는 더 강한데 무슨 이런 쓸데없는 짓을!

“의사단전이 이렇게 많이…….”

그러나 나는 잠시 후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 의사단전 수백 개에 고여 있는 내공의 양을 측정해보니, 그 하나하나의 내공이 보통의 절대지경 고수를 훨씬 넘어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동방삭의 내공은…… 절대지경 고수 백 명보다 더 많다.

“……“

그…… 그래……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나는 내공이 쌓이는 속도가 내공이 극점에 달한 후에는 너무 느려져서 천 년설삼이나 내공을 올려주는 영약들을 동료들에게 그냥 던져주곤 했다. 왜냐하면 1000만큼 내공을 올려주는 보물이 있어도 내 완성된 내공체계에서는 100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눈곱만큼 흡수해봐야 내 강함에 별 차이도 없었기에 더 이상 내공을 쌓으려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동방삭은 다르다. 의사단전을 만드는데에만 쓰잘데기없는 내공과 시간을 허비하면서 지냈고, 의사단전을 만든 후에는 굼벵이보다 느린 속도로 한 방울 한 방울씩 내공이 고이게끔 만들었다. 그렇게 내공이 무척 느린 속도로 고이고 고이면서 포화상태에 이르러있던 내공이 어마어마한 소비체계에 따로 적응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세월이 지나다 보니 내공의 효율 따위는 상관없이 [내공의 그릇] 자체가 수천 배 이상 넓어지도록 진화한 거나 마찬가지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는 잠시 입을 뻐끔거렸다.

“……“

그리고 차마 입이 안 떨어지고 있던 중, 결국 마음을 굳게 먹고는 질문했다.

“동방삭…… 너…… 도대체…… 몇 살이냐?”

“나도 몰라. 아주 오래 살긴 했어.”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의사단전 백 개는커녕 열 개만 만든다 하더라도 내공수련에 최소한 수백 년을 쏟아야 하리라. 게다가 거기에 압축된 내공을 정제해서 한 방울씩 고이게 만들어서 그 결과물이 절세고수가 반평생 쏟아왔던 내공보다 훨씬 많아지게 하기 위해서 걸리는 시간은 그 시간의 몇십 곱절은 들 것이 분명했다.

단언할 수 있었다. 동방삭은 이미 일만 살을 훨씬 넘겼을지도 몰랐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저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자, 잠깐 나랑 같이 복희한테 가자.”

파앗

나는 흑웅이 만들어준 차원문으로 복희에게 동방삭을 데려가서는 급히 말했다.

“복희 님. 이 동방삭의 나이가 얼마인지 측정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복희는 정자에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음? 생뚱맞군.”

“너무 궁금해서 그럽니다. 제발…….”

“좋네. 그 정도야 뭐.”

촤륵 하고 복희가 부채를 펼치더니 신술을 전개했다. 그리고 신묘한 신의 글자가 백색의 휘광을 빛내며 동방삭의 몸을 잠시동안 감쌌고, 눈을 감고 있던 복희가 입을 열었다.

“동방삭은 지금 인간계의 나이로 78923세이다. 대답이 됐는가?”

“……?!”

뭐, 뭐라고?!

나는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복희님!! 인간이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습니까?!”

“명계의 명판관과 옥졸들을 쫓아냈다는 게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지? 자네가 살던 시대는 모르겠지만 이 시대에는 명계의 부름만 뿌리칠 수 있다면 인간은 죽지 않아. 그리고 동방삭은 계속 명계의 부름에서 탈주했기에 충분히 그만큼 살 수 있지.”

“아, 아니 그래도 생명체로서의 수명이란게…….”

“그것도 동방삭의 몸에 충만한 기(氣)의 힘으로 무한히 연장되잖나? 이상할 게 없는 것 같네만…….”

“……“

내가 할 말을 잃었을 때 옆에 있던 흑웅이 중얼거렸다.

[삼천갑자(三千甲子) 라는 칭호는 말 그대로였던 거구려.]

“아니…… 그게 말이 되냐고…….”

믿을 수가 없다.

동방삭은 정말로 삼천갑자를 살 수 있는 최초의 인간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내가 넋을 놓고 있자 흑웅이 힐끔 동방삭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방삭. 그대에게 그 무공을 가르쳐준 자는 지금 어떻게 되었나?]

“옛날에 죽었지.”

[그렇군. 그러면 의사단전을 만드는 방식 또한 그자가 가르쳐준 것인가?]

“아니. 다만…….”

동방삭은 옛날을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 녀석이 나는 아주 오래 살 거라고 하길래 어떻게 해야 쓸데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만들어낸 거야.”

[그런가…… 처음부터 강해지는 것 따윈 안중에도 없었던 사고방식. 그러나 그렇기에 상식을 초월한 내공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군.]

잠시 탄식하던 흑웅이 내게 말했다.

[주인. 깨달았소?]

“……그래.”

흑웅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동방삭의 방식이야말로 내게 새롭게 제시된, 무공으로 강해지는 방식.

터무니없을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수많은 의사단전을 만들어 내공의 그릇 자체를 수천 배나 두들겨서 넓히는 방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내가 만일 동방삭의 내공 경지에 오르게 된다면 틀림없이 백련교주조차 가볍게 내공싸움으로 이길 수 있으리라!

‘할 수 있을까?’

동방삭은 이미 8만 살에 가까운 데다가 도대체 몇만 년을 수행한 건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녀석에 비하면 나는 고작해야 천 년도 살지 않았고 내공수련 기간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동방삭처럼 된다는 건 아무리 내가 전생자라도 힘든 일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불끈

나는 주먹을 세게 쥐며 씨익 웃었다.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구만.”

그저 기쁜 것은 왜일까?

나는 무공으로 강해지고 싶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목표 같아도 우공이산(愚公移山)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자 기쁜 마음으로 말했다.

“다시 탁록촌으로 가자!”

파앗

나는 흑웅, 동방삭과 함께 탁록촌으로 왔다. 그리고 탁록촌으로 오자마자 마을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수보리와 건달파를 불렀다.

“잘 갔다 왔나?”

“주군.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

나는 내 동료들이 가득 모인 자리를 둘러보다가 나직이 말했다.

“밖에 있는 열산과 청양, 상아는 이리 들어오시오.”

스윽

마을의 움막 안으로 열산, 청양, 상아가 걸어들어왔다. 열산은 왠지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우리를 따돌리려는 줄 알았다!”

“그럴 생각 없으니 걱정마시오.”

나는 좌중을 쳐다보다가 손을 모아서 트리무르티로 공간을 창조했다.

[염탐되지 않는 공간]을 창조한다!

우웅

나는 이로써 신농도 이 공간을 염탐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을 말해 주겠소.”

“말해 주게.”

“지금까지 마을을 확장시키고 열심히 수련해줘서 고맙소. 허나 앞으로 머지않아 신농이 황제에게 도전하여 소녀를 구출하려 할 것이고, 그 와중에 신들의 거대한 전쟁이 벌어질 예정이오. 이대로라면 우리는 그 싸움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오!”

웅성……!!

내 말에 흑웅과 동방삭을 제외한 전원이 놀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농과 황제의 싸움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이 중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보리는 약간 평정심을 잃은 듯 말했다.

“그럼 큰일 아닌가? 결국 신농은 자네에게도 참전을 요구할 걸세. 전에 한 번 거절했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거절 못 하도록 밀어붙이겠지!”

“알고 있소. 그래서 내가 한 생각은, 합종연횡이오.”

“합종연횡……? 합종이란 소국이 대국에게 대항하는 법이고 연횡이란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지. 헌데 자네는 어느 쪽이 소국이며 어느 쪽이 대국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인가?”

“……“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판도에서 혼돈의 황제측과 질서의 삼황측, 어느 한쪽이 대소(大小)라 단정지을 수 없네만…… 둘의 힘은 거의 백중세, 합종연횡의 계책이 통할 틈새가 없어.”

수보리가 의혹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생각을 달리했소. 지금 이 대립의 축이 두 개라고 하지만 꼭 두 개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잖소?”

“……?”

수보리는 언뜻 말을 못 알아들은 듯했지만 의외로 내 말을 알아들은 것은 건달파였다.

건달파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주군께서는 다른 신들을 끌어들이실 생각이시군요.”

“그래.”

나는 씩 웃으며 마침내 본론을 말했다.

“칼파에 있는 힌두의 삼대신, 그리고 멤피스에 있는 오시리스의 영계 만신전. 그 외에도 끌어들일 수 있는 놈들은 다 끌어들일 거야.”

“어떻게 끌어들이실 생각이십니까? 그들은 극도로 타인의 일에 끼어들기를 싫어하는 성향일 텐데…….”

“소녀(素女).”

“……!!”

“그녀가 가진 불멸(不滅)의 권능, 그리고 이번 싸움에서 삼황과 오제 중 하나가 불멸을 얻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모든 신에게 알릴 거다. 그러면 모든 이가 이 일에 끼어들게 될 것이고, 그들 중 하나하나가 삼황이나 오제보다 강한 세력은 없을 테지만…….”

수보리가 내 말을 알아들은 채 탄식했다.

“그 자체로 삼황오제의 전면전을 막기 위한 합종(合從)이 형성되는 것이군!!”

“그렇소.”

“심계가 좋군. 나도 바로 생각해내지 못한 발상이라니…… 헌데 괜찮겠나?”

“뭐가 괜찮겠냐는 말이오?”

“이 책략은 틀림없이 복희의 반발을 부를 것일세. 복희는 지금 자네의 가장 큰 지지자 중 하나인데 이렇게 과격하게 나가는 건…….”

“상관없소.”

나는 무덤덤하게 내뱉었다.

“신왕(神王)들의 폭주를 막는 거라면 복희도 이해해주겠지!”

아니, 사실 이해해 줄 거라는 자신은 없다.

하지만 알아보고 싶다.

과연 복희는 내가 이렇게 마음대로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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