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553화 (1,452/1,615)

전생검신 83권 01화

내 말을 들은 전륜성왕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대신 옆에 있던 금륜(金輪)이라는 자가 눈에서 분노의 안광을 피워내며 말했다.

[네놈이 감히 성왕의 권위를 모욕하는가!]

치칭!!

그와 동시에 금륜의 몸이 번갯불처럼 변하더니 나를 공격해 왔고, 나는 그 모습을 보자 흠칫 놀랐다.

‘뇌신지혼?’

그렇게 착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금륜의 공격은 뇌신지혼과 닮아 있었다. 완전한 뇌정지기를 뿜어내는 뇌전으로 변하여 번개의 속도로 공격해 오는데 어찌 다르다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뇌신지혼은 무공이고 상대는 신력을 이용해서 ‘뇌화’를 구현했다는 과정상의 차이밖에 없었다.

[어딜!]

투쾅!!

내가 아무런 수도 쓰지 않았지만 내 앞을 먼저 가로막은 것은 흑웅이었다. 흑웅은 한쪽 손을 뻗어내어 천계 최고의 방어술 중 하나인 혼원지순을 시전한 상태였고 그마저도 중첩이 되어 있어서 금륜의 뇌전공격은 쉽사리 가로막히는 듯했다. 그러나 금륜의 공격은 뇌전은 혼원지순에 막힌 순간 옅은 안개 같은 빛무리를 피워내더니 갑작스럽게 수백 줄기의 채찍으로 변모했다.

퓨아아악!!

듣기만 해도 끔찍스러운 파공음과 함께 흑웅의 혼원지순은 순식간에 갈가리 찢겨 버렸고 흑웅 또한 뒤로 물러났다. 나는 흑웅에게 보조를 맞춰서 함께 뒤로 뛰었는데, 흑웅은 여전히 나를 호위하듯 가로막으며 중얼거렸다.

[과연 칠보의 첫째. 그리 만만치 않구나.]

슈욱…….

금륜은 다시 뇌정의 상태에서 인간형으로 되돌아오며 성난 표정을 지었다.

“네놈이야말로 왜 여유를 부리고 있느냐? 내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는 걸 알고 있거늘!”

[…….]

흑웅이 대꾸하지 않고 침묵할 때 뒤에서 관전하고 있던 전륜성왕의 말이 들려왔다.

“흑웅은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니다, 금륜.”

“주군.”

“지금은 저게 흑웅이 낼 수 있는 최선의 힘인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흑웅이여,”

전륜성왕의 말에 흑웅이 대꾸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네가 백웅의 인과율으로 인해 강대한 정령신으로 거듭났다 하더라도 백웅에게 귀속되어 있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백웅과 합신하여 그 신력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한 한계가 분명히 있지. 지금도 어지간한 신적 존재보다는 강하겠지만 본디 낼 수 있는 힘에 비하면 크게 제약되어 있음을 알고 있노라.”

[……!!]

“물론 그렇다 하여 금륜의 역량이 평가절하될 일은 아니지. 금륜도 제약이 다 풀리면 염라대왕에 못지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말한 전륜성왕은 문득 그윽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백웅. 설마 흑웅을 믿고 내게 무례를 저지른 것은 아니겠지?”

“…….”

나는 곤란함을 느꼈다.

‘제길, 거물이긴 거물이군.’

뭔가 내 돌발적인 행동 때문에 전륜성왕이 크게 동요하기를 바랐지만 전륜성왕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역시 상대도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인 데다 전 차원계를 주름잡는 제왕인 것이다. 나는 일이 조금 더 어려워짐을 느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무례라니요. 고작 인간 하나를 데려가겠다고 통보한 게 무례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까? 이미 의뢰는 달성하여 의리를 지켰음에도 억지를 부리시면 곤란합니다.”

“본좌는 칠보와 동방삭을 교환하겠다고 승낙한 적 없다. 내 의사를 무시하고 통보를 한다면 아무리 의리를 지켰다 하더라도 그건 무례일 수밖에.”

“그러십니까? 그러면 이 공간 내에서는 외신에 버금가는 힘을 발휘할 수 있으실 텐데 어찌 저를 즉시 공격해 죽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재미있군. 그걸 알면서도 도발이라…….”

전륜성왕은 나와 이야기를 섞으면서도 흥미로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전륜성왕 곁에 있던 금륜은 여전히 분노한 기운을 숨기지 않으며 외쳤다.

“성왕이시여! 저자가 그리도 죽고 싶어 하니 소원대로 해주십시오! 저희를 칠보전륜으로 만들어 저자를 분쇄한다면 영혼의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입니다!”

고오오오

그 순간 금륜을 포함한 칠보 전원에게서 심상치 않은 일곱 가지 빛깔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기운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느끼고는 흠칫했다.

‘이…… 이 녀석들, 이렇게 강했었나?’

내가 28회차에 전륜성왕의 권능을 얻어서 칠보전륜을 획득했을 때는 결코 이 정도의 힘이 아니었는데 최소한 두세 배는 더 강력하게 느껴졌다. 최근 흑웅이 칠보전륜을 휘두르긴 했지만 빙의상태였기에 실감을 못 했었는데 역시 전륜성왕의 전성기 때 칠보전륜의 힘은 말세에 비하면 더없이 강력한 듯했다.

알고 있다. 눈앞의 전륜성왕이 칠보전륜을 장비하면 그 힘은 결코 전력을 다하는 황제에 못지않으리라는 사실을!

지금 내가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안 돼. 여기서 기세에서 밀리면 아무것도 안 될 거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굴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끝까지 물러나지 않자 전륜성왕은 나를 주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대가 전생자라 하여 내가 그대를 상대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칠보들이 말한 대로 일단 영혼과 육체를 분쇄해 버리고 이 세계가 끝날 때까지 봉인하며 고문해도 되지.”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도발을 했다는 것…… 그것은 뭔가 무례를 핑계삼아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로구나.”

“그렇다면 들어주실 겁니까?”

“말해보라.”

됐다.

나는 아슬아슬한 도박이 먹혔음을 깨닫고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고는 전륜성왕을 정면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저의가 뭡니까?”

“어떤 저의를 말하는 것이냐.”

나는 그제서야 간신히 그때까지 흉심(胸心)에 감춰두고 있던 말을 흘려내었다.

“고작 소녀와 동방삭의 거취 같은걸로 저승 최강의 무기인 칠보전륜을 대뜸 내게 준다는 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기는 이쪽도 만만치 않습니다.”

“…….”

“적어도 복희는 자신이 인간을 돕고 황제를 타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당신도 내게 원하는 게 있다면 어떤 뜻을 품고 있는지 말해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면?”

“칠보전륜을 주는 것 자체가 저를 늪에 빠뜨리려는 함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말을 들은 전륜성왕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빙긋 웃었다.

“동방삭은 핑계였군. 처음부터 본좌의 선물을 의심하고 있었구나.”

“믿을만한 근거를 준 적이 없었잖습니까? 당신은 자신의 뜻을 설명하지 않고 나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 하기만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다니 섭섭하구나. 본좌의 탄생 이래로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배려한 건 처음인데.”

그렇게 중얼거린 전륜성왕이 문득 칠보 쪽으로 손을 저었다.

“싸우지 않을 터이니 관두어라.”

스앗!

그 순간 전투태세를 취하던 칠보들이 끌어올린 힘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칠보들의 자의적인 행동이 아니라 전륜성왕의 권능이었는지, 칠보들은 갑자기 힘이 사라지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헛.”

“으음.”

나는 그 광경을 보자 긴장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칠보의 신력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은 것처럼 사라졌다! 신력으로 신력을 누르는 광경은 익히 보아왔지만 저렇게 흔적도 없이 소멸(消滅)시키는 건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경악했다. 그리고 저것이야말로 전륜성왕의 진짜 속성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본좌의 저의를 알고 싶은가.”

전륜성왕은 내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

“잠시 둘이서만 이야기하도록 하지.”

파앗!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생전 본 적도 없는 거대한 사막 위에 서 있었다.

“……?!”

사, 사막?!

갑자기 웬 사막이?!

주변에는 흑웅도 동방삭도 칠보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대막(大漠)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어느새 나타나 있던 전륜성왕이 입을 열었다.

“이 절연사막(絶緣死漠)를 보니 어떠한가?”

절연사막?

나는 그 말에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이내 특이한 점을 깨닫고는 말했다.

“……이 사막은…… 무척…… 혼탁하군요.”

아닌 게 아니라 뭔가 기분 나쁠 정도였다. 자세히 보니 이 사막 전체가 혼탁함으로 얼룩져 있어서 끈적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사막이라기엔 점토 같은 게 많이 응결되어 있었고 시꺼먼 흐름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유동(流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순수하게 까맣다기에는 어둡고 혼탁한 여러 가지 색깔이 겹쳐 있었는데 도리어 그게 더 흉측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흉측한 장소가…….’

형용할 수 없는 혼돈 그 자체라고 해야 하리라.

사바세계에서 보았던 사막과 비교하면 마경(魔境) 그 자체였다.

전륜성왕이 말했다.

“이것은 [꿈]의 흔적이다. 그리고 본좌는 아득한 태고적에 이 망념의 사막에서 처음으로 눈을 떴다.”

“……!!”

“느껴지지 않는가? 이 사막에 가득한 절망과 죽음이…….”

나는 전륜성왕의 말에 잠시 고개를 숙여 사막에 손을 뻗어서 손으로 모래를 떠보았다. 손바닥에 고인 모래를 잠시동안 쳐다보고 있다가 나는 문득 전신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이, 이건…….”

츠츠츠……!!

모래를 담은 손에서 내 신력이 그대로 모래처럼 흩어져 사라진다!

다만 기(氣)나 육체는 그대로였고 오로지 신력만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급히 손바닥에서 모래를 흘려서 버리자 전륜성왕이 말했다.

“겉으로 보이는 알갱이들은 가장 잘게 분해된 것들이며 실제로 절연사막에는 수많은 것들이 녹아서 지층에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녹아 버린 것들은 아무리 강력한 신의 권능을 쓰더라도 복원시킬 수 없다. 어째서일 것 같은가?”

“모르겠습니다.”

“인연(緣)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대가 창조의 권능을 쓰더라도 인연이 사라진 존재는 결코 되살릴 수가 없게 되어 있지.”

“…….”

내가 창조의 권능을 갖고 있는 것도 이미 파악했군.

하지만 나는 어차피 명경에 비춰졌을 때부터 내 정보를 모두 분석 당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리 놀라지 않았고, 도리어 전륜성왕의 말에 궁금증을 느꼈다.

“인연이 사라진다는 게 어떤 의미입니까? 왜 그런 존재는 재창조할 수 없는 것이죠?”

“창조의 권능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조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으리라. 창조신이라는 자들 또한, 세계의 이치에서 허용된 범위까지만, 창조를 할 수 있지. 그렇다면 이치란 어디까지를 허용하는 것이겠는가?”

내 질문에 똑바로 대답해 주지 않고 도리어 다시 질문하는 전륜성왕의 화법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잠시 후 머리를 굴린 끝에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아챘다.

“……우주의 이치라는 건, [인연]을 지닌 존재를 창조하는 것만 허용하는 것입니까!”

츠츠츠츠

그 와중에도 유사(流沙)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주변에서 흘렀다. 흐르는 모래가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 게 섬뜩할 지경이었다.

“그렇다. 생멸(生滅)을 거듭하는 우주는 변화무쌍하여 무한의 혼돈을 내포하는 듯하나, 사실 그 속에는 일정한 규칙이 또다시 존재하며, 그 규칙은 [인연]의 흐름에 따른다. 그것을 연기(緣起)라 할 수 있으며 인과율의 다른 모습일 지언저.”

그렇게 말한 전륜성왕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본좌의 목적은…… 이 세계가 절연사막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뭐라고!

나는 전륜성왕의 목적을 듣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틀림없이 황제나 복희 등을 쓰러뜨리고 세계의 패자(覇者)가 되려는 목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가 말한 목적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나는 그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절연사막이라는 장소는 어디에 있는 거고…… 세계가 왜 절연사막이 된다는 말입니까?”

“…….”

전륜성왕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백웅이여. 그대는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는 걸 숱하게 보아왔다. 본좌 또한 그대의 기억을 보았기에 알고 있노라. 허나 그대가 아직까지 보지 못한 게 있지.”

“무엇입니까?”

이어진 말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이 세계가 [계시]와 [종말]을 맞이한 이후의 모습…… 그렇지 않은가?”

“…….”

“어찌 되었든 그대가 죽은 후이기에 절대로 볼 수가 없게 되어있지. 어쩌면 그 모습이야말로 그대에게 있어서 진정한 사후세계일지도.”

나는 멍하니 있다가 약간 당황해서 말했다.

“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세계가 망했는데 그다음에 대체 뭐가 있단 말입니까? 볼 수도 없을뿐더러 볼 필요조차 느낀 적이 없습니다.”

세계가 멸망하고 나면 그냥 전생하는 것이지 그 이상 뭘 생각해야 할까?

전륜성왕의 말은 내게 있어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렇겠지. 당연한 일이지. 허나 진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는 걸 의심할 때 비로소 그 일각(一角)을 드러내는 법.”

전륜성왕의 눈이 잠시 빛났다.

“세계가 멸망 이후에 취하게 되는 하나의 국면…… 그것이 바로 절연사막. 세계는 멸망 이후에 절연사막이 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세계는 몇 번 이상 절연사막이 되어 버린 적이 있다.”

“…….”

“본좌가 여기서 태어나 우주적인 죽음의 절대자가 된 이유…… 그것은 하나의 결말 속에서 모든 원념과 죽음이 [나]라는 존재를 탄생시키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니라.”

그렇게 자기가 탄생하게 된 비화를 이야기한 전륜성왕은 잠시 내게로 시선을 향했다. 그러고는 ‘본론’을 꺼냈다.

“그러나 이 세계는 종말 이전에도 ‘균형’이 사라지면 절연사막이 될 수 있다. 본좌는 균형의 파멸을 막기 위하여 그대와 손을 잡으려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