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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552화 (1,451/1,615)

전생검신 82권 20화

동방삭은 꽤나 고난을 거친 듯한 모습이었다. 놈이 입고 있던 옷은 어딘가에 타거나 그을려 있었고 몸은 상처투성이였으며 왼쪽 손이 피칠갑을 하고있는 것만 봐도 대충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고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선수를 빼앗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동방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표정이었다.

나는 잠시 어이가 없어서 동방삭에게 말했다.

“야! 너 설마 태양신의 배꼽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었는데 내기를 제안했던 거냐?”

그렇지 않고서는 내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동방삭이 이렇게 단숨에 찾아올 리가 없다. 왜냐하면 나와 복희가 동방삭을 소환하여 내기를 제안했던 건 갑작스러운 상황이었기에 동방삭이 내기를 하리라고 예측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동방삭이 대꾸했다.

“그래. 위치는 다 파악했는데 고대신들의 결계를 무사히 뚫을 자신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었다.”

“……”

“어쨌든 내기를 받아들였잖아. 그럼 된 건데…….”

이내 동방삭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너야말로 맛이 간 거 아니냐? 대놓고 영계의 지배자인 오시리스를 만나서 보물을 달라고 하는 미친 새끼가 있을 줄은 몰랐다!”

“꼭 훔쳐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잖냐.”

“……”

동방삭은 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듯했지만 사실 나야말로 가슴이 약간 철렁했다.

‘와…… 분신들을 보내서 그냥 피라미드를 뒤졌으면 무조건 졌겠네.’

이미 목표가 어딨는지 다 파악했고 뚫고 들어오기만 했던 놈을 상대로는 절대 그런 방법을 써서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오시리스한테 정면으로 보물을 달라고 요청한 건 꽤나 무모한 짓이었지만, 달리 말하면 이 방법이 아니었다면 동방삭과의 내기에서 무조건 졌으리라.

오시리스가 힐끔 나를 보며 말했다.

“저자와 내기를 했나?”

“그렇습니다. 불경한 놈이지만 한 번은 봐 주시죠.”

“좋네. 허나 그 대신에 다음번에 한 번 다시 나를 찾아오게.”

“……네?”

“심심할 때 놀러 오라는 이야기일세. 그렇게 깊게 받아들일 것 없네.”

절대로 그렇게 간단한 얘기가 아닐 것이다. 나는 이게 오시리스가 나를 회유하려고 끈덕지게 노력하는 거라는 걸 깨닫고는 고민했다.

‘이거, 어째 신들이 나를 영입하려는 게 강하게 느껴지는군…….’

하지만 그렇다고 오시리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오시리스가 동방삭을 튀겨 죽이거나 봉인하려 들 것이다. 동방삭이 아무리 탈출의 대가라지만 그렇게 당하는 걸 보는 건 마음이 좋지 않았으므로 나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후후. 해는 끼치지 않을 터이니 걱정 말게나.”

너털웃음을 터뜨린 오시리스는 옆에 있던 개 머리 신에게서 커다란 지팡이를 받아든 후, 곧장 [태양신의 배꼽]을 향해 겨누었다.

스아아앗

그러자 육 장이나 되던 거대한 크기의 [태양신의 배꼽]은 순식간에 줄어들어서 한 주먹에 쥘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보석이 되었다. 오시리스는 [태양신의 배꼽]을 내게 주며 말했다.

“한 가지 말해주고 싶은 게 있네.”

“무엇입니까?”

“전륜성왕과 저 인간의 거취로 교섭을 하지 말게. 전륜성왕은 처음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 그건 무조건 자네에게 손해가 될 걸세.”

“……?!”

나는 그 말에 흠칫하고 말았다.

‘뭐지? 전후 상황을 어떻게 다 알고 있단 말인가?’

오시리스가 무엇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몰라서 내가 경계 어린 기색으로 그를 바라보자 오시리스는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방금 그건 내 조언이 아닐세. 태양신 라의 [정신]이 내게 일러준 얘기를 그대로 했을 뿐.”

“……태양신 라가 인과율을 읽었단 말입니까?”

“지금은 모든 신들이 경쟁하는 상황. 훈수를 두어서 상대의 목적을 훼방 놓는 건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겠나.”

“……”

“조언을 받아들이는 건 자네의 자유일세. 그럼 가보게.”

치이잉!!

오시리스가 백색으로 빛나는 차원문을 만들어내자 나는 힐끔 동방삭을 바라본 후 말했다.

“가자고.”

위이잉

나는 동방삭과 함께 차원문을 나섰다. 그리고 차원문 밖으로 나오자 고대신에게 수호받고 있던 그 도시의 앞에 도착했고, 동방삭은 땅을 밟자마자 툴툴거리며 말했다.

“젠장. 똥 밟았군…… 내기에 진 걸 인정한다.”

“……”

“내기에 이겼으면 좀 기뻐하시지? 내가 태어나서 내기에 진 건 이번이 처음인데.”

동방삭의 말에 나는 놈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동방삭. 네 녀석은 대체 뭔 짓을 했길래 명계의 전륜성왕이 너를 집요하게 잡으러 오는 거냐?”

“엉? 넌 그것도 모르고 날 잡으러 왔던 거냐?”

“난 전륜성왕의 부하가 아냐. 어쩌다 보니 전륜성왕의 의뢰를 받았지만, 너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

“……”

“너와 약속했던 대로 전륜성왕과 교섭할 생각이었지만 방금 전 오시리스가 훈수를 두는 바람에 생각이 많아졌다. 최소한 네 녀석이 어떤 경위로 전륜성왕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으니까 말해줘야겠다.”

당초 생각은 동방삭이 뭔 짓을 했던 간에 관심 없고 빨리 전륜성왕의 의뢰나 해치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시리스까지 나서서 전륜성왕의 심계를 조심하라고 할 정도라면 나 또한 신중해져야 했다. 동방삭 이놈도 뭔가 심상찮은 게 얽혀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흐음…….”

동방삭은 뭔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심기를 거슬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죽음을 탈출하는 법을 알고 있고 그걸 내가 아는 인간들에게 전수한 적이 있어.”

나는 동방삭의 말에 깜짝 놀랐다.

“……뭐? 죽음을 탈출하는 법을 알고 있다고? 그건 너만이 갖고 있는 [혼돈의 재능]인 거 아니었냐?”

“혼돈의 재능이니 뭐니 하는 건 몰라. 다만 나는 그냥 뭐든 탈출할 수 있는 법을 알고 있고 어떻게 해야 가능한지가 다 보여. 그래서 요령을 전수해서 평범한 인간도 죽음을 탈출하게 했다.”

동방삭은 근처의 나무에 등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물론 나와 달리 보통 인간들은 아무리 많이 성공해도 최대 3번. 그 이상은 죽음에서 탈출할 수 없더군.”

“……!!”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약간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 그 말은 죽음을 회피하는 기술(技)이 따로 존재한다는 말이냐?”

“어. 그게 뭐가 이상한데? 신들은 이깟 잔재주는 비교되지도 않을 정도로 대단한 짓을 하던데.”

“……”

동방삭은 그게 뭐가 대단하냐는 듯 말했지만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딱히 [혼돈의 재능]을 갖고 있지 않은 평범한 인간조차도 죽음을 회피할 수 있게 한다는 건데, 재능 없이도 연마하여 쓸 수 있는 것은 기술(技)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기술이라는 이야기는 그 기술을 습득할 경우 모든 인간이 최대 3번까지 죽음을 회피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이야기였다!

‘신들의 전성시대에 살다 보니 동방삭은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기술을 갖고 있는 건지 모르나 보군……!!’

동방삭의 기술을 습득하기만 한다면 굉장한 이득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내게 흑웅이 나직이 말했다.

[전륜성왕이 경계하여 잡아 오라 할 만하군. 동방삭이 계속 살아가면서 그 기술을 인간들에게 전수할 경우 명계에 가는 영혼의 회전율이 급격히 감소할 게 뻔하오. 그러면 전륜성왕 또한 명계를 운영하면서 얻게 되는 인과율이 크게 줄어들게 되겠지.]

“음, 그런 거였나.”

[주인. 하지만 전륜성왕이 의뢰를 완수하는 대가로 제안한 것은 바로 칠보전륜(七寶轉輪)이오. 명계 최고의 보물이자 전륜성왕의 독문무기라고도 할 수 있는 것! 주인이 동방삭을 명계에 데려다 놓는 의뢰를 시행하지 않는다면 칠보전륜을 얻을 수가 없소.]

“…….”

칠보전륜!

지옥 최강의 무기!

그것은 말 그대로 명계의 지배자만이 쓸 수 있는 전용무기였으며, 융합하여 전륜의 상태가 아닐 때는 칠보 하나하나가 신의 격을 갖춘 강력한 신하들이었다. 게다가 칠보전륜을 제대로 쓰면 기백천사처럼 강력한 신의 사도도 일격에 소멸시킬 수가 있었으니 실로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흑웅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주인의 역량으로 볼 때 칠보전륜만 얻으면 설령 삼황오제의 본체를 상대로 싸워도 승산이 낮지 않소. 아니, 대등 이상일 수도 있을 것이오. 고작 동방삭 하나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는 기회요.]

“동방삭을 위한 교섭 자체를 하지 말라는 거냐?”

[그렇소. 어설프게 교섭을 하려다 보면 결국 주인의 성정으로 볼 때 칠보전륜을 포기할 수도 있을 거요. 허나 나는 주인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으니, 그러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소.]

“으음.”

그러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방삭이 불쾌한 듯 말했다.

“젠장. 누가 니들 맘대로 따라준대? 아무리 약속을 했어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깟 약속을 못 깰 거 같냐!”

나는 화를 내는 동방삭에게 말했다.

“진정해. 그냥 흑웅의 의견일 뿐이야. 그보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네가 알고 있는 [죽음을 탈출하는 기술]…… 나한테 가르쳐 줄 수 있겠냐? 그걸 가르쳐준다고 약속해주면 전륜성왕하고 담판을 지어주마.”

“흠.”

“동방삭. 나는 약속을 지킬 거다. 그러니까 나를 믿어줘라.”

“……”

동방삭은 한동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영계의 지배자와 정면으로 담판을 지은 놈이라면 나도 믿어보겠다. 담판을 지어준다면 나도 내가 알고 있는 기술을 아낌없이 가르쳐주마.”

“거래 성립이군.”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흑웅에게 말했다.

“흑웅. 명계로 가는 문을 열어라.”

[…… 꼭 그래야 하겠소?]

“조언도 과하면 별로야. 네가 날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으니 이젠 날 믿어라.”

[그것도 감이오?]

“그래. 내 감이야.”

더 이상 전륜성왕에게 끌려다니지는 않으리라.

오히려 흑웅의 합리적인 생각이 더욱 내 앞길을 제약하고 위대한 신들의 심계에 이끌려 다니는 역효과가 날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알겠소. 나 또한 끝까지 주인과 함께하겠소.]

슈욱……!!

잠시 후 나는 흑웅, 동방삭과 함께 명계로 왔다. 그리고 명계에 도착하자마자 전륜성왕의 궁(宮)으로 향했는데, 궁 앞에 도달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알고 있던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군요.”

“당신은.”

안경을 쓴 은색 머리카락의 미녀가 명계의 법복(法服)을 입은 채 내게 고개를 숙이는 게 보였다.

“칠보(七寶)의 둘째인 은륜(銀輪)입니다. 성왕의 명을 받들어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따라오시지요.”

나는 은륜을 따라서 거대한 명계의 궁 내부를 걸어 들어갔다. 명계의 궁은 말끔히 단정되어 있었으며 다른 신의 궁전과 달리 요란하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검소하다기엔 적당히 위풍이 갖추어져 있어서 평소 전륜성왕의 성격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이윽고 은륜을 따라서 마지막 시뻘건 문(門)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왔군.”

그 얼굴은 바로 나 자신의 얼굴.

복희의 얼굴로 변하기 전의 내 원래 얼굴이었다. 내 원래 얼굴인 만큼 객관적으로 추하게 보였지만 그 본질이 전륜성왕이라서일까? 미추를 따지기 이전에 신으로서의 압도적인 위엄이 느껴졌기에 도리어 강인하고 굳세다는 인상이 추하다는 생각을 흐리게 만들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자 인상을 찌푸렸다.

“또다시 그 얼굴을 하시다니 악취미시군요.”

“그대 자신의 얼굴이 아닌가?”

“신이라서 잘 모르실 테지만 인간은 미추(美醜)에 민감하기에 저는 제 원래 얼굴을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습니다.”

“마치 자신은 신이 아니라는 것처럼 얘기하는군.”

“……”

“그렇다면 묻고 싶다. 그대는 신이 미추를 가리지 않는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다소 심오한 질문이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천상의 아름다움이든 괴물 같은 추악함이든 어떤 모습으로라도 변신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건 아주 사소한 부분이지. 그대는 아직 신의 본질을 모르고 있구나.”

“……”

털썩…….

상대는 옥좌에 털썩 주저앉고는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동방삭을 데려온 걸 보면 본좌가 그대에게 맡긴 의뢰를 훌륭히 수행했구나.”

“……”

“칠보(七寶)을 그대에게 하사하겠노라.”

눈앞에 있는 것은 바로 전륜성왕(轉輪聖王), 지옥의 지배자.

그가 나에게 지옥 최강의 무기인 칠보를 내리려 하는 바로 지금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씩 웃으며 말했다.

“거절하겠습니다.”

그 순간 전륜성왕 근처에 시립해 있던 칠보 일곱 명이 거의 동시에 당혹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거절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정작 전륜성왕은 무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어째서인가?”

“저는 귀하의 의뢰를 달성했으니 이로써 신의는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를 받고 받지 않고는 제 마음이 아닙니까?”

“……”

“저는 동방삭과 약속했습니다. 담판을 짓기로.”

문득 전륜성왕이 재밌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식으로 담판을 짓겠다는 건가?”

“칠보를 받는 대신 동방삭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앞으로 동방삭을 억지로 명계에 데려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교섭을 하겠다는 것인가?”

“명경(冥鏡)으로 이미 제 마음을 다 읽으셨으면서 왜 입 아프게 질문을 하시는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검지로 전륜성왕을 가리켰다.

“이건 교섭이 아니라 통보입니다. 받아들이든 말든 맘대로 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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