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2권 18화
내가 돌격명령을 내리자 분신들은 잠시동안 서로를 쳐다보았다. 나는 분신들이 미적거리면서 움직이지 않자 이상한 느낌에 말했다.
“너희 왜 안 움직이냐?”
그러고는 놈들 중에서 대표인 듯 한 명이 나와서는 굉장히 띠꺼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본체야. 돌격하는 건 좋은데 태양신의 배꼽이란 게 뭔데?”
“어……?”
“뭔지 알아야 찾든가 말든가 하지.”
나는 매우 합리적인 이의제기에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그렇다.
생각해보니까 동방삭은 태양신의 배꼽이 뭔지도 얘기를 안 해주고 갔던 것이다!
나는 분신의 말에 급히 복희에게 말하려 했다.
“복희님. 다시 동방삭을 소환…….”
“그리고 또 하나.”
갑자기 분신이 내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내가 분신을 홱 하고 돌아보자 분신은 또다시 예의 띠꺼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중 누군가가 수백 개의 피라미드 중에서 태양신의 배꼽을 찾아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사실을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응? 무슨 소리냐? 갖고 나오면 되지.”
“어떻게든 진입해서 찾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갖고 나오기 힘든 상황이면 어떻게 하냐고. 듣자 하니 저 안쪽은 고대신의 몸통이나 다름없어서 교신술법 같은 것도 전혀 안 통할 거고 순간이동도 못 쓸 텐데.”
“…….”
“아무 생각 안 하셨구만.”
분신이 이죽거리자 나는 짜증이 나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꾸했다.
“젠장. 있어 봐. 지금 생각하는 중이니까.”
그나저나 이 분신 놈은 뭐가 이리 예리한 거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점을 짚어내 버리잖아? 혹시 나 말고 다른 놈이 분신을 조종하는 건가?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복희가 말했다.
“교신 쪽은 답이 없을걸세. 굳이 답을 말하자면 소거법으로 분모를 줄여나가는 거겠지. 그리고 태양신의 배꼽이 무엇인가 하면 동방삭에게 직접 물어보기보다는 차분히 정보를 모으는 게 좋을 걸세.”
“왜 직접 물어보면 안 되는 겁니까?”
“동방삭에게 대화를 걸어서 내기를 건 이유가 그를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따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기껏 보물찾기 내기를 했는데 일일이 단서를 물어보는 건 동방삭이 인정하고 싶지 않을 걸세.”
“흐음.”
일리 있는 말이다. 나는 그 말에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태양신의 배꼽이라…….’
그 전에 태양신이라는 게 뭐지? 나는 그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보다가 문득 피라미드 아래에 거대한 도시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잡하지만 확실히 거대한 석재로 성벽을 쌓았으며 곳곳에 망루가 있었고 안쪽에는 거대한 생활시설과 수로가 완비되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수만 명은 저 도시 안에 살고 있을 것이리라.
‘피라미드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눈에 띄지 않았는데 저 도시 또한 고대의 것이라기엔 무척 크군.’
낙양만큼은 아니라도 명나라 시대의 평범한 성 크기는 되는 도시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은 수만 년 전이기에 저만한 크기라 하더라도 대단한 것이었고, 기척을 보니 인간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도시를 보자 생각이 바뀌어서 분신들에게 명령했다.
“다들 저 도시로 가라. 그리고 사람들에게 ‘태양신의 배꼽’에 대해서 정보를 최대한 모아서 와.”
인간들은 왠지 태양신의 배꼽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 같다.
“알겠다.”
타닷!
분신들이 도시를 향했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뭐, 내가 조금 성급했을 수도 있지. 차근차근 정보를 모아서 다시 간다.”
그러자 흑웅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주인. 그런데 지금도 성급했던 것 같소.]
“이번엔 또 뭔데?”
[저 분신들은 주인의 성격과 닮았소. 그런데 그런 분신들 수백이 한 번에 정보를 모은답시고 도시에 진입한다면 결코 조용히 정보를 모을 것 같지는 않은데…….]
“…….”
[한두 명만 보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오.]
에이 설마…….
’나는 흑웅의 걱정이 기우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 분신이 그렇게 제멋대로 굴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약 반 시진이 지났을 때였다.
쿠콰콰콰쾅……!!
갑자기 도시 곳곳에서 광대한 폭발이 일어났고, 기괴하게 생긴 고대의 석상이 거신(巨神)처럼 일어나서 전투형태를 하는 게 보였다. 그런 석상거신은 한둘이 아니었고 종래에는 무려 수십이나 되는 개체가 오 장이나 되는 크기로 일어서서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번쩍!!
콰과광
그리고 석상거신은 물론이고 기묘한 동물과 인간이 합쳐진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수호신들이 나타나서 현란한 술법을 쓰면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 수호신들의 모습을 발견한 복희가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오시리스 만신전의 영수신(靈獸神)들이군. 관념세계에만 주로 거주한다고 들었던 희귀한 존재들인데, 저들을 직접 보는 건 나로서도 처음이야.”
순식간에 도시 근처가 아수라장으로 변모하자 나는 그만 멍해져서 도시 쪽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아마도 주인의 분신들과 싸우는 석상거신을 돕기 위해 증원을 온 고대신의 부하들일 듯하구려. 하나하나의 실력은 천계의 신선 정도일까.]
“아, 아니 씨발!! 정보를 모으라고 했는데 왜 싸우고 지랄이냐고!! 저거 내 분신 맞아?!”
이해가 안 된다.
분신놈들 왜 저러는 거야?!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흑웅이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한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음…… 주인이 평소 하던 행동 그대로라고 생각했소만…….]
“엉?! 내가 언제 저랬냐!”
[그거야 매번…… 아무튼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는 아니오.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 수습해야 하오.]
쿠구구…….
도시 위쪽에서 거대한 차원소환진이 만들어지며 무언가 거대한 ‘날개’를 지닌 괴물이 소환되는 게 보였다. 보나마나 지금까지 소환된 놈들보다 더 강력한 괴물일 게 뻔했기에 그런 고위존재가 소환되면 답도 없을 게 뻔했다.
수보리가 전수해준 모수분신술, 편한 술수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쓰기가 더 힘들잖아?!
“끄응…….”
나는 침음성을 흘리고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별 수 없지. 내 상황을 고대신들에게 솔직히 얘기하는 수밖에!!”
그러자 흑웅이 진지하게 조언을 했다.
[주인.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인 건 알고 있을 거요. 그냥 여기서 모른 척 몸을 빼 버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소.]
“알아.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왠지 이 상황을 회피하고 그냥 튀어 버리면 더 상황이 악화되리라는 예감이 드니까!
파앗
나는 곧장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도시의 상공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합장을 하며 트리무르티로 [거대한 소리]를 창조해서 단숨에 천지사방에 울려 퍼지게 했다.
[싸움을 멈춰!!]
두웅
트리무르티로 창조한 소리에는 큰 신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일까? 단숨에 전장의 요란한 소리가 멎고 각지에서 싸우던 자들이 나를 쳐다보며 멈추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한쪽 손을 쫙 뻗어서 내 모수분신들을 단숨에 회수했다.
모수분신 해제!
슈슈슉
싸움을 하고 있던 한 축이 단숨에 사라지자 오시리스의 영수신과 거신석상들도 적을 잃어버려서인지 한층 얌전해진 기색이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영수신 하나가 내 쪽으로 날아와서는 영언(靈言)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사악한 침략자여. 너는 누구인가? 네 분신을 보내어 공격한 주제에 이제 와서 공격을 중단시킨 이유가 무엇인가?]
상대의 목소리에는 적의가 가득했기에 나는 무슨 말을 해도 씨도 안 먹히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질문한 것도 정말 이유를 알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이유나 듣고 죽이겠다는 형형한 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거지 같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일단 할 말은 해야 했기에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으흠흠…… 오해다. 내가 분신술법을 잘못 써서 피해를 입힌 건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고의는 아니었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인가? 분신술법을 써서 우리 세력권에 있는 인간족의 도시를 정탐한 이유가 무엇인지 말하라.]
“나는 백웅. [태양신의 배꼽]을 찾고 있다. 혹시 인간들이 알고 있을까 싶어서 물어보려 한 것뿐이었다.”
[……!!]
내 말에 영수신은 흠칫하며 말했다.
[너는 테스카틀리포카와 무슨 관계인가?]
“……?”
테스카틀리포카?
나는 뜬금없는 얘기가 나오자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잠시동안 기억을 더듬었다.
‘테스카틀리포카……? 아!’
나는 갑자기 그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해낼 수가 있었다.
틀림없이 내가 달마의 외우주에 갔을 때 마주쳤던 물뱀 같은 악신!
그 악신을 상대로 무쌍패로 버티면서 악전고투하다가 마침내 뜻밖의 일격으로 쓰러뜨린 적이 있었고, 그 테스카틀리포카가 죽을 때 내가 직접 만상지투와 권능의 팔을 이용해서 그의 영혼을 훔쳐내었던 것이다!
‘수백 년이나 된 일이라서 잠깐 까먹고 있었군…….’
테스카틀리포카는 태양의 권능을 다루는 마신(魔神)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상대가 테스카틀리포카 얘기를 꺼내는 것도 이해가 갔다. 분명히 그 존재 또한 [태양신]인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신의 배꼽]이라는 것은 테스카틀리포카의 배꼽이라는 말인가?’
아니 그 전에 달마의 외우주가 아니라 우리 세계에도 테스카틀리포카가 분명히 과거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나는 상대의 질문에서 단숨에 많은 사실을 알아내고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예전에 테스카틀리포카와 싸운 적이 있다. 나는 그의 [배꼽]이라는 게 있다고 들어서 호기심에 찾아다니고 있었다.”
[…….]
웅 웅 웅
영수신은 끝이 굽은 지팡이 같은 걸 하늘로 치켜세운 채 침묵하는 것 같았다. 그 기묘한 침묵을 지켜보고 있던 흑웅이 내게 머릿속으로 이야기했다.
[주인. 저 지팡이는 동방의 보패 같은 것이오. 저자는 지팡이를 이용해서 피라미드에 잠들어있는 고대신들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소.]
‘그런 것 같군.’
[너무 솔직하게 다 얘기해준 것 아니오? 고대신들이 어찌나올지 모르는데 정보만 줘 버린 꼴이 될수도 있소.]
‘글쎄. 왠지 저놈들은 나쁜 느낌은 아니라서…….’
내가 흑웅과 머릿속으로 대화하고 있을 때 영수신이 침묵을 끝내고는 내게 말을 걸었다.
[우리의 신께서 그대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 따라오겠는가?]
“음…….”
이건 생각지 못했는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이렇게 된 바에야 피라미드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는 고대신이란 놈들의 면상이나 한 번 볼까!
지이이잉
[따라오라.]
잠시 후 영수신이 차원의 문을 만들어내었고 나는 그를 따라서 들어갔다. 그리고 차원의 문 바깥으로 나오자, 나는 휘황찬란한 오색으로 빛나는 대리석이 가득 깔려 있는 신비로운 통로에 발을 디딜 수가 있었다. 통로는 가히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으며 곳곳에 수정과 금, 백금 등이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어서 내가 여태껏 보아왔던 화려함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 했다.
드넓은 통로를 걸어서 한참을 걸어가자 이윽고 또 다른 세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광대한 광장(廣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반경 수백 장은 우스울 정도로 드넓은 원형의 광장은 곳곳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고 허공에 신비로운 원반들이 유영하고 있었다.
쿠구구…….
그리고 광장의 각 방위에는 불꽃이 점화되어서 타오르고 있었다. 또한 광장을 둘러싸고 수백이나 되는 영수신들이 고개를 조아린 채 앙복하고 있는 광경이 장관이었다. 영수신이 이윽고 내게 손짓하며 광장의 중앙으로 가라는 듯 가리키자 나는 천천히 그 위로 올라갔다.
슈슉…….
내가 광장의 중앙에 올라서자 잠시 후 정면에 웬 갈색 피부의 절세미남이 출현했다. 절세미남의 양옆에는 상당히 격이 있어 보이는 개 머리를 한 신격들이 제각각 천칭 같은 걸 들고 시립해 있었다. 나는 그자를 보는 순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 엄청난 미(美)! 도저히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깎아지른 듯한 인공적인 아름다움……!!’
나는 이 느낌을 한 번 받은 적이 있었다. 그건 틀림없이 복희의 인간형을 볼 때 느꼈던 것이다. 가장 강대한 신 중 하나인 복희는 인간의 미추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단순히 조형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인간형상을 만들어서 돌아다니는 것이다.
철저하게 신이 만들어낸 아름다움 - 그것은 그 외모의 소유자가 신이라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 절세미남은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내 옆에 있던 흑웅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참으로 강력한 정령신(精靈神)이로다. 그런 존재를 일개 부하로 사역하는 걸 보면 백웅 그대는 분명 전 우주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상위신…… 허나 나는 여태 그대 같은 자의 이야기를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
“백웅이여. 그대는 어찌하여 [태양신의 배꼽]을 찾고 있는가?”
그의 목소리에는 정중함과 동시에 오래된 자의 경륜이 스며들어있었다. 나는 눈앞의 존재가 결코 만만히 볼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포권을 하며 말했다.
“섣불리 알려드리기가 어렵군요. 귀하의 성명을 말해주신다면 저 또한 말하겠습니다.”
“…….”
상대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나는 %*&@*%& 이다.”
“저기 죄송한데 인간들의 이름으로 좀…….”
“……?”
상대는 왜 굳이 그걸 말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대답을 해 주었다.
“오시리스.”
오시리스!!
그건 분명히 영계 만신전의 주인을 칭하는 이름이 아닌가?
나는 오시리스에게서 흘러나오는 심상치 않은 신격(神格)과 위풍을 느끼고는 이 자 또한 삼황오제에 크게 뒤지지 않는 강대한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뒤지기는커녕 그들과 동급 이상일수도 있으리라. 나는 신력을 통해 오시리스의 힘을 가늠하며 긴장했지만 동시에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시리스처럼 강대한 고대신이 직접 지상에서 피라미드에 수면하며 계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째서 내가 전생하면서 오시리스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거지?’
나는 의문을 뒤로 하고는 오시리스에게 말했다.
“나는 어떤 자와 [태양신의 배꼽]을 누가 먼저 찾는지 내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찾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자 오시리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기라? 그대는 태양신의 배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건가?”
“잘은 모릅니다.”
“잘 모르는데 내기를 하다니…… 흥미롭군. 헌데 태양신과 전투를 한 적이 있었다는 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정녕 악의를 품고 인간의 도시를 정탐한 게 아닌가?”
“아닙니다.”
“…….”
오시리스는 자기 등 뒤에 있던 개 머리의 신이 들고 있는 천칭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한 번도 거짓을 말하지 않다니 놀랍구나. 이 천칭은 상위신이라 하더라도 진위를 속일 수 없는 신성한 유물이거늘.”
“……!!”
저 천칭이 상대 말의 진위를 판별하는 능력이 있단 말인가?
내가 내심 놀라고 있을 때 오시리스가 문득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으면 우리를 적으로 돌려도 크게 두렵지 않을 터인데 그토록 진실할 수 있다니 마음에 들었다. 그대에게서 신의(信義)를 느꼈으매, 나는 그대의 요청을 들어주고 싶구나.”
웅성웅성
…….
오시리스의 말에 순간 거대한 광장의 각 방위에 켜져 있던 불꽃들이 일렁이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불꽃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대신 그 위치에는 거대한 신격(神格)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츠아앗
츠아앗
잠시 후 거대한 광장이 도리어 좁게 느껴질 정도로 수많은 신들이 출현했는데, 내가 얼추 보아도 그 신들의 숫자는 최소한 백여 명이 훨씬 넘어 보였다. 그들은 제각각 기이한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그중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존재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들이…….’
먼 우주에서 계시를 위해 지구로 날아온 영계 만신전의 고대신들인가!
신성(神聖) 중에서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짐승의 형태를 하고 있는 사안(四眼)의 맹수처럼 생긴 신격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외쳤다.
[오시리스여!! 나 세트는 반대합니다. 저자는 너무나 수상합니다!!]
“…….”
[아무리 천칭에 거스르지 않는다 하여도 결국 외부의 존재! 저자가 어떤 대흉(大凶)을 불러일으켜 우리에게 해를 입힐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세트라고 칭한 신이 강력하게 반대를 내세우자 오시리스는 침묵하다가 말했다.
“어차피 태양신의 배꼽은 우리가 쓸 수도 없는 물건이다. 그 마신(魔神)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너도 알지 않는가?”
[으음.]
“진정으로 인연이 있는 존재라면 그에게 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만 주기 전에 한 가지 묻고싶은 건 있군.”
오시리스가 천천히 내게로 시선을 향하며 말했다.
“어찌하여 그대에게서 나의 어머니 누트와의 인과율이 느껴지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