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2권 17화
뭐 그런 능력이 다 있어?!
나는 복희의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생하면서 수많은 초능력과 권능을 보아왔지만 이만큼 독특한 능력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투능력보다는 탈출에 특화된 능력이라니! 나는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아서 복희에게 말했다.
“복희님. 혼돈의 재능이란 건 대체 무엇입니까?”
“음?”
“소녀나 유소도 그렇고 지금의 동방삭도 그렇고…… 그들은 인간이라기엔 너무 굉장한 초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들조차도 그 힘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초상능력을…….”
“한낱 인간이 그런 초능력을 갖고 있는 게 이상하다는 건가? 그렇다기엔 자네 또한 미래의 세계에서 혼돈의 재능을 지닌 능력자들을 많이 보았던 것 같네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 중 그 누구도 이 시대에서 만난 혼돈의 재능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이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다. 대웅제국에 있던 초상능력자들도 나름대로 인간치고는 강한 편이었지만 그래 봤자 대라신선의 격을 넘어서는 자는 결코 없었다. 인공보패를 융합한 전투력까지 친다면 넘어설지도 몰랐지만 순수한 능력 자체는 그리 대단하다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제약을 깨고 사상최강의 초상기인의 몸으로 부활한 진시황제조차 과연 초상능력의 수준이 소녀나 유소, 동방삭에 미칠지는 의심스러웠다. 초상기인 또한 가공할 주술과 초능력이 융합한 결과물로서 강력할 뿐 능력 자체가 신의 지위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굳이 이 시대의 능력자들과 비교할 만한 혼돈의 재능이라고 한다면 오로지 천계의 최강자 중 한 명이자 절교교주며 사보검의 주인인 신공표 뿐이다. 그러나 신공표 또한 그 존재가 한동안 봉인되어 세상에서 잊혔으니 결코 드러난 존재가 아니었다.
도대체 수만 년 전 인류태동기의 초상능력자들이 이토록 강력한 이유가 무엇인가?
내 반응을 물끄러미 보던 복희가 입을 열었다.
“백웅. 혼돈의 재능이란 인간이 우주 전체에서도 특별하다는 증거다. 그걸 모르고 있었던가?”
“네?”
“……아니, 모를 수도 있겠군. 도리어 전생자이기 때문에 모를 수도.”
뭔가 생각하던 복희가 말을 이었다.
“인간을 창조한 것은 [옛 종족]이다. 자네가 삼황오제라 칭하는 우리 신격들이 아니야. [옛 종족]은 인간을 자신들의 노예이자 식량, 하급전사로 쓰기 위해 유전자공학과 주술을 시전하여 인간을 창조했지. 또한 그들은 거신족에 큰 반감을 지니고 있었기에 일부러 거신족에게 모욕을 주기 위하여 너희 인간을 거신족과 닮게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알고 있는가?”
“네. 그건 알고 있죠.”
거신족이 인간과 닮게 생긴 건 우연이 아니다.
일부러 [옛 종족]이 거신족에게 모욕을 주려고 인간을 그렇게 제작한 것이다.
“사실 거신족의 황제이자 신인 신농은 이런 하찮은 변방의 별에 직접 올만 한 존재가 아니야. 허나 이 적나라한 모욕 때문에 직접 와서 거신족 전사단과 함께 쳐들어가서 [옛 종족]의 왕을 직접 잡아 죽였지. 신농은 사실 계시보다는 그 일 때문에 지구에 온 느낌이 강하지.”
“…….”
그런 일이 있었나?
뜻밖의 비사(秘事)에 내가 놀랄 때 복희가 말했다.
“그리고 [옛 종족]이 몰락한 후 우리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인간종족을 이 땅을 지배할 선도종족으로 낙점지었고 그들에게 매여 있던 종족의 족쇄를 풀어주고 개조했다. 헌데 그 개조과정에서 뜻밖의 일이 발생했던 거지.”
“뜻밖의 일이라는 게 설마……?”
“[혼돈의 재능].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들은 개조된 순간 알 수 없는 잠재력을 개화시켰고 하나둘씩 혼돈의 재능을 각성했다. 즉 혼돈의 재능이라는 건 우리 신들이 인간에게 하사한 능력이 아닌, 인간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능력이라는 말이다.”
“……!!”
“우리 고대신들은 물론이고 황제진영도 당황했지. 왜냐하면 수십 억년 이상 광대무비한 우주를 누비면서 수십억 개의 문명을 보았던 우리였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그 어떤 문명이나 종족도 인간처럼 [혼돈의 재능]을 사역하고 자발적으로 각성한 경우는 절대로 없었다.”
인간 본연의 능력……!!
복희의 눈이 일순간 날카로워졌다.
“우리가 왜 그걸 혼돈의 재능이라 부르는지 아는가? 사실 그건 신력(神力)보다 더욱 본질에 가까운 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혼돈의 재능을 발휘하는 자들은 신력을 쓰는 게 아니지만 그럼에도 세계의 법칙을 자유자재로 헝클어뜨릴 수 있지. 신력보다도 더욱 인과율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리고 혼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나 다름없는 우리들은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어.”
“어떤 의미입니까?”
“…….”
복희는 침묵했다. 그는 잠시 나를 고요한 눈으로 응시했는데, 그 눈에서 나는 아무런 인간성을 느낄 수 없었기에 움찔했다. 말 그대로 [신] 그 자체의 시선이었으며 법리(法理)를 관통하는 태룡으로서의 시선이었다.
한참이나 나를 응시하던 복희가 말했다.
“백웅. 한 가지는 말해두지.”
이어진 복희의 말에 나는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 할 화두가 또 하나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왕]이라는 건 자네 생각보다 더욱 큰 의미일 수도 있을 걸세.”
인간의 왕…….
’내 동료…… 혹은 적들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그 말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단 건가?
내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흑웅이 말했다.
[혼돈의 재능 같은 건 아무래도 좋소. 중요한 건 지금 당면한 과제인 ‘동방삭의 포획’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것. 나는 거기에 대해서 복안이 하나 있소만.]
“무엇인가?”
[복희 당신이 다시 한번 동방삭을 소환해 주시오. 그러면 내 주인이 만상지투로 그자의 무문(無門)을 훔쳐서 도주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이오.]
“호오! 만상지투로 혼돈의 재능에 도전해보겠다는 건가?”
복희가 흥미로워했다. 흑웅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주인. 내가 생각할 때는 해볼 만한 도전이오. 어떻소?]
“……“
만상지투라고…….
흑웅의 제안은 분명히 매력적이었다. 아니, 원래 저런 생각은 내가 해냈어야 하는 건데 내가 좀 늦은 감이 있었다. 만상지투의 가공할 위력을 생각해보면 동방삭의 무문을 상대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니. 만상지투는 쓰지 않겠어.”
[……!! 아니, 어째서요?]
흑웅은 거절당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당황한 듯했다. 나는 당황하는 흑웅에게 차분히 말했다.
“나는 수련세계에서 만상지투를 쓰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어. 그리고 만상지투에만 의지하지 않겠노라고 내 자신에게 다짐한 적이 있다. 나는 아직 그 다짐을 깨고 싶지 않다.”
[으음…… 호되게 당했다니 어떤 일이었소?]
“그냥 그런 일이 있어. 암튼 만상지투는 쓰기 싫어.”
[이해가 안 되는구려. 다른 누구도 아닌 주인이 편한 길을 굳이 돌아가려 한다니…….]
“……나도 가끔 내가 이해 안 될 때가 있거든.”
나는 쓴웃음을 지은 후 복희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복희 님. 그래도 동방삭을 한 번 더 소환해 주십시오.”
“음? 만상지투라는 기술 외에는 딱히 동방삭을 붙잡을 방법이 없을 텐데 뭘 하고 싶은가?”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대화입니다.”
“호오…… 재밌군.”
복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동방삭이여, 복희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와라!]
파앗!
그러자 또다시 장내에 벽안금발의 동방삭이 소환되었다. 동방삭은 염증이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제기랄! 이번엔 또 뭐 하려고?! 저번처럼 암창으로 나를 꼬치구이로 만들게? 작작해라 이 개새끼들아!”
나는 동방삭의 말에 힐끔 옆에 있던 흑웅을 바라보았다. 범인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흑웅은 민망한 듯 중얼거렸다.
[죽여놓고 봉인하는 건 사실 나도 생각했었기에…….]
나는 당장에라도 사라지려는 동방삭에게 외쳤다.
“이봐, 동방삭!! 나는 백웅이다!”
그러자 동방삭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만나자마자 이별이구나 백웅!”
파앗
동방삭이 무문의 재능으로 사라지자, 나는 다시 복희에게 그를 소환해 줄 것을 주문했다.
“또 불러주십시오.”
“그러지.”
슈슈슉
동방삭은 다시 소환되자 당황한 듯했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대화를 끝내는 건 니 맘대로 할 수 없다, 동방삭!”
그러자 동방삭이 나를 성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뭐야? 왜 자꾸 부르냐고!”
“인마. 잠깐 내 말 좀 들어봐! 내 이름을 걸고 여기에 있는 자들은 너를 공격하거나 봉인하려 하지 않을 거다.”
내가 급히 말하자 동방삭은 코웃음을 쳤다.
“니가 뭔데? 별거 없는 새끼가 이름 걸어봤자 복희가 말이나 들어 처먹겠냐고!”
“내가 누구냐면, 음…….”
뭐라고 해야 하지? 전생자라고 해봤자 바로 알아들을 거 같지도 않은데?
내가 좀 대단하다는 걸 과시해서 붙잡아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복희와 친하다고 해봤자 이 녀석은 삼황오제조차 무시하는 놈이니 들어먹지도 않을 텐데…….’
그러면 삼황오제보다 더 높은 존재를 불러와야 하나?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 백웅은 외신한테 한칼을 먹인 적이 있는 사람이다!”
“……어? 뭐라고?”
“내 이름을 걸고 진실이다.”
동방삭은 뭔 소리 하냐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는데, 정작 그 말에 크게 반응한 것은 동방삭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두 명이었다.
“……!!”
[……!!]
복희와 흑웅은 경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긴 내가 대웅제국 사람들의 염원을 빌어 외신에게 한칼 먹였던 무용담은 아까 굳이 얘기해주지 않았으니 그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동방삭은 주변의 분위기를 읽더니 이내 흥미로워하며 말했다.
“호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넌 좀 대단한 녀석인 것 같군? 저 녀석들 반응도 재밌고 말이야.”
“어, 내가 좀 대단하지? 그러니까 내 말 좀 들어줘라.”
“흐음…….”
동방삭이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봐.”
“고맙군.”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동방삭에게 말했다.
“동방삭! 내 동료가 되어라.”
“동…… 료?”
생소한 개념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는 동방삭에게 나는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지. 나는 전륜성왕에게서 너를 명계로 압송하라는 의뢰를 받았다.”
동방삭이 키득거렸다.
“하, 그럴 줄 알았어. 생사부에서 벗어났다고 나를 계속 잡아가려 하던데 여태껏 한 번도 잡힌 적 없지롱.”
나는 본격적으로 동방삭을 꼬드길 수 있는 제안을 하기로 했다.
“내 동료가 된다면 일단 너를 명계로 잡아가긴 하겠지만 네가 명계에 구속되지 않고 바로 풀려나게 해 주겠다. 이것 또한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할 수 있다.”
“…….”
“수만 년 내내 전륜성왕한테 쫓기는 것보다 차라리 나를 이용해서 담판을 짓는 게 어떻겠느냐 그 말이다. 그게 너로서는 훨씬 속 편할 텐데.”
“흐음.”
동방삭은 뭔가 못 미더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네가 대단한 녀석이라고 하더라도 전륜성왕과 담판을 지을 수 있을 정도라고? 명계의 지배자가 너무 강해서 천상천하의 제왕조차 그를 섣불리 거스를 수 없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단 말이냐.”
“나는 가능해. 황제하고도 싸워봤는데 전륜성왕이라고 무섭겠냐.”
내 말에 동방삭이 흠칫했다.
“엉?! 황제 공손헌원과 싸워봤다고?! 너 인간 아니냐?”
“그래. 권능은 몰라도 황제와 겨뤄서 칼싸움만은 이긴 적 있다.”
동방삭은 마치 병신을 보는 듯한 눈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신 중의 신인 황제가 칼싸움을 왜 해? 너 바보냐?”
“…….”
“허세가 너무 심하잖아.”
아니 진짜인데…….
내가 억울해서 뭔가 항변하려 할 때 동방삭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네가 대단한 녀석인 건 알겠고 약속도 꽤나 공신력이 있어 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믿을 수가 없어. 네가 나를 동료로 받아들이고 명계로 잡아가고 싶다면 나와 내기를 하나 하는 게 어떠냐?”
“어떤 내기?”
동방삭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 지구의 남쪽대륙에서 멤피스의 유적에 있다. 그리고 멤피스에서 제일가는 보물인 [태양신의 배꼽]을 찾고 있는 중인데, 네가 만일 나보다 빨리 태양신의 배꼽을 찾는다면 너의 동료가 되어주마. 명계든 뭐든 가 주지.”
“태양신의 배꼽?”
“그래. 어디 내기에 응해볼 테냐.”
“…….”
보물찾기를 하자 그 소리인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동방삭에게 말했다.
“굳이 보물찾기를 해야 하냐? 여기 복희의 신술 한 번이면 바로 찾을 수 있을 텐데 생각 좀 하고 내기를 걸지.”
“크크. 어디 해 봐. 나도 내 이름을 걸고 권능으로는 못 찾는다에 걸 수 있으니까.”
“뭐라고?”
“내기, 받아들일 건지 아닌지 말해.”
뭐지? 이 녀석은 뭘 믿고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거지?
복희의 신술은 은하계 너머에 있는 선지자의 거점까지도 찾아낼 정도인데?
나는 혼란스러웠지만,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해 보자.”
“내기 성립. 그러면 나는 먼저 가서 찾고 있을 테니, 늦게 오면 국물도 없어.”
파앗
동방삭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바로 복희에게 말했다.
“복희 님. 은하개람안(銀河槪覽眼)으로 [태양신의 배꼽]을 찾아봐 주십시오.”
은하계 너머 선지자의 거짓말마저 찾아냈던 가공할 신술!
그것만 있으면 동방삭과의 내기는 이긴 거나 마찬가지다!
“알았네.”
그러자 복희는 잠시 후 은하개람안을 시전했고 이내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안 되겠군. 동방삭이 권능으로 못 찾아낼 거라고 호언장담한 이유가 있어.”
“네?!”
복희의 신술로도 못 찾는다고?!
복희가 말했다.
“우선 그 장소로 직접 가보세. 왜 못 찾는지 설명해 줄 테니까.”
파앗!
잠시 후 우리는 복희의 신술으로 공간을 이동해서 순식간에 남쪽대륙의 마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울창한 원시의 밀림이 가득한 장소였는데, 눈앞에는 뜻밖의 거대한 무언가가 있었다.
쿠오오오……!!
나는 그 거대한 공중부유물을 보자마자 기가 막혀서 외쳤다.
“피, 피라미드?!”
삼각형으로 되어 있는 저 구조물은 미래에 피라미드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사마령 교수에게 배운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저 피라미드는 주로 이집트와 중동 일대에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대체 이 남미대륙의 원시밀림에 왜 있는 것인가?
‘크, 크기가…… 낙양보다 더 큰 거 아냐?’
그리고 진짜 놀라운 것은 피라미드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피라미드가 지평선의 절반을 메울 정도로 거대하며 흡사 그 자체로 거대도시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크기라는 점, 그리고 그 거체(巨體)가 땅이 아닌 허공에 둥둥 떠 있다는 것이었다.
쿠오오오
게다가 피라미드의 가장 상층으로 보이는 꼭짓점에서는 오색찬란한 무지갯빛 기둥이 하늘 끝까지 뻗어서 이어져 있었으며 그 빛이 기괴한 굉음을 내며 사방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런 피라미드가 한두 개가 아니라 무려 수백 개나 떠 있다. 대륙의 하늘 전체를 메우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누가 보아도 명백한 초고대의 초현실적 유물!
내가 경악하고 있을 때 흑웅이 감탄한 듯 말했다.
[이게 바로 초고대 문명 중 하나인 멤피스의 유적…… 요새 신전 도시 칼파에 못지않군. 이런 건 수만 년 후에 남아 있지않는 거구려. 바빌론 또한 이런 게 있으리라 생각하니 보고 싶군.]
“아니…… 뭐…… 대단하긴 한데…… 그래도 이 멤피스의 유적이 복희 님의 신술보다 더 대단한 거라고? 그건 좀…….”
아무리 대단한 초고대의 문명이나 과학 주술이라 할지라도 삼황 중 일좌인 복희의 신술보다 강하다는 건 믿기가 어렵다. 복희는 그 자체로 가장 오래된 존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내가 옆에 있던 복희를 힐끔 바라보자 복희가 차분하게 피라미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건 고도의 주술과 과학이 융합된 결과물. 인간의 기술로는 도달하기 힘든 극점(極點)인건 분명하네. 그렇다 해도 백웅 자네 말대로 그것만으로는 내 신술 은하개람안의 탐색을 피할 수 없지.”
“그러면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그래. 저 피라미드는 [옛 지배자]와 일체화되어 있어.”
“……?!”
“피라미드 하나하나가 신체(神體)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 나라고 해도 신술만으로는 저 안을 탐색할 수가 없는 걸세.”
뭐, 뭐라고?
피라미드가 [옛 지배자]의 신체나 다름없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내가 경악하자 흑웅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믿기 힘들구려. 우주를 주름잡는 신적 존재들이 고작 저런 피라미드와 융합하기를 선택하다니.]
“그럴 수밖에.”
[뭔가 알고 있소?]
복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멤피스는 고대신 연합체의 선택을 받은 문명이야. 오시리스를 정점으로 하는 영계 만신전에서 [계시]를 눈독 들이고 단체로 우주 너머에서 다 함께 넘어왔지. 그들은 전투를 피하고 최대한 방어적 태도를 취했는데 설마 이 정도까지 체계를 갖췄을 줄이야.”
[체계를 갖췄다는 말은?]
“스스로 힘을 아끼기 위해 수면 겸 봉인상태에 들어가면서 저 피라미드와 융합하여 방어력을 극대화한 걸세. 피라미드는 고도의 기술력 덕분에 신력을 연계하여 결계를 만들어낼 수 있어. 수십 명 이상의 지배자들이 봉인되면서 연계를 했으니 어찌 강력하지 않겠나? 외부에서 억지로 저 봉인을 치려고 하면 그 순간 오시리스 만신전의 모든 지배자들이 깨어나서 우리를 합공할 것이다.”
[…… 저 피라미드 하나하나가 고대신 하나의 봉인장소라는 거군.]
“그런 셈이지. 나와는 뜻을 달리하는 자들이라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런 수를 쓸 줄은 몰랐네.”
나는 복희의 설명을 듣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저기에는 고대신들이 수십 마리나 잠들어있다는 이야기인 것이오?”
“당연하지. 그런 걸 신술만으로는 못 뚫어.”
“아니…… 그럼 동방삭은…… 고대신들이 깨어나면 어쩌려고 저 안을 기어들어 갔다는 거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지. 마치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격이야.”
“…….”
“하긴 전륜성왕의 소환요청도 무시하는 놈이니.”
아니 제기랄…… 그럼 동방삭과의 내기대로 [태양신의 배꼽]을 찾으려고 저 피라미드를 탐색하고 있다 보면 잘못하면 멤피스에 잠들어있는 [옛 지배자]나 고대신들과 충돌할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니야!
생각보다 더 어려운 내기라는 걸 실감한 나는 잠시 멍해졌고 흑웅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주인. 괜찮겠소? 지금이라도 그냥 동방삭을 소환해서 죽여 버리고 만상지투로 혼이나 훔치는 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내가 약속한 건 내가 지켜야지. 그리고 왠지 저 녀석은 동료가 되면 제 몫을 톡톡히 해줄 거 같은 예감이 들어.”
[또 그 전생자의 감이오? 신기하게도 나는 주인에게서 비롯되었지만, 그 전생자의 감이라는 건 전혀 이해를 못하겠구려…….]
그렇게 혀를 내두르던 흑웅이 말했다.
[그럼 피라미드 수백 개를 들어가서 하나하나 찾아보겠소? 그것도 꽤나 힘든 일일 거 같은데.]
“흠…….”
어떻게 해야 저 많은 피라미드 중에서 [태양신의 배꼽]을 찾아낼 수 있을까?
나는 고민하다가 문득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나는 씩 웃으며 피라미드를 올려다보았다.
“좋은 방법이 있군!!”
[무엇이오?]
“수련세계에서 배워온 술법이거든.”
덥썩
나는 말이 끝나는 순간 내 머리통을 덥석 붙잡았다. 손에 한아름 잡힌 머리칼의 감각을 느끼는 순간 나는 잠시 소름이 돋았지만 나는 이내 각오를 하고 기합을 내질렀다.
“끼야아압!!”
투두두둑
순식간에 내 머리칼이 단숨에 뽑혀나가면서 한 움큼이 내 손에 붙잡혔다. 나는 생머리카락을 엄청나게 뜯어내자 아파서 기합과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끄에에엑.”
그, 그래도 이 정도는 참을 만한가?!
나는 한움큼 잡힌 머리카락을 훅하고 불었다.
모수분신(毛數分身)
퍼엉!
잠시 후 내 앞에는 수백 명이나 되는 ‘나’ 자신이 연기와 함께 출현해 있었다. 그 수많은 ‘나’ 자신들은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분신들에게 피라미드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한 명에 피라미드 하나씩 들어가!”
[태양신의 배꼽]을 찾을 때까지 모수분신술의 숫자로 밀어 버릴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