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2권 16화
나는 복희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흑웅에게 먼저 물어보았다. 그러자 흑웅은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내게 말했다.
[복희는 지금 천계에 있소.]
“천계?”
[그는 제자를 육성하고자 교육에 매진하고 있소. 있는 곳을 알고 있으니 따라오시오.]
우우우
흑웅이 잠시 후 차원을 연결하는 문을 만들어내었고 나는 흑웅을 따라 그 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나는 신비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영산(靈山) 앞으로 이동해 있었고 그 영산의 산문에는 새하얀 안개와 함께 거대한 기둥이 세워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산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흑웅. 여기는 아직 천계가 아니라 인간계군.”
[그렇소. 원시천존이 이미 천계를 수호하는 결계를 제작한 터라 아무리 나라도 직통으로 천계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소. 이 곤륜산(崑崙山)의 산문을 통과해야만 하오.]
“곤륜산!”
나는 흑웅의 말에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중원 모든 술법의 근원이자 신선들의 고향이었다는 곤륜산…… 설마 이렇게 고대부터 있었단 말인가!’
곤륜산이 오래된 줄은 알았지만 수만 년 전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존재했던 종산이었을 줄이야!
나는 내심 감탄하면서 산문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스스스스…….
산문을 지나 거대한 구름다리를 한 걸음씩 옮기는 동안 나는 오묘한 술법의 변화가 이 구름다리에 존재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강대한 음양의 기운이 진동하며 파동을 만들어내었고, 그 파동은 일정한 흐름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 파동의 흐름을 생각하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팔괘(八卦)로군.”
[그렇소. 이 구름다리 자체가 선천팔괘의 진. 악의를 지닌 자를 감지하면 즉시 구름다리 전체가 무너져서 차원이 붕괴하게끔 되어 있는 함정이오. 저번에는 곤륜산에 침범하려던 대요괴 20마리를 한 번에 없애 버리더군.]
“……알면 건너기 전에 경고를 좀 해주지 그랬냐?”
[주인의 신력으로 볼 때 아무리 선천팔괘의 함정이라 하더라도 치명적인 위험은 될 수 없소. 게다가 이미 산문을 통과하는 순간 위험은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요.]
“응?”
[이 구름다리를 끝까지 건너면 알 수 있을 것이오.]
나는 흑웅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차분하게 구름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구름다리의 끝까지 와서 맞은편의 땅에 발을 내디디는 순간, 내 앞에는 슈슉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의 신선(神仙)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신선들은 정중하게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백웅 님을 뵙니다.”
“어쩐 일로 천계를 방문하셨는지요?”
나는 그 순간 그 신선들의 면면을 확인하고는 흠칫했다.
“……헉!! 당신들은…….”
내가 약간 당황할 때 흑웅이 내게 말했다.
[말했잖소? 산문을 건널 때부터 우리의 모든 동향은 천계에서 보고 있었다고…… 그리고 주인과 나의 정체를 아는데 구름다리의 결계를 위험하게 만들 리가 없잖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믿기지 않아서 눈을 비빈 채 눈앞에 있는 신선을 다시 쳐다본 후 말했다.
“남극선옹…… 과 도덕천존?!”
미래에 원시천반의 혈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존재들이 내 눈앞에 있다니!
뜻밖의 등장에 남극선옹이 씩 웃으며 등을 폈다. 그는 미래에 볼 수 있었던 외모와는 달리 매우 젊은 청년의 모습이었지만 근본적인 외형은 판박이였다.
“듣던 대로 신비하신 분이군. 이번이 첫 대면일 텐데 어찌 우리의 명호를 알고 계십니까?”
“…….”
모를 리가 있을까. 지금도 내 머릿속 한편에는 남극선옹의 기억과 술법이 남아 있는데!
게다가 옆에 있는 도덕천존은 태상노군의 화신이라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고대 천계의 핵심인물을 이 자리에서 다 본 거나 마찬가지였다. 놀라고 있는 내게 흑웅이 태연히 말했다.
[놀랄 것 없소. 그들 모두가 복희의 방계제자! 아직은 애송이지만 점차 세월이 지나면서 강대한 천선(天仙)이 되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잖소?]
“으음, 그렇긴 하지…….”
[복희 님을 뵈러 왔으니 우리의 목적이나 달성합시다.]
그렇게 말한 흑웅이 힐끔 남극선옹을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희를 따라오십시오.”
파앗
우리는 남극선옹을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는 동안 향긋하고 좋은 향이 흐르는 목조다리가 저절로 생겨나서 걸음보다 앞서서 창조되었고, 그 목조다리를 따라 걷는 동안 빠르게 주변의 풍경이 홱홱 스쳐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이 또한 신묘한 술법이 분명했기에 나는 신기해하며 구경했다.
잠시 후 목조다리는 매우 높은 곤륜산의 정상에 도달해 있었고 목조다리를 내려오자 고즈넉한 분위기의 육각 정자가 눈앞에 있었다. 그 정자에는 매우 익숙한 얼굴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보자마자 반가워했다.
“오랜만이군, 백웅!”
나는 그를 발견하자 포권했다.
“오랜만입니다, 복희 님.”
삼황 복희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데도 낯설지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지금 내가 그와 쌍둥이나 다름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기에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복희는 씨익 웃으며 앉으라는 듯 손짓했고, 나와 흑웅은 육각 정자 안에 들어가서 앉았다.
나는 육각 정자를 둘러보며 말했다.
“복희 님은 원래부터 이런 건물을 좋아하셨군요.”
“음? 그것도 미래의 지식인가?”
“아…… 그게…….”
“하하하. 이제 와서 망설여할 필요 없네. 어차피 역사의 모순 같은 건 그대가 [큰 굴레]의 과거로 온 시점에서 의미 없게 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복희 님이 미래에 유폐를 당하게 되는데 그때 복희 님을 여와와 함께 만나 뵈었던 게 이런 곳이었습니다.”
“……그렇군. 그건 아마 여와의 배려였을 게야.”
뭔가 씁쓸한 웃음을 짓던 복희는 곧이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내 제자들과 혹여 마찰이 생길까 싶어서 줬던 팔괘신패는 쓸모가 없게 되었군. 자네가 실종되자마자 흑웅이 여기를 제집처럼 들락거려서 서로 얼굴을 외워 버렸거든.”
“아!”
나는 그제서야 내가 복희에게서 받은 팔괘신패가 있다는 걸 알아채고는 내 목갑을 뒤적거렸다. 내가 팔괘신패를 꺼내자 복희는 손을 저었다.
“넣어두게. 어차피 내 제자들은 이제 자네의 정체를 알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어. 그들과 마주쳤을 때 쓰면 될 걸세.”
“알겠습니다.”
“이제 슬슬 입을 열어보게. 자네는 세성의 가호를 흡수하려 노력했던 거 같은데 갑자기 어디로 실종되었던 건가?”
“그건…….”
나는 인드라에게 난데없이 타죽었던 일부터 시작해서 수련세계에서 겪은 일을 아주 상세히 이야기했다. 다른 자도 아니고 복희에겐 숨길 이유도 없었으며 지금은 흑요석의 제약이 걸려 있어서 직접 입으로 다 얘기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귀환해서 겪은 일까지 모두 다 얘기를 하자 어느덧 몇 시진이나 지난 것 같았고, 이야기가 끝나자 복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천암비서는 우리가 생각했던 그 이상의 마물(魔物)일지도 모르겠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네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의 지침을 듣고 싶다 그 말인가?”
“솔직히 제가 사라진 이후로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아서 조언을 들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
복희는 자신의 부채를 소환해서 몇 번 선선하게 부치는 것 같더니 촤르륵 접어서 손바닥을 탁 치며 말했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대한 문제는 유소의 실종이라 할 수 있네. 나는 흑웅과 줄곧 논의하며 그녀의 행방을 찾아다녔지만,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어. 그래서 결국 그녀가 있을 만한 곳은 이제 2곳으로 추려진다는 결론을 내렸네.”
“그 두 곳이 어디입니까?”
“그 어떠한 물질계나 차원계도 내 신술의 이목을 숨길 수는 없지만 내게 못지않은 강대한 신격이 특별히 보호하는 곳만큼은 다르지. 그리고 지금 세상에서 내게 필적하는 존재는 단 두 명이라 할 수 있으며, 그들의 보금자리야말로 유소를 숨길 수 있는 장소일세.”
두 명?
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뭔가를 깨닫고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자네가 생각한 대로일세. 바로 황제가 직접 보호하는 만신전, 그리고 전륜성왕이 직접 보호하는 명계!! 이 두 곳 중 하나에 유소가 잠적해 있을 게 분명하네.”
“……!!”
만신전이나 명계라니!
하필이면 그 두 장소는 지금 내 실력으로도 쉽사리 쳐들어가기 힘든 복마전이나 다름없었다. 황제가 직접 다스리는 만신전에 가면 현 오제(五帝)와 싸우는 셈이니 신들의 전쟁이 벌어질 게 분명했고, 얼마 전에 방문했던 명계 또한 전륜성왕의 존재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나는 그 말에 조심스레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전륜성왕을 찾아가서 유소가 있는지 물어봐야 겠군요. 만신전에 가서 황제한테 물어볼 수는 없으니.”
전륜성왕이 유소가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유소를 발견하는 데는 진전이 생길 것이다.
내 말에 복희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전륜성왕을 찾아가려면 자네는 먼저 그가 자네에게 내놓은 과업을 수행해야 하네. 기억나는가?”
“아!”
“첫 번째는 소녀의 존재를 찾는 것이며 두 번째는 삼천갑자 동방삭을 데려가는 것. 물론 자네는 이미 소녀가 서왕모의 궁에 있음을 알아냈으니 첫 번째는 이미 달성했고 이제는 삼천갑자 동방삭을 찾아서 탐색하는 일이 남아 있겠군.”
“그랬었지요.”
나는 이제 과거의 기억이 좀 더 명확해짐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인드라한테 죽기 전에 받았던 마지막 과업이 바로 동방삭 찾기였던 것이다. 나는 희망 어린 눈으로 복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신술로 동방삭 좀 찾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은하계 저편까지 뒤지는 복희 님의 신술이라면 충분히 동방삭을…….”
“기억이 가물가물한 건가? 자네는 이미 유소에게 동방삭이 남미의 마야라는 장소에 있다는 걸 들었을 텐데.”
“아니 그건 알지요. 하지만 기왕 찾는 거 거기를 이 잡듯이 뒤지는 것보다 빠르게 찾아내는 게…….”
복희의 신술로 더욱 범위를 좁히면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에 복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정도는 흑웅이라도 쉽게 할 수 있을 걸세. 진짜 동방삭을 잡는 게 뭐가 문제인지 알려주지.”
“네?”
“잘 보게. 지금 내 권능으로 동방삭을 여기에 소환해 볼 터이니.”
“……?!”
여기에 소환한다고?!
내가 놀라고 있을 때 복희가 손을 앞으로 뻗었고, 그의 손 위에는 거대한 팔괘의 원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 원을 띄운 채 잠시 집중하던 복희가 언령을 발휘했다.
[나 복희가 명하노니, 동방삭은 이 자리에 나타날지어다!]
슈욱!!
잠시 후 육각 정자 안에는 웬 금발벽안의 청년이 나타나 있었다. 미래에는 백인이라고 불리는 그 피부색을 보기만 해도 그가 절대로 이 중원대륙의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뭔가 기이한 옷을 입고 있던 그 금발벽안의 청년은 난데없이 소환되자 놀란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이윽고 복희를 발견하고는 외쳤다.
“크악, 복희다!! 또 나를 소환한 건가!”
복희는 부채를 부치며 여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방삭. 이제 그만 명계로 갈 때가 되지 않았느냐?”
“웃기지 마라! 흐압!”
슈욱
갑자기 금발벽안의 청년, 동방삭은 손을 홱 하고 휘둘렀고 그 순간 그의 몸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엉?! 뭐, 뭐지?! 정말 방금 그게 동방삭입니까?”
내 반문에 복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아니 왜 놈이 능력을 써서 도주하는데 잡지 않으셨습니까!”
“잡지 않은 게 아니네. 못 잡은 걸세.”
“네?”
그러자 옆에 있던 흑웅이 말을 거들었다.
[주인. 나와 복희는 이미 동방삭을 잡아두려고 27차례나 소환했소. 그러나 우리가 무슨 수를 쓰고 결계를 설치해 두어도 동방삭이 무문(無門)의 재능을 발휘하면 절대로 그가 탈출하는 걸 잡을 수가 없었소이다.]
“……!!”
[해볼 만한 건 해 봤으니 나도 복희도 쓸데없는 노력은 안 하는 거요.]
무문의 재능?!
그게 뭐야?!
내가 놀라자 복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바로 동방삭이 지닌 혼돈의 재능일세.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탈출하는 능력이지. 그가 [문]을 만들면 그 어떠한 초상능력이나 권능으로도 막지 못해.”
“뭐, 뭐라고요? 무슨 그딴 재능이…….”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머리가 띵해지는 걸 느꼈다.
그러고는 뭔가를 알아채고는 말했다.
“그럼 일단 죽여놓고 몸과 영혼을 봉인하면 되잖습니까!”
“그게 안 되네.”
이어진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동방삭을 죽이면 몸과 영혼이 또 무문의 재능으로 탈출하거든. 저 재능은 죽음과 관계없이 무조건 시전되는 능력이니 골치 아픈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