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546화 (1,445/1,615)

전생검신 82권 14화

나는 수보리의 말에 흠칫했다.

“……그 용이 사실 어린아이였다고?”

“그렇네. 본질을 끄집어내는 술수를 써서 영혼의 조형(造形)을 살펴보았는데 인간의 영혼이라는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었네.”

“……!!”

“본디 6세의 아이였다는 사실은 근처의 다른 주민들을 심문해서 알 수 있었지.”

뭐?

그렇다는 건 인간들도 저 용이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얘기인가?

도저히 믿기 힘든 얘기였지만 수보리의 눈빛은 장난이 아니다. 이런 사소한 일로 나를 기만할 이유도 없을 테니 아마 사실이라는 걸 직감한 나는 크리슈나를 예리하게 쳐다보았다.

“크리슈나. 어떻게 된 거지?”

“…….”

크리슈나는 잠시 어두운 표정을 짓더니 내 말에 대답했다.

“이 칼파에서 인간의 신앙을 흡수하여 천상윤회옥이 신력(神力)으로 바꿔주지만 사실 이 술수에는 한계가 있었네. 신력이 워낙 강력한 힘이다 보니 신앙을 바치는 인간들이 스스로 신의 힘에 현혹되어 본질이 바뀌어 버리는 현상이었지.”

“그게 무슨 말이냐?”

“신앙을 바치는 자들은 피치 못하게 우리가 지닌 신력의 편린에 직접 노출되었네. 우주적인 존재의 신력을 접한 보통 인간은 어떤 반응을 보인다 생각하는가? 지독한 격차 때문에 미쳐 버리거나 공포를 느끼거나 혹은 숭앙하여 자해하게 되지. 그 반응이 너무 강해서 신력에 동화하려고 스스로의 몸과 영혼을 바꿔 버릴 정도가 되어 버리네.”

“……!!”

“우리는 그들의 변화를 막지 못해. 하위존재가 상위존재를 따라 진화하려는 건 그들이 타고난 영혼에 새겨진 본능이야. 아마 오래전 [옛 종족]이 최초로 인간을 창조할 때부터 심어놓은 유전자이자 병사로 쓰려는 장치였을 거라 짐작은 하지만 그걸 고치려면 또다시 인간을 다른 종족으로 뒤바꾸는 수밖에 없었어.”

다른 종족…….

나는 크리슈나의 설명을 듣다가 상황을 눈치채고는 이를 으득 악물었다.

“신력 때문에 영혼이 변질되는 자들을 인위적으로 저런 형상으로 변하도록 유도했다는 말이냐?”

“그래. 완전히 영혼의 형태가 허물어진 자들이 외계에나 존재하는 이족(異族)이 되면 얼마나 끔찍한지 그대도 알고 있을 터. 차라리 우리가 직접 그들의 영혼을 빚어 비교적 상위종족이 되도록 인도해준 것이다. 생전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었고 기억도 유지되고 있으니 이를 진화(進化)라 할 수 있지 않은가?”

“…….”

이족이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신수나 영수, 요괴족처럼 진화시키는 게 나았다는 소리인가.

일견 맞는 말처럼 보였지만 나는 크리슈나의 말에 반발심을 느끼고는 외쳤다.

“빌어먹을, 변명하지 마라!! 어쨌든 신앙을 얻는 체계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멀쩡한 인간들이 하루아침에 다른 종족이 되어 버리는 부작용이 생겼다는 거잖아!! 그리고 네놈들은 그 부작용을 알면서도 너희가 마음껏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 칼파를 유지하며 인간들을 이용해먹고 있는 거고!”

그러자 크리슈나는 약간 당혹한 듯 말했다.

“음, 변명이라 하면 할 말이 없군. 허나 우리가 적극적으로 인간들의 생존을 보호하는 대신 이 정도 대가도 받지 못한다는 건 되레 납득하기가 힘드네. 이 이상으로 우리가 손해 보는 건 공존(共存)이 아닌 희생(犧牲)일진대 그건 가당찮은 얘기가 아닌가.”

“가, 가당찮다고?”

나는 기가 막혀서 반문했다. 마치 당연히 인간이 신을 위해서 어느 정도는 희생해야 한다는 말투! 신이 인간을 위해서 희생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단정 짓는 그 말은 내가 생각하던 선(善)과는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더 기가 막힌 건 크리슈나는 딱히 나를 도발하려고 말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말 그대로 평소에 그가 갖고 있던 사상과 생각을 여과 없이 동급의 상대에게 이야기한 것뿐이었고 도리어 조심스러운 태도라는 게 느껴졌다. 크리슈나, 아니 본체 비슈누는 아주 먼 옛날부터 저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을 가련하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그래도 희생까지는 해줄 수 없다고? 이건 대체…….’

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옆에서 물끄러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수보리가 입을 열었다.

“인간은 애완동물이라네.”

나는 휙 하고 수보리를 쳐다보았다. 수보리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백웅,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는가? 보통의 악신들이 인간을 벌레라고 여긴다면, 이들은 귀여운 애완동물 취급하는 것에 불과하네. 아무리 귀여운 애완동물이라 하더라도 그걸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인간은 매우 적지 않은가.”

“……!!”

“우주적인 기준에서 눈앞의 비슈누는 분명한 선신(善神)일세. 내가 아는 한 이들만큼 인간을 배려해주는 신은 거의 존재치 않아. 사실 악독하게 이용해먹으려면 더 해먹을 수 있을 텐데 종족의 진화까지 이뤄주는 경우가 어디 흔하겠나?”

나는 수보리의 말에 당황하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인간이 애완동물 취급당하는 것에 만족하라는 것이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다른 사람도 아닌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뜻밖이군. 악한 신들이 얼마나 인간을 벌레 취급하는지 충분히 잘 알지 않은가? 비슈누가 얼마나 자비로운 존재인지는 이미 이해했을 텐데.”

“…….”

수보리는 씩 웃으며 말했다.

“단언컨대 이 드넓은 우주 그 어디에도 [인간만을 위한 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렇다면 신 또한 신 스스로의 행복추구권이 있지 않은가? 그것도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이만큼이나 절대적 약자를 배려해줬다면 충분히 착한 존재일세.”

“그건…….”

나는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지만 수보리의 말대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만을 위한 신은 없다.

그리고 이 우주는 그걸 탓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다.

‘젠장…….’

예전에 외우주에서 달마와 잠시 이야기했을 때도 달마는 말했었다.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디에도.]

인간만을 위하는 선량한 신이 존재치 않는다는 것. 그것은 결국 인류는 탄생한 이래 지금까지 줄곧 그 어디에도 믿을 존재를 두지 못한 채 부평초처럼 이리저리 쓸려 다녔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딱히 대단히 선한 존재는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인간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인간이다. 인간이 이대로는 무슨 수를 써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걸 어떻게 그냥 지켜볼 수 있는가!’

뭔가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없을까?

내가 생각에 잠겼을 때 크리슈나가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불쾌감을 줬다면 미안하군. 허나 수백이나 되는 [옛 지배자]가 공격해오는 상황에서는 피치 못 할 일이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네.”

“……됐어. 당신들을 탓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 같군.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나는 크리슈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중요한 건 지금 이 자리에 브라흐마가 없다는 것이다. 브라흐마는 왜 귀환하지 않은 거지?”

“……?”

크리슈나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듯 어리둥절해하다가 뭔가를 눈치채곤 말했다.

“계승지에서 자네보다 먼저 브라흐마가 현실로 귀환을 했던 거군! 자네는 그를 뒤따라서 귀환한 것인가?”

“그렇다. 시간상으로 볼 때는 브라흐마는 이 패옥의 방에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야 해.”

“으음…… 일단 좀 더 자세한 얘기를 해 주지 않겠는가? 가능하면 전후사정도 말해준다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걸세.”

“그러지.”

나는 크리슈나에게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일을 간략하게 얘기하면서 계승지에서 브라흐마를 만나면서 있었던 일은 꽤 상세히 이야기했다. 그렇게 약 반 시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내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던 크리슈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폭포.”

“폭포?”

“자네는 직접 [문]을 창조해서 현실세계로 되돌아온 모양이지만 브라흐마는 계승지에 존재하던 폭포를 따라서 시공간을 거슬러 올라왔어. 그렇다면 자네가 생각한 시공간과 브라흐마가 목표로 삼은 시공간은 서로 다를 수가 있다는 소리일세. 어쩌면 브라흐마는 지금보다 훨씬 미래에 출현할지도 모르겠군.”

“……!!”

그럴 수도 있는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미래라고 단정 짓는 이유가 뭐지? 과거에 출현할 수도 있잖아.”

“무슨 말인가? 과거에 출현했으면 브라흐마는 당연히 우리 둘을 찾아왔을 게 뻔하지 않은가. 그럼 자네와 만난 시점에서 우린 당연히 브라흐마와 함께하고 있었겠지. 허나 우리는 브라흐마가 브라흐마스트라를 시전해서 공허로 사라진 이래로 그를 다시 발견한 적이 없어.”

“아!”

“아무튼 그렇다면 브라흐마가 언제가 되었든 복귀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가 되겠군…… 다행히 그대가 5천 년의 시간을 벌어주었지만, 고작 5천 년으로는 브라흐마가 없는 공백을 견디고 저들을 물리칠 수가 없네.”

크리슈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브라흐마가 언제 복귀할지 기약이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꽤나 심적인 충격을 준 것 같았다. 나는 그런 크리슈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이봐. 생각해봤는데 꼭 저놈들을 물리쳐야 하는 거냐?”

“……무슨 소리지?”

“지금 너희가 저 [옛 지배자] 놈들과 전투를 하는 이유는 종말의 [계시]에 좀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거잖아. 그걸 꼭 해야 하냐고.”

“그건…….”

“아니라고 하진 마라. 브라흐마한테 직접 들었으니까.”

“후우! 그렇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나는 팔짱을 끼며 놈을 노려보았다.

“저놈들과 굳이 싸우는 건 그만두고 이 칼파에 있는 인간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라. 솔직히 너희의 싸움에 휘말리지만 않는다면 칼파의 인간들이 다른 종족으로 변할 이유도 없지 않겠냐? 너희도 소멸당할 위험이 사라질 거고.”

“…….”

“전혀 그러고 싶지 않은 듯한 얼굴이군.”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크리슈나는 얼굴에 묘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왜 우리가 먼저 포기해야 하지? 일대일로 싸웠을 때 우리를 이길만한 적수는 저놈들 중에 없다. 브라흐마가 제때 귀환해주기만 하면 그가 수를 내어 승산을 만들어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젠장할…… 무슨 근거냐? 종말에 [계시]를 들을 때 맨 앞자리를 차지한다고 그놈이 외신이 된다는 확증이라도 있단 말이냐? 정작 허공록은 아무 소리도 안 하는데 너희들끼리 치고박고 싸우면 대체 무슨 의미냐고.”

크리슈나가 너무 어리석어 보였기에 내가 기가 막혀하며 외치자, 크리슈나는 눈을 껌벅이더니 말했다.

“확증이라면 있다.”

“어?”

이어진 크리슈나의 말은 꽤 뜻밖이었기에 나는 물론이고 수보리와 흑웅 또한 놀란 듯했다.

“허공록의 사도인 봉황(鳳凰)이 우리에게 말했다. 지금 지구에 들어오려 하는 [옛 지배자]들을 물리쳐 승리를 얻어낸다면 우리에게 [계시]에서 우월적인 지위를 주리라고! 우리 셋은 그의 말을 믿고 힘을 합쳐서 그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

“아니……?”

[뭐라고.]

여기서 봉황이 왜 나와?!

생각지도 못한 존재가 출현했기에 나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말했다.

“저, 정말 봉황이 그걸 약속했단 말이냐?”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뭐하러 저놈들과 피 터지게 싸우겠는가? 그만한 보상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생각을 좀…….”

나는 혼란스러워서 손을 휘휘 저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러자 옆에서 같이 생각하고 있던 흑웅이 나직이 말했다.

[주인. 저 말대로라면 모든 게 설명이 되오.]

“흑웅.”

[[계시]를 하러 지상에 강림하는 허공록이 바로 계시의 주체이니, 그 허공록의 사도인 봉황의 말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소. 또한 삼대신이 후퇴를 하지 않고 정면에서 수백의 [옛 지배자]와 맞서 싸우는 것도 설명이 가능하지 않소.]

“…….”

맞는 말이었다. 내가 딱 맞아들어가는 상황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있을 때 흑웅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주인은 이미 상황이 어찌 된 건지 눈치챘을 것이오.]

“……그래.”

봉황의 목적…….

나는 봉황을 찾아갔을 때 봉황이 했던 말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허공록께서 부여하신 나의 임무는 지구를 포함하여 그 항성계에 존재하는 모든 [옛 지배자]와 마(魔)를 청소하여 무(無)로 되돌리는 것. 그렇게 하여 [계시]가 이뤄지는 날 그 누구도 [계시]를 듣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봉황은 지상에 있던 3마리의 신수에게 자신의 힘을 부여해서 강화시켰으며 또한 강림하자마자 수많은 [옛 지배자]를 불태웠고 심지어는 내게 전륜성왕, 복희, 황제 셋 중 하나를 암살해서 목을 가져오라고 의뢰했던 것이다.

봉황은 말 그대로 [계시]를 노리고 몰려든 모든 세력을 암중에서 말살하려 하는 극도의 중립적인 존재였다. 그런 봉황이 삼대신을 이용해서 최대한 외계의 [옛 지배자]들의 숫자를 줄이려 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 그렇다는 건 설마 삼대신 이 놈들도 봉황한테 이용당한…….’

…… 하지만 굳이 그걸 말해줄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전생에 당했던 원한이 있어서 그렇게 정이 가는 놈들도 아니고 아직 신뢰관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그 사실은 숨기기로 마음먹고는 크리슈나에게 말했다.

“크리슈나.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미래를 알고 있다. 너희는 저 수백 마리의 [옛 지배자]를 결국 이겨내지 못하게 되고 칼파 또한 함락되어 너희는 비참한 꼴로 중원의 황제 공손헌원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지.”

“으음…….”

“브라흐마가 언제 돌아올지는 기약이 없어. 그렇다면 브라흐마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내 말에 따르는 게 좋지 않겠나? 봉황이 말했던 임무라는 것도 지금 당장 수행하지 않고 일단 생존한 다음에 추진해도 되잖냐.”

“…….”

크리슈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는 찬성한다. 허나 시바의 뜻은 모르겠군.”

“시바?”

내가 반문하던 그때였다.

“아주 재밌는 얘기를 하시는군, 브라흐마의 제자 백웅!!”

쿠궁!!

후두둑…….

갑자기 패옥의 방 근처에서 천정이 무너지더니 그 자리에 몸 크기가 일 장이나 되는 거한이 떨어져 내렸다. 그 거한은 한 손에 거대한 염주를 들고 있었으며 한눈에 보기에도 강대한 신력과 투기(鬪氣)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단순한 강함만이라면 아까 보았던 투신 아르쥬나보다 훨씬 강할 것 같았고 잠시동안 그 위압감 때문에 나는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나는 갑자기 나타난 거한을 노려보며 말했다.

“파괴신 시바.”

틀림없다. 몸의 크기는 많이 작아졌지만, 저놈은 틀림없는 파괴신 시바!!

28회차 때 천계에 나타나서 그 항우를 마치 어린애처럼 때려눕힐 정도의 강력한 파괴신이었으며 얼마 전에 외우주에서도 저 시바가 염주를 써서 흉신과 싸우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파괴신 시바는 전욱과 맞먹을 정도의 강력한 대신(大神)이었기에 나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본체가 아니라 화신일 텐데 이 정도의 압박감이라니…… 아마 삼대신 중에서 전투력만으로는 시바가 가장 강하겠구나.’

시바는 시뻘건 적광(赤光)을 눈에서 흘리며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놈들과 전쟁을 한 지는 이미 수천 년이나 되었다. 그런데 낮도깨비처럼 나타난 네놈의 말 한마디에 모든 걸 포기하고 이대로 도주를 하라고?”

“그래.”

“흐흐흐…… 웃기지 말아라. 우리의 야망이 너 따위의 말 한마디에 뒤흔들릴 정도로 약하다 생각하면 그건 오산! 또한 나는 힘 그 자체를 숭앙하는 자이니 간교한 세 치 혀에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

나는 시바의 속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나랑 한 판 싸워보자 그 말이냐?”

“이야기가 잘 통하는구나!!”

시바는 껄껄 웃더니 삼지창처럼 생긴 무기를 휙 하고 내 쪽으로 겨누며 말했다.

“네놈이 내게 충분한 힘과 자격을 보여준다면 너의 말에 따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비슈누와 힘을 합쳐서 네놈을 없애 버리고 말리라!”

“…….”

쿠구구구

‘엄청 강하군.’

화신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강대한 투기가 내게 전방으로 덮쳐왔다. 이놈은 틀림없이 현재 지상최강급이 분명했고 이놈과 싸운다면 절대 그렇게 만만하지 않을게 분명했다. 아니, 투신이자 파괴신이니 자칫하다가는 내가 당할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이 정도의 상대가 진심으로 나온다면 나는 다음 전생을 노리는 게 일반적이었으리라.

‘진짜 열심히 싸운다면 이길 수도 있을 거 같긴 한…… 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문득 나는 염증이 나서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래? 그럼 따르지 마, 이 새끼야!!”

그러자 시바는 크게 당황한 듯했다.

“……음?!”

“흑웅, 수보리! 중원으로 돌아가자!!”

우웅

내가 신력으로 중원으로 향하는 [문]을 만들어내자 시바가 얼빠진 기색으로 쳐다보았고 크리슈나가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내게 말했다.

“배, 백웅! 잠시 기다려 보시게.”

“뭘 기다려? 이런 거지 같은 새끼들!”

나는 분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뭐 아쉬워서 이러는 줄 아냐? 브라흐마가 계승지에서 기술을 전수하는 대가로 너희를 구해달라고 부탁을 해서 기분이 개같아도 억지로 참고 있었다!”

“……!!”

“5천 년이나 시간을 벌어줬으니 알아서 해봐라, 이런 주제파악도 못하는 씨발놈들아!”

“잠깐…….”

파앗!

나는 다음 순간 문을 통과했고 흑웅, 수보리와 함께 중원의 땅을 밟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도착한 곳이 내가 인드라에게 죽었던 박쥐동굴 근처인 걸 확인하자 약간 안도감이 들었다.

“휴우.”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긴 했군!

왠지 이곳이 고향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은은한 박쥐똥냄새를 느끼며 눈을 감고 있자 옆에 있던 수보리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백웅, 괜찮겠나? 그들의 힘을 빌리면 편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코웃음을 쳤다.

“됐소. 그놈들은 지금 아쉬운 게 없는 게 눈에 보이는 놈들이오. 당장 나를 믿거나 따르기는커녕 애송이 취급하면서 이용해먹으려는 게 눈에 보였지 않소? 크리슈나도 점잖은 척하면서 나를 계속 기만하려고 들었는데 저런 놈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줄 필요가 없소.”

“흐음.”

“근데 생각을 해 보니까 구해주기만 하면 되니까 저놈들이 본진을 잃고 동냥 그릇이 깨진 채로 비굴해져 있을 때 구해주면 되겠구나 싶었던거요.”

물론 5천 년이나 시간을 벌어줬으니 그때까지 외계놈들이 쳐들어오진 못할 테고 그 전에 제 놈들이 아쉬우면 알아서 나를 찾아오거나 할 것이다. 나 또한 혹시나 5천 년이나 살게 되면 잠깐 들러서 칼파의 인간들만 따로 보호해주면 될 것이리라.

“호오…… 그렇군. 과연 뇌신류의 종사답네!”

“……그거 칭찬이오?”

“상황판단이 빠르고 쉽사리 타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세.”

그렇게 대충 둘러댄 수보리가 말을 이었다.

“헌데 뭔가 이상하군. 왜 이 근처의 시간이 멈춘 것 같지?”

“무슨 말…… 응?”

수보리의 말대로였다. 이 박쥐동굴의 근처에 서 있으니 왠지 근처의 풀이나 공기가 다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의아해져서 내가 무슨 일인지 살피려 하던 바로 그 때였다.

쩌정…….

그대로 수보리의 모습이 굳어 버렸다.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모습이었고, 잠시 후 이 근처는 자욱한 흰색 연기인지 운무일지 모를 것에 뒤덮여 버렸다. 오리무중처럼 새하얀 안개가 사위를 둘러싸자 나는 이게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고 긴장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내 눈앞에는 웬 늙은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천지를 좁다하여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영걸(英傑)을 만나게 되어 반갑네.”

“…….”

백염(白炎)처럼 은은한 양기가 맺힌 듯한 새하얀 머리카락과 긴 수염. 그리고 어딘지 허허로운 기세를 느낄 수 있는 노인이었다. 그러나 나는 노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패력(覇力)이 굉장하다고 느꼈고 그것은 말 그대로 신력(神力)의 강함이었다.

저 노인은 신이다.

그리고 나는 옆에 있던 흑웅이 조심스레 말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주인이여. 조심하시오. 저 자는…….]

“알아.”

이 곳에 나타나서 수보리마저 단숨에 시간정지를 걸어 버릴 정도의 강력한 신.

그리고 방금 전 보았던 시바에 못지않은 강대한 힘을 지닌 존재라고 한다면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포권을 하며 상대에게 예를 갖추었다.

“염제(炎帝) 신농(神農)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내 말에 상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복희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네. 젊은 강자여.”

이 탁록 일대가 바로 염제 신농의 관할지!

염제 신농이 아니고서는 이런 식으로 출현할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

아마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내게 맞춰서 인간 형태의 화신을 출현시킨 것이리라.

나는 신농에게 예를 표하고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뭔가 하실 말씀이 있어서 나타나신 건지…….”

내 질문에 염제 신농이 입을 열었다.

“그대, 백웅이라 했던가…….”

“그렇습니다.”

이어진 신농의 말에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대가 우리 거신족의 전사장(戰士將)이 되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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