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2권 13화
나는 대귀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마두로 취급되지 않는다니?”
[그렇습니다.]
“전신(錢神)이라는 건 분명 상업의 권능에서도 1급인 최고의 상인 위계였지? 그 단계에 오르려 한다면 마두만 많아서는 안 된다 그 소리냐?”
[네. 지금 모으신 재화들은 세계 그 자체와 거래하실 수 있는 권리입니다. 마두와 달리 직접적인 거래가 가능한 상위재화입니다. 그 권리를 이용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승급의 조건을 달성하여 전신이 되실 수 있습니다.]
“세계……?”
세계와 거래한다는 게 무슨 소리지?
들으면 들을수록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옆에 있던 흑웅이 나직이 말했다.
[주인. 지금 그 녀석에게 한가하게 설명을 들을 때가 아닌 것 같소. 저 너머의 존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같소.]
“음……!!”
쿠구구구
지평선 너머에 있던 십여 개체의 [옛 지배자]. 그놈들은 내가 대귀를 이용해 동전을 모두 흡수하자 놀라는 것 같더니 서서히 그 무거운 동체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마치 위협이라도 하듯, 지평선에서 천천히 이쪽을 향해 마력을 내뿜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빠직! 빠지직!!
그러자 마력의 여파 때문에 벽 너머에서도 피부가 저릿할 정도의 압력이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저만큼 많은 악의 사신(邪神)들이 힘을 동시에 내뿜으면 장난이 아닌 것이다. 나는 그 압력을 신력으로 이겨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크리슈나. 저놈들이 동시에 달려들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런 적이 있었나?”
“아니, 적어도 브라흐마가 [벽]을 만든 이후로는 없었네. 저놈들은 자네를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고 지금 견제를 해보려는 것 같군.”
“흠. 동시에 덤비면 벽이 뚫릴까?”
“말했듯이 이 벽은 제일 먼저 덤빈 놈부터 죽이게 되어 있네. 아무리 [옛 지배자]라도 멀쩡할 수가 없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냥 위협에 불과한 것 같네만…… 잘 모르겠군.”
“…….”
그럼 이대로 물러나도 되는 걸까?
내가 고민을 하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너는 누구인가…….]
저 먼 곳에 있던 늑대의 대가리를 단 흉측한 인간형의 마물처럼 생긴 괴이한 [옛 지배자] 하나가 내게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놈의 한마디에 가공할 마력이 실려 있는 걸 느끼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새끼가 인정사정없네…… 신력이 아니었다면 이놈의 말 한마디에 대라신선이 미쳐 버리겠군.’
이런 마력은 내 경험상 지상의 기준으로는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다.
실로 우주적인 수준의 사기(邪氣)!
저 [옛 지배자]의 힘은 지금의 나와 비교해서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게 분명했다. 세계 하나를 혼자서 망가뜨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저 정도 거물이면 우주 전체로 쳐도 꽤 높은 놈일 가능성이 높았기에 나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나는 백웅이다. 그러는 너는 누구냐?”
[나는 #*$&@*%이다.]
“…….”
이름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인간의 발음으로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잖아!!
나는 귀찮아져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꾸했다.
“좀 인간족의 언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이름을 말해.”
[……? 좋다. 내 화신이 자주 쓰는 이름은 티아매트다.]
“티아매트…… 그래, 티아매트여 나한테 할 말이 있냐?”
[너는 어디서 온 존재이며 왜 저들의 편을 들어주는가? 너 또한 옥좌의 계시를 노리고 있는 것이냐?]
티아매트의 말은 무척 직설적이었다. 천축 삼대신과의 대립이 옥좌의 계시를 노린 자리싸움이라는 걸 숨기지도 않는 것이다. 나는 티아매트의 말을 듣자마자 단호하게 말했다.
“관심 없어!! 내 이름을 걸고 나는 계시 따위는 노리지 않는다! 그걸 위해 싸우지도 않아.”
[……!! 이름을 걸다니!]
약간 놀란 듯한 티아매트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조그마한 행성에 와 있는가? 혹시 저들의 혈맹이거나 맹우인 것인가?]
“그렇게 거창한 관계까지는 아니고 브라흐마에게 마음의 빚이 있어서 갚기 위해 잠시 합류했다.”
나는 그렇게 대꾸하고는 놈들을 검지로 가리켰다.
“말해두는데 내가 있는 동안 쳐들어오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나는 제대로 싸우면 내 친구들도 다 불러올 테니까 괜히 나 건드리지 말라고!”
[…….]
그 말에 티아매트 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던 다른 사신들도 약간 놀란 듯한 기색이었다. 물론 친구가 있다는 건 거짓말이었지만 저놈들은 내가 말한 ‘친구들’이 나와 동급의 지배자일 것이라고 알아서 억측한 듯했다. 그래서인지 잠시 후 티아매트가 말했다.
[언제 떠날 것인가?]
“5000년 후에!”
5000년이나 되니까 약오르지? 어디 덤벼봐라! 실컷 패주마!
너희를 좀 패주면 이 세계에 쳐들어오기도 힘들어지겠지!
내가 비현실적으로 긴 시간을 내놓고는 한탕 싸워보려고 속으로 내심 벼르고 있을 때였다.
[좋다…… 그때까지는 우리도 그대를 존중하여 침범하지 않겠다.]
“응?”
[그대도 그 이후에는 떠나도록…….]
스스스스
잠시 후 티아매트를 포함한 [옛 지배자]들이 안개가 되어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차원의 경계면 너머로 자신의 본체를 숨겨서 멀어진 것이었는데 갑자기 전부 물러갈 줄은 몰랐기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황당해서 크리슈나에게 말했다.
“이…… 이봐. 5천 년이나 기다리라고 했는데 저놈들은 어째서 바로 물러나는 거지?”
내 질문에 크리슈나는 도리어 나를 희한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소리인가? 신의 기준에서 인간의 시간 5천 년 따위는 찰나에 불과하지. 우리는 기본적으로 수십억 년도 짧다 하며 사는 존재들일세.”
“……!!”
“어차피 계시가 일어날 때까지 수만 년은 남았으니 5천 년쯤 기다려줘도 된다 생각한 걸세. 자네 같은 강대한 신과 싸워서 피해를 보느니 말이야. 하긴 그렇다고 너무 길게 불렀으면 저놈들도 참지 않았을 테니 5천 년은 딱 적당했던 것 같군.”
크리슈나가 당연한 듯 설명했지만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5천 년이 짧아?!
신들의 시간 감각이란 건 대체…….
흑웅이 옆에서 말했다.
[주인. 신들의 시선에 좀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소. 이 시대에서 마주칠 자들은 모조리 신일 테니까.]
“끄응…… 그런가.”
[아무튼 크리슈나여. 파괴신 시바는 어디에 갔소? 그대와 함께 싸우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전장에는 보이지 않는군.]
흑웅의 질문에 크리슈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전장은 여기뿐만이 아닐세. 여기 말고도 다른 곳에도 차원계에 구멍이 났고 시바는 지금 그곳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지.”
[그런가…….]
“굳이 그를 도와주러 갈 필요는 없을걸세. 이 주전선(主戰線)과 달리 대단한 놈들이 습격한 게 아니라서 곧 정리될 모양이군.”
그렇게 말한 크리슈나가 몸을 빙글 돌렸다.
“나를 따라오게. 그대들을 패옥의 방으로 안내하지.”
슈슉
나와 흑웅은 크리슈나를 따라 이동했다. 한참 후에 우리는 하늘을 날아서 새하얀 궁궐의 도시, 칼파에 올 수 있었고 크리슈나가 허공에 둥둥 떠 있던 공중의 궁전에 탁 하고 발을 디뎠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머무는 궁전일세. 패옥의 방은 이 궁전의 제일 안에 있지.”
“신들은 물리적 실체나 수면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 건데 굳이 이런 궁전을 만들었군.”
“당연히 본체가 머물진 않고 나 같은 화신이 인간의 형태로 머물 장소일세. 또한 브라흐마의 비술을 실행하려면 이런 장소가 꼭 필요했지. 물론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
크리슈나가 잠시 침묵하다가 내게 말했다.
“그 이유를 말해주기 전에 먼저 물어볼 게 있는데, 자네가 멋대로 만들어낸 천상윤회옥(天上輪回玉)을 소멸시킬 수 있겠는가?”
“응?”
“아주 효율적인 결계 파해였네. 자네가 만든 3개의 천상윤회옥이 추가된 바람에 지금 칼파의 결계는 일시적으로 무력화되어 버렸어. 내가 직접 자네의 창조물을 파괴할 수도 있지만 만든 사람이 직접 없애는 게 가장 편할 테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파앗 -
잠시 후 내가 정신을 집중해서 천상윤회옥을 소멸시키자 크리슈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한숨 돌렸군.”
“이제 패옥의 방으로 안내해 줘. 브라흐마의 상태를 보고 싶다.”
“이쪽이네.”
저벅 저벅
나는 크리슈나를 따라가며 그에게 물었다.
“브라흐마는 지금 패옥의 방 안에 있는 건가? 어떤 상태인 거지?”
“자네들이 짐작하는 대로겠지.”
그렇게 무심하게 대꾸한 크리슈나는 잠시 후 가장 깊은 상아색 문이 있는 방 앞에 섰고, 그 방의 문을 천천히 열었다.
“여기가 패옥의 방일세.”
끼익…….
잠시 후 패옥의 방이 열리자 나는 흠칫하고 놀랐다.
“……!!”
광대한 우주!
안은 좁은 방이 아니라 거대한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우주에는 네 개의 거대한 기둥이 떠올라 있었고, 그 기둥에는 저마다 강렬한 파장을 내뿜는 영혼들이 기둥과 융합되어서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내고 있었다. 기둥은 허공의 투명한 원에 박혀 있었는데 끊임없이 진동하면서 중앙을 향해 힘을 내뿜고 있었다.
고고고고고!!
그 모습을 본 흑웅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저게 바로 마도사축이군.]
“그렇네.”
[브라흐마가 어찌 된 건지 알겠어.]
흑웅의 말이 이어졌다.
[마도사축의 중앙, 저 공허(空虛). 공허를 매개로 옥좌의 내부인 계승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군. 마도사축은 금기의 비술, 브라흐마스트라를 써서 브라흐마가 계승지에 가 있는 동안 이 세계와 연결 시켜주는 동력원인 거구려.]
“정답일세.”
크리슈나가 마도사축의 중앙에서 휘몰아치는 형태 없는 공허의 공간을 주시하며 말했다.
“브라흐마는 지금 이곳에 있으면서도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네. 왜냐하면 이 세계와 계승지, 두 개의 세계에 모두 존재한다고 인식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해야만 브라흐마가 실질적으로 부재한 상태에서도 아까의 [벽]을 유지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이런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일세.”
[말장난이군. 어쨌든 브라흐마는 지금 계승지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대들은 그가 복귀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지 않소.]
“그렇지. 그래서 사실은 삼대신 중에서 나와 시바만 이 칼파를 지키고 있네.”
그렇게 말한 크리슈나는 나를 힐끔 보며 말했다.
“백웅. 이제 말해주지 않겠나? 그대는 [옥좌]의 계승지에서 어떤 일을 겪었으며 브라흐마는 어떻게 되었는지를…….”
“…….”
나는 크리슈나의 말에 고민했다. 이걸 말해줘도 되는 걸까?
브라흐마는 적어도 나에게 기술을 전수해주었으며 미래에 구원해주겠다 약속했으니 최소한의 신뢰관계는 있는 셈이었지만 눈앞의 크리슈나는 다르다. 본체 비슈누는 예전 생에서 나에게 위선자 같은 짓으로 엿을 먹였던 존재였고 시바 또한 나와 썩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무작정 브라흐마의 형제 신이란 이유만으로 믿고 다 털어놓을 수 있는 놈들은 아닌 것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크리슈나에게 말했다.
“그 전에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군.”
“무엇인가?”
“정말 인간 종족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게 그저 가련함을 느끼기 때문인가?”
왜인지 내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크리슈나를 믿어도 되는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아까 말했잖은가. 그렇다고.”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번에는 [이름]을 걸고 약속해줘야겠어.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약속하고 내 질문에 다시 대답해.”
“…….”
크리슈나는 잠시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신의 이름을 걸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나 또한 브라흐마의 행적을 알려줄 의무는 없지. 어차피 5천 년간 침범불가조약을 맺었으니 내가 브라흐마와 맺었던 의리는 다 한 셈이다. 나는 이대로 떠나도 상관없어.”
“으음…….”
내가 압박을 주자 크리슈나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리고 한참 후 고민을 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름]을 걸고 말하자면 가련함을 느끼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이유도 있다.”
나는 그 말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다른 이유? 그게 뭐지?”
“꼭 들어야 하는가?”
“제길. 나랑 장난하냐? 지금 이 쪽은 손톱만큼의 신뢰 관계도 없는데 그저 브라흐마랑 약속한 게 있어서 중대한 비밀을 알려주려는 거라고. 네놈은 그것도 손해 보기 싫어서 지랄하는 거라면 나는 여기서 관둘 거다!”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크리슈나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숭배(崇拜)를 받기 때문일세.”
“숭배?”
“그래. 사실 인간족이 가련하다는 이유보다는 이쪽이 조금 더 크지.”
“자세히 말해 봐.”
“필멸자들이 불멸자인 신(神)을 숭배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음…… 기분이 좋을 것 같군.”
“그래. 보통은 그걸로 끝일세. 우리 같은 우주적인 존재들에게 사실 숭배는 큰 의미를 가지지 않아. 인간은 개미나 벌레만도 못한 존재이니 그들이 우리를 섬긴다 해서 보통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게 마련이지. 보통이라면 말이야…….”
“너희의 경우는 뭔가 다르다는 거냐?”
“바로 이 칼파가 존재하기에 다른 것일세. 칼파에서 필멸자의 숭배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지.”
“……?”
“백문이 불여일견. 한 번 나를 따라와 보게.”
저벅…….
나와 흑웅은 크리슈나를 따라서 패옥의 방을 나간 후 공중에 떠 있는 부유궁전의 끄트머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대한 도시, 칼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선 크리슈나는 잠시 후 허공에 신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환영을 만들어내었다.
우우우 -
크리슈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그 환영은 거대했다. 크기가 무려 수십 장에 이르렀기에 도시의 모든 인간들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환영을 만들어낸 크리슈나는 잠시 후 도시 전체에 울리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섬기는 인간들이여, 오늘도 우리는 승리하였다. 외계의 사악한 존재들과 맞서서 그대들의 생존을 지켜내었노라!!]
오오오!!
오오!!
그러자 도시 여기저기에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부유궁전의 끄트머리에서 안력을 돋우어서 지상을 내려다보았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인파(人波)를 무리지어 만들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함성을 내지르거나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 숫자는 무척 많았고 여기서 보기에 최소 수십만 명은 될 것만 같았다. 이 칼파 자체가 매우 넓었기에 티가 잘 나지 않았지만, 이 칼파에는 무수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밑에서 함성과 함께 찬양이 이어지는 게 들려왔다.
[만세!!]
[만세!!]
[위대한 신을 찬양하라!!]
[비슈누 님, 감사합니다!!]
[시바의 용맹을 칭송하라!!]
수많은 인간들이 한결같이 외쳐대는 소리는 가히 장관이었다. 그래서인지 지상에서 꽤 떠 있는 이 부유궁전에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진동처럼 울릴 정도였다. 나는 그 모습을 신기해하며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기분이 좋긴 하겠군. 그런데 이게 뭐……?”
“잘 보게.”
“응?”
번쩍
그때 도시 여기저기에서 불빛이 번쩍이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불빛을 힐끔 쳐다보았는데, 나는 보자마자 불빛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천상윤회옥?”
도시 곳곳에 있던 10개의 천상윤회옥이 빛나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동시에 빛나고 있던 천상윤회옥은 이윽고 점점 섬광을 더 강하게 발출하더니, 이윽고 갑자기 이쪽을 향해 광선을 쏘아내었다.
파지지직……!!
그 광선은 곧장 크리슈나의 몸에 적중해 버렸다.
“이봐!!”
내가 놀라서 크리슈나를 쳐다보았지만, 크리슈나는 거대한 광선을 맞았음에도 조금도 아픈 표정을 짓지 않았고 심지어 물리적인 외상도 없었다.
쿠구구구
도리어 크리슈나의 전신에서는 갑자기 힘이 끓어오르듯이 넘치기 시작했고, 그 힘은 틀림없는 신력이었다. 그는 이윽고 천천히 합장을 하면서 자신의 몸에 넘치는 신력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몇 배나 끓어오른 힘을 다시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그제서야 합장을 푼 크리슈나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대가 아르쥬나에게 입혔던 부상을 거의 다 회복했네. 며칠만 있으면 사망했던 나의 다른 화신들도 모두 회복하겠지.”
“……?!”
엥?!
무슨 소리야?! 갑자기 그게 어떻게 순식간에 회복이 돼?
내가 놀라고 있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흑웅이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그런 건가…….]
“흑웅. 어떻게 된 건지 알겠냐?”
[주인. 크리슈나가 하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오.]
이어진 흑웅의 말에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본디 인간 따위의 신앙은 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이 칼파라는 도시에서는 천상윤회옥을 이용해 신앙 그 자체를 [힘]으로 바꾸어서 신에게 직접적으로 힘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오. 칼파의 인간들이 삼대신을 믿는 한 이들은 인간의 믿음을 이용해 무한히 힘을 회복할 수 있겠구려.]
“뭐……?!”
그런 게 가능하다고?!
나는 놀라서 외쳤다.
“신을 숭배하는 게 그대로 힘이 되는 게 말이 되냐? 난 지금까지 그런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천상윤회옥의 역할이 클 것이오. 아니, 이 칼파 그 자체가 처음부터 그걸 위해 만들어진 걸지도…….]
그렇게 말한 흑웅이 슬며시 크리슈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대들은 가련한 인간들을 돌보는 김에 신앙심을 이용해서 인간 그 자체를 자원으로 써먹는 거구려. 그렇지 않소?]
“그렇네.”
크리슈나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인신공양보다는 몇백 배 낫지 않은가? 인간들은 우리를 믿음으로써 자신들의 생존에 기쁨과 행복, 안정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지. 우리는 그 믿음을 받아서 우리의 힘으로 바꾸는 대신에 그들을 이 험난한 세계에서 생존하게 지켜주는 것이고.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네만…….”
“…….”
확실히 그건 그렇다.
인신공양을 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순후(純厚)한 효율!
도의에도 크게 어긋나지 않고 어찌 보면 신과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공존의 형태로 보였다.
그러나 내가 크리슈나의 말이 맞다고 생각할 때 흑웅이 단정 짓듯이 말했다.
[모든 게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소. 아무리 천상윤회옥이 대단해도 이 효율은 뭔가 이상하군.]
흑웅은 날카로운 안광을 빛내며 크리슈나를 노려보았다.
[정말 신앙심만으로 그만한 신력을 얻을 수 있는 게 맞소? 뭔가 더 숨기고 있는 게 아니오?]
“음…….”
그때였다.
“당연히 그럴 리는 없지.”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장내에 천축의 가사를 입은 괴인이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본 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수보리!”
“얘기가 잘 풀리는 것 같군. 나도 방금 전에 정보를 모아왔으니 한마디 얹어도 되겠나?”
“어떤 정보 말이오?”
“예를 들자면 이런 정보지.”
촤라라락
수보리가 갑자기 소매에서 대나무 죽간을 꺼내서 촤락 하고 펼쳤고, 잠시 후 그 죽간에 쓰여 있던 시꺼먼 글씨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더니 이윽고 현실에 글자가 새겨지더니 그 장소에 무언가가 소환되기 시작했다.
슈슈슉……!!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이한 생명체들이었다.
마치 신수(神獸)와 같이 신령스러운 동물도 더러 있었으며 각양각색의 기이한 종족들이 눈앞에 전시되듯이 십여 체 이상 나타났다. 다만 이계의 존재처럼 사악한 느낌은 아니었고 딱 환계(幻界) 같은 곳에서 볼 법한 놈들인 것 같았다.
‘다 기절했네.’
아마도 수보리가 일단 술법으로 제압한 후 아공간 술수로 죽간에 집어넣은 듯 하나같이 정신을 잃은 걸로 보였다.
나는 그 생명체들을 보다가 문득 하나를 발견하곤 신기하게 여겼다.
‘삼면육비도 있네?’
아수라처럼 머리가 세 개이고 여섯 개의 팔을 가진 종족도 있었다. 여러모로 신화에서 나오는 다양한 종족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유심히 지켜보았고, 수보리가 이윽고 말했다.
“백웅. 이놈들이 뭔 줄 아는가?”
“환수나 신수 종족 아니오? 아니면 요괴라던가…….”
별로 신기할 건 없다는 생각에 내가 대충 대꾸하자 수보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수보리는 은빛 비늘을 지닌 조그마한 용을 안타까운 듯이 쓰다듬더니 말했다.
“이 녀석들은 인간이었네. 그리고 이 소룡(小龍)은 며칠 전까지는 다 크지도 않은 6살짜리 꼬마아이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