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2권 13화
그러자 크리슈나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그게 궁금한가?”
“그래. 칼파에는 인족들이 살고 있을 텐데 지금 이렇게 [옛 지배자]들을 막아내는 건 결국 인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되지 않은가? 칼파만 포기하면 훨씬 더 전략적으로 자유로울텐데 신인 너희가 이렇게까지 인간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
“흐음…….”
크리슈나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왠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군. 그대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 내게 그 이유를 듣고 싶은 건 아닌가?”
“…….”
이 놈은 감이 좋은 것 같다.
비슈누가 인간을 보호하는 이유…….
내가 그걸 듣고 싶은 이유는 바로 28번째 생에 그와 했던 얘기 때문이었다.
[내가 행한 건 틀림없는 위선. 그러나 내게 필요한 것은 [유지]였소. 유지를 위해서라면 선악은 중요치 않았소. 왜냐하면…… 모든 생명은 살아가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오.]
[그렇소. 이 우주는 유지되어야 하며, 모든 생명은 선악을 불문하고 살아가며 그 흐름을 이어나가야 하오. 생이 고통인 것은 섭리이며 숙명, 나는 그들의 고통에 불쌍함을 느끼고 측은지심을 발휘할 수 있으나 신으로써의 의무를 다해야 하오.]
[궁극적으로 모든 필멸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미래를 위해서라면 나는 그 길이 위선이든 위악이든 걷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나, [유지하는 자]가 황제 공손헌원에게 협력하는 이유이다. 대답이 되었는가, 백웅?]
[네게 이 우주에 존재하는 필멸자들의 생의 의지를 꺼뜨릴 자격이 있단 말이냐? 네가 아무리 전생자라 하더라도 세계의 멸망을 고할 자격이 있단 말이냐!]
비슈누이자 크리슈나이자 광성자였던 존재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생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에, 설령 고통이 생의 숙명이자 섭리라고 할지라도 살아가야 한다고.
그리고 그는 [유지하는 자]이기에 세계가 멸망하는 걸 바라지 않고 삶을 지닌 존재들이 살아갈 수 있게 세계를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았고 나 자신의 방식으로 세계를 구하겠다고 다짐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황제에게 귀속되지 않고 인간을 위해서 싸우고 있던 선신(善神)인 비슈누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침묵하자 크리슈나는 간디바의 무장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별다른 이유는 아닐세. 우리는 그들을 가련하게 여겼을 뿐이니.”
나는 의외라서 반문했다.
“가련하다고? 인간은 너희에 비하면 벌레만도 못할 텐데 정말 그런 감정을 느꼈단 말이냐?”
“하찮은 미물과도 같은 존재를 잔인하게 대하는 게 통상적인 행동이라 하더라도 모든 이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니지. 때로는 신기해하고, 호기심을 느끼고, 그들의 발전 가능성에 재미를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나와 브라흐마는 호기심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그들을 보호하여 우리를 섬기는 종족으로 만들려 한다.”
“……!!”
“하긴 우리의 이런 행동이 신들의 기준에서는 어리석고 이상해 보일 수는 있겠군. 굳이 인간 때문에 손해까지 감수하는 신은 우리밖에 없지 않을까,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크리슈나의 얼굴은 내게 무척 생경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분명 이놈은 위선자 그 자체였는데…….’
28회차에서 내가 봤던 크리슈나와 광성자라는 화신의 행동은 위선자나 다름없었다. 겉으로는 인간을 위하는 척하면서도 [옛 지배자]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도리어 맞서 싸우려는 대웅제국을 방해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황제의 꼭두각시가 되어서 복희를 암살하러 오는 등 내게 있어서는 위선자이며 악(惡) 그 자체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방금 전 아르쥬나에게 일부러 도발을 걸면서 때려눕히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크리슈나의 행동과 마음은 선신(善神)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인족들이 살고 있는 도시인 칼파만 버리면 아무리 수백 마리의 [옛 지배자]라 하더라도 상대하기 쉬울 수도 있는데,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그건 내게 보여주기 위한 말과 행동이 아니었고 그들의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기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어째서 비슈누는 미래에 위선을 행하게 되는 것인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내가 침묵하자 크리슈나가 말했다.
“더 궁금한 게 없다면 이제 우리에게 도움을 다오. 투신 아르쥬나가 자리를 비운 탓에 생긴 공백을 메꿔야 한다.”
나는 크리슈나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는 반문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방금 전 내가 간디바를 썼지만 나 크리슈나는 투신 아르쥬나에 비해 전투력이 낮은 편이라 적의 졸개를 많이 없애지 못한다. 원래라면 아르쥬나가 간디바로 광역화살을 날려서 많이 해치웠어야 했는데 말이지.”
“다시 투신 아르쥬나로 변신해서 쓰면 되지 않냐.”
내 말에 크리슈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대가 짧은 시간에 아르쥬나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바람에 지금 변신해도 무의미하다. 지금 아르쥬나는 나보다 약할 정도로 힘이 약해졌다. 심지어 그대가 다른 화신을 다섯이나 죽이는 바람에 힘의 회복속도도 느려졌지…….”
“그, 그래?”
“그대가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오늘 방벽이 크게 약화 되어 [옛 지배자]들이 쳐들어올 위험이 몇 배는 높아질 것이다.”
크리슈나가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나는 괜히 찔리는 걸 느꼈다. 방금 전에 아르쥬나를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팼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되었다는 타박의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관자놀이 부근을 손가락으로 긁적거리며 말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눈앞에 보이는 벽 너머의 괴물들을 최대한 많이 죽이라 그 말인 거 맞지?”
“그렇다.”
“……어디 해 보지 뭐.”
나는 그렇게 대꾸하고는 곰곰이 생각했다.
‘수많은 적을 한 번에 쓸어 버리는데 제일 좋은 기술이 뭘까?’
그것도 벽 너머에서 공격하는 게 안전하니 원거리 공격이어야만 했다. 나는 내가 가진 기술 중에 어떤 게 좋을지 고민하다가 옆에 있던 흑웅에게 물었다.
“흑웅. 어떤 기술이 좋을까?”
[내가 아는 한에서는 소호금천의 권능이오.]
“아!”
[주인이 보유한 능력 중 그보다 더 강력한 섬멸 능력을 가진 건 없소. 다만…….]
“다만?”
[주인이 보이지 않았던 동안 꽤나 수련을 했던 것 같은데 그 수련동안 생겼던 능력은 나와 공유되고 있지 않소. 그렇기에 주인이 그동안 어떤 잠재력을 쌓아왔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오.]
“흐음…….”
확실히 흑웅의 말대로다. 소호금천의 권능을 확장시켜서 발사하기만 하면 간디바에 못지않은 위력을 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이윽고 다른 생각이 들었다.
‘소호금천의 권능을 트리무르티에 섞는다면……?’
트리무르티에는 3개의 칸이 있어서 그중 하나에 소호금천의 권능을 넣는다면 나머지 2개의 권능을 추가로 집어넣어서 조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조합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원래의 능력보다 훨씬 다채로운 성향을 지닐 게 분명했다.
‘좋아, 해 볼까!’
이런 도전을 한 번 해볼 때마다 신기술을 습득할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끓어올라서 곧장 눈을 반개한 채 중얼거렸다.
“트리무르티.”
치치칭
중앙에 있는 새빨간 보석이 빛나기 시작하자 나는 권능을 하나하나 배치하기 시작했다.
‘우선 소호금천의 권능…… 그리고 나머지 2개는 뭘로 할까…… 일단 하나는 적들에게 강제적인 죽음을 부여할 수 있는 전륜성왕의 권능이 마무리를 내기에 좋겠지?’
그럼 나머지 하나의 권능을 뭘로 하는 게 좋을까?
‘음…… 새로 얻은 권능을 조합해볼까…… 어…… 엇.’
삐끗
이런 젠장!!
이거 넣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나는 고민하던 중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실수로 트리무르티에 생뚱맞은 권능을 부여해 버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새빨간 보석이 크게 빛나기 시작했고, 나는 망연자실해져서 배치된 신력의 구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아닌……!!”
위이잉
번쩍!!
다음 순간 내 눈이 새하얀 빛을 내며 크게 빛나더니 양쪽 눈에서 거대한 파괴광선이 발사되었다. 그리고 파괴광선은 어마어마한 기세로 확장되더니 잠시 후 지평선 너머까지 모조리 불태워 버리듯 백염(白炎)으로 세계를 물들였고, 그 공격범위는 당초 예상했던 대로 어마어마했다.
콰과과과광
[끼에에에엑!!]
[까악!!]
심지어 트리무르티로 강화된 파괴광선에는 전륜성왕의 죽음의 힘이 부여되어 있어서 불사의 능력을 가진 괴물들도 속절없이 부활하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콰과과과광
내 눈알광선으로 인해 광범위한 파괴가 이어지는 걸 지켜보고 있던 크리슈나가 감탄한 듯 말했다.
“실로 엄청난 위력……!! 그대는 정녕 고명한 상위신이 틀림없구나!!”
“아, 아니 그게…….”
“뭔가 문제가 있는가?”
“트리무르티 능력조합이 잘못된 것 같은데…….”
“…….”
크리슈나는 잠시 아연한 표정을 지었고 잠시 후 소호금천의 파괴광선이 멎었다. 그리고 파괴의 결과 아까 전까지 이 차원계에 가득하던 마물들이 일소되었다는 게 확연히 눈에 보였다. 다만 이번 공격이 지평선 근처에 있던 [옛 지배자]들까지는 타격하지 못한 듯 진짜 괴물들은 멀쩡했다.
후두둑…….
먼지가 떨어지는 소리일까?
하지만 잠시 후 그 소리가 좀 다른 것으로 바뀌는 게 느껴졌다.
짤랑…….
짤랑…….
촤르르르르르
“……?!”
방금 전까지 지평선을 가득 메우던 괴물들이 있던 자리에 웬 동전(銅錢)이 가득 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 동전은 동(銅)으로 된 것뿐만이 아니라 은화(銀貨)나 금화(金貨), 심지어 백금화(白金貨)도 섞여 있어서 잠시 후 지평선 너머는 말 그대로 동전이 미친 듯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쿠우우우
[옛 지배자]들도 난데없는 상황변화가 뭔지 몰라서 그냥 멀뚱히 지켜보며 기음을 내고 있었고 나 또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크리슈나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저건 돈인 것 같은데…… 대체 어떤 권능을 조합한 것인가?”
“어 그게…….”
내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흑웅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주인. 창힐의 [상업의 권능]을 조합하셨구려.]
흑웅이 정답을 말하자 나는 반색하며 녀석을 돌아보았다.
“그래! 실수로 그걸 넣어 버렸어.”
정말 내가 왜 그런 실수를 한 걸까?
소호금천의 파괴광선이나 전륜성왕의 죽음을 보면 딱 봐도 강력했기에 나는 나머지 1개의 조합으로 파괴신 시바의 능력이나 넣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직접적인 파괴능력과는 별 연관이 없는 상업의 권능을 실수로 넣어 버린 것이다!
그러자 흑웅이 말했다.
[어차피 평소에도 주인이 쓰러뜨린 적수의 가치에 따라 마두(魔頭)가 쌓였을 텐데 이상하긴 하구려. 왜 굳이 저렇게 적의 마물들이 금화의 형태로 변하게 된 건지…….]
“그러게……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나와 흑웅이 대화를 하고 있자 옆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크리슈나가 문득 말했다.
“백웅. 일단 저 모든 금화를 다시 회수하는 게 그대에게 좋을 것 같군. 아마도 나나 저 [옛 지배자]들은 저 금화를 회수할 수 없을 테니까.”
“엉? 그게 무슨 소리…….”
“보게.”
크리슈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품속에서 웬 비단주머니를 꺼냈고, 그 비단주머니는 잠시 후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엄청난 기세로 눈앞에 있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기세는 말 그대로 거대한 바닷물이 큰 구멍에 빨려들어 가는 것과 같아 보였기에 어마어마한 흡인력이었다.
콰콰콰콰!!
그러나 크리슈나의 비단주머니는 광대한 양의 흙을 빨아들였지만, 금화나 동전은 하나도 흡수하지 못해, 졸지에 허공에 돈덩어리들이 둥둥 떠있는 형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깜짝 놀랐다.
“아니?!”
“보다시피 내 신력으로 흡인능력을 써도 흡수가 안 돼. 저건 그대의 권능으로 인해 생겨난 부산물들이며 저 부산물을 회수할 권한은 그대에게만 있는 것일세.”
“그, 그런 건가. 너는 어떻게 그걸 알아차린 거지?”
“브라흐마에게서 트리무르티를 배웠다 하던데 자세히는 안 배운 모양이군. 트리무르티의 특성 중 하나가 트리무르티로 인해 생성된 창조물은 창조자만이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이네. 그렇다면 당연히 트리무르티로 생겨난 금화 또한 자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지.”
“오호……!!”
그런 거였군!
그러자 흑웅이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 [옛 지배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소. 놈들도 창조물의 속성을 눈치채고 하나하나 없애 버리고 있구려.]
키기기긱
흑웅의 말대로 저 멀리에 있던 [옛 지배자]들이 저마다 권능을 쓰더니 마력을 써서 동전들을 시꺼멓게 물들이는 게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어둠에 물들고 있던 동전들은 한참 후에 퍼석거리며 부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당황했다.
“아니, 창조물은 나밖에 못 건드리는 거 아니야?”
[수집해서 이득을 볼 셈으로 얻으려 하면 못 건드리지만, 그냥 없애 버릴 셈으로 강대한 마력을 주입하면 별 수 없는 것이오.]
“젠장!! 흑웅, 한 번에 동전을 다 회수할 방법 없겠냐?”
[지금 나는 잘 모르겠소. 방법은 주인만이 알고 있소.]
“내가?”
[그렇소. 상업의 권능이 바로 핵심. 그리고 상업의 권능에 대해서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건 바로 주인이오. 나는 몰라도 주인은 그 방법을 이미 갖고 있을 것이오.]
“…….”
흑웅의 조언에 나는 머리를 굴렸다. 상업의 권능의 특성을 이용해서 저 동전을 끌어올 수 있다고?
‘아하!!’
나는 잠시 후 방법을 알아차리고는 곧장 손바닥을 내밀어서 정령을 소환했다.
“나와라, 대귀(大龜)!”
번쩍
잠시 후 거북이의 정령이자 상업의 권능에 부여된 존재인 대귀가 소환되었다.
[부르셨습니까.]
“지금 나타난 모든 동전을 흡수해!!”
[알겠습니다.]
촤라라라락!!
대귀가 입을 쩍 벌리자 대귀의 입으로 그 수많은 동전들이 마치 황금의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을 몇 번 깜빡일 사이에 모든 동전을 입안으로 삼킨 대귀는 그대로 목을 꿀꺽거리며 삼켰고, 대귀가 이내 만족스럽게 말했다.
[대박 터지셨습니다.]
“역시!!”
상업의 권능으로 파생된 거라면 대귀를 이용해서 다 흡수할 수 있는 거였어!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흑웅이 궁금한 듯 말했다.
[헌데 이 능력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구려. 어차피 그냥 쓰러뜨려도 마두는 쌓이는데 방금 소환된 동전은……?]
그건 확실히 그랬다. 나는 어리둥절하다가 그 말에 대꾸했다.
“돈을 2배로 벌 수 있는 거 아닐까?”
[호오, 그건 참…….]
흑웅이 내 말에 동조하려고 하는 그때였다.
대귀의 정령이 입을 열었다.
[방금 전 흡수된 동전들은 마두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전신(錢神)으로 승급하시는 데 도움을 드리게 될 재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