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2권 10화
고대도시 칼파라고?
나는 그 순간 과거에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해냈다.
[인류는 그 이전부터 문명의 맥을 이어왔다. 내가 알기론 최소한 4만 5천 년 전부터 인류의 문명은 시작되었다. 아틀란티스와 레무리아의 이전에는 칼파, 바빌론, 멤피스가 원류문명을 지니고 있었고…… 우리는 구 문명과 경쟁과 협력을 반복했노라. 다만 [옛 지배자]나 대홍수 등 대재앙이 몇 차례고 지상을 쓸어 버리면서 역사가 소실된 것이리라. 또한 [옛 지배자]들이 우리들을 멸절시킨 후 입맛에 맞게끔 인간의 품종을 개량했으니 더더욱 알 수가 없었겠지…….]
[고대신 비슈누가 그 당시 칼파라고 불리는 신조문명(神造文明)을 창조했기 때문이라고 아수라가 말하더군. 신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문명끼리 대전쟁을 벌였고, 그 전쟁에 비슈누의 아바타라 또한 참전했었지.]
[그렇네. 비슈누, 시바, 브라흐마 세 명을 가리켜 천축의 삼대신이라 하지. 그들은 본디 질서의 신성이었는데 초고대문명인 칼파를 수호하고 있다가 수십 수백이나 되는 [옛 지배자]들과 전쟁을 벌이게 되었어. 그들은 하나하나가 강력한 신이라서 일대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으나, 수적으로 중과부적이라 결국 패배를 앞두게 되었지.]
나는 머릿속에서 기억을 정리하고는 수보리에게 말했다.
“아틀란티스 이전에 있었던 초고대의 문명…… 천축 삼대신이 만들어낸 신조문명의 도시인 그 칼파를 말하는 것이오?”
“그렇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있소? 여긴 그저 흰 궁궐이 가득한 도시인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여기가 칼파라고 단정 짓는 것이오.”
내 반문에 수보리는 차분히 근처의 기둥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나이가 몇이라 생각하는가? 나는 본격적인 천계 창설 이전부터 존재했었으며 창힐이 은(殷) 제국을 세워 전면에 나설 때도 이미 4천 살을 넘었었네. 지혜자의 일족이었던 나는 당연히 선사시대 칼파에 관한 전승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
“…….”
뭐야? 그럼 최소한 7천 살은 넘는다는 소리 아냐?
수보리의 말도 안 되는 나이에 내가 놀라서 눈을 약간 크게 뜨자 수보리의 말이 이어졌다.
“내 전승지식에 따르면 천상윤회옥(天上輪回玉)을 도시 곳곳에 박아 넣고 도시 전체가 요새화된 순백의 도시는 칼파뿐이야. 여긴 틀림없는 초고대의 신전도시 칼파일세.”
“천상윤회옥?”
“저길 보게.”
나는 수보리의 말에 고개를 들어서 위쪽에 있는 구조물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고개를 젖혀야 보일 만큼 높은 곳에 둥둥 떠 있는 거대한 기둥이 존재했고, 그 기둥 위에는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은 신비한 보옥(寶玉)이 있었다. 이 거리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걸 보면 보옥의 실제 크기는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클 게 분명했다.
“저것이 바로 천상윤회옥일세. 나는 이미 탐지술을 써서 이 일대를 살펴보았는데 이 도시에는 저런 천상윤회옥이 무려 10개나 존재하고 있어.”
“천상윤회옥이라는 건 뭐에 쓰는 것이오?”
“신(神)과 인간을 직접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전설의 신보(神寶)일세. 창조신 브라흐마가 만들어낸 진귀한 보물로서 아쉽게도 내가 살던 후대에는 전해지지 않지만…… 전승대로라면 저건 틀림없는 천상윤회옥일세.”
“으음…… 신과 인간이 직접 소통한다고? 그게 무슨 뜻이오?”
“나도 잘 모르겠네. 전승에 나와 있는 대로만 얘기했을 뿐인지라…… 허나 아마 저 천상윤회옥은 칼파의 성립에 아주 중대한 의미가 있을걸세.”
“…….”
수보리가 이토록 확신하는 걸 보면 여긴 아마 칼파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심경이 복잡해져서 툭 하고 내뱉었다.
“……칼파가 맞다 치면 우리는 왜 여기 왔단 말이오? 분명 나는 인드라에게 죽었던 바로 그 장소, 박쥐동굴 근처로 가려고 염원하여 [문]을 만들었건만.”
“글쎄…… 자네가 세계를 평평하게 만드는 착오가 있었던 것처럼 착오가 생겼다고 보는 게 가장 확률이 높겠군. 트리무르티는 자네의 신력을 효율적으로 써서 창조를 쉽게 만드는 비술이지만 자그마한 오차로 인해 결과물이 크게 달라지는 특징이 있잖은가?”
“…….”
“어쩌면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지…….”
“제기랄. 인과가 어떻게 되었든 지금 내가 알 바는 아니오. 설마 내가 있던 탁록의 시대보다 더 과거로 온 건 아니겠지?”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일세.”
그렇게 대꾸한 수보리가 합장을 하며 말했다.
“그러니 정보를 모으러 움직이도록 하세. 지금 저 멀리 하늘에서 신들이 격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은 심상치 않으니 지금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퍼엉!
잠시 후 눈앞에는 뭉게뭉게한 구름덩어리가 두 개 나타났다. 나는 그 구름덩어리를 보자마자 뭔지 알아차렸다.
“근두운(觔斗雲)!”
“근두운은 술법으로 만들어진 함정을 쉽게 회피할 수 있게 해주네. 이걸 타고 다니면서 정보를 모읍세.”
나는 근두운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알았소. 그럼 어디부터 가야겠소? 저 멀리에 있는 전장?”
내 질문에 문득 수보리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나 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자네의 친구에게 물어보는 게 어떻겠는가?”
“응?”
후우우웅……!!
그 순간 나는 내게 강대한 힘이 응결(凝結)되면서 내면의 신력이 크게 요동치는 흐름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어둠의 기운이 내 뒤편에 후광처럼 임하는 게 느껴졌고, 그 어둠의 기운은 내게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슈슉
이윽고 내 눈앞에 제관을 쓴 어둠의 정령이 나타나며 시꺼먼 안광을 흘리며 말했다.
[나의 주인이여!! 마침내 돌아오셨소!]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뛸 듯이 반가워져서 외쳤다.
“흑웅!! 있었구나!!”
그렇다. 흑웅이 출현한 것이다!
내 반가운 목소리에 흑웅은 털털하게 웃는 듯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딘가 다른 시공간에 가셨던 모양이구려. 복희에게 어찌 된 일인지 상황을 물어보았는데 머지않아 복귀할 거라는 말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소.]
“복희가 그렇게 말했다고?”
[그렇소. 돌아오셔서 다행이오.]
복희는 내가 전뇌자를 통해 [매듭]의 장소인 수련세계로 갔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일까?
나는 그 사실이 뭔가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았기에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다시 봐서 정말 반갑다, 흑웅.”
흑웅의 말대로라면 나는 지금 더 과거의 시대로 간 게 아니다.
내가 인드라에게 죽었던 바로 그 시대와 동시대이며 단지 [장소]만 달라졌을 뿐이리라!
흑웅이 힐끔 옆에 있던 수보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저자는 누구요?]
“수보리다. 제천대성의 술법스승이자 불법의 [가면]이지.”
[……!! 가면이라고? 위험한 존재가 아니오.]
“괜찮아. 저자는 [큰 굴레] 자체와 계약해서 가면의 제약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으니까.”
[으음…… 아무래도 못 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나 보구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해 주시오.]
“물론이지.”
나와 흑웅이 대화하고 있을 때 수보리가 우리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백웅. 아무래도 불청객이 온 듯하군.”
응?
꾸콰콰쾅!!
다음 순간 갑자기 수보리와 나 사이의 공간에 마치 검은 번개 같은 게 폭음과 함께 내려쳤다. 그리고 흑뢰와 함께 등장한 것은 체구가 인간의 몇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흑표범 괴물이었다.
[크아아아!!]
일 장이나 되는 크기의 그 흑표범 괴물은 등에 박쥐날개가 날려 있고 얼굴은 흑표범이었으나 몸은 인간의 그것이었다. 또한 한 손에 대검(大劍)을 들고 있었는데 괴물은 다짜고짜 출현하자마자 수보리에게 검을 휘둘렀다. 굉장한 힘과 파괴력이 실려 있어서 절대지경 고수조차 당해내기 쉽지 않아 보였다.
꽈앙!!
쿠르르르르!!
굉음과 함께 우리가 있던 궁궐이 무너졌다. 나와 수보리는 이미 근두운을 타고 있는 상태였으므로 바로 허공으로 날아가서 피했으나 흑표범 괴물 또한 하늘을 날 수 있는 듯 박쥐날개를 천천히 퍼덕이며 으르렁거렸다.
[네놈들은 적의 간첩인가? 어떻게 칼파의 결계를 뚫고 침입했느냐!]
“…….”
수보리는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으음…… 귀찮게 되었군. 백웅, 나는 내 방식대로 정보를 얻을 테니 자네는 좋을 대로 하게.”
슈슉!
수보리는 말이 끝나자마자 근두운과 함께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수보리가 갑자기 행적을 감추자 흑표범 괴물은 약간 당황한 듯했다.
[아니! 도대체 어떤 술법을…….]
저 흑표범 괴물이 보기에도 수보리의 술법은 신묘한 수준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놀라기보다는 흑표범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골똘히 뭔가를 생각했다.
‘음, 저 새끼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문득 기억을 떠올리고는 외쳤다.
“아!! 천계에 쳐들어왔던 파괴신 시바의 부하인가!!”
28번째 삶에서 항아를 쓰러뜨리고 현실로 되돌아갔을 때 여동빈의 말에 따라 천계로 왔을 때 오자마자 마주쳤던 흑표범 괴물!! 저놈과 통성명은 한 적이 없으나 그때도 나한테 칼을 휘둘렀던 놈이기에 간신히 기억이 난 것이다. 저놈은 천계에 쳐들어온 시바를 [주군]이라고 불렀으니 십중팔구는 시바의 부하인 게 틀림없었다.
그러자 흑표범 괴물은 한층 더 화가 난 듯 그르렁거렸다.
[내가 시바 님을 섬기는 마왕(魔王) 락샤사 라는걸 알고도 그리 건방지다니!! 하찮은 인족 놈의 목을 베어 오늘 술안주로 삼아야겠구나!!]
크와아아아앗……!!
그와 동시에 흑표범, 마왕 락샤사의 전신에서 강렬한 마기(魔氣)가 용솟음쳤다. 놈의 마력이 늘어나자 그와 동시에 놈 주변의 공기가 찢어지면서 물리법칙이 뒤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경험상 저 정도의 힘이라면 최소한 대라신선 이상의 강자가 분명했다.
‘천계에 선봉으로 쳐들어올 만하군. 마왕다워.’
나는 락샤사가 힘을 끌어올리는 걸 지켜보고 있다가 내 옆에 있던 흑웅에게 말했다.
“흑웅. 그냥 도망칠까?”
흑웅은 팔짱을 낀 채 나를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싸우기가 귀찮으신 것이오?]
“정확히 알아챘네. 저놈을 괜히 건드렸다가 천축과 엮일까 봐 불안해졌다.”
[전에 뵈었을 때와 느낌이 달라지셨구려. 좀 더 현명하고 신중해진 것 같소.]
나는 히죽 웃었다.
“흐흐, 칭찬 고맙다.”
그러자 마왕 락샤사가 대노(大怒)하며 자신의 대검에 충천한 흑색 검기(劍技)를 날렸다.
[이놈들이 감히 나를 앞에 두고!!]
콰앙!!
[……!!]
그러나 그 공격은 흑웅이 뻗은 손바닥에 그대로 가로막히고 말았다. 아주 가볍게 락샤사의 공격을 막은 흑웅은 나직이 말했다.
[주인님께서 말씀하시는 중이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그러더니 흑웅은 다시금 한 손으로 뇌령인(雷靈印)을 날렸는데, 우레와 같은 소리가 없이 무음(無音)으로 펼쳐진 뇌령인은 순식간에 락샤사의 몸을 저편으로 밀어내었다.
투웅!
[크윽……!!]
자신이 나름 최선을 다해서 날린 분노의 일격이 흑웅에게 간단히 가로막힌 데다 밀려나기까지 한 락샤사는 힘의 차이를 느낀 듯 주춤거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허공을 향해 거대한 포효를 내질렀다.
크오오오!!
또다시 전투력을 올리려고 하는 건가 싶었지만 흑웅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인이여. 저놈이 동료들을 부르는 것 같소. 가만히 있으면 삼대신 휘하의 마왕들이 몰려올 것이오.]
“엉? 그건 좀…….”
너무 일이 귀찮아지잖아!
나는 한 번 일이 꼬이면 얼마나 꼬일수있는지 전생하면서 수백 번은 느껴본 사람이었기에 대번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나는 급히 흑웅에게 말했다.
“젠장. 약속한 게 있어서 다짜고짜 천축세력과 싸울 수는 없어. 이 자리를 벗어나자.”
수보리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수보리를 잡으려면 최소한 삼황오제의 본체가 직접 와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하니 여의치 않으면 칼파에서 몸을 빼서 도주할 수 있으리라.
[바로 탁록촌으로 돌아가시겠소?]
“……아니. 그래도 저 바깥의 난장판이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아봐야 할 것 같군. 신들이 패싸움하는 게 흔히 있는 일은 아니잖아?”
[그럼 우선 결계를 뚫어야겠소.]
우우우
그렇게 말한 흑웅이 자신의 손에 강렬한 어둠이 휘몰아치는 힘의 구체를 소환했다. 그 구체에 잔뜩 힘을 불어넣은 흑웅은 곧장 장심을 펴면서 전방으로 향했다.
성라회천(星羅回天)
암창난무(暗槍亂舞)
번쩍……!!
쿠콰콰쾅
구체가 터져 나가면서 수백 개나 되는 암창이 날아가서 허공의 결계를 타격했다. 음신지력을 가득 담은 저 암창이라면 신선들을 단체로 꼬치구이로 만드는 것도 아주 손쉬울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러나 흑웅이 나름대로 강한 힘을 담아서 날린 암창난무는 잠시 허공의 결계를 뚫는 듯하다가, 이윽고 막혀서 사라지고 말았다.
슈슉…….
[으음.]
흑웅이 침음성을 흘리자 마왕 락샤사가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하!! 칼파의 대신결계(對神結界)가 그리 만만해 보이느냐! 제법 강한 모양이지만 삼 대신께서 직접 가호를 내린 이 결계는 결코 부숴지지 않는다!!]
[…….]
흑웅은 곤란한 듯 팔짱을 끼면서 내게 말했다.
[주인이여. 내게 몸을 빌려주실 수 있겠소? 아무래도 내가 전력을 다해도 깨질까 말까 한 결계같소…… 저 결계를 깨지 않으면 바깥으로 순간이동을 할 수가 없소.]
“너는 내가 나타나자마자 나한테 되돌아왔잖아.”
[그것은 주인과 묶여 있는 인과율 때문에 가능했던 것…… 나가는 건 전혀 다른 문제요. 결계를 깨지 않으면 곤란하오.]
“흐음, 그런가.”
나는 이 칼파의 결계가 무척 막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흑웅의 힘으로 부수기가 버거울 정도라면 저건 확실히 [옛 지배자]의 본체가 공격할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결계가 분명한 것이다. 적어도 내가 살던 대명제국 시대에 이런 무식하게 강력한 결계는 천계에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살짝 놀라운 기분마저 들었다.
‘역시 탁록 시대…… 신들이 날뛰던 시대라는 게 실감 나는군.’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마 결계를 유지하는 건 아까 수보리가 말했던 저 천상윤회옥이겠지? 10개의 천상윤회옥이 칼파의 결계를 강화시키고 있는 게 분명해.”
[그렇소. 허나 10개나 된다는 건 한두 개가 부서진다고 해서 바로 부술 수는 없다는 뜻…… 그리고 한 번에 부수지 못하면 더 성가셔질지도 모르오. 내가 삼 대신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 안전장치를 해둘 게 분명하오.]
“그렇겠지. 네 말을 들은 저 흑표범이 씩 웃는 걸 보니까…….”
그러자 회심의 미소를 은근히 짓고 있던 락샤사는 황급히 부정했다.
[아, 아니다! 누가 웃었다는 거냐!]
“…….”
나는 천천히 합장을 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하면 돼. 부수는 게 아니라 더 늘리는 거지.”
[무슨?]
트리무르티.
쿠구구구
내가 합장을 하며 신력을 끌어올리자 눈앞에 있던 락샤사가 깜짝 놀라는 게 눈에 보였다. 뿐만아니라 흑웅도 상당히 경악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아,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주인이여. 이 힘은…….]
나는 눈을 반개하며 집중하고 있다가 머리에 하나의 염원을 떠올렸다.
천상윤회옥을 만들어낸다!!
번쩍
다음 순간 허공에는 내가 만들어낸 세 개의 천상윤회옥이 둥둥 떠서 내 등 뒤에 후광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천상윤회옥을 창조하자마자 세 개를 동시에 하늘로 날려 보냈다. 목표는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기존의 천상윤회옥이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목표를 지목했다.
“가라!”
타다당!!
세 개의 천상윤회옥이 마치 실에 꿴 구슬처럼 천상윤회옥에 부딪히자 원래 있던 천상윤회옥이 타당 하는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서 튕겨져 나갔고, 내가 만들어낸 것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나머지 2개가 또다시 날아가는 천상윤회옥을 추격하듯이 날아가는 게 눈에 보였다.
키기기깅…….
잠시 후 천공의 대기가 통째로 떨리며 무형의 결계가 약해지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씩 하고 웃었다.
“10개에서 13개로 숫자를 더 늘리면서 완성된 체계를 혼란스럽게 만들면 저절로 약해지지 않겠어? 게다가 대체된 천상윤회옥은 내 뜻대로 다룰 수 있으니까 이렇게 신력을 더 많이 넣어주면…….”
파앗!
내가 신력을 장풍처럼 쏴서 천상윤회옥을 맞추자 천상윤회옥이 파르스름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결계는 점점 더 약해지더니 이윽고 하늘의 한편이 뻥 하고 뚫린 것처럼 되어 버렸다.
“……뚫리는 거지.”
[아, 아니……?! 어떻게 이런!!]
“그럼 갈게. 이제부터 결계 보수한다고 정신없을 테니 나 쫓아오지 마라.”
후우웅
나는 경악하는 락샤사를 뒤로 한 채 근두운을 타고 바로 그 자리를 뛰쳐나가듯 칼파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런 내게 배후령처럼 따라붙은 흑웅이 말했다.
[주인이여. 그건 분명히 창조의 권능……!! 어찌 그만큼 강력한 권능을 쓸 수 있게 되셨소?]
“어, 그건 말이야…….”
내가 뭐라고 말하려 할 때였다.
나는 갑자기 맞은편에서 강렬한 기세가 일렁이며 내 전진을 막는 것을 알아채고는 근두운을 멈추었다.
슈슉!!
내 진격을 막은 존재는 허공에 나타나서는 잔잔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왜 그러시는가? 계속 말을 하시지.”
“…….”
나는 눈앞에 있는 존재의 형상을 보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날개옷을 입은 고대의 전사.
그의 얼굴은 인간처럼 생겼으나 삼안(三眼)이 달려 있었으며, 한 손에는 활을 들고 있었다.
내가 직접 마주친 적은 없지만, 저 존재의 모습은 전뇌자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 눈에 피가 나도록 똑똑히 새겼던 기억이 있는 것이다.
스윽…….
상대는 천천히 나를 향해 활을 겨누며 전투태세를 갖추며 말을 이었다.
“궁금해지는군.”
그의 눈에 파르스름한 분노가 맺히는 게 보였다.
“어찌 그대가 나의 형제, 브라흐마의 권능을 쓸 수 있는지 말이야…….”
비슈누 최강의 화신체이자 ‘힘’ 그 자체를 상징하는 투신(鬪神) 아르쥬나가 내 앞에 나타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