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2권 5화
니알라토텝의 말에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자기가 무엇인지 알아내라고?’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묻는다는 말인가!
어쩌면 전생하면서 싸우게 될 가장 막강한 적이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나는 멍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네놈은 외신의 힘을 쓰면서 자기자신이 뭔지도 모른단 말이냐? 전지전능에 가깝다면서 자아조차 확실치 않다니 무슨 그런 개소리가…….”
“전지전능이라…… 전혀 그렇지 않아.”
달각
니알라토텝은 분노의 가면 위에 웬 웃는 가면을 덮어쓰며 말을 이었다.
“이 세상은 [아버지]와 허공록, 그 둘밖에 없다. 나머지는 사실 떨거지에 지나지 않지. 외신이라 칭하는 존재들도 사실 그들에 비하면 미물(微物)에 불과한 것.”
“…….”
“내가 왜 너에게 나의 자아를 찾는 의뢰를 맡겼냐고? 그야 너는 뭐가 뭔지 모르는 놈이니까.”
나는 그 말에 흠칫했다.
“뭐가 뭔지 모른다고? 무슨 뜻이냐.”
“무슨 뜻이긴. 넌 내가 마주쳤던 전생자들 중에서 제일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놈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윤곽 정도는 알아내는 게 정상인데 너의 실체는 뭔지 전혀 모르겠어. 재능이야 다른 전생자에 비하면 방사능폐기물 급이지만.”
“……?!”
“쉽게 말하자면 너는 [이질적인] 존재다. 나의 지혜로도 네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설마 인과율을 이 정도로 쌓았는데도 그 실체가 전혀 보이지 않을 줄이야…… 전생자가 맞긴 한 건가?”
감탄하듯 중얼거리던 니알라토텝이 흥미로워하는 눈빛으로 나를 주시했다.
“결말이야 정해져 있겠지만 나는 너와의 게임을 좀 더 즐기고 싶군. 이건 순수하게 네게 보이는 호의라고 해도 좋다.”
“벼…… 변태새끼냐? 즐기긴 뭘 즐겨?”
“크흐흐흐흐.”
쉬익!
니알라토텝이 키득하고 웃더니 순간 미소녀의 용모로 변신했다.
‘어?’
고풍스러운 중세 서양의 옷을 입고 있는 그 흑발 소녀의 모습은 아름답긴 했지만, 이 상황에서는 뜬금없는 변신이라서 내가 어이없어하고 있을 때 니알라토텝이 말했다.
“아까 내가 했던 말을 잘 생각해 봐. 이 세계의 운행(運行)에 있어서 너와 내가 대체 무엇이 다른지…… 네가 나를 악(惡)이라 주장하고 싶다면 무엇이 필요한지.”
“당연히 다르지. 넌 해만 끼치고 나는 그렇지 않…….”
니알라토텝은 눈물을 훔치며 우는 시늉을 했다.
“너도 황제랑 혼돈의 악신들한테 해를 끼치고 있잖아? 황제 공손헌원이 불쌍하지도 않니? 나쁜 놈아.”
“……개소리하네 씨발!! 그런 개새끼들한테 해를 끼치는 게 선(善)이라는 거라고!”
“딱히 그렇지도 않을걸? 교정하기 위한 상대적 선(善)과 모든 것을 멸하는 중용(中庸)은 결과적으로 같아질 수도 있으니까.”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거냐?”
“힌트 좀 주지.”
니알라토텝은 가녀린 손가락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던 가면 중 하나를 집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자신의 가면 위에 덧씌우며 말했다.
“나와 맞선 모든 전생자들은 자기만의 해답을 내놓았다. 결국 내가 이기긴 했으나 놈들이 세상에 남긴 유지(遺志)는 막을 수 없었기에 지금 너의 힘에 근간이 되고 양식이 되었지. 즉 이대로 가면 언젠가는 누대(樓代)의 전생자들이 쌓은 업(業) 때문에 내가 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지 않겠느냐?”
“…….”
“사실 더 이상은 좀 귀찮아. 극악한 난도라 하더라도 즐기는 편이지만 왠지 네가 승천(昇天)에 도달하면…… 말도 안 되는 변화를 일으킬 것 같거든. 그래서 나는 너와의 게임을 마지막 게임으로 하기로 마음속으로 정했어.”
나는 니알라토텝의 말에 비웃음을 지었다.
“자칭 모든 걸 즐긴다면서 웃긴 얘기를 하는군. 네가 지는 게임은 하기 싫다 이거냐?”
“당연한 거 아니냐? 게임은 이겨야 재밌는 거지. 정말 재밌는 게임을 위해서 ‘과정’으로서의 패배라면 얼마든지 즐겨줄 수 있지만, 결과가 패배로 고정되어 있는 경우는 그렇게 즐길 수가 없거든.”
“…….”
결과적으로 지는 게임도 재밌을 수 있는 거 아닌가.
하긴 뭐 저놈은 저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도…….
니알라토텝의 말이 이어졌다.
“전생자. 모든 게 끝났을 때 모든 게 시작된 곳으로 가라.”
“……그게 힌트냐?”
“그래. 내가 인과율의 거대한 소모를 감수하고 준 힌트다.”
그렇게 말하는 니알라토텝의 얼굴에는 악마 같은 미소가 감돌고 있었기에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그 표정을 보자마자 눈치챘다.
‘제길…… 절대자 놈들…… 나를 갖고 대리전을 벌이고 있군.’
내가 마도황제라는 놈의 인과율 계산에 어느 정도 휘말려 있다는 건 느낌상 눈치채고 있었다. 아마 니알라토텝은 그 마도황제의 인과율 계산을 방해하려고 일부러 내게 간섭해서 힌트를 준 게 분명하리라. 인과율을 계산할 줄 아는 두 절대자들이 나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고 있는 것이다.
썩 달갑지는 않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니알라토텝이 이 힌트를 준 건 무척이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그렇게 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사실 나도 모른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빽 외쳤다.
“뭐라고? 너도 모르는데 무슨 힌트야?”
“세계의 기록에서 읽어낸 힌트거든.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건 너 뿐일 거다.”
“…….”
“하지만 동시에 허공록은 이 단서를 내게 주면서 말했다…… 너는 그 때 비로소 내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스스스스
니알라토텝의 몸이 서서히 안개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전생자. 나는 앞으로도 네 앞에 직접 나타나서 힘으로 널 쓰러뜨리진 않을 거다. 마도황제의 제약은 아직도 걸려 있어서 네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그런 건 재미가 없으니까.”
“…….”
놈은 소파와 함께 사라지면서 웃음을 짓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를 재미없게 만들면 변덕을 부릴지도 모르지.”
파앗!!
나는 다음 순간 동료들이 있던 곳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내 앞에 있던 천우진이 말하는 게 들려왔다.
“이 통로를 넘어가면 바로 달마와의 전장에 도착하게 된다. 각오는 됐냐?”
“…….”
“백웅! 또 딴생각하고 있냐?”
천우진이 호통을 치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 아니.”
“정신차려. 네 육체와 정신이 합일하는 순간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될지 모르니까.”
“…….”
천우진도 아수라도 방금전에 내가 니알라토텝에게 납치되었던 건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만큼 순간적인 일이었고 니알라토텝의 권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었다.
‘니알라토텝과 만난 걸 동료들에게 얘기해야 할까?’
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지금은 달마와 싸우는 데만 집중하자…….’
니알라토텝과 했던 얘기는 너무 추상적인 데다 지금 상황에서는 고민해봤자 답도 나오지 않는 얘기였다. 게다가 달마와의 전장에 곧 도착한다면 생사결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얘기를 해서 좋을 게 없었다.
파앗
잠시 후 푸른 통로를 지나서 우리는 달마와 싸우던 장소에 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아니……!!”
‘저기’ 있는 것은 내 몸이 아닌가!
예상은 했었지만 정말로 내 몸과 혼백이 분리된 상태였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자 어이가 없었다. 이마에 두 개의 뿔이 돋아 있는 내 몸뚱이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 있었고 미동도 하지 않는 중이었다.
그리고 내 몸의 발밑에는 피투성이로 넝마처럼 변해 버린 달마가 드러누워 있었다. 그의 강력한 마체(魔體)는 갈기갈기 찢긴 지 오래였고 팔다리가 찢겨서 아무데나 널브러져 있는 상태였으며 흑혈(黑血)이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누가 봐도 명백히 내 몸이 승리해 있는 상황!
그러나 나는 천우진을 조심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그냥 몸에 다가가면 합체되는 거냐?”
이게 문제다.
어쩌다가 몸과 정신이 분리된 건지 나도 영문을 모르는 상황이라, 내 몸이 알아서 독립적으로 싸워서 달마를 쓰러뜨린 상태에서 어떻게 원상복구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것이다.
그러자 천우진이 말했다.
“기다려 봐라. 달마가 할 말이 있는 것 같군.”
“뭐?”
슈우욱…….
다음 순간, 달마의 시체에서 희뿌연 영체 같은 게 솟아올랐다. 그 영체는 생전의 달마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서 그의 혼(魂)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달마는 우리 쪽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수많은 전생을 했지만 이렇게 기묘한 경우는 처음 보는군. 백웅이여, 그대는 대체 무슨 원리로 혼백이 분리되어 영문모르게 동료들을 데리고 왔는가?]
“……나도 몰라, 젠장할.”
정말 모르겠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내가 거칠게 대답하자 달마가 말을 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대의 승리는 승리다. 나 달마는 백웅에게 패배했음을 인정하며 첫 번째 시련을 통과했음을 선언하노라.]
쿠구궁……!!
다음 순간 달마의 뒤편에 거대한 흑철의 문(門)이 소환되었고 그 문이 쩌억 하고 열렸다. 쩍 열린 문 안쪽에는 총천연색의 혼돈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다음 시련에 도전하라.]
“…….”
나는 침묵하다가 달마에게 말했다.
“달마. 난 두 번째 시련에 도전 안 할 거야.”
[…….]
“그러면 다음번에 또 와서 도전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다시 당신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건가?”
내 질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시련을 이번 기회에 한 번에 통과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하는 것인가? 사실 달마 자체의 실력도 어마어마한 것이라서 또 싸우면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치우의 뿔이 갑자기 폭주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사실 내가 달마에게 졌어야 정상이다.
그러자 달마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 그대는 다음번에는 바로 이곳을 통과할 수 있다.]
“휴, 다행이군.”
[허나 백웅이여. 나는 어차피 패배했으니 그대에게 조언해주고 싶구나.]
“뭘?”
달마는 자신의 석장을 쿵 하고 내려찍으며 말했다.
[적어도 지금보다 백 배 강해지지 않는다면 두 번째 시련은 꿈도 꾸지 말라.]
“…….”
[이 뒤에 존재하는 자들은…… 그대가 감히 넘볼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모든 이야기를 끝낼 정도의 강자가 아니라면 엄두도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달마의 조언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아니, 사실 달마는 처음부터 저렇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존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내게 되돌아가라고 종용했던 것이다. 나는 그 말이 진심이었음을 이제야 알고는 달마에게 말했다.
“이 시련을 통과하면…… 전생(轉生)의 끝을 볼 수 있는 거냐?”
사실 가장 큰 문제가 이거다.
천암비서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가장 어려운 마지막 시련!
그 터무니없는 사상최악의 난이도는 지금 내 눈으로 확인했지만 정작 이 말도 안 되는 난이도에 도전해야 하는 이유는 알지를 못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나는 나일라토프의 말을 기억해냈다.
[내 말을 믿든 믿지 않든 좋네. 애초에 단말인 전뇌자가 내가 여기까지 침입하는 걸 극구 말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저 문이야말로 전생자에게 마련된 최후의 시련이기에 천암비서라는 시스템의 일부인 전뇌자는 나를 막을 수밖에 없었던 걸세. 그리고 최후의 시련이라 한다면 당연히 자네 스스로가 전생을 끝내고 윤회의 고리를 탈출하는 [끝]일 수밖에 없지.]
[내 가설을 말해주지. 저 [문]을 열고 나서 문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존재가 바로 다음번 전생자가 되는 거야. 혹은 자네가 직접 들어가게 되면 바로 승천에 도달하는 것이고.]
나일라토프가 굳이 천암비서 안까지 침입해서 끝자락의 [꿈]까지 와서 시련의 문을 열려고 했던 이유.
그는 바로 이 시련을 통과하면 바로 전생자가 되거나 승천에 이를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렇게 친다면 이 천암비서의 시련은 이 세계의 모든 신들이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최고의 보물을 보상으로 준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자 달마가 말했다.
[순서가 잘못되었다.]
“순서가 잘못되었다니?”
[그 나일라토프가 말한 가설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이 시련을 끝까지 통과하면 승천의 자격을 얻을 수도 있고 전생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순서가 잘못되었으니…… 굳이 그걸 얻기 위해 이 시련에 도전하는 건 앞뒤가 맞지않다는 이야기다.]
“잠깐.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어쨌든 결과적으로 소원을 이루는 건 사실이잖아? 뭐가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거냐?”
[…….]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아수라가 끼어들었다.
“백웅.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건 도전자가 이 시련을 끝까지 통과하는 난이도를 얘기한 거다.”
“아수라. 무슨 소리야?”
이어진 아수라의 말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이미 승천을 얻은 존재…… 그 강함이 어쩌면 외신에 필적할지도 모르는 존재들이 시련관으로 버티고 있을 테니 승천을 얻고자 이 시련에 도전하는 건 터무니없는 바보짓이라는 거지.”
“……!!”
“반대인 거야. 승천을 얻은 후에야 이 시련에 도전해볼 만한 거지.”
“그…… 그런…….”
나는 당황하다가 이윽고 달마에게 외쳤다.
“달마!! 그러면 대체 이 시련의 존재 이유는 뭐냐? 승천도 전생자가 되는 것도 그저 최소한의 조건에 불과하다면…… 이 시련을 끝까지 통과해서 얻는 건 대체 뭐냐고!!”
[…… 설마 그것도 모르고 여기까지 왔던 건가…….]
침음성을 흘리던 달마가 이윽고 뜻밖의 한마디를 했다.
[시련관은 그대에게 이기면 다시 전생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