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536화 (1,435/1,615)

전생검신 82권 4화

망했다.

내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생각은 바로 그거였다.

니알라토텝!! 저놈은 고대신 케찰코아틀을 손짓 한 번으로 없애 버릴 정도로 강한 존재였고 나는 아직까지 외신의 화신에 대항하기에는 터무니없이 힘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대방에게 유리한 장소로 끌려들어 왔고 동료들과 떨어졌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했다. 왜냐하면 이런 생사의 위기를 한두 번 겪어보는 것도 아니었고 자세히 보니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니알라토텝 저 녀석…… 신투지존의 몸을 하고 있지만 왜…….’

[다른 가면]을 쓰고 있는 거지?

아닌 게 아니라 놈의 몸뚱이는 영락없이 외우주에서 보았던 그 신투지존의 것이었지만 얼굴에는 기이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 가면은 생전 처음 보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불길함이 감도는 게 느껴졌다. 내가 크게 경계하고 있자 상대가 말했다.

“이런, 묻고 싶은 게 많은 얼굴이구나. 재밌어.”

“뭐가 재밌다는 거냐?”

니알라토텝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힘의 차이는 이미 알고 있을 텐데도 공포심보다는 호기심이 앞선다는 건 재밌지 않은가? 지금 당장에라도 뭔가 질문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다는 게 느껴지는군.”

“…….”

“자아, 일단 편히 앉지.”

니알라토텝이 손을 휘젓자 놈은 어느새 우아한 중세 서양식의 소파에 앉아 있었고 내 등 뒤에도 소파가 소환되어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검을 든 채 말했다.

“편하게 앉으라고? 미친 소리를…….”

“난 편하게 앉을 거야~”

니알라토텝은 어느새 양말까지 주섬주섬 벗고 맨발이 되어서는 아주 편하게 기다란 소파에 드러누워 있었다. 놈은 소파 앞의 탁자에 팝콘까지 소환해놓은 채였다.

와그작 와그작

팝콘을 집어 먹던 니알라토텝이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 싸우지 않고 얘기나 좀 하자는데 혹시 겁먹은 건가?”

나는 니알라토텝이 너무나 전투의지가 없어 보여서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하는 말에 투지나 적의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당연히 완력으로 나를 억제하거나 소멸시키리라 생각했는데 왜 저러는 거야?

천하제일의 악신(惡神)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도무지 의도를 읽을 수 없었기에 나는 잠시 당황해하다가 말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다는 거냐. 애초에 나를 왜 여기로 납치했는지부터 말해!”

“후후, 얘기가 시작되었군.”

니알라토텝은 뭐가 즐거운지 낄낄 웃다가 말했다.

“별거 아니다. 서(書)가 갑자기 최종단계의 시련을 발동했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보러 온 것뿐이지. 그 와중에 무신궁에서 태양지계로 탈출하는 재밌는 이벤트가 보이길래 한번 당사자와 얘기해 보고 싶었다.”

“…….”

“흐음, 그런데 네 선택은 재미가 없군. 어째서 무신궁을 끝까지 통과해서 무신을 만나지 않은 거지?”

나는 여전히 소파에 앉지 않은 채 놈을 노려보며 대꾸했다.

“내가 그 질문에 대답해줄 이유는 없을 텐데.”

“아, 그것도 그런가? 어쨌든 네게있어서 나는 악(惡)이며 최종보스일 테니 말해주기 싫은 것도 일리가 있군.”

“그럼 아니냐? 네놈은 만악의 근원이고 이 지랄 같은 사태의 원흉이야!!”

멈칫

내가 사납게 쏘아붙이자 니알라토텝은 의외인 듯 팝콘을 열심히 먹고 있다가 멈칫했다. 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크흐흐흐…… 내가 원흉이라? 크흐흐흐흐!! 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네 말도 맞아!”

“…….”

“프하하하하……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재밌게 되다니.”

니알라토텝이 박장대소를 하는 걸 보자 나는 기묘한 불쾌감과 당혹감이 동시에 엄습해오는 걸 느꼈다.

단순히 상대가 나를 깔보는 수준이 아니라 뭔가 심오하게 일이 꼬여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가 저렇게 웃긴 거지?

한참을 웃어제끼던 니알라토텝이 소파에 팔을 괸 채 팝콘을 우적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친구, 그러면 다시 묻지. 만일 네가 좀 더 강해져서 나를 가볍게 이길 정도로 성장한다면 이 이야기의 결말은 완전한 해피엔딩일 거라고 확신하느냐?”

“……적어도 네놈이 마음대로 까불면서 세상의 모든 일을 맘대로 망치는 일은 사라지겠지. 해피엔딩까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은 좀 더 평화로워질 거다.”

내 말에 니알라토텝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 같았다.

“이상한걸.”

“뭐가 이상하다는 말이냐?”

니알라토텝이 나를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30번 전생하면서 실컷 세상의 혼란을 부추기고 맘대로 깽판을 치지 않았느냐? 사실 30번 내에서는 내가 깽판 친 것보다는 네가 해놓은 게 훨씬 많을걸?”

“뭐라고…….”

“지금만 해도 그래. [큰 굴레]를 멋대로 뒤집어서 탁록시대로 가버리고 본디 존재하지 않았을 사건을 무수히 일으킨 건 바로 네가 아니냐?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게 나의 음모라고 주장할 셈은 아니겠지?”

“…….”

“나는 서(書)의 시련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지 못했다고. ‘그놈’이 걸어놓은 무수한 제약 때문에.”

아니 잠깐…… 그건…….

내가 잠시 할 말을 잊고 있을 때 니알라토텝이 킬킬 웃었다.

“친구.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별로 네가 싫지 않아. 왜인지 알아?”

“닥쳐.”

놈이 빙긋 웃으며 내 마음에 불쾌한 쐐기를 박았다.

“너는 세상을 재밌게 만들어주고 있어. 나는 너처럼 좋은 친구는 본 적이 없다고.”

“……씨발, 닥치라고 했지!!”

암야참(暗夜斬)!

촤악!!

나는 더 참지 못하고 전력을 다한 암야참으로 놈이 누워 있던 소파를 그대로 베어 버렸다. 그러자 석둑 하면서 대놓고 살과 뼈가 동시에 잘리는 느낌이 칼날을 통해 느껴졌고, 니알라토텝의 몸뚱이가 반토막나면서 선혈이 분수처럼 치솟았다.

푸슈슉…….

니알라토텝은 몸이 동강 난 상태에서 자신의 내장이 쏟아지는 걸 보면서 낄낄거렸다. 역시 놈은 겉으로야 어떤 상태가 되어도 절대적으로 불멸하는 신적인 존재인 것이다.

“하하하하하…… 내가 뭐 심하게 모욕을 준 것도 아닌데 과하게 반응하는군. 설마 찔리기라도 하는 거냐?”

“이 개자식이……!!”

나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내가 어떻게 했든 내가 전생하면서 네놈이 벌여놓은 악랄한 짓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졌어!! 네놈이 [가면]을 이용해서 세상 곳곳에 뿌려놓은 악의가 모든 걸 타락시키고 있었는데 너도 나도 같은 놈이라는 양비론(兩非論)으로 물타기를 할 셈이냐!”

“호오…… 말빨이 좀 있군. 그러면 나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지.”

슈슈슉

니알라토텝은 순식간에 동강 난 몸을 원상복구시켜서 피로 물든 소파에 다시금 몸을 뉘인 채 말했다.

“내가 [가면]을 뿌려서 역사에 개입한 게 뭐가 문제인데? 문제 될 게 없잖아.”

“……뭐? 문제가 아니라고?”

이런 뻔뻔한 새끼가!

내가 기가 막혀서 반문하자 니알라토텝은 팝콘을 우적거리며 말했다.

“친구. 어차피 [계시]가 뜨면 세상은 즉시 멸망해. 어차피 세상이 망할 텐데 그 와중에 내가 어떤 식으로 즐기든 [결과]는 같지 않아? [과정]이 순탄치 않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내가 멸망을 선언하지는 않았고 세상이 종언을 고할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나?”

“…….”

“세상을 멸망시키는 건 내가 아니라 흉신(凶神)이야. 나는 흉신이 마무리를 장식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논 것밖에 없어. 안 그래?”

나는 니알라토텝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철면피일 수가 있다니!

나는 약간의 분노를 머금고 말했다.

“너 때문에 삼황은 황제의 음모에 당해서 봉인당하고 세상에는 혼돈의 군세가 창궐하였고 약한 자들은 더욱 심하게 강한 자에게 짓밟혔다!! 이후에도 네가 사사건건 개입해서 세상이 좀 좋게 풀리려 하면 더 힘들어지게 만들었잖나! 그 모든 사람의 고통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지 마!!”

“흐음, 고통이라…….”

니알라토텝은 뭔가 고심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그럼 한 가지 묻고 싶군. 내가 사라진다면 이 세상이 진정으로 고통이 사라진 행복한 세상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거냐?”

“……적어도 지금보다는 낫겠지.”

“아니, 그건 대답이 될 수 없어. 내가 세상에 악의를 흩뿌려 사악한 염원을 창궐시킨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여 세계의 모든 악의(惡意)가 나를 근원으로 한다는 건 지나친 얘기가 아닌가?”

“…….”

니알라토텝은 훗 하고 웃었다.

“그렇게 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악신들은 사실 원래는 착했는데 내가 나쁜 놈으로 타락시켰다는 얘기가 되는 거지. 전생자여, 너는 정말로 그렇게 보나?”

나는 니알라토텝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리고 생각을 거듭하다가 힘겹게 대꾸했다.

“……그, 그런 건 아니겠지…….”

니알라토텝이 상고시대의 악신이자 천외천의 한 명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 하여 이 세계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보는 건 지나친 얘기였다. 전생 초기였으면 몰라도 수많은 것을 보고 들어온 지금은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닌 것이다.

니알라토텝은 팝콘을 먹다가 목이 메이는 듯 아메리카노를 소환해서 빨대로 쪽 빨면서 말했다.

“나는 단언할 수 있어. 내가 유별나게 못된 놈인 건 사실이지만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 먹은 거야. 내가 사라진다면 잠시 동안은 세상이 멀쩡하고 행복한 해피월드처럼 보이겠지만 곧 내가 없는 공백에 누군가가 출현해서 새로운 악(惡)의 원천이 될 뿐이다.”

“…….”

“그 자리에 들어갈 게 황제인지 흉신인지 아니면 그놈일지는 모르겠지만…….”

니알라토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친구. 정 그렇게 정의를 설파할 거라면 내가 절대악이라는 근거를 대 봐. 적어도 나는 내가 악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으니까.”

나는 기가 막히고 황당했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니알라토텝이 자기는 나쁜 놈이 아니라고 주장할 줄이야?! 물론 저놈이 나쁜 놈이라는 건 본인도 알고 나도 아는 거였지만 놈이 요설(妖說)을 늘어놓는 걸 묘하게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나는 힘겹게 외쳤다.

“제기랄…… 궤변 늘어놓지 마라.”

“궤변이라면 궤변이지. 그러면 내 말에 반박이라도 좀 해 봐. 나 혼자서 떠들려니 심심한걸.”

“…….”

‘신중하게 생각하자.’

나는 이 자리에서 니알라토텝과 논쟁한다 해서 뭔가 이득이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니알라토텝이 떠드는 걸 부정할 수 없다면 결국 내 전생의 여정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리라는 걸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니알라토텝이 나를 힘으로 공격하는 것보다 지금의 말싸움이 어쩌면 더 의미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놈에게 반박할 말을 찾아내야 한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게 있어서 자신 있게 말했다.

“네 녀석은 나쁜 놈이야. 일단 이성이 있는 존재란 연민과 정이 있기에 모든 자가 악으로 굴러떨어지는 건 아니다. 너는 세상이 옳게 흐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막아 버리고 약육강식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으니 네 녀석을 없애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

그러자 니알라토텝은 조금도 고민하는 기색이 없이 대꾸했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그럼 옳게 흐른 세상이란 건 무엇을 말하는 거냐? 네 정의를 듣고 싶구나.”

“네놈이 삼황을 조지지 않고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아서 세상이 평화로워진…….”

“하하하하하.”

니알라토텝은 낭랑하게 비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그럼 그 평화로운 세상에서 너희 인간은 아무것도 안 먹고살 거냐?”

“……어?”

예상치 못한 얘기에 나는 약간 당황하고 말았다. 니알라토텝의 말이 이어졌다.

“인간이란 건 먹어야 살잖아. 너희가 먹는 건 동식물인데 그 동식물을 산채로 잡아먹는 건가? 너희도 너희 자신을 위해 동식물을 살상하며 사냥하지. 또한 사냥으로도 모자라 잡아먹힐 개돼지를 길러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지 않느냐. 그러면 그 동식물들은 너희에게 죽어서 잡아먹히기 위해서 태어난 건가?”

“…….”

“아니지. 너희 또한 대대로 동식물을 양식하여 잡아먹는 괴물들이다. 적어도 그 동식물들에게 있어서는 너희가 악신과 다르지 않지. 그들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여 말할 수 있게 한다면 너희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할 것 같은가? 어쩌면 악신이 인간을 소멸시켜준다면 그 동식물들은 더 행복해질 수도 있지 않겠나.”

“아니, 그게…….”

“네가 말하는 ‘행복한 세상’에서 행복한 건 너와 네 동료, 그리고 인류를 포함한 일부 종족뿐이다. 그 종족들이 먹이로 삼는 자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아. 그걸 정말로 옳은 세상이라 단언할 수가 있는지 묻고 싶군.”

나는 ‘먹는 것’을 주제로 니알라토텝이 요설을 주장하자 갑작스레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놈의 말은 ‘인간이라면’ 반박할 수 없는 생존의 논리가 깃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이 씨…… 그, 그래. 먹는 것만 아니면 되지.’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하다가 니알라토텝의 전제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삼황의 도움을 받아서 빠르게 인간을 발전시키면 동식물을 희생시키지 않아도 인류가 살아갈 수 있게 될 거야! 그 뭐냐, 과학이 발전하면 그런 게 가능하다고 들은 거 같다!”

니알라토텝이 내 반격에 쿡쿡 웃었다.

“호오, 과학을 논하자 하는 건가? 내 앞에서?”

“어?”

뭔가 잘못한 것 같은데…….

‘아차!’

나는 그 순간 니알라토텝이 가장 좋아하며 장기로 삼는 게 과학이라는 걸 떠올렸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의 화신이자 가면인 나일라토프가 황제에 비견될 정도로 강했던 것이다! 나는 괜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며 후회했지만 그때는 이미 니알라토텝이 느긋하게 말을 잇고 있었다.

“친구. 우주문명의 척도라는 걸 들어봤나?”

“…….”

“수많은 척도가 있으나 간단히 말해서 너희가 은하계의 최심부로 진출할 정도가 된다면 생명의 희생 없이도 문명을 꾸려나갈 수준의 과학을 보유하게 되지. 삼황이 전폭적으로 인류를 지지한다면 그 단계까지는 천 년, 아니 삼백 년도 되지 않아 도달할 수 있게 될 거다.”

“그래! 당장은 어쩔 수 없지만, 나중엔 어떻게든 해결된다니까.”

“그러나 그 과학단계에서는 생명을 희생시키는 대신에 다른 걸 희생하게 되지.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나?”

“…….”

“바로 별(星)이다. 플래닛 익스트랙터(planet extractor)을 이용해서 별의 에너지를 뽑아내는 기초단계의 기술에서부터 항성의 에너지를 뽑는 스웜핑(swamping)의 단계까지 발달하게 되지. 모든 에너지를 뽑힌 별은 사멸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 단계의 과학기술에서는 절대로 소모한 에너지만큼 재창조를 할 수가 없어. 물리학 최고단계에 이르지 않으면 법칙상 절대로 불가능하지. 이게 무슨 뜻일까?”

뭔 소린지 몰라서 잠자코 있자 니알라토텝이 천천히 말했다.

“모든 우주문명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제한된 자원을 절대적으로 소모하기에 결국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명을 이뤄 은하계 최심부까지 진출한 종족들은 예외 없이 제국이나 연방을 만들어서 서로 전쟁을 했으며 서로 죽였다. 왜냐하면 한 번 소모된 별의 자원을 재충전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남의 것을 뺏을 수밖에 없거든. 그런 식으로 쟁탈을 거듭하던 문명이 극한에 이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나?”

“……모르겠어.”

“자신이 존재하던 세계에는 더 이상 채취할 자원이 남아 있지 않아서 우주의 바깥으로 향하려 하게 되지. 이른바 외우주라 불리는 곳으로……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곳은 주시자가 관리하고 있기에 주시자는 금기를 범한 문명을 단숨에 소멸시켜 버리게 된다.”

“……!!”

나는 니알라토텝의 말에 흠칫했다.

‘설마 저 얘기는…….’

과거 내가 거신왕 수인과 외우주를 통과할 때의 기억!

수인은 분명히 금기를 범한 자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물론 우주의 대공동과 초은하단을 넘을 마도문명을 가진 자들도 있다. 그러나 ‘주시자’께서 그들의 외우주 탐사를 허락치 않았기에, 금기(禁忌)를 범한 자들은 문명째로 순식간에 소멸당하고 말았다.]

[우리 거신족 또한 그 일로 데인 적이 있었지…… 허나 이번에는 정식으로 [자격]을 얻어서 통과하는 것이니 괜찮으리라.]

오래전의 일이지만 기억났다. 그 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지만 지금 니알라토텝의 말대로라면 그 모든 게 진실이었던 것이다. 우주전쟁 끝에 쟁탈할 자원이 남지 않아 외우주를 침범했던 문명이 외신의 권능에 소멸하는 사건이 종종 일어났던 것이리라.

니알라토텝은 팝콘을 한입 집어서 와그작 먹으며 말을 이었다.

“필멸자들의 말로란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는 다 똑같아. 어차피 너희는 약육강식의 법도를 거스를 수 없으며 열역학 법칙조차 벗어나기 힘든 하찮은 놈들이지. 약육강식을 따르는 한 결국 너희는 누군가에게 상대적인 악(惡)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굳이 과학과 문명발전을 논하지 않더라도 너희는 성악설(性惡設)을 거스를 수 없어.”

“…….”

“전생자. 네가 말하는 ‘옳은 발전’이라는 건 결국 이 세계를 다스리는 대신(大神)들에게 있어서는 수십억 년 전에 이미 몇 번이고 보아왔던 지루한 유희의 반복에 지나지 않아. 결국 그건 정의가 아니란 말이지.”

내가 할 말을 잃자 니알라토텝이 아메리카노의 얼음을 까득거리며 깨 먹고는 킬킬거렸다.

“이 혼돈의 세계는 본디 진흙탕과 같은 거세 개탁(擧世皆濁). 네가 하는 말은 탁도(濁度)를 약간이나마 낮춰서 물을 맑게 하려는 짓인데 결국 물에서 진흙이라는 심연을 덜어내지 않는 한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짓이다. 과연 너만의 알량한 정의가 나를 절대악으로 규정할 이유가 되느냐?”

나는 항변하듯 말했다.

“거시적 관점 따위는 몰라. 적어도 네놈이 지금 내 소중한 존재들을 해하려 들고 평화롭게 해결될 일도 억지로 망가뜨리는 건 사실이지 않느냐? 지금 내가 절대적으로 옳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네놈을 가만 놔둘 이유는 되지 못해!”

“호오, 그래? 그럼 이건 어떨까?”

“뭘 어째.”

“너랑 네 친구들은 가만히 놔두고 그 외의 나머지 세상에 패악질을 부리면 괜찮다 그거지?”

“…….”

아니 씨발 그게 아니라…….

아니 근데 그래도 될 거 같기도 하고…….

“네 논리대로면 그때부터 너는 내가 아무리 사악한 짓을 해도 절대 날 막으면 안 돼. 안 그러냐? 일단 너한테만 해를 안 끼치면 절대악이 아닌 거겠지.”

“아니아니아니…… 잠깐만……!! 궤변이라고!! 나쁜 짓을 하지 말라는데 왜 얘기가 그런 쪽으로 가는 거냐!”

“편협하다는 거다.”

“뭐가 편협해?”

“네가 정의하는 선악(善惡)의 기준이라는 게 말이지…… 사실 따지고 보면 너와 네 친구들이 잘 먹고 잘살기만 하면 너는 세상의 진정한 구제(救濟)를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군.”

니알라토텝이 실쭉 웃더니 팝콘을 와그작 씹으며 말을 이었다.

“친구. 내가 마음먹고 ‘네 눈에 보기 좋은 세상’을 조금만 연출해준다면 너는 내게 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할걸? 위선을 조금만 행하면 위악자처럼 보이며 그런 위악자는 곧 좋은 이미지로 받아들여지지. 인간이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

“재미가 없어질 테니 그렇게는 하지 않을 테지만, 그런 같잖은 선악으로 날 재려 하면 실망이야.”

나는 놈의 말이 무슨 뜻인지 느끼고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 이 놈…….’

나는 놈이 나를 ‘얄팍하다’며 비웃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수많은 지식과 지혜, 철학을 섭렵했으며 상상도 할 수 없는 경험을 거듭한 니알라토텝에게 있어서 정돈되지 않은 대항의지 따위는 적수로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놈이 재미만을 추구하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진작 놈에게 짓눌리거나 세뇌당했을 게 분명했다. 보통 신이란 존재는 인간의 사상과 철학에는 별 관심이 없게 마련인데 눈앞의 니알라토텝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현명하다는 게 말 속에서 느껴졌다.

망량이나 제갈사가 이 자리에 오더라도 저놈을 말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다가 이래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말빨로 이길 수는 없더라도 놈에게 져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그래…… 이 수밖에 없다!’

나는 잠시 후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너는 왜 나쁜 짓을 하는 거지?”

그러자 니알라토텝은 전혀 뜻밖의 질문을 들은 듯했다. 소파에 팔을 괴고 있다가 처음으로 살짝 상체를 일으킨 듯했다.

“왜냐니? 재밌으니까 하는 거지.”

“착한 행동을 하는 건 왜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냐?”

“호오, 그 질문을 하는군.”

니알라토텝은 킬킬 웃다가 말했다.

“간단해. 착한 행동은 인과율(因果律)을 많이 얻을 수 없거든. 그래서 재미가 없어.”

뭐?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에 기분이 이상해지는 걸 느꼈다. 당연히 본능적으로 나쁜 게 좋다는 얘기 같은 중2병스러운 악의 논리가 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 인과율이 튀어나온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호기심을 느끼고는 반문했다.

“무슨 소리지? 그럼 넌 인과율을 얻기 위해서 나쁜 행동을 하고 있다 그 말인 거냐?”

“그래, 잘 알아들었구만.”

“착한 행동은 어째서 인과율을 적게 얻는 거냐.”

내 질문에 니알라토텝은 소파에 다시 팔을 괸 채 대꾸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선악(善惡)은 존재치 않으나 다르마(Dharma)의 관점에서 보면 그래도 선악으로 구분할 수 있는 척도가 있지. 선악이라기 보다는 질서와 무질서에 가까울까? 아무튼 업(業)이 쌓이는 심도(深度)를 비교한다면 당연히 악행이 선행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게끔 되어 있다. 악행은 부(否)를 파생시키며 파괴를 초래하기에 더 많은 인과율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

“악행이 거듭되면 세계가 무질서를 향하기 쉬워지는 것…… 나는 그 무질서가 심해질수록 내 업을 되새기며 더 많은 인과율을 획득할 수 있지. 그에 반해 선행이란 질서의 방향성으로 세계를 인도하기에 인과율은 그만큼 적게 얻게 된다.”

뭔가 이론적인 설명을 하던 니알라토텝이 히죽 웃었다.

“뭐 이런 건 좀 부차적인 거고…… 선(善)이란 결국 사건(事件)을 줄어들게 만들어. 내가 좋아하는 재미있는 사건들이 많이 나타나려면 선행으로 세상이 채워지는 건 그리 달갑지 않아. 세상이 재미있어지려면 악(惡)은 필수가 아니겠나.”

“…….”

“나는 나름대로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가득 차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나는 놈의 잔잔한 설명을 들으며 이해가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이놈은…… 진정으로 사고방식이 다르다.’

이 세계 전체를 자신의 놀이터로 생각하면서 그저 자신만의 욕망을 챙기는 존재. 그러면서도 우주 전체의 균형에 대하여 깊게 간파하고 있지만, 그 원리를 영악하게 이용하는 존재. 또한 인간이 생각하는 단순한 선악의 고리를 넘어선 차원에서 재미를 느끼는 존재.

나는 놈의 비인간적인 면모에 질리면서도 일단 꿋꿋하게 얘기를 이어나갔다.

“결국 꿩 먹고 알 먹고 하려고 나쁜 짓을 한다는 거군. 그런데 그렇게 인과율을 모아서 뭘 하려는 거냐? 결국 네놈도 인과율을 획득해서 이득(利)을 추구한다는 법칙에서는 초탈할 수 없구나!”

“…….”

니알라토텝은 뜻밖의 반박을 들은 듯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나를 멀뚱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말이지…… 잊어버렸어.”

“뭐라고? 뭘 잊어버려?”

“인과율을 모으는 이유를 잊어버렸다는 거야.”

니알라토텝은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자신이 그때까지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달각

가면을 벗자 그 안에는 또 다른 가면이 있었다. 니알라토텝은 그 상태로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또다시 가면을 벗었고, 또다시 가면을 벗었다.

달각 달각 달각 달각

놈이 가면을 벗어서 내던질 때마다 땅에는 가면이 쌓여갔고 순식간에 가면이 수십 개나 바뀌었다. 그렇게 계속 가면을 벗고 있던 니알라토텝이 문득 힘이 빠진 듯 그 행동을 멈추더니 말했다.

“넌 이해할 수 있나? 인식한 순간 절대자가 되어 있었지만 정작 나 자신이 어째서 이런 존재가 되었는지는 알지도 못하고, 내가 인과율을 모으려는 이유조차 잊어버린 삶을 너는 이해할 수 있느냐?”

“…….”

“나는 공백을 느끼는 만큼 쾌락과 악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모든 행위는 내 안에서 인과가 소실된 그 허무감을 달래기 위한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아.”

달각…….

니알라토텝은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그 안에는 시뻘건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는 듯한 가면이 있었고, 그 가면을 드러낸 니알라토텝이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분노를 끌어안고 있다. 나는 이게 무엇에 대한 분노인지도 모른다.”

“어, 어쩌라는 거냐.”

“웃기지 않으냐? 네가 최종보스라 생각했던 존재가 사실 기억상실증이라는 게.”

웃기지 않는다.

저놈이 하는 말이 다 사실인지도 의심스러울뿐더러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내가 그걸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니알라토텝이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전생자. 너는 이전까지의 전생자와는 뭔가 다른 놈이란 걸 느낀다. 내가 이렇게까지 뭔가를 전생자에게 털어놓은 적은 처음이야. 그래서 나는 네게 의뢰를 하고 싶다.”

그렇게 중얼거린 니알라토텝이 다음 순간 믿을 수 없는 말을 했다.

“내가 ‘무엇’인지 알아내라. 그러면 나는 네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서(書)의 진실을 알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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