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2권 3화
다 같이 태양지계를 향해 한 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후왁
갑자기 거대한 태양이 비쳐보이던 태양지계가 거대한 우주로 뒤바뀌었고 태양은 마치 방금 전 천우진이 경계를 만들었던 것처럼 머나먼 거리의 빛나는 한 점으로 변했다. 나는 옆에 동료들이 확실히 와 있는지를 확인했고 다행히 아수라와 천우진은 멀쩡히 있었다.
“이것도 [경계]라는 게 생긴 건가?”
“아니. 네가 태양지계의 출입권을 받아서 태양지계에 지금 한 발을 들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태양지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저 태양에 바로 도달할 수는 없는 거다. 복희가 태양지계의 출입권을 주긴 했으나 신좌의 내밀한 곳까지 바로 갈 수 있게 해준다 말한 적은 없잖나?”
“…….”
“외곽에 발을 들였어도 일단 들어오기만 하면 된 거란 말이다.”
나는 천우진의 말을 이해하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복희도 한 번에 다 내어주진 않는 사람이군. 신좌는 복희에게도 중요한 거라서인가?”
“그럴지도.”
천우진이 저 멀리에 있는 태양지계의 태양을 응시하더니 말을 이었다.
“저 태양의 힘은 복희의 또 다른 권능. 달리 말하면 현실에 존재하는 삼황 복희의 힘과 같은 위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삼황의 힘이 누군가에게 넘어간다면 우주의 균형이 크게 무너질 것은 당연한 일. 복희가 경계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나?”
나는 천우진의 말에 과거 태양지계에 대해 달기가 말했던 걸 생각해냈다.
[ 태양지계와 태음지계의 힘을 모두 얻게되면 법문(法文)이 존재하는 곳으로 바로 도약할 수 있게 되니까.]
[ 태음지계와 태양지계는 여와와 복희가 수십억년 전 신좌(神座)에서 내려올 때 자신들의 힘을 일부 봉인해 둔 이차원(異次元)이다. 본녀는 그곳에서 그들의 원초적인 힘, 음양(陰陽)보다 더욱 오래된 인온(氤氳)의 권능을 손에 넣으려 하노라.]
[ 물론 인온의 권능은 법문과 상관없다. 내가 알고 있는 법문의 위치가 무척 성가신 곳이므로 그곳을 뚫고 법문을 얻기 위해서는 인온의 권능으로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위치상 태음지계와 태양지계가 있는 곳이 그곳과 무척 가깝기도 하고.]
꽤 오래전의 기억이었지만 나는 기억력이 좋기 때문인지 금세 기억을 해낼 수 있었다. 나는 그 당시의 이야기를 더듬으며 생각을 정리했고, 이윽고 나직이 말했다.
“이곳에서 인온의 권능이란 걸 얻어야 태양지계와 태음지계의 근처에 있는 무생노모의 법문(法文)에 도달할 수 있는 거지. 그 법문에 있는 장소에서 버티기 위한 갑옷 같은 게 바로 인온의 권능 같은데…… 달기는 인온의 권능이란 게 구체적으로 뭔지 말하지 않았다.”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전뇌자가 우리에게 너의 기록을 알려줬기 때문에.”
그렇게 대꾸한 천우진이 말했다.
“네 말대로 우리가 원래 이 태양지계에서 손에 넣어야 하는 건 인온의 권능이 맞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온의 권능을 얻으려 무리하지 않을 것이다.”
“뭐?”
“지금 중요한 건 중첩된 액자를 벗어나서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 인온의 권능이 뭔지도 확실치 않은데 그걸 찾는다고 힘을 낭비할 순 없어.”
“…….”
“하지만 인온의 권능은 찾지 않는다 하더라도 위험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건 따로 있지.”
우웅
천우진의 손 위에 일렁이는 칠흑의 끈이 생겨났다. 그 칠흑의 끈이 이윽고 둥근 구체의 형태로 뭉쳐서 시꺼먼 구체가 되자 나는 흠칫하고 그 구체를 바라보았다.
“그건 설마…….”
“이게 뭔지 알고 있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무위(無爲)의 끌개. 네가 예전에 썼던 술법이잖아.”
“잘 알고 있군. 정확히는 술법이라기보다는 스승님께서 내게 내려주셨던 가호다. 전 우주에서 나만이 쓸 수가 있지.”
무위의 끌개가 가진 위력은 대단했다. [옛 지배자]의 권능도 무난히 막아낼 수 있는데 그 방어력이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떠한 술수보다 더 막강했던 것이다. 심지어 진소청이 썼던 무위의 끌개는 강화된 창힐의 전력을 다한 공격마저도 무난히 막아낼 수 있었으니 사실상 우주 최강의 방어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신기한 눈으로 무위의 끌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걸로 뭘 찾아낼 수도 있는 거냐?”
“물론. 모든 혼돈의 권능을 무효화시킬 수 있기에 보통 방어술법으로 많이 쓰긴 하지만 이 가호의 본질은 바로 혼돈(混沌)의 고정점(固定点). 혼돈의 극한에서 정반합을 일으키는 현상을 달리 이용한다면…….”
슈르륵
천우진이 손 위에 떠올린 무위의 끌개에서 마치 검은 털공에서 실이 풀려나오듯이 시꺼먼 끈이 길게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풀려난 끈은 한도 끝도없이 하나의 방향으로 쭈욱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러기를 한참이나 지나자 갑자기 쨍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의 저편에서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키기기깅!!
거대한 어둠의 균열!! 우주의 한 면을 뒤덮어 버릴 정도로 거대하며 순수한 흑암(黑暗)의 구멍이 저만치에 나타나 있었다. 그 거대한 어둠의 균열을 쳐다보던 천우진은 자신의 술수를 회수하며 무위의 끌개를 손 위에서 소멸시켰다.
“숨겨져 있는 차원계나 비밀장소를 무조건 찾아낼 수 있게 되어 있지.”
“……!!”
나와 아수라는 거의 동시에 저 멀리에 있던 어둠의 균열을 쳐다보았다. 나는 묵묵히 균열을 쳐다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게…… 바로 무생노모의 법문이 있는 장소라는 거냐?”
내 질문에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달기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럴 거다.”
“그럴까?”
“달기는 무생노모의 법문이 있는 장소가 태양지계와 태음지계에서 무척 가깝다고 했지. 하지만 신좌라는 건 물리적인 우주에 존재하는 장소가 아니므로 사실 거리라는 개념이 무의미해. 이곳은 본디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 개념적인 우주라는 건 이미 알고 있겠지.”
“그 말은…….”
천우진은 어둠의 균열을 응시하며 말했다.
“무생노모의 법문은 태양지계와 태음지계의 접촉면에 붙어 있는 거다. 시공간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신좌에서 ‘가깝다’는 표현이 성립되려면 그 수밖에 없어. 그러므로 저 균열 안에는 틀림없이 무생노모의 법문이 있는 것이다.”
“……!!”
그렇군!!
나는 천우진의 논리적인 말에 감탄하다가 순간 허탈해져서 말했다.
“이런 제길…… 법문이 쌍둥이 신좌의 경계면에 붙어 있으면 도대체 어떻게 찾으라는 말이냐!! 이런 건 상식적으로 찾아오는 게 거의 불가능하잖아!!”
“법문이 흩어질 때 모든 우주의 지배자들이 그 존재를 두려워하여 숨기려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천우진의 말이 이어졌다.
“출구는 만들어내었으되 우리는 지금 저 안에 들어가서 도전할 수 없어. 달기의 말대로라면 저 경계면은 누군가가 일부러 만들어냈을 확률이 큰 함정이고, 저 함정에 맨몸으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다.”
나는 천우진의 말을 이해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에 들어가려면 태양지계와 태음지계의 힘을 모두 얻어서 인온의 권능을 얻어야만 한다는 소리군!”
“그렇게 되는 거지.”
천우진은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은 법문의 위치만 알아냈으면 됐어. 무생노모의 법문에 도전하는 건 다음번에 해라.”
“끄응. 법문이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지나쳐야 한다는 게 좀…….”
“태음지계에 출입할 방법도 없잖아, 멍청한 놈아. 여와한테 가서 받아오던가.”
퉁명스럽게 내게 면박을 준 천우진이었다. 내가 입맛을 쩝쩝 다시자 옆에 있던 아수라가 저만치 멀리에 있던 태양을 응시하더니 문득 말을 꺼냈다.
“백웅. 지금부터는 쉽지 않을 거다.”
“뭐가?”
“아까부터 저 태양에서 살기(殺氣)가 느껴진다. 뭔가가 좀 있으면 공격해 올 거다.”
“……!!”
그 말에 우리는 동시에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나는 아수라의 말에 모든 감각을 기울여서 저만치에 있는 태양을 바라보았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당혹해서 말했다.
“아수라! 정말 살기를 느꼈나? 나는 아무것도 안 느껴져!”
아수라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너는 아직 팔식(八識)에 온전히 자아를 담그지 못했기 때문이다. 살기라기보다는 더욱 원초적인 ‘낌새’ 같은 거지. 무언가가 분명히 우리에게 적의를 향하고 있다. 그 근원은 바로 저 태양이고.”
“…….”
아수라는 대체 어떤 경지에 이르러 있는 거지? 정말로 지금의 나조차도 느낄 수 없는 은밀한 살기를 더욱 사전에 감지할 수 있단 건가?
‘아니, 그것보다 저건 태양계의 공전궤도보다 더 멀리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거리의 살기를 감지할 수나 있는 거야?’
내가 내심 질려하고 있을 때 천우진이 흠칫했다.
“으음, 이건 설마…….”
“왜 그래?”
“빨리 도망치자. 이건 좀 아니다.”
천우진의 안색이 약간 창백해져 있었다. 그러고는 천우진은 곧장 자신의 양손을 휘둘러서 [경계]를 만들어내었고, 그의 입에서 한마디의 주문이 흘러나왔다.
“나 망량선사의 힘을 빌어 현상을 꿈에 가두노라!”
콰아아아…….
그와 동시에 눈앞에 거대한 흑염(黑炎)이 마치 파도처럼 몰려와서 우리가 움직일 틈도 없이 공간을 가득 에워쌌고 마치 폭염으로 가득한 심해(深海)에 갇힌 듯한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우주적인 단위의 공격이었으므로 보는 이를 질리게 할 정도였으며 만일 현실세계로 따지자면 지구의 크기를 수천 배나 넘어서는 넓이의 공격인 듯했다.
쿠구구구
천우진이 만들어낸 무형의 방벽이 그 흑염을 어딘가로 보내버리면서 우리 셋은 다행히 멀쩡할 수 있었으나 나는 우주를 가득 채우는 흑염의 파도를 보자 단숨에 기가 질리고 말았다. 이 정도 힘의 소유자라면 틀림없이 삼황오제 혹은 그 이상일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젠장!! 저 태양이 공격을 한 건가?”
“……잘 봐라, 백웅. 저 태양의 한가운데에 있는 존재를.”
“음…….”
천우진의 말에 나는 신력으로 안력을 크게 강화시켜서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태양을 바라보았을 때, 마치 흑점(黑点)처럼 태양 근처에 떠올라있는 어떤 존재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존재를 좀 더 확대시켜서 관찰했고 이윽고 그 모습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고오오…….
크기는 짐작도 되지 않았다. 상대와의 거리가 천문학적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재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토록 먼 거리에서도 그 존재는 전신에서 근육을 꿈틀거리고 있었으며, 동시에 전신에 시꺼먼 비늘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물결치고 있었다. 또한 그 존재의 두상에는 분노한 상(像)과 함께 가공할 만한 적흑색의 안광이 빛나고 있었으며 그의 머리에는 뿔이 달려 있었다. 심지어 그 존재의 양 어깨에는 거대한 날개가 달려 있었다.
나는 그 존재를 보자마자 흠칫하고 말았다.
저 존재는 색깔과 기세는 달랐지만 내가 알고 있는 존재와 같았기 때문이다.
“……복희?!”
틀림없이 저건 복희의 본체다!!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보, 복희가 자기 신좌를 침범한 것에 분노해서 우리를 죽이러 온 건가?”
“설마. 좀 냉정하게 생각해 봐라. 본인이 출입권을 주고 본인이 그런 쪼잔한 짓을 할 리가 없지. 게다가 색깔이 완전히 다르지 않냐.”
“그러고 보니…….”
옆에 있던 아수라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것’은 복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복희가 태초에 허공록의 명으로 신좌에 봉인해둔 또 다른 복희의 모습이며 권능이다. 아마 ‘저것’을 쓰러뜨려야 인온의 권능을 얻을 수 있는 게 틀림없다.”
“잠깐. 그렇다는 건 저 암흑태룡(暗黑太龍)의 힘은…….”
“너도 짐작하는 대로다.”
이어진 아수라의 말에 나는 머리가 띵해지는 걸 느꼈다.
“복희와 같다.”
“……!!”
제기랄! 아까 했던 말이 씨가 되다니!!
정말로 복희와 동급의 괴물을 이겨야 한다는 건 이 자리에서 셋이서 삼황 복희를 쓰러뜨리라는 말과 같은 게 아닌가!
그 때 흑염의 파도가 마구 넘실거리는 가운데 신좌의 우주에서 그 형태를 짐작하기 어려운 혼돈의 괴물이 떼로 몰려나오는 게 보였다.
키아아악!
크아악!!
그것들은 부정형(不定形)의 마물들로 보였으며 그 숫자가 족히 억은 넘을 것처럼 보였다. 그 마물들은 흑염의 파도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조금도 불에 타지 않고 우리를 향해 쇄도해오기 시작했다.
‘저게 천우진이 말했던 우주 최심연의 마물들인가? 어디…….’
콰앙!
나는 시험삼아서 그 마물떼를 향해 검강을 날려 보았지만 마물들은 검강을 정통으로 맞고도 피부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나는 거기에 이어서 내 내공을 많이 담은 어검술도 날려 보았지만 어검술조차도 팅 하는 소리를 내며 튕겨나갈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
저 괴물들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강하다!
지상계라면 아오키가하라 수해에서도 입해(入海) 수준은 훨씬 넘는 놈들이다!
그러자 아수라가 주욱 하고 일섬을 내려그었다.
슈콰콰콱!!
암야참의 일격에 날아오던 삼파(三波)의 수많은 마물들이 일거에 쓸려나갔고 마치 우주 한 구석이 통째로 베이는 듯했다. 무시무시한 신위를 선보인 아수라가 말했다.
“백웅. 여긴 칠요의 시련 같은 게 아니다. 애초에 깨라고 만든 곳도 아니야. 침입자를 죽이기 위한 함정이니 이것저것 재볼 필요 없이 전력을 다해서 빠져나가자.”
“알았어.”
우웅
‘일단 저 마물떼부터 처리하고 숨을 돌려야겠군.’
나는 신력을 가득 모은 후 사방으로 가득 방출했다. 그리고 신력이 충분히 넓게 퍼졌다 싶자, 나는 양손을 합장하며 외쳤다.
“트리무르티!!”
전륜성왕, 아마테라스, 음신지력의 권능을 한데 섞는다!
‘세 개의 속성을 동시에 담은 창조물로 저놈들을 한 번에 쓸어 버리는 거야!’
슈슈슉
세 개의 공간에 각자 다른 속성의 신력이 들어가서 꽉 메운 후 중앙에 있던 보석이 반짝하고 빛났다. 그게 바로 트리무르티의 발동신호라는 걸 알고 있는 나는 합장을 하며 안광을 크게 빛냈다.
‘딴건 필요 없다. 엄청 큰걸로 한방…….’
초거대암창(超巨大暗槍)!
쿠구구구!!
다음 순간 광대한 범위에 그 크기가 성간(星間)을 가득 메우고도 남을 크기의 암창이 창조되었고, 나는 그 암창을 그대로 천지간에 내려꽂았다. 암창의 크기가 너무 거대해서 삽시간에 수억이나 되는 괴물떼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한 방에 몰살당했고, 동시에 사방을 메우고 있던 흑염의 파도 또한 암창의 범위에 먹히자 일시적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콰콰콰콰
[ 끼에에엑!]
[ 끄아악!]
암창에 더러 저항하는 강력한 마물들도 있었지만 암창에 섞여 있는 전륜성왕의 죽음의 기운에 즉사하고는 했으며 죽음의 기운에 면역인 듯한 놈들도 아마테라스의 화염에 그대로 소멸되었다. 다양한 속성이 중첩되었기 때문인지 아무리 우주급 괴물이라도 내 암창에 버틸 수 있는 놈은 없는 듯했다.
정적.
“좋았어!!”
바로 이거지!
나는 호쾌하게 수억 마리를 한 방에 다 쓸어 버리자 기분이 좋아서 쾌재를 불렀다.
“아, 아니.”
“세상에.”
내가 일거에 흑염의 파도와 괴물떼를 모조리 물리치자, 아수라는 물론이고 천우진도 나를 보고 꽤 당황한 시선을 보냈다.
잠시 말을 잊고 있던 천우진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트리무르티를 조합하면 이 정도의 권능을 쓸 수 있을 줄이야…… 이건…… 정말 상위신 아닌가. 지금의 너라면…… 어쩌면 이 시련을 통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하! 빈말이라도 좋구만.”
“아니 정말로…… 넌 대체 얼마나 강해진 거냐…… 전생자의 잠재력이 결실을 맺으면 이 정도로 강력할 줄은…….”
멍하니 있던 천우진은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말했다.
“……아니지. 그래도 여기에서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 일단 탈출하자, 백웅.”
“알았어. 탈출구는 어떻게 만들면 되지?”
천우진이 양손으로 각각 수인(手印)을 맺더니 말했다.
“내가 다시 무위의 끌개를 써서 이번에는 바로 수련세계로 날아가는 통로를 만들겠다. 너는 내가 통로를 다 만들 때까지 나를 보호해 줘.”
“알았어.”
그 때였다.
후웅…….
“온다.”
아수라의 한마디와 함께 거대한 날개를 홰 치면서 태양에 있던 시꺼먼 흑룡이 우리를 향해 순식간에 쇄도해 왔다. 그 흑룡은 제일 먼저 어마어마한 기세로 아수라를 향해 숨결을 내뿜었고, 아수라는 그 숨결을 향해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일검을 내려그었다.
귀일무극참(歸一無極斬)
쩌엉!
숨결이 절반으로 갈리면서 아수라의 일참이 흑룡의 입에 큰 상처를 만들어내었지만, 흑룡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동시에 꼬리를 휘둘러서 이번에는 나와 아수라를 동시에 공격해 왔다. 나는 신력을 가득 모아서 그대로 흑룡의 꼬리를 정면으로 막았다.
콰광!!
“끄윽!!”
나는 어떻게든 막긴 막았지만 내장이 다 터지는 듯한 느낌 때문에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꼬리에 실려 있는 힘은 너무 막강해서 내 전력을 다해도 겨우 막는 것에 급급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내가 정면에서 막아준 덕분인지 아수라는 그틈에 다시 한번 귀일무극참을 써서 흑룡의 꼬리를 베었다.
서걱
꼬리가 아주 약간 잘려나갔지만 정작 그 거대한 꼬리를 잘라 버린 아수라는 침음성을 흘렸다.
“귀일무극참을 전력으로 썼는데도 도저히 못 베겠군…… 이게 진정한 신의 육체인가.”
콰앙
“커억.”
“아수라!!”
동시에 알 수 없는 폭발에 휘말려 날아간 아수라는 단숨에 전신이 찢어진 듯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손바닥에서 신력을 발사해서 아수라의 전신을 붙잡아서 회복시켰다.
“이얍!”
비틀…….
내 신력을 휘감은 아수라는 전신이 조각조각났는데도 죽지 않게 되었다. 신력으로 그의 육체와 영혼이 버틸 수 있게끔 해준 것이다. 동시에 내가 아수라의 몸을 신력으로 붙여서 원상복구시키자, 아수라가 힘겹게 말했다.
“백웅!! 이놈은 복희만큼의 지혜가 없지만 그만큼 더 힘이 강하다!! 쓰러뜨릴 생각은 접어라!”
“뭐?! 설마 이 놈의 권능이란 건…….”
“그래!”
이어진 아수라의 말에 나는 진정으로 공포라는 감각이 등골을 쓱 훑는 걸 느꼈다.
“태초에 복희가 남겨둔 [육신의 강대함] 그 자체다! 육신 그 자체가 권능이야!”
“……!!”
그런 걸 어떻게 이겨?!
꽈아앙!!
나는 또다시 날아오는 흑룡의 꼬리치기를 연속으로 막아내면서 아수라의 말이 맞다는 걸 알아챘다. 나는 이미 옛날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지만 이미 팔뼈가 다 부숴져서 팔뼈와 근육을 강제로 창조하면서 버티고 있었다.
‘제길!’
무쌍패(無雙覇)
나는 신력만으로 막아내는 게 버거워져서 무쌍패를 이용해 모든 힘을 무위로 돌리려 했다. 그러나 무쌍패로 처음 몇 번의 공격은 손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시간의 틈새를 비집고 흑룡이 내 등 뒤로 돌아와서 난데없이 나를 집어삼켰다.
쿠워억
“크아악!!”
말 그대로 시공간을 무시한 일격! 이런 종류의 공격은 예상도 못한지라 무쌍패로 대처하는 게 늦었고 나는 그대로 우적우적 씹어먹히고 말았다. 하지만 그 찰나에 전신을 신력으로 강하게 보호한 덕분인지 전신에 구멍은 뚫렸지만 치명상은 입지 않은 듯했다.
무량단!!
푸콱
빠르게 검을 날려서 놈의 아가리를 베어 버리고 바깥으로 뛰쳐나왔지만 내가 뛰쳐나오자마자 흑룡의 입은 그대로 재생이 되어 있었다. 아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재생속도였기에 나는 진실로 괴물 같은 게 눈앞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길! 그럼 다시 트리무르티로 암창을 날려주마……!!”
나는 방금 전처럼 트리무르티를 써서 세 개의 복합기운을 동시에 담은 암창을 날려서 흑룡을 공격했지만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번쩍
쿠콰콰쾅
번개가 치는 듯 눈앞에 섬광이 일어나더니 나는 거대한 폭발과 함께 어마어마한 속도로 우주공간을 뒤로 날아가게 되었다. 나는 거대한 충격 때문에 전신이 너덜너덜해진 가운데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차렸다.
‘저, 정면으로 암창을 날개로 쳐서 부숴 버렸어!!’
정면에서 내가 신력으로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을 분쇄했다는 것! 그것은 상대가 갖고 있는 잠재적인 신력이 나보다 월등히 높다는 뜻이었다. 나는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를 체감하자 전신에 오싹하는 기분이 멈추지 않음을 느꼈다.
그렇다.
태초에 신좌에서 복희가 세상으로 내려갈 때 놔두고 간 권능은 바로 [육체의 강력함]! 지상에 내려온 복희는 단지 술법계열의 신적 권능과 지혜만으로도 천하를 오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삼황이 이 신좌에 놔둔 육체의 순수한 힘은 어쩌면 황제 공손헌원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걸 지금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복희처럼 신묘한 술수를 쓰지 않기 때문일까? 정면승부에서는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지만 내가 회피할 수 없는 외통수로 몰리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만일 복희를 상대로 이 정도로 밀렸다면 진작 봉인당하거나 저주에 걸려서 무력화되었겠지만 단순히 힘만 강한 놈인 덕분에 그 정도의 위기감까지는 아니었다.
‘좋아…… 그럼…… 아수라의 말대로 이기는 건 포기하고 최대한 개기는 거야!!’
정면으로 붙었을 때 상대의 힘이 9라고 치면 내 힘이 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정도 완력차이라면 계속 처맞는 한이 있어도 일단 끝까지 동료들을 공격하지 못하게 주의를 끌 수는 있었다. 나는 각오를 하고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다시 흑룡에게 뛰어들었다.
“제기라아아알!! 받아라!!”
콰과과광
나는 무량단을 날림과 동시에 꼬리공격에 맞아서 내 손발이 다 터져 나가는 걸 느꼈고 나는 전신이 찢어지는 고통을 억지로 참아가며 미친 듯이 흑룡을 상대로 매달렸다.
“으아아!! 바루나!”
나는 더 이상 못버틸 것 같아서 사대신기 바루나를 소환했지만 소환되지 않아서 흠칫했다.
“엉?!”
왜 소환 안 돼?!
그럼 여기서는 사대신기 없이 진짜 맨몸으로만 싸워야 해?!
내가 당황하는 그 순간에도 공격은 계속 날아왔다.
콰앙
뻐어억
‘으아아아악…….’
제기랄…… 말도 안 된다…… 단순히 신력으로 치고받는 것뿐이지만 뭐가 이리 강하단 말인가? 나 또한 간간이 반격은 하고 있었지만 상대가 열 대 때릴 동안에 나는 간신히 한 대 치고 있었다. 그것도 상대는 아픈 척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얻어맞을 때마다 전신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퍼버벅
꽈악
“끄악!!”
이 개새끼!! 또 물었어!
내 다리가 그렇게 맛있냐!
콰앙! 콰앙!!
어느 새 나는 꼬리에 연속으로 얻어맞아서 튕기면서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몸으로 막지 않으면 진작 천우진까지 다 죽었을 게 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쉬칵
그래도 옆에서 아수라가 간간이 기회를 보면서 역공을 날려주고 있었기에 나는 완전히 잡아먹힐 뻔한 치명적인 위기를 몇 번이나 회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수라가 아무리 암야참을 써도 상대의 맷집이 너무나 초월적이었기에 아예 의미가 없어 보였다.
절대 못 이긴다.
내가 수백 번이나 몸이 찢어지면서 반쯤 포기했을 바로 그 때였다.
[ 탈출구를 열었다. 가자!]
쏴앗!!
천우진의 영언이 들려오면서 나와 아수라의 몸이 동시에 시퍼런 통로로 빨려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시꺼먼 용의 모습이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고 종래에는 시꺼먼 점으로 변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입자들이 흐르고 있는 시퍼런 통로 안에서 천우진이 통로를 날아가면서 내게 말했다.
“정신 차려라. 이봐.”
“…….”
“백웅! 정신차리라니까.”
아수라가 나를 흔들어서 깨우자 나는 간신히 혼절해 있다가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이를 부득 갈면서 말했다.
“야…… 이 새끼야…… 뭐가 나라면 시련을 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저런 걸…… 어떻게 이겨…….”
상대가 안 된다.
적어도 지금보다 몇 배는 강해지지 않으면 얘기도 되지 않는다는걸 뼈저리게 실감한 것이다. 진정으로 우주를 주름잡는 최강급 존재와 싸워본 느낌이었다.
그러자 천우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마 복희가 진심을 보인다면 방금 전의 저놈과 거의 대등하겠지. 삼황의 본체와 미리 싸워봤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낫지 않겠나?”
“……말이야 쉽지.”
나는 고통을 간신히 참으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아니…… 그래도 진짜 복희가 더 강하긴 하겠지…….’
그럴 수밖에 없다.
탁록에 있을 그 복희는 ‘도끼’를 손에 넣었으니까.
‘제길. 더 강해져야 해…….’
내가 강해지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 바로 그 때였다.
주우욱……!!
‘어?’
갑자기 통로를 함께 날아가던 천우진과 아수라의 모습이 아득해지더니 나 혼자만 낭떠러지 같은 어둠에 떨어지는 듯했다. 나는 잠시동안 난데없는 상황에 당황하다가 이게 어떤 일인지 알아차렸다.
‘경계……!!’
천우진이 경고했던 바로 그 상황!
어떤 미지의 존재가 나를 시공간의 경계로 밀어 버린 거다!
‘[경계]를 인식해야 한다!’
나는 재빨리 정신을 집중해서 천우진이 가르쳐준 감각대로 내 모든 신력을 응축해서 최대한 작게 만든 후 상단전에서 폭발시키려 했다. 그러나 너무 찰나지간이라 아까처럼 잘 집중이 되지 않았고, 그 때문인지 황홀한 기분 대신에 머릿속이 띵하게 울리면서 눈앞의 풍경이 이지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주우우욱…….
끼기깅
“크윽!”
나는 마치 뱃멀미를 하듯 울렁거리는 감각 때문에 헛구역질을 했다. 그러나 그런 감각도 잠시, 나는 어느 새 생소한 곳에 발을 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며 전방을 주시했고, 거기에는 ‘무언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아무것도 없고 어둠만이 가득한 지평선.
거기서 내 맞은편에 서 있던 그 존재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존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여기도 껄끄러운 장소잖아? 잘못하면 [그녀]에게 개입을 당하겠군.”
“……!!”
나는 그 목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상대는 마치 칭찬을 하듯 너스레를 떨었다.
“흐음, 훌륭해. 좀 더 얘기하기 편한 장소로 옮기려 했는데 이젠 [꿈]에 저항하는 방법까지 익혔군. 생각보다 제법인데.”
“다…… 당신은…….”
그래서 그 존재의 얼굴을 보지 않았음에도 당황스러웠고, 내 당황한 감정을 마치 읽어내기라도 한 듯 그 존재는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하하…… 오랜만이야.”
이어진 목소리에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네가 황제와 무공대결을 벌인 이래로 처음인가?”
신투지존의 가면을 회수하러 찾아왔던 자.
가장 강력한 [가면]이자 외신의 뜻을 대행하는 화신(化神), 니알라토텝이 바로 내 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