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534화 (1,433/1,615)

전생검신 82권 2화

나는 천우진의 말을 예상도 못 했기에 약간 당황하고 말았다.

“……뭐라고?”

“태양지계를 통해서 무신궁을 빠져나가라고. 알아듣기 힘든가?”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천우진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갑작스러운 상황변화를 머릿속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마지막 세 번째 승부를 하지 않고 그냥 도망치라는 말인가?”

“같은 말을 몇 번째 하게 만드는지 모르겠군. 그래, 그 말이다.”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마지막 승부만 이길 수 있으면 무신(武神)을 만날 수가 있어.”

“…….”

천우진은 전자담배를 뻐끔하고 한 모금 피웠다. 놈은 연기를 말없이 들여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수라가 이미 말해줬지. 마지막 승부에 나올 대적자는 아수라조차 감당하기 힘든 초고수일 거라고. 만일 아수라가 너를 도와 2대1로 그자와 싸운다 하더라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랬지.”

“승산은 둘째치고 결국 너는 현재실력으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무모한 도전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네가 지금 그런 무모한 도전을 할 처지냐?”

천우진의 눈이 순간 날카롭게 변했다.

“웃기지 마라. 너는 지금 네가 스스로 주도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야. 시작은 외우주에 갔을 때부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도대체 몇 번의 세계이동을 거듭한 거냐? 자기 힘으로 무신궁에 온 것도 아니면서 이제 와서 아수라의 도움을 받아서 최종시련을 뚫겠다고?”

“……!!”

“따지고 보면 지금은 외신한테 살해당할 상황에서 그 존재의 알량한 자비로 겨우 목숨만 건져서 무신궁에 얼떨결에 도전한 거다. 내가 무신이라면 너 같이 상황에 마구 휘둘리는 놈을 만나고 싶지 않을 거다. 내 말이 틀리냐?”

“그…… 그건…….”

천우진이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넌 지금 무신을 만날 상황이 아니라 네 앞가림하기도 바쁜 처지야. 틀리냔 말이다.”

나는 천우진의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상황에 휘둘린다고…… 그 말이…… 맞다!!’

전혀 부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브라흐마조차 내 상황을 듣고서 황당해할 정도로 지금 내 상태는 많이 꼬여 있었다. 정상적인 전생궤도에서 뒤틀어져도 너무 뒤틀어져 있는 것이다.

내가 굳어 있자 천우진은 전자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슬쩍 손을 내리며 말했다.

“아수라는 그래도 네 녀석의 무인(武人)으로서의 의지를 존중해서 마지막 도전을 하겠다면 따라가 주겠다는 것 같군. 하지만 나는 그 생각이 철저히 틀렸다고 생각하며, 지금 최선의 방책은 이 공간을 탈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네가 어느 쪽을 택할지는 네 자유에 맡기겠다.”

“…….”

나는 아수라를 바라보았다. 아수라의 눈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평안 했고 천우진이 말한 대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수라 또한 천우진의 말이 논리적으로 옳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는 좀 더 무인의 의지가 강했기에 내가 도전하겠다는 의지도 받아들이겠다는 걸로 보였다.

아수라가 씩 웃으며 말했다.

“네 뜻대로 해라.”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탈출하겠다.”

그러자 천우진이 의외라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이런 선택지에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지막 도전을 했을 놈이 웬일이지? 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일 확률도 적다고 생각했는데.”

“……그래, 아마 평소라면 그랬겠지. 하지만 네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두 가지?”

“첫째는 내 온전한 실력만으로 도전해서 이길 시련이 아니라는 점…… 둘째는 지금 수습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점.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네 말이 옳다고 느껴졌다.”

천우진의 말이 맞다. 무신궁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아직 내 실력은 너무 많이 부족했다. 설령 아수라의 실력에 힘입어 마지막 세 번째 전투를 돌파한다 한들 그것은 무인으로서 자랑할 일이 아닌 것이다.

‘외신에게 떠밀리듯이 무신을 마주치는 건 정답이 아닐 거야.’

무 그 자체에 진심이 되고자 하기에 무신만큼은 편법 없이 내 실력으로 만나고싶다.

이것은 전생자의 직감이 아닌 내 자신의 의지였다.

“…….”

천우진은 훗하고 웃는 듯했다.

“공손대랑이 네 미혹을 베었다는 게 사실이었나? 평소와는 다른 선택을 했군…… 좋아, 그럼 탈출을 진행하지.”

나는 눈앞에 있는 태양지계로 향하는 통로를 쳐다보았다.

“이제 이 통로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래. 하지만 그 전에…….”

천우진이 손을 휙 하고 휘저었다. 그러자 갑자기 주변의 풍경이 크게 이지러지더니 어두컴컴한 동굴으로 바뀌었다.

“무신궁에서 탈출하는 게 먼저지.”

“……!!”

나는 이곳이 당초에 옥좌 내부로 들어왔을 때 돌아다녔던 그 외부동굴이라는 점을 알아챘다. 아까 이 동굴을 돌아다니다가 브라흐마를 만나고 또한 무신궁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갑작스럽게 외부동굴으로 오자 놀라서 말했다.

“여긴 더 위험하지 않냐? 브라흐마의 말대로면 이곳은 시공간의 흐름이 제멋대로라서 자칫하면 영원히 헤맬 수 있다고 했는데…….”

“그래봤자 방금 우리가 있던 무신궁보다 위험하진 않다. 이곳의 시공간흐름은 내가 충분히 제어할 수 있지만 무신궁은 그렇지 않아. 거기에 더 오래 있었다면 진법 때문에 난데없이 세 번째 시련으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으음……!!”

“무신에게 직접 간섭을 받는 장소보다는 이곳에서 태양지계로 가는 게 더 안전하겠지.”

그런 거였나.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 때 천우진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태양지계로 가면 끝……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전에 나도 너에게 전수해줄 게 있다.”

나는 그 말을 의외라 생각해서 천우진을 쳐다보았다.

“전수해준다고? 뭘?”

천우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네놈에게 가르쳐줄 게 하나도 없으리라 생각했나? 무(武)는 몰라도 나도 술법에 있어서는 종사(宗師) 이상의 경지에 도달했는데.”

“아니 뭐…… 네가 술법 잘 쓰는 건 다 알지. 하지만 이제 나는 신력이 있어서…….”

신력이 있는데 이제 와서 인간세상의 술법이 필요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내가 어물쩡 말을 뭉개고 있을 때 천우진이 비웃음을 지었다.

“하. 그러니까 전수를 해준다는 거다.”

“뭐?”

“지금 네 녀석은 [옛 지배자]와 같은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어. 하지만 신력만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결코 세계의 이면을 뒤집어볼 수 없게 되지. [꿈]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힘들어지고.”

“[꿈]?”

“……일단 거기 앉아 봐라.”

나는 천우진의 말대로 동굴바닥에 앉았고 아수라도 근처에 앉았다. 천우진은 내 맞은편에 앉은 상태로 가부좌를 틀고 있다가 고요히 입을 열었다.

“백웅. 네 생각대로 신력은 모든 인간계의 술법을 대체할 수 있다. 대체하는 걸 넘어서 무조건 상위에 있지. 그도 그럴 것이 술법이란 본디 삼황 복희가 내려준 신화의 불(火)로써 인간이 신격에 대항해 생존할 수 있게끔 내려준 축복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복희가 아무리 위대한 신이라도 복희의 창조물에 불과한 술법이 우주를 통찰할 수 있는 상위신격 그 자체의 권능보다 약한 건 사실 어쩔 수 없는 일.”

“…….”

“하지만, 모든 술법계통 중에서 내 스승님의 계통은 유일하게 그 법칙을 벗어날 수 있다. 왜냐하면 [꿈]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듣는 얘기였기에 천우진의 말에 집중했다. 그러고는 질문했다.

“꿈을 다룰 수 있기에 술법의 한계를 벗어난다고? 정확하게 설명해 줘.”

“그 전에 백웅, 너는 [꿈]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듣고 싶군.”

나는 산하사직도의 기억을 더듬으며 힘겹게 말했다.

“음…… 사실 잘 모르겠다. 꿈이란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가상세계이고 그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은 우리 현실에 존재하는 것과 사실 별 차이가 없다는 것? 꿈에 존재하는 자들도 스스로 꿈이라는 걸 인식할 수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그래, 바로 그게 중요한 거다.”

“어?”

“꿈의 주민 또한 스스로가 꿈의 일부라는 걸 인식한다는 것. 그게 바로 [꿈]의 핵심이다. 너는 이제야 비로소 꿈의 종사인 나와 얘기할 기초가 생긴 거고.”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자신의 양손에서 손가락을 가지런히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백웅. 그렇다면 [꿈]의 세계란 이 광대한 대우주의 어디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느냐?”

“뭐…… 그것도 과학에서 얘기하는 평행세계나 이차원(異次元) 같은 게 아니겠냐?”

천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꿈]은 그것들과 다르다. 평행세계와 이차원 같은 하위차원들은 원우주의 물리법칙에 종속되며 때로는 신력에 의해 파생되는 공간들. 그러나 [꿈]의 세계란 인식(認識)이 존재해야만 생성될 수 있으며 그 꿈 속에서는 신력을 쓰더라도 법칙을 조종하는 범위에 큰 제약이 생긴다. 본질적으로 다른 장소인 거지.”

“신력에 제약이 생긴다고?”

그런 건 몰랐는데?

처음 듣는 얘기에 내가 약간 놀라자 천우진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 꿈의 세계에서 웬만한 신력은 다 그대로 작동하기 때문에 별 차이가 없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어지간한 신력으로도 꿈의 세계를 파괴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신의 권능을 발휘하면 수수깡처럼 부러져나가는 하위차원계와는 완전히 다르지.”

“으음!”

“내가 예전에 망량선사의 사도가 되었을 때 너를 추격하던 삼황오제 제곡을 꿈의 세계로 막아 세웠던 건 바로 그러한 특성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런 거였나…….

내가 설명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천우진이 말했다.

“그러면 [꿈]의 세계는 왜 이런 특성이 생긴다고 생각하느냐?”

“어…… 모르겠어.”

“그것은 [꿈]의 세계를 형성하는 근원이 바로 외신(外神) 허공록(虛空錄)이기 때문이다. 즉 외신이 보증해주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 어떠한 신도 제멋대로 꿈의 세계를 망칠 수가 없는 거지.”

“……!!”

허공록!

그 이름이 나와서 내가 흠칫하자 천우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난다긴다하는 강대한 신들이 스승님의 눈치를 보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지. 외신이 직접 관리하는 영역의 신력을 마음대로 구사하는 존재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감도 잡히지 않기 때문이야. 그리고 나는 그런 스승님께 술법의 형식으로 [꿈]을 구현화하는 방법을 줄곧 배워왔던 것이고.”

“으음…….”

“중요한 것은 인식(認識)이다. 모든 이가 알고 있듯이, [꿈]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가장 최우선적인 요소는 바로 꿈에 존재하는 자가 자신이 꿈의 일부임을 깨닫는 것이지. 그리고 그 인식이란 [꿈]을 다스리는 술사에게 있어서는 [경계]를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경계라고 한다면 네 스승인 망량선사의 별호가 아니냐?”

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경계의 제망량이라 하는 것은 사실 [꿈]을 다루는 자에게 붙을 수 있는 최고의 존칭이기도 하지. 왜인지 아느냐?”

“잘 모르겠는데…….”

“경계라는 것은 바로 [현실]과 [꿈]의 경계(境界)를 의미하는 것. 또한 경계란 사실 꿈술사의 능력의 크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스승님은 꿈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확장시키고 축소할 수 있다. 그 말은…… 사실 스승님은 우리가 존재하던 현실, 아니 우주 전체를 언제든지 [꿈]으로 뒤덮을 수 있다는 뜻이지.”

“……?!”

“인과율만 충분하다면 언제든지 말이다.”

뭐라고?!

여태껏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에 나는 머리가 약간 띵해지는 걸 느꼈다.

‘망량선사가 그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 말대로라면 망량선사는 언제든지 우주를 지배하거나 마음대로 멸망시킬 수 있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게 엄청난 놈이었어?!

내가 놀라고 있을 때 천우진은 두 손을 모아 자신의 코와 입을 동시에 가리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뚫어져라 나를 두 눈으로 응시했다.

“사실 이런 건 망량선사 문하(門下)로서 외인에게 밝힐 수 없는 비밀이었기에 여태 네게 한 번도 설명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외신 [검은 산양]까지 관여한 마당에 더 이상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게 되었지. 아무리 전생자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하여도 말할 수 있는 정보는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게 되었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뭐야?”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말을 이었다.

“내게 뭔가를 전수한다고 했잖아. 대체 뭘 전수한다는 거야?”

“그래, 본론을 꺼내야겠지.”

천우진이 뭔가를 망설이는 듯하다가 말했다.

“사실 [꿈]을 다루는 자로서 보기에 지금 네 상황은 [꿈]의 연속이나 다름없다. 연속된 세계의 이동이 무척 번잡하고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은 [액자]가 거듭되고 있을 뿐 사실 모든 미몽(迷夢)에서 깨어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소리다.”

“뭐?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것이 꿈이라고?”

“중요한 건 인식이다. 내가 하는 걸 잘 봐라.”

천우진은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 순간, 나와 천우진 사이의 공간이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넓어지더니 천우진은 순식간에 지평선 너머의 한 점이 되어 버렸고 동시에 나는 알 수 없는 공간으로 한도 끝도 없이 밀려가는 걸 느꼈다.

“으아아!!”

나는 당황하며 손발을 허우적대었고 그 순간 천우진의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따악

그러자 다시 나는 동굴로 되돌아와 있었고 천우진이 여전히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어, 어떻게 한 거냐?”

“[경계]를 만들어냈지. 다만 이 경우는 어떻게 한 건지가 중요한 게 아니야. 너는 이런 경험이 셀 수도 없이 많았지 않으냐?”

“……그렇긴 하지.”

“신적인 존재가 다른 존재를 자기가 원하는 시공간으로 끌어들일 때는 상대도 모르게 경계를 만들어서 그 안으로 상대를 밀어 넣는다. 단순한 수법이지만 사실 이 수법은 신의 위격에 상관없이 잘 통해. 빠져나오기 쉽다 어렵다의 문제일 뿐 이 우주에는 수많은 분절된 경계가 있으므로 거기에 밀어 넣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호오…….”

“신들은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수많은 시공간의 위상에 자신의 존재를 걸쳐놓고 있는 것이고 그게 바로 신들이 시공간을 무시하는 속성을 갖고 있는 이유다. 상대가 멋대로 자신을 시공간의 함정에 빠뜨리는 걸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지.”

“으음.”

그리고 이어진 천우진의 말에 나는 적지않게 놀라고 말았다.

“지금부터 나는 너에게 경계(境界)를 인식(認識)하는 법을 전수하겠다. 이걸 알게 된다면 앞으로 쉽게 신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될 거다.”

“……!!”

“지금 너는 가진 신력에 비해서 외부의 강제력에 저항하는 힘이 너무 약해. 이 정도 갖춰놓지 않으면 앞으로 너무 쉽게 죽을 것이다. 이 기술을 알고 있으면 예전의 항아같은 적을 상대할 때도 좀 더 수월해질 것이다.”

나는 급히 외쳤다.

“자, 잠깐!”

“왜?”

“그 경계를 인식하는 수법이라는 건 망량선사가 가르쳐준 최대의 비밀 아니냐? 그걸 정말 나한테 가르쳐줘도 돼?”

내가 머리가 나빠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천우진이 설명한 대로라면 [경계]와 [인식]이란 망량선사와 그 문하생들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비밀이자 기술! 그런 것을 내게 가르쳐준다는 건 망량선사의 허락 없이 내게 비전(秘傳)을 전수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천우진은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나도 전수해줄 생각까진 없었다. 하지만 너는 큰 굴레의 과거에서 뜻밖의 존재를 만나 버렸더군.”

“뜻밖의 존재?”

“봉황…….”

“……!!”

“그 봉황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의 존재라면 너는 반드시 대비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나도 좋아서 전수해주는 게 아니니까 그냥 입 닥치고 배우기나 해.”

천우진이 약간 성난듯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리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고맙다.”

“자, 전수를 시작한다. 우선 가부좌를 틀어라.”

천우진은 내게 가부좌를 틀 것을 주문했고 내가 잠자코 가부좌를 틀자 말을 이었다.

“경계를 인식하여 꿈을 빠져나오는 건 크게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꿈의 균열, 즉 네가 산하사직도에서 논리적 모순을 인식하여 꿈의 관리자를 찾아냈던 것처럼 균열에 접촉하여 그걸 헤집고 나오는 방법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굳이 꿈의 균열을 찾지 않고도 스스로 꿈을 인식하여 경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가르쳐줄 건 두 번째 방법인가 보군.”

“그래. 우선 신력을 있는 대로 최대한 끌어올려 봐라.”

“하압……!!”

쿠구구구

잠시 후 내 전신에서 신력이 실제로 존재하는 기의 형태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앞에 있던 천우진은 흠칫하면서 경악했다.

“이런 제길…… 기억만 봤을 때는 몰랐는데 이 정도였나? 미친…… 괴물이 따로 없군…….”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

“나나 진소청은 오랜 수련으로 기술을 터득하여 경계에 도달했지만 너는 그럴 재능도 기술도 없으니 힘을 때려 박아서 억지로 인식하는 수밖에 없다. 잘 듣고 방법을 따라 해라.”

천우진의 말이 천천히 이어졌다.

“그 거대한 힘을 한없이 축소시키고 축소시켜라. 그리고 가장 작은 [끈]의 형태로 만들어라.”

“끈?”

“그래. 끈을 만들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데까지 축소시켜 봐.”

“흐으읍…….”

나는 천우진의 말대로 계속해서 힘을 응축하며 줄였다. 그것은 마치 무딘 조각칼로 단단한 바위를 쪼개는 것처럼 고되고 힘들었고, 이윽고 체력과 기력이 함께 소모되며 정신력마저 고갈되는 게 느껴졌다. 이토록 구차하고 힘든 작업을 최근에 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용쓰기를 약 한 식경, 마침내 내 기운의 크기가 줄어들 만큼 줄어들자 나는 죽는소리를 토해냈다.

“더, 더는 못 하겠다.”

“흐음. 크기는 주먹 정도…… 처음이면 이 정도인가…… 아무튼 그 응축된 작은 기운을 상단전에 집중시켜라.”

츠즈즈

내가 상단전에 기운을 집중시키자 그제야 천우진은 내게 다가와서 내 이마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말했다.

“집중해라. 이 감각을 다음번에도 떠올리는 거다.”

파앗……!!

그 순간, 상단전 전체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육체와 정신이 동시에 폭발하는 감각이었지만 고통이 아니었고 도리어 깨달음의 해갈(解渴)처럼 환상적인 쾌감이 전신을 넘나들었다. 내가 그 홀황경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연이어서 내 정신 속에서 수많은 선(線)과 면(面)이 교차되는 광경이 보였고, 그 교차되던 수많은 경계가 이윽고 거대한 구(球)의 형태로 변화하는 게 보였다.

쿠구구

나는 그 구체들이 둥둥 떠다니는 걸 보자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였나…….’

봉황이 존재하던 [경계]에 존재하던 그 구체들은 바로 이런 존재들이었던 거구나!

슈슈슉

다음 순간 내 정신이 원래대로 되돌아오자 천우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전수는 끝났다.”

“잠깐만. 한 번만 더 하면 더 알 것 같은데…….”

“미친놈아. 넌 방금 전신의 신력을 상단전에 모아서 한번 폭발시킨 거다. 지금은 힘이 잠시 고갈된 상태니까 쉬기나 해라.”

“윽.”

천우진의 말대로 나는 전신에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고 별 수 없이 축 늘어져서 잠시 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몸이 다 회복되자 천우진이 말했다.

“이제 태양지계로 이동하자. 이동하면서 만일 너를 잡아끄는 방해물이 있다면 방금 전 같은 요령으로 벗어나면 된다.”

나는 그 말에 놀라서 눈썹을 꿈틀거렸다.

“방해물이라고? 적이 있단 말이냐?”

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복희가 탄생한 최초의 신좌. 그곳은 우주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니…… 네가 저번에 실수로 소환했던 그런 괴물들이 여기저기에 들끓고 있겠지.”

“……!!”

“솔직히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서 너한테 기술을 전수한 거다. 이동하는 도중에 차원의 곡면에서 괴물이나 신격들이 너를 강제로 소환할지도 모르고.”

“그렇군…….”

“탈출도 쉽지 않은 선택인 거지.”

슈슉

성큼 걸음을 태양지계로 향하는 천우진의 말에 나는 쉽지 않으리라는 걸 예감했다.

“잘 알아둬. 너는 지금 육체를 따로 남겨둔 영(靈)의 상태라서 온전히 힘을 다 낼 수 없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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