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1권 20화
귀일무극참!
나는 아수라의 한마디를 듣자마자 번득 생각나는 게 있어서 말했다.
“네가 혼연을 갈랐던 그 일격을 말하는 거냐!”
“잘 아는군.”
나는 이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암야참을 전수하면서 귀일무극참 같은 기술을 네가 직접 전수해준 적은 한 번도 없잖아.”
그랬다. 아수라는 내게 무술수련을 시켜주는 내내 암야참만 열심히 가르쳐줬을 뿐 귀일무극참이라는 단어는 한마디도 꺼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귀일무극참이라는 기술의 존재 자체는 알려주었지만 사실 귀일무극참을 어떻게 수련하는지 어떤 기술인지는 제대로 알려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자 아수라는 피식 웃었다.
“암야참도 제대로 못 써서 선검의 도움을 빌려야만 하는 상황인데 내 모든 무예의 정수가 담겨 있는 귀일무극참을 어떻게 가르쳐주냐? 기지도 못하는 주제에 날려고 하면 주화입마에 걸린다고.”
“윽…….”
“그리고 사실 귀일무극참은 네가 암야참을 제대로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가르쳐주기 망설여지는 기술이었다.”
“왜?”
“……저번부터 말했었지. 암야참의 수련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만상검류(萬象劍流) 그 자체라고.”
“그랬었지.”
“왜 내면의 모든 검류를 균일하게 만들어야 하는가? 지금의 너는 그 이유를 알고 있냐?”
“…….”
아수라의 질문에 나는 침묵하며 상당한 시간동안 고민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부족함]을 깨닫기 위해서지. 무류(無流)에 이르게 될 때까지 다듬다 보면 저절로 부족함을 알게 되어 암야를 제대로 전개할 수 있다.”
내 대답에 아수라는 꽤 놀란 듯했다.
“호오, 제법 수련을 했잖아. 못 본 사이에 얼마나 수련한 거냐?”
“삼백 년…….”
“역시. 그럼 선검을 안써도 암야참을 쓸 만 할 텐데…… 아직 중간단계에서 심득이 막혔나보군. 그건 나도 막혔던 단계니까 어쩔 수 없지.”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아수라가 말을 이었다.
“귀일무극참은 사실 암야참을 터득한 후 내가 우연히 발견해낸 파생절기다.”
“파생절기?”
“그래. 정확히는 내가 수련하던 중 만상의 검류를 균일화시키면서 암야참을 얻게 되었는데, 그 균일한 정도가 암야참을 펼칠 때마다 모두 완벽하게 일정하진 않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야참을 시전하는데는 무리가 없었지. 쉽게 설명하자면 100의 완성도가 있을 경우 95에서 99 사이만 달성하면 암야참을 충분히 쓸 수 있었던 거다.”
“흐음.”
“하지만 단 한 순간…… 우연히도 몇천 몇만 번이고 암야참을 펼치다가 완벽(完璧)에 이른 때가 있었다. 모든 기술의 정합성과 [마음], 그리고 의기가 완전하게 일치하여 단 하나의 결(缺)조차 없는 한 순간. 그걸 완벽하게 맞추게 되면 암야참의 위력 자체가 진화하게 된다.”
“……!!”
나는 아수라의 말에서 뭔가를 알아차리고는 말했다.
“그게 바로 귀일무극참이란 건가!”
“그래. 따지고 보면 그냥 제일 모양이 잘 빠진 암야참이라고 생각하면 돼. 네 무량단이 가장 강력한 기본베기인 것처럼 말이지.”
“으음.”
귀일무극참 자체의 원리는 간단한 것 같았다.
‘암야참이 추구하던 이념을 가장 완벽한 기술적 완성도와 심의합일(心意合一)의 경지에서 펼쳐낸 완전한 암야참…….’
하지만 나는 원리는 이해했음에도 잘 납득이 가지 않아서 아수라에게 말했다.
“그걸 지금 나한테 전수해주려는 이유가 뭐지? 어차피 지금 난 일반적인 암야참도 정상적으로 쓸 수 없는데 암야참중에서도 극한의 완성도를 지닌 귀일무극참을 배워봐야 쓸 수가 없잖아.”
“흐음. 이유라…….”
아수라는 하늘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백웅. 첫 번째로 출현했던 곤신 조환룡과 지금 마주친 공손대랑의 실력을 비교하면 어때?”
“……말할 것도 없지. 곤신 조환룡이 열 명 있어도 공손대랑에게 못 이길 거야.”
“그래, 천양지차(天壤之差)다. 나라고 하더라도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이기기 힘든 게 공손대랑이야. 그러면 이들의 실력차이가 우연인 것 같나?”
“…….”
설마.
내가 안 좋은 예감에 인상을 찌푸리자 아수라가 말했다.
“내가 볼 때는 절대 우연이 아니야. 분명히 뒤로 갈수록 더 센 놈이 나오는 식이다.”
“크윽…… 역시 그런 거냐.”
“그래. 이 흐름으로 볼 때 마지막 3승을 거둬야 하는 놈은 틀림없이 지금 네 실력으로는 절대 못 이기는 놈이다. 아니, 이기기는커녕 방금 전처럼 버텨보지도 못할 수준이 분명하다.”
“그게 가능해? 아무리 신역절기의 고수라지만 나를 상대로 그렇게 압도적으로…….”
아수라가 고개를 저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지금의 나라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더 무예의 기량을 발전시키고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다. 억겁의 시간동안 신역절기를 연마하여 궁극의 경지까지 다듬은 놈이 있다면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는 나조차 예측이 되지 않아.”
“말도 안 돼.”
방금 보았던 자연검조차 말도 안 되는 전설상의 경지였고 그런 자연검을 압도적으로 이긴 아수라의 실력은 인간세상의 무림에서는 판단조차 할 수 없는 신급 고수였다. 하지만 아무리 무신의 궁이라지만 그런 아수라조차 하수로 취급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경지가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러자 아수라는 눈을 껌벅이더니 말했다.
“믿든 말든 내 생각엔 그렇다. 그리고 네가 그 정도의 절대고수를 상대하려 한다면 지금 상태로는 안 돼. 최소한 귀일무극참을 어떻게 쓰는지 정도는 알아두어야 얘기가 되겠지.”
“잠깐…… 아수라 너는 다음 시련을 도와주지 않을 셈이냐?”
“누가 안 도와준다고 했냐? 도와주더라도 네가 일격에 살해당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렇지.”
“……!!”
뭐, 뭐라고? 그 정도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기에 내가 경악한 표정을 짓자 아수라가 히죽 웃었다.
“이 경지에 도달해야 보이고 느끼는 게 있어. 나는 내가 앞으로 수천 년간 더 연마하면 어떤 수준에 오를지 대충 알고 있었고, 그걸 미리 가늠하기에 나보다 상위경지의 절대고수가 있다면 어떤 수를 쓸지 예측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그 예측에 따르면 이 무신궁에서 너는 일 초도 못 버틸 가능성이 매우 높아.”
“제기랄…… 믿기가 싫은 얘기인데…….”
“반대로 귀일무극참 정도만 쓸 수 있으면 너는 이기든 지든 그 자와의 전투에서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거다. 어쩌면 초입에서 어정쩡하게 맴돌고 있는 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버티기만 하면 심득(心得)의 단서를 얻는다는 거냐?”
“그래. 네가 상대하게 될 놈은 그런 놈일 테니까.”
“……알았다. 그럼 귀일무극참을 전수해 줘.”
내가 마지못해 결정을 내리자 아수라가 킥킥 웃었다.
“크크.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군.”
“너 같으면 안 그렇겠어? 삼백 년동안 죽을 고생을 다해서 수련했는데 아직도 초보라는 말을 들으면…….”
“모든 이가 그렇지. 무예의 길에는 끝이 없어. 도리어 네가 절세고수라고 자만하지 않고 계속 초심에서 노력하게 해주는 상급자가 있다는 게 좋은 거 아니겠나?”
“…….”
“잡설이 길었군. 그럼 일단 검을 들어 봐.”
스으
나는 아수라의 말대로 검을 들었다.
지잉…….
그와 검을 맞댄 채 가만히 서 있자 아수라가 말했다.
“백웅. 아까 넌 나와 공손대랑을 보며 분명히 의문스럽게 생각했을 거다. 과연 무형의 경지에 도달한 검(劍)이 부딪힌다면 어떤 상황이 생겨날지…….”
“그래.”
“결과는 보다시피 내가 공손대랑에게 암야참을 파해당했지만 귀일무극참으로 재반격하여 끝을 내었다. 그러면 묻겠는데, 신역절기란 곧 [마음]이다. [마음]과 [마음]이 부딪히면 과연 어떤 마음이 더 우세할까.”
“…….”
“귀일무극참에 담긴 내 마음과 염원이 더 강하기 때문에 공손대랑의 신역절기를 꺾은 것이냐? 공손대랑의 의지력이 나보다 약해서 진 건가?”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생각하며 망설이다가 아수라에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다. 신역절기의 강력함이 [마음]의 강함이라는 건 알겠지만…… 신역절기끼리 부딪힐 때 그 마음의 강함을 객관적으로 잴 수가 있는 거냐?”
“크흐흐. 당연히 잴 수가 없지. 그게 바로 신역절기의 난해함이다.”
아수라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의지력과 마음은 관련이 있지만 의지력 그 자체가 마음인 건 아니야. 마음과 생각이 다르듯이 의지와 마음도 다르다. 즉 아무리 필사적인 염원이라 하더라도 그 염원의 강도 자체가 무예의 위력을 올리지는 못한다. 도리어 염원이나 의지력 그 자체로 위력을 올리는 건 초상능력(超上能力)의 영역이다.”
“그런가…… 그러면 염원의 강함이 아니라 무엇이 신역절기의 위력을 결정짓는 거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과율(因果律)이다. 인과율이라고만 뭉뚱거리면 좀 이상하고 당위(當爲)라고 할 수 있겠지.”
“당위?”
아수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지경의 경지에서도 무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최강]의 모습을 의념천주를 이용해 구현화한다. 허나 의념천주에는 한계가 있어서 절대지경의 무학은 그 상상력을 표출하는 데 한계가 있지. 그리고 그 한계는 인과율 때문에 생기는데, 신역절기는 도리어 그 인과율을 이용해서 더욱 위력을 올릴수가 있는 거지.”
“자, 잠깐. 말이 좀 어려운데…… 인과율 때문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
“간단해. 무사시와 전욱이 예전에 싸운 적 있지?”
“그렇지.”
“그 때 무사시는 분명히 [무엇이든 베어 버리는 검]을 절대지경으로 구현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든’이라면 당연히 시공간 뿐만 아니라 신마저도 베어 버리려 생각했겠지. 그러나 우주를 주름잡는 신격인 전욱은 무사시의 의념과 소망을 모두 무시해 버릴 수 있었는데 왜 무사시의 신살참은 전욱을 벨 수 없었겠나?”
“그거야 신이라서 엄청 쎄니까…….”
“단순히 강함의 비교 뿐만이 아니야. 무사시의 염원이 이 세계에서 당위(當爲)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인 거지.”
“……?”
“[옛 지배자]라는 존재는 이른바 [꿈의 조각]. 이 세상 모든 존재가 그렇겠지만 그 조각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존재들이기에 그들이 태어나서 숨쉬며 존재하는 그 자체가 인과율의 밀도가 엄청나다. 그 어떠한 법칙도 필요 없이 자존할 수 있는 혼돈이기에 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어마어마하지. 굳이 막거나 피하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필멸자는 그들을 쓰러뜨릴 당위성을 부여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
아수라의 말이 이어졌다.
“이 굴레의 모든 것이 법칙이며 당위를 요구한다. 즉…… 적합한 결과를 내놓기 위해서는 적절한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 무사시의 절대지경은 자신의 결과를 먼저 내놓았지만 그 원인을 제시하는 게 부족했다고 볼 수 있어. 그놈 뿐만이 아니라 모든 절대지경의 고수들이 신을 상대로는 신살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가 없는 거다.”
“원인…….”
나는 그 말을 중얼거리다가 뭔가를 알아채곤 말했다.
“신역절기라는 건 인과율을 이용해서 그 원인과 근거를 만들어내는 거란 말이냐?”
“단순하게 보자면 그렇지. 좀 더 파고들면 복잡하다만…… 아무튼, 신역절기란 인과율과 당위성을 떼놓고는 얘기를 할 수 없어. 신살을 할 수 있는 원리도 근본적으로는 거기서 출발하지.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무슨 문제?”
이어진 아수라의 말은 약간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마음]과 [마음]이 자기만의 이유를 가지고 부딪혔을 때 단순히 어느 쪽의 당위성이 더 높다고 비교가 가능한가?”
“…….”
“불가능한 일이지. 달리 말하자면 [마음]으로 [마음]을 베는 게 모순 아닌가?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둘 다 형체가 존재하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존재인데 어떻게 그게 성립을 할 수 있냐는 것이지.”
“모순이지만 방금 너는 그렇게 했잖아.”
“그래. 여기서부터 바로 태허(太虛)가 있어야 설명이 가능한 거다.”
스으…….
아수라의 검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가 그 검과 대극을 맞추며 신중하게 움직이자 아수라의 말이 이어졌다.
“귀일무극참은 네가 인과율을 이용하는 걸 넘어서서 돌파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시도할 수 있는 것…… 태허를 느껴라.”
“어떻게 느끼지?”
이어진 아수라의 말에 나는 당황함을 느꼈다.
“지금부터 너를 암야참으로 베겠다. 확실히 태허를 느낀 후 귀일무극참으로 되치기를 해서 내게 반격을 할 수 있으면 되는 거다.”
“뭐……?! 귀일무극참이 뭔지도 잘 감이 안 오는데 그게 되냐고!”
“안 되겠냐?”
“그래! 내가 무슨 천재도 아니고…….”
“안 되면 죽으면 된다.”
“…….”
아수라의 눈에서 시꺼먼 안광이 흘러나왔다.
“귀일무극참부터는 신중의 신을 벨 수 있는 진정한 인외(人外)의 경지다. 재능도 노력도 영향을 주지 못하는 영역이다. 너는 지금 당장 깨달을 수도 있고 일억년 후에 깨달을 수도 있어! 중요한 건 너의 절실함이니, 이번 일합에서 네 절실함이 충분한지를 알고싶다.”
“……!!”
“자, 준비해라. 간다.”
나는 아수라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귀일무극참부터는 아수라가 이끌어줘서 깨달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천재중의 천재조차 억겁이 지나도 얻지못할 수도 있는 영역! 그 영역을 얻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자신의 손으로 죽여주겠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한 후 말했다.
“알았다.”
각오를 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