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1권 19화
설마 아수라가 나타날 줄이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출현이었기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왜?’
나는 적지않게 당황했지만 잠시 후 이성적인 사고회로가 돌아가자 뭔가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고는 내 앞에 서 있는 아수라에게 말했다.
“설마 사공린이 말했던 것처럼…….”
“그런 거지.”
아수라는 내 쪽을 뒤돌아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대웅제국 대다수의 영혼들은 네가 만든 대웅제국지검의 균열로 탈출했지만 몇몇은 남기로 했지. 사공린이 했던 것처럼 이 악몽 같은 시련에서 널 돕기 위해서는 몇 명은 남아 있어야 했거든. 그중 하나가 바로 나다.”
“……!!”
역시!
나는 상황을 이해했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어서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지금까지 말을 걸거나 접촉하지 않았던 이유는 뭐냐? 진작 말을 걸었으면 창조의 권능으로 지금처럼 몸을 만들어줬을…….”
“브라흐마.”
아수라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놈이 네게 호의를 잔뜩 베풀었지만, 야심을 꺼뜨린 게 아니란 건 알고 있겠지. 만일에 여차할 경우 그놈이 네가 아닌 동료를 인질로 잡았다면 큰일 났을 거다.”
“으음……!!”
“네가 그놈을 퇴장시킨 건 잘한 선택이었어.”
나는 아수라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군.’
브라흐마가 수틀리면 내 동료를 인질로 잡거나 저주 같은 걸 걸어서 나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 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수라는 그것까지 감안해서 끝까지 상황을 지켜본 것이고 브라흐마가 퇴장한 지금이야말로 안전한 시기라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아수라가 훗 하고 웃으며 검을 천천히 들어 올린 채 앞으로 걸어갔다.
“잠깐 앉아서 쉬고 있어라. 이번 싸움은 내 싸움이니까.”
“…….”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내 싸움’이라고 한 게 무슨 의미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안감은 들지 않았기에 일단 신력을 써서 방금 전 입었던 부상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수라와 공손대랑의 거리가 딱 일 장이 되었다. 아수라가 자신 앞까지 걸어오게 내버려 두었던 공손대랑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암야참의 원래 주인인가?”
그 말에 아수라는 의외라는 듯 공손대랑을 쳐다보며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
“방금의 그 일격은 저 백웅이 보여주었던 암야참과 같으면서 달랐기 때문이다. 선검에 의지하지 않는데 더욱 강한 기술이라면 그대가 바로 무예의 종주일 것이다.”
“맞다. 암야참을 제대로 쓰면 널 한 방에 죽일 수 있지.”
아수라는 히죽하고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헌데 널 단숨에 끝장내버리기엔 뭔가 아쉽군. 나하고도 초식이나 겨뤄보지 않겠나?”
공손대랑은 아수라의 도발적인 말에도 감정 하나 변하지 않은 말투로 응수했다.
“기세가 좋구나. 원한다면 해 주마.”
츠즈즈
다음 순간 공손대랑의 손에서 아까 같은 광검(光劍)이 빛의 입자가 모이듯이 형성되었다.
‘저게 자연검 최종절기인 유성검……?’
발산형 검기가 아니라 그냥 광검으로도 쓸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살면서 저런 광검의 무공을 본 일이 없었기에 재차 놀랐고, 그런 내 기색을 알아챈 듯 아수라가 여전히 앞으로 시선을 응시한 채 말했다.
“백웅. 저 빛의 검이 강해보이냐?”
갑자기 아수라가 질문해오자 나는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방금 전에 내가 유성검에 당했는데 어떻게 약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냐고.”
“크큭. 기껏 절대지경을 벗어날 단서를 잡아놓고 또다시 굴레에 갇히려 하는군.”
“뭐?”
“저 녀석이 쓰던 나무막대기와 빛의 검은 형태의 차이다. 그러면 안에 들어가 있는 힘도 변했겠냐?”
“……? 당연히 그렇지 않냐.”
그러니까 지금까지 자연검을 잘 막아내고 있다가 유성검에는 손도 못 쓰고 패배한 거잖아.
저 빛의 검인 유성검이 훨씬 더 강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뻔한 얘기를 하는 아수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내가 멍해져 있자 아수라는 고개를 저었다.
“본질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그래서 넌 아직 신역의 초입을 벗어날 수 없는 거다.”
“무슨 소리야? 이해가 안 되는데…….”
“뭐, 보라고. 이해가 안 된다면 그 눈에 이 대결을 눈에 담아놓으면 나중에라도 알 수 있을 테니까.”
스으으
아수라는 가장 평범한 검술의 중단세를 취했다. 특정문파의 기수식이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잘 잡은 자세였다. 그리고 아수라는 이윽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더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검과 무게중심을 좀 더 아래로 내리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장내의 공기가 변하는 듯했다.
유성검을 꺼내든 채 아수라의 움직임을 유심히 바라보던 공손대랑이 이윽고 말했다.
“간다.”
슈웅
그와 동시에 공손대랑은 순식간에 아수라의 지근거리까지 와서 그의 목을 베고 있었다. 나는 그 경이로운 움직임을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저…… 저거다. 대체 얼마나 빨리 움직였는지 도저히 감지조차 되지 않아. 정신을 차려보면 무조건 반 호흡은 뺏겨 있어. 저건 대체 무슨 신법이지?’
방금 전 붙어봤기에 공손대랑의 저 수법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었다. 의념천주를 이용해서 간신히 반응은 가능했지만 마치 뇌신지혼을 전력으로 펼치는 고수와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아수라라고 해도 저 공손대랑의 신법에 이어지는 쾌검을 쉽게 받아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까앙!
그러나 아수라는 마치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공손대랑의 검로(劍路)에 미리 검을 갖다 대고 있었고 공손대랑은 전혀 이득을 볼 수 없었다. 공손대랑의 검기가 뱀의 혓바닥처럼 낼름거리며 순식간에 수백 개의 변화를 파생시켰지만, 아수라는 그것마저도 예상했다는 듯 변화에 맞춰서 도리어 역공을 가하면서 빠르면서도 정밀한 검격(劍擊)을 이어나갔다.
채앵! 챙! 챙!!
요란하게 검명(劍鳴)이 울리면서 아수라의 검과 공손대랑의 광검이 찰나지간에 수십 개나 되는 번갯불을 주변에 만들어내었다. 실상은 두 절대고수의 검이 너무나 빨라서 생명체의 눈에는 아예 비치지도 않을 빠르기였으며 동시에 나는 그들의 검술 대결이 얼마나 삼엄한지를 깨닫고는 눈을 부릅떴다.
‘의념(意念)의 허실(虛實)이 너무 복잡해……!!’
도대체 한 초식에 수 싸움과 심리전이 몇 개나 들어가 있는 것인가? 본디 나라면 필요 이상의 수 싸움을 하지 않고 귀찮다 싶으면 그냥 손해를 약간 보더라도 정직하게 힘으로 밀어 버릴 때가 많았는데, 아수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공손대랑의 복잡하면서도 기경한 공손검법의 검로에 고스란히 응해주면서 하나하나의 심리전에서 하나도 지지 않으려 드는 것이다.
실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말로 하면 쉽지만 저 말도 안 되는 검속이 이어지는 동안에 수십만 개 이상의 변화의 수를 모두 예상하고 그 수에 담겨 있는 상대의 심리를 모두 간파해야 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짓을 한다고 하면 지상의 모든 고수들은 꿈꾸고 앉았다며 비웃기나 할 것이다. 워낙 현실성이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수라는 해내고 있었다. 공손대랑의 파죽지세 같은 공손검법에 단 한 걸음도 밀리지 않은 채 공손대랑의 검이 자신의 영역 근처에 한끝도 들어오지 못하게끔 완벽하게 방어해내고 있는 것이다.
공손대랑 또한 놀란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쪽 손에 또 하나의 광검을 만들어내더니 중얼거렸다.
“이건 어떻겠느냐?”
파파파팟
쌍검술로 전환하자 공손대랑의 공손검법은 두 배나 되는 변화의 수를 가지게 되었다. 공손대랑은 쌍검술 또한 명인의 경지인지 두 개의 손에서 펼쳐지는 공손검법은 전혀 서로의 발목을 잡지 않고 절세검법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구름이 피어오르는 듯한 검영(劍影) 속에서 아수라의 전신은 순식간에 난도질당할 것처럼 보였다.
그 찰나 - 아수라가 씩 웃었다.
“별거 없는데?”
타타타탕
뭔가 격렬하게 튕겨 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아수라의 일검(一劍)이 구름 같은 검영을 꿰뚫고 공손대랑의 목젖을 찔렀다! 단숨에 치명상을 입은 듯한 공손대랑이었지만 이내 그것이 분영이었는지 그녀의 신형은 삼 장 밖에 나타나 있었다.
주륵…….
하지만 공손대랑의 어깻죽지에는 길게 스친 검상이 나 있었다. 아수라의 일검을 피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는 증거였다.
나는 그 대결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챘다.
‘…… 아수라는 순식간에 의념으로 무기를 4번이나 바꿨다……!!’
처음에는 도(刀)를 써서 공손검법의 예봉(銳峰)을 쳐 내었고 그다음에는 짧은 차크람이 만들어져서 구름의 기세를 갈랐으며 삼 초째에는 장법(掌法)으로 공손대랑의 가슴을 때렸다. 그리고 장법으로 공격한 순간 공손대랑은 장력의 중심을 검으로 갈라서 반격하려 했으나 아수라는 그 반격에 재반격으로 재차 검공을 전개하여 공손대랑의 헛점을 찔렀고, 공손대랑은 그것까지는 재반격하지 못하고 손해를 보고 만 것이다.
설마 그 찰나에 의념을 이용해 무기를 교체하면서 신역에 도달한 적의 헛점을 정확히 찌를 수 있다니.
게다가 내 생각대로라면 아수라가 방금 전개한 무기와 무공들의 정체는 확실히 아수라만의 독문무예였다.
‘적멸무극을 구성하는 6개의 무공!’
아마 자령환수도에 이어 비천원기영옥을 썼을 것이고 삼초째에는 월아영상패룡파를 썼으리라. 그리고 네 번째에는 폭광누멸검을 이용해 확실한 반격을 노렸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신기(神技)!
그리고 지금의 이 대결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검기(劍技)…… 순수한 기술의 수준에 있어서 아수라가 공손대랑보다 몇 수는 위에 있다!’
공손대랑이 발휘할 수 있는 공손검법의 모든 수법과 경우의 수는 아수라의 기술에 원천차단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아무리 공손검법이 변화무쌍하고 현란하더라도 무려 여섯 개의 절세무공을 모두 대성하고도 모자라 적멸무극까지 성취했다가 다 잊어버리기까지 한 아수라에 비하면 무조건 딸리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듯 공손대랑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너는 무신백좌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나 극고한 경지를 이루었단 말인가?”
그러자 아수라는 약간 비웃음을 머금었다.
“듣기 싫은 소리군. 너희가 뭐 그리 잘났길래 무예의 극한을 너희만 이룰 수 있다 생각하는 거냐? 굳이 무신(武神)의 도움 따위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추구할 수 있어.”
“…….”
“그보다 백웅. 방금 전 대결에서 알아차렸냐?”
갑자기 아수라가 내게 질문하자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반문했다.
“뭐…… 뭐를 알아채?”
“너를 한방에 쓰러뜨린 유성검을 상대로 순식간에 일천 초식이나 겨뤘잖아. 그런데 너는 왜 한방에 쓰러졌고 나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을까?”
“…….”
그러고 보니 그렇네?
내가 할 말을 잃자 아수라가 말했다.
“나무막대기든 빛의 검이든 그 안에 [마음]이 담겨 있으면 외형은 무의미하다는 거 아니냐. 저 빛의 검은 강력한 힘이 응축되어서 빛의 검인 게 아니라 단순히 공손대랑이 쓰기 편한 형태일 뿐이라는 거지.”
“……!!”
“나무막대기일 때와 지금을 비교할 때 공손대랑의 공격력은 달라지지 않았어. 이해했냐고.”
뭐라고?!
하지만 나는 아수라의 말이 납득이 가지 않아서 크게 외쳤다.
“말도 안 돼!! 아까 날 쓰러뜨린 유성검의 위력은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
“신역에 도달한 기술의 발현은 절대지경 의념천주가 의념을 구현하는 것과는 좀 달라. 아니, 어쩌면 완전히 다른 수준이지. 너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역절기를 상대하면 힘들어.”
“……?”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내가 당혹해하고 있을 때 공손대랑이 입을 열었다.
“그 아해에게 신역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군. 허나 신역이란 그런 설명 한두 마디로 제대로 경계를 뚫을 수 없는 경지임을 그대 또한 알고 있지 않은가?”
아수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 이 녀석은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이미 신역의 절기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거든. 요행이든 뭐든 한 번 쓸 수 있게만 되면 괴물이 될지도 몰라.”
“…….”
“자, 그러면 이제 끝을 낼 시간이다.”
저벅…….
아수라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눈에서 시꺼먼 안광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암야참이 뭔지 보여주지.”
진짜 암야참……!!
아수라가 처음으로 발검(拔劍)의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그 발검의 자세는 마치 아까 공손대랑이 자세를 잡았던 것처럼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 무력한 자연체처럼 보였다. 심지어 공손대랑에게서 무형의 기세를 느꼈던 나도 지금의 아수라에게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오싹
그 순간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
아수라의 무형(無形)은 지금의 나로서도 도저히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경지에 이르러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공손대랑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허울뿐이던 빛의 검을 두 개에서 한 개로 줄였고, 줄어든 빛의 검 또한 강대한 기세보다는 한없이 단단한 바위처럼 힘을 꾹 눌러 응축하고 있었다. 공손대랑의 자연체 또한 검사로서 극한의 경지에 이르러있다는 증명이었다.
‘무형과 무형이 부딪히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서로 부딪히지 못하고 통과하게 되는 것인가?
나는 그게 못내 궁금해서 뚫어져라 두 절대고수들의 대결을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없는 긴장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먼저 움직인 것은 바로 아수라였다.
암야참(暗夜斬)
새벽을 가르는 듯한 어둠의 선(線) 한 줄기가 공손대랑의 신형을 좌에서 우로 길게 그어 베었다. 공손대랑의 몸뚱이가 그대로 반토막날 것 같았지만 그 순간 암야참의 선을 밀어내듯이 그녀가 뿜어낸 광참(光斬)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아수라에게 반격을 해왔다.
츠아아아……!!
저것이 바로 공손대랑이 전력을 다한 유성검(流星劍)!
자연검을 수련한 끝에 도달한 신역절기는 마치 빛 속에 유성이 떨어지는 듯한 가공할 위력을 담은 채 천지사방을 삽시간에 빛으로 물들였고, 나는 유성검의 범위에 나 또한 들어가게 되자 아까처럼 모든 의지가 제압당한 채 내 몸이 수백만 조각으로 쪼개지듯이 베이는 착각이 들었다.
다시금 유성검을 느낀 나는 의혹과 불신이 치솟아 올랐다.
이건 정녕 말도 안 되는 신화적인 검술이다.
암야참 또한 이미 유성검의 광참에 소멸당한 것 같다.
이런 걸 정말 아수라가 이겨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의혹이 치솟아 오르던 바로 그때, 아수라의 나직한 한마디가 들려오는 듯했다.
“귀일무극참(歸一無極斬).”
쩌억
대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세계를 빛으로 메우고 있던 유성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고, 그 자리에는 서서히 자신의 검을 회수하는 아수라의 뒷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공손대랑은 저만치 삼 장 밖의 나무등걸 밑에 기대어 있었는데, 그녀의 가슴팍에서 골반까지 사선을 그린 거대한 검상(劍傷)이야말로 이번 승부의 승패를 명확히 말해주고 있었다.
일 초 만에 승부가 나 버렸다.
“…….”
문제는 방금 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 현란한 검술대결도, 빛의 속도보다 빨라 보이는 격전도 전부 감지할 수 있었던 나였지만 어째서 귀일무극참이 발현된 순간 공손대랑의 유성검이 파해되었는지는 그 과정을 알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번쩍하니까 모든 게 끝나 있었다는 것밖에 알 수 없었고, 심지어 귀일무극참이 언제 어떻게 펼쳐졌는지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파슛…….
다만 아수라 또한 멀쩡하지는 못했는지 그의 팔뚝에는 큰 상처가 나 있었다. 작은 피분수를 내는 팔뚝의 부상을 보던 아수라는 물끄러미 자신의 상처를 보더니 말했다.
“꽤 하는구나. 마지막에 심의(心意)가 결(缺)까지 다 맞았다면 아마 같이 죽었을 것 같군.”
쿨룩……!!
아수라의 말에 공손대랑은 피가 섞인 기침을 크게 토해내었다. 그녀는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끝까지 잔잔하고 무표정한 눈으로 승자인 아수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백좌였다면 좋았을 것을…….”
“왜?”
“자주…… 대련하고 싶다.”
“…….”
아수라는 순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크크크…… 하하하하!!”
아수라는 그만 호쾌하게 웃고 말았다. 왜인지 몰라도 그의 웃음에는 별다른 원망이나 분노가 들어있지 않았다.
“나도 그랬으면 좋았겠군! 으하하하.”
“…….”
공손대랑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가 귀일무극참에 최후를 맞이하자 아수라는 다가가서 그녀의 눈을 감겨주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무신이란 놈이 싫은 것이다…….”
휴, 이제 끝난 건가?
‘이제 수습하고 마지막 3승을 하러 가야겠군.’
아수라가 도와주면 마지막 전투도 쉽겠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아수라에게 다가갔다.
“괜찮냐? 그 부상을 치료해 주…….”
번쩍!
그 순간이었다. 아수라의 검이 마치 번개처럼 날아들더니 나는 예상치 못하게 가슴팍에 일검을 맞고 말았다.
촤악
“크헉?!”
예상치 못했던 습격에 내가 당황하자 아수라가 냉정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백웅. 아무래도 안 되겠다.”
“뭐?”
“자세 잡아.”
이어진 아수라의 말에 나는 동공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귀일무극참을 배우든가 내 손에 죽든가 둘 중 하나로 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