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1권 16화
나는 공손대랑의 무공인 공손검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과거 공손검보(公孫劍普)라는 절세비급을 강호에 남긴 존재였으며 그 공손검보는 후대에 제갈유룡이 수습하여 연구하였는데, 그 공손검보에서 제갈유룡이 공손검법을 복원하여 자신이 익혔던 것이다. 그런데 그 공손검법은 원래 존재하던 원류와는 달리 후반 12결을 공손대랑의 뜻대로 고친 것이었으며 좀 더 실전적이고 강력한 무공으로 변모해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내 어깻죽지의 부상을 지혈하며 말했다.
“공손대랑! 당신은 어째서 공손검법의 후반 12결을 고친 것입니까?”
“…….”
공손대랑은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무심함과 동시에 심유한 현기가 떠돌고 있어서 감정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대답을 하지 않자 나는 검을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단순히 실전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랬던 것입니까? 아니면…….”
“아니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무적삼검을 없애서 천마(天魔)를 봉인하기 위해서였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공손검법을 많이 수련한 인간 중 하나로서 나는 이미 잠재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본디 공손검법을 터득하기만 하던 시절에는 12결이 실전성을 강화시킨 거라고만 생각했었지만, 익히면 익힐수록 이 변화한 공손검법은 본디 공손검법이 갖고 있던 주술(呪術)적인 요소를 깡그리 없앤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부러 실전성을 강화시킨 게 아니라 무공이 아닌 제의(祭儀)로서의 공손검법을 없앴기에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이리라.
특히 최후반에 존재하던 무적삼검(無敵三劍)을 일부러 빼 버린 것은 고의성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는 긴가민가했었지만 이제 본인에게서 확인을 하고싶은 마음에 질문을 한 것이었다.
한동안 침묵하던 공손대랑이 말했다.
“아해야. 그 사실을 확인받고 싶으냐?”
“아닙니까?”
“네 말대로다. 나는 경지가 극한에 도달하자 황제(黃帝)의 영향력을 인식할 수 있게 되어 공손가의 검술에서 신이라는 존재를 지워 버리고 싶었다.”
순순히 인정한 공손대랑은 문득 조그마한 풀잎을 손가락 사이에 집어서 그 풀잎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하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것만은 아니라는 건……?”
“……너에게는 지금 이 풀잎이 어떻게 보이느냐?”
나는 뜬금없는 공손대랑의 물음에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있는 풀잎을 쳐다보았다. 혹시나 저기에 검기(劍氣)나 검강(劍罡)이 담겨 있나 살펴보았지만, 그 어떠한 기(氣)도 담겨 있지 않았다. 심지어 의념조차 작용하지 않았기에 누가 보아도 평범한 풀잎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물음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조심스레 대답했다.
“그…… 그냥 풀 같습니다.”
“풀이지…….”
슈욱
다음 순간, 나는 방금 전 관통당했던 어깨의 반대쪽 어깨가 갑자기 따끔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 어깨에 있던 혈(穴)을 당해서 움직임이 마비된 것을 알아챘다.
덜컥
갑자기 어깨가 빠져 버리고 그쪽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자 나는 대경(大驚)했다.
“……!!”
내 팔에는 어느새 공손대랑이 들고 있던 풀잎이 마치 침(針)처럼 꽂혀 있었던 것이다!
‘도, 도대체 언제!’
나는 공손대랑과 대화하면서도 생사대적과 겨룰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총이나 레이저포를 쏘더라도 순식간에 반응해서 의념천주로 걷어낼 수 있을 만큼 철두철미하게 전투의 감각이 단련되어있는 것이다. 절대지경의 당산이 만천화우를 쓰거나 초고속 암기술을 쓰더라도 무조건 피하거나 막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방금 전 공손대랑의 한 수는 피하거나 막기는커녕 내가 인지조차 못 한 상태로 당해 버렸다!
‘시간조작 권능?! 시간정지? 아, 아냐…… 아무리 신력이 최소화되는 공간이라 하더라도 시간을 조종하면 나는 무조건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어! 이건 대체 무슨…….’
생각지도 못한 한 수였기에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공손대랑이 입을 열었다.
“무신궁에서 무신을 만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방금 전의 내 공격을 피하거나 막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
“너는 신역(神域)에 발을 들였으나 진정한 의미로 그게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였노라. 그것은 종이 한 장의
차이이지만, 동시에 만장단애보다 그 간극이 넓은 것, 그야말로 천양지차…….”
스윽
공손대랑은 또다시 풀잎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고 있었다. 저건 무공은커녕 그저 간단한 동작에 불과했는데도 나는 그 행동 한 번에 움찔하며 크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방금 전 내가 당했던 것은 그 의미가 막대했기 때문이다.
‘내가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풀잎의 공격…… 만일 그게 심장이나 급소를 꿰뚫었다면…….’
나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공손대랑은…… 마음만 먹으면…… 일 초식으로 절대지경 고수를 절명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겪어왔던 무림의 전투능력 수준을 고려하면 진정으로 말도 되지 않았다. 비록 육체적 외상이 적다 하더라도 공손대랑은 권능을 쓰지 않았기에 더욱 무서웠다.
내가 두려운 눈으로 공손대랑을 쳐다보자 그녀가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동빈은 네게 심어검을 가르친 적이 있다 하였다. 그때의 기억이 나느냐?”
“……기억납니다.”
“여동빈은 무엇이 심어검이라 하였는가?”
나는 그녀의 말에 주의깊게 생각하다가 말했다.
“정확히는 심어검이 아니라 심검활인(心劍活人)을 이야기했는데 나는 심어검과 심검활인이 같은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여동빈은 내 길이 직선은 아니라 했지만, 그 또한 길이라 하였고…… 그리고…….”
뭐라고 했었지?
나는 더듬거리면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왜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 기억이 안 나는 거지?
내가 끙끙거리면서 당황하는데도 공손대랑은 나를 공격하지 않고 그저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고,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생각이 나서 말했다.
“심어검을 얻고자 한다면 심어검의 실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만이 끝은 아닐 터.”
“물론입니다. 마음(心)이야말로 모든 절기를 관통하는 단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
“그리고 심어검을 보는 능력을 키우려고 심수력이랑 엄청나게 대련도 많이 해서 심류를 읽어서 후발선제하려고 노력했고…….”
공손대랑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눈을 감은 채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건 여동빈이 찾아낸 길. 네가 그 길을 따라가려는 이유는 무엇이느냐?”
“네?”
나는 뜻밖의 질문에 약간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이 길이 맞으니까 가는 건데 대체 왜 질문하는 거지?
그러나 이 질문에도 현기가 담겨 있었기에 뭔가 이유가 있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질문 또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대답했다.47
“그야 월공투계를 얻게 되면 심어검을 보는 능력을 얻게 되고 자연스레 심어검도 얻게 되지 않습니까.”
“…….”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겁니까.”
“나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네 마음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을 뿐.”
간단하게 대꾸한 공손대랑은 풀잎을 끼운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너는 이미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에도 신역절기를 자연스럽게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알 것 같구나. 어디 한 번 겨뤄보자꾸나.”
“……좋습니다.”
나는 빠르게 내공과 신력으로 내 몸을 치유해서 방금 공손대랑에게 당한 부상을 되돌리고는 전투태세에 들어가려 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이런데도 내게 예고 없이 기습을 가할 순 없을 것이다!’
설령 광속이라 하더라도 의념천주로 미리 전조만 알 수 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상대의 영문모를 공격에 당황하는 건 한 번으로 족해!
그러나 내가 투지를 불태우려 하고 있을 때 나는 뜻밖의 상황에 당황하고 말았다.
“으음?!”
회복이 안 돼!
정확히는 내공으로 지혈까지는 되었지만 본디 신력으로 아무리 거대한 부상이라도 순식간에 회복했었던 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신력이 도리어 내공의 치유력을 방해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여전히 어깻죽지가 따끔따끔했고 간신히 내공으로 혈도제압을 풀어야만 했다.
내가 당황하는 걸 본 공손대랑이 말했다.
“무신궁에서는 모두가 기본적으로 신살(神殺)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련을 하지. 그리고 이곳에서는 인과율의 제약이 없다.”
“…….”
“현실에서 사도(邪道)들이 쓰던 초상능력은 하나도 쓸 수 없을 터이다. 그것이 따로 기술로서 연마된 경우라면 모를까.”
“그렇군요.”
“자, 이 풀잎을 잘 보거라.”
흔들…….
공손대랑이 들고 있던 풀잎의 끝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나는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공손대랑의 기척을 주시했고, 다음 순간 공손대랑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이 풀잎에 마음이 담겨 있나니.”
퓨웅!
퍼엉
“크하아아악.”
나는 다음 순간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고 말았다. 왜냐하면 가슴팍이 뜨거워지면서 울혈이 잔뜩 치밀어올랐으며, 내가 내장 중에서도 가슴을 정통으로 당했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 부들부들 떨었다.
“시…… 심장이…….”
터졌어……!!
그 순간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내 모든 고수의 감각과 경계, 호신강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다 뚫고 심장만 터뜨렸다고?! 세상에 이런 무공이 있었단 말인가!
온갖 고통을 의지력으로 다 버텼지만, 과연 심장이 터진 것이 의지력으로 해결이 되는 상황인가? 그것도 신력도 못 쓰는 상황에서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나 있는 것일까?
‘아냐! 언제부터 신력에 그렇게 의존했다고…… 그냥…… 심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찰나에 나는 머리를 팽팽 돌리면서 심장이 전신의 혈류를 순환시키고 산소를 공급하는 능력이 있다는 의학지식을 떠올렸다. 그리고 신력은 쓸 수 없지만 무진장한 내공을 이용해서 잠시 기(氣)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눈을 크게 부릅떴다.
‘저번에 가상의 팔을 만들었던 것처럼……!!’
의념천주
위심(僞心)!
두근……!!
의념천주를 이용해서 의념으로 내 심장이 있는 곳에 심장덩어리처럼 생긴 것을 염상한 순간, 마치 그곳에 실제로 심장이 있는 것처럼 피가 순환을 재시작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산소가 전신에 공급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평소에 숨을 쉬며 유지하던 걸음의 박자를 생각하자 사지의 말단에 힘이 덜 들어가긴 했지만, 신체의 기능도 여전히 이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오래는 못 버틴다.
나는 이를 꽉 물면서 울혈을 간신히 참았다. 그러고는 눈을 번득였다.
‘심장이 터진 채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무량단!
그 순간 반사적으로 무심의 경지에서 최선의 일격인 무량단이 날아갔다. 그것도 그냥 떨친 게 아니라 멸혼보로 단숨에 지근거리에 접근해서 횡검으로 지른 것이었기에 이 일격은 백련교주라도 단숨에 죽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내 생애에 이보다 더 빠른 쾌검(快劍)은 아마 달리 없었으리라.
탁.
그러나 이어진 상황은 내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횡검으로 날아들던 무량단을 마치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공손대랑이 그 검의 궤적에 자신의 손가락을 갖다 대었고, 그 손가락에 닿는 순간 내 검은 그대로 멈춰 버리고 만 것이다. 마치 모든 물리력이나 의념이 다 흡수당하는 기분이었다.
“뭣…….”
이게 대체 무슨…….
나는 당황하면서도 빠르게 검을 재차 휘둘러 공손대랑을 베어 버리려 했으나 마치 자석처럼 딱 달라붙기라도 하듯 공손대랑의 손가락은 내 검날이 붙은 것처럼 움직이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누가 봐도 실력 차가 어마어마한 고수가 갖고 노는 것이었기에 내가 눈을 부릅뜨고 있을 때 공손대랑이 나직이 말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였느냐?”
“뭘 깨달으란 말입니까.”
“여동빈은 너를 봐주었지만 나는 봐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슨…… 헉.”
그 순간 나는 뭔가를 깨닫고는 덜컥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시…… 심어검.”
“이제야 깨달았구나.”
“…….”
틀림없다.
과거 여동빈이 적수공권인 것처럼 나를 맨주먹으로 상대하는 척했지만 사실 그 맨손에는 심어검이 깃들어있었던 한 번의 대련! 그때의 대련처럼 지금 공손대랑의 손가락은 절세가인의 섬섬옥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설의 명검조차 뛰어넘는 심어검 그 자체가 깃들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동빈 때와는 달리 나는 손도 쓰지 못할 정도로 처참하게 당하고 있었으니, 공손대랑은 그게 봐주고 안 봐주고의 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방금 내 심장을 관통했던 그 풀잎 또한…… 심어검.’
심어검의 위력이 이 정도였다고?
나는 정신이 텅 비는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떠한 무공을 쓰더라도 가볍게 당해 버릴 것만 같은 압도적인 태산(泰山)을 눈앞에 둔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그렇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수백 가지의 절세무공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으며 저 심어검과 같은 차원에 이르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무용지물이라는 게 실감이 난 것이다.
으득
‘어쩌라는 거야!! 그렇다고 여기서 무력하게 포기할 텐가!!’
이렇게 끝낼 거면 지난 수백 년의 수련은 대체 뭐였단 말인가!
아무리 신역고수와의 실력차가 나더라도 나는 포기할 수 없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수단을 사용했다.
쿠구구구……!!
치잉
갑자기 내 전신에서 가공할 만한 뇌령(雷靈)이 폭출하며 강대한 기운이 내 전신을 메우자 손가락으로 내 검을 막고 있던 공손대랑의 표정이 약간 달라졌다. 그녀는 조금 놀랐다는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으며 나는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신지혼(四神之魂).”
구궁파천뢰의 기운이여, 윤회하라!!!!
번쩍
그 짧은 시간동안 나는 빠르게 사신지혼을 윤회시켰고 순식간에 뇌신지혼의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뇌신지혼으로 변해 뇌인(雷人)이 되자 내 검날 또한 번개의 칼날이 되어 번쩍거리며 불꽃을 튀겼고, 공손대랑은 아무 표정변화 없이 손가락을 갖다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다음 순간 번개의 속도로 빠르게 움직여서 공손대랑의 주변을 회전했다.
슈슈슛 -
피피피핑!!
콰과광
뇌속(雷速)으로 검격을 순식간에 수만 번이나 때려 넣고 있었지만 공손대랑은 여전히 한 걸음도 안 움직인 채 지검(指劍)만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유효타를 먹이기는커녕 저 손가락에 생채기조차 낼 수 없었기에 이를 악물었다.
‘역시 뇌신지혼만으로는 상대가 안 될 것 같았다.’
이대로면 안 될 테니 이번에는 뇌신지혼을 강화시키겠다!!
쿠르르릉
내가 뇌신지혼을 강화시켜서 과거에 위험한 고비를 넘겼던 것마저 알고 있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번 공격이 안 먹히면 그 어떤 공격도 안 먹힌다는 절대고수의 감각이 강하게 내게 경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조차도 공손대랑이 나를 봐주는 중이며 이번 공세가 끝나는 대로 반격이 들어올 게 분명하다.
뇌음과 함께 내 번개의 몸뚱이가 빠르게 다른 차원으로 진화하기 시작할 때였다.
멀리서 내 변화를 지켜보던 공손대랑이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공손가(公孫家)의 검술을 가장 깊은 경지로 익힌 자로서 무적삼검 또한 연마를 오래 했었다. 그리고 무적삼검을 익히게 되며 그 하나하나의 초식에 담겨 있는 진정한 의미도 깨달았는데, 그 의미가 반무공(反武功)임을 알게 되었느니라.”
[…….]
“반무공은 무공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과 같은 것. 자기자신을 찌를 수 있는 모순의 칼날이다. 그렇기에 나는 신의 흔적을 지우기 전에 충분히 연구를 해야 했으며 그 심득을 얻은 후에야 완전히 지울 수가 있었다.
쿠르르릉
내가 그 말을 무시하고 계속 천둥의 소리를 울리며 뇌신지혼의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자 공손대랑은 바닥에 놓여 있던 나무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모순의 칼날을 부러뜨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굴레를 뛰어넘는 정법(正法)일 뿐. 네게 그 정법을 보여주겠노라.”
나무막대기는 단 세 번 휘둘러졌다.
그 세 번의 초식은 모두 내가 아는 것이었다.
첫 번째 휘두름이 시작되자 내 귓전에 짧게 무언가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예전처럼 뇌전의 기운이 다른 차원으로 승화하려는 그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무형의 칼날이 날아와서 그 인연을 절연(絶緣)해 버린 것만 같았다. 그 바람에 나는 지금까지 회전시키던 사신지혼의 윤회가 단숨에 그 동력을 잃고 멈췄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두 번째 휘두르기가 이어졌을 때, 내가 온 힘을 쏟아서 마지막 발악처럼 일검을 내지르던 건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미리 내 공격을 막고 있었다.
이미 내가 패배했다고 생각하던 그때 마치 도신의 신역절기를 마주했던 것처럼 거대한 마음의 검이 쏟아져 내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쿠웅!
마치 천마가 굴복하듯 나는 모든 사신지혼의 힘을 잃고 그대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런데 사신지혼이 취소당했음에도 나는 몸에 한 줌의 상처도 남지 않았음을 알고는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내가 무엇을 당한 것인가.
그러나 멍한 것과는 달리 내 무인으로서의 본능은 저절로 입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무적삼검…….”
그렇다.
방금 전 마지막에 나를 무릎 꿇린 세 번의 휘두름은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모두 무적삼검의 초식이었던 것이다.
탁.
내 어깨에 나무막대기를 갖다 내린 공손대랑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적삼검이라 생각한다면 그게 바로 너의 부족함이다.”
“그러면…….”
“마음을 담은 검은 세계의 마음마저 담을 수 있는 것.”
공손대랑의 한마디에 나는 전율을 느끼고 말았다.
“이를 자연검(自然劍)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