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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527화 (1,426/1,615)

전생검신 81권 15화

트리무르티?

또다시 수상쩍은 기술이 출현하자 나는 인상을 찌푸렸고 브라흐마가 내 불편한 기색을 알아챘는지 말했다.

“무공이 아니라서 싫은 건가? 그러면 어쩔 수 없지만.”

“……일단 말은 해보시오.”

수상쩍더라도 다음 전투에서 만날 무신백좌의 실력이 미지수인 이상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들어볼 수밖에 없었다. 상대 또한 농담이나 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았기에 얘기를 들어볼 필요는 있었다.

그러자 브라흐마가 말했다.

“트리무르티란 무공은 아니지만, 무공으로 쓸 수도 있을 신기(神技)일세.”

“신기?”

“신은 본디 어떤 기술이나 능력도 연마할 필요가 없지만 이건 좀 특별하지. 세상에서 나만이 쓸 수 있는 능력이되 나는 이 능력을 기술로서 연마하기 위해 엄청난 세월동안 수련을 했으니까.”

“그러니까 권능이 아니라 기술이라 그 말이군.”

“맞아. 트리무르티의 선행조건은 바로 자네가 내게서 전해 받은 삼대신(三大神)의 신력이고 그 기본조건이 충족되면 트리무르티를 연마할 수 있지.”

브라흐마가 말을 이었다.

“내가 아까 곤신 조환룡을 상대로 싸울 때 활을 소환한 것을 봤지?”

슈욱

브라흐마는 말을 하면서 아까의 그 활을 재차 자신의 손에 소환해서 쥐었다. 나는 그 활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봤소. 그 활은 당신의 전용무기요?”

“아니. 활은 형상일 뿐 다시 한번 본질을 잘 보게.”

“…….”

나는 그의 말에 주의 깊게 그의 활을 관찰해보았다. 그러자 잠시 후, 활의 실체 너머에 서로 다른 세 가지 색깔의 빛이 서로 뒤엉켜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고는 약간 놀라서 말했다.

“세 가지 속성의 신력이 한데 뭉쳐 있군……!!”

저런 게 가능한가?

내 반응을 본 브라흐마가 슬며시 활을 들며 말했다.

“이 활을 [창조]한 것은 내 권능이고 창조된 활이 어떤 피해를 받더라도 불파(不破)하게 되어 있는 건 비슈누의 권능. 그리고 시바의 파괴권능을 실어서 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다시 한번 쏴 볼 테니 잘 보게.”

투웅!

지잉

브라흐마의 무형시(無形矢)가 통로의 벽을 그대로 관통하며 사람의 머리통만 한 넓이의 구멍을 만들었다. 그런데 관통했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무형시가 뚫고 간 통로의 벽 너머에는 계속해서 구멍이 뚫렸고 무형시는 무한히 전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소리나 충격파 한 번 나지 않는 게 기묘할 정도였다.

“오!”

아까 곤신 조환룡에게 쉽게 막혀서 몰랐는데 이 정도의 위력이었나?

화살의 관통력에 내심 놀라고 있을 때 브라흐마가 말했다.

“본디 서로 다른 속성의 신력은 동시에 구사할 수 없게 되어 있어. 그게 가능한 신도 있지만, 보통은 다중속성 자체를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경우지. 단, 트리무르티는 [기술]이기 때문에 내가 처음부터 갖고 있었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상이(相異)한 속성의 신력을 융합하거나 복합시전할 수 있네.”

“그게 뭐가 좋은 거요?”

“나는 나와 내 형제들의 신력을 섞었으나 자네가 트리무르티를 시전할 경우 아마테라스, 전욱, 전륜성왕의 권능을 섞어서 쓸 수 있다는 소리지.”

“……!!”

“권능을 조합하게 되면 본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특수효과가 생기게 되네. 트리무르티를 잘만 이용하면 강력한 신격이 지닌 불사나 불멸의 권능을 아주 쉽게 파해할 수 있어.”

그, 그런 게 가능해진다고?

나는 트리무르티가 가진 뜻밖의 효과에 구미가 당겼다. 그러나 역시 수상쩍은 건 아직 그대로였으므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게 가능하면 뭣하오? 당신은 그 트리무르티의 달인인데도 방금 전 전력을 다한 공격이 곤신 조환룡에게 단숨에 막혔잖소.”

“뭐, 그건 할 말 없네. 이 무신궁에서 무공이 아닌 것은 예외 없이 그 위력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모양이더군. 하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바깥세상에 있었을 때는 트리무르티의 조합만으로도 일대일의 전투에서 그 어떤 신격에게도 패배한 적이 없다는 거야.”

“전쟁에서 밀리는 거 아니었소?”

“수적으로 밀렸을 뿐 일대일로는 진 적 없다니까.”

“음…….”

문득 브라흐마는 약간 속이 꼬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싫다면 나도 그냥 전수하지 않겠네. 이래 봬도 이 트리무르티를 전수받고자 천축의 무수한 현자들과 기인들이 내게 온갖 공양을 바쳤고, 우주의 강력한 신과 성좌들도 내게 호의를 사려고 노력했건만…… 자네가 살던 무림의 기준으로는 독문절기(獨門絶技)나 다름없는 걸 싫다는 사람한테 굳이 전수하고싶진 않다네.”

…… 이건 진심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방금 전 패배 때문에 약간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데다가 자신이 저자세를 유지하는데도 내가 거칠게만 대해서 불만이 생긴 듯했다. 나는 약간 생각을 달리 먹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기회가 있으면 뭐든 배워둬서 나쁠게 있겠나.’

트리무르티를 쓴 브라흐마가 방금 전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내 생각에 브라흐마가 다른 응용법으로 맞섰다면 곤신을 상대로도 꽤 선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권능이라기보다는 기술에 가까운 것이라면 앞으로 발전시킬 여지도 있지 않은가?

나는 히죽 웃으며 브라흐마에게 넉살 좋게 말했다.

“내가 괜히 떠봤을 뿐이오. 가르쳐 주신다면 감사히 배우겠소.”

“후우……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해줘서 다행이군.”

한숨을 쉰 브라흐마가 말했다.

“트리무르티를 사용하는 법은 간단하네. 아까 자네의 신력을 정돈하면서 중앙에 커다란 하나의 보석이 생겨났을 것이고, 그 보석을 중심으로 하여 신력이 3가지 종류로 분류되어 경계가 생겼지 않은가?”

“그렇소.”

“자네가 조합하고 싶은 신력을 그 3가지 영역에 1개씩 놔둔 후 조합을 하면 그만이야. 단 조합을 할 때 신력의 양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니 그 미묘한 양을 조절하는 게 바로 기술이며 핵심이지.”

“흠…….”

생각보다 정말 간단한데? 그냥 듣기만 해도 바로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나는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원리가 쉬운 것 같은데 이런 걸 몇억 년이나 수련했단 말이오?”

“크크큭. 직접 해 보게. 그럼 왜 어려운 기술인지 알 테니까.”

“알았소. 그런데 이렇게 간단한 원리를 남한테 알려주지 않았던 거요?”

“트리무르티를 쓰려면 자네처럼 내면의 신력이 구조적으로 정돈되어 있어야 하고 또 하나의 조건은 ‘창조’ 속성의 신력을 쓸 수 있어야 하네. 자네는 두 개의 조건을 다 만족했잖나.”

“그렇군. “

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보았다.

‘트리무르티!’

치지징

나는 브라흐마가 말한 대로 삼분(三分) 되어 있는 신력의 영역을 인지한 후, 각자의 영역에 다른 종류의 신력을 하나씩 놔두었다. 그러고는 잠시동안 기다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세 개의 영역에서 각각 다른 색깔의 힘이 번져 나오더니 중앙의 보석에서 뭉쳐서 하나가 되는 게 느껴졌다.

부글부글

“뭔가 끓어오르는데…….”

“신력이 융합되어 본질만 남는 과정일세. 바로 지금 창조의 권능을 써서 그 본질을 정해진 형태로 옮기면 되는걸세.”

그렇다면 당연히 검(劍)으로 해야지!

치잉……!!

잠시 후 검을 창조하자 그 검 안으로 융합된 신력이 순식간에 빨려들어 갔고, 나는 검신(劍身)에 총 천연 빛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신기한 눈으로 검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이제 이 검을 사용해서 싸우면 된다는 거요?”

“조심하게.”

“뭘 조심하라는 거요?”

브라흐마가 피식 웃었다.

“아까 말했지. 불어넣은 신력의 양에 따라 부가되는 효과가 달라진다고…… 지금 세상의 그 누구도 자네의 그 검에 어떤 효과가 들어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말이야. 잘못했다가는 그 검을 쓰면서 자네가 도리어 손해를 볼 수도 있네.”

“……?! 아니, 왜 그런 거지 같은 능력을…….”

“그래서 수억 년의 수련이 필요한 기술이란 걸세. 수많은 조합과 미묘한 시간차, 그리고 양의 차이에 따라서 수많은 경우의 수가 발현되는데 그 하나하나를 다 알맞게 쓰긴 힘들지. 그래서 자기한테 맞는 조합을 찾아서 평소에 외워서 쓰는 거야.”

“으음…… 그건 마치 연금술(鍊金術)같구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일단 트리무르티로 속성을 불어넣은 검을 함부로 버리지 못했다. 또 만들기 귀찮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트리무르티는 그렇게 쓰면 되네. 무기를 창조해서 속성을 불어넣을 수도 있지만 자기자신을 강화하는 데도 쓸 수 있고 응용방법은 무궁무진해. 자네의 무공과 함께 조합해서 쓸 수 있을지도.”

그렇게 말한 브라흐마는 통로의 저편을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가보세. 꽤 유익한 시간이었어.”

저벅

저벅

나와 브라흐마는 한참 동안 통로를 걷기 시작했다. 나는 걷던 도중에 브라흐마에게 불쑥 말을 걸었다.

“궁금한 게 있소.”

“뭐가 궁금한가?”

“당신은 수백 마리나 되는 [옛 지배자]들과 전쟁을 해서 승리하기 위해 이런 곳까지 오는 모험을 감행했는데, 왜 전쟁을 그렇게까지 이겨야 하는 거였소? 신들끼리의 전쟁이 불가결한 것도 아니라고 들었는데 대체 무엇 때문에 지구라는 행성에 그리도 집착한 거요.”

“…….”

“그 이유 정도는 알려주시오.”

이어진 브라흐마의 반문에 나는 흠칫했다.

“알려준다면 내 형제들을 종말의 운명에서 구원해 줄 건가?”

“……?!”

뭐? 비슈누와 시바를 구원해 줄 거냐고?

세상에 삼황오제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한 신성을 구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는지라 나는 브라흐마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는 당황했지만, 이윽고 평정심을 되찾고는 말했다.

“그, 그놈들은 너무 쎈 놈들이라 내가 구하고 말고가 없는 것 같은데…….”

지금의 나도 무신궁 밖에 나가서 비슈누 본체와 일대일로 싸웠을 때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아니, 이기기는커녕 그놈이 종말에 보였던 위용을 생각하면 아직도 질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애초에 비슈누는 천축의 전설적인 최상급 신인데 인간으로서 어찌 상대하겠는가? 전생자라는 특성을 이용해서 싸움이 성립될 뿐 처음부터 까마득한 존재였기에 나한테 비슈누나 시바를 구해달라는 건 어처구니없는 얘기로 들렸다.

“아니. 자네는 할 수 있네. 전생자 앞에서 타고난 힘의 강약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을 터.”

“그 두 놈이 날 방해하려고 깽판 친 일도 많소만…….”

“자네의 지금 전생동료들도 과거엔 적이었던 자들이 있지 않았는가? 내 형제들도 충분히 동료로 삼아줄 수 있을 텐데.”

“아니, 그게 아니라…… 무슨 신이 구원받는 존재냔 말이오.”

“구원받을 수도 있겠지. 어차피 이대로라면 종말의 운명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을 테니.”

그렇게 중얼거린 브라흐마가 짧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집착해서 미안하네. 사실은 내가 전쟁을 했던 이유도 이 세계에 예정된 종말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서였어. 우리는 끝까지 운명을 극복하려다가 결국 패배한 거고.”

“……무슨 말이오?”

“지구라는 행성에 종언의 계시가 내려온다는 사실은 모든 [옛 지배자]들이 알고 있는 사실. 나와 형제들은 그 사실을 알고 계시의 그 날에 좀 더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투쟁했던 걸세. 허나 일이 꼬여서 단숨에 수백 명을 적대하게 된 게 실수였던 거지.”

“계시를 알게 되면 종말의 운명을 피할 수 있단 거요?”

“그래. 자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승천(昇天)을 노린 거지. 인간문명을 지켜주는 건 덤이었고.”

“승천? 당신도 외신(外神)이 되려 했소?”

“그렇네.”

“아니 그런데 저번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계시에 대체 뭐가 있길래 승천해서 외신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것이오? 그걸 변변히 알려주는 놈이 없어서…….”

“……여기까지 올 정도면서 그걸 몰랐나?”

어이없다는 눈으로 날 쳐다보던 브라흐마가 말했다.

“[계시]의 그날에 바로 전지의 왕이 지구에 강림하게 되어 있지. 그리고 계시를 하는 전지의 왕은 승천할 수 있는 자를 지목하게끔 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었네. 당연히 승천자로 지목받은 존재는 그게 누구든 간에 [큰 굴레]를 극복하여 외신이 되는 것일 테고.”

“……!!”

“생각해 보게. 어떤 자가 승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최대한 왕께서 연설하시는 앞자리에 있어야 선택받을 확률이 커진다고 생각하는 건 누구나 그렇지 않겠나?”

“그, 그런 거였나…….”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되었다.

지금까지 이 비좁은 지구라는 별에 왜 이렇게 강력한 신적 존재들이 드글거리나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그게 바로 외신 허공록이 강림하면서 차기 승천자이자 외신이 될 존재를 지목하기 때문이었다니! 브라흐마의 말대로라면 지구에서 온갖 신들이 박 터지게 싸웠던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음…… 근데 뭔가 이상한데……?’

나는 그 순간 브라흐마의 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브라흐마의 말대로라면 [옛 지배자]들이 그동안 보였던 태도는 설명이 되지만, 내 전생경험에서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사건들이 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머리가 좋지 않아서인지 그게 구체적으로 뭐가 이상한지는 바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브라흐마가 말했다.

“내가 큰 굴레를 돌리려 하는 건 그것 때문이야. 아예 전쟁의 시초부터 적의 대장을 없앨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다시 도전하려 드는 거지. 그게 아니면 그냥 전쟁 자체를 시작하기가 싫어.”

“말이 이상하구려. 이미 시작된 전쟁이라 하더라도 당신들이 그냥 지구에서 나가 버리면 그만 아니오? 이렇게까지 위험을 무릅쓸 이유는 없을 텐데?”

“우리에게도 야망이라는 건 있거든. 외신이 될 기회를 그냥 포기할 수는 없지.”

“…….”

그런 거였군…….

내가 브라흐마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했을 때 그가 환하게 밝아진 통로의 출구를 보며 말했다.

“다 온 것 같군.”

짹짹…….

아주 화사하면서도 평화로운 정원이었다. 이 정원은 달마가 있었던 백련의 정원과도 느낌이 달랐는데, 소박하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평범한 인간세상의 계곡과도 비슷해 보였다. 나는 이런 정취를 중원의 기산명소에서 자주 보았기에 고향이 생각나서 기분이 좋아졌다.

‘풍경이 좋군.’

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저만치에 큰 모옥(茅屋)이 한 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브라흐마에게 눈짓한 후 함께 모옥으로 걸어갔고, 이윽고 모옥 앞에 도착하여 크게 외쳤다.

“나 백웅이 무신궁에 도전하려 하오!”

끼익…….

그러자 모옥의 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그 안에서 백의(白衣)를 입은 가냘픈 여인이 나왔다. 그 여인은 검조차 들고 있지 않았는데 입고 있는 옷은 아무래도 당대(唐代)의 의복인 듯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 여인은 무척 가냘파) 보이는데도 체간이 무척 안정되어 있어서 조금도 약해 보이지 않았다. 또한 여인의 외모는 말 그대로 절세가인이라서 보는 이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

백의의 여인은 모옥의 문을 열고 나와서 찬찬히 나를 뜯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여동빈(呂洞賓)이 말했던 아해가 바로 너로구나.”

아, 아해?

나를 단숨에 아해 취급하는 여인의 말투에 약간 당황한 나였지만 그보다는 여동빈의 언급이 좀 더 신경 쓰였다. 나는 그래서 그녀에게 포권하여 다시 인사하며 말했다.

“나는 백웅이라 하오. 귀하는 검선 여동빈과 무슨 관계십니까?”

그녀는 아무런 감정의 고조가 없는 평온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가 애송이였던 시절에 몇 번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다.”

“……!!”

“여동빈이 거룡을 베고 난 후에는 이 백좌(百座)에서 종종 그와 검을 겨루고 있지.”

여동빈이 애송이였던 시절부터 있었던 존재라고?!

나는 그 말에 힐끔 그녀의 몸을 쳐다보았고 잠시 후 말했다.

“검을 겨룬다 하셨지만, 당신은 검을 갖고 있지 않소.”

“눈에 보이는 것만이 검은 아니다.”

“무슨 소리요?”

나는 그녀의 말에 기감을 돋우어 확인했지만, 무형의 검강이나 어검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런 무기도 무공도 없어 보였다. 아니, 심지어 그녀는 내공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도 형태있는 것에 얽매여 있음인가. 이미 수많은 심득을 얻었음에도 가진 자질이 너무 천하여 마음의 영역에 발을 내딛기조차 힘들다니…….”

알 수 없는 말을 하던 그녀가 잠시 후 손을 내 쪽으로 겨누며 말했다.

“내 검술을 쓸 줄 아는 것 같으니 어디 간단하게 겨뤄보자꾸나.”

쭈뼛

그 순간 나는 전신의 털이 올올이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알 수는 없었지만, 전신의 감각, 그리고 최근에 성장한 신역절기의 감각이 내게 맹렬하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그 한 수를 인지한 나는 그 순간 삼보절기조차 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멸혼보를 써서 아무 곳으로나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피잉 - !!

쿠콰쾅!!

“크학!!”

나는 순식간에 수십 리를 날듯이 뛰어 회피했으나 등 뒤의 나무에 내 팔이 꽂혀 버리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디선가 날아와서 쐐기처럼 나무등걸에 내 팔을 단단히 꽂아 버린 ‘그것’은 바로 나무막대기였다.

‘나무막대기……?!’

검이 아니라 웬 막대기?

그러나 나는 그 막대기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 하나의 검로(劍路)가 떠올랐고, 그것은 방금 전 찰나의 순간에 내가 적의 공격을 감지하고 반격했는데도 수월하게 내 방어검식을 뚫고 들어온 단 하나의 무공이었다. 그리고 그 무공은 무척이나 익숙했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그 검술의 이름을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고…… 공손검법(公孫劍法)!!”

퓨웅

갑자기 내 팔을 관통했던 나무막대기가 홀연히 나타난 백의여인의 손아귀로 빨려들듯이 날아갔다. 피가 묻은 나무막대기를 바라보던 백의여인은 그 나무막대기를 다시 등 뒤로 집어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맨 손으로 나를 겨누며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동빈은 네게 심어검(心御劍)을 알려주라고 내게 부탁하였다.”

“…….”

“허나 네 소양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여기는 가르침의 장이 아니라 네 무덤이 되리라.”

나는 그 잔잔한 목소리에서 살기 하나 느낄 수 없었지만 전신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상대가 방금 전 곤신 조환룡조차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자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상대의 정체를 짐작했기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설마…… 공손대랑(公孫大娘)이십니까?”

백의의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손대랑!!

대당시대 최고의 검신(劍神) 중 한 명이자 공손세가의 독문검법인 공손검법을 신선의 경지로 연마하여 마침내 대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전설의 고수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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