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526화 (1,425/1,615)

전생검신 81권 14화

곤신 조환룡.

생전 처음 들어보는 명호와 이름이었지만 그는 무신백좌의 일원이었고, 그게 의미하는 바는 바로 신역절기(神域絶技)의 경지에 도달한 존재라는 말이었다. 실제로 그는 방금 전 브라흐마의 강대한 공격을 신역절기를 이용해서 무효화시킨 후 단숨에 쓰러뜨리는 위용을 보여준 것이다.

나는 검을 중단세로 든 후 차분히 상대의 자세를 살폈다.

‘곤법(棍法), 그중에서도 삼절곤은 단곤법(單棍法)에 속한다. 단곤법을 쓰는 상대라 하면…… 십이율주인데.’

장곤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봉술(棒術)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고 단곤이란 저렇게 절편(節鞭)으로 나뉜 중단거리 무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십이율주의 구절편 또한 굳이 따지자면 단곤법에 속했지만, 그의 구절편은 단숨에 봉처럼 뭉쳐서 장곤으로 쓰기도 했고 워낙 범위가 넓어서 장단곤의 분류로 잡기도 애매했다.

삼절곤과 구절편의 용법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삼절곤이 다 펼치면 검(劍)과 비슷한 길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원거리에는 취약하지만, 구절편은 훨씬 길기에 십이율주와 조환룡의 싸움 방법이 다르다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삼절곤의 고수를 거의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붕붕붕-

마치 도리깨처럼 삼절곤을 잡아서 돌리기 시작한 곤신 조환룡은 천천히 한 걸음을 내 쪽으로 옮겼다. 나는 그 단순한 동작을 보자 흠칫했다.

‘간격이 잡힌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담백하면서도 명확하게 나와 곤신 조환룡 사이의 간격이 줄어들며 명확해지는 기분! 나는 그게 바로 상대의 무위(武威)이며 의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의기(意氣)가 순간적으로 증폭되면서 내 공격범위를 강제로 한정시킨 것이다. 그러나 기세와 위압감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내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나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을 알아차렸다.

‘피부 근처…… 종이 한 장 차이로 기세를 두르고 있다.’

극도로 압축된 종이갑옷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저게 심상치 않다는 걸 내가 무의식중에 짐작하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주의를 집중시키려는 상대의 의도가 먹힐 수 있었던 것이리라. 틀림없이 곤신 조환룡이 두르고 있는 저 갑옷 같은 기세야말로 이 대결의 핵심이 되리라는 생각에 나는 눈을 반개하며 집중했다.

스으.

발검(拔劍)의 자세와 함께 내 무게중심이 내려갔다. 상대의 수가 무엇이든 간에 내가 먼저 공격하는 건 불리하다는 판단이 섰으므로, 상대의 다음 한 수가 날아오면 바로 발검하여 반격할 생각이었다. 먼저 수세(守勢)를 자처하는 건 본디 생사결에서 악수나 다름없었지만 첫 대면이면 그런 원칙이 잘 통하지 않는다.

변수가 너무 많은 첫 수의 겨룸.

이 한 수에서 대결의 다음 양상까지 모두 읽히게 되리라.

쩌엉!

마치 유리창이 터지는 듯한 괴이한 음색과 함께 허공에서 내 검과 조환룡의 철쇄(鐵鎖)가 충돌했다. 조환룡은 말 그대로 삼절곤을 돌리다가 내려치는 단순한 일격을 가했고, 나는 거기에 반응해서 반사적으로 그의 목을 베었지만 조환룡은 마치 그것도 읽었다는 듯 허공에서 내려치기의 궤적을 뒤틀어 곧장 방어해 낸 것이다.

촤락!

조환룡의 삼절곤이 그대로 내 검날을 감으며 그의 동체가 앞으로 쇄도해 왔다. 나는 그 모습에서 그가 원하던 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챘다.

‘육박전!’

삼절곤의 특징을 살려 반 보 거리에서 격전을 벌이려는 것이다! 나는 거리를 순순히 좁혀주는 건 필패(必敗)라는 걸 느끼고는 그대로 검광(劍光)을 흘리듯이 내 검을 삼절곤의 쇄에서 빼내며 하체와 상체가 동시에 원 운동을 그리도록 회전했다. 그리고 회전하는 순간 그대로 뇌검(雷劍)이 잔영만을 남기며 조환룡의 전면을 베었다.

뇌신검무(雷神劍舞)!

촤좌좍!

순식간에 수백 개의 검영(劍影)이 조환룡을 베어 버렸지만 나는 검 끝에 아무런 감각이 없음을 느꼈고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밧!

조환룡은 어느새 무려 이십사분신(二十四分身)을 만들어내어 내 근처에 출현해 있었다. 나는 그 분신을 기감으로 감지했고 순식간에 뭐가 실체인지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분신과 본체가 두르고 있는 기의 흐름이 명백히 달랐기 때문이다.

‘응? 이형환위(移形換位)는 별로 잘하지 못하는 거 같은데…….’

율도국의 대장로 홍길동만큼 환위(幻位)의 고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쓔웅-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곧장 다시금 뇌신검무를 써서 조환룡을 공격했는데, 그 순간 나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조환룡의 본체라고 짐작되었던 분신이 너무나 쉽게 내 검에 목이 갈라졌기 때문이었다.

“……!!”

속았다!

처음부터 가짜를 진짜인 척…….

아니나 다를까, 그 순간 내 사각(死角)에서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가 날아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급히 의념천주를 끌어 올려 삼보절기를 발휘했고, 천과 지의 걸음으로 겨우 그 공격에 직격당하는 걸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삼보절기라 해도 이미 확실하게 사각을 먹인 일격을 완전히 피하는 건 힘들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손해를 봐야만 했다.

꽈앙!!

마치 폭탄 같은 파괴음! 아닌 게 아니라 늑골 근처에 날아온 삼절곤의 쇄에 엄청난 위력이 담겨져 있어서, 호신강기로 막았는데도 지끈거리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직격이 아니라 스치기만 했는데도 호신강기가 단숨에 깨져 버린 것이었다.

구웅-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금 반 보의 경계를 딛고 내게 근접해 온 조환룡은 그대로 주먹을 내 턱으로 날렸는데, 나는 간신히 조환룡의 공격을 피했음에도 턱이 흔들려서 머리가 어질거리는 걸 느꼈다.

‘으윽.’

엄청난 근접공격력! 나는 이 한 수에서 조환룡의 전투 성향을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저…… 종이처럼 두른 갑옷 같은 기운! 저 기운은 초근접 상태에서만 위력을 발휘하지만 한 번 적중하기만 하면 내 방어력으로는 절대 막을 수가 없다.’

어찌 된 게 조환룡은 권법(拳法)만 쓰는 자들보다 더욱 초근접전투에 익숙하며 강력한 듯했다. 그것도 권법의 고수들은 날붙이에 베이면 대번에 사지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심하며 접근하는 반면에, 조환룡은 삼절곤으로 방어와 공격을 겸수(兼手)하며 더욱 저돌적으로 공격해 오는 듯했다.

뇌령인(雷靈印).

꽈앙!

내가 근접한 조환룡을 떨쳐내려고 장법으로 뇌령인을 써서 전력을 다해 공격하자 폭렬음과 함께 잠시 조환룡이 멈칫거렸다.

“합!”

그의 몸에 둘러싸여 있던 종이갑옷 같은 기운이 잠시 빛났고, 조환룡은 뇌령인을 가볍게 기합으로 버텨낸 듯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어이가 없어졌다.

‘뭐?! 섬을 통째로 날리고 용을 수십 마리나 잡은 위력인데 그걸…….’

쐐액-

조환룡은 버텨내자마자 바로 시간차공격으로 삼절곤을 날렸는데 삼절곤은 분영(分影)조차 만들지 않고 솔직한 직선 공격으로 내 인중을 노려왔다.

‘허실(虛實)이 없는 만큼 더 강력한 공격! 힘 대 힘으로 버텨야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는 그대로 구궁파천뢰를 끌어 올리면서 조환룡의 몸통으로 무량단을 내질렀다. 조환룡이 겁을 먹고 피할 것을 어느 정도 노린 것이었다. 그러나 조환룡은 조금도 겁을 먹지 않고 그대로 삼절곤을 휘둘렀고, 나 또한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무량단을 끝까지 뻗었다.

츠아앗!

“크윽!”

“음!”

결과는 아슬아슬하게 공멸(共滅)을 면한 교착상태! 조환룡도 나도 끝까지 공격을 질렀지만, 서로가 절대고수인지라 되레 그 상황에 활로(活路)가 보였고 아슬아슬한 차이로 목숨만은 건진 것이다. 다만 그 대가로 조환룡도 나도 약간 부상을 입은 듯했다.

타닷.

조환룡은 두세 걸음을 뒤로 물러서더니 자신의 가슴팍에 새겨진 무량단의 검상(劍傷)을 힐끔 내려다보고는 말했다.

“내 창화신곤(蒼火神棍)에 맞서서 진짜 양패구상의 각오로 덤빈 건 평생 그대밖에 없소. 대단한 배짱이구려.”

뚜둑…… 뚝…….

나는 방금 내 인중을 박살 내려다 아슬아슬하게 스쳐서 귀의 살점을 절반 이상 터뜨린 조환룡을 곱지 못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거 참 날로 먹으려 드는 무공이구려. 반대로 같이 찔러 죽을 각오가 없으면 나만 손해를 보게 되어 있잖소?”

나는 창화신곤의 특징을 알 수 있었다. 초근접전을 시도하면서 막강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바탕으로 정직하게 치고받기를 상대방에게 강제하고, 거기서 상대가 겁을 먹어서 물러나거나 어설프게 막으려 들면 무조건 창화신곤의 시전자가 이득을 보게 되어 있었다. 잘하면 일격에 절명시킬 수 있고 못해도 상대에게 부상을 입힌 후 계속 유리한 국면에서 싸울 수 있는 무공이었다.

“단곤절편(單棍節鞭)의 극의(極意)가 본디 그러한 것. 일방적인 교환이 싫으면 당신처럼 양패구상을 노리든가, 아니면 원거리에서 내가 접근도 못하게 끝장을 보면 그만이오.”

나는 그의 말에 실소를 터뜨렸다.

“참 나. 원거리에서 끝장내지 못하게 하려고 갑옷 같은 기운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게 다 보이는데.”

“모든 무공이 그렇지 않소?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단점을 보강함으로써 무적에 가까워지는 것.”

스으-

다시금 곤신 조환룡이 자신의 삼절곤을 들어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나도 비장의 한 수가 남았지만 당신은 아직도 감춘 게 많아 보이는군. 자칫하다가는 순식간에 끝날 터이니 나중에 아쉬워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시오.”

“…….”

들켰나?

사실 상대의 내력을 알아보려고 단숨에 모든 걸 보여주지는 않고 수동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긴 했고, 그 덕에 창화신곤의 특징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내 특징을 알게 된 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조환룡의 공세는 방금 전보다 더욱 맹렬해질 것이었다. 즉 조환룡은 내가 탐색전만 하다가는 순식간에 끝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좋아. 이제 제대로 해볼까.’

방금 전에는 내가 조환룡에게 선수를 줬지만 이번에는 내가 먼저 공격해 볼까 싶었다. 왜냐하면 창화신곤이 언뜻 무적으로 보였지만 약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조환룡에게 말았다.

“이보시오. 잠깐 물어볼 게 있는데.”

“김새게 하지 말고 빨리 말하시오.”

성질 한번 불같네.

“당신은 어느 시대 사람이오? 나는 대명제국 시대 사람인데 사실 당신 같은 절세고수가 있다고는 문헌이나 소문으로 전혀 들은 바가 없소.”

이게 정말 궁금한 것이었다. 신역절기에 도달한 자라면 절대지경의 고수 중에서도 특출한 존재라는 뜻이니 말 그대로 정점 중의 정점! 낭중지추(囊中之錐)였기에 여동빈이나 장삼봉처럼 무림의 일대종사가 되거나 최강자가 되어서 이름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곤신 조환룡이라는 명호와 이름은 맹세컨대 30번 전생하면서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것이다.

‘실력은 틀림없이 투선, 그 이상인데…….’

내가 궁금해하고 있을 때 곤신 조환룡은 빤히 나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혹시나 했는데 김새는 질문이군.”

“엉…… 못할 질문이라도 했소?”

“여기 있는 무신백좌 모두가 당신이 전생자라는 걸 알고 있소이다. 당신이 여기서 정보를 얻어 가면 그 정보를 가지고 또 정체를 탐문하거나 무신백좌를 찾아 심문하려 들지 않겠소?”

“…….”

그러더니 곤신 조환룡은 쓴웃음을 지었다.

“뭐, 어차피 내가 어떤 시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더라도 당신은 절대로 나를 현세에서 찾지 못하겠지만…….”

다 알고 있다고?

내가 약간 당황할 때 곤신 조환룡의 말이 이어졌다.

“우린 그렇게까지 당신에게 얽히는 존재가 아니오. 우리의 목표는 따로 있으며 그게 꼭 전생자의 목표와 합치하지도 않소. 당신이 무엇을 원하든 간에 이용당할 생각도 없소.”

“장삼봉과 여동빈은 나를 잘 도와줬소만…….”

“그건 그들의 개인적 성향일 뿐. 무신백좌의 대의와는 관계없소.”

“그 대의라는 게 대체 뭐요?”

“알고 싶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꺾으시오. 그리고 나를 포함해 셋을 모두 꺾고 무신에게 가시오.”

촤락!

“무(武)에 진심이 아닌 한 이 무신궁에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오!”

“…….”

아무래도 더 이상 말로 뭔가 얻어내려 해도 무의미할 듯하다.

‘이들은 정말로 강경하군.’

여동빈도 그렇고 장삼봉도 그렇고 내게 다른 모든 비밀을 말해줄지언정 무신백좌에 대한 건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신역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모든 존재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단순한 이득이 아니라 절대적인 신념으로써 백좌에 가입한 것이므로 절대 입을 열지 않는 것이다.

“좋소. 해봅시다.”

이렇게 된 바에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장을 볼 수밖에!

치치칭-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허공에서 검(劍)을 몇 자루 신력으로 창조해서 띄웠다. 그러고는 그대로 어검술(御劍術)을 써서 곤신 조환룡에게 날렸다.

‘일단 원거리 견제부터 해보자.’

퍼퍼펑!

음속을 훨씬 넘어서는 속도로 빛의 궤적이 관통했음에도 곤신 조환룡은 스치지도 않고 모든 어검을 피해 버리고 말았다. 별 보법을 쓰지도 않았는데 마치 처음부터 어디로 올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쉽게 피하는지라 내가 흠칫할 때 그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역의 고수에게 고작 목어검(目御劍)을 쓰다니. 심어검(心御劍) 정도는 갖고 오시오.”

그렇게 말한 곤신 조환룡은 날아가던 어검 한 자루를 그대로 삼절곤으로 낚아채더니 도리어 나를 향해 어검술을 시전했다. 나는 어검을 튕겨내며 뒤로 물러섰는데 그때 곤신 조환룡이 다시 접근해 오면서 자신의 삼절곤을 하나로 합쳤다.

철컹!

“하앗.”

장곤(長棍)의 형태로 변한 삼절곤을 든 조환룡은 마치 봉(棒)처럼 자신의 무기를 붕붕 돌리더니 내게 더 빠르게 쇄도해 왔다. 회전하는 장곤은 봉과 다름이 없었고 나는 일변한 조환룡의 공세를 보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저건 이제 봉법이라고 봐야 하나? 으음…… 원래라면 봉법에 맞춰서 거리를 조정할 테지만…….’

어쩐지 그것조차도 상대의 노림수라 생각하는 건 내 착각일까? 나는 오랜 전투 경험과 감각 속에서 대응방법을 찾다가 문득 좋은 방법이 생각나서 가만히 서 있었다.

쐐액!

이윽고 조환룡의 곤(棍)이 쭉 뻗어지더니 내 이마를 관통할 기세로 급소를 공격해 왔다. 나는 빠르게 피할 수 있었음에도 끝까지 피하지 않고 그의 곤을 끝까지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내 이마에 격중되기 직전, 나는 그의 수(手)가 갑자기 분열하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그제서야 삼보절기를 시전했고, 수백의 궤적으로 분열한 상대의 유성 같은 공격에도 하나도 맞지 않을 수 있었다. 지척까지 접근한 조환룡이 다소 놀라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의 손에는 어느새 장곤의 형태였던 삼절곤이 도로 분리되어서 원래대로 세 조각의 절편이 되어 있었다.

‘역시!’

절편에서 장곤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한 거겠지!

은근히 상대의 허를 노리는 조환룡의 심리를 읽었기에 나는 이번에 그를 상대로 반 수 앞설 수가 있었다. 아무리 절대고수라지만 회심의 일격이 빗나가면 빈틈이 생기는 법이었기에 나는 순식간에 조환룡에게 무량단을 꽂아넣을 수가 있었다.

푸콱!!

“큭!”

조환룡은 아슬아슬하게 무량단을 피했지만 그의 허리에는 큰 검상(劍傷)이 나 있었다. 스친 자국이긴 했지만 찔린 거나 다름없는 깊이였기에 조환룡이 완전히는 피하지 못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이득을 보긴 했지만 이런 지근거리에서 허점까지 찔렀는데도 무량단을 적중 못 시킨 게 의외였기에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진짜 대단한 고수로구나! 백련교주도 이런 거리에서 무량단을 절대 피하지 못할 건데.’

실로 말도 안 되는 민첩성과 무공! 신역에 이른 자들은 하나같이 이런 자들일 게 뻔했기에 나는 긴장을 풀지 못했다. 실제로 그가 발휘하는 이름 없는 신법이나 수법 하나하나가 사대무류에 못지않은 전설적인 절세무공이었기 때문이다.

촤라락-

그 순간 조환룡이 눈에서 시퍼런 안광을 내뿜으며 입에서 약간 김을 내뿜었다. 명백히 그의 의념천주가 크게 맥동하고 있었고, 갑작스럽게 실내의 기가 그에게 모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가 절기를 발휘하는 걸 알아채고는 크게 긴장했다.

창화신곤(蒼火神棍).

백팔식(百八式).

백류매화(白流梅花).

내 착각인 걸까? 조환룡의 삼절곤 하나하나가 마치 뱀처럼 거대해진 채 허공을 날기 시작했다. 또한 그 순간에 내가 서 있는 이 공간 전체가 새하얀 꽃잎으로 가득해 있었다. 나는 천지사방이 새하얀 꽃잎으로 뒤덮인 걸 보자 잠시 동안 현실감이 없어서 멍해 있다가 문득 이 꽃잎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매화……!!’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강렬한 매화 향!

나는 이 향기를 맡자마자 전신이 강렬하게 위험 경고를 보내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매화 잎이 흩날리는 공간에서 새하얀 폭풍처럼 조환룡이 무수한 삼절곤의 환영을 만들어내며 돌진해 오는 게 보였다.

쿠구구구구!!

‘극환(極幻)의 무공?! 말 그대로 삼절곤으로 발휘할 수 있는 모든 무예를 쓰는구나…….’

나는 순식간에 분열하여 수만 개는 되는 듯한 절편의 환영을 보자 인상을 찡그렸다. 내게 있어서 이 정도의 환영을 구분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진짜 문제는 상대가 이러다가도 허실을 섞어서 의외의 일격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리전을 강요당한 셈이었기에 나는 그가 절초를 발휘하게 둔 순간 선수를 양보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환영을 쓰는 척하며 진짜 비수를 감추어두고 있을까? 아니면 그걸 의식하는 것까지 고려해서 그냥 몰아붙여서 이득을 보려는 걸까?’

어느 쪽이든 간에 선택을 해야 했다. 원래라면 무량단을 대충 갈기면 다 죽기 때문에 고민을 하지 않았으나, 이번 상대가 보통 고수가 아니었기에 머릿속에서 헷갈려하는 그 순간.

[환검(幻劍)의 고수를 상대할 때는 어찌해야 하나고?]

과거 용왕곡에서 검뢰를 배우던 시절의 기억.

어렴풋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때는 즐겁게 검을 연마하고 있었기에 대화 하나하나가 기억이 났다.

[환검은 주로 검영(劍影)을 이용해 상대를 교란시키고 헛손질을 유도하여 승리를 거두지. 그게 몹시 헷갈리기 때문에 강호에서 중위권까지는 환검의 고수가 공포의 대상이 된다.]

[상위권에서는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그렇다. 사실 검영이란 진짜 검에 검기를 실은 진검보다 약할 수밖에 없고 어느 정도 안력과 내공을 연마한 자에게는 뻔히 그 흐름이 보인다. 환검을 쓰는 자는 수천 번 검영을 쓰더라도 결국 진짜 일검으로 상대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고, 상대하는 자는 그 진짜 공격만 간파하면 쉽게 이길 수 있다. 환검만 쓰는 자들은 자신의 전력이 약하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으음.]

[진짜 무서운 것은 바로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공격. 진짜배기 일격을 연마한 자야말로 그런 환검의 고수보다 몇십 배는 무섭다. 검뢰처럼 말이다.]

[……그런데 진짜배기 일격을 연마한 자가 환검을 쓸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쓰겠지. 진짜배기 일격을 성공시키기 위해 환검으로 상대를 교란시키는 건 우리 뇌신검무에도 그런 초식이 있잖느냐? 그런 경우는 말이다…… 그자를 믿어야 한다.]

[믿는다고요?]

[네가 대결에 임하는 도중 읽어냈던 그자의 사소한 버릇, 성향, 마음…… 그것을 이용해 상대를 읽으려면 자신이 읽어낸 것이 맞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지. 그리고 그건 상대를 믿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즉…… 믿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독고성이 씩 웃으며 말하던 게 기억난다.

[계속 심리전을 하려고 들지 마라. 진짜 고수들은 필요 이상은 절대 심리전을 하지 않으니까.]

그 순간, 나는 빡 하고 머릿속에 감이 오는 것을 느꼈다. 그건 평소에 느끼던 전생자의 감과는 달리, 무수한 전투 동안 쌓였던 경험 자체가 내게 말해주는 감이었다. 전생자의 감과 달리 확실한 느낌은 주지 않았지만 나는 예전에 독고성이 해줬던 말이 어떤 뜻인지 진정한 의미에서 깨달을 수가 있었다.

‘이거야!’

나는 이번에는 후수를 기다리거나 끝까지 관찰해서 삼보절기를 쓰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내 감이 향하는 그대로 매화향이 강하게 나는 곳으로 주의를 집중한 후, 향이 강렬해지는 위치를 추적해서 어디로 흐름이 향하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흐름을 알아낸 순간 나는 바로 뇌신검무(雷神劍舞)를 시전했다.

촤좌좌좍!!

강맹한 검뢰가 파도쳐서 너울지면서 마치 상대의 환영에 대응하듯이 사방에 물결쳤다. 내가 검무를 추는 동안에 천지에 가득하던 낙화(落花)는 어느새 소멸되어 깨끗해져 있었고 남은 것은 내게 삼절곤을 들고 돌진하는 조환룡뿐이었다.

꽈광!!

실체를 들킨 조환룡은 내 무량단 내려치기를 급히 삼절곤으로 막았지만, 뇌성(雷聲)이 터지는 순간 그의 입가에 울혈이 흐르는 게 보였다. 내가 그의 실체를 먼저 알아챈 덕분에 반격하면서 선수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조환룡이 뒤로 크게 물러서면서 손해를 만회하려 했지만 나는 그의 뒷걸음을 보면서 되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긴 거나 다름없다.’

조환룡의 무공은 끝없이 상대를 공격해서 몰아쳐야 하는 저돌적인 무공! 공격하는 도중에는 그 어떤 절세무공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사기적인 강함을 지니고 있지만, 반대로 한 번 예봉이 꺾이면 그 위력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나는 그 점을 깨닫고는 조환룡에게 섣불리 접근하지 않고 간격을 유지한 채 서서히 검기(劍技)를 이용해 압박하기 시작했다.

카앙! 카가강!!

조환룡은 그리 어렵지 않게 내 원거리 견제기를 막아내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게 뛰어들어서 다시 공격을 시작할 한 순간을 찾고 있겠지만 나는 절대 그 간격을 그에게 내어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절대 한 번에 끝낼 수는 없어. 근접전투는 조환룡이 원하는 바다.’

실수하지 않고 마무리까지 계속 압박하면서 조환룡을 스스로 굴복시키는 게 최선!

범을 창으로 위협하여 좁은 곳까지 몰아넣었다 하더라도 창에 찔릴 것을 감수하고 내게 돌격해 온다면 나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크음!”

조환룡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내 검뢰와 무량단에 압박당하면서도 끝까지 냉철하게 내게 달려들 각을 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의 삼절곤에 제대로 한 방 맞으면 일격에 죽는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나는 내심 식은땀을 흘리며 조환룡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그렇게 약 수백 초의 날 선 공방이 오가고 있을 때였다.

스윽…….

수세에 몰리던 조환룡이 갑자기 자신의 삼절곤을 기묘한 자세로 들었고, 그 순간 나는 오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뭐, 뭐지?’

뭔가 느껴진다. 의념천주도 기도 내공도 아니지만 알 수 없는 불길한 거대함이 사위의 공기를 달라지게 만든 것이다. 그 알 수 없는 불길함은 이내 불안감으로 바뀌었고, 머지않아 내게 덮쳐올 것 같은 현실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이건……!!

내가 크게 긴장하며 양패구상이라도 하려고 준비하던 그 순간이었다.

“내가 졌소.”

곤신 조환룡이 자신의 삼절곤을 들어서 예를 표하며 패배 선언을 한 것이다.

나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리둥절해서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조환룡이 짧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더 이상 싸우는 건 억지를 쓰는 거겠군. 나는 패배를 인정하겠소.”

“…….”

쿠르릉-

그때 동쪽에서 크게 궁궐의 문이 열리면서 닫혀 있던 문 안쪽의 통로가 눈에 보였다. 내가 그 통로를 힐끔 쳐다보자 조환룡이 통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로 가면 당분간 진법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다음 장소로 갈 수 있을 것이오.”

“……어째서요?”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조환룡에게 거듭 물었다.

“당신은 분명 아직까지 회심의 한 수가 남은 듯한데 왜 그걸 쓰지 않고 대결을 빨리 포기해 버린 것이오?”

“…….”

곤신 조환룡은 침묵하다가 말했다.

“대결은 당신의 승리가 맞소. 내가 쓰려했던 건 내 자신의 힘이 아니었기에 비겁하다 생각해서 그만둔 것이오.”

“당신 자신의 힘이 아니라고?”

내 반문에 곤신 조환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모두의 힘. 하나 이 시련은 나와 그대의 무인으로서의 성취를 대결하는 것이니 그걸 쓰는 게 결코 정당하다 할 수 없었소. 나의 힘만으로 그대의 견제를 뚫지 못했으니 나머지는 양패구상을 시도하는 것인데, 나는 내 무공의 정체성을 알고 있기에 그것조차 내 패배라 생각했소.”

“으음.”

“백웅. 나를 이긴 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시오.”

“당신은 아직 자기만의 검류(劍流)를 완성하지 못했소. 나는 비교적 실력이 부족하여 그 맹점을 찌르지 못했으나, 그 어설픔을 간파할 수 있는 상대에게는 이기지 못할 터이니 조심하시오.”

“……알겠소.”

저벅…….

나는 혼절한 브라흐마를 들쳐 업고 새로이 열린 통로 쪽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쿠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고, 나는 횃불이 벽에 끼워져 있는 통로를 차분히 걸어가며 생각했다.

‘나만의 검류라…….’

역시 신역의 고수라서 나와 싸우면서 그걸 바로 간파한 것일까?

무려 삼백 년이나 수련했는데도 나는 아직도 나만의 검(劍)이 무엇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으며 완성에 도달하기까지는 먼 상태였다. 수많은 검류를 풀어헤치듯이 수십 년이나 지랄발광을 했는데도 확신이 없었고 암야참 또한 완성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암야참은 절대지경의 기술만으로는 약한 편이었기에 방금 조환룡과의 대결에서도 제대로 써먹지 못한 것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 말았다.

“제길. 대체 얼마나 더 수련을 해야 하는 거지? 이대로라면 다음에는 반드시 질 건데…….”

방금 조환룡의 말은 괜한 위협이 아니었다. 분명히 내 어설픈 점을 간파하는 고수가 있을 테고, 그런 고수가 내 약점을 찔러오면 이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단시간에 내 약점을 메워서 검류를 완성하기도 힘들었기에 나는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 등에 업혀 있던 브라흐마가 말했다.

“반드시 진다고?”

쿠웅.

나는 브라흐마가 깨어난 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놓아 버렸다. 엉덩이를 찧은 브라흐마는 당혹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자네! 바로 놔 버리는 게 어디 있나.”

“그거 놓았다고 창조신 브라흐마가 죽을 거 같진 않았소.”

“끄응…… 방금 전에 깨어났다네. 너무하는군.”

볼멘 목소리로 말하던 브라흐마가 팔짱을 꼈다.

“나는 무예를 잘 모르지만 이대로 가면 진다는 건 무서운 얘기군. 뭐가 문제인가?”

“무예 말고는 통하지 않는 무신궁에서 당신의 조언을 받아서 하등 나아질 게 없는 것 같소만…… 방금 전에도 조환룡에게 삼 초 만에 당하지 않았소?”

“…….”

브라흐마가 할 말이 없는지 입을 쩝쩝 다시다가 말했다.

“설마 신의 힘이 무신궁에서 이 정도로 약화될 줄은 몰랐지. 이곳에서 신은 말 그대로 평범한 인간족 초능력자와 다를 바가 없을 정도네. 사실 아까 법칙조작과 시공조작도 써봤는데 그자에게는 전혀 안 통해서…… 신이라 하더라도 무공을 쓰지 못하면 여기서 버틸 수가 없겠군.”

“그런 거 같긴 하오.”

“하나 내게는 수십억 년을 살아온 지혜와 경륜이 있지. 또한 형제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무예의 소양을 접하기도 했으니 나도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군.”

“으음…….”

하긴 뭐 어차피 이대로라면 답도 없는데 한 번 의논해 본다고 나쁠 것도 없겠지?

나는 그렇게 대충 생각하고는 말했다.

“내 검술이 완전치 못한 것이 흠이오.”

나는 내가 겪고 있던 문제를 브라흐마에게 솔직히 얘기해 보았다. 솔직히 브라흐마가 해결해 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브라흐마는 내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가 말했다.

“방금 전 곤신과 상대할 때 사신지혼이라는 무공을 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이 순식간에 당하는 걸 봤기 때문이오.”

“음…… 신의 힘이 절대적으로 약화되는 공간에서 정령신과 관계된 무공 또한 약화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는 얘기군.”

“바로 그렇소.”

사신지혼으로 힘을 끌어낼 때 힘의 회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그 회전력의 근간이 되는 것 또한 신의 힘과 연관이 있었다. 원래부터 신의 그릇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 사신지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걸 걱정해서 괜히 사신지혼을 쓰다가 더 약해질까 봐 방금 전의 일전에서 사신지혼을 쓰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사신지혼의 힘을 안 빌리고 순수하게 싸우면 검술의 완성도 부족이 걱정된다라…….”

브라흐마는 자기 일처럼 고민해 주고 있다가 문득 뭔가가 떠오른 듯 말했다.

“정 그렇다면 우리 형제의 비전(秘傳)인 트리무르티(三位一體)를 써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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