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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525화 (1,424/1,615)

전생검신 81권 13화

진법에 대해서는 꽤 알고 있다.

‘망량에게서도 배웠고 이후 많은 경험과 수련을 통해 진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전문가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최소한의 파해법(破解法)과 그 원리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기둥에 새겨져 있던 팔괘를 보자마자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팔괘를 응용한 진법. 그러면 생문(生門)과 사문(死門)이 따로 있는 종류의 진법이다.’

아닐 수도 있었지만 망량에게 배운 지식에 따르면 팔괘진법은 생문과 사문을 마련하는 게 기본이었다. 왜냐하면 상대를 철저히 죽이려는 목적이라기 보다는 경우에 따라 제압하거나 안전하게 내보낼 수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살기(殺氣)가 적다는 게 특징이었지만 그에 반해 정해진 생문을 찾지 못하면 더 엄혹한 위력을 발휘하는 게 바로 팔괘류의 진법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브라흐마 또한 알고 있었는지 입을 열었다.

“생문(生門)을 찾아야겠군. 자네는 찾을 수 있겠나?”

나는 솔직하게 대꾸했다.

“솔직히 자신이 없소. 얼마나 현기 넘치고 정밀한 진법인지 모르는 이상 섣불리 움직이면 더 말려들 수도 있소.”

“그렇겠지. 그럼 여기서는 신력을 써서 해결을 해 보세.”

“신력을? 힘을 써서 다 때려 부술 셈이오?”

“힘을 써봤자 무의미할 걸세. 그래도 어디 시험이나 해 볼까.”

그렇게 말한 브라흐마가 자신의 검지를 들어서 전방을 가리켰고, 그 검지에는 단숨에 어마어마한 흑광(黑光)이 모였다.

빠직! 빠직!!

“……!!”

엄청난 힘이 응결되어 있음을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었고 그 힘의 크기는 잠시 나조차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내가 경계하고 있자 브라흐마가 말했다.

“물질계 기준으로 토성 정도는 쉽게 분해할 위력을 담았네. 이걸 한 번 쏴보지.”

투웅!

검지에서 광선이 튕겨 나가서 전방에 있던 기둥을 강하게 때렸다. 그러자 커다란 파괴음이 울렸다.

꽈과광

후두둑…….

기둥 하나가 부숴졌으나 그게 끝이었다. 그것도 완전히 무너진 것도 아니고 중앙 부분이 살짝 관통당해서 기둥에 금이 쩌적 갈라진 정도였으니, 기둥을 완전히 파괴했다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브라흐마는 그걸 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예상대로군. 이 계승지에서는 힘의 단위가 압축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나는 약해져 버렸네.”

“힘의 단위가 압축? 그게 무슨 소리요?”

“우주가 종언(終焉)으로 향할수록 옥좌의 한 점에 수렴하게 되지. 그리고 수렴되는 과정에서 광대한 우주의 모든 물질과 비물질은 대소멸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 소멸은 동시에 힘의 단위를 무한대까지 뻥튀기시키게 된다네. 그리고 본디 물질계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던 신성(神聖)들은 그 때문에 점차 존재가 작아지지.”

“……?”

“쉽게 말하자면 이 계승지는 존재간에 힘의 격차가 가장 적어진다는 걸세. 인간세상이라면 나와 평범한 인간 사이의 격차는 억만 배 이상 나겠지만, 이곳에서는 한 일백 배 정도밖에 나지 않는다는 느낌일까? 그러니 물질계에서 엄청난 위력을 내던 신력은 그 위력이 크게 쪼그라드는 거지.”

나는 브라흐마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천상지간(天上之間)이나 다름없던 거대한 우주가 극도로 압축되면서 본디 최강의 자리에 있던 신격들도 하급존재들과 평등해졌다는 말이오?”

“오, 그게 딱 맞는 비유일세. 상당히 쉽게 이해한 것 같은데 혹시 비슷한 경우를 본 적이 있나?”

“……한 번 있소.”

딱 한 번.

[옥좌]에 가던 도중에 우주의 단위가 급격히 달라지면서 [옛 지배자]들도 마치 지나가는 오징어처럼 조그맣게 변하던 바로 그 기억! 그때 느꼈던 것 덕분에 브라흐마의 말을 손쉽게 이해한 듯했다. 나는 브라흐마에게 말했다.

“당신의 힘은 그대로지만 이 진법 내에서는 본디 당신보다 약했던 존재들과 강제로 균형이 맞춰진다는 거겠구려.”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어쩌겠나. 이 시련을 만든 자가 그걸 원하는 것 같은데.”

“잠시…….”

우웅

나는 허공에 검을 띄웠다. 그리고 전방에 있던 멀쩡한 기둥을 향해 눈에 빛을 내며 일검을 발출했다.

어검술(御劍術)!

슈콱!

그러자 어검술의 강기는 단숨에 기둥 하나를 두부처럼 잘라 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뻗어 나간 강기가 단숨에 다섯 개나 되는 기둥을 베어 버리고 말았다.

“……?!”

브라흐마가 깜짝 놀라고 있을 때 나는 어검을 회수했고, 뒤늦게 기둥들이 소리를 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쿠쿠쿠쿠쿵!!

“무공은 멀쩡히 발휘되오만?”

“이, 이게 무슨.”

잠시 망연자실 해하고 있던 브라흐마가 잠시 후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

“그렇군…… 무신의 의도인가! 이곳은…….”

그때 맞은편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신궁(武神宮)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이곳은 오로지 무(武)로만 돌파할 수 있소.

파앗

나와 브라흐마의 시선이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향했다.

나타난 자는 커다란 방립(方笠)을 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으며 한 손에는 삼절곤(三節棍)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키와 체구가 작은 편이었으며 나이나 성별을 알 수 없도록 흑의(黑衣)를 입고 있었다.

흑의의 방립무사는 삼절곤을 우리 쪽으로 겨누면서 말했다.

“당신들은 나를 포함하여 총 세 명의 무인을 쓰러뜨린다면 무신(武神)을 만날 수 있소.”

“세 명이라…… 궁금한 게 있는데 이 궁에 깔려 있는 진법은 왜 깔려 있는 것인가?”

“올바른 정로(正路)를 따라간다면 배치되어 있는 무인들을 쓰러뜨리지 않고도 무신에게 갈 수 있소.”

“호오! 그런가.”

브라흐마는 흥미로운 듯 뭔가를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곳에서 나갈 방법은 무신을 만나는 것뿐인가?”

“아니오. 패배하거나 죽으면 나갈 수 있소.”

“단순하군. 그런데 그 말은 패배한다 해도 죽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나?”

“무신궁의 무인 중에서는 상대를 굳이 죽이지 않는 자도 있기 때문이오.”

“자네는?”

“죽일 것이오.”

“흐하하하하…….”

브라흐마가 한바탕 광소를 터뜨렸다.

쿠르르릉…….

그러자 이곳의 대지는 물론이고 기둥이 전체적으로 한 번 뒤흔들렸다. 심상치 않은 기파에 나는 물론이고 맞은편에 있던 흑의의 무사도 흠칫했고, 브라흐마는 눈에서 혈광(血光)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브라흐마. 창조신인 브라흐마다. 너의 이름을 밝히거라!”

틀림없다.

브라흐마가 아까 내뿜었던 그 광선은 진짜 힘의 티끌만큼도 쓰지 않았던 것이리라.

눈앞의 브라흐마 또한 삼황오제에 맞먹는 존재! 아무리 이 무신궁에서 힘의 단위가 압축되어 균형이 맞춰진다 하더라도, 은하계를 주무르는 대신(大神)이 전력을 발휘하게 되면 차원이 다르리라.

흑의의 무사는 삼절곤을 들고 절곤법의 기본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무신백좌(武神百座) 곤신(棍神) 조환룡(曺瓛龍)! 한 수 부탁하오.”

“……!!”

무신백좌?!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은 것인가?!

나는 무신백좌를 여기서 볼 줄은 몰랐기에 급히 뭔가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때 브라흐마가 손을 내저으며 나를 가로막았다.

“백웅. 여긴 내게 맡겨보게.”

“브라흐마.”

“내게 운명을 맡긴 형제들의 인과율까지 이번 첫 시련에 걸려있네. 나 범천이 홀로 첫 난관을 통과할 수 없다면 내 형제들까지 욕 먹이는 짓이지.”

브라흐마의 긍지를 단숨에 느낄 수 있는 한마디였다. 그러자 그런 브라흐마의 말을 들었는지 곤신 조환룡은 그 자세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말했다.

“둘이 같이 덤벼도 상관없소. 무신궁에서 도전자는 합공이 가능하오.”

브라흐마는 피식 웃었다.

“무신을 따르는 의문의 무인집단…… 무신백좌라는 게 있다는 건 이미 [천지를 보는 눈]으로 알고 있었다. 허나 너희가 생전에 뛰어난 무예를 성취했다 하더라도 어차피 하찮은 인간의 수준.”

“…….”

“나는 전력을 다하겠노라. 과연 진정한 신의 힘을 상대로도 그런 오만을 부릴 수 있을지!”

츠아아아

브라흐마의 전신에서 휘광이 일어나며 엄청난 신력이 폭풍처럼 일어났다. 동시에 그의 몸이 아까 내 앞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삼면육비의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고, 그의 손에는 한 자루의 활(弓)이 소환되어서 들려졌다.

‘바깥세상이었다면 저 정도 신력을 발휘했다면 이미 항성계가 진동했겠지……!!’

신격을 여럿 상대해본 나는 알 수 있었다.

‘브라흐마는 지금 세 개의 영혼을 단숨에 조화시켜서 최고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시바, 비슈누가 지닌 파괴와 유지의 권능에 자신이 가진 창조의 권능을 조합하여 단시간이지만 비슷한 위격의 삼황오제보다 한 단계 위의 권능을 발휘하는 기술! 브라흐마에게서 신력을 전해 받은 나는 브라흐마가 어떤 힘을 쓰는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브라흐마 또한 지상계에 남아있었다면 충분히 황제 공손헌원조차 긴장할 만한 최상위 신격이 틀림없는 것이다.

고오오

브라흐마의 신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그는 천천히 자신의 활을 겨누어서 곤신 조환룡을 겨누었다.

[아무리 신력이 제약되었다 하더라도 이 무신궁에서도 충분히 고유권능의 특성은 발휘되는 것 같군. 네놈은 감히 최고신을 능멸한 대가를 치르거라.]

“오시오.”

[받아라!!]

투웅 - !!

그 순간 내 눈에는 보였다. 브라흐마의 화살이 활시위를 떠난 순간, 비슈누의 기(氣)가 활을 감싸서 그 어떠한 외부의 공격에도 화살이 상하지 않게끔 한 것이다. 또한 동시에 화살촉의 끝에는 파괴신 시바가 지닌 강맹한 파괴의 힘이 실렸으며, 브라흐마는 자신의 화살이 무조건 맞게끔 창조의 권능을 이용해서 인과율을 조작해 버린 것이다.

‘무조건 명중하는 파괴신의 화살이 되어 버렸어!!’

저건 절대로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순간 - 곤신 조환룡은 시간이 멈춘듯한 찰나에 나직이 한마디를 했다.

“그대야말로 무신궁에서 무예를 쓰지 않는 오만의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신역절기(神域絶技)

창화신곤(蒼火神棍)

까앙!!

다음 순간 곤신 조환룡의 삼절곤이 빠르게 움직였고 그의 곤 사이의 철쇄(鐵鎖) 사이에 그대로 화살촉이 걸렸다. 그리고 화살촉이 파괴신의 기운을 머금고 폭발하려는 순간, 조환룡의 삼절곤은 어마어마한 화염을 내뿜으며 불탔다.

‘저게 막아 지나?!’

분명히 인과를 조작해서 공격한 거라 저런 방식으로는 안 막아 질 텐데 어떻게 한 거지?!

내 놀라움을 뒤로 하고 곤신 조환룡은 거대한 화염의 힘으로 파괴신 시바의 기운을 그대로 되치기하듯 힘을 아래로 전달했고, 그 절묘하고도 완벽한 화경(化經)은 나로 하여금 하나의 경지를 떠올리게 했다.

‘차경환력(借經換力)!’

화경이 극의에 이르게 되면 경 그 자체를 힘으로 바꾸어 단 하나의 손실도 없이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경지!

태극권 또한 이 경지를 추구하고 있었으나 사실 차경환력에 이른 건 역사상 장삼봉 진인 하나뿐이었고 나는 아직 저 경지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실상 불가능한 개념이었고 불가능한 만큼 절대고수만이 저 기술의 극한을 시전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투웅!

차경환력의 묘(妙)로 필중의 화살을 버텨낸 곤신 조환룡은 그대로 휘릭거리는 삼절곤을 내뻗어서 브라흐마를 공격했고, 브라흐마는 당연하다는 듯 신력으로 방어막을 쳐서 막아내었다. 그러나 방어막에 삼절곤이 닿으려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았다.

포룡(捕龍)!

절기(絶技)가 발휘되며 신력의 방어막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무시당했고 그대로 곤신 조환룡의 일격이 브라흐마의 명치를 격중시킨 것이다!

“쿨룩.”

브라흐마는 그 일격을 맞자마자 신화(神化) 상태가 풀려서는 울혈을 토해내었고, 이어서 조환룡은 그대로 달려들더니 상단 발차기를 날려서 브라흐마의 두상을 흔들리게 한 후 삼절곤의 끝을 잡은 채 그의 목을 때렸다.

“하압!”

단 한 수였지만 그 연계기에는 단 한 줌의 낭비도 없었다.

콰직

풀썩

브라흐마가 단숨에 기절해 버리자 곤신 조환룡은 자신의 삼절곤을 회수하여 다시 기본동작을 잡은 후 내 쪽을 향했다.

“다음 도전자는 그대요?”

“…….”

나는 조환룡이 삼 초도 되지 않아서 브라흐마를 때려눕히는 걸 보고는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무신은 얼마나 센 거요?”

“붙어보면 알 것이오.”

“그거참 괜찮은 대답이군…….”

스릉

나는 씩 웃으며 검을 들었다.

“한 판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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