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522화 (1,421/1,615)

전생검신 81권 10화

브라흐마!!

나는 분명히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기에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나의 형제 시바여, 도망쳐서 브라흐마에게 귀의(歸依)하라!]

[이놈은 절대 이길 수 없다. 삼법(三法)의 결맹(結盟)으로 후일을 도모하라……!]

외우주에서 비슈누가 흉신에 맞서 싸우다가 중과부적임을 깨닫고 자신의 형제인 시바에게 도주하라고 권했던 바로 그때! 비슈누는 시바에게 브라흐마에게 갈 것을 권유했지만 시바는 그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모두 싸우다가 흉신에게 살해당했었다.

또한 나는 최근에 수보리에게 브라흐마에 대해서 들은 적도 있었다.

[비슈누, 시바, 브라흐마 세 명을 가리켜 천축의 삼대신이라 하지. 그들은 본디 질서의 신성이었는데 초고대문명인 칼파를 수호하고 있다가 수십 수백이나 되는 [옛 지배자]들과 전쟁을 벌이게 되었어. 그들은 하나하나가 강력한 신이라서 일대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으나, 수적으로 중과부적이라 결국 패배를 앞두게 되었지.]

[삼대신 중에서 대장이라 할 수 있는 브라흐마는 전쟁의 결과를 뒤집기 위해 역천의 비술을 시도했네. 그것이 바로 대역행…… 브라흐마스트라.]

[자네 짐작대로일세. 지금 자네가 하는 것처럼 [큰 굴레]를 되돌려서 전쟁을 하기 전으로 만드는 대주술을 시전한 것이야. 전쟁을 하기 전으로 되돌아가면 상대의 약점부터 찔러서 무조건 이겼을 테니까.]

[그래, 불가능한 일일세. 허나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한 브라흐마는 대우주의 금기를 깨뜨리는 브라흐마스트라의 시전을 위하여 그 대역행의 근간이 되는 무수한 제물을 모으기 시작했네. 그리고 그 제물을 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보조주술이 바로 마도사축인 걸세.]

마도사축이라고 하는 강력한 주술을 창조한 것이 바로 브라흐마.

그리고 그가 마도사축을 만들었던 목적은 바로 역천의 비술, 브라흐마스트라를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날카로운 눈으로 브라흐마를 노려보았다.

“범천(梵天) 브라흐마. 당신은 브라흐마스트라를 써서 과거를 바꾸려 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 결과가 바로 여기 [옥좌]의 내부로 오는 것이었단 말이었소?”

원래라면 상대를 경계하여 내 정보를 섣불리 주지 않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의문의 장소에서 상대가 많은 정보를 쥐고 있는 게 틀림없는 데다가 사공린이 얘기한 바에 따르면 브라흐마는 내가 이 장소에서 새로이 만날 인연이었다. 신뢰 관계가 될 확률이 높아 보였기에 일단은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

“흐으음!”

“마도사축을 써서 여기 온 건가?”

브라흐마는 내 질문을 듣자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훗 하고 웃으며 대꾸했다.

“과연 심상치 않은 존재로구나.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니 굳이 부정하지 않겠네.”

“이해가 가지 않는데…….”

“허허, 백웅이여. 뭐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겐가?”

나는 손가락으로 브라흐마를 가리켰다.

“나는 당신이 사라진 후 수만 년 후의 시대에서 왔소. 내 시대에서 당신은 흔적도 찾기 힘들게 되었고 아마 당신의 행적을 아는 건 형제인 비슈누와 시바뿐일 텐데, 그들은 황제의 만신전에 기어들어 가 부하로 전락하고 말았소.”

“…….”

“결론적으로 당신이 [큰 굴레]를 바꾸지 못했기에 비슈누와 시바가 패배의 운명에 순응한 게 아닌가 싶소. 그러면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이 할 일은 무의미하지 않은가.”

“흐음…….”

브라흐마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얼굴에 묘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예상했던 일일세.”

“예상했다니? 무슨 소리요?”

“그러니까 자네 말은 내가 [큰 굴레]를 바꾸는 게 실패한 과거가 확정되어 있기에 이 자리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거겠지. 시간의 순서로 보면 그게 맞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일세.”

“……모른다고?”

“백웅이여. 그대는 이 장소가 어떤 장소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브라흐마의 반문에 주변을 슥 하고 둘러보았다. 이 동굴 곳곳에 널려 있는 초고대의 유적 같은 게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 유적들은 아까 보았다시피 전혀 인간종족의 것이 아닌 듯했으며 그 근원조차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마도지식으로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었기에 별수 없이 자신 없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겠소.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소.”

“이곳은 바로 계승지(繼承地)라고 하는 장소일세.”

“계승지?”

브라흐마가 근처의 고대양식 기둥을 손으로 만졌다.

“여기에 보이는 저 유적들은 사실 천지를 보는 눈이 있는 나 브라흐마조차도 그 유래를 알 수가 없는 것들이야. 본좌는 억겁의 세월 동안 무수한 우주의 문명을 보고 수많은 마도지식을 갖고 있음에도 이런 건 들은 적도 없어. 어째서라고 생각하는가?”

이 유적들을 나만 모르는 줄 알았는데 브라흐마도 모른다고? 나는 그 대답을 의외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음…… 우주의 외딴곳에 있어서?”

“후후. 그게 아닐세. 왜냐하면 처음부터 우리 우주에 이 문명은 존재치 않았기 때문이야.”

“……그게 무슨 소리요? 존재하지 않는 문명이 존재한다니 그게 모순 아니오?”

“모순이 아닐세. 왜냐하면 이 장소는 [큰 굴레]를 계승하는 접점(接點)이니까.”

“접점……?”

뭔 소리하는 거지?

내가 이해가 안 돼서 약간 당황하자 브라흐마가 눈에 이채를 띄었다.

“이런. 지혜가 무척 뛰어난 줄 알았는데 지식만 많은 거였군. 그대가 꺼낸 정보의 수준으로 볼 때 이 정도면 바로 알아들었을 줄 알았는데.”

“젠장. 괜히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마시오. 당신 말대로라면 우리한테 그리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잖소.”

“그렇군.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이 유적들은 이전의 [큰 굴레]에 존재했었던 것이고 지금의 [큰 굴레]에는 남아 있지 않은 것들일세. 그러나 계승지는 이전 굴레를 포용하고 있기에 우리가 이 유적을 볼 수 있는 것이지.”

“……!!”

나는 브라흐마의 말에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는 말도 안 된다 생각해서 말했다.

“아니 잠깐! 그게 무슨 소리요? [큰 굴레]가 그런 식으로 구분될 수가 있는 거요? 대체 어떻게.”

“충분히 가능하지. 어차피 그대와 내가 살아가는 굴레는 이미 셀 수 없는 횟수만큼 전륜(轉輪)했고, 전륜하고 있으며, 전륜할 것이다. 그러나 인과의 수레바퀴에서 원주(圓周)가 한 번 형성된다면 전륜 위에 서 있는 자들이 과연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게 가능하겠는가? 앞과 뒤를 볼 수는 있으나 그게 어째서 원인지는 실감하기 힘들지.”

“…….”

“우리는 [큰 굴레]의 과거를 관측할 수 없네. 적어도 [큰 굴레]의 내부에 존재하는 한은 말일세.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바퀴가 돌았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으니 그걸 바로 이 계승지가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브라흐마가 말을 이었다.

“이 장소는 따지자면 [큰 굴레]가 바퀴를 돌아서 시작지점과 맞닿는 유일한 장소일세. 원과 원이 완벽하게 겹치며 무한의 굴레를 관측할 수 있는 곳. 동시에 본디 관측할 수 없는 이전의 굴레를 볼 수 있으며, 접촉할 수도 있지…….”

나는 브라흐마의 말이 어렵다 생각했지만, 얼추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러자 궁금증이 생겨서 말했다.

“[옥좌]의 내부가 그런 계승지였다고? 당신은 대체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이오.”

“꼭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네만…….”

“윽…….”

내가 주춤하자 브라흐마는 큭큭대며 웃었다.

“농담일세. 확실히 이곳의 정보는 외부인이 아는 게 원칙적으로 불가하지. 옥좌의 시련을 뚫고 오는 건 신조차도 불가능하고 이곳에 온 자는 결국 자신의 소망을 이루게 될 터이니 바깥에 정보를 알릴 이유가 없어. 문헌이든 기록이든 남을 수도 없고. 헌데 단 하나 맹점이 있긴 하지.”

“맹점?”

“나처럼 태초부터 창조신(創造神)의 속성을 갖고 태어난 존재라면 굳이 이곳에 오지 않더라도 이 장소가 존재하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일세.”

“……? 아니,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이건 내가 머리가 나쁜 게 아닌 것 같은데 설명 좀 해 주시오.”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브라흐마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거기 잠깐 앉게.”

서로 바위에 앉은 채 마주 보게 되자 브라흐마가 말을 이었다.

“나와 형제들은 각각 다른 신성을 지닌 채 탄생했네. 나는 창조(創造), 비슈누는 유지(維持), 시바는 파괴(破壞). 사실 우리는 원래 하나의 존재였고 하나의 신좌를 갖고 있었네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신으로서 탄생하여 강림할 때 셋으로 쪼개진 사례야.”

“그건 몰랐구려. 그럼 신들끼리 전쟁을 할 때 셋이 하나로 합쳐져서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았소?”

“아니, 굳이 하나로 합쳐질 필요는 느끼지 못했네. 어차피 전투에 필요한 능력이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고 신좌를 가지러 회귀해야 할 이유도 없었으니…… 셋이 각각의 특색있는 신성을 이용하기에 하나가 되면 더 약해질 수도 있었어.”

“흠…….”

“아무튼 각자의 특성을 살린다는 건 그 힘의 근원을 신력으로 구현화할 경우 이 우주의 누구보다도 전문가가 된다는 거지. 비슈누보다 유지의 권능을 잘 쓰는 자는 없고 시바보다 파괴의 권능을 잘 쓰는 자는 없다. 헌데 나, 브라흐마는 형제들에게도 밝힌 적은 없지만 [창조]의 힘을 사용하면서 한 가지 비밀을 알게 된 것일세.”

“비밀?”

브라흐마는 자신의 검지를 마주쳤다.

“창조란 무엇인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헌데 세상에 진정한 무(無)가 존재하는가 하면 그건 아닐세.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하며 사실 내가 쓰는 창조의 권능은 비존재를 존재의 영역으로 끄집어내는 작업일 뿐이야.”

“…….”

원래라면 브라흐마의 말을 무슨 개소리냐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공(空)에 대해 크게 탐구한 적이 있었으므로 어렴풋이나마 그의 말에 어떤 의미가 잠재되어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브라흐마는 내가 이야기를 알아들은 기색이 보이자 왠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그 경계란 어디에 존재하며 무엇인가? 나는 어느 지점에서 없는 존재를 끌어와서 존재로 구현화 하는 것인가? 나는 그 사실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수련하다가 마침내, 내가 쓰는 창조의 권능이 극대화되는 어떤 장소가 존재한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 거지.”

“그 장소가 설마…….”

“바로 여기일세. [큰 굴레]가 겹쳐서 접지(接地)하는 유일한 장소! 나는 이곳의 존재와 위치를 깨닫게 되자 무슨 수를 써야 여기에 올 수 있을지 오랫동안 고민했고, 이곳이 사실은 [옥좌]이며 시련을 정면으로 뚫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것도 알았네.”

“왜 말이 되지 않소?”

그러자 브라흐마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외신이 지키니까.”

“아…….”

“반대로 그걸 정면으로 뚫고 온 자네가 참 대단하긴 하군…….”

브라흐마는 왠지 나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기색이었다. 단지 그걸 캐어묻지 않을 뿐인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기색을 눈치채고는 일부러 말을 돌렸다.

“아무튼 당신은 뒷길을 만들어서 이 계승지에 와서 [큰 굴레]를 바꾸려 한 거구려. 그게 바로 마도사축을 이용해서 제물을 공양하고 브라흐마스트라를 시전한 거였고.”

“그런 셈이지. 더 이상 설명할 것도 없어.”

“으음…… 그런데 시련관이란 게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오? 그게 꼭 있으리라는 보장이 있소?”

“[목소리]를 들었거든.”

“목소리?”

브라흐마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내가 제물과 의식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내 능력만으로 이곳에 오는 게 허용되었겠는가? 당연히 이 계승지를 유지하는 어떤 위대한 존재의 허락을 받은 것일세. 그리고 그 존재는 내가 이곳에서 [큰 굴레]를 바꾸고자 한다면 반드시 시련을 통과해야 하리라고 말해주었지.”

“…….”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당신이 그 시련관을 쓰러뜨리고 넘어서면 과거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 그 소리구려.”

“맞네. 아마 자네도 그럴걸세.”

“근데 여전히 아까 말했던 의문은 해소되지 않잖소? 내가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당신이 실패한다는 의미…….”

브라흐마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아니야. 반대지. 나는 자네와 만난 순간 성공할 수도 있다고 희망이 생겼네. 실패해야만 하는 운명은 이미 달라졌어.”

“엉?”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브라흐마가 실패한 미래에서 온게 바로 나인데 왜 저런 소리를?

“자네한테 미주알고주알 정보를 다 말해준 것도 그것 때문이지. 자네의 속내와 마찬가지로 나도 자네의 신뢰는 얻을 필요가 있거든.”

히죽 하고 웃은 브라흐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가볼까.”

“이곳의 지형을 아시오?”

“이 고대문명의 유적을 잘 보게. 무작위로 배치되어있는 것 같아도 하나하나에 기묘한 문양이 새겨져 있지. 저 문양의 흐름을 잘 보면 가야 할 길을 표시하고 있어.”

“…….”

“따라오게.”

저벅

나는 앞장서는 브라흐마를 홀린 듯이 따라서 걸어갔다. 그리고 수상쩍게 여겼다.

‘문양의 흐름으로 길을 알 수 있다고? 그게 가능한가?’

아무리 창조신 범천 브라흐마라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의심하고 있을 때 브라흐마가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이 입을 열었다.

“자네는 아직 상급 신의 능력에 익숙지 않아 보이는군. 허나 나 정도 위격이면 다들 곧잘 하는 일일세.”

“……정말 길이 보인단 말이오?”

“그래. 완전한 인과율 계산능력까진 아니라도 만물에 존재하는 창조의 기운을 내 뜻대로 해석하여 짧은 미래 정도는 다 알 수 있지. 자네도 수억 년 정도 살아보면 할 수 있을 거야.”

“…….”

저벅…… 저벅…….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최소 세 갈래에서 다섯 갈래는 되는 갈림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브라흐마의 선택에 황당해질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지나친 갈래만 하더라도 수십 번이 넘는데 이 모든 확률을 합치면 천문학적인 확률이었다. 그런데도 브라흐마는 자신이 택하는 게 정답이라는 듯 거침이 없었던 것이다.

멈칫

마침내 브라흐마가 걸음을 멈추었다. 눈앞에는 커다란 공동이 있었고 공동 한가운데에는 초고대의 궁전 같은 건물이 보였다.

“도착했군.”

“저건…….”

“아마 이전의 [큰 굴레]에 존재했던 황궁일 걸세. 그리고 우리가 시련을 통과할 장소이기도 하겠지.”

“흐음. 저 안에 시련관이 있단 말이겠군…….”

또다시 싸울 준비를 하는 내게 갑자기 브라흐마가 말했다.

“그 전에 할 말이 있네.”

“무슨?”

이어진 브라흐마의 말에 나는 흠칫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여기서 비슈누와 시바의 권능을 나한테 배워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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