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521화 (1,420/1,615)

전생검신 81권 09화

외신의 노래가 멈추는 순간.

나는 내 주변에서 수많은 영(靈)이 새하얀 안개구름처럼 변해서 승화(昇華)하는 걸 느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억만(億萬)의 영이 한꺼번에 휘몰아치며 세계의 한 점에 새겨진 상흔(傷痕)의 틈새로 비집고 나가는 게 보였다. 대웅제국의 검(大熊帝國之劍)이 만들어낸 기적은 부유하던 외신을 침묵시킨 게 틀림없었다.

크그그그

알 수 없는 괴음성과 함께 외신의 몸이 잠깐 꿈틀거렸다. 그 존재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하는 기색이었고, 그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에 새하얀 빛이 쉴새 없이 천공으로 쏟아졌다.

‘해냈다!!’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늘 신역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이번에 펼쳐진 일검(一劍)으로 대번에 신역의 감각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아직은 명확하게 나만의 신역절기를 형성할 수 없었지만 ‘마음’ 그 자체가 어떻게 해서 신역절기를 구성하는지 본능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다만 이게 신역절기라기엔 뭔가 다른 거 같긴 했다.

외신을 절단했던 기술은 단순히 일참(一斬)에 불과했지만 수백억의 마음을 담아서 펼친 일검이기도 했다. 그저 내게로 쏟아지는 마음을 그대로 검으로 옮겼을 뿐인데 이 정도의 위력이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마음이 이어지는 것은 감각만으로는 할 수 없다…….’

역근세수경에서의 성찰이 없었다면 결코 이번에 무공을 펼칠 수 없었으리라.

내가 절대무공을 펼쳐낸 감흥에 잠시 몸을 떨고 있을 때 여러 인영들이 내 근처를 스쳐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귓전에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먼저 떠난다…….]

[부디 뜻을 이루시기를…….]

그 목소리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나는 그 목소리 하나하나를 새겨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목소리가 쌓여서 내 마음을 두드릴수록 나는 알 수 없는 울컥함을 느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는 백웅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다짐하듯 외쳤다.

“그리고 대웅제국의 황제 백웅이다!!”

내게 신명을 맡긴 모든 이를 위해서라도, 절대 이런 곳에서 꺾이지는 않겠어!!

다시 한번 결의를 다지고 있을 때 나는 나 또한 저절로 탈출을 하나 싶어서 가만히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나 별다른 일이 없었고 나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질 때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

우우

‘황금색 달이…….’

회전한다.

천공에 멈춰있던 황금색의 달이 서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것은 자전(自轉)이었으며 전륜(轉輪)이었고, 금월(金月)의 움직임이 강해짐과 동시에 천공을 움직이던 외신의 잔영들이 서서히 멈춰가는 걸 보였다. 당초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던 잔영들이 마치 2차원에 붙박이듯이 박제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이상한 기분이다. 외신의 노래가 멈추어서 대웅제국의 영들이 소멸당하는 걸 잠시 멈추었는데 이 기분 나쁘고 불길함은 어째서일까?

저릿저릿

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였다.

슈슈슉

아직도 내 근처에 있던 대웅제국의 수많은 영들이 빠르게 사라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거의 모두가 사라졌고 종래에는 내 근처에서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앗?!”

전부 소멸했단 말인가?!

나는 크게 당황했지만, 그때 아수라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백웅. 사라진 자들은 이 공간에서 벗어났다. 네가 기적적으로 활로를 만들어준 셈이니 그들을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 아수라! 벗어났다니? 소멸한 게 아니란 말이지!”

[…… 크게는 다르지 않겠지만 최악의 상태는 면했다 할 수 있지. 적어도 외신의 장난감이 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리고 널 돕기 위해 몇몇은 아직 남아 있다.]

상황을 설명해 준 아수라가 연이어 말했다.

[백웅. 방금 전의 일검은 분명한 신역(神域)이었다. ‘마음’ 그 자체를 쏟아붓는 것이라 하면 기술의 경지는 몰라도 신역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걸로 만족할 때가 아니야.]

“……?! 외신을 베었으니 이제 탈출시켜주지 않을까.”

[그 존재가 원하는 건 좀 더 확실한 자격을 보여주는 것 같군…….]

쿠구구

아수라와 잠깐 얘기를 하는 사이에 황금의 달이 더욱 빠르게 회전하는 게 보였다. 나는 곤혹스러워서 중얼거렸다.

“저 황금의 달은 대체 뭐지?”

[암천(暗天)에 이어진 달이에요.]

“사공린.”

내 의문에 대꾸한 것은 바로 사공린이었다. 내 곁에 사공린의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는 황금의 달을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저 달은 평상시에는 세계의 일부지만 달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존재. 또한 가장 그릇된 존재를 상징하는 표상(表像). 세계가 생겨나기 전부터 존재하며 계승되어온 저것은 큰 굴레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 중 하나입니다…….]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것보다 사공린 너는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지?”

쿠우우

황량한 대지에 선 사공린은 황금빛 달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당신이 저를 구해내기 전, 저는 황제 공손헌원의 영혼과 완전히 동화되면서 그의 기억과 지식을 흡수했어요. 그의 기억에 따르면 황제 공손헌원이 본질을 찾기 전에는 바로 저 황금의 달에서 태초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황제의 요람 같은 장소인 거죠.]

“……!!”

황제 공손헌원의 요람?

슈슉

내가 놀라자 사공린이 사라졌고 대신에 천우진이 출현했다.

[외신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이제야 시작이다.]

“노래를 멈추는 걸로 끝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지?”

[그 전에 넌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냐?]

“여, 여기는…….”

그러고 보니 여기는 어디지?

외신이 마구 노래를 불러대는 이 황량한 미친 대지는 대체 뭐란 말인가?

[어딘지는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고.]

내가 할 말을 잃자 천우진은 흰 가운에서 전자담배를 꺼내서 피더니 후욱 하고 연기를 불었다.

[좀 더 직관적으로 말해주지. 저 황금빛 달은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최종보스를 등장시키는 트리거다. 황제가 칠요의 시련을 만들었던 것은 아마 저 달에서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거다. 저 황금의 달을 연상하고 일요를 제작했을 게 분명해.]

“트리거(trigger)?”

[트리거 뜻 정도는 알지? 어떤 이벤트가 발생하는 한정조건이다.]

“그거야 뭐…… 근데 천우진 네가 게임을 예시로 들다니 의외구만.”

[허무의 전뇌공간에서 아수라와 오랫동안 얘기하다 보면 나도 게임에 익숙해지더군.]

“…….”

[물론 그 최종보스는 절대 쓰러뜨릴 수 없는 존재. 적어도 지금 네 힘으로는 불가능해. [검은 산양]도 네게 그런 걸 바라지는 않을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네가 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천우진이 손가락 두 개를 내세우며 말했다.

[첫째. 저 황금빛 달의 회전을 멈추어서 트리거 발동을 멈춘다. 저 달은 지금은 자전을 하고 있을 뿐이지만 공전(公轉)을 시작하면 모든게 끝날 것이니. 둘째. 진정으로 이 공간을 탈출할 수 있는 또 다른 트리거를 찾는다.]

“……!! 탈출할 수 있는 또 다른 트리거?! 정말 그런 게 있을까?”

[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게임의 법칙대로라면 공정성을 위해 존재해야만 해. 확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승리확률을 0 퍼센트로 만들면 그건 게임으로서 성립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으음.”

[외신들은 전생자에게 간섭할지언정 게임의 룰 그 자체를 바꾸지는 못해. 아마 천암비서가 막기 때문에…….]

논리정연하게 설명을 한 천우진은 전자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겨서 땅에 버리고는 말했다.

[지금 너는 결정을 해야 한다. 황금빛 달의 회전을 멈추기를 시도할지, 아니면 어디 있을지 불분명한 탈출 트리거를 찾아낼지를.]

“…….”

[외신의 노래가 멈춰있는 지금이 기회다. 마음을 정하고 움직여.]

슈욱

천우진의 환영은 그 조언을 끝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즉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황금빛 달을 공격하는가?

아니면 탈출 트리거를 찾는가?

나는 어느 쪽의 확률이 더 높을지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러던 중 문득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끄응…… 이것도 양자택일이잖아?’

언제나 그렇듯 나는 양자택일이 정말 싫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 강요당할수록 더더욱 큰 거부감이 들었다. 왜 거부감이 드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선택을 해야 한다는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보류하기로 마음먹었다.

‘저 하늘의 외신들도 잠시 노래를 멈추었고…… 일단 상황을 살펴보자!’

뭘 좀 알고 나서 움직여도 늦지는 않을 거 같아!

나는 안력을 돋우어서 저 멀리에 있는 황금의 달을 쳐다보았다. 역시 회전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었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진동하고 있는 듯했다. 저것의 실체는 알 수 없었지만, 전신에서 위험하다는 경고를 보내는 걸 보면 엄청나게 흉흉한 존재인 게 틀림없다.

황금의 달에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 하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황금의 달에서 뒷걸음질 치려다가 뭔가를 깨달았다.

‘저 황금의 달이야말로 이 황량한 대지의 중심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까 천공에서 빙빙 돌고 있던 외신들은 원형을 그리고 있었고 그 원의 중심점은 바로 저 황금색 달인 것 같았다. 지금이야 외신들이 멈춰있어서 잘 보이지만 아까는 외신들의 압박이 거세서 잘 깨닫지 못했던 점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자 그동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가 내 머릿속을 강타하는 걸 알아차렸다.

‘…… 어려운 시련을 내놓는 놈들일수록 그 해답에서 시련을 쉽사리 비껴가는 편법을 만들어놓지 않아!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해야만 틈새를 볼 수 있게 만들어놓는 법이야! 그렇다면…….’

천우진이 말했던 ‘탈출 트리거’는 바로 저 황금의 달 근처에 가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기가 이 공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며 중심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이 공간을 만든 존재라면 당연히 그렇게 배치해놓을 것 같았다. 그 알 수 없는 존재의 악취미적인 성격을 나는 왠지 이해할 것 같았고, 나는 내 직감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섣불리 다가가면 몸이 분해될지도 몰라. 최대한 신력을 몸 근처에 둘러보자.’

파칭!

잠깐 쉬었기 때문인지 아까 외신의 노래를 들으면서 넝마가 되었던 몸뚱이가 회복되면서 신력의 방어막이 다시 차오르는 듯했다. 아직까지 사대신기는 전혀 회복되지 않았지만, 외신이 직접 신기의 소환을 막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의념과 내공은 멀쩡히 쓸 수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군…….’

저벅…….

나는 황금빛 달에 서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리가 약 백여 장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나는 서서히 몸 전신에 간지러움과 으슬으슬한 추위가 피어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으윽…….”

나는 해괴한 느낌에 몸서리를 쳤지만 이윽고 전신에 두르고 있던 신력방어막이 마치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는 걸 알아채고는 흠칫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껍질이 벗겨지는 속도는 더 빨라지는 것 같았다.

‘신력의 방어를 벗긴다고?! 그 말은…….’

물리법칙조차 무시하는 신력으로도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소리다! 우주의 검은 구멍에 들어갔을 때조차 멀쩡했던 신력의 방어막이 벗겨진다는 건 절대 가벼운 의미가 아니었다. 이 앞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아까 외신의 노래를 들었을 때처럼 가공할 압박과 고통이 중첩되리라.

괜히 마음이 급해진다. 자칫했다가는 뭘 해보지도 못하고 황금빛 달 아래에서 분해되어 사라지는 게 아닌가?

“허억…… 헉…….”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불안함과 초조함이 기력의 소모를 증대시키는 것이다. 나는 이마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한걸음씩 나아가며 이를 악물었다. 이미 기호지세라서 내릴 수가 없는 상태에서 앞으로만 가야한다는 압박감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중했다.

약 오십여 장을 더 접근했을 때였다. 이제 황금빛 달은 처음 보았을 때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였고 동시에 위잉거리는 기묘한 이명(耳鳴)이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윙 윙 윙

‘어억…….’

무슨 이런 미친 마력이…….

나는 그 이명을 듣자마자 정신이 나가면서 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순간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고함을 쳤다.

[정신차리게!]

번쩍!

나는 단숨에 정신이 드는 걸 느꼈다. 내가 비틀거리자 옆에서 환영이 나타나서 나를 부축해주었다. 나는 희미한 눈으로 그 환영을 보며 말했다.

“도, 독고성.”

[쉽지 않음을 알고 있네. 허나 여기서 포기하면 끝장일세.]

“…….”

저벅…….

나는 독고성의 부축을 받으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꺼지는 눈으로 바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원망스럽지 않소?”

결국 독고성도 종말에 휘말려 죽었다. 아니, 그 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나타난 모든 대웅제국의 영들은 내가 28회차의 파멸을 막지 못해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자 독고성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미 자네의 실제 나이는 나보다 더 많을 텐데 전생할 때마다 어린 척하는 게 좀 어이없긴 하군.]

“…….”

[어차피 우주의 절대 악신들과 싸우는 바에야 생과 사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매번 새로운 무의 경지를 볼 수 있어서 기쁠 따름이었네.]

“무의 경지…….”

[아쉬운 게 있다면, 그래, 신의 모가지에 칼 한번 박아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는 것뿐이겠군. 나도 태허합진 쓸 줄 알았는데.]

저벅…….

걸음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걸었을 때 독고성의 환영이 갑작스럽게 희미해지며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깜짝 놀라자 독고성은 내 어깨를 놓고는 훗하고 웃었다.

[백웅. 뇌신류의 사제관계를 떠나서 늘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무엇이오?”

철컹!

거칠고 투박하게 검(劍)이 검집을 뛰쳐나오는 소리!

독고성이 사라져가면서도 검술의 자세를 잡았다. 그것은 바로 뇌신류 검술, 뇌신검무(雷神劍舞)의 기수식이었다.

그의 눈이 창연한 푸른빛을 번쩍이기 시작했다.

[종사여. 끝까지 뇌신류의 검(劍)을 잊지 않아 줘서 고맙다!!]

신역절기(神域絶技)

무진승검뢰(無盡昇劍雷)!

그 순간 -

독고성의 검에서 빛이 뛰쳐나왔다. 뛰쳐나왔다고 표현한 것은 말 그대로 그가 발검(拔劍)하는 순간 시공간이 단절된 사이에서 그의 검강(劍罡)이 쭈욱 천지간(天地間)을 관통하여 베어 갈랐기 때문이었다. 검강은 바로 내가 늘 보아왔던 검뢰 그 자체였으나 나는 그 검뢰가 보이지 않는 것을 베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베고 있다…….’

참의(斬意)!

독고성의 몸뚱이는 빛의 가루가 되어 휘날리고 있으나 그 와중에도 그의 검만큼은 백색의 휘광을 머금은 채 천지를 토분(討分)하는 절세의 검기(劍技)로써 끊기지 않았다. 그의 의지 그 자체가 검이 된 듯한 그 한순간은 차라리 장엄하기까지 했다.

느껴진다 -

이 공간에 가득 차 있는 수수께끼의 절대적인 악의(惡意)와 마력(魔力) 일체가 단 하나의 섬광에 베어 갈라지는 그 실체가! 독고성의 검뢰가 지극한 마음을 품고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참(斬)하는 하나의 칼날으로 승화하는 광경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었다.

촤좌좍!!

독고성이 완전히 소멸했으나 그가 남긴 무진승검뢰의 빛은 마치 대해를 베어 가른 참격처럼 혼돈의 마력을 모조리 걷어내고 내 앞에 하나의 길을 만들어놓았다. 빛이 남아 있는 길은 마치 내게 빨리 가라는 듯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고, 나는 그 길을 보는 순간 전율했다.

‘검로(劍路)다……!!’

이것은 검객 독고성의 모든 인생을 걸고 만들어낸 필생의 검로.

말이나 묘사로는 세인(世人)들이 흔히 인생과 검로를 논하고는 했으나, 이건 차원이 달랐다.

자신의 인생 그 자체를 검로로써 벼려내는 자가 있을 줄이야!

쿵!!

나는 진각을 밟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의지를 돋우어서 앞으로 뛰쳐나갔다.

“으아아아!!”

독고성이 소멸과 함께 남겨준 이 길은 더 이상 마력의 이명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해서 뛰쳐 가면서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말하지 않아도 이 신역절기로 만들어진 일로(一路)가 길게 유지되지 않는 걸 알기에, 눈물조차 사치라고 여기며 이 악물고 뛰는 것이다.

‘그래, 난…… 끝까지 무공을 놓쳐서는 안 돼!!’

신역절기로도 절대악신을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내게 과연 독고성만큼의 의지와 각오가 있었을까?

끝까지 신의 모가지를 직접 따지 못해 아쉬워했던 독고성만큼 무(武)에 집착하고 있었던가!

그 순간 나는 아까 외신 [검은 산양]이 내게 잠시동안 남겼던 말의 잔향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았다.

그녀는 내가 어떤 전생자인지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상지투는 결코 해답이 될 수 없기에 그녀는 실망했으며, 내게 그 이상의 답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

이 시련은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쿠웅!!

“크윽!!”

나는 황금빛 달의 바로 아래에 도착했을 때 무언가에 크게 짓눌리는 압력 때문에 주춤거리며 신음했다. 마치 전신이 수백 배의 중력이 짜부라지는 듯한 압력 때문에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독고성의 신역절기가 미치지 못하는 장소까지 온 데다가 이곳은 외곽보다 한층 차원이 다른 마력이 감돌고 있는 장소인 듯했다. 나는 잠시 동안 신력으로 버티던 중 신력의 방어막에 순식간에 구멍이 뻥뻥 뚫리는 걸 알아채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이런…… 미친…….”

여태껏 우주적인 마력을 많이 봐 왔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정말 아득해질 정도였다. 무한을 무한번 곱한다는 표현을 써야 이런 말도 안 되는 밀도가 성립이 되지 않을까?

바로 그때였다.

[백웅. 당신은 이미 눈치챘을 거예요.]

내 바로 옆에는 사공린의 환영이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사공린의 환영이 나타난 순간 나는 전신에 가해지던 압박이 크게 가벼워지는 걸 느꼈고, 사공린의 환영 또한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눈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외쳤다.

“자, 잠깐!!”

[외신이 노래하며 무한의 마력이 가득 찬 이곳은 [옥좌]의 내부라는 사실을.]

“……!!”

예상했긴 했지만 사공린에게 직접 듣자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아마도 내 여행의 종착지에 가장 가까울 이곳에서 말도 안 되는 마력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것도 순식간에 이성으로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실을 따질 생각이 들지 않아서 버럭 외쳤다.

“내가 어떻게든 할게!! 그러니까…… 나 대신…… 죽지 마!!”

[…….]

사공린은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보자마자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고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 그리고 사공린은 전방으로 자신의 양손을 뻗으며 말했다.

[본디 혼연이 가득해야 할 이 장소에 마력이 가득한 것은 황금빛 달이 소환된 상태이기 때문이에요. 저 달은 우주의 이면(裏面)이나 다름없으니 잠시 동안 옥좌의 법칙조차 지배할 수 있는 것. 외신 [검은 산양]은 의도적으로 전생자가 마지막에 도달할 국면을 연출해서 당신을 시험하는 중이죠. 어쩌면 이전의 전생자가 한 번은 도달했을지도 모르는 최종전투의 전장(戰場)에 와 있는 거예요.]

“이, 이해가 안 돼. 아무튼…… 아니, 지금은 이해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 어찌 됐든 좋으니까,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피할 수가 없는 일이에요.]

사공린은 정면을 응시하며 말했다.

[지금 제게는 보여요. 당신은 이 옥좌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중대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또한 그 선택을 하기 전에 중대한 인연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마음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된다면 올바른 결과를 얻게 될 거예요.]

파칭…….

사공린의 눈이 황금안(黃金眼)으로 빛나고 있었고 잠시동안 그녀의 소멸이 멈추는 게 보였다. 이 공간에 맴도는 무한대의 마력에 저항할 수 있는 황금의 마력은 내가 알기로 단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뭔가를 깨닫고 주춤거렸다.

“사공린…… 너…… 인과율을…….”

틀림없다.

지금 사공린은 절대적인 예언을 한 것이며, 그것은 틀림없는 인과율 계산능력!

그녀는 황제 공손헌원의 능력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한때 천마였던 자로서 전뇌자의 도움으로 황제의 권능을 잠시 빌린 거예요. 그리고 이 힘으로 나아갈 길을 열겠습니다.]

덥썩!!

나는 사공린의 손을 뒤에서 붙잡았다. 사공린이 나를 뒤돌아보자 나는 내면에서 씹어뱉는 듯한 목소리로 억지로 말했다.

“하지 마…….”

[…….]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사공린을 쳐다보았다. 나는 지금 내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엉망일 것이다.

“천마가 되어서 나한테 해를 끼친 거?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고…… 그냥…… 이 공간에서 다 같이 무사히 탈출하고 싶다고…….”

[백웅…….]

나는 나도 모르게 목 메인 목소리로 사공린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너희를 희생시키면서 나보고 살아갈 염치가 있으라는 거냐……? 아니…… 제발 그러지 마라…….”

더 이상은 무리다…….

’지금까지도 숱하게 동료들의 희생을 보아왔지만, 또다시 이제 와서 모든 이들의 희생으로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는 건 내 양심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 모든 업을 짊어지고 종말까지 향한다는 게 너무나 무거웠고 눈앞에서 동료가 죽는 걸 결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사공린이 행하는 방법 외에 여기를 탈출할 방법은 없지만…… 그래도 싫다.

합리적이지 못함에도 내가 매달리는 걸 잠자코 보고 있던 사공린은 순간, 맑은 웃음을 지었다.

[희생이 아니에요.]

“뭐……? 아니라고?”

[지금이라면 알 수 있어요. 어째서 황제가 그토록 종말에 매달렸는지…… 큰 굴레를 벗어나는 데 집착했는지…… 우리는 결국 다시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

쩌엉!!

다음 순간, 사공린의 전신이 황금빛의 환염(幻炎)에 불타기 시작했고 그녀의 모습이 반투명해지면서 윤곽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전방으로 뻗고 있던 손이 마치 유리창을 깨듯이 공간을 부수기 시작했고, 이윽고 무한대의 마력이 잠시동안 터져서 공(空)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공린은 내게 잡혀 있던 손을 그대로 투과시켜서 빼면서 휘둘렀다.

[열려라…… 우주의 중심이여!!]

콰칭!!

나는 그 순간 알 수 없는 반탄력이 휘말려서 저절로 어디론가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감히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흡인력이 나를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나는 마치 구덩이로 떨어지는 듯한 그 감각 속에서, 머나먼 곳에서 사공린이었던 존재가 그대로 가루가 되어 휘날리는 걸 보게 되었다.

휘이잉

‘아…… 아아…….’

나는 알 수 있었다.

아까 대웅제국지검으로 만들어낸 균열으로 날아간 영혼들은 그나마 다행이었던 거라고. 날 돕기 위해서 내게 남아 있는 영혼들은 여기서 소멸당할 경우 영겁토록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나는 비명인지 오열인지 모를 소리를 내질렀다. 무저갱으로 빠져들면서 나는 미친 듯이 광분했으며 내 자신의 무력함에 치를 떨었다. 눈물마저 마를 정도로 내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분노마저 느껴졌다.

‘제길. 제기랄…… 씨발!! 난…… 대체 언제까지……!!’

삼백 년동안 수련하고 또 수련했고 온갖 힘을 모았는데도 이렇게 힘이 부족하단 말인가……!!

동료들이 나 대신에 사라져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단 말인가!!

안 돼!!

이대로는 안 돼!!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해서는 부족해!! 나는 좀 더 미쳐 버려야만 해!!

콰앙

“크으으으…….”

나는 전신에 충격을 받으며 알 수 없는 딱딱한 바닥에 떨어졌다.

“여긴…….”

이곳은 희미한 빛이 감도는 고대의 동굴처럼 보였고 곳곳에 의문의 유적(遺跡)이 폐허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유적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고 전혀 인간의 문명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적어도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여기가 바로 [옥좌]의 내부에 존재하는 곳이란 말인가?

사공린은 어째서 나를 여기로 들여보낸 걸까?

찰랑…….

물소리가 들린다. 나는 홀린 듯이 이 고대동굴을 걸어서 물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고, 머지않아 동굴의 갈림길을 지나치다가 흔들다리를 볼 수 있었다. 흔들다리 밑에는 역시나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이 있었지만 나는 크게 겁먹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흔들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흔들다리를 건넌 후 물소리가 들려왔던 근원으로 향하자, 나는 푸른빛과 함께 고여 있는 동굴 속의 커다란 폭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쿠구구구……!!

“…….”

내가 말없이 폭포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 뭔가가 위에서 떨어진다.’

내가 그렇게 느끼고 살짝 뒷걸음질을 친 순간, 폭포에서 뭔가가 푸악 하고 크게 물 분수를 만들어내며 떨어졌다. 그 존재가 거대한 함성 같은 걸 내지르는 게 들렸다.

“크오오옷!! 삼법회생(三法回生)!!”

쿠와아앗!!

폭포에서 떨어져 연못에 빠진 그 존재는 수영을 하는 듯했다. 그러고는 연못에 팔을 내뻗어서 상반신을 크게 일으켜서 물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연못에서 완전히 자신의 몸을 빼내자 그자는 크게 팔을 휘둘러서 물기를 털어내는 듯했다.

용모는 완연히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알 수 없는 천축의 복식을 입고 있는 준수한 외모의 사내는 자신의 이마에 삼안(三眼)을 달고 있었고 그 외에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게 생겼다.

촤악!!

“후우…… 비술(秘術)이 간신히 성공했구나!! 기다리거라, 나의 형제들이여!”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바닥에 물을 크게 뿌린 그 존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쭉 짜면서 물기를 말리려는 듯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폭포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대경(大驚)하여 외쳤다.

“아,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그대는 누구길래 여기에 있는가!!”

“…….”

“그 신력…… 상당히 고명한 신(神)으로 보이는구나. 그대의 이름을 말하거라.”

단숨에 내 신력을 파악한 것을 보면 상대 또한 신, 그것도 상당히 강력한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희한한 기분이 들어서 그에게 반문했다.

“놀란 건 나요. 당신은 어떻게 [옥좌]의 내부까지 들어와 있소?”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옥좌]에서도 가장 안쪽까지 들어왔으면 당연히 나 혼자 있을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존재를 만나다니? 사공린이 말했던 ‘새로운 인연’이라는 건 아마 눈앞의 인간형 존재가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른 존재를 만나리라고 생각지 못한 것은 상대 또한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러자 상대는 눈에서 이채를 띄더니 말했다.

“그대도 나처럼 이곳을 목표로 하여 온 거로군? 하긴 여기에 우연으로 올 수 있을 리가 없지.”

“피차 이곳이 어딘지 알고 온 것 같군. 허나 나는 내 의지로 온 게 아니라 이공간을 탈출하려다가 우연히 오게 되었소. 당신에게 어떤 목적이 있든 간에 내 목적은 일단 여기를 탈출해서 현실세계로 돌아가는 것이오.”

내 말을 들은 삼안의 신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당연히 그리해야지.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오래 머물면 칼파(劫)가 지낼 터인데 시간을 지체할 수 있을 턱이 있는가?”

“…….”

“아마 여기서는 자네와 내가 협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서로 성명을 교환하도록 하지 않겠는가?”

“협력해야 한다고 단정 짓는 이유가 뭐요?”

“……정말 자네는 뭐하러 여기 온 건가?”

어이없어하는 삼안의 신이었다. 나는 그 반응에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나는 좀…… 사정이 복잡하지만, 가상의 수련세계를 만들어 홀로 수련중이었소. 근데 어쩌다 보니 옥좌까지 오게 되었고 외신을 피해 탈출하려다 보니 이 내부까지 오게 된 것이오. 가장 위험한 곳에 탈출구가 있으리라는 직감 때문에.”

그러자 상대가 흠칫했다.

“뭐……? 옥좌를 정면으로 뚫었나? 대체 어떻게.”

“…….”

“대체 뭐 하는 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군…….”

뭐지 저 반응은?

이윽고 그는 어깨를 으쓱하곤 말했다.

“이, 이것 참 당황스럽군. 아무래도 자네와 내가 살던 시대는 완전히 다른 듯하군…… 나는 천지만물의 우주를 살피고 있었으며 모든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자네 같은 존재는 몰라. 아무래도 깊은 사연을 지닌 존재 같구나.”

“제길…… 내 사연은 말해봤자 이해도 안 될 것이오. 아무튼 협력해야 하는 이유나 말하시오.”

삼안의 신은 천천히 합장을 하며 대꾸했다.

“음. 이곳은 바로 이전의 [큰 굴레]에서 계승되는 장소일세. 그리고 이 동굴을 빠져나간 자는 편법으로나마 자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어 있지.”

“……?”

“다만 그 소원을 이루는 걸 방해하는 시련관이 존재하네. 우리는 그 시련관을 통과하기 위해 협력해야 하겠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이해가 하나도 안 되는군…… 난 여기에 딱히 소원을 이루러 온 게 아니오. 나는 이 악몽 같은 곳에서 빠져나가는 것 자체가 소원이오.”

“그거야말로 본좌가 알 바 아니지만…… 어차피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면 영겁토록 계승지에서 떠돌 뿐이야. 우주가 몇천억 번 윤회를 하는 동안 내내 갇혀 있게 되면 아무리 강력한 신이라도 소멸당하고 말지. 이곳은 칼파(劫)를 전제로 하는 곳이니 어설픈 신의 위격으로 까불면 큰일날 것일세.”

“으음…….”

“천지천상을 좁다 하여 날뛰던 본좌라 하더라도 이곳은 용담호혈이야.”

수상쩍다. 저자는 대체 뭐란 말인가?

하지만 이 동굴에 대해서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것도 사실인 듯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상대와 협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강력한 존재인 건 틀림없어…….’

지금은 힘을 숨기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갖고 있는 신력은 틀림없이 나보다 윗줄일 것이다. 왜냐하면 숨긴 신력만으로 나를 짓누를 정도의 압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찌 되었든 상대가 사공린이 말했던 ‘인연’인 이상 내게 큰 해는 끼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별 수 없이 내 이름을 밝혔다.

“내 이름은 백웅이오. 당신은?”

“백…… 웅…… 그 이름과 그 외모는 맞지 않는데…… 호오…… 복희의 인간모습을 뒤집어썼군?”

상대가 내 이름을 듣자마자 갑자기 복희로 둔갑했다는 사실을 알아채자 나는 흠칫했다.

“어떻게 알았지?”

“본좌는 본디 창조신의 일부. [이름]과 [본질]이 맞지않는 경우 바로 알아챌 수 있지.”

“창조신이라고?”

“후후. 뭘 숨기겠나.”

그는 씩 웃더니 자기자신을 가리켰다.

“나는 바로 범천(梵天)이라 불리는 자. 창조신의 권능을 지니고 태어난 브라흐마.”

이어진 말에 나는 이 동굴에서의 여정이 심상치 않으리라는 걸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큰 굴레]의 역사를 바꾸러 우주의 중심에 도착한 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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