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513화 (1,412/1,615)

전생검신 81권 1화

나는 나일라토프의 최후를 지켜보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방금 저 사서라는 존재가 아무리 위대한 자라고 하더라도 일단 이 자리에서 나일라토프를 죽이고 물러났다면 더 이상 내게 간섭할 확률은 적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유롭게 우주공간에서 넋 놓고 있기에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꾸욱.

나는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전뇌자의 금속조각을 꾹 쥐며 생각했다.

‘일월지혼으로는 빨리 전뇌자를 회복시켜 보자!’

일월지혼이 다 소모되기 전에 전뇌자를 부활시킬 수 있다면……!!

우웅.

내게 잠재되어 있던 일월지혼이 점차 감응하면서 강렬한 주황빛의 파동이 한 차례 손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파동이 점차 끈끈해지며 그 빛이 강해지자 전뇌자의 힘이 되살아나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츠앗!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갑자기 일월지혼의 연결이 끊기면서 크게 휘청하는 걸 느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마치 내 몸이 정중앙에 하나의 반듯한 선이 그어져 있고 그 선을 경계로 반신(半身)의 감각이 따로 노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이질적인 감각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합일되어 있던 일혼과 월혼이 분리되었어!’

그 말은 일월지혼이 지금 막 끝났다는 소리다!

그리고 일월지혼의 합일이 끝나면서 일혼과 월혼이 각각의 위치에서 다시 공전을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혼과 월혼이 다시 그 존재감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나는 죽고 말 것이 분명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전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웅…….]

“전뇌자! 이제 괜찮아?”

[억지로 힘을 유지하지 말고 해제하면 돼…… 어떻게든 내가 당신을 원래대로 돌려보내…….]

치직!!

치직!!

전뇌자의 금속조각은 이제 완전히 반도체의 칩 같은 형태로 변하면서 전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일월지혼으로 회복을 시도한 덕에 전뇌자의 힘이 일부 돌아왔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전뇌자의 목소리가 불안정하고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걸 보면 절대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닌 듯했다.

[우선…… 무한성계에서 탈출을…….]

잠시 후 한 차례 전뇌자의 칩에서 번개가 크게 떨쳐져 나왔다.

멀티버스 링크(multiverse link).

안티 피직스 쉘(anti physics shell).

쏴아아앗!!

마치 파도가 크게 몰아치는 듯한 경쾌한 소리가 한 차례 울려 퍼진 후, 나는 갑자기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아까 처음 여기에 도착했을 때처럼 잿빛의 협곡으로 변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무수한 책과 찢어진 책장이 날아다니는 고요하면서도 어두운 잿빛의 협곡에는 아까 보았던 거대한 [문]이 나타나 있었다.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나일라토프가 했던 것처럼 가짜공간을 덧씌워서 우주공간에서 탈출한 거군.’

내가 침묵하자 전뇌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이제 우주공간에서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되니…… 어서 힘의 연결을 해제…….]

“알았어.”

나는 일혼과 월혼이 머지않아 맥동하면 큰 피해를 입으며 전신이 찢길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일혼과 월혼이 공전하기 전에 재빨리 내 몸에서 떼어냈다. ‘그릇’과의 연결이 해제되자 일혼과 월혼은 둥실 떠올라서 환영처럼 저 너머의 공간을 향해 공전하며 사라지기 시작했고, 나는 내 몸을 절반으로 찢으려 했던 이질적 감각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틀.

‘큭…….’

탈력감이 장난이 아니다. 원래 내 힘으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담아서 사역했다는 실감이 들기 때문이리라. 내가 한참 후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 똑바로 서자 전뇌자가 말했다.

[백웅……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때가 왔어.]

나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눈앞에 있는 문…….]

전뇌자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지금 당신이 문을 열겠다면 내 모든 힘을 쏟아서 당신을 도와줄 수 있어…… 하지만 문을 열지 않겠다면…… 수련세계의 수련을 끝내고 안전하게 즉시 탁록시대로 되돌아가게 해줄 거야.]

“……!!”

[시간이 많이 없으니 어서 선택해 줘…….]

“…….”

나는 흠칫하고 놀랐지만 이내 전뇌자의 말투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초조함이었고 전뇌자가 머지않아 사라질 것만 같은 희미한 불안의 느낌이 내 육감을 간지럽혔다. 나는 내 육감이 전달해 주는 정보가 무슨 뜻인지를 알아차렸고, 전에 없이 영민하게 회전하는 머리로 상황을 알아차렸다.

나는 나직이 말했다.

“전뇌자. 너는 어느 쪽을 선택하든 스스로 소멸하려는 거냐?”

[……무슨…….]

“똑바로 대답해 줘. 그렇지 않다면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을 거니까.”

내가 진중하게 말하자 전뇌자는 한참 동안 침묵했고, 이윽고 내 눈앞에 전뇌자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치지직…….

마치 오래되고 낡은 전파를 수신하듯, 전뇌자의 영상은 실감나지 않았으며 치직거리며 끊기고 있었다. 그리고 창백한 안색으로 너구리 인형을 끌어안은 채 서 있는 전뇌자는 전에 없이 힘들어 보이는 기색이었다. 전뇌자가 말했다.

“맞아. 나는 곧 사라질 거야.”

“…….”

“정확히 말하자면 무슨 수를 써도 소멸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고, 소멸하기 전에 당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이젠 두 개밖에 남지 않았어.”

안 좋은 예감이 맞아 버렸다.

살다 보면 꼭 이런 엿 같은 예감만 잘 맞았기에 나는 이를 으득 악물며 전뇌자에게 말했다.

“일월지혼으로 네 힘을 회복시켜 줬잖아. 게다가 넌 천암비서의 단말씩이나 되잖아. 그런데 왜 죽는다는 거냐!”

전뇌자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 일월지혼이란 힘은 기적이야. 난 사실 아까 나일라토프가 내 데이터를 삭제했을 때 사라졌어야 정상이었는데 당신이 완전한 무(無)에 도달했던 내 존재를 되살린 거야. 그건 영혼을 창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업(威業).”

“뭐?”

“당신은 일월지혼으로 나를 되살렸을 때…… 이미 이 우주의 법칙을 한 번 바꿨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인과율에 의해 한 번 부정당한 내 존재가 완전히 허락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

“…….”

“이걸 봐.”

내가 할 말을 잊었을 때 전뇌자가 손을 내밀어서 내게 보여주었다. 하얗고 고운 여자아이의 손이 내 앞에 내밀어졌을 때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아니!!”

파스스스…….

전뇌자의 손가락이 끝에서부터 서서히 사라지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무척 천천히 사라지는 중이라서 눈에 띄지 않았는데 분명히 가루가 흩날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경악하자 전뇌자가 말했다.

“일월지혼의 힘이 잠시 인과율에게서 내 존재를 보호해 주고 있지만 결국 사라지게 될 거야. 그렇다면 지금 회복되어 있는 힘을 이용해서 당신에게 길을 열어주고 나서 사라지는 게 최선이지. 그게 합리적이야.”

“아, 아니…… 젠장…… 천암비서는 널 살려주지 않는 거냐?”

“당신이 항아를 없앴을 때 천암비서가 항아를 부활시켜 줬어?”

“…….”

“서(書)에게 있어서 단말이란 그저 도구에 불과해. 지금 그런 감상적인 소리를 할 때가 아니야.”

전뇌자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선택해 줘.”

…….

전뇌자의 소멸을 앞두고 두 개의 선택 중 하나를 하라니.

나는 속이 터질 것 같았지만 어째서인지 머리는 무척 냉정했다. 아까 발동했던 일월지혼의 힘이 여전히 머릿속을 명쾌하게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일월지혼이 사라져도 얼마 동안은 그 힘의 잔재가 사용자를 도와주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단숨에 전뇌자에게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솔직히 굳이 네 희생까지 담보하면서 저 문을 열 이유가 없지 않냐? 난 아직 [끝]을 볼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뭐 하려고 끝판왕이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가겠어? 후자는 이해가 가지만 전자는 대체 왜 하라는 거야?”

“…….”

“하지만 네가 이유 없이 그런 질문을 할 놈은 아냐. 어째서 전자의 제안을 했는지 말해줘.”

“일월지혼이란 건 갑자기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어 버리네…….”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보던 전뇌자가 대답했다.

“다음번 [단말]이 당신에게 호의적인 존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야.”

“……!!”

“이해한 표정이네.”

“항아 같은 [단말]을 데리고 여기까지 올 경우 문을 여는 게 몇 배로 힘들다는 소리냐?”

“맞아. 이번에 당신은 앞서왔던 나일라토프가 혼자서 시련의 관문을 다 뚫어 버리는 바람에 하나도 고생하지 않고 바로 꿈의 끝자락에 도달했지만, 다음번에는 서(書)가 당신에게 내는 시련을 하나하나 통과하면서 내려와야 해.”

“…….”

“지금 내가 모든 힘을 다해서 조력을 하면 당신은 안전하게 문 너머로 갈 수 있어.”

그런 거였군…….

나는 전뇌자의 말을 다 이해했다. 그러나 도저히 지금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역정을 냈다.

“웃기지 마. 너는 여기서 소멸하면 진짜 끝장이잖아. 네가 죽게 내버려 둘 거 같아?!”

쿠구구구!!

나는 다시 일혼과 월혼의 그릇에 접촉하려 준비했다. 나는 그러면서 씩 웃으며 전뇌자에게 말했다.

“기다려 봐. 내가 일월지혼으로 널 완전히 되살려 줄…….”

그러자 전뇌자가 말했다.

“백웅. 헛수고 그만둬.”

멈칫

“윽?!”

나는 뜬금없는 전뇌자의 말이 들려오자 더 이상 일월지혼을 진행하지 못하고 몸이 굳어 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전뇌자의 말에 반응해서 굳어 버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몸이 내 의지를 벗어나서 멈춰 버린 것이었다. 명백히 인위적인 현상이었기에 내가 당황하자 전뇌자가 말했다.

“당신 몸속의 신경계와 파쓰(path)를 해킹하면 잠깐 마비시키는 건 일도 아니야. 전에 파쓰를 배치할 때 나노봇을 잔뜩 넣어두었으니까.”

“……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어차피 당신은 일월지혼을 다시 못 써. 누군가가 대신 대가를 바친 힘이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전뇌자가 말을 이었다.

“백웅. 중요한 설명을 해야겠는데 들어줘.”

“…….”

“어째서 내 모습이 소녀의 모습인지 알고 있어?”

치직.

치지직!!

전뇌자의 홀로그램이 크게 치직거리며 일그러져서 잠시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그 일그러짐에 가슴이 크게 뛰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위험하다.

전뇌자는 얼마 안 남았어…….

절망적인 직감에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전뇌자가 말했다.

“이건 파우스트 박사의 딸의 생전 모습이야. 그는 대웅제국에 보내준 중요 리소스에 이 모습을 심었고 나는 그대로 이 모습으로 고정된 거야.”

“전에도 했던 말이군.”

“하지만 당신이 히든 피스(hidden piece)의 비밀을 풀어서 파우스트 박사를 만나준 덕분에 이 모습이 단순한 추모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어. 파우스트 박사는 언젠가 전생자가 특이점에 도달할 거라고 생각했고, 그 특이점을 조작할 수 있는 인과(因果)를 내게 부여한 거지.”

“……?!”

“파우스트 박사는 바로 이 순간을 준비했었어.”

무, 무슨 소리지?!

나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나오자 당황했다. 어렵기도 했을 뿐더러 전뇌자가 하는 말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뇌자가 말했다.

“파우스트 박사가 확인하려 했던 건 특이점의 폭발과 전지(全知)의 왕(王)의 출현. 그가 그걸 확인하려 했던 이유는 단순해. 원(圓)의 시작점을 확인한다면 원의 길이와 넓이를 알 수 있기 때문이야.”

“길이…… 넓이……?”

“원의 길이란 역사(歷史)의 길이. 원의 넓이란 우주(宇宙)의 넓이야. 말 그대로 과학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이자 최후의 지식이잖아? 하지만 파우스트는 그걸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역산(逆算)하여 특이점을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특이점을 어떻게 조작한다는 거냐? 따지고 보면 그냥 우주의 시작을 눈으로 보는 것뿐인데…….”

예전에 파우스트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아리송했던 걸 질문하자 전뇌자가 문득 자신의 손바닥을 내게 보여주었다.

“당연히 직접 조종하는 건 아냐. 파우스트는 조종할 수 없는 걸 조종하려 들지 않고 그저 물길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기로 계획했어.”

치링!!

갑자기 강한 황금빛과 함께 전뇌자의 손에는 회중시계가 들려 있었다. 나는 그 회중시계를 보자 침음성을 흘렸다.

“히든피스.”

“단말이 되면서 파우스트의 히든피스는 내 안에 내재되었어. 그 말은 파우스트가 관측했던 우주의 시작과 종말, 그 좌표(座標)가 내게 기록이 되었다는 소리가 되는 거야. 그럼 여기에서 내가 특이점으로 들어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 같아?”

“……모르겠어.”

전뇌자는 약간 슬픈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 모습…… 파우스트의 딸. 파우스트가 회중시계에 가장 소중하게 불어넣었던 인과이자 인연이 존재했던 시간(時間)에 인과율(因果律)이 걸리게 되는 거야.”

“……!!”

나는 그제서야 전뇌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고는 믿겨지지가 않아서 말했다.

“파, 파우스트 녀석…… 자기의 죽은 딸을 부활시키려고 했단 말이냐?!”

“그래. 특이점에 진입함과 동시에 우주의 시작과 끝이 그 시간대에 모이기 때문에…… 파우스트는 새로운 인과율의 특이점이 되는 자신의 딸과 가장 가까운 인간이 되는 거야. 저절로 다음 전생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딸을 전생자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거지.”

“…….”

“어느 정도는 도박이었을 거야. 죽은 딸이 되살아날 수도 있지만 운이 나쁘면 딸이 영영 삭제된 세계에서 살 수도 있었을 테니까.”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진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게 파우스트 박사의 계획이었다고?!

‘전생자인 내가 언젠가 인과율의 특이점에 도달해서 그걸 지나치게 되면…… 히든피스를 잠재시킨 전뇌자 또한 같이 특이점을 통과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우주의 특이점의 좌표가 담긴 히든피스를 줬단 말인가!’

게다가 파우스트 박사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 볼 게 없다. 어차피 전생하는 건 나이기 때문에 한 번만 단서나 히든피스를 주면 몇십 회차 몇백 회차를 지나서라도 나는 언젠가 특이점에 도달하게 되고, 파우스트는 가만히 있다가 딸이 되살아난 결과를 얻거나 혹은 딸이나 자신이 전생자가 되는 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정말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나는 파우스트가 계책을 짠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하지만 전뇌자의 말대로라면 많은 게 설명되었다. 파우스트 박사가 아무리 인류를 위한다지만 자기의 몸을 전부 기계로 개조해가면서 우주 끝까지 죽을힘을 다해서 날아간 것은 좀 이상했었다. 그는 사실 인류를 위해 날아간 게 아니라 자기의 딸을 전생자를 이용해 되살리려는 아버지의 일념으로 행동했던 것이다!

전뇌자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파우스트의 딸이 아니야. 그의 뜻대로 해줄 수는 없어.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당신에게 천암비서의 문을 열 것을 제안하는 거야.”

“무슨 말이지?”

“나라면 파우스트의 계획을 역이용할 수 있다는 말이야…….”

“……!!”

그 순간, 나는 전뇌자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역이용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감이 왔기 때문이다.

‘그, 그런 게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정말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다!

그때였다.

파지지직……!!

갑자기 전뇌자의 홀로그램이 더욱 요란하게 진폭에 일렁이듯 너울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전뇌자의 손끝과 발끝이 빠르게 사라지는 게 보였다.

파아아아-

“아앗!!”

내가 경악해서 소리를 질렀지만 전뇌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

나는 그 눈빛이 선택의 때가 다가왔고 더는 미룰 수 없다는 뜻임을 알아챘다. 여기서 더 머뭇거리면 정말 전뇌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되는 것이다.

나는 즉시 마음을 정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잘 들어라, 나는…….”

쿠구구구.

전신에 모든 힘을 집중하자 서서히 몸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광활한 내공과 의념이 작용하면서 전뇌자가 잠시 나를 묶어두었던 압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좋아!

나는 어느 정도 몸이 자유로워지자마자 바로 진심을 담아서 외쳤다.

“일단 너를 때릴 거다!!”

그러자 전뇌자가 처음으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응……?!”

“처맞아라!”

마음을 담아서 때리면 홀로그램도 때려질 것이다!

철썩!

“케엑!”

나는 달려들어서 전뇌자의 뺨을 손바닥으로 갈겼고, 전뇌자는 뺨을 맞고 고개가 홱 돌아갔다. 어린 소녀의 뺨이 퉁퉁 부은 모습이 나타나자 그때까지 흐릿하던 잔영이 갑자기 선명해지는 게 보였다.

“뭐, 뭐 하는 거야!”

뺨이 빨갛게 부은 전뇌자가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어이없다는 듯 외치자 나는 손바닥을 들며 외쳤다.

“뭘 꼴아봐? 한 대 더 맞을래?!”

“…….”

“참나, 자칭 딸이라면서 말을 드럽게 듣지도 않고 맨날 흉계만 꾸며대는데 늘 한대쯤 패주고 싶었다!!”

“다, 당신…….”

“인마!! 내가 전생한다고 결혼도 연애도 안 했는데 너 같은 딸이 어디 있냐?!”

나는 괜히 열받아서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녀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전뇌자, 너는 내 딸이 아니라 같이 생사를 넘어온 전생 동료야!! 틀려?”

“……!!”

나는 당황하는 전뇌자에게 다가가며 버럭 화를 냈다.

“그래서 난 포기 안 해! 네가 제시한 두 가지 중에서 아무것도 선택 안 해! 알아들었냐고!”

“배, 백웅!!”

나는 불같이 화를 내며 외쳤다.

“동료를 죽게 하는 선택 따윈 할 수 없다고, 이 멍청한 놈아!!”

나는 내 내부의 사신지혼을 빠르게 윤회시키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일혼과 월혼은 사라졌지만…… 사신지혼을 한 바퀴 돌리는 걸로 기술의 위력을 극대화한다!’

이걸로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볼 수밖에 없다.

이제 눈에 보이는 것만 훔쳐서는 동료를 구해낼 수 없다.

눈에 안 보이는 걸 훔칠 수 있어야 동료를 구해낼 수 있다.

‘씨발……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생애의 모든 집중력을 동원하며 출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은 단 하나뿐이었다.

파앗!

만상지투(萬常之偸) -

전뇌자를 없애려고 하는 인과율을 훔치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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