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511화 (1,410/1,615)

전생검신 80권 19화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대신기의 정령이 갑자기 날 도와주다니!

여태 수백 년간 꼼짝도 안 하던 자들이 대체 왜?

뜻밖의 상황에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심상세계에서 말했다.

‘갑자기 수련을 도와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아그니가 약간 험상궂은 말투로 대꾸했다.

[도와줘도 불만이냐?]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뜬금없어서…….’

그와 동시에 바루나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우리 정령들에게 충분한 대가가 지급되었다. 그 대가에 따라 과(果)로 보답을 하고 있을 뿐이다.]

‘대가……? 무슨 대가 말입니까.’

[대가를 지급한 자와의 약속에 따라 내용을 언급할 수 없다.]

‘…….’

[알아내고 싶다면 차후 그대가 스스로 노력해보아라.]

아무래도 지금은 내게 도움을 주는 연유를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현실인식을 빠르게 하고는 말했다.

‘좋습니다. 도와줄 거면 끝까지 도와주십쇼!’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일월지혼의 수련은 쇠뿔도 단김에 빼듯 한 번에 통과하리라! 아마 그게 내게 도움을 준 자의 의도겠지!

쿠구구구!!

[입만 살아서는…….]

[후후.]

그와 동시에 아그니와 바루나의 고리가 더욱 빛이 강해지기 시작했고 일월지혼의 힘을 점차 몰아내는 게 느껴졌다. 사대정령이 본격적으로 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일월지혼 때문에 정신이 갉아 먹히는 현상이 거의 느껴지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자신감 있게 일월지혼을 세게 붙잡았다.

치지지직!!

‘끄윽!!’

그러나 다시금 일월지혼을 제어하려고 들자 일혼을 잡은 손에서는 타들어 가는 격통이 또다시 느껴졌고 월혼에서는 차갑게 얼어붙는 감각이 숨을 막히게 했다. 아그니와 바루나의 도움을 받아도 이 정도라는 걸 깨닫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절대 내 내공과 의념만으로는 돌파 못 해…….’

일혼과 월혼의 위력이 어찌 이리도 강하단 말인가?

이건 말 그대로 별의 중심에 손을 뻗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반복수련만으로는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틀림없다!

그때 내가 기운을 제어하는 걸 도와주고 있던 바루나가 나직이 말했다.

[전생자여. 해의 그릇과 달의 그릇은 지금껏 그대가 다루어왔던 평범한 근원소의 그릇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대가 지금 하는 도전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보다 더한 무모함이란 걸 알고 있는가?]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뭔가 일월지혼에 대해서 알고 계신 겁니까?’

바루나는 우주의 ‘물’을 다스리는 4대 정령이었다. 그래서 일월지혼에 대해서 인간과 달리 또 다른 지식을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기대감에 질문하자 바루나가 대답해주었다.

[이 대우주는 본디 어둠으로 가득한 실체를 지니고 있다. 질서의 거인이 시작을 열었으되 혼돈에서 질서로 본질을 갈음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둠 속에서 광명이 꿈틀거리매 원융(圓融)의 순환과 함께 이치로 이치를 뒤덮는 작용이 유구한 세월 동안 계속되었고 이 세상에는 점차 빛과 어둠이 물과 기름처럼 그 경계를 나누기 시작하였노라.]

“…….”

[근원소의 영역은 경계가 나뉘어지는 동안에 생겨난 부차적인 현상…… 그러나 빛과 어둠의 조화와 대립, 그 축(軸)에 직접 손을 뻗는 것은 우리조차도 예상할 수 없는 거대한 영역에 접하는 걸 의미하나니…… 만상(萬象)에 네 의지를 미쳐 우주의 질서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걸 의미하노라.]

어, 어렵다…….

나는 또다시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지만 일단 알아들은 대로 대꾸해 보았다.

‘그…… 그러니까 일월지혼이 엄청 쎈 힘이라서 다른 사신지혼과는 다르다 그 말이지요?’

이번 질문에는 아그니가 대답했다.

[힘의 고저강약이 아니라 일월지혼은 우주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자 하는 힘…… 우리 정령들의 가호를 받고 있는 기존의 그릇과는 달리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윽…… 그러면 지금 이렇게 아픈 것도…….’

[아픈 게 문제겠는가? 본디 그대는 감당이 되지 않는 영역에 손을 뻗친 원죄를 안고 폭발해야 정상이다. 이만큼 버틸 수 있는 건 지금 우리가 대신해서 일월의 힘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전생자여. 그대는 우주의 법칙을 바꿀 각오로 지금 도전하고 있느냐?]

나는 아그니의 물음에 잠시 할 말이 없어졌다.

‘아니 씨발!! 그런 각오를 왜 해야 하는데!!’

일월지혼이 막연히 어려운 수련이라고만 생각했지 우주의 법칙이나 질서 어쩌고는 생각도 안 해봤다고!

난데없이 세계관의 범위가 넓어지는 기분에 내가 멍하게 서 있을 때, 바루나가 말했다.

[각오가 없다면 여기서 물러나는 것도 해답이다. 끝까지 도전했다가 실패한다면…… 우리의 힘이 영구적으로 감소한다.]

‘네? 감소한다구요?’

[그렇다. 지금 여기에서 널 도와주는 건 단순한 가호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 본체의 힘을 계약으로 끌어쓰고 있는 것이다. 진짜 힘을 쓰는 만큼 실패할 경우 그대로 일월의 천칭에 우리의 힘이 흡수당해 버릴 것이다.]

‘…….’

[앞으로 전생하면서 네가 쓸 수 있는 사대신기의 위력이 줄어드는 것이지.]

‘제기라아알…….’

이렇게나 빡센 수련이었다니.

나는 그 순간 엄청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죽는 것쯤이야 아픈 것만 제외하면 그냥저냥 감당할 수 있어…… 그런데 실패하면 사대신기의 위력이 영구적으로 감소…… 이, 이건 너무 뼈아프잖아.’

사대신기는 때때로 내 힘으로 대적하기 힘든 최상위신격과 싸울 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만일 사대신기의 힘이 줄어들어서 손해를 볼 경우 어느 정도일지 측정하기가 불가능하다. 아마 여기에 내 책사들이 있었다면 미친 짓 하지 말라고 나를 말렸으리라.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고는 외쳤다.

“까짓거 해보죠!!”

[진심이냐?]

“쫄았습니까? 난 끝까지 갑니다!”

[크크…… 미친놈.]

쿠와아앗

다시금 아그니와 바루나의 고리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일월지혼의 고동이 점차 심해지면서 더 이상 버티기도 힘들어졌기에 아마 이번이 마지막 제어시도가 되리라.

나는 내가 미친 도전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왠지 감이 왔다.

‘이건…… 이건…… 위험하지만 건너야 하는 다리다!’

아까 내게 말을 걸었던 의문의 존재가 나 대신에 사대신기의 정령에게 대가를 지불 했다는 건 - 이번이야말로 놓칠 수 없는 호기(好期)라는 뜻! 다음번에 그 존재가 또다시 대가를 지불 해 줄 수 없으리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다면 내 의지대로 도전하는 건 아니지만, 이 기회는 천하에 두 번은 없을 기회가 분명한 것이다.

늘 안전만 추구하다가는 쳇바퀴 돌듯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정체된 지루함과 절망감을 쉴새 없이 느껴왔던 나는 도전해서 실패하는 게 두렵지 않았다. 까짓꺼 수천 번 전생해서라도 사대신기의 힘을 되찾으면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으아아아아아……!!”

치지징!!

나는 육성으로 외침을 터뜨리며 일월지혼의 파동에 맞춰서 아그니와 바루나의 고리를 점차 일혼과 월혼을 향해 밀어 넣었다. 관건은 두 정령의 힘이 잠시동안 일월지혼의 힘을 억제하는 사이에 내가 다시금 무쌍패를 발현해서 그 성질을 죽이며 제어할 수 있느냐였다. 파동을 제어하면서 완벽하게 성공해야 하기에 성공확률은 무척 낮았지만 나는 끝까지 대담하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서 멈춰 서고 싶지 않다.

나는 더 발전하고 말겠어!

빠직!!

두 정령의 고리가 각각 다른 성질을 가진 일월지혼에 맞부딪히는 순간 균열음이 일어났다. 그리고 쉴새 없이 뿜어지던 일혼과 월혼의 파장이 잠시 멈추자, 나는 그 틈에 재빨리 무쌍패를 펼쳐서 무위전변으로 두 개의 기운을 동시에 제어하려고 했다.

멈칫

그러나 그때, 나는 아까 내 앞에 나타났던 기이한 존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대는 외팔이일진대 어찌 두 개를 모두 손에 잡으려 하는가?]

[그대여. 숙련도라는 관념을 버릴지어다. 그대의 손이 하나라면 하나로 잡을 수 있는 것은 하나이다.]

갑자기 그 말이 머릿속에서 밟힌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은 지금 상황에 단서를 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팔이는 두 개를 한 손에 잡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수련은 육체를 이용해서 한다기보다는 내 정신세계 속에서 마음속에 의념으로 심수(心手)를 만들어내어 가상의 그릇인 일월지혼을 붙잡는 것이다. 현실의 내 몸뚱이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가상의 정신세계 속에서는 내 팔이 저주를 받았든 말든 별 차이가 없는 게 사실이다.

어째서 그 존재는 내게 외팔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킨 것일까?

‘서, 설마?’

나는 그 순간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저주받았던 팔 쪽을 휙 하고 살펴보았고,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마음의 팔이 보였다.

츠츠츠츠 -

나는 빠르게 의념을 집중하여 한층 깊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순간, 나는 그 팔이 혼탁하게 어둠과 저주에 물들어있다는 걸 알아챘다.

크오오오!!

‘……!!’

이럴 수가?!

설마 심상세계에서조차 내 팔이 저주로 물들어있었단 말인가?! 아무리 강력한 저주라지만 실체가 아닌 마음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었단 말인가! 게다가 그 사실을 위장하려고 고의적으로 사악한 기운을 내 감각에서 감추면서 멀쩡한 척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아연해 질 수밖에 없었다.

두근!

그리고 저주받은 팔에서 ‘누군가’의 마음이 새어 나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것은 음울한 저주 그 자체였다.

[…… 실패…… 하라…….]

[네가 누구인지…… 몰랐던 게…… 실수…….]

[…… 나라고 해도…… 우주의 그 누구도 네 마음을 타락시키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네 모든 행적에 발목을 잡으리라……!!]

나는 그 마음의 정체를 깨닫고는 이를 악물었다.

“……!!”

홍균도인!!

이건 내게 가면을 뺏기고 죽었던 홍균도인의 마음이 분명하다!

저주 그 자체에 자신의 마음을 담고 사라진 거였다니!

‘제기랄……!! 3등급으로 상인의 등급을 올릴 때 마두가 전부 0으로 되돌아가서 팔을 회복시키는 건 못 했는데……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히다니!’

만일에 고위등급이 오를 때 기존의 마두가 전부 삭제되는 걸 알았다면 그런 식으로는 마두를 투자하지 않았겠지만 몰랐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언젠가 한 번 다시 죽고 또 보물을 모을 것을 가정했기에 당장은 깊게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설마 일월지혼에서 이런 상황을 맞이할 줄이야!

하지만 후회해봤자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의문의 존재가 내게 외팔이라는 사실을 주지시켜준 것 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저주받은 팔은 홍균도인의 마음이 깃들어있어서 이런 심상세계에서도 없는 거나 다름없어! 그렇다면…… 나는 한꺼번에 일혼과 월혼 2개를 다 제어할 수가 없는 거다. 하나하나 제어해야만 해.’

문제는 아무리 봐도 일월지혼을 동시에 제어하지 않으면 다른 한쪽에서 밀려들어 오는 힘 때문에 내가 파괴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문득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나보다 더한 역경 속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동료의 기억.

전뇌자가 보여주었던 대웅제국 동료들의 기억 속에서 나는 단서를 찾아낼 수가 있었다.

나는 잠시 후 정신을 고도로 집중하며 단 하나를 심상에 떠올렸다.

태극(太極).

음과 양이라는 형태로, 이 우주의 이치를 인간이 이해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낸 것.

이 태극의 힘을 인간은 온갖 형태로 사역해 왔고 그중 하나가 장삼봉 진인의 무쌍패이다. 무쌍패 무위전변이 일월지혼의 제어에 효율적인 건 원리적으로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팔이라서 쌍수를 쓸 수 없는 이상 나는 평범한 무쌍패만으로 일월지혼을 제어할 수 없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 해서 방법을 다른 무공에서 찾아야 하는 게 아냐. 여전히 답은 태극에 있다.’

그것은 천하에서 장삼봉 다음으로 무쌍패를 많이 연마한 나이기에 깨닫고 있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과거 대웅제국 동료들의 전투에서 이것과 비슷한 경우를 보았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투신과의 전투 -

양팔을 잃어버리고도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은 존재가 있었다.

[이 생에 정천(正天)를 실천할 수 있다면.]

그는 나와 큰 연을 맺은 동료는 아니었으나 의(義)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나 위지혼, 천하에 부끄러울 것 없이 죽을 수 있으리라!]

절대지경(絶對之境)

태극혜검(太極慧劍)

의천(義天) 무수진명(無手盡命)

바로 그것만이 해답이다.

나는 위지혼의 절대지경인 태극혜검을 얻지는 못하였으나 그가 어떤 원리로 태극혜검을 다루어 투신(鬪神) 아르쥬나의 공세에서 버텼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양 팔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집착하지 않고 의념으로 만들어낸 심인(心刃)을 형성하였고 동시에 자기자신의 절대지경을 의념천주(意念天柱)로 만들어낸 것이다.

‘나라면 생각지도 못할 발상…….’

중요한 것은 바로 심인으로 만들어내는 음양(陰陽)의 균형!

그 음양의 균형은 단순히 내공심법으로 몸 안의 기운을 음양으로 표현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초월적인 정신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념천주를 모조리 태워 버릴 기세로 -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음과 양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과연 내가 위지혼처럼 의천태극(義天太極)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의문 같은 걸 품어서 될 때가 아냐…… 못해도 해내야 해!’

나는 그냥 내 팔이 다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육체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정념을 오로지 태극 하나에만 집중한 채 일혼과 월혼을 정신력으로 붙잡았다.

치지지직

산 채로 불판에 손을 올리는 듯한 고통과 산채로 얼어붙는 격통이 번갈아서 뇌를 때렸다. 나는 그 고통이 아주 잠깐 지나갔는데도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코피가 터지는 것을 느꼈다. 웬만한 고문에서도 얻을 수 없는 악랄한 격통이었기에 나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이를 꽉 깨물었고, 잠시 후 이빨이 부숴져 나감을 알 수 있었다.

콰가각

‘아…… 아파…….’

그러나 이겨내야 한다. 인체가 보내는 고통이라는 신호를 모조리 무시하고 모든 걸 무위전변으로 바꾸어 음양태극으로 해석해내야 한다. 나는 막상 의천태극을 바라보고 무위전변을 발동하자 위지천의 의지력이 어마어마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 고통을 참은 것인가?

그래도 한다.

내 어깨에 동료들의 여망이 올려져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 세계를 내가 구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훌륭한 동기는 내게 있을 수가 없다.

“나는…….”

나는 핏발이 선 채 두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이 세상을 죽여 버릴 테니까!!!”

세상을 죽여 버리려 한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을 없애 버릴 만한 의지력 정도는 있어야 할 테니까!

잘난 신들 마음대로 갖고 노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뒤엎어져서 박살 나는 걸 한번이라도 보고 싶으니까……!!

구웅…….

바로 그때 내 의지력이 극한에 이른 한 순간, 태극이 윤전(輪轉)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치 위지천이 일으켰던 것처럼 회전하는 태극이 순식간에 일혼과 월혼 중에서 월혼을 집어삼켰고, 집어 삼켜진 월혼이 내 한쪽 팔을 향해서 흡수되는 게 느껴졌다.

‘저주받은 팔?’

그와 동시에 파동이 일렁인다.

지금까지 쉴새 없이 저주를 내뿜고 있던 팔 속에 남아 있던 홍균도인의 상념이 월혼의 힘에 도리어 삼켜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저주의 상념이 사라지면서 마치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파동은 홍균도인의 단말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월혼의 힘이 극대화되는 순간 나는 내 몸 전체가 태극으로 흡수되는 걸 느꼈고 몸이 통째로 태극의 음(陰)에 녹아내리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심상의 영체가 녹아 버리는 기세가 워낙 빨라서 다 녹은 양초가 되어 버리는 끔찍한 감각에 나는 몸서리를 쳤다.

‘흐어어어억.’

음양의 균형이 아예 안 맞아.

이대로라면 무조건 사라진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동안에 문득 내 내면에 있던 구궁파천뢰의 뇌령(雷靈)이 크게 번쩍이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와 동시에 목성의 뇌기를 머금은 강대한 기운이 잠시동안 파직거리면서 내 몸이 완전히 월혼에 잠기는 것을 막아줬고, 나는 그 찰나의 빈틈 속에서 재빨리 생각을 거듭했다.

‘하나로 하나를 잡는 건 성공했고…… 남은 일혼을 흡수해야 해…… 하지만 지금 남은 힘으로는 도저히 일혼까지 흡수하는 건…….’

월혼을 제압하는 데만 온 힘을 다 썼기에 일혼을 흡수할 힘이 없다.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하면 끝장이었기에 나는 계속 머리를 굴렸는데 그 순간 나는 뜻밖의 생각이 떠올랐다.

‘음양…… 음양은 동시에 혼백(魂魄)으로도 해석되는데…… 그…… 그렇다면…….’

될까?

이런 건 아무도 안 해봤을 건데 될까?

‘에라이 모르겠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시도를 하고 말았다.

이혼대법(移魂大法)

탈백(奪魄)!!

‘월혼을 구심점으로 해서 일혼을 백으로 삼아서 흡인(吸引)한다!!’

쭈와아아악

“됐다!!”

나는 갑자기 일혼이 월혼으로 끌어당겨 지면서 월혼에 잠겨 들어가던 반신이 회복되고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혼이 갑자기 확 월혼과 접촉하자 월혼의 힘이 일혼에 상쇄되면서 점차 음양의 균형이 맞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균형을 맞추고도 믿기지 않아서 얼떨떨했다.

‘세…… 세상에…… 이혼대법…… 이런데도 써먹을 수 있단 말인가?’

이혼대법 또한 의념천주와 마찬가지로 모든 걸 혼백으로 해석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응용할 수 있는 대법이란 말인가!

정수리가 편하다.

전신의 혈도가 이제 압박감에서 벗어난다.

일월지혼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서서히 내가기공의 호흡을 하며 몸의 상태를 안정시키기 시작할 때 아그니와 바루나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정말 해낼 줄이야.]

[처음 인간에게 도움을 줄 때는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거늘…….]

이윽고 아그니가 정말로 감탄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월지혼이 유지되는 동안…… 그대는 새로운 파천황(破天荒)의 힘을 쓸 수 있으리라.]

두 정령의 목소리가 사라졌을 때, 나는 사방이 고요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쥐죽은 듯한 정적.

아니…… 시간과 공간이 마치 내 의지하에 전적으로 통제되고 있는 듯한 전지적인 감각.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그 감각에 나는 이것이 신만이 지니는 감각인 신각(神覺)인가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왠지 그건 아닐 것 같았는데, 예전에 오제 전욱의 시선을 느꼈을 때와도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어떤 경지에 발을 들인 것인가?

치리링 -

눈앞에 아주 미세한 선 같은 게 보인다. 오색 무지개 같은 빛을 뿜는 실선이 마치 어른거리면서 나를 유혹하는 것 같았고, 나는 홀린 듯이 일월지혼의 기운을 담아서 손으로 그 실선을 건드려 보았다.

쫘좌좌좍…….

마치 물에 젖은 종이처럼 눈앞의 공간이 내 손에 뜯겨 나간다. 찢어진 공간 너머의 총천연색 미지의 공간이 보였고, 나는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시공간을 내 맘대로 통제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좀 더 공간을 찢어서 안으로 성큼 발을 들인 순간이었다.

저벅…….

내가 새로운 공간에 발을 들였을 때, 그곳은 꽤나 기이한 공간이었다.

삭막한 잿빛의 협곡.

안개가 자욱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사방팔방에 뜯겨진 책장과 책이 부유하고 있으며 음산한 어둠이 몰아치는 이 협곡에서 나는 익숙한 얼굴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 얼굴의 주인공은 거대한 문을 앞에 둔 채 뭔가를 고민하고 있다가 내 기척을 알아챈 듯 나를 돌아보았다.

“응?”

나는 물끄러미 그자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 그자는 정말 의외라는 듯 어이없어하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수련세계에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 [꿈]의 끝자락까지 온 건가, 백웅?”

나일라토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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