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0권 18화
나는 흙이 된 상태에서 내 몸이 어디 갔는지 다시 살펴보았다.
‘없네.’
정말로 나는 흙이 되어 버린 건가?
근데 흙이라면 뇌가 없는데 나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있는 거지?
이치상으로 맞지 않았지만 동시에 내가 흙이기 때문에 사방팔방의 모든 시야를 얻고 있는 걸 생각하니 이상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거대한 산 자체가 마치 내 몸뚱이가 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음…… 대자연이 되어 버린 건가…….’
어리둥절하면서도 나는 이게 무슨 소용이 있는 건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흙이 되었으니 이제 적이 나를 없애려면 이 산 전체를 날려 버려야 하니, 일반적인 인간 무인이나 일개 신선 정도는 날 상대로 뭔가 할 수가 없으리라. 아무리 그래도 산을 단숨에 날릴만한 힘을 가진 놈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이 되어서 어마어마한 체급으로 절대 지지 않는다는 게 과연 무예의 차원에서 허용되는 일일까? 아니, 지지 않는다기보다 좀 황당한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생뚱맞은 차원으로 회피해 버린 기분이다.
‘화신지혼이나 수신지혼의 강화는 확실히 전투력이 강해진다는 느낌이었는데 이건 좀…….’
흙이 되어서 대체 뭘 하라는 건지……?
‘그러고 보니 내가 흙이라면 어디까지 조종할 수 있는 거지?’
나는 궁금해져서 한 번 내 의지가 어디까지 뻗어 나가나 시험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서서히 의지를 확장시키자 마치 의념을 다룰 때와 같은 감각으로 점차 시야가 넓어지는 게 느껴졌다.
스스스스!
계속 시야가 넓어지면서 나는 어느새 청룡무관의 뒷산을 넘어서서 근처에 있던 대여섯 개의 야산을 모조리 집어삼킨 듯했다. 최소한 반경 십 리 정도는 내 의지하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까지 늘리고도 의지를 확장 시키는 데 한계가 느껴지지 않자 나는 더럭 겁이 났다.
‘어, 뭐야?! 산 하나로 끝이 아니고 계속 의지력으로 지배할 수 있다고? 대체 어디까지…….’
진짜 이게 인간의 경지라 하기에는 너무 나간 거 같은데?!
나는 인간을 벗어나는 두려움과 함께 강한 호기심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토신지혼을 강화하면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좋아. 어디까지 지배할 수 있는지 시험해볼까!’
촤좌좍!!
마치 땅끝까지라도 갈 기세로 내 지배력이 점점 촉수를 뻗치기 시작했고 심지어 지금까지 의지를 확장했을 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땅의 범위가 넓어졌다. 그리고 땅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시야가 더욱 광대해졌는데, 놀라운 점은 이렇게나 수많은 시야를 동시에 받아들이는데도 나는 전혀 어지럽거나 헷갈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야가 족히 수만 개는 되는 것 같은데 안 헷갈린다…… 이게 가능한 건가?’
아무리 내가 절대지경의 고수라지만 고수의 집중력으로 수많은 정보를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과는 개념이 다른 것 같았다. 마치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별달리 힘을 쓰지 않아도 그 모든 게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두쿵!!
그리고 마침내 확장이 한계를 맞이한 듯, 나는 약간 머리가 깨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더 이상은 지배영역을 늘릴 수가 없다는 걸 알아챘다.
그러자 나는 내가 얼마나 넓은 범위를 지배했는지 알고 싶어졌다.
‘흠…… 어디 한 번 ‘일어서’ 볼까?’
인간의 형상을 떠올리고 그 자리에서 일어서면 내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많은 범위를 지배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으리라!
쿠구구
약간의 압력과 함께 어깨에 무거운 짐이 얹히는 기분이 든다. 나는 견딜만한 압력이었기에 잠시 집중을 하다가 이윽고 번쩍하고 다리에 힘을 주어서 일어났다.
콰아아앙!!
왜 폭발음이 울리지?
나는 천지를 메우는 굉음에 어리둥절했지만, 이윽고 지금까지 산만했던 수만 개의 시야가 통일되면서 마치 인간상태였을 때처럼 시야가 단 하나로 되돌아온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몸뚱이가 크게 치솟아 오르면서 빠르게 지표면을 벗어났는데, 나는 내가 마치 날아가는 것처럼 착각했을 정도였다.
‘아냐. 날아가는 게 아니라 너무 커서…….’
두웅
‘…… 키가 성층권에 도달한 건가.’
주변에 보이는 게 온통 암흑과 별뿐이고 동시에 발밑에는 대륙의 형태와 바다의 윤곽이 보인다.
거인(巨人)!
예상은 했지만, 단숨에 지구를 오시하는 거인이 되어버리자 나는 신기하면서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신지혼을 강화하면 설마 이런 게 가능하다니!
[하하하하.]
콰우우우!
웃음소리를 내자 마치 포효 같은 게 터져 나와서 전방으로 거대한 광선을 쏘아내었다. 쏘아진 광선은 저 멀리 달 너머까지 날아가서 곧이어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내 입에서 광선이 쏘아지는 걸 보자 놀라서 기겁했다.
헉 씨발 뭐야?! 왜 광선이 나가지!?
흙의 기운만 지배하는 걸 텐데 왜?
나는 당황했지만 이내 토신지혼 강화의 기운이 빠르게 수그러드는 걸 느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내가 쓸 수 있는 기운의 양은 정해져 있었고 그걸 얼마나 빨리 소모하느냐의 차이였을 뿐인 듯했다.
슈슈슉
빠르게 내 몸이 줄어들어서 다시 인간이 되자 나는 다시 지표면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나는 돌아오자마자 깜짝 놀랐다.
“허억?!”
이미 청룡무관이나 야산은커녕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고 모든 것이 시꺼먼 무저갱 같은 구덩이에 파묻혀 있는 것 같았다. 이 시꺼먼 무저갱 같은 구덩이는 그 끝이 보이지 않았고 청각을 귀 기울여 보니 용암소리 같은 게 조금씩 부글거리며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참상을 보자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너무 많은 양의 흙을 한꺼번에 끌어 올리니까 대지가 몽땅 파여 버렸구나!’
동시에 내가 토신지혼 강화를 현실에서 시도해보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현실에서 시험했다가는 말 그대로 대참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사람이 없는 수련세계이기에 별다른 피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듯했다.
“돌아가라!”
슈욱
나는 신력을 써서 지금까지 벌였던 참상을 다시 원상복구 했다. 그런데 원상복구하고 땅에 착지하는 순간 어지럼증 때문에 비틀거렸다.
“우욱.”
토 나올 것 같다……!!
나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신력을 써서 회복시키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어서 크게 신력을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신력을 써서 복구한 범위는 아무리 못해도 수백 리가 넘었기 때문이다. 나라 하나를 통째로 원상복구시킨 셈이었기에 아무리 내 신력이라 해도 일순간 한계를 볼 정도로 소모된 것이리라.
“으윽. 대, 대단한 위력이긴 한데…… 이 능력을 어떻게 써먹지?”
토신지혼을 강화해서 성층권에 도달할 정도로 거대한 흙 인형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이미 이런 수단까지 써서 상대해야 하는 적이라면 최소한 상위 신격이리라. 그런 신을 상대로 물리적인 크기가 좀 커봐야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다. 차라리 수신지혼의 강화 같은 게 실전성에서는 백 배 나았기에 나는 이 능력이 계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아직 토신지혼의 진가를 잘 모르는 게 아닐까…….
‘땅 그 자체’가 되는 게 어떤 식으로 활용하면 가장 좋은 걸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뭔가를 깨닫고 탄성을 내질렀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 처음으로 ‘5번째’ 회전을 시도해서 성공했고 그것도 토신지혼에 손을 뻗어서 성공한 것이구나!
‘그렇다면 굳이 강화부터 안 하고 처음부터 토신지혼을 써도 되겠지!’
우웅!
나는 바로 첫 회전에 토신지혼을 발현시켰다. 그러자 처음에는 답답하고 어색했던 토신지혼의 변화가 마치 내 몸에 딱 붙는 것처럼 가볍게 한 호흡에 시전되었다. 여태껏 수화뇌풍의 4 변화로만 윤회를 시도했기에 토신지혼을 쓰지 않았지만 역시 이 속성도 다른 4속성과 마찬가지로 내가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그릇’이 분명했다.
‘그럼 수화뇌풍이 아니라 수화지뇌풍…….이 되는 건가? 흠…….’
어찌 되었든 5번째 회전이든 뭐든 구궁파천뢰의 빠른 회전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친다면 수화뇌풍의 4회전을 하든 수화지뇌풍의 5회전이 되든 ‘강화’된다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으리라. 그저 새로이 써먹을 수 있는 강화가 하나 더 늘어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에야말로 시도해볼 수 있는 게 있다.
나는 토신지혼을 해제한 후, 눈빛을 가라앉히며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거라면 시도하다가 죽어 볼 만하지.’
또 다른 그릇.
토신지혼을 찾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된 새로운 변화.
예전에 한 번 도전했다가 실패해서 죽었던 ‘그릇’.
스스스스 -
구궁파천뢰와 함께 기운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동안 나는 내면의 광대한 정신영역에서 새롭게 일깨워지며 서서히 무의식에서 떠오르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있지만 선명하게 느껴지는 저 ‘그릇’은 마치 쌍성(雙星)처럼 서로의 주위를 돌고 있었고, 나는 그 쌍성의 회전을 보자마자 중얼거렸다.
“일월지혼(日月之魂).”
심수력이 임시로 붙인 이름이지만 이보다 더 적절할 수는 없다. 내 숙련도가 부족해서 도저히 저 쌍성의 변화를 뚫고 제압할 수가 없어서 수백 여년 동안 일월지혼에는 손도 못 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처음 일월지혼을 접했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사신지혼을 미친 듯이 수십 년 이상 수련했으며 강화 또한 엄청나게 수련했고 토신지혼에까지 손을 뻗은 것이다. 숙련도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으니 이번에야말로 한 번 도전할 만했다.
나는 약간의 긴장을 느끼면서 심호흡을 하고는 그대로 일월지혼에 손을 뻗었다.
간다!
스으으 -
‘저번에는 기운의 중앙을 향해 돌진하다가 반신(半身)이 각각 서로 다른 음양의 기운 때문에 터져 버렸다.’
지금은 딱 봐도 알 수 있다. 하나의 기운은 일혼(日魂)이며 또 하나의 기운이 월혼(月魂)이다. 일혼과 월혼이 서로를 공전하는 상황에서 중앙으로 파고들어서 두 개의 기운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어야 저 두 개를 손에 넣을 수 있을 테지만, 단숨에 중앙으로 뛰어들면 죽는다는 걸 저번에 배웠다.
숙련도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중앙에 단숨에 뛰어들면 절대 음양의 조화를 맞추지 못하여 죽게 되는데, 그 조화를 맞추는 능력은 사신지혼의 윤회를 돌리는 수레바퀴의 감각이다. 그 감각을 수천 번 이상 쌓아온 지금의 나라면 천천히 일월지혼에 진입하면서 통제할 수도 있으리라.
‘음…… 하지만 바로 뛰어들긴 좀 무섭군.’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나는 조금 더 일월지혼이 회전하는 것을 신중하게 관찰해보기로 했다. 혹시나 내가 놓친 게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일월지혼의 단조로운 회전을 관찰했을까?
나는 문득 회전운동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점을 알아챘다.
‘…… 엇박자!! 항상 일정한 속도로 도는 것 같아도 미묘하게 달라질 때가 있어!! 그리고 조금 속도가 달라져서 엇박자가 생기면 잠시 후에 일혼이나 월혼이 반응해서 상대에게 그 엇박을 맞춰주는구나!’
으아아아……!! 큰일 날 뻔했다!
엇박자가 있는 것도 모르고 그냥 들어갔으면 또 죽을 뻔했잖아?!
‘그렇다면 진입해서 일혼과 월혼에 손을 뻗치는 순간은 엇박자까지 고려를 해야 해……!!’
그러나 2개의 공전과 엇박자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혼을 통제한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어려울 것 같았다. 보통의 사신지혼은 혼 하나만 다루면 되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이건 좀 얘기가 달랐다. 나는 어째서 일월지혼이 어려운지를 단숨에 실감할 수가 있었다.
그럼 차라리 엇박자에 맞춰서 들어갈까?
그게 성공한다면 여러 번 모험을 할 필요가 없이 한 번만 성공하면 되는데…….
‘아냐…… 성공하면 대박이겠지만…… 너무 실패확률이 높잖아!’
천재적이라는 걸로도 모자랄만한 감각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절대 천재가 아니다. 그걸 노리고 들어가기에는 너무 힘들다.
그렇다면 나는 일혼과 월혼을 잘 살펴서 엇박자에서 최대한 먼 순간을 노려서 들어가는 게 좋을 것이다. 비록 엇박자 때문에 여러 번 고비를 건너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래도 현실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들어가기에 앞서서 먼저 월혼에 손을 뻗어보았다.
톡…….
쩌저저정!!
‘크으으으으읍!!’
그 순간 절대영도처럼 느껴지는 엄청난 한기가 건드린 쪽으로 몰아쳐 왔다. 단숨에 예전에 죽었을 때처럼 몸의 절반이 얼어붙어 버리는 것 같았고, 내가 갖고 있는 절대내공 따위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내공으로 기혈과 경혈을 방어하는 걸 송두리째 무시해 버리는 듯했다. 나는 재빨리 월혼에서 손을 떼었고 한기를 다스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후웁. 훕…….”
짐작대로다.
월혼은 극한의 음(陰)이며 냉기의 결정체!
일혼은 극한의 양(陽)이며 열기의 결정체!
이 2개를 동시에 다스리려 하면 엄청난 뇌령의 통제능력이 필요하며 동시에 음양에 대한 이해까지 필요할 것이리라. 거기에다가 엇박자 때문에 기껏 맞춰놓은 통제의 박자가 어그러져서 또 한 번 위기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도리어 히죽하고 웃었다.
‘흐흐…… 할 수 있어.’
죽어도 본전이고, 충분히 자신 있는 이유가 있다고!!
나는 다음 순간 용기를 가지고 일월지혼으로 뛰어들어서 두 개의 혼이 교차하는 순간 동시에 붙잡았다.
치이이이익!!
그러자 손에 잡힌 각각의 일월지혼이 날뛰면서 순식간에 내 몸을 절반씩 얼리고 태우려 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내면에서 거세게 뒤흔들릴 정도로 의념으로 외쳤다.
[무쌍패(無雙覇)!!]
쿠와아앗!!
일월지혼이 내 정신체를 완전히 말소시키기 직전, 내 정신을 감도는 띠 같은 게 생겨나며 일월지혼의 공세를 한 차례 막아섰다. 나는 동시에 반신에서 회전하고 있던 거대한 음양의 힘이 육합(六合)의 패도가 만들어내는 조화력에 잠시동안 짓눌리는 걸 느끼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서 음양의 조화에 있어서 무쌍패 무위전변보다 더 탁월한 게 어디 있겠어!!’
미리 무위전변을 내 영체 주변에 돌리고는 일월지혼을 잡아 버리게 되면 일월지혼의 파괴력이 행사되는 순간 무위전변이 저절로 무쌍패의 원리로 패도와 조화를 시행하게 될 것이고, 그 태극조화의 힘이 일월지혼의 힘을 잠시 상쇄시켜 주는 것!! 내가 생각할 때 이것보다 더 완벽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무쌍패 또한 도가의 무예인 데다 음양의 원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그 육합 속에서 음양의 기운을 효율적으로 제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태극의 이치에 따라 무쌍패의 기운이 월(月)은 양(陽)의 부위로, 일(日)은 음(陰)의 부위에 맞춰서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쿠구구구……!!
꿀꺽
나는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일단 한 번 기세를 눌러서 일월지혼의 기운을 통제하긴 했는데…… 엇박이…… 온다!!’
엇박은 단순히 공전하는 기세가 엇박인 게 아니다. 일월지혼은 공전하는 도중에 엇박에 맞춰서 힘의 파장과 기세가 모두 달라졌다. 지금은 그냥 공전할 때의 기세에 맞춰서 무쌍패 무위전변으로 기운을 상쇄시켰지만, 엇박으로 갑자기 기세가 달라질 경우 그걸 제압하지 못하면 그대로 터져 죽는 것이다.
제길……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건 수십 번 이상 시행착오를 해야 할 텐데…….
이번엔 죽어도 어쩔 수가 없겠군.
치지징!!
나는 엇박이 찾아오는 순간 눈을 질끈 감으며 그 기운에 맞춰서 무위전변을 행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우박을 돌로 던져서 맞추는 것과 같은 행위였고, 맞출 수도 있었지만 못 맞출 확률도 높은 것! 나는 그 위험천만한 고비를 넘기면서 제발 내 운이 좋기만을 빌 수밖에 없었다.
꿀렁…….
“크흑!!”
일혼의 기운이 갑자기 일렁거리면서 팔에서 심장까지의 근육이 죄다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엇박을 감지하는 데 실패했음을 예감했고, 아니나 다를까 한 번 무위전변이 실패하자 일혼에 이어서 월혼까지 마구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죽으리라.
너무나 익숙한 죽음의 예감에 나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죽기 싫어…….’
목숨은 이미 수단에 불과할 뿐인데도 나는 그 한심한 생각에 젖어서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몇십몇백번을 죽더라도 죽는 건 기분 나쁘고 싫다.
경험적 숙련도와 정신무장으로 버텨내긴 하지만 죽음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은 지금까지도 전혀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고통마저 두려우니, 누가 나를 더러 죽음이 일상인 전생자라고 생각할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가능하면 안 죽으면서 이기고 싶은데, 그게 맘처럼 되지 않는다.
재능이 없기때문에…….
바로 그때였다.
시간이 멈추는 듯한 감각과 함께 누군가의 환영이 빛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게 보였다.
[그대는 외팔이일진대 어찌 두 개를 모두 손에 잡으려 하는가?]
누구지?
마치 도신 때처럼 얼굴이 안 보인다.
나는 그 빛의 환영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어쩐지 적대적인 느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그에게 마음속으로 대꾸했다.
‘의념으로 손을 만들어서 하나를 더 잡을 수 있소.’
[아무리 의념의 대가라 하여도 결국 실존(實存)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하노라. 일월의 혼을 가짜 손으로 잡을 수 있겠나.]
나는 아파죽겠는데 시비를 걸자 짜증이 나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자꾸 시비를 거는지 모르겠군. 어차피 일월지혼을 내 손에 잡는 것도 실존이 아니라 심상세계에서 의지력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오? 그렇다면 실존하는 손이나 실존하지 않는 의념의 손이나 같은 용도가 아니겠소.’
[존비존(存非存)이 같음을 알고 있구나. 헌데 왜 지행합일(知行合一)이 되지 않는가?]
‘뭐요? 지금 알고 있는 대로 마음속으로 두 개의 손을 만들어서 잡고 있잖소.’
[그렇지 아니하다. 그대의 마음은 결국 그대의 관념(觀念)에 의해 한계를 가지고 말았다.]
‘……?’
나는 일월지혼의 기운을 이기지 못해 사라지고 있는 손을 쳐다보았다. 여기에 관념 때문에 한계가 부여되었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앞의 존재가 가부좌를 튼 채 한쪽 손을 합장의 자세로 내밀었다.
[관념은 마음의 창이지만 마음 그 자체라 할 수는 없음이다. 가장 순수한 마음을 식(識)의 근본에서 깨닫지 못한다면, 일월의 혼에는 도전할 수 없다. 그대의 가장 깊은 마음속 어둠…… 그 어둠을 해갈하지 못하였으니 그대는 결코 도달할 수 없음이 본디 세상의 이치겠지만…….]
‘…….’
[그대여. 숙련도라는 관념을 버릴지어다. 그대의 손이 하나라면 하나로 잡을 수 있는 것은 하나이다.]
나는 그 말에서 심오한 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 말이 절대지경 이후의 경지를 말해주고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그리고 왠지 도신이 말했던 마음의 경지와 통해 있었기에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상대가 심상치 않은 존재라는 걸 깨닫고는 말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
상대는 침묵하다가 말했다.
[백련지종(白蓮之宗)에 이를 수 있는 건 그대뿐이다.]
번쩍!!
그 순간 눈앞의 환영이 사라지더니 갑자기 나는 양손에 느껴지던 막대한 고통이 사라짐을 느꼈다. 그리고 내 양손을 쳐다보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일혼(日魂)의 압도적인 열기가 내 팔을 태우려 맹진하다 말고 멈춘 까닭은 바로 거대한 물의 기운이 응축되어서 일혼의 맹진을 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기운에서 아주 익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 이, 이건…….’
바루나의 신기(神氣)가 아닌가?!
그것도 여태껏 내가 사용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막대한 밀도와 양!!
급히 다른 쪽을 살펴보자 그곳에는 월혼의 압도적인 한기를 막고 있는 거대한 불꽃의 고리가 있었다. 그 불꽃의 고리는 역시 마찬가지로 아그니의 신기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때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생자여.]
[듣고 있는가?]
그 목소리는 바로 사대정령 아그니와 바루나의 목소리였다.
[이번만 특별히 도와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