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506화 (1,405/1,615)

전생검신 80권 14화

이환웅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는 당장 알기 힘든 것 같았다. 그 자신도 어렴풋이 예측하고 있을 뿐 좀 더 능력을 개발시킬 필요가 있다길래 그냥 나머지는 놈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이광을 쳐다보자, 이광은 눈살을 찌푸리는 것 같았다.

“사부. 나도 해야 하는 거요?”

나는 이광이 띠껍게 나오자 기분이 나빠져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싫으면 하지 말든가. 모처럼 힘을 강화시킬 수 있는 기연이 생겼는데 내다 버리겠다면 권유하진 않겠다.”

“그런 소리가 아니오. 단지 좀 비효율적인 것 같아서 말이오.”

“……비효율적?”

이광은 턱짓으로 멀리에서 혼자 능력을 수련하는 이환웅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기 저놈은 애송이인 데다 아직 어떤 분야에도 크게 파고들지 않은 원석(原石). 저런 애송이 놈의 입장에서는 가면을 써서 무작위로 능력을 개화시켜도 상관없을 것이오. 왜냐하면 아직 아무것도 없으니까 새로운 능력에 맞춰서 자신의 적성을 개발하면 되기 때문이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하나 나는 수십년 동안 무(武)를 연마해 왔소. 내가 만일 저 이환웅과 같이 초능력을 각성하면, 강해졌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가 있겠소?”

“…….”

나는 이광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었기에 팔짱을 끼며 대꾸했다.

“이광, 너는 이미 무예의 달인이므로 무예와 상관없는 계열의 재능을 각성하면 도리어 손해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건가?”

“그렇소. 솔직히 말해서 ‘결과’만으로 따진다면 절대지경의 무공으로도 웬만한 초상능력은 따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나는 가능하면 효율적으로 강해지고 싶다는 거요.”

“흐음…….”

맞는 말이다.

이광이 지닌 무공의 숙련도가 100이라고 할 때 초상능력이나 술법의 숙련도는 0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난데없이 초상능력과 술법 관련 재능을 각성하게 되면 이광은 무공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를 처음부터 수련해야 하는 셈이다. 나 같은 경우는 결과적으로 다 이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충 다 파고들었지만 이광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재능 있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수보리, 잠시 인간이 되어 보시오.”

[그러지.]

나는 수보리를 인간의 형태로 되돌리며 질문했다.

“방금 얘기는 다 들었을 거요. 이광이 원하는 대로 무(武)에 관련된 재능만을 각성시켜 주는 건 안 되겠소?”

“가능하네.”

“호오! 가능하다면 당장…….”

“하지만 위험하다네. 엄청나게.”

수보리는 그렇게 덧붙이고는 약간 싸늘한 시선으로 이광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이환웅에게 했던 경고는 괜히 했던 게 아니었네. 원하는 만큼 세밀하게 다듬어서 무의식을 조각낸다니, 나는 그 정도로 강력한 가면은 아니야. 이광, 네가 원하는 대로 하고자 하면 더 난폭하고 우악스럽게 잠재의식을 부숴 버리는 수밖에 없다.”

“…….”

“무(武)에 관련된 심층의 재능이 드러날 때까지 정신세계를 계속 부수는 것이다. 그 위험부담을 감수하겠다면야 기꺼이 해 주마.”

침묵하며 듣고 있던 이광이 입을 열었다.

“좋소. 할 수 있다면 어디 해 보시오.”

“……!!”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약간 놀랐다. 수보리는 가면으로 잠재의식을 공격하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거친 방법을 쓰겠다고 선언한 셈인데, 이광이 그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나라고 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미쳐 버릴 확률이 너무 높아!!’

인간의 정신세계는 무척 섬세하게 형성되어 있었기에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맛이 가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그래서 나는 이광에게 말했다.

“미쳐도 괜찮은 거냐? 수보리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을 건데.”

“미치면 사부가 나를 그냥 죽여 주시오. 어차피 사부가 죽었다 살아나면 이 세계가 원상복구된다고 들었는데, 그때 그 메피스토인가 하는 놈한테 내가 미치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달라고 부탁하면 될 거 아니오? 메피스토의 입장에서는 나 또한 세계의 일부에 불과할 터.”

“아.”

“사부가 말한 대로라면 이 수련세계에서 미쳐 버릴 것을 걱정할 이유는 없소. 저기 이환웅이란 놈도 내가 말한 것 정도는 생각했을 테니 망설임 없이 제안을 받은 거요.”

그런 방법이……!!

‘역시, 이광의 머리가 비상하긴 하구나.’

생각지도 못했던 방안을 듣자 새삼 이광의 재능이 뛰어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광은 허공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신과의 전투를 겪어 보면서 신과 인간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소. 그런 놈들이 득시글거리는 마역(魔域)을 극복하려면 나 또한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할 터! 나는 강해질 수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요.”

“……그렇게까지 생각한다면야.”

나는 수보리에게 눈짓을 했고, 수보리 또한 별말 하지 않고 바로 가면으로 변했다. 나는 이광의 얼굴에 그대로 가면을 갖다 씌웠다.

쿠구구구-

그러자 아까 이환웅이 했던 것처럼 가면을 쓴 이광의 얼굴에서 어둠의 잔광이 일어났다. 아무래도 가면을 써서 재능을 각성하는 자들은 저 어둠의 잔광을 겪어야만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던 이광은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후우…….”

슈와앗

동시에 수보리가 가면에서 인간의 형상으로 되돌아왔고, 나는 이광에게 말했다.

“어떠냐? 재능을 얻었나?”

“……몇 수만 겨뤄 주시오.”

투웅 하는 소리와 함께 이광이 어기지력(御氣之力)으로 장내에 있던 수련용 창을 허공에 띄워 자신의 손으로 가져왔고, 나 또한 그에 호응해서 창을 비껴들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광은 자기가 얻은 재능이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나와의 대련을 원하는 것 같았다.

찰(札)!

선공을 한 것은 이광이었다. 란나찰의 찰을 써서 기본적이고 단순하지만 뇌신류의 정석인 찌르기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찰의 빠르기가 엄청나다고 생각했지만 예전과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했다.

‘석화되기 전 이광의 수준 그대로군. 무공이 향상된 건 아닌 건가?’

란(欄)!

투확

나는 역으로 찰의 찌르기를 흘려 내며 도리어 감아 쳤다. 아주 기본적인 창술의 반격기로서 방어와 동시에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었고 이런 원리의 무예는 검술, 극술, 단검 등 다양한 무기술에서 활용되었다. 단지 기본적인 만큼 깔끔하게 먹여 치는 게 몹시 힘들었는데, 나는 간단하게 이광의 찌르기를 반격할 수가 있었다.

챙! 채앵! 챙!!

잠시 동안 허공에 푸른 창섬(槍殲)이 날아다니며 격돌했다. 그리고 나는 한쪽 팔만으로 창을 쓰면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이광을 몰아붙일 수 있었고, 고작해야 십여 초가 지난 상태였는데 이광은 처음에 서 있던 장소에서 일곱 걸음이나 뒤로 물러서 있었으며 얼굴에도 땀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창을 한 차례 허공에서 튕긴 후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더 해야 하냐?”

내 말을 들은 이광은 잠시 매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이내 허공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니오. 내가 원하던 그 재능은 각성하지 않은 것 같소.”

“뭔 소리냐?”

“나는 싸울 때마다 강해지는 재능을 갖고 싶었소. 사부의 말대로라면 소청이가 미래에 갖게 될 그 재능이…….”

“……!!”

“그것보다 더 강력한 재능은 없으리라 생각했소. 한데 얻지 못했구려.”

진천(振天)!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화, 확실히…… 진소청의 진천을 얻을 수 있다면.’

진소청은 겨우 몇 초식 나누는 짧은 순간에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마왕급인 팔부신중을 도륙할 정도로 빠르게 강해진 적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진소청만의 절대지경, 진천!! 아무래도 이광은 내게서 진천의 이야기를 들은 후 그 재능을 몹시 부러워하여 이번에 가지려 한 게 분명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수보리가 냉소를 지었다.

“흐흐! 아무리 가면의 힘으로 잠재능력을 각성시켜 준다 해도 애초에 없는 걸 각성시켜 줄 순 없어. 아무리 잠재의식의 세계가 무한하다 하더라도 개인(個人)은 굴레의 한계를 벗어나 깨달음을 얻지 않는 한 소유(所有)한 영성(靈性)에 한계가 있는 법!”

“음…….”

“굳이 이런 식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무의식적으로 네가 어떤 능력을 각성했는지는 이미 알고 있을 텐데,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가 보구나…… 이광.”

“…….”

이광은 수보리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내게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사부는 본디 창술에 있어서 그리 대단치 않은 경지였는데 못 본 사이에 많이 늘었구려. 한데 검술이 특기일텐데 이제와서 창술은 뭣하러 연마하시오?”

“그게 제자가 스승한테 할 질문이냐? 싸가지 하곤…….”

나는 툴툴거리고는 대꾸했다.

“나는 뇌신류의 종사(宗師)를 넘어서 그 이상의 경지인 무혼(武魂)을 노리고 있다. 무혼을 얻고자 하면 창권검은 물론이고 뇌신류의 오만 잡기를 다 익혀야 하니 당연하지 않느냐?”

“……?!”

“너도 내가 무혼을 추구하는 김에 날 도와서 수련해라.”

내 대답에 이광은 엄청나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말로 표정 관리가 안 된다는 표현이 딱일 정도였다. 이광은 말도 안 된다는 듯 격한 반응을 보이는 듯했다.

“미친 소리! 무혼 같은 게 어디 있소?!”

“……?”

뭐라고?

너야말로 뭔 소리 하는 거냐?

“야, 씨발 너…….”

내가 험한 쌍소리를 하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수보리가 크게 손뼉을 쳤다.

꾸우우웅!!

그와 동시에 천지를 울리는 범종 소리가 울리며 장내에 있던 모든 자의 행동을 일시에 멈춰 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게 무척이나 강력한 술수라는 걸 알아챘고 최소한 대라신선급 이상만 쓸 수 있으리라는 걸 짐작했다. 수보리는 씩 웃으며 말했다.

“십만 마리의 마귀를 없앨 수 있는 대화엄종(大華嚴鐘)의 술수를 좁은 범위에 써서 강화시켰는 데도 잠시 마비되는 걸로 끝나는군. 하하하…….”

“수보리.”

“백웅, 진정하시게. 지금의 이광과 핏대 세워서 감정적으로 싸워 봐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무엇보다도 지금 자네들 둘이 정말로 무혼에 대하여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이겠는가?”

“음…….”

“진인(眞人)은 언사(言事)에 치중하지 않는 법. 우선은 해야 할 일부터 하시게.”

맞는 말이다.

나는 욱하던 감정을 추스리고는 이광에게 말했다.

“아무튼 재능을 각성한 건 맞는 거지? 어떤 재능인지는 모르겠냐?”

이광 또한 자기가 평정심을 잃었던 게 창피한지 약간 목소리의 성량이 줄어든 채 대답했다.

“……사신지혼(四神之魂)을 수련하는 데 도움이 될 재능일 거요.”

“사신지혼?”

“내심 진천을 얻을 수 없다면 2순위로 얻고 싶은 재능이 있었소. 어차피 신에 대항한다면 사신지혼을 익혀야만 하니까 수련속도를 빠르게 하는 재능이 필요했고 그걸 얻은 것 같소. 어떤 재능인지 구체적으로는 수련을 시작해 봐야 알 것 같소.”

“흠, 그건 그렇지.”

이광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사신지혼!

사신지혼의 변화를 제대로 익히기만 한다면 무공만으로도 신적 존재와 충분히 싸울 수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일례로 심수력의 현재 실력만 하더라도 웬만한 하급 신격을 쉽사리 때려눕힐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공으로서 신과 싸우고자 한다면 사신지혼 이외의 선택은 없으리라.

‘그렇다면 남은 기간 동안 이광과 이환웅에게 사신지혼을 가르치는 게 주된 수련이 되겠군.’

그러자 지금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심수력이 입을 열었다.

“백웅, 그들에게 사신지혼을 가르치는 건 내게 맡겨 주게.”

“당신이?”

심수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시간이 칠십여 년이라 한다면, 제자 가르치는 데 수십 년씩 쓰는 건 굉장한 시간 낭비일세. 자네는 자기 나름대로 수련에 집중을 하고 내가 수련교관의 몫을 하겠네. 이렇게 하는 게 자네에게 훨씬 이득이겠지.”

“……!! 그래 준다면 고맙겠소.”

그러고 보니 심수력이 나 대신 가르쳐 준다면 나는 귀찮은 걸 하지 않고 시간을 아낄 수 있으리라! 소을촌 때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데 얼마나 심력과 정신력이 소모되는지 느꼈던 나로서는 반가운 제안이었다. 나는 동시에 걱정되어 말했다.

“심수력, 당신도 사신지혼을 아직 수련할 게 많이 남아 있을 텐데 당신의 수련시간이 줄어들어도 괜찮소?”

그러자 심수력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탁록대전의 시대로 가면 상급 신격이 날뛰어 대는 데 내 힘이 조금 더 늘어나든 말든 큰 상관은 없어. 개인의 무력으로 상황을 뒤엎을 수 없다면 나머지는 전술과 전략이 중요한 것이지. 큰 판도에 기여할 수 있다면 이게 더 낫지 않은가?”

“……그렇군.”

“그리고 자네도 아마 느꼈겠지만 사신지혼의 수련요구치는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해. 처음부터 아무리 절세천재라 하더라도 인간의 수명으로 이루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무공…… 대성(大成)하고자 하면 최소 수천 년이 필요할 것이니 서두를 필요도 없어.”

흠칫!

나는 심수력의 말에 약간 놀라서 반문했다.

“수…… 수천 년? 너무 많지 않소.”

“뭘 그리 놀라나? 자네도 어렴풋이 느끼지 않았는가? 사신지혼의 ‘윤회’를 이용해 성장한다는 방식 자체는 단순하지만 사실 일월지혼(日月之魂)은 물론이고 사신지혼의 복합 등등 수련할 과제가 너무 많이 남아있어. 따지고 보면 자네도 나도 이제 막 이 무공을 창시한 것이고 제대로 수련해서 대성하고자 하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하겠지. 적게 잡아서 수천 년이고 많으면 1만 년이 넘게 걸릴지도 모른다네.”

나는 잠시 탈력했다가 간신히 대꾸했다.

“나는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느끼지 않았었소. 이 공간에서 보낸 시간도 그리 많다고는…….”

“그야 자네가 엄청난 집중력으로 이 공간에서 수백 년 내내 수련만 했으니까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낀 거뿐이지…… 실제로는 인간세상의 기준으로 무구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네.”

“…….”

“여러모로 자네도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게지.”

그렇게 말한 심수력이 이광, 이환웅을 데리고 가며 말했다.

“자네들은 날 따라오게. 사신지혼의 기초를 수련하는 데 최소 20년이 걸릴 테니 정신 바짝 차리고.”

파앗-

세 사람의 신형은 장내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수보리가 말했다.

“마지막 말은 백웅 자네 들으라고 한 말이겠군. 20년 후에 찾아오란 뜻일세.”

“……그렇겠구려.”

“나도 저쪽으로 가 보겠네. 나는 무공은 잘 모르지만 저 이환웅이라는 청년이 새롭게 각성한 재능을 발전시키려면 내 도움이 필요할 터이니.”

“갔다 오시오.”

“흠…… 그런데 한 가지 자네한테 해 줄 말이 있다네.”

“무엇이오?”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금오도의 알을 주의 깊게 살펴보게. 지금이 아니면 외부세계에서 그 비밀을 풀기는 힘들 터이니.”

슈욱-

수보리 또한 공간이동의 술수로 사라졌다. 나는 그의 마지막 조언을 들은 후 생각했다.

‘금오도의 알…….’

나는 이 세계에서 얻은 금오도의 알을 천천히 꺼냈다. 이것만큼은 마구잡이로 다 팔아서 마두를 획득할 때도 팔지 않은 것이었다.

이 금오도의 알은 1차 해방하는 데만도 엄청난 음신지력을 쏟아야 했고, 알이 한 번 깨지면 적란(赤卵)의 형태로 변한다. 거기에서 2차 해방을 하는 건 도저히 감당이 안 되었기에 거기서 포기했었다. 이만큼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며 가치도 대단한 알인데 대체 그 정체가 뭔지는 아직까지도 알지 못했다.

나는 금오도의 알을 살펴보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알이라고?]

[네. 금오도주가 몰래 갖고 있던 알이었습니다만…….]

[……그럼 어쩌면 이건 여와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군.]

[우주에서 단 하나, 여와 말고도 똑같은 걸 지닐 수 있는 존재가 있다. 그 존재가 지니고 있던 걸 반고가 맡아 두고 있었을지도.]

여와의 새끼줄을 공양했을 때 기뻐하던 태고적의 신격, [무지개뱀]. 그 존재가 내게 말해 줬던 금오도의 알에 대한 단서!

‘생명을 만들어 내는 혼돈의 새끼줄은 여와의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소유일 수도 있다…… 알에 대한 직접적인 단서는 아니지만, 무지개뱀은 알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어째서 알을 대가로 바쳤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여와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지?’

아니, 내가 뭔가 놓치고 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뭔가가 떠올라서 손을 탁 쳤다.

“아!”

여와 말고도 똑같은 것을 지닐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생명의 새끼줄이 2개라는 것.

왜 그런 단순한 걸 지나쳤을까?

새끼줄은 왜 2개인 걸까?

‘새끼줄이 복사되었다……? 아냐. 그런 것보다는 처음부터…… 새끼줄이 2개였고…… 한 쌍이었다는 것.’

태초부터 한 쌍으로 만들어진 새끼줄.

그중 하나는 여와가 가지고 있고, 여와와 똑같은 것을 갖고 있을 수 있는 존재.

답은 처음부터 뻔했던 것이다.

“복희!!”

창조될 때부터 신좌에서 여와와 쌍둥이 남매로 태어난 태룡 복희밖에 없지 않은가!

여와와 복희는 뭐든 한쌍으로 공유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새끼줄 또한 한 쌍으로 갖고 있는 게 당연하잖은가!

반대로 복희 이외의 답이 더 말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흐름이 간단해진다.

여와와 복희는 태초에 한 쌍의 새끼줄을 각각 1개씩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인해 복희가 갖고 있던 새끼줄이 반고에게로 가 버린 것이고, 그 반고는 내가 바친 금오도의 알 공양을 받자 자기가 갖고 있던 복희의 새끼줄을 내게 준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무지개뱀은 알이라는 언급을 듣자마자 그게 여와의 소유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일까? 마치 당연히 그게 복희의 새끼줄이어야 한다는 것처럼…….’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뭔가를 알 수 있었다.

‘……그래. 금오도의 알이 가진 인과율(因果律)은 여와가 아닌 복희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복희…… 그러면 설마…….’

나는 내가 생각한 결론이 믿기지 않아서 눈을 껌벅거렸다.

“이 알은 삼황 복희의 알이란 말인가?”

아, 아니 복희는 수컷 아냐?

수컷 용이 알을 낳을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이게 복희의 알이라고 가정한다면 많은 것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어마어마한 신력을 불어넣어야 알이 부화할 수 있는 것도 그렇고, 이 알에 어마어마한 가치가 매겨지는 것도 분명히 납득할 수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삼황의 일좌가 직접 낳은 알이라면 이 알 또한 커서 태룡(太龍)의 일족으로 장성하지 않겠는가? 우주를 주름잡는 대신(大神)의 원초적인 근원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그리고 무지개뱀이 그렇게 말한 것도 이해가 갔다. 당연히 복희가 낳은 알이라고 짐작하고 있을 테니 알을 대가로 새끼줄을 받아 온 거라면 자기가 받은 새끼줄이 여와의 소유라기보다는 그 한 쌍인 복희의 소유라고 추측할 것이 아닌가?

‘신이니까 암컷 수컷 구분 없이 알을 낳을 수 있는 걸지도……?’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대귀!! 금오도의 알을 봉인해제 하는 데 드는 마두를 보여다오.”

[알겠습니다.]

소환된 대귀는 곧장 내 눈에 창을 띄워 주었다.

[ ???의 알(1차봉인 중/2차봉인 중/3차봉인 중)

일시불 가격 : ?????????????? 마두

봉인해제 가격 : 불가능(不可能)

대납(對納) 및 담보설정(擔保設定) 불가(不可)]

“…….”

역시 다시 봐도 어이가 없다.

일시불 가격은 아예 매겨지지도 않았고 물음표만 잔뜩 떠 있었다.

‘이건 지금 내 상인 등급인 4등급으로는 금오도의 알의 정확한 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는 거야.’

또한 봉인해제 가격은 불가능!

다른 모든 보물은 비싸긴 해도 어쨌든 숫자가 떠 있고 가능했던 반면에 금오도의 알은 마두를 써도 봉인해제를 시도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상업의 권능 자체를 아예 처음부터 차단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신급 보물이라 할지라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또한 대납과 담보설정조차 불가능했다. 이것은 마두를 빌려와서 빚을 땡겨서 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사실 이런 점이 너무 꺼림칙해서 아까 보물을 다 팔아 버릴 때 팔지 않았던 것이다.

도대체 이 알이 무엇이길래 이런 판정이 뜨는 것인가?

“좋아…….”

나는 눈을 부릅뜨고 손을 들어서 금오도의 알에 갖다 대었다.

그러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번엔 어디 목숨 걸고 끝까지 다 해방시켜 보자고.”

전생하면서 내가 쌓아 왔던 모든 신력을 걸고 이 알의 정체를 알아내고 말겠어!!

‘신력을 불어넣는다!’

쿠와아아!!

잠시 후 어마어마한 신력이 폭포 쏟아지듯이 금오도의 알에 부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느꼈던 것처럼 내 손이 알에 딱 달라붙는 느낌과 함께 실시간으로 영혼까지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티기 시작했다.

‘크윽!’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내가 가진 신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어서 그저 표면적인 음신지력을 활용하는 게 한계였지만, 지금은 흑웅도 각성한 데다가 이 세계에 와서 신력을 쓰는 것에 많이 익숙해진 상태!! 몇 번이고 신의 잔해를 얻어서 어마어마한 신력을 얻은 나라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신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

쿠화악-

갑자기 용암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시뻘건 빛이 치솟아 올랐고 알의 겉껍질이 깨졌다. 그리고 잠시 후 우수수 알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안에 있던 알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 알은 예전에 봤던 것처럼 붉은 적란의 형태였다.

쿠오오오!!

‘좋아!! 아직 힘이 고갈되기는커녕 신력의 회복력이 소모를 웃돌고 있어!’

예전에 음신지력을 써서 해방을 시도했을 때와는 천지차이였다. 적어도 여력이 10배 이상 남아 있다는 게 고스란히 느껴지는 상태! 나는 1단계 해방 후에도 체력이 쌩쌩하자 자신감을 가지고 그대로 적란의 해방에 도전했다.

츠즈즈즈……!!

2단계 해방에 들어가자 갑작스럽게 신력의 소모도가 더욱 커지는 게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보다 몇 배나 더 빠르고 강렬하게 내 힘을 흡수하고 있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나는 그 소모도가 아찔할 정도로 많아지자 잠시 넋을 놓아 버릴 뻔했다.

‘이, 이 정도면 음신지력으로 치면 1천 년…… 2천 년…… 아니, 5천년……?! 대, 대체 이게 무슨.’

예전에 느꼈던 2단계의 예상 소모량보다 훨씬 더 많이 잡아먹는다. 모르긴 해도 이 정도 신력이라면 이미 중급신의 수준에 이르렀으리라! 마왕이나 사도조차도 순식간에 힘을 다 빨아먹힐 것만 같은 미친듯한 흡수력에 나는 손발이 덜덜 떨리는 게 느껴졌다.

‘미... 미쳤어... 이건 신조차도 감히 봉인을 풀 엄두가 안나는 물건이다!’

나는 내가 무엇에 도전했는지를 실감하자 잠시 멍해졌지만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는 이를 악물었다.

“씨발...!! 죽기밖에 더하겠어!!”

우웅!!

잠시 후 최소한 일만년 치 이상의 음신지력이 흡수되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크윽... 힘들어...’

아무리 나라도 힘들다. 신력이 갑자기 한 차례 바닥을 볼 정도가 되었고, 초회복력도 한두번씩 발동되는 게 느껴졌다. 내 신력으로도 이 정도라면 정말 한도 끝도 없이 빨아들이는 것이리라.

갑자기 붉은 알이 크게 진동하더니 멈추었고, 서서히 쩌적거리며 깨지기 시작했다.

치리링 -

그리고 적란이 깨지고 나타난 것은 환한 금란(金卵)이었다. 나는 그 시점에서 금란의 상태를 대귀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 ?????의 알(1차봉인해제/2차봉인해제/3차봉인중)

일시불 가격 : ?????????????? 마두

봉인해제 가격 : 불가능(不可能)

대납(對納) 및 담보설정(擔保設定) 불가(不可)]

음…… 별로 달라진 건 없나…….

내가 내심 실망하고 있을 때였다.

치지직.

대귀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야, 괜찮냐?”

[가,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법리(法理)가…… 서둘러 판별창을 꺼 주십시오……!! 무, 무섭습니다!!]

대귀는 진심으로 공포에 질린 것으로 보였다. 또한 대귀의 몸에서 연기가 나면서 발버둥치는 걸 보자 심상치 않은 것 같았다.

‘저놈이 왜 저러지?’

내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나는 창의 상태가 달라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치지직…….

“……?!”

[????의 알(1차봉인해제/2차봉인해제/3차봉인중)

경고: 외신(外神)이 당신을 부르려 합니다.

일시불 가격 : ?????????????? 마두

봉인해제 가격 : 불가능(不可能)

대납(對納) 및 담보설정(擔保設定) 불가(不可)]

어?

슈아아악!

내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나는 갑자기 내가 영문 모를 장소로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공간이 통째로 변해 버린 거라서 변하고 나서야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것도 없는…….

아니, 너무나 혼돈 그 자체인 백색의 공간.

‘서, 설마 여기는.’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눈이 하나 떠올라 있는 게 보였고, 나는 그 거대한 눈을 보자마자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생자여.]

외신(外神) 주시자(注視者)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직 이른 것 같지만 세계를 창조하겠는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