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505화 (1,404/1,615)

전생검신 80권 13화

나는 석화에서 풀려난 이광에게 말을 걸었다.

“석화에서 풀린 기분은 어때?”

“…….”

이광은 물론이고 이환웅도 지금 상황을 잘 모르겠는지 눈을 깜박이며 머리를 굴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광이 평정심을 찾은 듯 안색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말했다.

“마지막 기억은 헤르메스라는 괴물이 기괴한 주문을 써서 당한 거였소. 사부가 우리를 주문에서 풀어준 것이오?”

“눈치가 빠르군.”

“당연한 것을. 그런데 사부는 왜 머리에 소뿔이 돋아나 있는 것이오? 저주에 당했소?”

“……어…… 그게.”

씨발! 하필이면 제일 설명하기 곤란한 걸 딱 짚어서 물어보네!

나는 치우의 정신체가 준 뿔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고 또 정체도 알 수 없었기에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그런 게 있다. 아무튼 내가 능력을 써서 너희를 석화에서 풀어주었으니 감사하게 여기거라.”

“엎드려 절받기요? 종종 생각하는 건데 사부는 남한테 존경받는 법을 잘 모르는군.”

“…….”

“감사하오. 다음에도 무슨 일이 생기면 꼭 풀어주시오.”

이광에게 감사인사를 받긴 했지만, 말투가 워낙 비꼬는 말투라서 감사받은 것 같지가 않다.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광은 이광이군. 젠장, 내가 뭘 기대한 거야?’

반면 옆에 있던 이환웅은 확실히 다행이라고 생각한 듯 가슴을 쓸어내린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 헤르메스한테 당했을 때는 꼼짝없이 끝장이라 생각했는데 다행이야. 이거 참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그래! 감사는 이렇게 하라고.”

“근데 어떻게 석화를 풀었는지 설명해줄 수 있겠어?”

“그야 물론…… 그런데 지금은 기억전송을 못 쓰니까 말로 설명해주마.”

“기억전송을 못 한다고?”

“그런 사정이 있어. 그것도 말해주지.”

나는 허공록의 금계에 걸려서 흑요석의 기억전송이 금지되어있는 데다가 전뇌자가 이 공간 내의 기억을 차단하겠다고 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심수력과 수보리한테도 흑요석을 쓰지 못하고 장시간 직접 이야기로 설명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이환웅이 씁쓸하게 웃었다.

“꽤나 길어지겠군. 그래도 누락 되는 것 없이 다 말해줘.”

나는 그들을 앉혀놓고 그들이 석화된 후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별로 많이 얘기한 것 같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두 시진이 흘러있어서 내가 생각보다 많은 일을 겪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아무튼 열심히 다 얘기해주고 나자 이광과 이환웅은 상황을 파악한 듯했고, 한참을 생각하던 이광이 말했다.

“그래서 사부의 말은 여기가 천암비서 안의 수련세계이고, 여기를 나가면 [큰 굴레]의 과거인 탁록대전의 시대라는 거군. 그리고 상업의 권능이란 걸로 이 세계의 보물을 전부 팔아치워서 나를 석화에서 풀어준 것이고.”

“맞아.”

갑자기 이광이 험상궂은 표정을 짓더니 노성을 터뜨렸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꼬였소? 그 말대로라면 세계 안의 세계 안의 세계가 아니오? 도대체 원래 세계로는 어떻게 돌아간단 말이오!!”

“…….”

“이런 망할…… 그냥 별세계도 아니고 우주와 과거와 시공간을 모두 넘어 버리면 어쩌자는 것이오.”

그…… 그러게.

이광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나는 머뭇거리며 잠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도 일이 이렇게까지 꼬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지금 시점에서 ‘원래 세계’인 소을촌으로 돌아가는 건 무척 어려울 게 분명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환웅이 말했다.

“난 상관없어. 어차피 스승도 배신한 몸이겠다 내게 이제 고향따윈 없으니까 ‘원래 세계’에 애착이 있을 리가 없지? 나한테는 편하게 말해.”

“음……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긴 한데.”

이환웅은 무척이나 냉철한 눈빛으로 말했다. 어쩐지 이 녀석은 웬만한 책사보다도 더욱 차갑고 냉정한 것처럼 보였다.

“다만 확실히 할 필요는 있겠군. 백웅 당신이 우리를 깨운 목적은 그 탁록이라는 신(神)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해주려는 것이고, 강해져서 난관을 헤치다 보면 천암비서의 도움으로 잘만하면 ‘원래 세계’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지금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는 이 2개라고 할 수 있지. 내가 정리한 게 맞나?”

나는 이환웅의 말을 잠시 곱씹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해.”

“그러면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겠군. 사실 저 이광이라는 자와 내 힘은 지금 당신에 비해 너무 약해. 아마 탁록으로 되돌아가게 되면 최소한 투선(鬪仙), 기본적으로는 신(神)급 적수들과 싸우게 될건데 어떻게 강화시켜줄 생각인 거지?”

“흠.”

“인간계 기준으로는 우리도 나름 강하지만 신과 싸우면 답이 없어. 일 초 만에 죽게 될 텐데.”

이환웅이 상황정리를 잘해준 것 같았다. 나는 이환웅의 질문 정도는 예상했기에 망설임없이 대꾸했다.

“이 수련세계는 앞으로 적어도 70년 정도는 유지될 거다. 그동안에 내가 최대한 절대지경의 무공을 수련시켜 주지!”

칠대절학, 무쌍패,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무공을 전수해 준다면 엄청난 실력향상을 볼 수 있으리라!

“…….”

“이환웅. 왜 그런 눈빛으로 보는 거냐?”

잠시 나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던 이환웅이 머리를 짚었다.

“……음. 내 무공실력은 당신에 비하면 초심자 수준이겠지. 절대지경을 이루면 당연히 나도 지금보다는 수십 배 강해질건데…… 당신, 뭔가 잊고 있는 거 아닌가?”

“뭘 잊고 있는데?”

“절대지경 고수가 신을 이길 수 있나?”

“…….”

“못 이기잖아. 어차피 제대로 된 신격이 출현하면 절대지경 고수들이 벌레처럼 죽어나간다는 건 나도 알아. 그러면 절대지경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시간을 쓸 이유가 딱히 없지 않냐고.”

“그, 그건 그렇다만…….”

이환웅의 말에 나는 영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찾아왔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나 자신은 무공으로 절대지경 이상의 영역을 개척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 무공만 수련했지만, 다른 자들은 그게 아닐 수가 있었던 것이다!

‘너무 오래 무술수련만 해서 착각했다……!!’

깜빡하고 있었다.

보통 인간은 아무리 절대지경이라도 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걸!

옆에서 듣고 있던 이광도 툭하고 말을 내뱉었다.

“사부. 나도 사부한테 가르침 받은 게 있어서 자력으로 몇 년 내에 절대지경에 도달할 자신이 있소. 그런데 마신(魔神)이라는 걸 직접 겪어보니 도저히 절대지경의 의념천주만으로는 놈들에게 대항할 수 없음을 알겠소. 다른 방법이 없소?”

“음…….”

이광은 확실히 그럴 것이다. 몇 년 전도 아니고 지금의 이광은 절대지경에 거의 다 도달한 거나 마찬가지였으며 구궁파천뢰 덕에 보통 절대지경 고수들보다 훨씬 강력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광이 절대지경이 된다 해도 신과 정면으로 싸울 수 없다는 건 사실이었다. 구궁파천뢰의 운용이 아니었다면 이광은 진작 헤르메스를 상대로 싸울 때 일격에 타죽었으리라.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이환웅이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흐흐. 걱정 안 해도 돼. 나는 이미 방법이 보였으니까.”

“방법?”

“그 상업의 권능이란 걸 쓰면 되겠어.”

“상업의 권능을 어떻게 쓴다는 거냐.”

“간단하게 생각해보자고. 간단하게 말해서 상업의 권능이란 건 뭐든 사고팔 수 있는 능력인 거잖아? 그걸 이용해서 우리한테 걸려있던 저주를 해제할 수 있었다면 다른 용도로도 활용이 가능해.

이환웅이 말을 이었다.

“이를테면 두 가지 방법이 있지. 당신이 쌓아두고 있는 돈인 마두(魔頭)를 직접 나한테 양도하던가, 아니면 그 마두를 이용해서 우리에게 잠들어있는 능력을 대신해서 해방해 주던가.”

“마두를 남한테 줄 수도 있나?”

“그건 모르겠어. 직접 시험해보는 게 낫겠지. 그보다 일단 밖으로 나가는 게 어때?”

이환웅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이 말한 수보리, 심수력이란 자들의 얼굴도 직접 보고 싶으니까.”

“…….”

나는 이환웅을 보면서 이놈은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책사 같다고 생각했지만…… 책사랑은 뭔가 달라.’

냉철하게 상황판단을 하면서도 그게 책사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 그것은 이환웅이 사태의 묘안을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계산을 하면서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나는 이런 느낌을 백련교주나 십이율주에게서 느껴본 것 같았기에 금세 어떤 성향인지를 알 수 있었다.

‘지배자의 성향.’

계획을 세워서 입안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세운 계획을 스스로 실행하는 실천력에 역점을 주는 존재!

세간에서 ‘왕’이나 ‘영웅’으로 부르는 존재들 특유의 기세라는 게 이환웅에게서도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나일라토프가 이환웅을 제자로 삼고 키우려 했는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는 이환웅의 말대로 둘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보리와 심수력과 금세 마주칠 수 있었고 그들은 잠시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환웅이 말했던 ‘강화방법’을 이야기하자, 수보리가 흠 하고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딱 내 생각대로군. 헌데 나는 한 가지 더 발전된 방법을 제안하겠네.”

“발전된 방법?”

“그 전에 우선은 백웅, 자네가 상업의 권능으로 마두를 타인에게 양도가 가능한지부터를 봐야 할 것 같군. 한 번 시험해줄 수 있겠나?”

“어디 해 보지.”

나는 수보리의 말대로 시험 삼아 심수력에게 마두를 옮기려고 해 보았다.

“대귀여! 심수력에게 내가 가진 1억 마두를 주고 싶다.”

우웅

그러자 허공에 반투명한 거북이 정령의 형태로 나타난 대귀가 말했다.

[양도는 자유지만 양도한 마두는 상대의 의사 없이 재회수가 불가능합니다. 이 점을 인지하셨습니까?]

“그래. 내가 심수력한테 1억 마두를 주면 심수력은 그걸 써서 상업의 권능을 이용할 수 있느냐?”

[안 됩니다.]

“뭐? 안 된다고?”

[마두를 타인에게 옮겨두는 것은 자유이지만 마두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은 ‘상업의 권능’을 각성한 자뿐입니다. 권능을 각성하지 못한 자는 마두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음……!!”

내가 침음성을 흘리자 옆에서 보고 있던 수보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아쉽군. 하긴 그냥 마두를 양도해서 아무나 권능을 다 쓸 수 있다면 그 권능은 지금보다 10배는 더 많은 제약이 붙어야 할 것일세.”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소?”

“아직 실망하기엔 일러. 마저 질문해 보게.”

나는 수보리가 일러 준 질문을 대귀에게 해 보았다.

“대귀야. 그러면 내가 마두를 소모해서 타인에게 상업의 권능을 각성시켜줄 수 있느냐?”

[가능합니다. 그러나 각성할 경우 [계승], [대차]의 2가지 방식이라는 사실을 유념해 주십시오.”

“……계승과 대차? 그게 뭐냐?”

[계승이란 완전히 주인님의 상업의 권능을 포기하고 상대방에게 완전히 능력을 전수해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대차란 상대방과 임대차계약을 맺어 상대방이 임시로 제한적인 권능을 사용 가능해지는 것이며, 마두의 능동적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

뭔 소리야?

나는 말이 어려워서 어리둥절하고 있었지만, 옆에 있던 이환웅이 알아들은 듯 입을 열었다.

“백웅. 쉽게 말하자면 천암비서에서 창힐이 나타나서 당신에게 상업의 권능을 완전히 줘 버렸던 그때가 바로 [계승]이야. 그리고 설명을 보아하니 상업의 권능은 오로지 단 한 명의 사용자만 존재할 수 있을 뿐 복수(複數)의 사용자는 불가능한 타입인 고유능력인 것 같군.”

“아, 그런가? 그런데 [대차] 방식이 있다는데 저걸 쓰면 복수의 사용자가 가능한 거 아니냐.”

“아니지. 설명을 잘 생각해 봐. 임대차이며 제한적인 사용이 가능하다는 건…… 쉽게 말하자면 갑을(甲乙) 관계야. 이건 사용자가 늘어난다기 보다는 노예가 늘어나는 방식이지.”

“……노예라. 대귀야, 정말 그렇냐?”

내가 대귀에게 질문하자 대귀가 설명을 추가했다.

[상업의 권능을 대차한 자는 임시로 권능으로 가공한 결과물을 인과율의 대가 없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원주인이 마두를 소모하여 대상 임차인에게 혜택을 줄 수 있습니다. 단 임대인에게 임차인이 마두 혹은 마두를 이용한 가공품을 양도받을 경우 일정한 기한이 지난 후 이자를 추가하여 원주인에게 변제할 의무 또한 생깁니다.]

“응? 변제라고?”

[이자의 금리는 상인단계가 오르면서 권능이 해제되었으니 원주인이 알아서 설정하면 됩니다.]

이자가 갑자기 왜 나오지?

뭔가 말이 어려워서 내가 어리둥절 해하고 있자 수보리가 뭔가를 깨달은 듯 탄식했다.

“……그렇구나. 그래서 팔부신중인 거구나!! 창힐…… 이 악독한 자여!”

“수보리. 무슨 말이오?”

수보리는 무척이나 떫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백웅. 자네가 전에 내게 얘기해주지 않았던가? 창힐이라는 자는 팔부신중이라는 자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데, 그 팔부신중은 생전부터 신적 존재였던 게 아니라 원래는 인간족의 영웅이었다.”

“음, 그랬소. 아수라나 건달파나 긴나라, 야차 전부가 생전에는 인간이었지.”

“그리고 그 인간족들은 ‘신의 육체’를 창힐에게 받은 덕에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반신(半神)이 되었고 팔부신중의 힘을 얻었지. 헌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뭐가 이상하오?”

“아무리 강력한 마술이나 마법이라도 본질적으로 그만큼 강력한 사도를 양산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말일세. 아무리 ‘신의 육체’를 나눠줬다 해도 나눠주는 과정에서 열화(劣化)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신력을 나눠주는 게 불가능해. 그런 것치고는 자네가 이야기 해준 팔부신중의 위력이 너무 강맹했다는 말이네.”

“흠.”

“나는 줄곧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네.”

수보리의 말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래서 나도 호기심을 가지고 반문했다.

“왜 그렇소?”

“바로…… 팔부신중에게 나눠준 건 [상업의 권능]으로 가공한 ‘신의 육체’였고, 창힐 그놈은 그냥 나눠준 게 아니라 [대차]를 이용해서 ‘빌려’준 것일세!”

“……?!”

뭐, 뭐라고?!

내가 놀라자 옆에 있던 이환웅이 수보리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냥 힘을 양도하면 마치 세금이 붙듯이 인과율 때문에 ‘신의 육체’에 담겨 있는 힘은 몇 단계나 하향될 수밖에 없지만…… 주는 게 아니라 ‘빌려’ 주는 거라면 힘이 열화될 이유가 없지. 왜냐하면 빌리는 자가 ‘이자’를 책임지는 게 문제일 뿐 대차하는 사물 그 자체가 열화되어서는 안 되니까 도리어 힘 그 자체는 지켜지는 거야.”

“……“

“게다가 빌려준 것이기 때문에 창힐은 언제든 팔부신중이 배신할 것 같으면 그들에게서 신의 육체를 이자와 함께 돌려받을 수 있다. 창힐으로서는 전혀 손해 보지 않고 마왕급 부하를 8명이나 만들 수 있으니, 대단히 머리를 잘 썼어.”

나는 이환웅의 설명을 듣는 순간 과거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창힐이 야욕을 드러내고 ‘한자’의 힘을 악용해서 인류를 폭주시키던 그때…… 팔부신중에게 나눠주었던 신의 육체를 되돌려받았었다. 설마…….’

창힐은 그때 단순히 신으로서 자기의 사도에게 내려준 은총을 회수한 게 아니라, [상업의 권능]을 이용해서 빌려주었던 걸 이자와 함께 팔부신중에게서 회수했던 것인가? 그것도 오랜기간 동안 빌려 간 만큼 이자가 쌓였기에 팔부신중이 수천 년 동안 쌓았던 힘과 권능까지 추가로 뺏어갔으리라.

나는 창힐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와 그들 사이에 화신의 인과율은 묶여 있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겠지. 그러므로 팔부신중이 죽어도 내 힘은 줄어들지 않고 도리어 이자가 쌓여서 더 강해진다.]

그 당시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설마 놈이 [상업의 권능]을 사역했다는 뜻이었단 말인가!

내가 난데없이 깨달은 진실에 당황하고 있을 때 수보리가 말했다.

“백웅. 상업의 권능의 사용법을 깨달았으니 이제 실천하는 것만 남았군.”

“으으…… 나는 놈처럼 악독하게 굴 생각은 없…….”

나는 기겁을 하며 말하다가 문득 이광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광은 뭘 쳐다보냐는 듯 띠꺼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진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아무튼…….”

“뭐 아무래도 좋네. 어쨌든 상업의 권능을 쓰면 쉽사리 수하들을 강력하게 해줄 수 있는 건 사실이니까. 게다가 내가 볼 때는 몇 가지 응용법이 더 있을 것 같기도 하군…….”

“응용법?”

“그건 나중에 얘기해도 되는 건데, 그 전에 내가 하나 제안을 해봐도 되겠나?”

“어떤 제안이오?”

수보리는 훗 하고 웃었다.

“바로 이런 걸세.”

스아앗!!

갑자기 수보리가 가면으로 변신해서 내 손으로 날아왔다. 내가 엉겁결에 수보리의 가면을 손에 들자, 가면이 된 수보리가 말했다.

[나를 저 이환웅이라는 청년에게 씌워 보게.]

“……?!”

“흐음……?”

나도 놀라고 이환웅도 놀란 듯했다. 그러나 이어진 수보리의 말은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자네에겐 필요 없어서 쓰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가면으로써 상대에게 씌워질 경우 심층의식에 침투하여 그자가 가지고 있는 잠재능력을 끄집어내 줄 수 있네. 아니, 적성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이 능력을 쓴다면 이환웅과 이광을 1차적으로 강화시켜 줄 수 있겠지.]

“헉!! 그런 능력이……?! 근데 왜 나한테는 필요 없다는 거요?”

[사실 이건 타인을 각성시켜주는 능력이 아니라 가면만이 보유하고 있는 ‘정신공격 기술’이기 때문일세. 굳어 있는 심층의식을 마구잡이로 파괴해서 내가 상대의 의식을 지배하기 쉽게 하려는 거지. 헌데 자네의 심층의식은 너무나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나라는 가면조차도 접근을 못 하겠더군. 대체 어떤 어둠이 잠들어있는 것인가?]

“…….”

[아무튼 ‘공격 기술’인 만큼 내가 악의를 가진다면 쉽게 상대의 인격을 파괴할 수 있어. 그러나 내가 공격성을 억제하고 심층의식의 내부구조만 연화(軟化)시킬 수 있다면 잠재능력을 각성시킬 수도 있는 게 사실이지. 본인의 동의가 필요하다네.]

그러자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이환웅이 불쑥 말했군.

“내게 하는 말이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잠재능력을 각성할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오?”

[그렇네, 친구. 이환웅이라고 했던가? 자네는 생전 처음 보는 나를 믿고 위험에 몸을 맡길 준비가 되었는가?]

이환웅은 도리어 씨익 웃더니 대꾸했다.

“크흐흐…… 당신 같은 가면을 어찌 믿소? 허나 나는 당신이 아닌 전생자 백웅을 믿소.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당신도 알겠지.”

[용감하군. 다 알면서도 나를 도발하다니.]

이환웅이 중지를 내밀었다.

“당신이야말로 엿 같은 짓은 그만하시오. 남을 배려해주는 척하면서 내 그릇을 시험하려는 건 참으로 역겹군. 내 스승 또한 가면이었으니 당신들의 심리 따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소. 자기애가 흘러넘치며 음험하기 짝이 없는 족속들이여.”

[…… 뭔 말을 못 하겠군. 어쩌겠나, 백웅?]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면을 들고 이환웅에게로 다가갔다. 그러곤 말했다.

“걱정 마라. 뭔 일이 생기면 내가 책임지지.”

“것 참 믿음직하군.”

파앗

이환웅이 수보리의 가면을 쓴 순간 - 어둠의 잔광(殘光)이 일렁였다.

그리고 그 잔광이 잠시 후 멎자, 이환웅은 천천히 가면을 쓴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된 건가?’

내가 불안한 눈빛으로 가면을 쓴 이환웅을 보자, 그는 잠시 후 히죽 하고 웃더니 말했다.

“백웅.”

이환웅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맺혀 있었다.

“나는 초상능력(超上能力)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

딸깍

이환웅이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회중시계의 뚜껑을 여는 순간이었다.

“……!!”

시간이 멈췄다!!

말 그대로 나와 이환웅 이외의 모든 것이 멈춰 버렸기에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시간정지?!”

“음, 아니야. 그렇게 단순한 능력이 아니군.”

주의깊게 자신의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던 이환웅이 잠시 후 자신의 회중시계의 뚜껑을 딸깍 닫으며 말했다.

“시간 자체가 내 능력이 아냐. ‘지금으로선’ 크로노 쿼츠를 움직일 수 있는 게 내 능력이겠군.”

“……?”

뭔 소리야?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자 이환웅이 말했다.

“한 가지는 확실해.”

이환웅은 어째서인지 무척 기분 좋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능력은 과학(科學)과 함께해야 최강이 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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