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0권 10화
뿔은 황소의 뿔처럼 2개가 달려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내 뿔을 만지작거렸고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인상을 찡그렸다.
“씨발! 이젠 뿔이 나 버리다니…….”
팔다리가 잘리고 죽는 일도 이젠 무덤덤 해졌다 생각했는데 뿔까지 날 줄이야!
어찌보면 별거 아니었지만, 왠지 점점 인간이랑 멀어지는 거 같아서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내가 황소 같은 뿔을 만지고 있자 심수력이 말했다.
“그래도 복희 얼굴에 뿔이 달려 있으니까 다행이군.”
“무슨 말이오?”
“자네 원래 얼굴이었으면 솔직히 좀…….”
“…….”
“농담이고 그래서 이제 어쩔 텐가? 그 뿔의 정체를 알아볼 건가?”
나는 심수력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됐소. 일단은 청룡무관으로 되돌아갑시다.”
“흠? 의외로군. 저주 같은 걸지도 모르는데 해결해야 하지 않나.”
“내 경험상 이런 거 떼 보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일은 일대로 꼬이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적이 많소. 도리어 가만히 내 할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경우가 더 많더군.”
“그래? 난 한 가지 시험해보면 봤으면 하는 게 있네만…….”
“뭘 시험해보자는 거요?”
그러자 심수력이 말했다.
“그 뿔에 자네의 신력을 넣어보는 게 어떤가?”
“엉? 신력은 갑자기 왜…….”
“치우라는 자가 만신(萬神)을 박살 내던 존재라 하지 않았는가. 그런 존재가 자네에게 준 뿔이라고 한다면 신력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지.”
“흠…….”
일리가 있다. 확실히 그 정도는 실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한 번 모아보겠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력을 한 번에 집중해서 뿔으로 밀어 넣었다. 잠재신력까지 모두 쓸 수는 없겠지만 내가 쓸 수 있는 한에서는 다 끌어모은 양이었다.
쿠우우!
잠시 고동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자 심수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음…… 끝난 건가?”
“……끝났소.”
“아무 일도 없구만.”
“…….”
아무 일도 없는 게 이상하다. 내 신력을 모두 집중시켰다면 법칙마저도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데 일개 뿔에 모조리 집력(輯力)되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니?
‘설마 뿔에 신력이 흡수된 건가?’
아니면 신력이 무효화 된 건가?
어떤 현상인지는 몰라도 이 뿔이 범상치 않은 건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내 뿔을 잠시 쓰다듬다가 말했다.
“안 되겠소. 난 지금 죽도록 하겠소.”
“뭐?”
심수력은 뜬금없는 말에 황당한 듯 나를 쳐다보다가 이윽고 내 말뜻을 깨달은 듯 말했다.
“그게 나을 수도 있겠군. 먼저 청룡무관에 가서 기다리고 있겠네.”
“먼저 가시오.”
파앗
심수력이 사라지자, 나는 그대로 신력으로 침(針)을 소환한 후 내 통각을 짧은 시간동안 차단시켰다. 그리고 통각이 느껴지지 않는 사이에 천령개를 수도로 내리쳐서 죽었다.
퍼억
***
“귀하가 일부러 사망해서 여기에 오신 이유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힐끔 메피스토펠레스를 쳐다보았고, 그는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말했다.
“통각을 차단하고 죽어서 그런지 이번엔 눈빛이 멀쩡하군요. 늘 죽음 직후의 격통에 시달려서 흐릿한 눈빛이었는데.”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잡담하기 싫다. 내가 온 이유를 짐작하고 있다면 어디 말해 봐.”
“치우의 정신체가 준 뿔의 정체를 물어보러 오신 거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굳이 청룡무관까지 가서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어차피 되살아나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것이겠지요.”
“맞아. 다 맞는데 치우의 뿔이 뭐하는 건지는 알고 있나?”
“성급하시군요.”
달그락
메피스토펠레스는 찻잔을 내려놓은 후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손깍지를 꼈다.
“그 전에 치우의 정신체를 봉인에서 풀려고 하신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너무나 돌발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치우가 올바로 부활하기 위한 요소가 하나도 없는 세계에서 놈의 정신만 부활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어. 그리고 치우의 영혼과 대화할 수 있으면 나한테는 이득이잖아.”
메피스토펠레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귀하의 의도대로만 되면 좋겠습니다만, 이 수련세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계?”
“네. 한계가 있습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자신의 흰 장갑을 낀 손을 앞으로 내밀며 탁자에 손을 올렸다.
치이잉
그러자 탁자 위가 마치 정밀한 과학문명의 터치스크린처럼 변했고, 순식간에 탁자 위에 마치 홀로그램처럼 동그란 지구가 떠올라 있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지구를 검지손가락으로 가볍게 톡톡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전뇌자는 단말의 권능과 세계수의 핵을 이용해서 ‘대부분’의 세계를 이 수련세계에 구현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완벽하게 구현하기에는 리소스(Resource)가 부족하기 때문이었지요.”
“리소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재료가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물리적인 매질은 대부분 충족했으나 인과가 복잡하게 꼬여 있는 사물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가중치가 붙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한의 가중치가 붙는 것이 바로 귀하가 건드리신 치우의 정신체 봉인입니다.”
“……너무 어렵군. 쉽게 좀 설명해 봐.”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쉬익
메피스토펠레스의 한쪽 손에 사과가 소환되었다. 놈은 사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단순한 사물을 구현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설령 이 사과가 전설의 광물이나 외계광석으로 되었거나 혹은 블랙홀의 연결통로인 웜홀이라 해도 상관없지요. 어쨌든 물리엔진으로 구현하면 모두 1차원적으로 해석되므로 이런 사물에는 리소스가 별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시공간이 수십억 광년이라 하더라도 그 수십억 광년 내의 모든 별과 우주현상은 간단히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촤악
사과가 갑자기 칠요 중 월요 삼종신기로 변했다. 세 개의 신기가 허공에 둥둥 떠 있자 메피스토펠레스가 말했다.
“수십억 개의 별을 구현화하는 것보다 이런 월요 하나 구현하는 게 훨씬 더 리소스를 잡아먹습니다. 인과 가중치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인과 가중치라는 게 뭐냐니까?”
“이 월요를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신적 존재나 불멸자, 필멸자들이 관여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지구보다 수천억 배 거대한 항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주 외딴곳에 있다면 거기에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지만, 이 월요에는 삼황오제를 비롯해서 수많은 존재들이 인과를 형성해 놓았지요.”
“……!!”
“눈치채신 모양이군요. 그 사물이 존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과 인과(因果)가 존재하느냐가 중요하지 사물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치우의 봉인은 엄청나게 많은 인과가 스며들어있는 존재입니다.”
“음…….”
대충 이해가 간다. 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을 이해했지만 동시에 납득이 가지 않아서 말했다.
“그렇다면 신단수가 구현화되지 않은 이유는 세계수를 만드는데 너무 리소스를 많이 잡아먹어서 그렇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말도 안 돼. 치우도 엄청나게 강력한 존재였는데 그런 치우의 봉인은 구현할 수 있고 세계수는 할 수 없다고? 세계수가 치우보다 더 쎄단 말이냐?”
“잘 생각해보십시오. 애초에 이 세계를 구현할 수 있었던 ‘제물’은 바로 세계수의 핵이었습니다. 세계수의 핵을 매개체로 만들어 낸 세계에 세계수가 또 존재한다면 동시성(同時性)이 충돌하게 됩니다.”
“…….”
“전뇌자는 아마 그런 버그를 용납하면서까지 신단수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이 세계의 원래 창조목적은 당신의 수련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으니까요. 또한 치우가 아무리 강력했다고 한들 봉인 그 자체는 리소스를 크게 잡아먹지 않으니까요.”
“…….”
“세계수의 핵을 이용해 세계수를 만들면 또 세계수의 핵을 만들 수 있게 되지요. 하지만 인과율 소모와 세계의 법리가 그 뒤틀림을 허용치 않기에 그냥 포기해 버렸습니다. 아무리 천암비서의 단말이라 해도 거기는 범접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 그런가……?
나는 어리둥절해하다가 문득 뭔가를 눈치채고는 말했다.
“잠깐. 동시성이라고? 내가 외우주에서 얻었던 세계수의 핵이 지금 존재해야 하는 신단수의 핵과 같은 것이란 말이냐?”
“모르셨습니까? 십이율주가 사용하던 신단수가 바로 그 세계수와 같은 존재입니다. 세계수는 무한히 많은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는 [알]이니, 외우주를 넘었어도 동시성은 유지될 수밖에요.”
“…….”
“아무튼, 신단수 이외의 대부분은 다 원래 세계와 똑같이 구현되었습니다. 치우의 봉인도 마찬가지…… 그러나 리소스가 부족하기에 치우의 봉인에는 실체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군요.”
“엉? 실체가 없다고?”
메피스토펠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봉인은 완벽하게 구현되었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은 불확정성(不確定性), 즉 원초의 혼돈(Omni chaos)입니다. 치우의 본체를 구현화 할 방법이 없어서 그게 구현될지 말지는 [아버지]의 뜻에 맡긴 것입니다.”
“……?!”
뭐, 뭔 소리야?
[아버지]가 왜 나와?
얘기가 어려워져서 내가 당황하자 메피스토펠레스가 말했다.
“불확정성이라는 건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관측하지 않은 것이 존재할 확률이 0일지 1일지 탐구하는 것이 양자역학이라는 건 알고 계시겠지요?”
“대충은 알고 있어. 사마령한테 배워서…….”
“전뇌자도 저도 치우의 본질을 구현화 할 방법이 없습니다. 치우의 본질은 사실 우리 따위의 힘을 아득히 넘어서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치우의 부활여부를 관측 너머의 세계로 [넘겨 버리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넘긴다고?”
“신(神)조차도 알 수 없는 영역. 물리는커녕 시공간조차 존재할 수 없는 원초의 혼돈으로 넘겨 버리게 되면 그때부터는 우주의 법리(法理)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게 최초로 관측된 순간 [존재]할지 무(無)로 끝날지는 [큰 굴레]의 의지에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
“전혀 못 알아들으신 표정이군요. 그냥 치우가 풀려날지 말지는 대우주의 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던 나는 마지막 요약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신의 뜻에 달렸다는 건 치우가 봉인이 풀리면 깨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말이지? 50대 50이란 말 아니냐?”
“따지고 보면 그렇겠군요.”
“그, 그러면 치우의 영혼과 대면할 가능성도 있다는 소리겠군!”
아싸!
치우랑 대화할 수 있으면 이 고생길이 엄청 줄어들 것이다!
내가 도리어 기뻐하자 메피스토펠레스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너무 좋게만 생각하시는군요. 치우의 정신체가 당신과 순순히 대화해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 않습니까?”
“어…… 그것도 그렇지만 뭐 그런 거 하나하나 무서워하니까 아무것도 안 되더라고. 치우도 잘 얘기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
“후후. 보통이라면 치우의 정신체가 모든 걸 소멸시킬까 두려워해야 정상일 겁니다만…….”
헛웃음을 지은 메피스토펠레스가 말했다.
“하지만 전뇌자 대신 이 수련세계를 유지하는 저로서는 당신의 모험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는 너무 위험부담이 크기에 이대로 세계를 초기화(初期化)시킬 예정입니다.”
“……!!”
초기화라고?!
나는 깜짝 놀라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외쳤다.
“이 새끼야!! 누구 맘대로! 내가 치우를 만나보겠다는데 니가 무슨 자격으로 맘대로 결정하냐고!”
“치우의 정신체가 가진 속성이 무엇인지 아직도 파악을 못하신 모양이군요.”
“뭐?”
“치우의 정신체는 빙의(憑依) 능력이 있습니다. 치우의 정신체가 귀하에게 빙의하면 어떻게 될까요?”
“…….”
“황제 공손헌원도 박살 내던 파괴신을 상대로 정신을 지켜내실 자신이 있으십니까.”
어…… 그건…….
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가만히 있자 메피스토펠레스가 말했다.
“이 세계의 원래 목적은 당신에게 300년의 수련시간을 보장해주는 것. 그것뿐인데 치우의 정신체에게 당신이 지배당해 버리는 건 최악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아직은 봉인이 멀쩡히 작동하고 있지만 이대로 가면 언젠가 봉인은 파괴될 것이니 이대로 내버려 둘 순 없습니다.”
“……나한테 빙의한다는 보장은 없지 않나?”
“종말의 시대에 부활하려고 자기 혈맥에게 자동 부활하는 주술까지 걸어놓을 정도로 삶에 집착이 강한 존재가 당신처럼 쓸 만한 빙의체를 놔둘 거라 생각하시는지.”
“음…….”
하는 말마다 전부 맞는 말이라서 뭐라 대꾸할 수가 없다.
내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았다. 치우의 봉인이라는 게 정말 위험한 물건일 수도 있는데 수련세계라서 너무 안심했던 탓도 있는 것일까?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가 톡 하고 탁자를 건드리자 홀로그램은 모두 사라졌다. 그는 흰 장갑을 낀 손을 기품있게 무릎 위에 올리며 말했다.
“그 ‘뿔’의 의미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의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겠군요.”
“…….”
“만일에 그 뿔이 치우의 순수한 호의라면 제가 쓸데없이 당신의 운명에 관여한 게 되어 역풍이 불 테니까요.”
“결국 자기보신이라 이 말인가?”
“마음대로 해석하시길.”
메피스토펠레스가 훗하고 웃더니 말했다.
“제 기본적 방침은 세계를 초기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하가 원하신다면 이대로 봉인이 불안정하게 유지되도록 놔둘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초기화인가, 아니면 이대로 봉인의 파멸을 바라보겠는가.
나는 그 순간 기시감에 휩싸였다.
‘……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후자가 옳다.
정말 등신같아보이지만 그렇다.
이것도 전생자의 감인가?
나는 혼란스러웠지만 이성적으로 옳은 선택과 내 감, 둘 중에서 무엇을 따를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확고한 말투로 말했다.
“걍 냅둬! 초기화하지 마!!”
나는 언제나 내 감을 믿는다!!
“호오…… 그렇습니까.”
“그보다 너 뿔의 정체를 전혀 모르는 거냐?”
놈은 어깨를 으쓱했다.
“알 리가 있겠습니까? 불확정성으로 모조리 넘겨 버린 순간부터 치우의 봉인을 풀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아무것도 모릅니다. 방금 하신 말씀은 그것까지 다 감안하고 말씀하신 것이라 믿겠습니다.”
“…….”
아 씨발…… 괜히 불안해지는데…….
메피스토는 씩 웃더니 손을 내저었다.
“그럼 부디 잘 해내시길…….”
***
파앗
나는 되살아났다. 그리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일단 청룡무관으로 향했다.
청룡무관에 도착하니 심수력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가 내게 말했다.
“그래. 그 메피 어쩌고 하는 놈이 뭐라고 하던가?”
나는 메피스토와 이야기했던 걸 심수력에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심수력이 말했다.
“자네의 선택이 이해가 안 되는군. 왜 초기화를 시키지 않은 겐가? 치우의 봉인이 풀려서 좋을 거라고는 치우의 영혼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건데 그게 그렇게나 이뤄야 할 일인가?”
“…….”
“메피스토의 말이 일리가 있네. 치우 같은 마신이 마음을 바꿔서 빙의하려 들면 자네가 못 버텨낼게 뻔한데…….”
걱정하는 심수력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내 감을 믿소. 어떻게든 잘 될 것이오.”
“허어.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아무튼 수련하다가 바깥나들이 한번 제대로 해 버린 것 같군.”
“그러게 말이오. 아무튼 다시 창술 수련을 해볼까 싶소…….”
철그렁
내가 연무장의 창을 뽑아들자 심수력이 말했다.
“이보게. 제안할 게 있다네.”
“무엇이오?”
“이건 정말 예전부터 하고싶었던 말이었는데, 사실 이 얘기를 하려고 자네한테 바깥나들이를 제안했던 걸세.”
“……?”
“자네가 수련하는 걸 간간이 근처에서 보았는데, 솔직히 스스로 벽에 막힌 게 보여서 보는 내가 괴로울 정도였네. 자네 스스로 창술의 미진함을 깨닫고 고쳐가는 것 같긴 한데 재능의 한계로 어느 수준 이상 못 가는 게 명확해. 스스로도 벽을 느끼고 있지 않았는가?”
심수력의 말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4년간 미세하게 성취가 나아지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이젠 한계가 보였다. 벽이라고 하는 표현이 딱 맞는 게, 조금씩 굼벵이처럼 나아가고는 있지만 사실 전체적으로는 뭘 해야 창술이 더 진보할지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이러다 보면 나아지겠지 하면서 터무니없는 비효율적인 노동만을 반복하는 이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심수력이 그런 내 상황을 정확히 알아차린 것이다.
심수력이 말했다.
“지금 자네에게는 세 가지 심화수련 방법이 더 있어. 그중 나는 하나를 제안하고자 하네.”
“무엇이오?”
이어진 심수력의 말에 나는 선택할 때가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목갑에서 창술의 명인(名人)을 깨우게. 일단 그게 첫 번째야.”
“…….”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바보도 알 것이다.
이광을 석화에서 깨우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