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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499화 (1,398/1,615)

전생검신 80권 7화

[가면]이 되어 있던 수보리가 내게 말을 걸었다.

[흥미롭군. 이런 게 가능할 줄은.]

“수보리. 어차피 내 힘에서 뽑아 쓰는 것이니 분신술을 더 많이 쓴다 해서 크게 다를 건 없지 않소?”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진짜 강력한 존재를 상대로는 크게 의미 없어. 하지만…… 필멸자를 상대로 한다면 이건 굉장한 강점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슈욱.

수보리가 가면에서 인간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그러고는 내게 말했다.

“또 하나. 만일 이렇게 가면을 복사하는 게 가능하다면 자네는 앞으로 가능한 많은 가면을 찾아내는 게 좋겠네.”

“응? 갑자기 그놈들을 왜 찾아내야 하오?”

“솔직히 말하지. [가면]으로 변해 있을 때 나는 자네에게 있어서 무기(武器)이자 장비(裝備)와 같아. 검(劍)이나 창(槍)과도 어찌 보면 비슷하지. 한데 가면은 가면마다 각자 갖고 있는 특징이나 능력이 모두 다르다는 말일세.”

“……!!”

어, 그렇다면?!

“알아들은 모양이군. 나, [수보리]의 가면을 쓰고 있을 때는 수보리의 전용술법인 모수분신술을 사용 가능하지. 그렇다면…….”

“다른 [가면]을 쓰게 되면 또 다른 특수능력을 쓸 수 있게 된다는 말이구려.”

“바로 그거야.”

또 다른 특수능력!

수보리의 모수분신술만 하더라도 사실 몇백 년의 수행이 필요한 대주술인데, 그걸 별다른 제약도 없이 마음대로 쓸 수 있고 분신도 양산이 가능하다. 다른 가면의 특수능력도 쓸 수 있다면 굉장한 이득을 볼 수 있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심수력이 말했다.

“수보리 당신은 [가면] 중에서도 꽤 특출하게 강한 편 아니오? [가면]들이 원래 종족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천재성만 갖고 있다는 걸 감안해 보면, 당신보다 강력한 가면은 별로 없을 것이오. 그렇다면 백웅이 굳이 시간과 노력을 소모해서 가면을 모을 이유는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어…….”

“나일라토프 같은 놈이라면 모르겠군. 하나 그렇게 강력한 가면은 찾기도 힘들고 영입하기는 더 힘들지 않겠는가.”

심수력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제천대성이 말하기를 수보리가 전력을 다하면 옥황상제도 죽일 수 있다고 했으며, 수보리처럼 마왕이나 사도급의 역량을 지닌 [가면]이 그렇게 많을 리는 없다. 하물며 공(空)을 깨달아 이름의 제약까지 상당히 벗어난 수보리는 그 자체로 특별한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자 수보리가 훗 하고 웃었다.

“맞는 말이네. 자기자랑 같아서 말하진 않았네만 아마 이 우주에서 나보다 강한 가면은 그리 없겠지. 가면이라는 종족이 그렇게 강했다면 진작 신들이 우리만 따로 골라내어 없애려 들었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란 걸세. 우리는 배우일 뿐 우주의 힘의 균형을 뒤엎으려고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니까.”

“나일라토프는 확실히 별격의 가면 같소. 그런 놈이 더 있을까?”

“아니. 그자는 틀림없이 우주 최강의 가면 중 하나일세. 내 생각에 그것은 [과학]을 다룬다는 능력 자체가 기어오는 혼돈이 가장 특별히 애착을 가지는 영역이기 때문이겠지.”

단호하게 말한 수보리가 말을 이었다.

“단, 가면 자체의 역량이 강하지 않더라도 가면화했을 때의 특수능력이 훨씬 강력한 경우는 있을 수가 있네. 나는 그것 때문에 자네가 가면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걸세.”

“……? 무슨 소리요. 본래 역량과 가면화했을 때의 특수능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이오?”

“그렇네. 나는 그런 예시를 직접 본 적이 있어.”

“직접 본 적이 있다고?”

수보리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전에 얘기했지. 가면을 쓰게 될 경우 세 가지 현상이 생긴다고. 그게 뭐라고 했지?”

“어…….”

“깜박한 모양이군. 지배, 파괴, 공존일세.”

“아, 그랬지.”

“그렇다면 자네에게 내가 스스로 가면화하여 힘을 빌려주는 건 셋 중에 어디에 속하겠는가?”

“당연히 공존 아니겠소? 서로를 지배하는 것도 아니고 파괴된 것도 아니니까…….”

“아니. 지배일세.”

“……?!”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황당해서 수보리를 쳐다보자 수보리가 나직이 말했다.

“정확히는 상호지배라고 할 수 있지. 자네는 가면이 된 나를 지배하는 것이고 나는 자네의 정신에 들어가 지배하는 것이고…… 지분을 5 대 5로 나뉘어서 움직이는 계약에 동의한 셈이야. 물론 자네가 주도해서 움직이지만 사실 나도 자네의 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 있었네.”

“엥?! 정말이오?!”

“그래. 하지만 자네가 전생자이고 절대적 갑(甲)의 위치에 있기에 내가 내 지분을 행사하지 않는 것뿐이야. 이해가 갔겠지?”

“이, 이해는 갔소만 이거 참 꺼림칙하군…….”

당연히 수보리가 도구로만 움직여주는 줄 알고 아주 편리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수보리도 마음만 먹으면 나를 조종할 수 있단 얘기 아닌가?!

수보리의 말이 이어졌다.

“꺼림칙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네. 공존을 택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만…….”

“왜 공존을 하지 않았소?”

“나라고 공존을 선택하기 싫어서 하지 않은 건 아니야. 정확히는 선택을 할 수 없는 것이네.”

“왜 공존을 선택할 수 없는 거지?”

“왜냐하면 공존이란 자네와 내가 서로의 영혼을 섞어서 또 다른 존재로 승화한다는 뜻이기 때문일세. 상호지배가 아니라 합일(合一)이 되는 것이네.”

“……!!”

“자네 입장에서도 거기까진 할 생각이 들지 않겠지. 본질을 잃게 되니까.”

“그, 그야 물론…….”

영혼의 합일이라고?!

가면이랑?!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내가 기가 막혀 할 때 수보리가 말했다.

“단 공존의 방식이 이렇게 큰 제약을 동반하는 대신 그 상승효과는 엄청나다네. 전 우주에 단 한 번밖에 없었던 일이지만, 가면을 쓴 자가 공존에 성공했을 경우 그들은 원래보다 수만 배나 강해졌다네.”

“수, 수만 배? 지금 농담하시오? 허세가 심하군…….”

“허세도 뭣도 아닐세. 가면을 쓰는 자도, 가면 그 자체도 힘이 대단치 않았어. 나보다 훨씬 약했지…… 허나 그들은 공존에 성공하여 일격에 [옛 지배자]를 토벌했네.”

“……?!”

뭐라고!!

나는 경악함과 동시에 호기심이 생겨서 말했다.

“공존에 성공한 그 자들은 누구요? 왠지 당신은 그걸 직접 보았던 것 같은데…….”

“…….”

“말해주기 싫은 거요?”

“아난(阿難). 내가 알기로는 그가 전 우주에서 유일하게 합일한 열반(涅槃)의 가면일세.”

아난?

그게 누구지?

내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수보리는 왠지 그 일을 얘기하기 싫은 듯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공존은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으나 서로의 존재가 소멸하는 부담이 있지. 단 지배의 경우에도 상호동의하에 상당한 기간 동안 숙련된다면 전혀 예상치 못한 특수능력이 발현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네. 그 특수능력의 강함은 가면 본체의 강함과 별로 상관이 없었네.”

“흐음…… 그런가.”

“내키지 않는다면 이 일은 차후로 미뤄도 좋네. 어차피 급한 일이 아니니까.”

“알았소.”

그때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내 분신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젠장! 가면 모으기 따위가 지금 중요한가?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말해도 되냐?”

좌중의 시선이 내 분신에게로 향했다.

분신은 자신의 가면을 살짝 들어서 복희의 얼굴을 비추면서 말했다.

“본체야! 육천합일창 너무 어려우니까 이번에도 찍어 먹어보고 관두려고? 또 힘드니까 그만두려는 거냐!”

나는 분신의 말에 발끈해서 말했다.

“누굴 병신으로 알아!! 아무 대책도 없이 너무 어려운 걸 수련하면 너무 잃는 게 많으니까 생각 좀 해보겠다는 거잖아!”

“병신 맞네! 내가 너무 맞는 말 해서 발끈한 거 보면 그런 거 같은데?”

“이 개새끼가…….”

“야. 내가 네 분신이니까 네놈 성격과 마음을 다 안다. 근데 주변에서 다독거려 주니까 뭘 잊고 있는 게 아니냐고.”

“잊긴 뭘 잊어?”

이어진 분신의 말에 나는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너 창술 못하잖아, 병신아!!”

“…….”

찬물을 맞은 것 같은 기분.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는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무슨 개소리야!! 내가 그냥 창술만 갖고 강호에서 활동해도 바로 절세고수라고!!”

분신 놈은 도리어 거만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진짜 자신 있냐? 의념천주랑 내공빨 빼고 그냥 창술조예만 따졌을 때 진짜 절대지경 맞아?”

“……음…….”

“솔직히 애매한 거 너도 알 건데? 지금까지 검술에서 쌓은 의념의 숙련도로 다 때운 거지 창술이 의념에 상응하는 경지였냐?”

“…….”

“순수한 창술만 치면 명나라 시대에만 너보다 창 잘 쓰는 놈이 최소한 열 놈은 넘을걸? 이건 내가 지어낸 게 아니라 바로 네가 무의식중에 생각하던 거다.”

“쩝…….”

나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왜냐하면 틀린 말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뇌신류 사범급이고 웬만한 절정고수급이라고 자위하면서 지냈지만, 사실 무인으로서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정말 초절정의 창술솜씨라기엔 손색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뇌신류 창술에 절치부심하며 갈고닦은 세월이 그 정도의 숙련도를 주지는 못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고, 어떤 시기 이후로는 창술은 거의 손에 잡지 않고 대부분 검술만 수련했기 때문이다.

검술에서 얻은 의념의 깨달음 덕을 많이 보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창술을 이용해서 검술을 펼치는 거나 다름없을 때도 많았다.

“뇌신류 창술 자체가 막강하니까 네 창술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거지 실제로 창술만 몇십 년 수련한 달인에 비하면 부족한 거 알 텐데? 천뢰무극창 초식만 다 안다고 그 창술의 정수를 다 터득했냐?”

“……쓰읍…… 그래…… 그 말은 맞다만 나도 란나찰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먹고 자고 수련만 했다고!! 창술을 못한다는 얘기 들을 정도는 아니야!”

“대가리가 딸리니까 정말 못 알아듣는 거냐,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거냐? 지금 못한다는 기준이 어디에 잡혀 있는지 모르는 거냐? 당연히 뇌신류 창술의 종사(宗師) 수준을 얘기하는 거잖냐!”

“…….”

“언제까지 명나라 무림의 허접한 새끼들이랑 비교하고 살 건데? 신이랑 싸우는 거 아니었냐?”

이죽거리던 분신이 말을 이었다.

“육천합일창은 뇌신류 창술의 최종경지라면서? 그럼 당연히 네가 뇌신검무 극성을 보고 나서야 무량단에 올라선 것처럼, 기본적으로 창술의 극성을 보아야 도달할 수 있을 거 아니냐고.”

“……!!”

“종사 수준에 비교하면 창술 못하는 거 맞잖아, 병신아!”

마, 맞는 말이다!

분신이 너무 맞는 말만 하니까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아니, 몇십 몇백년 동안 이렇게 험한 조언을 들어본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옆에서 쳐다보던 수보리가 탄성을 질렀다.

“오오…… 분신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건 난생처음 보는구나.”

아니, 왜 감탄하냐고!

나는 엄청 기분이 나빴지만 눈앞에 있는 분신이 한 말이 전부 맞는 말이었기에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야 씨……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다 해!! 내가 황제 공손헌원도 잡았는데 그깟 창술의 극성도 못 볼 거 같냐?”

“대단하시구만. 그러면 기지도 못하는 주제에 날려고 하지 말고 수련이나 똑바로 하시지.”

“…….”

“옘병, 공 좀 깨달았다고 천하의 대현자가 된 것처럼 착각하기는…….”

“에잇!”

퍼벙.

나는 수보리를 가면으로 써서 소환을 해제했다. 더 이상 쓴소리를 듣다가는 속이 뒤틀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분신들이 해제되자 장내가 황량해졌고, 심수력이 자기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 틀린 말은 없구만? 창술 수련할 거지?”

“……할 거요. 씨발…….”

“나도 그 분신술 익히고 싶었는데 방금 전 있었던 일을 보니까 포기하게 됐네. 참 무서운 술법이군.”

“닥치쇼.”

수보리도 가면 상태에서 인간으로 되돌아오며 말했다.

“아무래도 지금 내가 도와줄 건 없을 것 같군. 나는 내 나름대로 이 세상을 좀 둘러보겠네.”

“또 백두산에 갈 생각이오?”

“아니. 거긴 아마 더 찾아봐도 별거 없을걸세. 거기 말고도 지구 곳곳에 설정되어 있던 금지(禁地)를 돌아다니고 있겠네.”

“알았소.”

상황이 정리되자 나는 어느 새 혼자 연무장에 남게 되었다.

“후우-”

처억.

나는 창을 손에 잡고는 복잡한 눈으로 창끝을 바라보았다.

“…….”

권술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보긴 했는데 이제는 다시 창술의 기본부터 갈고닦으면 되는 건가?

아니, 어쩌면 이건 내가 처음 이 세계에 들어온 순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 좋게 생각하자.’

육천합일창의 어마어마한 난이도는 그냥 보았을 때는 도저히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창술의 극에 도달한 자만이 얻게 되는 단서가 따로 있지 않을까?

그 단서가 있고 없고가 육천합일창을 펼칠 때는 천지차이로 작용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간다!!”

가장 부족한 부분부터 채워 나가는 게 맞다.

삼백 년의 수련기간 중 남은 시간은 창술을 수련하는데 쏟아붓겠다!!

목표는 뇌신류 창술의 종사(宗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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