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0권 6화
근처에서 보고 있던 수보리가 내게 질문했다.
“뭔가 육천합일창의 실체를 알게 된 건가?”
“그렇소. 이건…… 모든 게 옳아야 하는 무공이오.”
“흐음?”
후웅!
나는 빠르게 찰(札)을 펼쳤다. 수보리와 내 분신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자, 나는 말을 이었다.
“이 찌르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초식이오.”
“그렇네만.”
“그러나 가장 완벽한 찌르기가 되려면 아무나 할 수 없게 되오. 의념이 단 하나의 점을 관통하는데 거기에 여섯 개나 되는 찌르기의 정수(精髓)가 합일(合一)해야 하는데…….”
“…….”
“그 의념의 정수가 모이기 위해서는 상상하기 힘든 어려움이 있소. 연속으로 구슬을 실에 꿰는 걸 몇 번이나 반복하는…….”
수보리는 내 설명을 듣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하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네, 백웅. 도저히 나는 모르겠군. 나는 무림인이 아니라 의념을 쓸 수 없고 이해를 못 하겠어.”
“어…….”
내가 설명을 잘 못 하는 건가?
“헌데 저 심수력이란 자는 알아들은 것 같군.”
아니나 다를까 팔짱을 낀 채 듣고 있던 심수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해했네! 그런데 다른 의미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무엇이 말이오?”
“자네 의념이 퍼지는 것을 느꼈으나 그 의념이 분화(分化)되지 않았네. 외부에서 볼 때 의념은 여전히 하나였다는 걸세. 헌데 자네는 왜 여섯 개로 나뉘는 걸 전제로 하는 거지?”
“?!”
나는 도리어 심수력의 말에 놀라게 되었다.
“무슨 소리요? 나와 분신들이 같은 의념의 세계를 공유했는데 그때 분명 여섯 개의 다른 의념이 따로 초식을 발현하고 있었소.”
“전혀 안 그런 것 같았네. 내가 볼 때는 그냥 자네 혼자서 초식을 지르고 있었어.”
“…….”
이, 이게 뭐지?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수보리가 심수력에게 물었다.
“절세고수끼리만 알아듣는 얘기를 하지 말고 내게도 설명을 해 주게. 백웅이 말한 어마어마한 어려움이라는 건 대체 무엇이고 왜 폭발을 한다는 건지.”
“흠, 본인이 설명해주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지금 정신이 없어 보이니 일단 내가 이해 한 대로 말해주겠소.”
심수력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백웅은 일극에서 육직까지의 모든 기본초식을 한 점에 모은 최강의 찌르기를 구현하고자 하오. 일극에서 의념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형태’가 생겨나고, 그 형태에서 파생되는 모든 움직임은 무한대. 그런데 백웅의 말을 들어 보니 일극에서 이진으로 가는 그 순간에 무한대가 축소되어 단 하나의 정답(正答)이 남게 된다는 것 같군.”
“호오.”
“그 정답이 이진에서 삼란으로 넘어갈 때 또 다른 정답을 요구하고…… 이런 식이면 일극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육직까지 연속하여 정답을 찾아내야만 하는 극악의 어려움이 생겨난다는 얘기로 생각되오.”
심수력이 거기까지 말하고는 슬그머니 내 쪽을 바라보았다.
“백웅. 내가 이해 한 게 맞는가?”
“맞소.”
너무 깔끔하게 설명해 줘서 더 덧붙일 게 거의 없을 정도였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내가 깨달은 걸 같이 이해해 버리는 심수력의 실력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과연 대단하다. 지금 심수력의 무공이해도는 백련교주보다 더 뛰어날지도 몰라.’
물론 심득(心得)이기에 심수력이 머리로 이해한 것이 꼭 내 심득과 같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요체를 순식간에 파악하는 능력을 보면 심수력 또한 이 육천합일창을 충분히 대성하고도 남을 소질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자 수보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나도 대충은 이해했네. 그렇다면 백웅이 그동안 육천합일창을 펼치다가 갑자기 폭발해서 사망했던 이유란, 그 정답이라는 걸 맞추지 못해서란 얘기겠군?”
이번 수보리의 질문에는 내가 대답했다.
“아마 그럴 것이오. 나는 일극에서 육직까지의 흐름을 내 마음대로 이어서 펼쳤는데, 사실은 일극에서 시작되는 첫 찌르기 동작에서부터 ‘가장 완벽한 찌르기’를 위한 단 하나의 정답이 결정지어져 있소. 그 정답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끝까지 정확하게 맞춰야만 육천합일창이 펼쳐질 수 있소.”
“호오…… 그런가…… 재미있군. 술법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긴 있지.”
수보리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술법을 펼칠 때 시전조건을 어렵게 설정할수록 그 대가로 높은 주력(呪力)을 얻는 종류가 따로 있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원래 술법이 약했더라도 단숨에 위력이 수백 배에서 수천 배는 증폭될 수 있지. 그러나 그만큼이나 어려운 정도를 높여 버리면 사실상 시전하는 게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사실 의미가 없는 제약이라고 할 수도 있어. 왜냐하면 하급주술로 그 악랄한 조건을 성사시키고 시전할 정도의 술법사라면 사실 그 수준에 이른 평범한 고위술법을 사용하는 게 백 배는 쉽거든…….”
“…….”
“육천합일창 또한 그런 개념처럼 보이는군. 무공도 모르고 의념도 몰라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진짜 골때리는 건 아마 중첩(重疊)된다는 게 아닌가?”
수보리의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단 하나의 정답을 찾아내는 건데 그것만으로도 비현실적인 수준…… 그런 걸 몇 번이나 반복하는 거요.”
아마 산술적인 확률로 따진다면 일극에서 이진으로 향할 때 가볍게 천문학적인 확률에 도달하고도 남을 것이다. 말로는 수백만 분의 일이나 수천만 분의 일이라고 말할 수가 있어도 실제로 내가 그 정답을 찾아내는 순간은 의념세계 속에서 극한의 찰나이며, 그 극한의 찰나 동안 오로지 내 감각과 깨달음에 의존해서 두뇌가 아닌 무예의 흐름을 찾아야 한다. 이런 건 비현실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어려움이였다.
수보리가 말했다.
“허나 만일에…… 그 여섯 개의 변화를 모두 합일하여 ‘완벽한 찌르기’를 해내는 데 성공한다면…… 그 난도(難度)에 대한 보상으로 지금껏 자네가 고민해왔던 자멸(自滅)을 고민할 필요 없이 순수한 모든 파괴력을 외부로 펼쳐내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겠지?”
“…… 아마도.”
“과연 엄청나군. 육천합일창이라고 말한 그 무공은 틀림없이 공격력 하나에 있어서는 절대무적일 게 틀림없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압도적인 어려움에 걸맞는 보상 - 그것은 바로 비례값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것이다. 난이도가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무공의 위력은 인간의 한계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모든 역량이 피해를 증폭하는데 일조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공격력을 보장한다!
무쌍패와 달리 방어를 위해 추스를 필요도 없이 그저 파괴(破壞) 하나만을 위해 찔러내는 일섬(一殲)! 안 그래도 검술 이상으로 공격과 실전에 특화된 창(槍)의 최종 절기라고 할 만했다.
말 그대로 방어의 극한인 무쌍패와 맞은편에 있는, 공격력의 극한이자 대극(對極)!
그러나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지금 내 걱정거리는 그런 게 아니오. 정말로…… 내 의념이 분화하지 않는다는 건가?”
“?”
수보리는 다시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심수력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네. 자네는 설마 분신들과 함께 의념의 순간을 느꼈는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나는 의념이 분화하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어.”
“말도 안 돼. 그건 모순이오.”
“모순이라지만 내 눈썰미를 의심할 거라면 지상의 그 어떤 절대지경 고수조차 믿을 수 없을 걸세.”
“으으…….”
나는 괴로워졌다.
이게 문제다. 육천합일창이 절대무적의 공격력을 보장해 준다는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애초에 그걸 어떻게 해서 달성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론상으로야 삼황오제라고 해도 한방에 모가지를 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그걸 실현 불가능하면 대체 뭣에 쓰겠는가?
‘제길. 말도 안 돼…….’
의념의 순간 그 의념의 세계가 분화되어야 정상이다.
‘여섯 개의 초식이 동시에 펼쳐진다. 그 초식이 궁극적으로 단 하나의 점을 찌르는 것이다. 그런데…… 의념의 공간을 외부에서 볼 때는 하나로 보인다고?’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내가 육천합일창을 펼칠 때 느끼는 그 순간은 ‘나 자신’이 여러 개의 세계에 걸쳐 있고 그게 마지막 순간에 하나로 합쳐질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론상 의념의 공간은 여섯 개나 일곱 개로 갈라져야 정상이 아닌가.
그런데 내가 펼치는 의념의 순간을 같이 읽을 수 있는 심수력이 볼 때는 그저 내가 단 한 번의 지르기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분신이 함께 들어가 있긴 했지만, 분신들이 존재하는 의념은 따로 심수력에게 읽히지 않았다는 뜻인 것인가?
아니 그 전에 분신은 어째서 내 의념의 공간에 같이 들어와 있었던 거지?
같이 들어와 있었는데 왜 느끼지 못한 기색이지? 나만 분신을 봤던 건가?
모순이다. 이런 건 내 체감과 완전히 달랐다. 어떻게 직접 펼치는 사람과 외부의 관찰자가 보는 게 완전히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덜덜덜
나는 그 순간 내가 손을 떨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서 당혹하고 있을 때 심수력이 말했다.
“자네의 이성은 몰라도 감각이 이미 직감해 버린 것 같군.”
이어진 심수력의 말에 나는 마음이 꺾일 뻔했다.
“자네가 지금 알아낸 것은 육천합일창의 실체가 아닌 빙산의 일각일 뿐이야. 그걸 제대로 다 밝혀내기 위해서는 수천 년이 걸려도 힘들 거라는 걸 이미 깨달은 것일세.”
“…….”
“정말 괜찮겠나? 삼백 년은커녕 삼천 년이 걸려도 육천합일창을 펼쳐내지 못할 수도 있어. 그건 어떤 의미에서 무림역사의 종점(終點)을 찍는 무예일세.”
“그, 그건…….”
나는 자신 있게 삼천 년이라도 창을 휘두를 수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심수력의 말대로 나는 지금 이 순간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다.
육천합일창, 이건 절대 내 수준에서 감당할 수 없는 절대무공이다!!
무쌍패가 난도를 낮춰서 그나마 지극한 정성과 의지로 인간이 펼칠 수 있게 완화한 무공이라면, 육천합일창은 일체의 타협을 하나도 하지 않은 순수한 날것이나 다름없다. 무(武)의 극한을 보고 싶은 존재가 인간의 한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 이론만 만들어놓은 것이다.
‘무쌍패 또한 무위전변 없이 그냥 육대절학의 패도만 뭉친다면 육천합일창 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지만…… 어차피…… 난도(難道)가 너무 절망적이다. 현실적인 걸 따지는 수준을 넘어서 공상(空想)에 불과해.’
무위전변으로 태극을 이용해서 난이도를 완화한다는 게 얼핏 바보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삼봉이 그만큼 고명한 무예의 종사임을 의미했다. 무위전변이나 태극, 둘 중에서 단 하나의 요소만 빠져도 난도는 수백 배 이상 증폭되는 것이다. 반대로 무쌍패는 그 패도의 힘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아도 상대의 공격을 죽이는 용도로 응용할 수 있으니 실전성은 육천합일창보다 몇백 배 뛰어나다. 육천합일창의 위력도 그만큼 증폭되긴 하지만 어차피 천문학적인 확률로 단 하나의 정답을 맞추지 못하면 본인이 자폭해서 죽는 무공이다.
그렇다고 해서 익히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무공이 아니다. 아니, 도리어 독(毒)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육천합일창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육천합일창 이외의 모든 무공을 잊어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미친 무공을 진심으로 수련할 셈인가?
심수력은 내게 그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안 돼. 인간은 절대 이 무공을 쓸 수 없어!!’
이건 내가 어려운 높은 무공을 마주했다고 투정부리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절대지경에 이르러 있고 신역의 초입에 발을 디뎠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세간의 어렵다고 하는 무공들 따위는 댈 것도 아닌 극한의 난도가 바로 이 육천합일창이다. 인간의 한계가 100이라고 한다면 보통 80이나 90에 도달한 무공들이 바로 절대지경 무공 중에서도 어렵다고 하는 것들이었으나, 이 육천합일창은 시작부터 150 이상에서 출발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나마도 그 출발점을 충족시킨다고 바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난도가 계속 올라가기 때문에 평생을 걸어도 딱 1번 시전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한 악몽이나 다름없으리라.
모르겠다. 아수라나 여동빈 같은 존재들이 수천 년을 걸고 이것만 수련한다면 어쩌면 희박한 가능성이 있을지도. 하지만 지금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들의 발밑에도 미치지 못하는 재능으로 도전한다면 애초에 시작하는 것 자체가 멍청한 짓 아닌가?
“…….”
꾸욱!
나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나, 나는 물러서지 않소. 아무리 어렵다 해도…… 마찬가지요.”
그러자 심수력이 왠지 매서운 말투로 내게 말했다.
“육천합일창을 익히다가 광인(狂人)이 된다 해도 말인가?”
“뭐요?”
“무공을 익히다가 광인이 되는 건 마기(魔氣)가 골수에 미쳐서가 아니야. 그런 경우는 도리어 드물지. 사실은 자기 재능에 맞지도 않는 고급 무공이나 절기를 익히려다가 두뇌와 의지력이 한계를 보여서 미쳐 버리는 거라네. 나는 강호에서 그런 경우를 무척 많이 보았어.”
“…….”
“입으로 수천 년을 말하는 건 쉽지. 말이란 내뱉고 나면 굳이 주워 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존재하기 때문일세. 허나 의미 없는 언행으로 수천 년을 기약한들 그 무공은 근성과 노력으로 도전하는 자에게 자비롭지 못해. 그건 ‘끝’을 보려는 자를 위해 마련된 것이니 노력상 따위 마련되어 있지 않을 걸세.”
심수력의 눈이 번득였다.
“단언하지. 자네가 이대로 오기 하나만으로 육천합일창에 도전하면 자네는 틀림없이 미칠 거야. 왜냐하면 육천합일창 빼고 모든 걸 잊어버리지 않으면 무(武)의 그릇이 깨져 버리니까!”
“!!”
“좀 더 생각을 해 보게. 그리고 도전은 진지하게 생각하게. 지금 자네는 자기자신의 말에 도취되어 있으니.”
“큭…….”
나는 심수력의 말을 듣자 배알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겉멋에 취해 있단 말인가? 내가 역근세수경의 세계에서 공(空)을 깨닫고 이제야 좀 무공의 종사(宗師)로서 나아가고 있는데 고작 하나의 무공 때문에 겁먹어서 물러나는 게 말이 된다는 말인가!
…… 아니, 이게 설마 심수력이 말한 도취라는 건가?
“어…….”
나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어진 느낌 때문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동시에 지금까지 얻었던 무의 깨달음이나 요동치는 마음은 사라지고 마치 적막한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았다. 그만큼이나 열심히 치열하게 깨달음을 구해왔는데 이렇게나 기름칠이 되어 있었단 말인가?
그때 수보리의 나직한 말이 들려왔다.
“법공(法空)에는 허(虛)도 실(實)도 없으니.”
내가 수보리를 돌아보자 그가 합장을 하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백웅이여. 지금 자네가 느끼는 자기자신이 바로 진여(眞如)이며 법신(法身)일세. 공(空)이란 깨달은 즉시 피안으로 향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닦는 과정인 것이야.”
“진여…….”
“진정 무한대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면…… 스스로를 억지로 타이를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무엇인지 관조하게나.”
“…….”
깊은 깨달음이 담겨 있는 말이다. 원래라면 저렇게 어려운 말을 한다면 이해가 가지 않아서 개소리 취급을 했겠지만, 공에 대하여 뭔가를 깨달은 지금은 저 말의 현기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래…… 깨닫는다 하여 끝이 아니다.
깨달음 자체가 마치 속세처럼 부귀영화나 지위를 보장해 주는 게 아니다.
그저 다음 단계로 향하는 계단에 불과할 뿐, 나는 그 마음에 도리어 공(空)을 잊고 속박되었던 건가?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극강의 무공을 눈앞에 두니 마음이 성급해졌던 것 같소. 나는 내가 이 깨달음을 왜 얻었는지부터 다시 시작해보고 싶소.”
“마음대로 하시게.”
그래, 사실 무작정 육천합일창의 수련을 위해 돌진하는 것도 이상하리라.
‘내가 왜 이 깨달음을 얻었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분명히 의미가 있을 거야.’
지금까지는 단순히 무예경지가 육천합일창도 수련할 만 해져서 허용되었다고 생각했었지만 만일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아무리 모든 무예경지를 섭렵하겠다고 마음먹었을지라도 아직까지 내 특기는 검술인데 창술의 극한에 이르러 있는 무예에 단숨에 도전하는 게 맞을까?
적어도 창술 또한 검술만큼 이룬 다음에 접근할 수 있는 게 아닌가?
“…….”
안 되겠다. 도무지 생각이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육천합일창을 더 수련하는 게 좋을지 아닐지 모르겠다.
뭔가 생각을 전환할 게 필요한데…….
저벅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내 쪽으로 걸어 온 모수분신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야. 소환해제 안 할 거냐?”
나는 심사숙고하던 중에 난데없이 분신이 말을 걸어오자 인상을 찡그렸다.
“니들이 가고 싶을 때 맘대로 되돌아가면 되잖아.”
“이 새끼 진짜 가면 안 쓰고 있으니까 술법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구만.”
“뭐?”
복희의 얼굴을 하고 있는 내 분신이 팔짱을 끼며 나를 째려보았다.
“모수분신이 해제되는 건 3가지 조건이 있다. 네가 직접 분신을 해제하던가, 아니면 우리가 분신이 해제당할 정도의 강력한 피해를 입던가, 그게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시전자인 너의 술력(術力)이 고갈되어서 해제되는 방식이다.”
“? 그럼 좀 기다리면 되잖아. 시간이 지나면 해제된다면서.”
모수분신이 답답한지 언성을 높였다.
“그게 아니라고. 우리는 지금 네 신력(神力)을 대신 소모해서 소환되어 있는데 이대로 가면 1만 년이 지나도 술력고갈 때문에 소환해제가 안 돼, 이 새끼야!”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옆에 있던 수보리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하하. 이럴 거 같긴 했는데…….”
“수보리. 분신의 말이 정말이오?”
“그렇네. 자네의 잠재신력을 대신 소모해서 분신들을 유지하고 있는 건데, 자네의 신력이 분신소환 때문에 소모되는 것보다 회복되는 게 빠른 데다가 그 양이 워낙 막대해서 1만 년이 지나도 자연해제는 안 될걸세.”
“헉!! 내 신력이 그렇게 많다는 말이오?”
“자네의 신력은 삼황오제 바로 아랫급의 2인자보다 더 많을 수도 있는 양인데, 그 정도 신력이면 자넨 사실상 상급 신(神)이나 다름없네. 신이 분신소환 따위 유지 못 하는 게 상상이 되나?”
“…….”
나는 상황을 이해하고는 분신에게 말했다.
“이리 와봐라. 내가 해결해줄게.”
채앵!
그러자 분신은 검을 뽑아 들었다. 뒤에 있는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나는 당황했다.
“이, 이새끼들아. 뭐 하는 거냐!”
“해결해준다면서 우리를 주먹으로 패서 없앨 생각이지?”
“…….”
“우리가 니 분신인데 니 생각을 모를 거 같냐!”
들켰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니 그럼 어떡하라고!!”
“어떡하긴 뭘 어떡해. 정상적으로 가면 쓰고 술법해제를 해라! 가면 안 쓰고 있을 때는 못하는 거 다 안다.”
“참 나, 알았…….”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수보리의 가면을 쓰려고 했는데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멈칫했다. 그러고는 모수분신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니들이 나 대신 수련하면 안 되냐? 무공이나 술법 같은 거…….”
저놈들이 육천합일창을 나 대신 수련해준다면 어쩌면 쉽게 달성할 수 있을지도?
그러자 모수분신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뭐?”
“저 씨발놈 보게, 우리가 수련한 거 다 공짜로 처먹으려고 지랄이야.”
“양심도 없나?”
“…… 험, 험!!”
나는 반응이 격렬 하자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너희가 분신해제되면 그 경험치도 내가 얻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해서.”
그러자 아까 내게 다가왔던 모수분신 놈이 이죽거렸다.
“본체 이새끼 날로 먹고 싶어서 정신이 나갔군. 그런 식이면 수보리는 지금 왜 무공은 못 쓰고 술법만 쓰는데?”
“어?”
“수보리야말로 수천 년 전부터 모수분신술 쓰고 있는데 니가 말 한 것처럼 지상에 분신 내려보내서 무공이나 잡술을 수련하게 시키면 되잖아. 필요한 술력은 비취세계에서 비취를 흡수하면서 유지력을 늘리면 그만이고. 무공을 못 쓰는 게 도리어 이상하지 않냐고.”
“…….”
어, 그렇네?
그러자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수보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흐음. 이거 들켜 버렸군. 모수분신술을 써서 소환이 해제되어도 저 분신들이 얻은 경험이나 무공 술법 등은 자네에게 전승되지 않는다네.”
“쳇…… 그런가.”
“애초에 그런 꼼수는 분신술로 쓸 수가 없어. 아무리 모수분신술이 분신술의 정점이라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 술법을 펼치면 정체성의 혼란은 물론이고 영혼이 뒤섞여 버려서 지상최악의 금술(禁術)이 될 걸세. 동시성을 가진 영혼이 어떻게 동시에 여러 개 존재하겠나.”
수보리가 중얼거렸다.
“도리어 거기에 어울리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응?”
“아닐세. 그냥 혼잣말이야.”
그는 환기를 하듯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애초에 자네한테 모수분신술을 쓸 수 있게 해준 이유가 달라. 저 녀석들은 궁시렁대지만 일 시켜먹기 좋은 데다가 자네의 모의대련상대가 되어줄 수 있어.”
“모의대련!”
“늘 심수력하고만 대련하는 건 별로겠지. 때로는 자기자신과 싸우면서 약점이 뭔지 고쳐야 할지도 거울처럼 살펴볼 수 있을걸세. 나는 자주 했었던 일이지.”
“호오, 그거 좋구려.”
그러자 선두에 있던 모수분신이 말했다.
“야.”
“너희는 왜 자꾸 나를 야야 거리면서 부르냐? 나는 백웅이라는 이름이 있다고.”
“아니 제기랄. 당연히 우리는 네 이름을…….”
뭔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탕탕 치던 내 분신이 이윽고 한숨을 쉬었다.
“됐다. 아무튼 우리를 소환해제한 다음에는 이렇게 해 봐라.”
이어진 분신의 말에 나는 신기한 생각을 한다고 여겼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수보리에게 말했다.
“수보리. 이런 식으로 분신술을 써본 적이 있소?”
“아니…… 없네. 자네 외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가면이 되어 쓰인 적이 없어. 그리고 발상 자체도 처음이군.”
“해도 되겠소?”
“어디 해 보게. 된다면 정말 신기하겠군.”
“좋소.”
파앗
나는 수보리의 가면을 쓴 후 원래 소환되어 있던 놈들을 소환해제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한번 모수분신을 훅 하고 불어서 소환해 보았다.
‘될까…….’
퍼엉!
잠시 후 장내에 내 분신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복희의 외모를 하고 있으나 동시에 [가면]을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전방에 있던 분신이 가면을 살짝 들추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가면이 복사가 된다고.”
“…….”
와, 이게 진짜 되네?
나는 신기해서 분신의 가면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봐. 그럼 이 가면은 [수보리]인 거냐?”
“글쎄? 한 번 벗어볼게.”
쓱 하고 분신이 자기 얼굴에 씌어 있는 수보리의 가면을 벗었다. 그러나 가면을 벗었음에도 딱히 수보리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고 그냥 가면 그 자체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가면에게 몇 번 말을 걸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뭐야? 그러면 그냥 가면의 모습만 복사한 거잖아. 무의미한…….”
“등신아. 이거나 봐라.”
다시 분신이 가면을 장착하더니 갑자기 자신의 머리털을 한 움큼 뽑았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어? 설마…….”
퍼어엉!!
잠시 후 모수분신술이 분신의 손에 펼쳐지면서 장내에는 수백 명의 분신이 또 생겨났다. 분신들이 우글거려서 할 말이 없어지자 모수분신을 쓴 분신이 큭큭 웃었다.
“크크크…… 본체야. 가면이 복사가 된다고.”
“…….”
“무슨 말인지 알아챘지?”
“아…… 그래.”
[가면]은 의지를 갖고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그들의 존엄성을 확정할 수 없다.
의지가 존재치 않는 도구로서 복사가 가능하다는 것. 그것은 존엄을 이야기하기에는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인 능력이었다.
우주의 어떤 절대자가 철저히 ‘도구’ 그 자체로만 만든 종족, 그것이 [가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