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0권 5화
수보리의 말에 나는 반색을 해서 말했다.
“뭔가 방법이 있소?”
“있지.”
“당장 말해 주시오.”
“그야 당연히 말할 건데…… 그 전에.”
휙 하고 나무에서 내려온 수보리가 말했다.
“육천합일창이라 했나? 그 무공을 지금 익히려는 이유부터 듣고 싶은데.”
“? 그걸 왜 알고 싶소.”
내 반문에 수보리가 합장을 하며 고요히 말했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이며 종파만류(宗派萬流)라 할지라도 인간의 재능에는 한계가 있어서 충분한 집중력이 있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법. 하물며 자네는 재능마저 부족하지 않은가?”
“…….”
“뜨끔한 표정이군. 내가 하려는 말 정도는 알겠지?”
당연히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다.
나는 다소 불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물론이오. 지금 있는 것도 다 못 익혔으면서 왜 다른 것에 손을 뻗어서 집중력을 분산시키냐는 말이 아니오.”
“잘 알아들었구만. 그럼 이 시기에 육천합일창을 익혀야 하는 이유 정도는 자네가 말 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건 얘기를 들어보니 아무리 봐도 창술일 뿐 검술이 아닌데 말일세.”
정말 하나하나가 뼈를 찌르는 지적이었다. 나는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음…….”
나는 잠시 숙고를 거듭하다가 말했다.
“나는 예전부터 이런 지적을 많이 받았소. 무술스승도 많았고, 그때마다 내게 재능이 없으니 가장 효율적인 무공의 길을 찾아 주려고 다들 노력을 많이 해 줬지. 그 덕에 내가 미천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검술만큼은 대성했으니 고마운 일이오.”
“정말 고생 많이 했겠구만. 아, 자네 스승들 말일세.”
“…… 다만 지나고 나서 드는 생각은, 내 재능이 부족하여 효율을 추구한 끝에 간신히 절대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나는 무(武)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음에 아쉽소.”
내 대답에 수보리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즐긴다? 허허…… 자칭 둔재라면서 즐길 여유까지 있는가?”
평소라면 저 반문이 내 폐부를 찌르는 압박감을 줬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도리어 느긋하게 대꾸했다.
“내가 무예를 즐기지 못할 이유라도 있소? 그렇다면 나야말로 알고 싶소. 천재라는 건 목표지점에 더 빨리 도달할수록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이오?”
“보통은 그렇지.”
“허나 그렇게 빠르게 경지에 도달한 천재들 중 누구도 자기가 빠르게 도달했음에 만족하지 않았소. 그들은 처음부터 둔재나 범재를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오. 자기가 도달한 한계점에서 더 나아갈 수 있을지만 신경 썼을 뿐 거기에 도달한 속도로 알량한 충족감을 느끼는 자는 결코 대단치 않았소.”
처음에 나는 천재가 나 같은 범부(凡夫)를 내려다보며 비웃을까 봐 조바심을 느끼곤 했지만 진정한 현실은 그것보다 더하다. 진짜 천재들은 애초에 나 같은 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비웃음이라도 당할 수 있다면 도리어 그게 영광일 것이리라.
“…….”
“특히 내가 아는 천재 중 가장 대단한 천재는 처음부터 즐기는 것만을 신경 썼으니, 나는 즐기려 하는 태도가 결코 나쁘다 생각지 않소!”
“나쁘지 않다?”
“그렇소. 즐기면서 하다 보니까 조금씩 뭐든 길이 열리고 있소. 나는 그걸 이번 수련 기간 내내 느끼고 있소이다.”
수보리는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 그러니까 재능이 어찌 됐든 즐기려는 태도 자체가 자네에게 길을 열어준다 그건가? 자네 재능이 받쳐주지 않으면) 터무니없이 비효율적으로 시간만 낭비하는데도 두렵지 않다는 건가?”
“그렇소. 그것이 바로 내가 육천합일창에도 손을 뻗는 이유요.”
나는 팔짱을 끼며 당당히 말을 이었다.
“여기서 삼백 년을 다 쓴다고 해도 난 두렵지 않소! 나는 즐기기로 마음먹었고 전생자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오. 여기서 수련을 다 마치지 못하면 다음 생에 수천 년을 쓰는 한이 있어도 한번 손에 잡은 분야를 대성하고 말 것이오.”
“음…….”
수보리는 내 대답을 듣자 턱을 괸 채 한참 동안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수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거 자네를 압박해서 그릇을 알아보려다 본전도 건지지 못했군. 자네는 틀림없이 진정한 천재들을 만나본 모양일세.”
“무례한 말을 사과할 생각은 있소?”
“기꺼이 사과하지, 흐흐. 생각 없이 욕심만 부리는 졸자의 그릇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으니 어찌 사과하지 않겠나?”
스윽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수보리는 합장을 하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슬며시 고개를 들며 말했다.
“육천합일창의 부작용을 막을 방법은 간단하네. 자네가 하나하나 시험해 보겠다면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을 다 알려주지.”
“뭐 그리 뜸 들이시오? 빨리 말해주시오.”
“우선 첫 번째. 펼치자마자 죽는 게 흠이라면 수신지혼을 강화시킨 후에 육천합일창을 펼치면 될 걸세. 절대 안 죽는 게 장점이라 하지 않았나? 뇌신지혼의 타격에 난도질당하고도 멀쩡하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지. 그런데…….”
아니 그런 방법이?!
생각을 못 했는데!
“…… 오오!! 당장 해 보겠소!!”
육천합일창!!
파앗
내가 생각난 김에 바로 창을 잡고 초식을 시전하기 시작하자 수보리가 기겁을 하며 외쳤다.
“자…… 잠깐!! 왜 그리 급해! 아니 늦었…….”
쿠구구
수신지혼의 강화를 몸에 두르는 건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고 바로 그때 수보리가 마치 투명한 구름을 몸에 두르는 듯한 술수를 쓰고는 바로 사라져 버리는 게 보였다. 수보리가 사라지기 직전에 나는 그대로 육천합일창의 감각을 끌어올리며 의념의 공간에서 바로 한 점을 찔러보았다.
우우우
귓가에 이명(耳鳴)이 울리는 듯한 착각.
잠시 후 눈앞이 환하게 번져 나왔고, 나는 수신지혼으로 강화한 몸뚱이가 갑자기 산산이 흩어지는 걸 느꼈다. 그러나 수신지혼답게 고통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고 내 본질도 멀쩡한 느낌 덕에 나는 찰나의 순간에 여유를 느끼고 싱긋 웃었다.
‘좋아! 이걸로 부작용을 해결…… 어?’
그러나 수신지혼의 몸뚱이가 산산이 흩어져서 곧이어 물방울 하나하나보다 더 작은 크기로 변하고, 곧이어 내 의식은 물론이고 존재감마저 급격히 혼돈에 휩싸이는 게 느껴졌다.
퍼퍼퍼퍽
‘끄악.’
도저히 인격을 유지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시퍼런 불꽃같은 감각이 몰려와서 내 근원부터 태워버리는 것처럼 아찔한 고통이 느껴졌고, 나는 이게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의념을 통해 직접 전해지는 정신적 고통이라는 걸 깨달았다.
퍼엉
몇 번을 더 쪼개고 태워졌는지 알 수 없다고 느껴지던 순간 나는 뭔가가 튀겨지는 듯한 폭발음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
“…….”
“…….”
나는 메피스토펠레스와 말없이 마주 보고 있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의 외알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허브 티는 드시고 가시지요. 입에서 침을 흘리는 걸 보니 고통이 상당할 텐데 조금은 누그러뜨려 줄 겁니다.”
평소라면 대꾸하거나 받아쳤을 테지만 그럴 여력도 없다.
방금의 고통은 평상시보다 더 아픈 죽음이었던 것 같다.
“…… 한 잔 줘.”
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말대로 얌전히 허브티를 마신 후 되살아나기로 했다.
***
파앗
내가 되살아나자 잠시 후 멀리서 심수력과 수보리가 오는 게 보였다. 심수력은 뇌신지혼을 써서 회피했는지 올 때도 번개처럼 변신해서 찾아왔고, 수보리는 사라질 때처럼 투명한 구름을 몸에 두르고서 귀환했다.
수보리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전생자가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지만 생각보다 더 과감하군. 잘못하면 죽을 수 있다고 말하려 했는데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단 도전할 줄은 몰랐네.”
“…… 이 방법은 안 되는 것 같군. 또 다른 방법이 있겠소?”
“하아. 우선 실패한 원인부터 분석해 봅세. 아마도 육천합일창을 찌를 때 모이는 힘이 너무 강대한 데다가 비례값이라 하지 않았나? 즉 자네 자신의 힘이 더해져서 반발력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수신지혼을 강화시켜봤자 그 수신지혼의 불사성조차 훼손되는 자폭이 동반되는 거야.”
수보리의 분석에 나는 기가 막혔다.
“제길…… 사실 당신 말을 듣는 순간 이 방법이 정답이라 느낄 정도였소. 근데 이게 안 된다면 대체 무슨 방법을 써야 하는 것이오?”
수보리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말했다.
“두 번째 방법은 바로 자네가 나를 이용하는 걸세.”
의외의 말에 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이용? 설마…….”
“자네가 생각하는 설마가 맞네. 나를 [가면]으로 만들어서 써 보게.”
“당신이 가면이 된다고 해서 강화된 수신지혼보다 더 강력한 불사능력을 주는 건 아니잖소?”
수보리는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들기는 듯한 손짓을 취했다.
“생각을 전환해 보게. 애초에 자폭기로 쓸 게 아닌 이상 수신지혼으로 버텨 낸다는 발상은 진짜 1차 적인 발상이야. 멀쩡하게 무예의 절기로 쓰기 위해서는 기술 그 자체를 분석해야 하지 않겠나.”
“음…… 그거야 그렇소만…….”
“비례값이라는 걸 잘 생각해 보자고. 나쁘게 생각한다면 무슨 수를 써도 써먹지 못할 자폭기이지만, 잘만 쓰면 그 어떤 기술보다도 막강한 공격력을 지니게 되는 걸세.”
“어떻게 분석할 생각이오?”
“일단 가면을 쓰고 나서 알려주겠네. 자네가 또 돌발행동을 하는 게 두렵네.”
“좋소.”
스아앗
수보리가 가면으로 변신한 후 내가 그를 얼굴에 쓰자, 수보리의 능력이 예전처럼 내게 덧씌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가면이 된 수보리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렸다.
[모수분신술을 써 보게.]
모수분신술을?
나는 의아했지만 일단 토 달지 않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후욱!
머리를 한 움큼 뽑아서 앞으로 불자 그대로 내 분신들이 소환되었다. 무려 서른 명이나 소환되었는데 그들 중 맨 앞에 있던 분신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갑자기 내 멱살을 잡았다.
“야.”
“어…… 왜?”
분신이 으르렁거렸다.
“경고했는데 또 니 원래 면상으로 소환했겠다!! 이 개잡놈의 새끼야!!”
“…….”
“복희 얼굴로 소환하랬잖아!”
아 그러고 보니…… 또 원래 내 얼굴이네?
하지만 나는 미안함을 느끼지 못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나도 나름 내 얼굴에 자부심이 있…….”
“있기는 개뿔!! 이 개 같은 새끼가 끝까지 무시한다 이거지?”
파앗
분신이 갑자기 한 손에 수요를 소환했고 뒤에 있던 30여명의 분신들 또한 난데없이 수요를 소환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깜짝 놀랐다.
“어?!”
“넌 이런 거 생각해 본 적 없지?”
지지징
그 순간, 수요에 기괴한 어둠의 힘이 일렁였고 나는 그게 전욱의 음신지력이라는 걸 순식간에 알아챘다. 그리고 창조된 수요에 억지로 이질적인 신력이 침입하자 수요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듯 기이한 소리를 내면서 일대의 시공간이 왜곡되었고, 나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맨 앞에 있던 내 분신이 이죽거리듯 외쳤다.
“뒤져!”
쿠콰콰쾅
서른 명의 분신들이 일제히 수요를 폭발시키며 다 같이 자폭한다!
“!!”
다음 순간 나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폭발이 내 앞에서 터져 나오며 마치 예전 미래세계에서 핵폭발을 눈앞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호신강기를 돋우어서 막으려 했으나 수보리가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빠르게 대라신선급 술수를 떠올려 주었다.
분광현경(分光現鏡)!
수보리가 자신하는 둔갑술 중 하나이자 가장 강력한 보호술수 중 하나! 분광현경이 펼쳐지자 내 몸이 그대로 빛줄기로 변하며 거울의 차원으로 그대로 통과하듯이 매끄럽게 단거리 차원이동을 했지만, 거울의 차원을 넘을 때 내 손발이 크게 타오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가면 수보리가 찰나의 순간에 침음성을 흘렸다.
[신력의 폭발이라서 차원이동으로 피해를 무시할 수 없군!!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위력이…… 어쩔 수 없다.]
생륜우화(生輪羽化)의 술(術)!
빛줄기로 변한 내 몸이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갑자기 형태를 변모시키더니 몸 주변에 여러 개의 륜(輪)을 소환했고 사지(四枝)에 륜이 끼워지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비취 같은 쪽빛이 퍼져 나오더니 륜이 마구 명동(鳴動)했고 륜이 퍼뜨리는 진동이 내 몸을 불태우려는 신력의 폭발을 잠시 막아 내는 것 같았다. 나는 생륜우화의 술로 보호받는 와중에 이게 어떤 술수인지 알아채고는 깜짝 놀랐다.
“이건 팔선(八仙) 한상자의…….”
틀림없이 이것은 팔선 중 한 명인 한상자의 독문술법! 생륜우화의 술수는 팔선과 여러 번 접촉했고 그들의 술수를 간접적으로 공부했던 나로서는 모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수보리가 팔선의 술법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
투웅!!
그때 생륜우화의 술법으로도 피해를 이겨내지 못한 듯 내 몸에서 살가죽이 뜯겨져 나가는 듯한 고통이 짜릿하게 퍼져 나갔고 내 몸이 거울차원을 튕겨져 나갔다. 수보리는 이제는 숫제 기겁한 듯한 목소리로 내 머릿속에 말했다.
[이, 이거 장난 아니군. 내 술법으로는 더 이상 피해를 막을 수 없어! 무공으로 어찌 안 되겠나.]
“쳇!”
딱 봐도 어마어마한 신력의 파괴력이 번져 나오며 시공간을 잡아먹고 있었기에 웬만한 절학은 통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 쓸 무공이 있나?
아 있긴 있는데!
‘아 될려나…….’
나는 불안해하면서도 재빨리 감각대로 무공을 시전했다.
‘공간을 훔친다…….고 했었지!’
그럼 어디 이렇게 해 볼까?
만상지투(萬象之偸)
공간절도(空間竊盜)
투확
그 순간 나는 내 자신이 있던 공간을 빠르게 뺐다가 다시 되돌려 놓았고, 그 반탄력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엄청난 거리를 튕겨 나갔다. 나는 순식간에 수십 리나 날려간 듯 아예 처음 보는 지형에 날아와 있었고, 저 멀리에서 마치 핵이라도 터진 것처럼 가공할 밀도의 열이 마치 태양처럼 번져 나오고 있는 게 보였다.
고고고고
“…….”
청룡무관은 물론이고 근처의 산이 몇 개씩 날아가는 게 보이자 나는 황망해졌다. 수요신기에 신력을 넣어서 폭발시키는 게 저 정도의 위력이 있었단 말인가?
‘심수력은 알아서 피했겠지. 뇌신지혼 쓰는 걸 봤으니까…….’
나는 너무 지근거리인 데다 순식간이라서 다른 방법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지만 심수력이라면 충분히 대응했으리라.
내가 멍하니 그 참상을 쳐다보고 있을 때 가면이 된 수보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방금 어떻게 한 건가? 그것도 무공인가?]
“신투지존의 무공인 만상지투요. 그중에서도 공간을 훔치는 기법을 썼소.”
[공간을…… 훔쳐? 훔친다 치더라도 어떻게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한 거지?]
“공간을 뺐다가 다시 끼워넣어 봤는데 그러니까 반탄력이 어마어마하구려.”
[…… 신투지존이란 자가 그런 식으로 시전 했던가?]
“어…… 이런 식으로는 안 했소. 그냥 나는 지금 생각난 대로 했을 뿐이오.”
그냥 공간이동을 하면 신력이 공간까지 태워버리는 것 같아서 내 공간을 빼서 튕겨냄과 동시에 신력의 폭발이 있는 공간 바로 앞에 묘한 틈새를 만들어 보았다. 그러니까 아까 수보리가 술수를 썼을 때처럼 신력이 따라오지 않는 것이다.
[…….]
수보리가 잠시 침묵하다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자네는 이상한 분야에서 잠재력이 어처구니없이 높군…… 방금 폭주한 분신들의 잠재력도 자네의 분신이기 때문에 저렇게 강한 걸세. 세상에 신력의 무기를 소환해서 폭발시킬 수 있다니.]
“훗…….”
[뿌듯해하지 말게. 모수분신술은 강력한 분신술인 대신에 각각 인격이 있어서 지금처럼 잘못 다루면 자폭 당할 우려가 있는데 딱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안 죽었으니 됐잖소?”
[허어.]
“그보다 당신은 어떻게 팔선 한상자의 술법을 쓸 수 있는 것이오?”
[역시 생륜우화의 술법을 알아보았군. 그건 사실 내가 천계의 천선(天仙)들과 공동개발한 술법일세.]
“…… 공동개발?”
[한상자는 비교적 후대에 천선으로 올라선 존재. 타고난 천재성으로 지선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왔지만, 그녀가 살던 만당시대는 일개 신선이 독자적인 술법을 개발할 만한 여유가 없는 난세였지. 그래서 팔선 한상자는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서 나와 기존의 천선들이 이미 개발해놓았던 술법을 전승받은 걸세.]
“그 말은 당신이 팔선의 술법을 만들었다는 말이군.”
[전부는 아니고 몇몇 개는. 예전부터 내가 오래된 존재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천계 초기부터 계속 그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네.]
“…….”
역시 수보리는 수천 년 묵은 가면다웠다. 제천대성이 옥황상제급이라고 평가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다지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기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제길. 분신술 한번 잘못 써서 일이 꼬였군…… 다시 모수분신술을 써도 되겠소?”
[해 보게. 대신 이번에는 분신의 요구를 들어주게.]
“쩝.”
퍼엉
나는 다시 모수분신술을 써서 분신들을 소환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맨 앞에 있던 분신이 히죽 하고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어이. 하면 할 수 있잖아.”
분신들의 얼굴은 전부 복희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왜인지 짜증이 나서 투덜거렸다.
“수틀리면 자폭해서 본체를 협박하다니 어떻게 되먹은 거냐? 참 근본 없는 놈들이군…….”
그러자 내 분신이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냐? 우리의 성격은 전부 너와 거의 똑같다. 네가 내 위치에 있다면 똑같이 했을 거란 말이지. 수틀리면 자폭하는 게 본체 네 성격이잖아.”
“…….”
“네 얼굴에 침 뱉어서 좋을 거 없다.”
아, 아닌데…….
난 그런 성격 아닌데?
저 새끼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무튼 시킬 거 있으면 빨리 시켜라. 어차피 우리가 쓰는 신력이든 무공이든 네 원래 힘에서 뽑아 쓰는 거니까 괜히 오기 부리지 말고.”
이 새끼가 사람 협박한 주제에 엄청 당당하네?!
나는 분신을 보자 배알이 뒤틀려서 죽을 것 같았지만 간신히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참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젠장, 수보리. 그래서 이젠 뭘 시키면 되는 거요?”
[하하하.]
수보리는 왠지 기분 좋은 듯 껄껄 웃더니 말했다.
[간단하네. 육천합일창의 육 초식을 한 초식씩 각각 다른 육 분신에게 동시에 시전하게 시키는 것일세.]
“?!”
“뭣이?”
나는 수보리의 말에 깜짝 놀랐고 분신 또한 깜짝 놀랐다. 나는 분신이 깜짝 놀라는 걸 보자 놈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너는 왜 수보리 말을 들을 수 있는데?”
“못들을 게 뭐 있냐? 우린 전부 본체 너랑 정신연결 되어있어서 다 들어.”
“…….”
그런 쓸데없는 기능이 다 있나?
내가 내심 투덜거리고 있을 때 수보리가 말했다.
[백웅. 사실 모수분신술은 자네와 같은 분신을 소환한다지만 같은 존재가 아니야.]
“당연히 그럴 거 같은데…… 저런 게 나랑 같을 리가 없잖소.”
[그러니까, 아까 저 분신이 말했듯이 겉으로는 자네와 같은 힘을 사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모든 힘은 자네의 본체에서 뽑아 쓰는 거란 말일세. 자네 힘의 총량이 100이라고 한다면 10명의 분신이 10씩 뽑아쓴다면 다 고갈되게 되어 있지.]
“엥?!”
[없는 힘을 새로 만들어내거나 증폭시키는 게 아닐세. 원본의 힘을 정해진 비율로 나눠쓰는 술법이지.]
나는 뜻밖의 말에 당황했다. 그런 술법이라고?
나는 황당해서 반문했다.
“아니 잠깐. 제천대성은 수백 개의 모수분신을 쓰면서 하나하나가 신선급 전투력을 갖고 있고 광선도 쏴댔는데 그게 말이 되오? 당연히 본체와 같은 힘을 가진 분신이 여러 개 소환되는 줄…….”
[말이 되지. 제천대성이 본신의 힘을 제약했다고 저번에 말했잖은가. 다만 제약했어도 본체가 꺼내쓰지 못할 뿐 분신들은 봉인된 잠재력도 긁어내서 쓸 수 있어. 그만큼 진짜 제천대성의 힘은 어마어마하다는 걸세.]
“…….”
그러니까 제천대성의 진짜 힘은 신선 수백 명이 동시에 공격하는 것보다 더 강하다는 소리인가?
내가 멍하니 있을 때 수보리의 말이 이어졌다.
[방금 자네의 경우도 마찬가지지. 자네는 평소 수요를 소환해서 일부러 폭발시킬 생각은 못 했잖은가? 그러나 분신들은 자네가 생각하지 못했던 전술이나 전법도 마음껏 쓸 수 있어.]
“아니 당연히 못 쓰지. 자폭하는데 그런 걸 왜 하오.”
[중요한 건 자네가 평소 못 쓰는 잠재 신력을 분신들이 쓸 수 있다는 점이네. 사실 자네가 못 쓰고 있는 신력의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소리야. 그걸 완전히 쓸 수 있다면 자네가 말했던 흑웅만큼 강해지는 건데 지금 그러지를 못하니…….]
“음…….”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분신들이 그 육천합일창을 쓰면 어떻게 되겠나?]
“…….”
[과연 본체가 펼쳤을 때와 같은 결과가 나오겠나?]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완전히 미지의 상태에 있는 난제(難題)가 주어지자 나는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아서 생각에 골몰했고, 이윽고 수보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흐흐. 사실 자네 같은 절대지경 이상의 달인이 모수분신술을 익힌 경우는 내가 알기로는 없어. 과연 무예의 역량이라는 게 모수분신술에 적용되는지 알아보고, 덤으로 육천합일창의 위력이 어디까지 증폭될 수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것일세.]
“으음…… 과연…… 음?”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뭔가를 깨닫고는 말했다.
“잠깐. 이건 그냥 육천합일창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일 뿐 내가 생존할 길을 도모하는 게 아니잖소? 이게 정말 분석하는 게 맞는 거요?”
잘 생각해 보니까 이게 성공하든 실패하든 결과는 죽음이잖아?!
내가 당황해서 말하자 수보리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수신지혼보다 더 강력한 불사술법은 없네. 그것도 안 통한다면 기껏해야 자네의 신력으로 억지로 영육을 강화해서 버티는 건데 그마저도 비례값이라 안 통할 가능성이 높지. 그럼 이제부터는 죽음을 각오하고 그 무공 자체를 분석하는 수밖에 없을 걸세!]
“…….”
[철저히 분석하다 보면 안 죽을 방법이 나올지도 모르지. 안 그런가?]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도리어 호승심이 생겨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해 봅시다.”
죽는다는 전제를 잡으니까 도리어 마음이 편하군!
나는 씩씩하게 대꾸했지만, 옆에 있던 분신이 엄청나게 떫은 표정을 지었다.
“그만 좀 죽어 미친놈아…….”
“…….”
분신이 왜 저런 말을 하냐고!
잠시 후 분신 여섯 명이 앞으로 나와서 육천합일창의 일극에서 육직까지의 각 초식을 펼칠 준비를 했다. 각각 다른 초식을 분할 해서 펼쳐도 과연 똑같은 육천합일창의 효과가 나올지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나는 분신들의 옆에 서서 함께 육천합일창을 펼칠 준비를 했고, 이윽고 외쳤다.
“시작!!”
고오오
육천합일창이 의념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그 순간 -
나는 갑작스럽게 의식세계가 빠르게 통합되는 것을 느꼈다.
***
같은 곳에 서 있다.
분신 여섯 명과 나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이 텅 빈 공간은 의념의 세계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각자 따로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던 육천합일창이 난데없이 총 7명이 동시에 펼치는 공동절기가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어째서 나는 분신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거지?
…….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필설로 형용할 수 있는 시간의 개념을 넘어선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분신들은 이 순간 마치 한마음 한뜻이 된 것처럼 의념의 세계에서 그 공백을 채우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고, 그 춤은 마치 초식이 올올이 풀려서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스스스스
기묘하다. 일극의 초식을 일곱 명이 서로 다른 양상으로 펼치고 있다. 초기자세가 똑같아서 똑같은 초식이 펼쳐질 거라 생각했지만, 제각기 일극(一戟)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랐다.
일극이란 찌르기.
찰(札)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
그러나 찌르기라는 게 늘 같은 것인가?
서로 다른 상황에 다른 찌르기 방식이 존재하고 호흡법도 근육의 움직임도 다르다.
마치 그런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반영하듯, 나와 분신들이 펼치는 일극은 모두 다른 것이다.
‘아.’
나는 일극이 이어지는 동안에 깨달았다.
모수분신이라고는 하지만 저건 또 다른 ‘나’라고 할 수 있다.
나와 거의 유사한 인격을 가진 술법이긴 하지만 이 의념의 세계에서는 저 가짜들 마저도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아니, 가짜라고 분별 지을 이유가 없다.
각자의 해석이 다른 이유…….
그것은 각각 찌르기에 담고 있는 의지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촤아앗!
다음 순간, 나와 분신들은 마치 튕겨지듯이 몰아일체의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마치 썰물처럼 의식이 강제로 빨려 나간 듯한 기분으로 현실세계로 되돌아온 우리는 앞을 향해서 창을 뻗고 있었다.
기묘한 점은, 의념의 세계에서는 모두 해석방식이 달랐는데도 나와 분신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자세로 찌르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
“…….”
나와 분신들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했다.
이 순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감정과 무예의 해석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신이 창을 거두어 자신의 어깨 위에 올리고는 내게 말했다.
“멈춘 이유는 뭐냐.”
“아.”
뜻밖이라면 뜻밖이다. 당연히 내가 깨달은 걸 녀석도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분신술의 한계인가 보군.’
개별적인 인격을 갖고 있으며 내 잠재력도 뽑아 쓸 수 있지만 그렇다 해서 내 깨달음이나 무예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분신이 내게 경험을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분신이 느낀 것을 느낄 수가 없다. 하긴 그걸 넘어서면 말 그대로 신의 수준이었기에 나는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며 반문했다.
“내 의지를 받아서 너도 멈춘 거냐?”
“그래. 하지만 그 이유를 모르겠군.”
“…….”
나는 말 없이 분신의 말에 하늘을 쳐다보았다.
멈춘 이유는 죽기 싫어서가 아니다.
“첫 단계부터 바늘에 실을 꿰는 것보다 어려워.”
“……?”
분신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나는 설명을 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제기랄... 이러니까 자폭할 수밖에 없잖아."
내가 혼자서 여러 번의 각도로 비춰보았다고 여겼던 그 육천합일창의 전개 - 그것은 사실 전부 오답(誤答)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신이 내 의념의 세계에 들어왔을 때도 개별적인 세계가 아니라 전부 나와 동일한 세계를 공유하게 되었으리라.
단 하나.
일극에서 육직까지의 흐름이 실에 꿰듯 이어져서 완벽한 일섬(一殲)으로 거듭나는 단 하나의 정답.
그러나 그 흐름의 난해함은 가히 신(神)의 영역에 이르러 있다.
방어의 극한인 무쌍패와는 다른 종류의 극악한 난이도.
그것이 바로 육천합일창의 진짜 정체일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