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495화 (1,394/1,615)

전생검신 80권 3화

내 말에 심수력이 뒤늦게 연무장으로 오면서 말했다.

“무위? 뭔가를 깨달았나?”

“예전에 깨달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소.”

나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몸에 때려 박아서 알았다고 착각했을 뿐 나는 그게 뭔지 몰랐던 거나 다름없소. 그 진짜 의미를 다시 찾아야만 하오.”

“…… 심오하군. 허나 왠지 자네가 뭘 추구하려는지 알 것 같네.”

“정말이오?”

“자네가 마지막에 고민하던 게 무엇인지 나 또한 알고 있으니.”

심수력은 머나먼 산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

“나는 나 대로 따로 수련하겠네. 사실 기억이 되돌아오면서 새로운 무공이 생각났기에 그걸 다시 수련해보고 싶어.”

“그거 다행이군. 그럼 나중에 봅시다.”

“그럼…….”

파앗

심수력이 사라지자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방향은 잡았지만,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무위(無爲)란…… 무위전변(無爲轉變)의 근간이다. 무위전변이란 무쌍패에 모인 육대절학의 패도적인 기운을 태극으로 변환시키는 것. 그럼으로써 모든 ‘힘’을 소멸시키는 원리이지만.’

나는 무위의 원리를 생각하면서도 내가 어떤 난관에 부딪혔는지를 알 수 있었다.

‘패도를 태극으로 상쇄하는 것만이 무위가 아니다. 무위는 본디 더욱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단지 장삼봉 진인이 그런 식으로 응용을 했을 뿐 무위가 무쌍패를 위해 탄생한 게 아니었다. 무위를 응용한 결과가 무쌍패인 것이다. 나는 어째서인지 그 차이를 무척 잘 알 수 있었고, 그것은 여태껏 무쌍패를 계속 써 왔던 숙련자로서의 감 덕분 이었다.

내가 무위에 단서가 있다고 생각한 이유.

그것은 내가 허투루 소모하면서 낭비했던 육합검법의 자유로운 개진 동안에 ‘자유(自由)’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상념도 없이 무생각(無生覺)과 무의미(無意味)로 육합검법을 휘두른 결과가 쓰레기라는 건 실험을 하면서 증명했다. 그렇다면 무생각과 무의미는 자유라고 할 수 있는가?

‘크게 본다면 무생각과 무의미 또한 자유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행했다고 생각했어도 사실 그 무의미한 검초(劍招)는 결국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순간 검을 빠르게 발검(拔劍)하여 무념(無念)으로 일 초식을 뻗어냈다.

촤좡!

파릇한 검강이 공기를 떨리게 하면서 무시무시한 쾌검이 허공에 잔영을 그린다. 뇌신검무를 극성으로 터득한 지금의 나는 아무 생각 없이도 천하일절의 쾌검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무념의 일 초식조차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과거 무량단에 대해서 아수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무 단순해. 어찌나 단순한지, 내가 그냥 전뇌자의 기록만 보고 눈어림으로 무량단을 익혔을 뿐인데 네가 쓰는 무량단과 하나도 다르지 않잖은가.]

[그냥 최선을 다한 일참(一斬). 물론 잡스러운 절기보다는 훨씬 강력하지. 그러나 현묘함은 극히 떨어지며, 무엇보다도 아무 생각 없는 무념(無念)이니만큼 네 무량단은 그때그때 성격이 달라진다. 위력이 불안정하니 검로도 단순해질 수밖에 없고 결국 정면승부만 피하면 무량단을 무력화할 방법은 여러 가지 생겨버린다.]

그때는 그냥 아수라가 했던 말을 머리로 이해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아수라가 했던 말의 진짜 의미를 알 수가 있었다.

“무념(無念)이지만 진짜 무념이 아니라는 말이었어.”

아수라가 그때 직접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무념(無念)을 이루지도 못했는데 이루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말이었으리라.

그걸 마음이라고 불러야 할까?

마음이라고 부르기에도 무척 사소한, 내 무의식의 아주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예측 불가능한 하나의 지점(志点). 아수라는 사실 그 사소하기 그지없는 지점마저도 읽어낼 수 있었기에 무량단을 미리 읽어서 내 무량단을 봉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미래 예지나 다름없어 보였지만 이것은 아주 사소한 일부를 보고 전체를 추측하는 것이므로 결이 다른 능력이었다.

보통은 이런 것까지 고민할 건덕지가 없다. 이 사소한 무의식의 심결마저 읽어낼 수 있는 상대를 살면서 만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최상위 마왕의 모든 힘을 버리고 스스로 제약을 걸어 수천 년 내내 검을 수련해온 미친 광인(狂人)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아수라가 무량단의 약점을 지적한 이유는 바로 이거다.

전생자인 나는 언젠가 살면서 아수라 급의 고수를 만나게 될 것이고,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무림인은, 아니 백련교주조차도 사실 그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으나 나만큼은 걱정해야 하는 미래였다. 이걸 넘어서지 못하면 신역에도 도달할 수 없다는 아수라의 걱정 또한 있었으리라.

그리고 아수라는 그때 바로 내게 정답을 보여준 바가 있었다.

[무의식의 선호도조차 균일(均一)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해.]

[열 개의 검류, 혹은 그 이상의 만상(萬像)을 내면에서 편차 없이 배분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아수라의 이 말을 검류의 균일만 생각해서 단순하게 가장 무류(無流)에 가까운 기초검법인 육합검법을 수련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몇 년이나 되는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

“으윽.”

나는 그 순간 얼굴이 확 붉어졌고 창피함 때문에 그만 발을 크게 구르고 말았다.

꾸웅!!!

콰과과광…….

무의식중에 내리친 진각이 연무장을 박살 내고 지진을 일으켰지만 나는 상관치 않았다. 나는 쥐구멍이 있으면 기어들어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정말 바본가?!”

잘못 해석했던 거다.

아수라가 말했던 균일이란 말 그대로 무의식을 통제하는 경지까지 도달하는 것!

그것을 단순히 검류의 균일에만 집중해서 삼류검법인 육합검법을 내 맘대로 휘적거리던 행태는 수련도 뭣도 아니고 그냥 놀이였을 뿐이리라!

도리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진짜 아수라가 말했던 균일이란 바로 장삼봉 진인이 말했던 무위(無爲)였다.

‘…… 무위 또한 공(空)이다.’

아수라가 주장한 검류의 균일.

장삼봉 진인이 창안한 무쌍패와 무위전변.

이 모든 개념은 사실 공(空)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나는 역근세수경의 세계에서 공을 연마하면서 이게 어떤 원리인지 깨달았기에, 이 모든 무술의 유파가 사실 하나의 지점을 지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일 역근세수경의 세계를 찾아보지 않았다면 이 단서마저 깨달을 리가 없었으리라.

무위가 공인 이유는 간단하다.

‘무위를 이용하여 무위전변을 펼쳐 태극으로 무쌍패를 펼치는 것…… 육대절학의 패도를 공(空)으로 만든다고 봐도 똑같은 얘기다.’

중간에 태극(太極)이라고 하는 장삼봉 진인만의 깨달음이 담겨있긴 하지만 ‘힘’을 무(無)의 영역으로 되돌린다는 점에서는 무위전변 또한 공의 이치에서 출발하는 무학이 되는 것이다.

나는 과거 장삼봉 진인이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쉽게 말하면 그대에게 무쌍패의 완성된 형태를 각인시켰소. 무의식으로 침잠하기 전, 의식이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표상(表象)이 있어야 심마에 들지 않고 안전하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었소.]

장삼봉 진인이 내게 무쌍패의 완성된 형태를 각인시켰다는 건, 그 형태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거나 망집에 사로잡히지 말고 모두 버려버리라는 뜻이었다. 의식이 바라보는 표상 하나만 집중한 채 나머지 모든 것을 공(空)으로 만들라는 뜻이었으리라.

수련의 과정도 공이며, 수련의 결과도 공이다.

장삼봉 진인은 의도했던 건지 아닌 건지는 모르지만 무쌍패를 통해서 가장 근본적인 무의 이치에 홀로 도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위전변을 깨달았으되 깨닫지 못했다. 왜냐하면 심기체(心技體)에서 기체(技體)는 강제로 공(空)에 도달했으나 진정으로 심(心)이 무위(無爲)를 체현하지 못한다. 내가 종종 무쌍패를 펼치면서 어리숙했던 이유는 바로 그거겠지.’

가끔씩 마음이 올곧게 안정감을 가지는 경우에는 무쌍패가 잘 펼쳐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장삼봉이 펼치는 것과 달리 형편없이 파훼 당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심기체가 하나로 어우러져야 했는데 나는 무쌍패를 실패하면 죽는다는 공포나 망집을 완전히는 떨칠 수가 없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장삼봉이 말한 대로 망아를 완전히 넘어서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 내게는 무위를 다시 진정으로 깨닫는 것이야말로 한 걸음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있다.

완전한 무위(無爲)를 깨달아 검류(劍流)를 마치 무쌍패처럼 공(空)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아수라가 내게 검류의 균일을 수련시켜서 도달하게끔 하려 했던 경지가 아니겠는가!

그걸 이룰 수 있다면 틀림없이 내 무의식조차 통제하여 초인(超人)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테니까!

“…….”

나는 깨달음을 정리하면서 동시에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무위를 검(劍)에 실을 수 있는 걸까?’

무쌍패를 펼칠 때는 육대절학의 패도를 전신으로 느끼고 그것을 태극을 이용해서 융화시키는 감각이 내게 확실히 자리 잡아 있었다. 워낙 무쌍패가 완성된 절학이라서 그것 이외의 응용법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내가 어설프게 검을 펼칠 때 무위를 체현한답시고 집중하다 보면 그저 검을 써서 무쌍패를 펼치는 것에 불과하게 되리라.

모든 패력을 융화시키며 무의식조차 균일하게 만드는 망아(忘我)의 일경(一境)!

그 망아를 넘어서면 아수라가 말했던 경지에 도달할 게 분명하리라.

거기에 도달하려면 무쌍패와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할 텐데 그게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를 않았다.

“으으음…….”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골몰했다. 이런 건 아무리 천재라도 답을 알려줄 수 없을 테니 나 스스로 고민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던 중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일단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부터 볼까. 천재가 아니니까 갑자기 뭐가 떠오를 리가 없지.”

나는 우선 아수라가 말했던 만상의 균일을 내 검으로 이루고 있는지를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파바밧

나는 구슬 꿰듯이 뇌신류의 모든 검법을 차례대로 전개하며 검류를 자유자재로 발생시켜서 실었다. 연마한 지 오래되어서일까, 이제 처음 검류를 연습할 때와는 달리 어색한 부분도 많이 줄어들었고 꼬이는 부분은 존재치 않았다. 그러나 면면부절(綿綿不絶)이라 불릴 정도로 능숙하진 않았기에, 나는 모든 검법을 펼친 후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이지 육합검법을 수련하며 허송세월을 보냈군.”

사실 진소청이 란나찰을 수련하는 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기본공을 연마하여 최강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역시 진소청이 아니므로 기본공만으로 최강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럼 간만에 란나찰이나 해볼까.’

나는 어차피 시간도 남아돌았기에 검을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창 한 자루를 뽑아서 란나찰을 시전했다.

후우웅

무척 매끄럽고 부드럽다. 나는 흥이 난 김에 내가 알고 있는 뇌신류 창술을 하나하나 다 펼쳐보기로 했다. 나는 창술에 있어서도 달인에 가까운 경지였기에 그다지 펼쳐내는 데 무리는 없었다.

파바바밧

그리고 창술을 펼쳐내는 도중에 문득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창술의 육합(六合)을 하나로 뭉쳐서 담는 것. 일극에서 육직에 이르는 과정을 하나로 응축시키는 찌르기의 극한(極限)이란 게 있다고 했던가…….’

진소청이 말했던 뇌신류 창술의 극한.

아직 미완성이었지만 완성되면 뇌신검무의 극한조차 넘어설 거라는 그 경지가 머릿속에 생각난 것이다.

황제 공손헌원과 싸울 때도 임시로 육천합일창(六天合一槍)이라고 내 맘대로 이름을 붙였던 기술이 머릿속에 마구 어른거린다. 사실 진짜 진소청이 그 경지에 도달하면 어떤 모습일지 직접 본 적도 없는데 맘대로 초식을 지어낸 게 조금 부끄럽다.

쐐쇄쇅

‘어디 한번.’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천뢰무극창의 초식을 경쾌하게 펼치며 창과 한 몸이 된 것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일극(一戟), 이진(二進), 삼란(三欄), 사전(四纏), 오나(五拏), 육직(六直)의 원리를 차례차례 펼쳐보았다.

사실 이건 말이 어렵지 일극은 첫 초식에 찌르고 이진은 그다음 초식에 보법(步法)으로 거리를 제압하며 삼란이란 그냥 3초식에 란을 떨친다는 말일 뿐이었다.

‘4초식에 창극을 돌리고 5초식에 감아치고 6초식에 찌른다…… 늘 실전에서 하던 거지.’

실용적 창술에서 가장 중시하는 ‘이득(利)’을 보는데 특화된 창예(槍藝)였으므로 도가무공에 흔히 보이는 겉멋이나 도법정신은 군더더기조차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진(二進)에 들어가는 순간 기묘한 황홀경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

마치 내 모습이 6개로 분열된 것 같다.

어둠 속에서 내 모습이 마치 6분신이 된 것처럼 분열되어 있는데 그 각각은 일극에서 육직까지의 초식 중 한 가지씩을 시전하고 있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 실제로 그럴 리는 없음에도 의념의 세계에서 내가 마치 동일한 시공간에서 6개의 초식을 동시에 시전하는 듯한 착각이 든 것이다.

쐐액

그리고 6명의 ‘나’ 자신이 동시에 창을 앞으로 찌르는 순간, 그 창극이 향하는 건 단 하나의 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점에 마치 홀린 듯이 전력을 다해 창을 찔렀고, 그 순간 6개의 창극이 모인 점이 마치 터질 듯이 태양처럼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끼이이이 -

마치 문의 경첩이 고장 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일점에 응축된 힘이 묘한 연기를 흘리는 것 같다. 나는 그 기운이 사그라드나 싶었지만, 다음 순간 나는 내 창이 폭발하면서 내 몸 또한 커다란 충격 때문에 훨훨 날아가는 걸 알 수 있었다.

……!!

빛의 힘에 휩싸여 나는 전신의 살거죽이 뜯겨나가는 걸 느꼈고, 호신강기로 재빨리 막았으나 호신강기는 순식간에 걸레가 되어버렸다. 나는 신력으로 연명할까 싶다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찰나의 망설임이 죽음을 불러왔다.

***

“…….”

“전뇌자는 아직 오지 않았소.”

“헉, 허억, 헉…….”

나는 전신에서 비 오듯 땀을 흘린 채 메피스토펠레스와 마주 앉아 있었다.

나는 탁자에 머리를 박으며 중얼거렸다.

“…… 반대였어…….”

“뭐가 반대였다는 말씀이신지.”

“…….”

“별말씀 없으시다면 부활시켜 드리겠습니다.”

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손짓과 함께 서서히 내 몸이 부활되는 걸 느끼며 생각했다.

‘반대야.’

이제야 알 것 같다.

뇌신류 창술의 끝은…… 무쌍패와 대극(對極)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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