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493화 (1,392/1,615)

전생검신 80권 1화

심수력은 호월이 던진 힘에 날려가면서 생각했다.

‘스승님께 가세해야 하는가?!’

한눈에 봐도 적의 전력은 비범해 보였다. 스승이라면 천하무림이 다 달려들어도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단의 일족이라는 놈들은 한눈에 봐도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스승이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부상을 입힐만큼 예리한 어금니를 갖고 있는 적들을 상대로 걱정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나 심수력은 한때 무림의 최정점에 도달했던 노련한 무림인이기도 했기에 금방 냉정한 판단을 했다.

‘내가 끼어들어도 스승에게 방해만 될 뿐이다! 스승님은 위급할 경우 평소 우리에게 말하던 ‘그 힘’을 꺼내서 쓰실 건데 내가 근처에 있으면 쓰기 힘들겠지.’

그는 순식간에 판단을 마치고는 호월의 쌍장에서 뿜어져 나온 장력이 만들어낸 무저갱과 같은 지하로 쭉 자유낙하하는 동안 중얼거렸다.

“호월. 당신의 제자가 되어 힘을 키운 후 다시 도전하려 했건만 그 생각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겠구려.”

심수력은 직감했다.

오늘 이곳은 자신이 강호행을 하며 겪어왔던 그 어떤 장소보다도 사지(死地)일 것이라고.

타앗

수백 장을 낙하해서 내려왔지만 심수력은 경공술로 마치 깃털이 내려앉듯 소리 없이 착지했다. 그리고 착지한 장소에 다른 세 명이 기다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심수력이 의아해했다.

“왜 전진하지 않고 있나?”

“다 이유가 있다 병신아.”

“이 개새끼가.”

황하신룡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고 심수력이 그런 황하신룡을 노려보자 마령천녀 임소영이 상황을 말했다.

“목표물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당신을 기다렸다가 같이 머리를 맞대고 출발하려 했습니다.”

“끄응, 그것도 그렇군. 내려오긴 했지만 뭘 부숴야 하는지 목표도 확실하지 않으니…….”

그때 자신의 도를 늘어뜨리고 있던 도성 강유찬이 말했다.

“뭔가 진동 같은 게 느껴지지 않나? 심장의 고동소리 같은 게…….”

“…….”

도성 강유찬의 말에 나머지 셋은 일제히 절대지경의 감각으로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도성의 말대로 은근한 진동과 함께 지하에서 존재감이 올라오는 걸 느끼고는 탄성을 터뜨렸다.

“그렇군! 스승께서 말씀하신 건 저건가.”

“강유찬, 자네는 어떻게 이 미미한 기세를 파악했나?”

“아까 전투에서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군. 내가 그 철강시들을 제일 많이 때려 부쉈으니까.”

그렇게 말한 도성 강유찬은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 같은 절대지경 조차도 이런 심처까지 내려와야 느낄 수 있는 기운을 지표면에서 이미 감지했던 스승님은 정말 괴물인 것 같네.”

“후, 다들 그걸 아니까 제자가 된 게 아닌가? 크크.”

“그럼 가보세나.”

타다닷

그들은 다 같이 힘을 모아 더욱 지하로 향했다. 지하로 향하는 길에 수많은 기계장치와 함정, 그리고 방어 시설이 있었지만, 그들은 절대지경의 의념을 이용한 기술로 그때마다 돌파할 수 있었다. 약 이십여 층에 이르는 견고한 방어시설을 뚫는 동안 심수력은 내심 생각했다.

‘…… 4명 다 오지 않고 한두 명만 왔다면 여기서 죽었을 수도 있겠구나. 무슨 이런 어마어마한 함정이 다 있단 말인가?’

4명의 절대지경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지옥 같은 함정! 웬만한 호신강기는 먹히지도 않고 공간을 통째로 왜곡하거나 혹은 생전 처음 보는 독무(毒霧)가 뿜어져 나오기도 한 것이다. 물론 마교 출신인 마령천녀 임소영이 그때마다 독에 대처하고 인간을 뛰어넘은 민첩성으로 함정을 무용지물로 만들었기에 간신히 돌파할 수가 있었다.

쿠구구구…….

마침내 최심부에 도달하자 그들은 어디론가 향하는 조그마한 문을 발견했다. 그 문을 여기저기에서 살펴본 마령천녀 임소영이 말했다.

“이건 어디론가 내려가는 기계장치군요. 사람이 여기에 들어가서 타고 내려가는 겁니다.”

“뭐? 이렇게 좁은 철통에? 대놓고 함정 같은데…….”

“함정이 아니란 데 걸겠어요. 진짜 함정이라면 이런 식으로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숨겨두지 않습니다.”

“…… 마교 최고의 독술사이자 기관진식의 전문가인 자네 말만 믿겠네.”

그 말에 마령천녀 임소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마교는 백련교의 교주인 호월에게 멸망 당했습니다. 그리고 마교가 아니라 배화교의 중원지파일 뿐이라고 몇 번이나 얘기한 것 같습니다만.”

“아, 그렇군. 자네는 그 마교의 인신공양에 염증이 나서 내부에서 호응해 마교를 멸망시키는데 협력했고 말이야.”

“잔말 말고 일단 가요. 우린 시간이 없으니까.”

구구궁…….

기계장치를 타고 더욱 지하로 내려가서 도착한 곳은 전방에 뜨거운 용암이 넘실거리는 의문의 공동이었다. 용암을 본 심수력은 당황해서 말했다.

“이게 뭐지? 역시 함정 아닌가?”

“…… 아니. 저 너머에서 존재감이 느껴진다.”

“미친…… 용암을 뚫고 가야 한다는 말이냐?”

“…….”

심수력 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 명도 아연실색했다. 설마 이 정도로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는 비경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때였다.

“자네들은 그럴 필요 없네.”

의문의 낭랑한 목소리가 그들에게 들려왔다. 넷의 시선은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고, 그곳에는 잠시 후 아무것도 없는 대기 중에서 마치 새파란 가루 같은 게 뭉쳐지는 듯하더니 이윽고 인간의 모습이 출현했다.

파앗

‘도술인가?’

심수력은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나타난 자의 외모는 왠지 세속적인 욕심이 그득한 사내였으며 나이는 청년에서 중년 사이로 보였다. 그러나 머리카락이 약간 희끗한 것으로 보아 보이는 대로의 나이는 아닐 것 같았기에 심수력은 저자가 반로환동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전신에 새하얗고 깔끔한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이 시대에서는 전혀 본 적이 없는 특이한 복장이었다.

‘눈에 저건 뭐야?’

또한 눈 앞에 유리알 같은 것을 걸치고 있었는데 심수력은 저게 뭣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이 자리에서 새로운 출현한 자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기에 잠시 경계 어린 분위기가 계속되었고 도성 강유찬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가서 괴인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누구요? 왜 용암을 뚫고 나아갈 필요가 없다는 거지?”

그러자 괴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 치우연구소(蚩尤硏究所)의 소장인 황우(黃牛)라고 하네. 세상에 이름 높은 백련교의 고수들을 만나보게 되어 반갑네, 하하하.”

“…….”

도성 강유찬은 어리둥절해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황하신룡과 심수력도 마찬가지였는데 오직 마령천녀 임소영, 그녀만이 알아차린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외쳤다.

“…… 스승님의 사제!! 달마의 제자 중 한 명이 바로 당신인가요?!”

그러자 황우는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설마 호월이 내 얘기까지 해줬던가? 하긴 마령천녀 임소영 너는 사실 숨겨진 배화교의 정통후계자이니 꽤 많은 걸 알고 있겠군.”

“……!!”

“어찌 되었든 상관없어. 이 원대한 계획을 너희 같은 무술인 나부랭이한테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황우가 스윽 하고 자신의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용암을 뚫을 필요가 없는 이유? 그거야 간단하지. 너흰 여기서 다 죽…….”

황우의 선공이 시작될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얌전히 눈앞의 적이 선공하기를 기다리기에는 그들은 너무 숙련된 강호인이었기 때문이다.

황하십팔권(黃河十八拳)

절초(絶招)

황하승룡(黃河昇龍)

금강권(金鋼拳)

절초(絶招)

칠성대연격(七星大連擊)!

중원강호의 수계무림(水界武林)을 제패했던 쌍룡(雙龍)이 동시에 의념천주를 발동하며 내뻗은 최강의 절초!

소리조차 몇 배나 넘어선 그 속도로 들이꽂은 절세무공의 강격이 꽂히자 황우의 전신은 너덜너덜하게 터져나갔다.

꾸콰콰쾅

육편이 후두둑 하고 떨어지자 황하신룡이 착지하며 외쳤다.

“개잡놈아! 네 놈 아가리 터는 거 들으려고 예까지 온게 아니다!”

도성 강유찬이 껄껄 웃었다.

“허허. 거 맞는 말이군.”

도성절기(刀聖絶技)

오천주(五千註)

피피핑 -

후두둑

다음 순간 허공에 무려 오천 번이나 되는 참격의 선이 그어지더니 콰광 하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철덩어리들이 떨어졌다. 은신상태로 공격하려던 살기를 감지하고는 모조리 베어 버린 것이다. 도성 강유찬은 자신의 도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이런 사술을 부리는 놈은 단숨에 해치우는 게 제일이지.”

그들은 고대의 강호에 살고 있었고 고대에는 무림인과 술법사, 주술사가 따로 구분되지 않고 다 같이 힘을 경쟁하며 살아갔다. 그렇기에 술법사를 상대할 때는 선수를 쳐서 제압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걸 네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마령천녀 임소영만은 황우의 육편을 보면서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아직 마무리를 못 지었어요. 놈은 죽지 않았습니다.”

“설마 말로만 듣던 부활의 술법을 쓰는 놈인가?”

“아니에요. 부활의 술법이라고 해봤자 혼과 백을 다루는 우악스러운 방법으로 명계에만 보내지 않을 뿐이죠. 그나마도 배화교의 교주만 쓸 수 있는 최강의 술수이고 저렇게 육편이 되면 절대 못 살리는 게 맞지만…….”

마령천녀 임소영이 어딘가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뭔가 이상해요. 놈의 혼백이 이상한 곳에 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술법사가 아닌 것 같고 다른 계통의 달인 같습니다.”

“…….”

심수력은 그 말을 듣고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든 아니든 지금 상황에서 의미 있나? 또 나타나면 또 죽일 수밖에.”

“그것도 그렇군요.”

“용암을 넘어갈 방법이 있겠나? 저 황우는 술법사가 아니라도 자네는 술법사이니 방법이 있겠지.”

그들은 호신강기를 쓰면 용암을 잠시동안 견딜 수 있었지만 호신강기란 내력소모가 막대해서 오래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절대지경이라도 용암을 건너는 건 위험천만한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셋은 마령천녀 임소영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녀는 과거 마교 최고의 술법사로도 명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물론이죠.”

마령천녀 임소영은 주문을 외운 후 품에서 꺼낸 부적을 네 사람의 등에 하나씩 붙였다. 그러고는 말했다.

“내화(耐火)의 주법이 걸린 부적입니다. 이게 있으면 용암의 열기에도 무사할 수 있죠. 하지만 효력은 반 각밖에 되지 않아요.”

“반 각 안에 목표를 찾아내서 부숴야 하는 건가?”

“가죠.”

투웅!

그들은 부적의 힘을 이용해 용암을 등평도수의 경공으로 건너며 끝이 안 보이는 용암을 넘어서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끝에 부적이 효력이 다할 때쯤 간신히 [목표]를 찾아낼 수 있었다.

타닷

“후우, 아슬아슬했어.”

“도대체 저건 뭐지?”

두쿵

두쿵

유리로 된 벽 안에 갇혀 있는 의문의 거대한 무언가. 그것은 가까이 오자 심상치 않은 고동을 뿜어내고 있었고 그 고동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강렬하게 그들의 기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걸 본 심수력이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심장…… 심장이야. 하지만 어떻게 저렇게 거대한 심장이?”

도대체 얼마나 큰 생물이어야 저렇게 거대한 심장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근원적인 의문이 들었지만, 그들은 동시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저게 ‘목표’라고.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심수력은 옆에 있던 세 사람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셋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진신내공을 모조리 끌어올려서 무공의 위력을 최정점까지 달구었다.

반드시 부숴야만 한다!!

“으아아아!!!”

그리고 4인의 절대고수는 동시에 달려들어서 자신들의 최고 절기를 거대한 심장에 쏟아부었다!

파앙!

“컥!!”

“크윽?!”

“아악.”

“음!!”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심장을 가리고 있는 유리벽, 그 바로 앞에 투명한 무형의 벽 같은 게 생겨나더니 그들의 공격을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힘을 한순간에 흡수당한 그들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고는 뒤로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바닥에 튕겨 나간 심수력은 그 찰나에 생각했다.

‘이, 이 느낌은…….’

지상에서 마도사축을 때렸을 때 힘이 흡수되던 그 느낌과 같다!!

네 사람이 쓰러져 있을 때 장내에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하하하…… 절대지경이란 거 대단하군. 설마 양자보호막을 이렇게나 뚫을 수 있다니…… 연구소에서 지난 수백 년 동안 모았던 동력을 꽤 써 버렸잖나?]

위잉

동시에 쓰러져 있는 네 사람의 앞에 희끄무레한 환영처럼 황우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건 딱히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진짜 황우가 아닌 게 분명했기에 넷은 비틀거리며 일어나면서 황우를 노려보기만 했다. 황우는 자신의 흰옷을 툭툭 터는 시늉을 하더니 말했다.

[하은천한테 나중에 한 소리 듣겠어. 뭐, 심장이 깨지면 제 놈도 곤란할 테니 감히 나한테 한마디 할 수는 있을까? 큭큭.]

킥킥 웃는 황우를 본 마령천녀 임소영이 이를 악물고는 말했다.

“우리를 기만하는군요. 다시 공격하면 보호막을 깰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이미 대비를 해놓은 거겠죠.”

[호오. 역시 넷 중에는 가장 머리가 좋군. 무림인 나부랭이들이 등신처럼 달려드는 걸 구경하고 싶었는데 말이지…….]

“…….”

[내가 있는 한 그 누구도 심장은 건드릴 수 없지. 아무도 없는 상태라면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양자보호막을 발동하면 [옛 지배자]조차 심장을 깰 수 없는 것이다.]

그 말에서 네 사람은 동시에 실패를 예감했다. 그러나 마령천녀 임소영은 끝까지 굴하지 않고 정보를 얻어내려 했다.

“도대체 저 심장은 뭐죠? 당신들은 뭘 꾸미고 있는 겁니까?”

[뭐야, 아까 말해줬잖아. 치우연구소라고.]

“…… 설마…….”

[맞아. 치우의 심장이지.]

황우의 환영은 심장이 담겨 있는 유리막을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인류에게 역사조차 없었던 시절에 저 황제 공손헌원을 순수하게 힘으로 압도할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의 심장이다. 이게 얼마나 거대한 가치를 갖고 있는지 너희 따위는 짐작도 할 수 없을 거다.]

“…….”

[자, 원한은 없지만 이만 사라져 줘야겠다…… 사형의 제자들아.]

번쩍!!

갑자기 휘광(輝光)이 일어났다. 그리고 휘광이 일어난 직후 심수력은 자기 옆에 있던 황하신룡이 흔적도 없이 소멸하고 그 자리에는 시꺼먼 재만 남아 버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순식간에 절대지경의 고수가 살해당했다는 경악을 감추지 못하던 심수력의 귀에 황우의 말이 들려왔다.

[너희 절대지경은 빛과 같은 속도의 공격도 몇 번쯤은 피하거나 막을 수 있다지? 그렇다면 위대한 과학의 신이 발견해낸 ‘빛보다 더 빠른’ 공격으로 한 방에 없애 버리는 게 낫지 않겠나.]

“씨발!!”

[이게 바로 초과학이란다.]

“뒈져라!!”

심수력은 공포보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서 황우의 환영을 쳤지만 말 그대로 환영이었는지 그저 허공을 허우적댈 뿐이었다.

번쩍!!

다음으로는 도성 강유찬이 소멸되었다. 도성 강유찬의 소멸을 손가락으로 지시한 듯한 황우의 환영이 다시 나타나며 흥미로워했다.

[허어, 저 친구는 진짜 빛을 벨려고 했나보군. 그런데 이걸 어쩌나, 빛보다 더 빠르다고 했잖나.]

“……!!”

심수력은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마령천녀 임소영이 갑자기 그의 뒤로 오더니 난데없이 콱하고 그의 심장을 수도로 꿰뚫었다.

“커억!!”

[하하하, 서로 죽이는 건가?]

황우가 껄껄 웃었지만, 비명을 지르던 심수력의 귓전에 임소영의 말이 들려왔다.

[잘 들어요. 당신만은 살아야 해요. 그렇기에 당신을 배신한 척할 거고 나도 소멸당하겠지만, 적어도 당신만큼은 살 수 있도록 하는 비술을 쓸 거예요.]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내 목숨을 대가로 전혼탈겁(轉魂奪劫)을 시도하겠어요…… 대법의 성취가 낮으니 성공할 가능성은 너무 낮지만…… 당신만은 반드시 살아야!!]

풀썩

심수력이 그 자리에서 쓰러진 순간이었다. 그는 정신이 빠르게 아득해짐과 동시에 자신의 혼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분리되어 버리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

“…… 어?”

피웅덩이 속에서 심수력은 눈을 떴다. 그는 눈을 껌벅거리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주변에는 온통 피와 죽음으로 가득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시체뿐이다. 그리고 수많은 강철병기들이 모조리 고철이 되어 박살 나 있었고, 처참하게 뜯겨나간 사지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이렇게 난폭한 학살의 현장은 강호행을 오래 했던 심수력조차 본 적이 없었던 일이었다.

여기는 어디지?

“끄으윽.”

심수력은 고통을 참고 일어났다. 이제 보니 자신의 몸은 큰 치명상을 입고 있지만 그나마 완전히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배에 구멍이 뚫리고 팔다리도 좀 뜯겨나갔지만 어쨌든 죽진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난데없이 이렇게 부상을 입은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춤거리며 시체의 산 사이를 걷고 있을 때였다.

“스, 스승님…….”

심수력은 시체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자신의 스승, 호월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호월의 몸 또한 정상이 아니었고 상당히 큰 부상을 입은 듯 몸이 피투성이였다.

호월의 옆에는 아까 보았던 하은천의 시체가 심장을 꿰뚫린 채 드러누워 있었기에, 심수력은 자신의 스승이 하은천을 해치웠음을 짐작했다.

앉아 있던 호월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희미한 시선으로 심수력을 보았다.

“…… 너는…… 혼이 바뀌었구나.”

“스승님…… 저, 저는 심수력입니다.”

“그래…… 알고 있다…… 임소영이 이혼대법 전혼탈겁을 써서 너를 탈출시켰나 보구나. 막 죽어서 혼이 빠져나간 육체에 임시로 너의 혼을 빙의시킨 거겠지.”

“…….”

“과연 천재 임소영이다…… 그녀가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배교출신으로 무림지존이 되었겠지…… 허나 죽었다니 안타까워…….”

정말 호월 스승은 뭐든 알고 있다.

단숨에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자 심수력은 감동과 동시에 현실인식이 되어 그만 입술을 질끈 깨물고 말았다.

“스승님…… 저희는 전멸했습니다. 스승님의 사제라는 황우라는 자가 빛보다 빠른 공격으로 우리 모두를…….”

“…… 그런가…….”

여상한 말투를 들은 심수력은 순간 뭔가를 깨닫고는 눈을 부릅떴다.

“서, 설마 알고 계셨던 겁니까? 황우가 있을 거라는 걸…….”

“…… 그래…… 그럴 것 같았다…….”

“…….”

심수력이 멍하니 서 있자 호월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아유타, 지금이다.”

번쩍!

“……?!”

심수력은 자신이 전혀 별개의 장소에 와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눈앞에는 여전히 큰 부상을 입은 호월이 있었지만, 그의 부상에는 연꽃이 가려져 있었고 서서히 회복이 되는 게 육안으로 보이고 있었다. 연꽃으로 가득한 아득한 이 장소를 둘러본 심수력은 어리둥절해했다.

“여긴?”

그때 낭랑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사형. 역시 황우는 배신한 거였군요.”

눈을 감은 의문의 여인이 커다란 보리수나무의 아래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여인을 본 호월이 말했다.

“아유타. 내가 살 수 있겠느냐?”

“…….”

아유타라 불린 여인은 한숨을 쉬었다.

“힘들 거예요.”

그제서야 심수력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신녀(神女) 아유타 공주.

황우와 마찬가지로 달마대사의 제자이자 호월의 사제이며 백련교에서 제일가는 술법종사가 그들을 구해준 것이다.

아유타 공주의 말에 호월이 마치 답이 없느냐는 듯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안 되겠나? 나는 여기서 죽을 수 없다.”

“…… 어찌 저라고 안 된다 말하고 싶겠어요.”

신녀 아유타 공주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사형이 사후에 어떤 고난을 치를지 알고 있는 건 저뿐이에요. 그런 사형이 죽게 내버려 두고싶지 않아요. 하지만…….”

“…….”

“그들과 싸우며 입은 육체적 외상보다 더욱 치명적인 건 그들을 이겨내기 위해 사형이 써 버린 그 힘이에요. 알고 있지 않습니까.”

퍼억!!

“스, 스승님!!”

다음 순간 호월의 양어깨에서 불규칙적이고 사나운 기세로 거대한 묵린(墨鱗)이 돋아났다. 그 묵린은 마치 삐죽삐죽 제멋대로 자란 나뭇가지 마냥 흉물스럽게 호월의 뼈와 살을 뜯어 버렸고 호월은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지 주춤거렸다. 심수력은 그 끔찍한 기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호월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허억, 허억…… 하은천이 내게 죽으면서 반격했던 그 한 수…… 그게…… 내 안의 조화를 없애고 있…….”

“그자는 사형이 어떤 힘을 얻었는지는 몰랐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신적인 존재와 싸워 본 경험이 무척 많았던 것 같군요.”

“역시…….”

“그건 틀림없이 신살(神殺)을 위해 만들어진 암기였습니다. 사형이 스스로 적출했지만, 그 병기가 아니라도 사형은 광룡(狂龍)의 힘을 너무 많이 썼어요.”

“…….”

그렇다면 지금 호월의 몸에 돋아나 있는 저 흉물스러운 묵린이 바로 광룡의 힘이 폭주하는 거란 말인가?

심수력은 빠르게 상황을 깨닫고는 아유타 공주에게 말했다.

“신녀!! 스승님이 살 수 없다면 어찌 여기로 옮겨온 것이오? 의미 없이 대화를 몇 마디 더 하기 위해서요?!!”

“…….”

“그게 아니라면 살려내시오!! 이대로 돌아가실 분이 아니란 말이오!!”

그러자 신녀 아유타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살려낼 방법은 있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으로 확률이 적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무엇이라 하더라도 내 목숨을 써서 돕겠소!!”

“어차피 써야 합니다. 당신과 동료, 그리고 내 목숨까지…….”

“뭣이…….”

이어진 신녀 아유타 공주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뜨는 순간, 심수력은 세계가 크게 뒤흔들리는 걸 알아챘다.

“내 남은 생명을 소모하여 [작은 굴레]에 간섭하겠습니다.”

사라라락

다음 순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연화가 크게 휘날렸다. 신녀 아유타 공주의 몸이 허공에 뜬 채 후광을 발휘하며 무언가 거대한 기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연화가 휘날리는 순간 심수력은 자신의 곁에 다른 동료 세 명이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틀림없이 황우에게 당해서 소멸당했던 동료들이었다.

“……!! 너희, 되살아난 거냐!!”

그러자 황하신룡이 무슨 개소리 하냐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냐? 다 같이 치우의 심장에 돌입하는 게 위험하다 생각하고 네가 우리한테 아유타 공주님께 구원을 청하자 하지 않았나? 그래서 막 소환된 참인데.”

“……?!”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지만 동시에 심수력은 자신의 뇌 속에 생소한 기억이 엄청난 속도로 꽂히는 걸 알아차렸다.

파아아앗

“크으으윽?!”

정말이었다. 자신은 어느샌가 그런 기억을 갖고 있었다. 황우에게 전멸당했던 게 아니라 자신이 주도해서 치우의 심장 돌입을 멈추고 신녀에게 구원을 청했던 기억이었다. 하지만 한 적 없었던 일이 어째서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말인가?

심수력이 자기도 모르게 신녀 아유타 공주를 쳐다보자 그녀는 어느새 눈을 다시 감고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작은 굴레]를 바꾸었습니다. 직접 목격했으며 굴레의 주체가 되는 당신은 굴레의 기억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세계의 기억이 전승되었지만요.”

“……!!”

이럴 수가!!

심수력은 아유타의 힘에 놀라서 그만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이, 이건 신의 힘이 아닌가?’

아유타 공주가 평소 신녀로 추앙받고 있으며 백련교 내에서 호월과 함께 존경받는 인물이었지만 그들은 아유타 공주를 제대로 대면한 적이 없었다. 워낙 신비스러운 인물이었고 호월이 일부러 그녀를 타인에게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단한 술법사라고 듣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막강한 힘을 사역할 수 있을 줄이야!!

우드득

그러나 호월은 여전히 어깨에서 흉물스러운 묵린이 돋아나고 있었다. 거의 혼절해 있는 호월을 본 심수력은 당황해서 아유타에게 말했다.

“스승님은 대체 왜 회복되지 않았소?”

“그 상황에서 아무리 변인을 바꿔도 호월이 힘을 꺼내쓰지 않을 도리는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정해진 결과를 정해놓는 방식이 아니면 [작은 굴레]를 돌리는데 더 큰 한계가 정해지기에…….”

“…….”

“제자인 당신들의 의지력에 호월 사형의 생존을 걸겠습니다.”

이어진 아유타 공주의 말에 네 명의 제자들은 일제히 긴장했다.

“지금부터 당신들은 호월 사형의 광룡의 힘을 나누어 받아서 진정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당신들은 죽어도 죽지 못하고 영겁의 세월 동안 고통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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