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491화 (1,390/1,615)

전생검신 79권 19화

퓨퓨퓨퓽!

다음 순간 이퀄라이저 10여 기가 동시에 내게 광선을 발사했다.

‘어디 맞아 볼까?’

어떤 식으로 날아올지 이미 절대지경의 눈썰미로 예측을 했지만 나는 그냥 이퀄라이저의 공격을 맨몸으로 맞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수보리의 주술을 이용해서 육중주법으로 몸을 방어하고 있는 데다가 가네샤의 가호까지 두르고 있었기에 사실상 대라신선을 훨씬 뛰어넘는 방어력을 갖고 있었다. 과연 이퀄라이저라는 과학무기가 이걸 뚫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 것이다.

투콰앙!!

지지지직

“흐음.”

결과는 내가 레이저에 맞자 약간의 충격과 함께 좀 더 뒤로 밀려나는 것이었다. 땅에 발이 끌릴 정도로의 반탄력이 생긴 걸로 보아 무시할 수 있는 파괴력은 아니었다.

‘육중주법 방어막 중에서 2개가 파괴되었군. 상당히 강해.’

수보리의 주술 중 이 육중주법은 그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것으로써 그는 제천대성과 싸울 때도 이 주술을 사용했을 정도였다. 천선(天仙)급 존재라 해도 수보리의 육중주법을 뚫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일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육중주법이 고작해야 저 졸개들의 광선공격에 2개나 파괴된 것이다.

머릿속에서 수보리의 목소리가 울렸다.

[광선의 물리적 파괴력은 대단치 않네. 하지만 저 광선에는 초상능력(超上能力)의 근간을 파훼하는 힘이 깃들어있군.]

“그게 무슨 말이지?’

[이번에는 신력으로 방어막을 전개해서 놈들의 공격을 막아 보게.]

지잉!

나는 수보리의 말대로 이번에는 신력만으로 방어막을 만들어서 육중주법의 외부에 펼쳐보았다. 그리고 재차 광선이 날아오는 순간 깜짝 놀랐다.

콰칭!!

신력으로 만들어진 방어막이 마치 유리잔처럼 깨져 버렸다! 너무 쉽게 부서져서 나는 그 순간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투웅

“……!!”

연이어서 광선이 육중주법을 뚫고 들어오자 나는 다시 몸이 밀려나는 걸 느꼈고 황당해서 말했다.

“어째서?!”

상위 신에 버금갈 정도의 힘을 가진 내 신력으로 만든 방어막은 수보리의 육중주법보다 훨씬 강한 것이다. 그런데 저 광선이 신력의 방어막을 무척 가볍게 깨버리고 도리어 수보리의 육중주법은 뚫지 못하니 이상한 일이었다.

수보리가 알겠다는 듯 말하는 게 들려왔다.

[과연 그렇군.]

“뭔가 짐작 가는 게 있소?”

[저 광선은 혼돈(混沌)에 극상성의 성질을 갖고 있어. 당연히 자네의 신력 방어막이 내 육중주법보다 열 배는 강하지만, 내 육중주법은 혼돈이라기보다는 중립적인 주술체계에 가깝지. 그래서 혼돈 그 자체인 신력으로 만들어진 방어막은 쉽게 깨졌지만, 주술방어막은 쉽게 못 깨는 걸세.]

“…….”

혼돈의 극상성이라!

‘그러고 보니 저 이퀄라이저는 혼돈감염 제어장치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지.’

처음부터 혼돈과 그 소환물에만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기라는 말인가?

위잉 위잉 위잉

그때 땅밑에서 이퀄라이저가 다시 10기 보충되듯이 기계장치와 함께 올라오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내부에 뭔가 시설이 존재하고 거기서 병력이 충원되는 모양이었다. 그걸 본 수보리가 말했다.

[이 밑에 뭔가가 있군. 마도사축 자체보다는 그걸 먼저 탐색해보는 게 낫겠어.]

“좋소. 그럼 당장 저것들을 박살…….”

[저것들은 의지 없는 기계 덩어리에 불과한데 그냥 싸움을 피하는 게 더 좋지 않겠나? 지둔(地遁)을 써 보게.]

“흠!”

하긴 지금 시간을 아껴야 하는 판인데 굳이 싸울 필요는 없겠지!

나는 수보리의 말에 바로 72 둔갑술 중 하나인 지둔술을 시전했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은 마치 허깨비처럼 지상에서 사라졌고 순식간에 땅을 파고들어 갔는데, 땅을 파는 속도가 보통 인간이 달리는 속도보다 10배는 빠른 것 같았다.

쿠르르르!

콰앙

잠시 후 나는 땅바닥이 알 수 없는 철벽에 막혔다는 걸 알아챘고 곧장 철벽을 부수기 위해 주먹을 날렸다.

꾸웅!!

철벽은 내 괴력에 아무렇지도 않게 박살 나서 커다란 구멍이 났지만 나는 그 구멍을 보자 흠칫 놀랐다.

“……?!”

철벽의 구멍 안쪽은 형언할 수 없는 어둠과 함께 총천연색의 빛무리가 마치 별처럼 떠돌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초현실적인 광경이었기에 내가 놀라고 있자 수보리가 말했다.

[놀랄 필요 없네. 이건 차원방어막이야.]

“차원방어막?”

[물질적인 외벽을 위장용으로 세워놓고 실제공간은 다른 차원에 옮겨놓은 걸세. 그래서 이런 구조의 차원방어막은 물리력만으로는 뚫을 수 없게 되어 있어. 눈앞에 보이는 이차원(異次元)또한 일단 물리적으로는 태양계보다 더 거대하니까.]

“흠!”

과연 수보리는 수천 년을 살아온 차원여행자이자 가면이라서인지 박식한 것 같았다. 나는 수보리의 지식에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 것도 있었군…… 이걸 어떻게 뚫어야 하오?”

[이차원을 통째로 날려 버리던가 차원방어막을 투과(透過)하면 되지. 자네의 힘이라면 전자의 방법도 가능하겠지만 여기선 쉽게 가도록 합세.]

번뜩

그 순간 머릿속에 이런 상황에서 제일 쓸 만한 술법 한 개가 번뜩 하고 떠올랐다. 아무래도 수보리가 직접 추천해준 술법인 것 같았다. 나는 그 술법대로 바로 주문을 전개하며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해공법륜(解空法輪)

한 쌍의 륜(輪)이 전방의 시꺼먼 구멍으로 쏘아져 나가더니 잠시 후 빙글빙글 돌면서 그 우주 자체를 지워 버리는 것 같았다. 종래에는 한 쌍의 륜이 대신해서 구멍을 가득 메웠고, 륜 안쪽으로는 멀쩡한 공간이 나타나 있었다.

저벅

“기척을 숨겨야겠군.”

나는 적의 기지 안으로 들어오면서 가능하면 전투를 피하고 싶었기에 추가로 은신술을 쓰기로 했다. 동시에 기척이 옅어지면서 내 몸이 근처 공기에 동화되어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신력을 쓰는 게 아니었기에 들킬 염려도 적었다.

타다닷

나는 기지 안쪽의 복도를 뛰어가며 생각했다.

‘역시 이건 과학기술문명이 만들어낸 시설이야. 그리고 기이할 정도로 안의 공간이 넓군…….’

바깥에서 보았던 걸로는 커봤자 지름이 오십여 장이었을 텐데 지금 이 공간은 최소 그 열 배는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밑으로 더욱 입체적인 공간이 있는 걸로 봐서는 이 자체가 거대한 지하도시나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이 정도로 거대하다면 사람이 수만 명이라도 살 수 있으리라.

나는 기감(氣感)을 확장하며 수상한 게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강력하게 느껴지는 감이 있어서 흠칫하고 멈춰 섰다.

‘…… 이건 뭐지? 무시무시한 느낌이…….’

어마어마한 위압감.

나는 그 위압감 때문에 잠시 전율할 정도였다. 위압감이라고 표현한 것은 기감에 스쳐 지나간 뭔가가 품고 있는 힘이 내 인지능력을 잠시 넘어설 정도였기 때문이다. 절대고수나 상위존재를 만날 때도 쉽게 느끼지 못했을 정도의 위압감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틀림없다.’

저 최하층의 심처에 뭔가가 있고, 그게 바로 이 시설이 품고 있는 가장 중대한 비밀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시설의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층계참을 이용하기도 했고 그냥 지둔술을 이용해서 벽이나 바닥을 투과하기도 했는데, 신기한 점은 이 시설은 마치 인간들이 살고 있는 것처럼 화장실이나 숙소, 오락시설, 특히 pc방 같은 게 더러 보인다는 점이었다.

‘흠. 왠지 대웅제국 때랑 비슷한 느낌…….’

나는 묘한 기시감에 고개를 갸웃하면서 계속해서 심층으로 내려갔는데 무려 50여 층을 내려왔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자 황당함을 느꼈다.

‘뭐가 이렇게 깊어?’

50여 층에 하나하나의 층에 오 리 이상의 면적이 주어져 있다면 엄청난 공간이다! 이 정도면 정말로 지하시설 자체가 국가라고 해도 되겠는데?!

잠깐 중간통로에 쉴만한 공간이 보여서 내가 잠시 은신술을 풀고 앉자 수보리가 말을 걸어왔다.

[백웅. 자네도 느꼈겠지만, 이곳은 원래 사람이 많이 사는 곳 같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최소 일만 명 이상이 살고있는 도시요.”

[아마 이렇게 쉽게 심처까지 잠입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세계에 생명체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세. 반대로 이 공간에 원래 주민들이 존재하는 상태라면 잠입하는 난이도가 지금보다 몇십 배 이상 어렵겠지. 주민들 하나하나의 실력이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이고 말일세.]

“음…… 그럴 것 같군.”

[실내의 거주구에는 그다지 방어시설도 없는 것 같으니 지금부터는 서둘러 내려가지 말고 이곳의 지형을 살펴보고 외우도록 하게.]

“외우라고?”

[원래 세계로 돌아오면 이곳을 다시 뚫어야 할 게 아닌가. 지형을 외우면 도움이 되겠지.]

“흐음!! 그것도 그렇군.”

나는 수보리의 조언에 다시 움직이면서 이번에는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빠르게 주파하지 않고 찬찬히 내부공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잘 살펴보자 이곳에는 무공을 수련하는 장소나 과학무기를 보관하는 장소도 더러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응? 이건…….”

나는 벽의 유리에 보관되어있는 무기를 발견하고는 흠칫했다.

“권총?”

그냥 권총이 아니다. 나는 저 권총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면, 나는 저 권총을 가져가야만 한다.

“…….”

만상지투!

나는 바로 만상지투로 권총을 꺼내서 내 품속에 넣었다. 꼭 확인해봐야만 할 것 같다.

쿠구구구…….

마침내 거주구를 완전히 벗어나자 시뻘건 용암 같은 지대가 나왔고, 그 용암지대의 저편에는 더욱 무간지옥으로 내려가는 듯한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나는 한달음에 뛰어서 용암을 건너 엘리베이터에 탑승했고, 엘리베이터의 둔중한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띠링

한참을 내려와서 최하층에 내려왔다. 나는 좀 더 걸어가다가 눈앞에 시꺼먼 벽이 쳐져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차원방어막이군.]

“뭐? 이런 곳에다가 또…….”

[한두 겹이 아니야. 64겹은 되겠군. 이 정도로 차원방어막을 겹겹이 깔아놓은 건 처음 보네…….]

“뚫을 수 있겠소?”

[한 번에는 못 뚫네. 해공법륜의 술법을 여러 번 전개할 수밖에.]

키이이잉!!

한참 후에 해공법륜으로 다 뚫어가고 있자 갑자기 전방에서 엄청난 속도로 레이저가 날아왔다.

꽈앙!!

나는 육중주법을 돋우어서 막아냈지만, 이번에는 무려 6개나 되는 방어막이 전부 파괴되었고 호신강기까지 써서 간신히 막았기에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수보리 또한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이…… 이럴 수가? 기껏 과학기술로 만든 레이저가 어떻게 내 육중주법을 파괴할 수가…….]

“육중주법에 그렇게 자신이 있소?”

[내가 비취계에서 수백 년 동안 비취의 파장을 흡수하여 만들어낸 최강의 주술일세. 천계의 그 어떤 대라신선도 육중주법보다 강한 방어술은 못 써! 크으으…….]

수보리는 자존심에 상당히 금이 간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반응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수보리는 그 자체로 마왕이나 사도급 존재다. 그런 수보리의 최강방어술을 뚫을 수 있는 레이저라는 건…….’

이곳에 허락받지 않고 온 자는 삼황오제의 사도라 하더라도 불타 죽는다는 소리!

달기나 아수라가 여기에 오더라도 죽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도대체 얼마나 중대한 게 존재하길래 이 정도의 보안으로 유지한다는 것일까?

“어쨌든 다 왔소. 방금 전의 레이저가 마지막 방어막이었던 모양이오.”

그렇게 대꾸하며 앞으로 걸어가던 나는 기감이 소스라칠 정도로 예민해진 걸 느꼈다.

우오오오

우오오오오

“…….”

꿀꺽

제길, 왜 이렇게 긴장되지…….

그러나 내 고수로서의 감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지금 저 앞에 존재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흉험한 존재라는 것을. 어지간한 각오로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씨발…… 죽기밖에 더하겠냐고!!”

쿵!

나는 긴장을 이겨내고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희미한 불빛이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 한참을 가게 되자, 드디어 거대한 유리로 된 구(球)가 눈앞에 보였다.

부그르르…….

마치 배양액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 뽀글거리는 기포 안쪽에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아마 저것이야말로 지금까지 내 기감을 자극하고 여기까지 오게 만든 무언가가 분명했다. 나는 좀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 앞으로 걸어가 보았다.

그리고 크기가 삼 장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유리구 안에 있는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나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 말았다.

“……!!”

저, 저건?!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니 씨발?!”

그러자 수보리가 어리둥절해했다.

[저 거대한 심장이 뭔지 알고 있는 것인가?]

“저, 저게 왜 여깄는 거지? 요동에 신의 무덤에 있어야 할게…….”

[신의 무덤?]

“…….”

나는 멍하니 저것을 쳐다보고는 중얼거렸다.

“저건…… 치우(蚩尤)의 심장(心臟)이오.”

[……!!]

틀림없다.

저건 치우의 심장이다.

요동에 있는 [신의 무덤]에 잠들어있다는 전승, 그리고 그 전승에 따라 검마가 서문혜와 함께 확인하러 가서 알아내었던 그것이다! 나는 그 기억을 전해 받았기에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잘 알고 있었다. 검마와 서문혜가 치우의 심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으며 마왕이 된 무사시와 결전을 벌였던 걸 아는데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곳은 요동이 아니며 신의 무덤도 아니다.

백두산에 존재하는 마도사축의 지하이며 알 수 없는 지하도시의 최심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곳에 ‘또 하나의’ 치우의 심장이 있다는 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치우의 심장이 2개냐고!!

내가 상황을 수보리에게 설명해주자 수보리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 심장이 진짜인지 의심할 여지가 없는가?]

“없소. 당신도 느끼고 있잖소? 저 심장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기운…… 저런 게 가짜일 리가 없소.”

[으음! 확실히…….]

수보리는 침음성을 흘리다가 말했다.

[저것의 진위여부는 일단 둘째치고 내 추측을 말하겠네.]

“말해주시오.”

[혹시 지상에 있는 마도사축의 기둥과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치우의 심장은 서로 연동되어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일세.]

“연동되었다고?”

[그렇네. 마도사축은 본디 제물들을 모아서 강력한 공양의 인과율을 축적하는 물건일세. 그리고 그 힘을 최심처에 있는 치우의 심장으로 보내고 있다면…….]

수보리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지나쳐 온 지하의 거대도시 자체가 치우의 심장을 깨우기 위한 제물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 마도사축을 이용해서 뭔가를 할 셈인 게야.]

“제물이라…….”

[확실한 건 모르겠네. 하지만 우리가 건너온 과정을 보면 이 치우의 심장은 원래대로라면 도시에 살고 있는 그 누구도 함부로 볼 수 없는 존재일 거야. 극소수만이 비밀을 알고 심장을 관리하고 있었겠지.]

“…….”

나는 수보리의 추측을 듣고 신중하게 생각하다가 말했다.

“삼황오제가 저마다 하나씩 맡아서 치우의 육체를 봉인했다고 알고 있소. 그런데 삼황오제가 이 ‘또 하나의 심장’을 감지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겠소?”

[단순히 생각하자면…… 이 시설의 차원봉인이 그만큼 은밀하고 견고하다는 소리겠지. 삼황오제 모두를 속일 만큼.]

“그게 가능한가? 인간의 기술로 어떻게…….”

[인간의 기술이되 인간의 기술이 아닌 거겠지. 과학기술이 특이점을 넘어설 정도라면 가능할지도 모르네.]

“…….”

[아무튼 이제 어찌할 텐가? 저 유리구를 깨고 심장을 가져가겠는가?]

나는 뚫어져라 저 심장을 쳐다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 전에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이제 나와보는 게 어떻소?”

나는 힐끔 뒤를 쳐다보았다.

저벅…….

그리고 그곳에는 장내로 걸어들어오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굉장하군. 나는 방금 전 그 차원방어막을 뚫으려고 사신지혼을 전개하며 몇백 일을 노력했는데 자네는 순식간에 뚫어 버렸단 말인가?”

“심수력. 역시 당신이었구려.”

장내에 나타난 것은 심수력이었다. 심수력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흐흐, 내 기척을 알아챈 것도 대단하군. 나는 계속 풍신지혼을 강화해서 기척을 죽이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내 기척을 알아낸 건가?”

“음…… 그건 나도 모르겠소. 그냥 감이 그랬소.”

정말이었다. 나는 이 최하층에 도착한 순간 ‘뭔가’가 있다는 감이 딱 느껴졌는데 그 감의 원인은 알지 못했다. 단지 그 감에 의존해서 말한 것뿐이었는데, 설마 풍신지혼을 강화한 심수력의 존재조차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니?

“못 본 사이에 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군. 풍신지혼을 감지할 수 있다는 건 육감을 넘어선 칠감(七感)의 영역일세.”

“칭찬 고맙소.”

“그리고 외양도 뭔가 달라진 것 같군. 거기 쓰고 있는 가면은 뭔가?”

“이 가면은 수보리요.”

나는 간략하게 상황설명을 해 주었고 수보리가 잠깐 모습을 드러내자 심수력은 크게 놀란 듯했다.

“뭐지? 사람이 가면이 된 건가?”

“그렇게만 이해해도 되오.”

“거 참 별일을 다 보겠군…….”

나는 약간 경계하는 심수력에게 질문했다.

“헌데 물어볼 게 있소만…….”

“물어보게.”

“심수력. 혹시 당신은 저번 죽음 때 여기에 도착해서 저 치우의 심장을 꺼내 가려고 유리구를 박살 냈던 것이오?”

내 질문에 심수력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걸 세.”

“…… 바로 그 순간 세계가 멸망했겠구려.”

“설마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자네도 덩달아 죽었다면 미안하군.”

“하아…….”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나야 전생하면서 알게 된 지식으로 ‘치우의 심장을 건드리면 세계가 멸망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심수력이 그걸 알 리가 있겠는가? 불상사였다고 밖에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나는 심수력에게 말했다.

“마도사축을 발견한 다음에 이퀄라이저들을 다 때려 부수고 차원방어막도 다 부수고 여기까지 와서 64겹 차폐막까지 수백 일 걸려서 부순 다음에 치우의 심장을 가져가려다가 죽은 거였구려.”

“어……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그리되겠군.”

“당신 혹시 화신류가 아니라 뇌신류 아니오?”

내 말에 심수력의 표정이 험상궂게 변했다.

“욕하지 말게.”

“…….”

한 대 때릴것 같은 표정을 하던 심수력이 잠시 후 온화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아무튼 이번에는 자네의 뒤를 따라온 것뿐이지만 저번에는 꽤 고생을 했어. 그래도 이런 신기한 걸 발견했으니 나름대로 소득이 아닌가?”

“소득은 맞소. 설마 또 하나의 치우의 심장이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이제 어쩌겠는가? 심장을 가져갈 방법이 혹시 있겠는가.”

“……? 심장을 왜 가져가오?”

원래라면 동료들한테 연구하게 하려고 심장을 가져갔겠지만 지금 내게는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그저 세계가 멸망하는 이유를 밝혀내고자 여기 온 것뿐이고 실제 목적은 수련을 하는 것이기에 나는 이제 여기서 볼 일이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저 위험한 물건에 괜히 손을 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자 심수력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먹어야지!!”

“……?!”

“생각해보게! 치우의 심장이라는 건 이제 알았지만, 저 엄청난 기운을 가진 걸 먹으면 얼마나 세지겠는가!!”

나는 그만 당황해서 입을 쩍 벌리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러니까 저걸 영약으로 생각하고 먹으려고 했던 것이오?”

“그래! 못 먹을 이유가 뭐가 있지?”

“…… 그게…… 보통은 저렇게 거대한 심장을 먹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잖소?”

“먹을 수 있네! 강해질 수 있다면 뭐든지.”

“…… “

세계수도 달여먹으려 하더니만 이 인간 진짜 미친거 아니야?!

심수력의 말에 나는 관자놀이를 짚다가 말했다.

“개소리 작작하고 이제 나갑시다. 여기서 얻은 건 충분히 많으니 더 있을 이유가 없소.”

파앗

나는 심수력과 함께 다시 왔던 길을 통해서 지하도시를 지나쳐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올라와서는 이퀄라이저들을 대충 다 때려부수고는 말했다.

“심수력. 당신은 여기 말고도 다른 3방위의 마도사축을 모두 발견했소?”

“아니. 내가 발견한 건 여기뿐일세.”

“그러면 수련하러 귀환하기 전에 나머지 3개의 마도사축을 다 찾아보고 갑시다. 그 위치를 알아야 다음에 유용하게 써먹을 테니까.”

“알았네.”

타닷

나는 백두산 일대를 돌아다니며 나머지 3개의 마도사축을 찾아내었다. 그리 머지않은 곳에 있었지만, 왠지 보이지 않는 결계나 차폐막이 잔뜩 있었기에 짧은 거리임에도 무척 가기가 힘들었다. 이 정도면 보통 인간은 절대 찾아낼 수 없다고 무방할 정도였다.

인간형태로 변해서 따라오던 수보리가 말했다.

“무인(無人) 상태에서 이 정도의 경계도라면, 인간이 있을 때는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안 가는군. 이곳은 천하에서 가장 견고한 요새일세.”

“치우의 심장을 지키려면 그 정도는 되야겠지.”

“아무튼 마도사축의 4기둥은 모두 다 찾았네. 이쯤에서 내 가설을 말해도 되겠는가?”

나와 심수력의 시선이 수보리에게로 향했다. 수보리는 바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마도사축을 만든 자의 목적은 아마 치우의 사지(四枝)를 모으는 것이 분명하네.”

“사지를 모으는 방법은 나도 알고 있소. 양완과 양족의 위치를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게 바로 나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양완과 양족을 모두 모으게 될 경우 마도사축의 하나하나에 사지를 걸어놓게 될 걸세. 그리고 그 사지의 동력을 이용해서 심장에 걸려 있던 봉인을 푸는 것이고, 지하도시를 이용해서 제물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거지.”

“…….”

나는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걸 만든 놈은 아마 틀림없이 십이율주 하은천일 것이오. 그놈 말고는 만들 놈이 없소.”

백두산이 본거지이며 신단수 근처에서 자유자재로 활동하며 저런 지하도시까지 운영할 수 있는 놈이 십이율주 외에 다른 놈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굉장히 확신하는군. 허나 단정짓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네.”

“그놈 말고 마도사축을 만들 놈이 있단 말이오?”

“자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심 가는 놈이 하나 더 있긴 하지…….”

그렇게 중얼거린 수보리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누가 만들었느냐가 아니야. 마도사축을 이용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거지.”

“당연히 치우를 부활시키려고 그러는 게 아니겠소? 내가 예전에 치우의 사지를 모을 때도 근본적인 목표는 치우를 부활시켜서 황제에게 기울어진 종말의 판도를 바꾸려는 거였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아닐 수도 있어.”

“아닐 수도 있다니?”

“전에도 말했지. 마도사축은 고대 상위신의 술법으로서 그저 제물의 힘을 가장 극대화시키는 수단일 뿐일세. 즉 마도사축 자체는 의지가 없고 그저 ‘힘’의 저장고일 뿐이야. 그리고 그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정해진 바가 없어.”

“……?”

“치우를 부활시키지 않고 마도사축에 모인 치우의 힘을 이용해 다른 일을 도모할 수도 있단 말일세.”

“설마 예전에 달마가 했던 것처럼 진공가향을 시도한단 말이오?”

“자네가 볼 때 십이율주가 그렇게 할 만한 인물인가?”

“…….”

아니, 그건 아니다.

십이율주는 그 누구보다도 진공가향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세상이 쓰레기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긴 했지만 그렇다면 굳이 십이율과 자신의 권역인 고려를 수호하려고 애쓰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진공가향도, 치우의 부활도 아니라면 대체 무슨 목적으로 마도사축에 치우의 힘을 모으는 것이란 말인가?

수보리는 음험하지만 총기에 번뜩이는 눈빛으로 말했다.

“[가면]으로서의 직감이 말해주는군. 그자는 지극히 냉정하고 합리적이야. 그렇기에 단편적으로 일의 결론부터 추구하지 않고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할 걸세.”

“최후의 승자가 되는 방법? 그게 뭐요?”

“글쎄. 십이율주가 생각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세계의 종말을 극복할 수단이 아닐까 싶네만…….”

“……?”

그렇게 말해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어찌 되었든 여기에서 더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소. 나는 지금 수련만 해도 부족한 몸이니 이제 여기서 손을 떼고 청룡무관으로 돌아가고 싶군.”

그러자 수보리가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나는 여기에 남아서 좀 더 마도사축에 대해 조사를 하겠네.”

“조사를 하겠다고?”

“어차피 나는 신적 존재가 된 지 오래라서 수련이 무용지물일세. 그렇다면 자네의 동료가 된 김에 자네 대신 잡일을 해주는 게 맞겠지.”

“알았소, 부탁하오.”

나는 수보리를 여기 놔두고 청룡무관으로 갔다. 심수력은 오랜만에 보는 청룡무관을 발견하자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흐하하하. 이제 또 즐겁게 수련을 할 시간이군.”

“…….”

“응? 왜 그러는가.”

나는 심수력을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내게 말하지 않은 게 있지 않소?”

“…….”

심수력은 청룡무관으로 달려가려다 그 자리에 멈췄다.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나?”

“당신 원래 성격이라면 되살아나자마자 다시 정면돌파해서 그 지하도시의 경계를 뚫고 지하로 갔을 것이오. 헌데 내가 수보리와 함께 잠입할 때는 타인이 사전에 침입한 흔적도 없었고 처음부터 다시 차원방어막 같은 걸 뚫어야 했소. 심지어 당신은 그때까지 잠입한 낌새도 내지 않고 최심부까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잖소.”

“…….”

“뭔가 이상한 게 틀림없지. 수보리 앞에서는 얘기할 수 없는 게 있었소?”

심수력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네. 아무리 자네가 새로이 동료로 받아들인 자라고는 하지만 의심할 수밖에. 나는 아무리 친해도 결코 속내를 다 털어놓는 인간은 아닐세.”

“역시 그랬군…… 지금이라도 뭘 숨기고 있는지 말해 보시오.”

“딱히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닐세.”

이어진 심수력의 말에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는 영약을 먹을 생각으로 심장을 건드렸다고 했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치우의 심장을 파괴할 셈으로 공격했다네.”

“……?! 뭐, 뭐라고? 그 말은 세계가 멸망할 것을 알면서도 공격했단 말이오?”

“그렇네.”

“어째서…….”

“기억을 좀 더 되찾았기 때문일세.”

심수력은 서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에는 시꺼먼 기운이 동공 깊은 곳에서 자욱하게 흐르고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바로 그 심장을 부수지 못했던 한(恨)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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