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490화 (1,389/1,615)

전생검신 79권 18화

명경!

그것은 틀림없이 내가 전륜성왕의 방에 갔을 때 늘 보던 물건이었다. 전륜성왕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늘 그 물건은 거기에 있었다. 나는 명경의 존재를 떠올리며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했다.

“메피스토펠레스! 네가 말한 ‘시공을 초월하는 보물’이 명경이 맞냐?”

“그건 모르겠소.”

“…… 니가 말해 놓고 모르겠다고 하면 어떡하냐고.”

메피스토펠레스는 외알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대꾸했다.

“그것이 시공을 초월하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당신이 직접 그걸 들고 여기까지 와야 판별을 할 수 있는 것이오. 지금으로서는 어떤 게 시공을 초월하는 매개체가 되는지 알 수가 없소.”

“음.”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내가 침음성을 흘리자 수보리가 말했다.

“백웅. 아무튼 중요한 얘기부터 정리하지. 이젠 나도 전생동료가 된 게 맞겠지?”

나는 그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앞으로 잘 부탁하오.”

“흐흐, 목적을 달성해서 기쁘군…… 그래서 이젠 어찌할 생각인가?”

나는 수보리의 반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옆에 있던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했다.

“메피스토펠레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말씀하시오.”

“여기 옆에 있는 수보리 또한 수련세계에 같이 갈 수 있나?”

그 말에 메피스토펠레스는 힐끔 수보리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안 될 것 없소.”

“[큰 굴레]의 과거로 갈 때도 같이 갈 수 있는 거지?”

“그렇소.”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수보리가 큭큭 웃었다.

“재밌군. 정말 신화시대의 존재들과 싸우게 되는 것인가.”

“앞일이 어찌 될지 모르니 당신의 [가면]이 필요하오. 나중에 힘을 빌려주시오.”

“좋네. 그럼 일단은 나도 자네와 함께 수련을 한다는 건가?”

영 떨떠름해 보이는 수보리의 말투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수련할 필요가 느껴지지 않는 거요?”

“그렇네. 나도 사실 신적 존재가 된 지 오래라서 수련을 하든 말든 내 힘에 큰 변동은 존재하지 않아. 그래서 도리어 자네가 수련을 해서 힘을 얻는다는 게 신기할 정도군.”

“수련하고 싶지 않으면 굳이 시키지 않겠소. 어차피 지금 되돌아가면 수련 대신 할 일이 있으니 그거나 도와주시오.”

“알겠네.”

나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를 부활시켜 줘.”

“알겠소.”

파앗!!

다음 순간 나는 청룡무관의 침상에 누운 상태였고 내 옆에는 수보리가 탁자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수보리는 신기한 듯 청룡무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여기는 어디지? 여기가 자네가 부활하는 장소인가.”

“청룡무관이오.”

나는 침상에서 이불을 들추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금부터 당신과 나는 이 세계가 갑작스럽게 멸망했던 이유를 밝혀내야 하오.”

“?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설명해 주게.”

“그게…….”

“아, 기왕 설명할 거라면 이 세계에 오게 된 경위부터 처음부터 자세히 말해주게. 전체 맥락을 알아야 자네와 대화가 될 게 아닌가.”

“흠…… 그렇다면 이번 30번째 생의 시작부터 얘기하겠소. 꽤 긴 얘기가 될 것이오.”

나는 탁자에 앉아서 수보리에게 약 한 시진하고도 조금 넘는 시간 내내 지금껏 겪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수보리는 가끔 내 말에 대답하면서 신중하게 듣는 것 같았고, 한참 후 내 이야기가 끝나자 수보리는 약간 질린 듯이 말했다.

“이번 30번째 생만 하더라도 보통사람이 평생 겪을 일을 몇십 배나 압축한 느낌이군. 과연 전생자 다워.”

“아무튼 그 맥락이 이해가 됐소?”

“이해됐네. 자네는 뜬금없이 잠을 자고 있다가 세계가 멸망해 버리는 걸 겪었다는 거군.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아야 하는데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거고.”

“그렇소. 솔직히 너무 뜬금없이 벌어진 일이라 내가 주먹구구식으로 파헤치기엔 힘든 사건 같소. 당신은 꽤 두뇌가 뛰어나 보이니 내가 이 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시오.”

“흠…….”

수보리는 한참 동안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역시 그 원인은 백두산으로 간 심수력에게 있겠군. 그렇지 않나?”

“심수력이 세계를 멸망시켰다는 것이오?”

“그래. 그것 외에는 이 공허한 세계가 멸망할 이유가 없어. 심수력이 백두산으로 가서 뭔가를 건드렸고 그 결과 세계가 멸망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세.”

“음…… 이 세계에 원래부터 묻혀 있던 혼돈의 유물이 갑자기 폭주했을 가능성은 없겠소?”

수보리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만 나는 사실 한 가지가 더 신경 쓰인다네.”

“무엇이 말이오?”

“자네가 잠을 자는 동안에 낌새조차 채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일세.”

나는 그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 그게 뭐가 중요하오?”

“자네는 설명대로라면 무인의 극점에 이르러 절대지경을 초월해 신역의 경지를 밟고 있는 절대고수일세. 게다가 신력조차도 맘대로 쓸 수 있지. 그런 자네가 아무리 찰나라고 하지만 순식간에 몸이 소멸당해서 죽는다는 건 결코 범상한 일이 아니야. 자네는 빛의 속도에 가까운 공격이라 해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가 있지 않은가?”

“으음! 그렇다는 건…….”

“세계는 빛보다 더 빠르게 멸망한 걸세. 인간의 인지속도로는 대응하고 말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말일세.”

“…… 그게 가능하오?”

“나는 차원여행을 하면서 무수한 차원의 창생사멸을 봐 왔네.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차원이 통째로 접혀 버리거나 하면 있을 수 있는 일이지.”

그렇게 말한 수보리가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말은 심수력이 백두산에서 건드린 인(因)이라는 게 세계를 순식간에 멸망시킬만한 위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 되겠지. 백두산에 뭐가 있는 건지 궁금해지는군.”

“…….

나는 잠자코 수보리의 말을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심수력은 백두산에 마도사축(魔道四軸)이라는 걸 찾으러 갔다고 했소. 거기에 비밀이 있을 거요.”

수보리는 개탄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마도사축이라. 천축 삼대신이 보유하고 있던 비술(秘術)이 세상에 그런 식으로 퍼졌다니…….”

“엉? 마도사축에 대해 알고 있소?”

수보리가 뜻밖의 얘기를 하자 나는 궁금해져서 반문했고, 수보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도사축은 인간계의 주술사가 만든 술법이 아니야. 그건 과거 천축의 삼대 대신(大神)인 범천(梵天) 브라흐마가 대역행(大逆行)을 시도하기 위해 만든 비술일세. 진짜 이름도 마도사축이 아니라 따로 있네. “

나는 천축 삼대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인상을 찌푸렸다.

“브라흐마? 설마 비슈누 같은 놈을 말하는 것이오?”

“그렇네. 비슈누, 시바, 브라흐마 세 명을 가리켜 천축의 삼대신이라 하지. 그들은 본디 질서의 신성이었는데 초고대문명인 칼파를 수호하고 있다가 수십 수백이나 되는 [옛 지배자]들과 전쟁을 벌이게 되었어. 그들은 하나하나가 강력한 신이라서 일대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으나, 수적으로 중과부적이라 결국 패배를 앞두게 되었지.”

수보리는 먼 옛날을 회상하듯 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삼대신 중에서 대장이라 할 수 있는 브라흐마는 전쟁의 결과를 뒤집기 위해 역천의 비술을 시도했네. 그것이 바로 대역행…… 브라흐마스트라.”

“대역행? 설마 브라흐마스트라 라는 건…….”

“자네 짐작대로일세. 지금 자네가 하는 것처럼 [큰 굴레]를 되돌려서 전쟁을 하기 전으로 만드는 대주술을 시전한 것이야. 전쟁을 하기 전으로 되돌아가면 상대의 약점부터 찔러서 무조건 이겼을 테니까.”

“!!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 하지 않았소?”

“그래, 불가능한 일일세. 허나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한 브라흐마는 대우주의 금기를 깨뜨리는 브라흐마스트라의 시전을 위하여 그 대역행의 근간이 되는 무수한 제물을 모으기 시작했네. 그리고 그 제물을 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보조주술이 바로 마도사축인 걸세.”

“!!”

세상에 그런 비사가 있었다니!

나는 수보리가 해주는 얘기에 놀라고 있다가 문득 뭔가를 깨닫고는 말했다.

“하, 하지만 실패했겠지? 대역행의 주술이 성공했을 리가 없잖소.”

“그래. 실패했네. 실패한 대가로 범천 브라흐마는 삼법(三法)이 모이는 신의 요람으로 되돌아가 봉인되었고, 비슈누와 시바는 패배하여 처절한 사투를 거듭하다가 결국 황제의 부하가 된 것 같더군.”

“흠…….”

그 순간 나는 예전에 외우주에서 보았던 비슈누의 외침이 생각났다.

[나의 형제 시바여, 도망쳐서 브라흐마에게 귀의(歸依)하라!]

[이놈은 절대 이길 수 없다. 삼법(三法)의 결맹(結盟)으로 후일을 도모하라!]

분명 비슈누는 흉신에게 살해당하기 직전 패배를 예감하고 시바에게 도주할 것을 경고했었다. 뜬금없이 브라흐마의 이야기가 나와서 의문이었는데 이제야 약간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삼대신 범천 브라흐마는 대역행에 실패해 봉인되었지만, 나머지 2명의 신이 도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거로군!!’

이제야 의문이 좀 풀린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기에 수보리에게 말했다.

“근데 그 말대로라면 마도사축은 천축 삼대신이 쓰던 신급의 비술 아니오? 브라흐마스트라의 보조술법이라지만 인간이 알 수 없는 비술인 건 마찬가지인데…….”

“그렇지.”

“그런 걸 어떻게 달마대사가 쓸 수 있었던 거요?”

“아까 상황설명을 하면서 자네 입으로 달마대사가 전생자라고 하지 않았는가? 본디 불교에 대한 소양을 어마어마하게 쌓고 있던 달마대사라면 수천수만 번을 전생하면서 고대의 금기주술을 알아냈겠지. 마도사축도 그중 하나일 걸세.”

“아!”

“마도사축의 목적은 하나야. [큰 굴레]조차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의 방대한 제물을 모아서 힘을 극대화시키는 것. 차이점이 있다면 범천 브라흐마는 [큰 굴레]를 되돌리기 위해 사용했고 달마대사는 전생자로서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사용했다는 거겠지.”

“…….

“눈치챈 표정이군.”

나는 신중하게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 말은…… 백두산에 있는 마도사축 또한 평범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이 아니란 뜻이구려.”

“바로 그걸세. 세상에 무수히 많은 희생제의 주술이 있으나, 마도사축은 상위 대신이 직접 만든 주술이야. 대라신선의 주술보다 훨씬 격조 높단 말이지. 백두산에 있는 마도사축 또한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원대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게 틀림없네.”

“!!”

나는 수보리의 말을 듣자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호월이 마도사축을 발견하자마자 다른 일을 다 제쳐놓고 마도사축부터 제압하려고 했던 건가?’

달마대사의 제자인 호월이라면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마도사축의 위력과 원래 목적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마도사축을 누군가가 악용하려는 걸 극도로 경계했을 게 뻔했다.

나는 수보리를 동료로 만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히 마도사축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넘어서서 그 이상의 추론을 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혹시하는 마음에 수보리에게 말했다.

“혹시 마도사축을 파괴하는 방법도 알고 있소? 만일 거기서 마도사축을 발견한다면 파괴해야…….”

“그런 건 모르네. 나도 전설로만 내려져 오는 비술의 이야기를 천축의 요기들에게 전승받은 것뿐이야. 헌데…… 도리어 그게 위험한 게 아닐까?”

“무슨 말이오?”

“만일 심수력이 우리처럼 생각하고 마도사축을 파괴하려 한 결과 세상이 멸망했다면 어쩔 텐가.”

“…….

그것도 그렇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수보리에게 말했다.

“좋소. 우선은 마도사축과 심수력을 발견하는 걸 1차 목표로 하고, 마도사축을 대책 없이 때려 부수지는 않는 게 좋겠구려.”

“바로 그걸세. 지금 당장 떠날 셈인가?”

“갑시다. 나는 이 세계에 머물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소.”

“알았네. 이동수단을 소환하지.”

수보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합장하는 자세를 취했다.

퍼엉!!

그러자 눈앞에 갑작스레 새하얀 구름덩어리가 출현했다. 나는 그 구름덩어리가 뭔지 알고 있었기에 깜짝 놀랐다.

“이, 이건 근두운(筋斗雲)?!”

제천대성의 보패가 아닌가!

“운전은 내가 하겠네.”

수보리가 성큼 근두운 위에 올라섰지만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근두운은 보패잖소! 당신은 어떻게 술수로 근두운을 소환할 수 있는 것이오?”

“근두운은 술법이자 보패일세.”

“? 그게 무슨 말이오.”

“흐음. 이해를 못 했나…… 평소에 구름을 뜯어서 오행술(五行術)로 보관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 술법으로 가공해서 보패로 만들어서 소환하는 거란 말일세. 그래서 보패로 분류하지만 사실 술법에 가깝네.”

“엥?! 그런 게 가능하오?!”

“제천대성이 말해주지 않은 모양이지만 이것도 천축에서 유래한 신급 술법일세. 대라신선의 수준을 넘어가면 술법의 기본원칙을 한두 개 정도는 무시할 수 있지.”

그렇게 대꾸한 수보리가 내게 손짓을 했다.

“빨리 타기나 하게. 시간 없다면서.”

“아, 알았소.”

“백두산으로 가는 방향은 내가 대충 알고 있으니 길을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네.”

부우웅

“…….

나는 순식간에 우리 둘을 태운 근두운이 하늘을 날아서 수십 리 창공을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걸 느꼈다. 나는 근두운을 타고 가며 생각했다.

‘수보리…… 자기 실력을 과시하지는 않지만, 제천대성의 평가가 사실인 것 같군.’

수보리가 제대로 싸우면 삼황오제의 화신인 옥황상제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평가!

나는 그게 과장이 아닐까 싶었지만, 제천대성 또한 수보리를 인정하고 있는 듯했다. 눈앞에 있는 이 승려 또한 삼황오제의 사도나 화신 수준인 것이다.

구름을 타고 가는 동안 수보리가 앞에 앉아서 말했다.

“또 하나. 중요한 걸 아직 얘기하지 않았군.”

“무엇을 말이오?”

“전생동료가 된다면 다음 생부터 자네와 내가 어떤 식으로 합류할지 말일세.”

“…… 아! 그렇군.”

그것 또한 얘기해야 할 부분이었기에 나는 상황을 깨닫고는 수보리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전생하면서 수보리 당신을 아예 본 적이 없었는데 도대체 평소에는 어디 있었던 거요?”

“다른 차원을 여행하고 있었네.”

“다른 차원을?”

“어차피 이 세상에는 별로 미련도 남지 않았고 곧 종말을 맞이할 세계에 굳이 남을 이유도 없었으니까. 혈계나 환계 같은 근린차원을 정처 없이 떠도는 중이었네.”

“음…… 그래서 보이지 않았던 건가.”

내가 주로 활동하는 현세와 달리 다른 차원을 돌아다녔다면 보기 힘들 수밖에 없다.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수보리가 말을 이었다.

“나는 주로 비취계(翡翠界)에 거처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네. 나를 동료로 영입하고 싶다면 비취계의 가장 중심에 있는 비취신궁(翡翠神宮)으로 와서 데려가 주게. 나는 그 궁의 궁주로 살고 있었으니까.”

“비취계? 그런 차원계도 있소?”

제갈사 밑에서 차원계 공부도 꽤 많이 했는데 비취계는 정말 처음 들어보는 차원계였다. 그러자 수보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일반적으로는 잘 알려진 곳이 아니야. 태초에 세계가 만들어질 때 생겨난 파장이 응축되어서 비취로 응결되어 만들어진 특수한 차원이지. 그 세계에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비취석이 가득한데 현실세계에 있는 비취석과는 완전히 다른 광물일세. 근린차원이라기엔 좀 거리가 멀기에 차원여행자가 아니면 찾아오기 힘든 비차원(秘次元)에 가깝네.”

말만 들어도 찾아가기 힘든 장소였다. 나는 황당해서 중얼거렸다.

“…… 당신은 굳이 그런 머나먼 차원계에 찾아가서 자신만의 궁을 만든 것이오? 거참.”

“그야 비취석의 힘을 흡수하면 더 강해질 수 있었거든.”

번쩍

나는 그 말에 귀가 바로 뜨이는 걸 느끼고는 바로 반문했다.

“강해질 수 있다고?”

“그렇네. 비취석 안에는 태초의 파장이 높은 농도로 갇혀 있거든. 나는 수백 여년에 걸쳐서 그 비취석의 파장을 내 주술로 흡수해서 힘을 강화시키고 있었던 걸세. 힘을 흡수하다가 심심하면 다른 차원계로 가서 여행을 하는 식이었고.”

“오호!!”

“비취신궁은 비취석의 힘을 쉽게 흡수하려고 만든 장소일세.”

그 말인 즉슨 다음 생부터 내가 비취계에 가서 수보리를 영입하면 일석이조로 비취석의 힘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뿐만 아니라 내 동료들이 강해지는 데도 도움이 되겠지.’

나는 수보리의 영입을 안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수보리가 말했다.

“나를 설득할 때는 그냥 자네가 전생자라는 것만 밝혀주면 될 걸세. 나는 전생자의 존재를 무척 갈구하고 있으니까.”

“알았소.”

“흐음, 말하다 보니 어느새 백두산에 도착했군.”

부웅…….

구름을 타고 내려본 지상세계에는 어느새 백두산의 봉우리가 보이는 듯했다. 역시 보패 근두운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힐끔 백두산의 영봉 근처를 바라보던 수보리가 말했다.

“뭔가 수상하군. 평범한 척하고 있지만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마도사축이란 게 그렇게 사악한 구조물이면 마기(魔氣)를 내뿜을 텐데 감지할 수 있지 않소?”

“한 번 해보지.”

우우우우웅

수보리가 양손에 힘을 모으자 초록빛의 파장이 넘실거렸다. 그는 안광을 뿜어내더니 이내 합장을 하며 큰 외침을 토해내었다.

“갈(喝)!”

투웅!

쩌저정

그와 동시에 수보리를 중심으로 온 세상에 초록빛의 파장이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가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초록빛의 파장은 순식간에 백두산의 영봉까지 넘어서서 해수면 저편으로 뻗어 나갔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수보리가 말했다.

“이상하군. 저번에 봤을 때는 백두산을 수호하는 세계수인 신단수가 있었는데 왜 없지?”

“전뇌자가 이 세계를 구성할 때 그런 식으로 만들었다고 하오.”

“흠, 그런가. 하지만 그러면 더 이상하네.”

“뭐가 이상하오?”

이어진 수보리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신단수가 없음에도 내 탐색 주술을 막아낸 뭔가가 백두산에 있다네. 그래서 사실상 저기에 마도사축이 있는지 감지할 수가 없어. 그래도 탐색 주술만으로 저기에 자체적으로 걸려 있던 인식저해와 차원 왜곡은 해제했네.”

“!!”

“신단수는 본디 주술을 방해하는 힘이 있다지만 그 신단수가 없는데도 내 술수를 방해하는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군.”

그러게?! 대체 뭐지?

나는 고민하다가 수보리에게 말했다.

“직접 내려가서 찾아봐야 할 것 같소.”

“그래야 하겠다면 나를 가면으로 쓰게.”

“응?”

수보리는 무심한 눈으로 백두산을 쳐다보며 말했다.

“수천 년을 살아온 자로서의 감이 얘기해주고 있네. 저곳은 도산검림(刀山劍林)보다 몇 배는 흉악한 함정이 펼쳐져 있을 것이야. 허나 그 함정을 뚫는데 자네와 내가 따로 힘을 쓰면 비효율적이지.”

나는 수보리의 말뜻을 알아챘다.

“당신이 가면의 능력으로 함정을 해제해 주겠다는 거요?”

“그게 훨씬 쉬울 걸세.”

“좋소. 해 봅시다.”

우우우우!!

나는 [수보리]의 가면을 썼다. 그와 동시에 근두운이 해제되면서 내 몸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땅으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나는 낙하하는 동안에 가면의 능력을 빌어 짧은 범어(梵語)를 한마디 중얼거렸다.

“पिच्छ.”

‘깃털’을 의미하는 주언(呪言)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순간 내 몸의 낙하속도가 사라지고 서서히 몸이 부유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수보리가 익히고 있는 수많은 주술들이 한순간에 해석되었고, 나는 그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주문이 무엇인지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파앙!

내가 합장을 하는 순간 무려 6개나 되는 방어막의 주술이 내 몸 주변에 둘러졌다. 수보리가 평소에 즐겨 쓰는 육중주법(六重呪法)으로써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주술에 모두 정통한 그만이 쓸 수 있는 술법이었다. 우선 방어막을 이용해서 내 몸의 안전을 확보하자 나는 서서히 백두산으로 다가가면서 한 손에 커다란 철장(鐵杖)을 소환했다.

그러고는 철장을 앞으로 뻗으며 외쳤다.

“가네샤여, 내게 그대의 지혜와 행운을 빌려주소서!”

키잉 -

그와 동시에 내 몸에 생소한 신력이 깃들면서 강력한 가호가 맴도는 걸 알 수 있었다.

신성 가네샤의 가호!

이것은 마치 태허천존의 가호처럼 행운을 높여주는 능력이 있었는데 사실 태허천존의 가호만큼 행운을 극적으로 높여주지는 않았다. 대신에 무조건 대흉(大凶)을 피할 수 있게 해주고 더불어 순발력이 필요한 상황에 두뇌 회전이 매우 빨라지게 도와주는 가호였다.

본디 이런 신적 존재의 가호는 직접 그 신에게 공양을 해서 받아야 했지만 대주술사를 훨씬 넘어선 존재인 수보리는 그런 공양을 무시하고 신에게서 직접 가호를 가져오는 게 가능했다.

피잉 피잉 피잉

“가라.”

잠시 후 나는 수보리의 주술 중에서 사방 수백 리를 탐색할 수 있는 수호귀(守護鬼)를 수백 마리 소환하여 앞으로 전진시켰다. 나는 일련의 과정을 진행하면서 내심 감탄했다.

‘무슨 술법을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단 말인가?’

아마 수보리와 적이 되어서 싸운다면 적지 않게 곤욕을 치를 게 분명했다. 나는 수보리의 능력 중에서 일부만 쓰고 있는데도 보통의 대주술사와는 차원이 다른 능력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퍼버벙!!

‘!! 수호귀가 죽었다!’

소환수가 갑자기 열 몇 마리씩이나 죽어 나간 게 느껴졌다. 나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고, 도착한 순간 흠칫하고 말았다.

“저건?!”

소환수 수호귀들의 시체가 널려 있는 곳에는 거대한 기계장치와 함께 포신(砲身) 서너 개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포신의 뒤편에는 시꺼멓고 거대한 기둥이 세워져 있다는 게 보였다.

‘저게 아마 마도사축이겠군…….’

그러나 나를 정말로 놀라게 한 건 마도사축이 아니라 그 앞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포신이었다. 나는 전생자의 기억으로 저 포신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

위잉 - 철컹!

또한 그 포신 앞에는 순백색의 기계가 서서 한쪽 손에 창(槍)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순백색의 기계가 나를 발견하고는 감정없는 기계음을 흘리는 게 들려왔다.

[혼돈감염 제어장치 4단계 발동. 크리티컬 레드 시그널(Critical Red Signal). 침입자를 제거하라.]

철컹! 철컹!!

동시에 땅에서 기계의 바닥이 올라오면서 몇 개체의 기계가 더 나타나는 게 보였다.

“…….

제기랄.

저건 설마…….

내 머릿속에서 함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가면] 수보리가 내게 질문했다.

[어쩐지 자네는 저게 뭔지 알고 있는 것 같군. 혹시 전생하면서 본 적이 있는 존재인가?]

“……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기억을 통해 전해 받은 적 있소.”

스릉

나는 검을 서서히 뽑으며 중얼거렸다.

“저건 이퀄라이저(Equalizer)라는 거요.”

[옛 지배자]의 사도조차도 중상을 입힐 수 있는 존재.

천마 사공린이 사도 [검은 태양]과 함께 아틀란티스 대륙에 침입했을 때 맞닥뜨린 기계의 수호자, 이퀄라이저가 눈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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