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력은 벽을 뚫을 방법이 무엇인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내게 다른 질문을 했다.
"그 수련에 내가 필요한가?"
나는 그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딱히 그렇지 않소."
"그럴 거 같았네."
"왜 그렇게 생각했소?"
심수력은 피식 웃었다.
"자네의 눈빛에서 이제 혼자 있고 싶다는 기색이 보였거든."
"나도 마찬가지일세. 아마 자네와 다른 방식으로 더 수련을 하게 될 것 같으니 나는 잠시 떠나도록 하지."
"다시 전 세계에 퍼진 영약을 먹으러 가는 것이오?"
"설마. 이만큼 내공을 쌓으면 더이상의 영약섭취가 무의미하다는 건 자네가 몸소 몇 번이나 죽었다 살아 나면서 실험하지 않았나? 이제 내게 필요한 건 다른 걸세."
그렇게 말한 심수력은 동쪽을 바라 보며 중얼거렸다.
"내 마지막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러 가려 하네."
"……."
"나중에 봅세."
파앗
심수력이 하늘을 날아서 사라지자 나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동시에 심수력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는 내가 어떤 식으로 벽을 뚫으려 시도할지 예측한 것 같군.'
같은 사신지혼의 수련자이며 나보다 훨씬 재능이 뛰어나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수련을 하고자 한다면 옆에 거치적거리는 게 없어야 한다는 걸 알아채고는 미리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심수력이 무엇을 찾으러 동쪽으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그와 다시 재회할 때가 기대 되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며 생각했다.
'사신지혼의 성질을 알아보면서 깨달은게 있다.'
그 깨달음은 흔히 말하는 심득 같은게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유치한 오기였고, 내 자존심이기도 했다. 나는 수신지혼의 가공할 만한 천연 방어력, 풍신지혼의 투명화, 화신지혼의 공격력 등 하나씩의 장점을 보면서 뇌신지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이다.
'…… 어쩌면 뇌신지혼은 사신지혼 중에서 제일 단순무식할지도 몰라.'
순수한 속도와 공방력에서는 뇌신지혼이 압도적이지만 그 외의 특수한 능력을 따져보면 다른 사신지혼에 비해 부족했다. 아니, 번개만큼 빠르고 강해진다는 것 외에 별개의 특이한 공능이 단 하나도 없는 게 뇌신지혼인 것이다. 게다가 유지력도 나빠서 순식간에 압도적인 기력을 소모하고 지쳐 버린다는 단점이 있었으니 어쩌면 같은 경지의 달인이 운용할 경우 뇌신지혼의 사용법은 무척이나 제한될지도 몰랐다.
심지어 다른 사신지혼의 개발은 이제 막 시작되었기에 어쩌면 수신지혼이 그 이상의 방어력을 펼칠지도 몰랐고 화신지혼은 공염 이상의 공격력이 보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풍
신지혼이 지닌 투명화 능력은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다. 이대로 가면 뇌신지혼이 가장 약한 사신지혼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그건 싫다.
나는 사신지혼을 그저 전투기술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이건 어찌 보면 수천 년 역사를 지닌 사대 무류의 전통이 극한에 이르러 완성형에 이른 것이라 볼 수 있었으며, 각각의 사신지혼은 각 무류를 대표 하는 상징이라고까지 할 수 있었다. 구궁파천뢰라는 막강한 동력을 이용하여 비로소 정령에 가까운 속성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인데 이미 인간 의 경지를 벗어난 무학인 것이다.
'나는 뇌신류다…… 죽었다 깨어나도 뇌신류란 말이다.'
나는 그 순간 반개한 눈을 번득였다.
'당연히 뇌신지혼이 최강이어야만 해!! 다른 사대무류따위는 다 짓밟아 버릴 정도로 강해야지!'
뇌신류 종사로서의 자존심이 들끓어 오른다. 여태껏 전생하면서 나는 깨닫지 못했지만 나는 뇌신류라는 자부심이 꽤 컸던 모양이었다. 분명히 전생 초기에는 그저 힘만 얻을 수 있으면 아무 무림 문파나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청룡무관에 입관하고 이광과 진소청의 막강한 무력을 목격한 후에는 뇌신류 아니면 안 된 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심지어 뇌신류가 수천 년 역사를 지닌 무맥이며 소림사에도 뒤지지 않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내가 뇌신류의 종사가 되려고 갈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뇌신류의 뇌신지혼이 사대무류 중 최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그 해답을 깨달았기에 벽을 뚫으려 수련하게 된 것이다.
'아주 쉽지. 뇌신지혼을 무한으로 펼칠 수 있으면 최강이야!!'
현재까지 드러난 뇌신지혼의 유일 한 약점은 바로 지속력!
지속력이 부족하기에 수신지혼이나 풍신지혼 등을 상대로 뜻밖의 약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는 게 현재의 뇌신지혼이다. 번개의 힘과 속도를 얻는 대신 그만큼 연비가 악독할 정도로 바닥을 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뇌신류 종사 이청운을 알고 있다. 전성기의 이청운을 부활 시켜서 그가 싸우게 했을 때 천령단을 이용해서 오랜시간 뇌신지혼을 펼칠 수 있는 이청운은 무척이나 막 강했다. 아무리 원영신을 가진 교주라도 뇌신류의 약점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이청운에게 패배했을 것이다. 사실 뇌신류의 약점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교주 또한 원영신의 무 한의 내공을 이용해서 강기를 쳐서 무한히 방어하는 것 외에는 반격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천령단으로 뇌신지혼을 반쯤 무한에 가깝게 시전할 수 있는 이청운은 내 전생과정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는 상위급 강자였기에 나는 뇌신지혼에 지속력만 덧붙여지면 틀림없이 최강일 거라 생각한 것이다.
심지어, 지금 내가 시전하는 뇌신지혼은 이청운이 쓰던 뇌신지혼보다 몇 배는 강력하다. 이청운의 뇌신지혼은 불완전한 구결로 이루어져 있었고 천재성을 바탕으로 강제로 뇌 혼의 공능을 끌어내기에 안정적이지 못했으나 구궁파천뢰라는 거대한 동 력을 이용해 완성된 사신지혼의 원 에 속해 있는 뇌신지혼은 출력이든 안정성이든 최소 몇 배는 높았다.
'만일 내가 현재의 뇌신지혼을 이청운처럼 반쯤 무한히 쓸 수만 있다면…….'
그건 전대미문의 위력을 보이는 최 강의 뇌신지혼이 될 게 틀림없으리라!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해야 뇌신지혼의 지속력을 늘릴 수 있을지 알고 있었기에 벽을 뚫을 수 있다고 자신 한 것이다.
나는 예전처럼 사신지혼의 구결을 운용하면서 나 자신의 몸을 뇌신지혼으로 형성하고 그 주변에 3개의 작은 구체를 띄웠다. 나는 잔잔하게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사신지혼의 큰 변화를 시도한 채 3개의 구에도 회전력을 담으면 더욱 힘이 강해진다. 그러나 3번만 지나도 힘이 과도하게 넘쳐서 폭사(爆死)한다. 아무리 힘을 적게 담아서 가속시켜도 너무 힘의 가속이 강력 해서 도저히 힘의 과잉을 멈출 방법 이 없었다.'
이 [벽]을 뚫을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서 지금까지는 이 수련을 더 진행하지 못한 채 권법수련이 나 사신지혼의 성질연구에 시간을 쏟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 벽을 어떻게 뚫어야 할지 감을 잡았기에 씨익 웃었다.
'하지만 뇌신지혼의 소모율이 그렇게 막대하다면…… 막대한 소모율을 이용해서 막대한 가속력을 줄일 수 있지 않은가!!'
'4번째' 이후의 경지가 뭔지는 모 르지만, 그때부터 펼치는 사신지혼 은 왠지 차원이다를 것 같다.
이 이론대로라면 무한의 뇌신지혼 을 달성하면서 동시에 벽도 깰 수 있지 않은가!
파지지직!!
최초의 뇌신지혼을 발휘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동시에 뇌혼의 영향을 받은 나머지 3개의 구도 파직 거리면서 뇌성(雷性)을 띄기 시작했고, 이윽고 3개의 구는 내 몸을 빠른 속도로 공전(共轉)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이 정도 회전속도에서 다른 사신지혼으로 넘어갔겠지만 나는 최대한 넘기지 않고 뇌신지혼의 출 력을 올렸다.
쿠구구구구!!
내부의 단전이 마구 끓어오르면서
동시에 전신에서 회전하는 뇌령의 속도 또한 급격히 빨라진다. 원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구궁파천뢰의 회전속도를 훨씬 넘어선 것이다. 원래 구궁파천뢰를 펼칠 때 안정성을 위해서 팔황경천이나 천랑뇌신결, 무환천랑백팔식 등의 보조구결을 이용해서 뇌령의 속도를 통제했지만 나는 일부러 그 통제를 놓아 버렸다.
피피피핑
이윽고 내면에서 회전하는 구궁파천뢰 뇌령의 속도가 평소에 내가 돌리던 것의 다섯 배 이상 빨라진 게 느껴졌다. 이 정도 되니 경맥에 붙잡아서 힘을 도인(導引)하는 건 아예 포기해야 했고 내 몸에 쇠구슬이 들썩거리면서 마구 튕겨 다니는 기 분이 들었다. 내부가 진탕되면서 동시에 내상(內傷)을 입어서 목구멍에서 울혈이 치밀어 올랐다.
[크륵!!]
나는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피부와 뼈 사이로 장침이 수백 번씩 찔렀다 나가는 이 신랄한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자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당장에라도 피를 입에서 토해내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진짜로 주화입마 때문에 바로 폭사해 버릴 것이다. 나는 극한의 절제력으로 고통을 참아내면서 뇌신지혼의 출력이 어디까지 올라가 는지를 확인했다.
치리리링!!
평소보다 더욱 격렬해진 구궁파천뢰의 회전 덕분에 뇌신지혼은 평소의 흐릿한 청색 번개를 감싸던 모습 에서 바뀌어서 이제 보랏빛 번개를 가득 머금은 뇌인(雷人)의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색깔의 변화가 뇌신지혼의 힘과 관련이 있는 걸까? 아직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지금 움직일 경우 평소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가속!!]
그러나 부족하다. 내가 원하는 건 아예 내공이 타들어가서 밑바닥이 보일락 말락 하는 바로 그 시점이다. 나는 아예 이 자리에서 터져 죽을 것을 각오한 채 구궁파천뢰의 회전을 더욱 빠르게 만들었다.
퓨퓨퓽
아 씨발!!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지만…… 이건 너무 심하잖아!
내가 무려 수십 배나 가속한 뇌령의 속도에 기겁하고 있을 때 파국이 닥쳐왔다. 나는 전신이 터지기 직전에 흐느낌인지 비명인지 모를 단말 마를 내질렀다.
[꺼어어억!!]
퍼엉
나는 뇌령의 회전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번개 덩어리가 되어서 터져 나갔다.
* * *
"무척이나 괴로운 길을 선택했네."
"……."
"내 계산에 따르면 당신은 지금까지보다 더 자주 죽게 될거야. 그래도 계속할 거야?"
전뇌자의 질문에 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천천히 탁자 위의 커피에 손을 뻗었다.
커피잔을 잡는 손가락이 후들거린다.
나는 따끈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는 중얼거렸다.
"아메리카노는 맛이 없군. 이게 커피냐?"
그러자 전뇌자는 약간 토라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웅제국에서 제일 인기 있었던 커피한테 무슨 모욕을 하는 거야?"
"흥……."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앞으로는 종류별로 다 갖고 와 봐. 다 먹어보고 그때도 아메리카노가 맛이 없는지 생각해보게."
"…… 하여간 입만 살았네."
전뇌자는 어이없는 듯 한숨을 쉬며 내게 너구리 인형을 던져주었다.
"알았어. 당신이 대응제국의 모든 커피를 먹을 수 있을지 지켜볼게."
* * *
나는 부활한 후 다시 뇌신지혼의 출력을 한계까지 땡기는 수련에 계속해서 도전했다. 나는 이를 악물면서 구궁파천뢰의 힘을 최대로 끌어 내었다.
"끄으으읍!!"
분명히 할 수 있다.
뭐라고 표현은 할 수 없지만, 그 누구보다도 구궁파천뢰를 오래 수련 한 나는 느껴진다. 뇌신지혼의 출력이 최상승의 경지에 오르고 동시에 내 내공의 한계까지 아슬아슬하게 턱걸이하는 바로 그 순간이! 내가 그 순간에 도달하는 건 충분히 가능 하지만 뇌령이 너무 빨라서 일시적 으로 통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탓에 순간을 잡아채기 힘든 것이다.
파지지직
'젠장! 또 빨라!!'
퍼벙
[끄아아악]
* * *
"이건 콜드브루야."
"……."
"다음엔 카푸치노는 어때?"
꿀럭꿀럭
나는 목의 괄약근이 터져 버릴 정 도로 벌컥벌컥 커피를 마신 후 손을 내밀며 외쳤다.
"빨리 그놈의 너구리 인형이나 줘!!"
* * *
퍼버벙
.
.
.
* * *
퍼버벙
.
.
.
* * *
"……."
무려 18번이나 되는 실패를 거듭 한 끝에 나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안 돼…… 내 감각으로는 절대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없어!!"
경험으로는 짐작할 수 있는 경지이지만 내 감각과 재능으로는 절대 그 한순간을 포착할 수 없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며 오기로 도전했지만 그게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여태껏 죽음의 횟수가 누적될까 봐 두려워 섣불리 도전하지 못했던 수련을 직접 하게 되니 더욱더 절망이 피부로 와 닿았다.
마치 비유하자면 수십만 개의 구슬이 튕겨 다니는 곳에서 정확히 단 하나의 구슬을 정해진 장소에서 잡아야 하며 심지어 다른 구슬에는 몸이 하나도 닿지 않아야 하는 것! 어마어마한 초절(超絶)의 감각이 필요 하다는 걸 알 수 있었으므로 나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내 내공수련의 경력이 길다 하여도 이 정도 극한의 수준이 되면 얘기가 다른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지?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과거 이광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9개를 직선으로 실에 구슬을 꿰듯 힘을 잇는 게 아니라, 구슬 3개를 원형(圓形)으로 잇는다는 발상은 해 보지 못하셨소?]
"……."
왜지? 왜 이광이 조언이랍시고 해 줬던 얘기가 떠오르는 거지?
그러나 내 거부감과는 별개로 머릿속에 마치 심득처럼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무튼 이 9개의 신체부위에 뇌혼이 집중된다면 이야기는 간단하지. 3부위씩 나눠서 필요할 때는 그 3 부위에서 뇌혼이 순환하게 만들면 그만이오.]
[구슬 세 개를 실에 꿰어서 원형으로 조율하고 힘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
[3번을 채웠다 싶으면 일부러 한 번은 잉여 뇌혼을 방출하며 처음으로 완전히 되돌아가면 되오.]
삼재의 공정 이후 잉여 뇌혼을 발출한다?
나는 뭔가 알듯 모를 듯한 싱승생승한 기분이 들어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고민했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내 수련자의 직감이 그때 이광의 이야기를 떠올린 것이다.'
이건 틀림없이 이 벽을 타개할 단서이다.
하지만 삼재의 공정은 지금 내가 추구하고 있는 수련의 길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 그건 그냥 힘을 효율적으로 발출하기 위한 요령이 아니었던가. 억지로 오황이나 육백까지 오랫동안 연환하기 보다 삼재의 연환으로 적을 상대하는게 훨씬 효율적이라서 그런 것뿐인데 지금 나는 뇌신지혼을 일순간 극대 화시켜서 내부를 완전히 텅 비워 버 릴 셈이었기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끙끙대며 고민하고 있다가 순 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3 부위에서 삼재가 순환한다고?
3개의 점이 원(圓)을 만든다는 소리인가?
"원……."
어째서 삼재로 원을 만드는 것이 지?
1개인 일원(一元)이나 2개인 양의(兩儀)로는 원의 순환을 만들 수 없는 건가?
원을 만드는데 최소한 3개의 점(點)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지?
이광에게 요령을 들을 때는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사실 점을 중심으로 선(線)이 발산한다고 치면 원을 형성하는데 점이 1개든 2개든 별 상관은 없는 게 아닌가? 그러나 이광은 무조건 3개를 최소로 하여 원을 그려야만 가장 효율적이라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진짜 뜻도 모른 채 요령만 가져다 쓰고 있었던 것이리라.
삼재…… 삼재…….
내가 아는 삼재는 하나밖에 없는데…….
"아……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단순할 까?
그래도 한번 시도해보는 건 나쁘지 않을지도…….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뇌신지혼을 형성하며 세 개의 원 구를 띄웠다. 그러고는 본디 팔황경천과 천랑뇌신결으로 보조하고 있던 구궁파천뢰에서 복잡한 구결을 다 놓아 버리고, 내가 태초부터 익히고 있었던 무척 단순한 구결을 불어넣으며 다시 한번 뇌신지혼을 날뛰게 해 보았다.
쿠구구구
또다시 어마어마한 속도로 뇌령이 뇌혼을 머금고 날뛴다. 나는 보나 마나 또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그 단순한 구결만 되뇌이면서 안정적으로 변하기만을 기도했다.
'에이씨, 될 리가 없지…… 이게 어떻게 되겠냐고.'
전뇌자가 이번엔 어떤 커피를 줄지를 생각하며 반쯤 포기하고 있을 때 였다.
키이잉 -
"……!!"
뭐지?! 잠깐이지만 이 격렬한 뇌혼의 흐름이 느려졌어!
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뇌신지혼이 극도로 강해지면서 동시에 내가 갖고 있던 거대한 기운이 한계까지 소모되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그 미묘한 순간에 재빨리 가속력을 붙이며 화신지혼으로 바꾸었고, 그러자 화신지혼으로 변하면서 갑작스럽게 힘이 꽉 하고 정수리까지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우오오!!]
됐다! 이걸로 한 번 힘을 다 빼 버렸으니 '3번째'를 넘어서 4번째 회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졌어!!
그러나 뜻밖에 고비를 넘긴 기쁨만 큼이나 나는 황당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발견에 입술 을 덜덜 떨었다.
[삼재심법(三才心法)이 도움이 되 다니.]
전생하기 전 첫 번째 삶부터 익히고 있던 심법.
천하에서 주화입마(周火入魔)가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기초심법.
숙수나 양아치나 하급표사도 익히 고 있는 개나 소나 익히는 기초심 법…… 삼재심법!
그 삼재심법이 지금 내게 고비를 넘기게 해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삼재심법이 무림의 최하급 심법이자 개나 소나 익힐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무척이나 운기행공(運氣行功)이 단순하다는 게 첫 번째였으며, 또 한 가지는 기(氣)를 크게 느낄 수 없어도 무리 없이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본디 기공(氣功)이란 대자연 속의 기를 느껴서 피부로 와 닿을 정도가 되어야 정상적으로 운행할 수 있지만 삼재심법은 그렇게 기를 느낄 필요도 없이 그냥 정신을 집중해서 몸의 혈도에 기를 보내는 상상만 하면 끝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단순무식한 탓에 축기(蓄氣)의 효율이 무척이나 낮았다. 제대로 된 대주천은커녕 소주천 도 할 수 없으니 당연한 것이다. 일류라 불리는 심법이 같은 기간에 몇 배나 되는 내공을 모을 수 있으나 삼재심법은 수십 년을 수련해도 결코 일류무사급 내공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내가 표사생활 오십여년간 내내 삼재심법을 수행했는데도 그걸 전생해서 뇌룡일기공으로 녹이니 그다지 오랜 수련치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쉽고 간단하게 누구나 익힐 수 있지만 무공심법이라고 부르기엔 역부족인 전형적인 삼류 운기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무력이 필요 없는 쟁자수나 표사 등한테 대충 삼재심법을 가르쳐줘서 하류배에 맞서서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삼재심법이 설마 사신지혼의 가장 중대한 시기에 도움을 주는 요체(要體)가 되다니!!
‘큭, 정신이 산만해졌어. 이대로 진행하면 또 죽을 테니 잠깐 멈추자…….’
슈욱
나는 삼재심법 덕에 2번째 단계로 넘어갔으나 정신이 흐트러져서 더 이상 수련할 수 없음을 깨닫고 사신지혼을 풀었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내 손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삼재심법이 어떻게 무림 최상승 신공조차 넘어선 절예(絶藝)인 사신지혼에 도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냥 삼재심법을 운용해 보았다.
고오오
웅혼한 내공이 솟구치며 삼재심법의 구결대로 3개의 혈도를 기가 한바퀴 돈 후 단전에 자리매김했다. 나는 그 단순한 흐름을 보며 실망했다.
‘그래, 이게 삼재심법인데…….’
고작해야 가장 중요한 요혈 3개를 스치듯이 원(圓)을 그린 후 단전으로 회귀하는 것뿐이다. 심지어 경맥에 자극조차 주지 못한다. 진짜 일류심법은 적어도 24개 이상의 혈도 를 지나고 소주천까지 한다는 걸 생각하면 이게 정말 내공심법인지 의심이 갈 지경이었다. 하지만 삼재심법이 방금 전 거대한 힘을 억제하는데 가장 중대한 역할을 한 건 사실 이었다.
도대체 왜일까?
‘삼재심법에서 쓰는 3개의 혈도는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 하지만 이 3개의 혈도는 다른 내공심법에서도 필히 쓰이는 최 중요 혈도다. 왜 삼재심법이…….’
다시 생각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인지 무려 사흘 밤낮 내내 내가 아는 무공지식을 모두 가져와서 고민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젠장!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일단 계속해 보기나 하자.’
원인은 몰라도 삼재심법이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 아닌가? 나는 마음을 다잡고는 다시 사신지혼의 수련에 들어갔다.
오오오오
뇌신지혼의 발동을 극대화시키는 순간 내공이 바닥까지 떨어지려는 아슬아슬한 때를 그저 감각으로만 잡아채지 않고 거기에 맞춰서 삼재심법을 운용한다. 그러자 실패율이 아예 없다는 듯이 안정적으로 두 번째 사신지혼의 변화로 넘어갔고, 나는 삼재심법의 효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삼재심법은 이 말도 안 되는 난이도를 없애주는 것이다. 나는 기쁜 마음을 감춘 채 계속해서 세 번째 변화로 넘어가면서 재차 구(球)에 걸리는 속도를 더욱 가속시켰다.
위이잉
‘…… 지금!!’
쩌엉
세 번째 변화로 무난하게 넘어갔다! 그러면서도 가속력은 더욱 강렬해졌고 내 몸의 내공은 한층 강대해져서 마치 원영신을 최대로 격발한 백련교주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세 번째 변화인 수신지혼(水神之魂)을 유지한 상태로 내 자신의 상태를 관조하자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굉장하다…… 예전에는 지나친 가속력 때문에 여기서 더 이상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바로 힘이 폭발할 것 같았는데, 지금은 가속력이 따로 미친 듯이 회전하지만, 본체(本體)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삼재심법으로 중간과정을 넘기는 동안 가속력이 본체와 분리가 된 것 같았고 그로 인해 안정성이 극히 높아진 걸로 보였다. 나는 이 상태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며 눈을 번쩍 빛냈다.
‘간다…… 마지막 네 번째 변화!!’
쿠구구구!!
쩌엉!!
‘성공했다!!’
나는 수신지혼에서 풍신지혼의 변화를 성공하자 감격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수십여 년 동안 막혀 있던 벽이 뚫린 것이다!!
‘세…… 세상에…… 설마 삼재심법이 답이었다니!!’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쭉 웃음이 나왔지만 동시에 대경(大境)을 성취했다는 생각에 눈물마저 날 것 같았다. 그러나 풍신지혼의 상태라서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고 나는 네 번째 변화를 달성한 내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윙 윙 윙 윙 윙 -
‘속도가 너무 빨라지다 못해…… 광구(光球)가 되어 버렸다.’
4번의 변화 내내 가속력을 붙여서 팽이처럼 채찍질을 했기 때문일까? 내 몸을 돌고 있는 3개의 소구는 이제 성질조차 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자전과 공전을 동시에 하고 있었으며 새파란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굉장한 속도로 공전하는 그 광구의 기세는 어마어마해서 마치 내 몸 주변에 고리가 생긴 것 같았다. 나는 이 상태가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5번째로 가는 순간 이 광구들은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다!
"……."
독자적인 생각으로 여기까지 수련 단계를 높여왔지만, 이 수련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건 아마 이 다음번인 5번째 사신지혼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죽을 확률이 극도로 높다는 걸 짐작했고 또다시 끔찍한 고통이 덮칠 것이라 예상했지만 각오를 단단히 했다.
‘전생자가 죽음을 두려워해서 쓰나!’
간다!!
뇌신지혼에서 시작해서 화신지혼, 수신지혼, 풍신지혼의 차례대로 변해왔던 공정. 그 공정에서 다음으로 향할 변화는 당연히 뇌신지혼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원(圓)처럼 원점으로 회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원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치지징
장중한 번개의 파장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나는 뜻밖의 현상을 경험했다.
‘앗?! 소구 3개가 갑자기 내 몸에…….’
츠아아앗
내 몸을 고리처럼 가공할 속도로 회전하던 소구 3개가 점차 회전반경을 좁히며 내 몸에 맞닿기 시작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변화라서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마침내 소구 3개는 내 몸에 흡수가 되었고, 그 순간 나는 덜컹하면서 내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걸 알 수 있었 다.
파파파팡!
몸 내부에서 공기로 가득 찬 풍선이 계속 터지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고 마치 체내에 응축되어 있던 힘의 덩어리가 이제서야 압축을 풀고 퍼져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몸 내부에서 수백 개의 풍선이 연속으로 터지는 동안에 나는 갑작스럽게 몸에서 어마어마한 뇌류(雷流)가 뿜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꽈르르릉!!
꽈릉!!
그 뇌류는 잠시 후 실체화된 번개로 변했고 내 전신을 뒤덮는 것도 모자라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번개의 기둥으로 변했다. 그 번개의 기둥은 점점 넓어지더니 이윽고 저 만치에 있던 청룡무관까지 기둥의 범위에 들어가 버렸고, 번개의 기둥에 들어간 청룡무관의 사물들은 모조리 초고압의 번개에 그대로 분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치지지직
치지직…….
도대체 뇌주(雷柱)가 어디까지 커지는 걸까? 이윽고 나는 뇌신지혼의 상태로 거대한 번개의 기둥 속에 천지가 새하얗게 변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이미 범위가 물경 몇 리를 넘어선 듯한 번개의 기둥은 지금도 계속 넓어지고 있었고 지평선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번개의 폭풍이 세상에 몰아치는 건가?’
아니, 그게 아니다.
폭풍 같은 자연현상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로 농축된 뇌정(雷精)! 어마어마한 힘을 머금고 있는 뇌정이 공간 그 자체를 잡아먹는 것 이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자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놀랐다.
‘말도 안 돼…… 내가 이 정도의 뇌력을 어떻게 발현할 수 있는 거지?’
뇌신류의 무공을 연마하며 구궁파천뢰를 쓰게 되면서 인간세상에서는 마치 뇌전의 폭풍처럼 보일 정도의 뇌력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 내게서 발현된 뇌주의 공간은 그것과도 차원이 달랐다. 순수한 힘의 밀도와 양으로 본다면 수백, 아니 수천 배나 넘어서는 광대 한 위력! 이 뇌주의 밀도를 그저 무기에 덧씌우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내공이 필요할 것인데 지평선을 메울 정도의 범위로 전개한다는 건 인간의 상상력을 반쯤 넘어서 있었다. 틀림없이 내 구궁파천뢰의 뇌령이 본래 지닌 힘을 한도 끝도 없이 넘어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거대한 뇌주 속에서 잠시동안 내 안에서 힘이 들끓는 것 을 알 수 있었다.
파지직
힘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다. 나는 손발이 마치 마른 나무가지처럼 쩍쩍 갈라지면서 내 몸이 빠르게 뇌전 속에서 타들어 가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역시 이 정도로 압도적인 뇌주 속에서는 아무리 내가 뇌인의 형상을 취하고 있어도 제대로 버티기가 힘든 것이다.
[크윽!]
그 와중에도 내 내면에는 안정된 힘이 필사적으로 내가 죽지 않게 버텨주는 게 느껴졌다.
‘이건 분명 삼재의 혈도에서…….’
그 생각을 끝으로 내 몸뚱이가 처참하게 터져 나갔다.
퍼어엉
* * *
"상당한 고통일거야."
전뇌자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몸의 첨단(소端)까지 갈가리 찢겨 나간 고통이라서 굉장히 아플텐데 왜 그런 표정인 거지?"
나는 고통을 짓씹어 누르면서 내 주먹을 꽉 쥐었다. 너무 아파서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전뇌자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전뇌자를 쳐다보며 히죽 웃었다.
"시행착오도 없이 한 번에 단서를 얻었으니까."
"……."
"빨리 되살려주기나 해."
그러자 전뇌자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잠깐 기다려."
나는 전뇌자의 대답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지금 이 감각을 잊고 싶지 않아! 지금 당장에라도 살아서 수련해야 한다고!"
"당신의 수행을 방해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그럼 왜!"
"…… 이건 진통작용이 있는 커피야."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전뇌자가 천천히 커피 한 잔을 내 쪽으로 밀었다. 마시라는 뜻인 걸 알아챈 나는 커피잔을 잔뜩 노려보다가 마지못해서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통증을 가라앉히며 잠시 시간이 지나자 전뇌자가 말했다.
"거의 다 됐어. 1분만 있으면 다시 생성될 거야."
"뭐가 생성된다는 거지?"
"세계."
"뭐?"
전뇌자는 투명한 눈으로 내 쪽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당신이 죽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세계가 박살 나 버렸어. 그래서 그 세계를 복구해서 재생성시키고 있었지."
"……?!"
"아무것도 없는 우주의 무(無)에서 부활시킬 순 없잖아."
뭐라고!
나는 약간 놀라서 전뇌자에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서 수련하던 세계가 멸망했다는 뜻인가?"
"딱 그 말 대로야. 행성이 조각나 버리고 세계의 법칙도 엉망이 되어버려서 재생성하는 수밖에 없었어."
그렇게 말한 전뇌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당신이 대체 뭘 갖고 온 건지 모르겠네."
* * *
번쩍
"……."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뇌자의 말대로라면 이번 죽음과 함께 이 세계가 한 번 멸망해 버리는 바람에 세계를 회복시키느라 나를 부활시키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소리다. 그런데 대체 왜 세상이 멸망한다는 말인가?
설마 사신지혼의 뇌주가 폭주해서 행성을 날려 버린 것인가?
‘그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힘이긴 하지만…….’
나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털었다.
"아냐. 어쨌든 내 수련에 방해될 건 없어."
그냥 부활할 때까지 커피 마실 시간이 조금 늘어난 것뿐 아닌가? 부활이 멀쩡하게 된다면 내가 고민해야 할 이유 따위는 하나도 없다!
나는 다시 한번 삼재심법의 혈도를 더듬었다.
‘…… 천(天)의 백회혈(百會穴). 지(地)의 중완혈(中脫穴). 인(人)의 하단전(下丹田)…… 단궁(丹宮). 일직선으로 정수리에서 단전까지 쭉 뻗어 있는 단 3개의 혈도. 백회혈은 정수리이며 중완혈은 명치 부근이며 하단전은 말 그대로 단전이니 이렇게 단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단순한 삼재심법이 날 살려줄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지만 이 이유를 알아야만 내가 진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직감할 수가 있었다.
"흠…… 어쨌든 사신지혼을 한 번 윤회(輪回)시킬 수 있다는 건 입증되었군. 그리고 윤회시켜서 첫 바퀴를 돌렸을 때 갑작스럽게 사신지혼의 위력이 어마어마하게 증폭한다는 것도……."
마지막의 뇌신지혼을 쓸 수만 있다면 도대체 얼마나 강해질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어쩌면 신력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해지지 않을까? 다만 그 막강한 힘을 다스리기에 삼재심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가히 힘의 한계가 없는 무공처럼 느껴진다.’
여태껏 심득만으로는 사신지혼보다 더 고절하고 대단한 무공이 많았다. 신역절기라 일컫는 것들이 보통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사신지혼의 윤회를 한 번 터득하고 나니, 순수하게 ‘힘’ 그 자체만으로는 이 사신지혼의 한계가 없다시피 하다는 게 느껴져 버렸다. 그래서 과연 이 사신지혼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도리어 더 궁금해진 것이다.
그럼 이제는 뭘 해야 하는가?
또다시 사신지혼의 윤회를 발동시켜봤자 개죽음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삼재심법으로 확보한 안정성만으로는 한 번의 윤회 이후에 증폭되는 힘을 버티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추가로 안정성을 얻기 위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리라.
‘삼재심법을 수련해 볼까?’
좋아! 어디 해 보자!
삼재심법이 알고 보니 천하의 모든 심법을 뛰어넘는 절세무공이었을지도 모르잖아!
우우우
나는 열심히 몰아지경에 빠져서 삼재심법을 밤낮으로 운기했다. 그리고 운기토납법과 함께 삼재심법을 연속해서 잠도 안 자고 수련한지 몇 년이 지났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 그렇군!!"
나는 깨달음에 나도 모르게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역시…… 쓰레기야!! 제기랄!!"
도대체 몇 년을 허송세월한 거야?!
그저 세 개의 혈도를 왔다 갔다 하는 이 단순한 심법은 말 그대로 심법으로 불리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기초중의 기초에 불과하다! 뇌신류 기초심공인 뇌룡일기공에 비하면 아예 쓰레기나 다름없고 강호의 유수한 종파들이 갖고 있는 모든 내공심법이 삼재심법보다는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싶어서 몇 년 동안 그 사실을 부정하며 미친 듯이 가부좌 틀고 호흡만 했지만, 도저히 이건 아냐! 뭔가 특별한 비밀이 있을 리가 없잖아! 내가 이 삼재심법을 오십 년 가까이 수련한 사람인데 이제 와서 또 다른 뭔가가 있을 리가 없다고!!
철푸덕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져서 뒤로 털썩 누워 버렸다. 아무리 삼백 년이 길다지만 이런 식으로 시간 낭비를 하면 괴로움은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순간 피식 하고 웃었다.
‘하…… 첫 번째 생에서는 매일 삼 재심법을 열심히 수련해도 이런 감 정이 든 적은 없었는데.’
전생하면서 너무 고급무공을 많이 익힌 탓에 생긴 현상인 건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삼재심법은 쓰레기다…….
…….
‘첫 번째 삶에서는 어떻게 살았더라? 매일 고된 표사일을 하고 장구를 정돈하고 표물을 마차에 싣고…… 남는 시간에 쪽잠을 자면서 삼재심법이나 육합검법을 수련하고…… 피곤해서 일을 실수하면 선배한테 뺨 처맞고 그랬던가…… 식량배급이 부족하면 풀을 씹으면서 허기를 달래고…….’
아득하게 먼 기억 같지만 기억하려 하니 기억이 난다. 지금에 비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그 삶을 이미 잊어버렸다 생각하지만, 기억은 나는 것이다.
문득 나는 의문이 생겼다.
나는 그때가 행복했을까 아니면 지 금이 더 행복한 걸까?
"당연히 지금이 더 행복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 속에서 꿈 하나만 갖고 살아가던 그 당시의 삶도 적응되었을 때는 나름 괜찮았던 거 아닐까?
그러고 보니 망량이나 진소청은 내 첫 번째 삶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나는 감기에 걸려서 하산하지 않았다면 계속 산에서 육합검법을 수련하면서 살았을까?
"……."
간만에 육합검법이나 펼쳐볼까?
부웅 부웅
나는 문득 검을 잡고 육합검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몇 년 내내 가부좌 틀고 삼재심법만 수련했던 원한이라도 풀고 싶은 듯 전력을 다해 검강까지 쓰면서 시전하는 중이었다.
육합검법은 말 그대로 내 평생동안 익혀온 검술 중 하나였고 오십 년 내내 익혔었고 명룡자 밑에서 초회복을 하면서 수만 번씩 휘둘렀기에 이 또한 영혼까지 각인되어 있는 검법이었다. 그러나 육합검법의 32개 동작 8초식은 너무나 단순하고 검술의 기본만을 담고 있어서 말 그대로 기초검법이다.
육합검법 또한 삼재심법과 마찬가지로 아무 느낌도 없다. 너무 단순하고 너무 기본이라서 뛰어난 점을 하나도 담을 수가 없다. 쾌(快), 환 (幻), 변(變)등 검술의 일류달인들이 갖고있는 장점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물론 다른 검술으로 예(藝)를 터득한 달인들이 육합검에 그 의념을 담을 수는 있겠지만 육합검법 자체가 가진 위력은 아무것도 없다.
‘단순하…… 다?’
철렁!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아수라의 말이 생각나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검류 중에서 환변쾌영(幻變快影)은 잘 하는데 중반신류연비(重反逃 流軟飛)는 그다지 못 하는군.]
[무의식의 선호도조차 균일(均一)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해.]
[열 개의 검류, 혹은 그 이상의 만상(萬像)을 내면에서 편차없이 배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수라는 내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수많은 검류를 연습하게 했고 그 하나하나를 내게 고르게 배분할 것 을 주문했다. 그러나 그것은 3천 년 동안 무공만 수련한 아수라만 도달한 경지였기에 나는 짧은 수련기간 동안 엄두도 내지 못했으며, 또한 그 개념조차 뭐가 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수라도 내게 그냥 단서만 줬을 뿐 기대도 하지 않았던걸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나…….
"육합검법은…… 단순하……다……."
나는 멍하니 중얼거리며 내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홀린 듯이 검의 끝에 시선이 향했다.
"그러므로 무류(無流)……."
어째서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일까.
아무런 흐름도 뛰어남도 없는 이 육합검법이야말로 진정한 무류(無流)이기에, 만상(萬像)의 균일(均一) 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쐐액
육합검법의 초식들을 다시 연거푸 펼친다. 마치 아무런 조미료를 넣지 않은 생고기마냥 밋밋하고 비리기까지 할 정도로 날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기와 의념을 넣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다시 펼치면 펼칠수록 감이 온다.
이 무류(無流) 외에는 아수라가 이야기했던 균일(均一)을 실천할 방법이 없다는 게.
기본 중의 기본만 모아놓은 검법이니 이보다 더 균일한 게 있을 수가 없다.
‘아무런 색(色)이 없기에…… 어떤 색으로도 덧칠할 수 있는 것인가.’
틀림없다. 육합검법을 연마해야만 아수라가 이야기했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와 동시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아수라는 내게 직접 육합검법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거지?"
너무 단순하지 않은가. 비밀의 사막유적에서 수련하던 그때 전체적인 수련시간이 짧긴 했지만, 고작 한마디를 못할 정도로 시간이 없진 않았다. 만상의 균일에 이르기 위해서는 육합검법을 이용해서 수련하는 게 좋다는 그 한마디를 왜 안 해주었단 말인가?
어째서? 아수라가 보기에도 나는 둔재일 텐데 어째서 내게 수련단계를 알려주지 않았단 말인가?
그 당시에는 분명히 조금이라도 더 내게 단서를 주려고 했을 건데 왜 말하지 않았을까.
아수라가 이 사실을 몰랐을 리도 없다. 3천 년 내내 수련해서 암야참까지 깨달은 존재가 설마 육합검법이 단서라는 걸 모르리라는 건 무술인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가정이다.
나는 혼란에 휩싸였다.
설마 아수라가 일부러 내게 가르침을 한정해 버렸던 건가?
‘아니…… 아니야. 그렇게 단순한 얘기일 리가 없어. 그 때 상황을 생각해보자.’
나는 그 당시에 아수라한테서 들었던 가르침을 좀 더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자 아수라가 했던 말이 좀 더 기억이 났다.
[중검치고는 너무 빠르잖아. 속도를 줄여 봐.]
[그렇긴 하지만 암야(暗夜)를 익히려면 [부족함]을 느껴야 하거든.]
그래…… 처음에 검류의 균일을 추구했던 이유는 아수라의 입장에서 내게 암야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라 고 했었다. 그러나 나는 몇 달 내내 수련했는데도 균일과 암야의 관계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아수라와 헤어져 버렸고 어영부영 흑웅을 부활시키러 갔던 것이다.
‘그 이후에 재회한 아수라에게 암야참을 제대로 배웠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그 때 아수라가 했던 말도 기억이 나기 시작한다.
[몇 년 정도는 좀 더 기초를 다듬으려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좀 이른 감은 있지만 따라와라.]
아수라는 내게 기초를 다듬게 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암야참을 전수 한 것이었다. 그 말은 본디 암야참 을 익히려면 [부족함]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만, 그 단계를 일부러 통과하고 요체만 가르쳐줬단 뜻이다.
나는 그 순간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를 알아챌 수가 있었다.
‘암야참의 원리는 의념이 무(無)가 될 때까지 역회전시키는 것…… 사실 그 원리가 뭔지는 지금도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부족함]을 깨닫는 단계가 본디 있어야 했다 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그 단계를 거치지 않고 편법으로 암야참을 쓰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암야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거야.’
나는 점차 감정이 진정되면서 아수라가 어째서 그랬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렇군! 아수라는 사실 내가 스스로 깨닫기를 원했던 거야! 이 육합검법의 단순함에 이르러서 무류(無流)야말로 가장 균일하다는 걸 알아야, [부족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거지!!’
그리고 아수라가 직접 이런 걸 말로 해줄 이유도 없었으리라.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직접 깨닫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 가 없으니까……."
그래, 의미가 없다.
아수라가 직접 육합검법의 의미와 암야참의 관계를 설명해주면 뭘 했겠는가?
결국 편법 암야참을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내가 전생을 이어나가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가르쳐주긴 했지만, 무인(武人)으로서는 굳이 초상승의 깨달음을 필설로 형용해서 줄 필요가 없고, 줄 수도 없다. 모든 것은 자기가 스스로 행하여 노력하고 깨달아야 하기에!
그것은 아수라가 야박하기에 주지 않은 깨달음이 아니다. 동료로서의 호오(好惡)가 존재할 수 없다.
이 세계에서 발을 딛고 인생을 살 아가는 자들은 모두 가장 중요한 순간에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야 할 수밖에 없다.
그 진리는 무(武)의 세계에서 더욱 굴강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불끈
나는 주먹을 꽉 쥐면서 외쳤다.
"그리고 이 육합검법을 수련하다 보면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단 말 이겠지!"
길이 확실히 정립되었다!
편법으로 암야참을 쓸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건너뛰어 버린 단계를 다시 되짚어서 수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고리를 되찾는 순간 나는 진짜 암야참을 구사할 수 있게 되리라!
슈슈슉
나는 육합검법을 펼치면서 하나하나의 초식에 각기 다른 검류(劍流)를 부여해 보았다. 여태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육합검법보다 훨씬 정밀하고 깊이 있는 뛰어난 검술을 많이 익혔기에 굳이 육합검법까지 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파바바밧
한 번 환검(幻劍)과 변검(變劍)의 의념을 흘리자 육합검법의 평범한 초식은 마치 구름 같은 검영(劍影)을 뿜어내었고, 강검(强劍)의 의념을 불어넣자 산도 쪼개 버릴 것 같은 기력을 담았으며, 유검(柳劍)을 담자 모든 힘을 흡수하는 반격기가 되었다. 나는 육합검법을 신이 나서 펼치면서 생각했다.
‘역시 이렇게 되지. 절대지경의 의념을 쓰면 그 어떤 쓰레기 같은 검법이라도 바로 절세검법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검술 그 자체가 아니라 쓰는 사람의 문제가 된다. 물론 무림 최강의 검술로 꼽히는 굴공천축검이나 공손검법 같은 건 약간 예외 였지만 그나마도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나게 되어 있어서 근본원칙은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육합검법으로 싸워도 웬만한 적에게는 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겨서 신이 났다.
퓨퓨퓽
콰아앙!!
삽시간에 수백 개의 검영을 뿌리다가 단숨에 검강을 날려 대지를 폭발 시키자 기분이 좋아졌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랬지만 이 정도면 멋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하늘에 뜬 채 괜히 기분이 좋아서 히죽거리며 웃었다.
"좋아!! 육합검법을 계속 수련해 볼까!!"
나는 그렇게 육합검법에 각기 다른 검류를 담아서 수련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또다시 시간이 수백 일이 지나고, 머지않아 일천 일이 훨씬 넘어갔다. 몰아일체가 된 반복수련이 워낙 익숙해지다 보니 세월이 쏜살같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육합검법의 전개를 하다가 뭔가를 알아차렸다.
"아…… 그렇구나……."
이것도 아무 의미 없는 수련이다.
"……."
제길, 이런 깨달음은 딱히 얻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지금 얻은 최악의 깨달음 때문에 똥씹은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제기랄.’
각자 다른 검류를 담고 아수라의 밑에서 하던 검류 수련이 계속되어 그때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검류를 익숙하게 다루는 연습이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의념(意念)이 검법(劍法)을 잡아먹어 버리는구나."
나는 탄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절세고수가 육합검법 같은 삼류검술을 펼쳐도 절세무비한 위력을 뿜어낸다는 건 언뜻 무(武)에 뜻을 둔 자들에게 멋있어 보이는 일이다. 어차피 경지가 높으면 손에 들린 게 부엌칼이라도 명검처럼 쓸 수 있다는 얘기와 똑같기 때문이다. 나도 그 사실이 좋아서 간만에 아무 생각 없이 즐기며 수련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수련을 하면 할수록 내가 손끝에 잡고 있는 건 검(劍)이 아니라 의념의 덩어리일 뿐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지의(至意)가 있다 한들 무념(無念)을 소화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육합검법을 전설의 검술처럼 쓸 수 있다고 해도, 결국 아무것도 없는 도화지에 제멋대로 낙서를 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내 마음대로 수만 가지 색깔을 칠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결코 아름답지 않으며 자유에 되레 의지가 먹혀 버린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명필을 가지고 훌륭한 물감을 썼어도 거기에 지나친 무절제가 덧씌워졌을 뿐이면 낭비에 불과하다.
이건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다. 무의(無義)하다면 그것은 예(藝) 아니고 무법(無法)일 뿐.
하지만 이 무절제한 자유속에서 나는 대체 뭘 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나도 모르게 또다시 탄식해 버렸다.
"부족하구나……."
…… 어?
방금 내가 왜 부족하다고 한 거지? 지금은 도리어 자유가 과하게 넘치는 상황이 아닌가?
나는 내가 말하고도 어리둥절해서 그 마음을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 어째서."
분명히 지금 했던 탄식은 아수라가 말했던 대로 [부족함]을 깨달은 게 맞다.
그러나 부족함을 깨달았다 하여도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없다. 체감의 영역에서는 부족함을 알게 되었으나 내가 확실히 인식해야만 이 경지를 내 것으로 만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체 무엇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인가?
바로 그때였다.
"부족하긴. 과하게 넘쳐 보이는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기척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그 존재를 보자마자 말했다.
"심수력."
그는 씩 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봐, 내 걱정은 하지 않나? 세상이 한 번 멸망했었다는 거 알고 있는데."
나는 심수력의 말에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전뇌자라면 당신을 되살려줬을 거라 생각했소. 별다른 이유 없이 내게 해를 끼칠 녀석은 아니니까."
전뇌자가 심수력을 되살려주지 않았다면 나는 전뇌자를 찾아가서 당장 결판을 냈을 것이다.
그리고 전뇌자는 그렇게 못돼먹거나 멍청한 놈이 아니니까 어딘가에서 나처럼 부활했으리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수련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굳이 날 찾을 이유도 없었겠군. 뭐, 그럴 만도 해."
어깨를 으쓱하는 심수력을 쳐다본 나는 의아해서 말했다.
"방금 전 나는 정말로 당신의 기척 을 느끼지 못했소. 어떻게 내게서 오 장 거리까지 기척 없이 접근했던거요?"
"짐작하고 있겠지만 풍신지혼 덕분일세. 자네가 수련하는 몇 년간 나도 놀고 있던 건 아니었거든."
스스스
심수력의 양팔이 갑자기 투명해져서 사라졌다. 나는 그게 풍신지혼을 일부만 전개한 모습이란 걸 알아채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음."
저렇게 일부만 사신지혼으로 만드는 건 아직 나도 못 하는 건데…….
역시 그는 재능이 뛰어나서 내가 모르는 영역까지 사신지혼을 개척한 모양이었다.
심수력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자네도 풍신지혼의 유용함을 곧 알게 되겠지. 아마 풍신류가 정신 차리고 풍신지혼 같은 기술을 만들었으면 그들이 사대무류 최강이었을걸세."
"…… 화신류라면서 그렇게 인정해도 되는 거요?"
"사실이니까. 풍신류도 의외의 가능성을 갖고 있었어."
심수력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사실 여기 온 지는 몇 달 되었네. 그동안 계속 거리를 두고 기척을 숨겨서 자네가 몰랐을 뿐. 그리고 자네의 수련은 처음에 뭐가 뭔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소?"
"그래. 대체 육합검법에 그렇게 많은 의(意)를 불어넣는 이유가 무언가?"
"…… 사실은."
나는 심수력에게 내가 그동안 겪었던 심득과 생각을 말해주었다. 그걸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심수력이 말했다.
"백웅."
그는 마뜩잖은 기색으로 말했다.
"진정한 암야참을 얻는 대신 다른 모든 무공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렇게 할 건가?"
진정한 암야참을 위해 다른 모든 무공을 포기할 수 있냐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상식적으로 그럴 수 없지. 무슨 의미로 꺼낸 말이오?"
"자네, 암야참이 의념을 무(無)로 만드는 원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 않은가."
"알고 있소."
"그렇다면 자네가 중간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든간에 결국 모든 의념을 무로 되돌리는 걸 수련하게 될 걸세. 만상의 균일을 추구하며 [부족함]을 깨닫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 부족함조차 무(無)가 된다는 게 아닌가?"
"……."
"그 암야참이란 건 반무공(反武功) 이라고 생각하네. 그러므로 암야참의 극에 달할수록 자네가 가진 다른 무공과 어우러지기는커녕 단독으로 쓸 수밖에 없게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일세."
"반무공?"
"의념이야말로 무공의 근간일진대 그 의념을 부정하니 무공에 반대되는 무공, 반무공이 아니겠는가?"
"…… 흐음."
나는 심수력의 말을 주의 깊게 생 각했다.
‘심수력은 내게 깨달음을 주려는게 아냐. 그저 지극히 정론(正論)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여태껏 이런 무공에 관련된 대담에서 상대방은 무언가를 앞서 깨닫고 나서 내게 그걸 은유하여 알려주는 경우가 절대다수였다. 그러나 심수력은 암야참에 대해 뭔가 알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내게 들은 대로 의 암야참에 대해서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의견을 제시한 것뿐이다. 그래서 그의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의 관점을 그저 참고하는 게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수력의 말에 따르면 암야참은 반무공…… 흠…… 그런 생각은 거의 하지를 못했군.’
의념을 부정하니 무공이 아닌 무공, 무공을 반대하는 무공이 바로 암야참이라는 건가?
‘하지만…… 어째서 암야참은 의념 을 부정하는 것이지?’
사실 이건 내가 아수라에게서 암야 참을 전수받을 때부터 기이하게 여겼던 것이었다. 아수라는 이미 적멸 무극이라는 사상최강의 절대지경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자기 손으로 적멸무극을 매장지내고 암야참을 새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암야참은 의념을 부정하는 반무공이니, 평상시에는 그 어떤 절대지경 절학보다 약한 기술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수라의 말을 기억해냈다.
[만일 네가 어떤 고수와 수만 초 이상 격돌한다 칠 때, 누가 네 검류의 흐름을 완전히 읽고 승기를 잡는 다면 어떻게 할 거냐?]
[이를테면 여동빈. 그는 아마 할 수 있겠지.]
[그래도 넌 전생자니까 수백 수천 년 동안 수십만 번은 싸우겠지. 그렇게 많이 싸우다 보면 저절로 몸에 배지 않겠냐. 굳이 연습을 안 해도 다 익히게 될 정도로 싸우면 충분 해.]
그렇다. 만상의 균일을 익혀 [부족 함]을 느껴 암야(暗夜)에 도달하는 그 과정 - 거기에 도달하려면 [흐름]을 읽어내야 했고, 그 흐름을 읽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실전을 요구했다. 나는 그 당시에는 그 실전의 요구량이 터무니 없어서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으나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육합검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