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470-1475화 (1,384/1,615)

번쩍

나는 피 웅덩이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이게 내가 흘린 피인지 의심될 정도로 막대한 출혈량에 나는 잠시 아연해 졌지만, 나는 신력을 써서 피 웅덩이를 없애 버리고는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계속 수련해 본다!!"

설마 첫 시도부터 주화입마에 걸려 죽을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나는 이게 길이라고 믿고 있다!

방금전에 힘의 소모가 너무 막대 했다면 이번에는 회전의 속도를 조금 줄여 보는 걸로 대처해봐야겠다.

우우우 -

다시 네 번째 변화에 돌입했을 때 아까보다 회전력이나 가속은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는 역시나 전신에 울긋불긋한 핏줄이 돋아나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또 죽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하고는 급히 전신의 내 공을 격발시켰다.

쿠콰콰쾅

내공의 밑바닥까지 다 끌어올려서 한순간에 격발시키자 그 파장만으로도 내가 앉아 있던 연무장은 물론이고 청룡무관 건물 전체가 붕괴해 버렸다. 그러고도 힘이 남아서 웅대한 기운이 자연에 폭풍(暴風)을 만들어 내어서 한순간에 천공 수백 장까지 뻗는 돌개바람이 사방에 날아다녔다.

"크르르륵…… 으으윽!!"

풀썩

나는 간신히 모든 진신잠력을 격발 시킨 덕에 목숨만은 건질 수가 있었다. 그러나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서 앞으로 고꾸라졌고, 여전히 생사의 경계에 놓인 채 의식이 암울하게 젖어 들어갔다.

'아…… 안 돼…… 이 미친 소모도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아까는 불의의 습격처럼 주화입마를 당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시도로 확실히 깨달았다. 애초에 4번째 변화로 넘어가는 순간 인간으로서 내가 가진 한계를 가볍게 넘어 버리기 때문에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바닥에서 한참 동안 피를 토하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헐떡이며 일어났다. 주화입마 초기에 들었기 때문에 최소한 며칠 동안은 정양해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신력을 쓰면 바로 회복할 수 있잖아…….'

며칠 동안의 수련시간 낭비를 피하고 바로 회복해 버리면 되지 않을까?

아니…… 지금뿐만이 아니라 사신지혼의 수련 때도 4번째 고리에서 신력을 써서 내 힘을 전부 회복해 버리면 그만이잖아? 주화입마도 바로 극복할 수 있어!

나는 뜻밖에 굉장히 쉬운 해답이 나오자 혹하는 마음이 들었다. 확실히 신력만 쓰면 지금 막혀 있는 진도가 모조리 해결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몇 년씩 삽질하지 않아도 바로 성과를 얻고 경지를 높일 수 있지 않은가!

"……."

그러나 나는 잠시후 그냥 가부좌 를 틀고 앉아서 내상치료를 했다. 이렇게 하면 신력만큼 빠르게 회복 되지는 않아도 며칠의 회복시간을 두세 시진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신력에 의존하지 않겠어.'

신의 힘을 빌리는 게 이 문제의 답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지만 나는 왠지 모를 오기 때문에 신력을 쓰는 걸 스스로 거부하기로 했다. 인간의 힘인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에 신력이라는 사기적인 힘으로 그걸 때운다는 건 매혹적인 제안이지만 결국 인간의 힘을 부정하는 꼴 이 되는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 안 좋은 건 바로 '쉬운 길'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날로 먹고 싶어 하는 이 마음을 극복하지 않으면 절대로 사신지혼의 수련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절실한 위기감을 느낀 채 몸 을 회복하여 다시 사신지혼의 수련 에 돌입했다. 그리고 머리를 굴렸다.

'신력을 쓰지 않고 4번째 회전의 압도적인 소모량을 극복하려면 어떻 게 해야 할까?'

왠지 감이 온다. 4번째 회전을 넘 어서면 또 다른 경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소모량이 갑자기 극대화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나로서는 편법을 쓰지 않고 내 내공과 의념을 몇 배나 넘어서는 것 같은 미친 소모량을 감당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으으으으.."

그런 방법이 있나?

나는 며칠 동안 밤을 새워가며 꼬박 생각을 거듭했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소모량은 절대 인간으로서는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내공은 이미 인간으로서 가 질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해 있었고 절대지경의 의념 또한 수많은 전투로 발전해 와서 다른 절대고수들에 못지않은 수준에 이르렀다. 이걸 단숨에 몇 배나 늘린다는 건 절대 현실적이지 못하다.

생각은 계속되었다. 나는 생각하는 동안에 무공수련은 아예 하지도 못 하고 있었으며 순식간에 한 달 정도는지나간 것 같았다. 나는 좌선한 채 멍하니 있다가 이윽고 한숨을 쉬 었다.

"제길. 어쩔 수 없지…… 그냥 하자!!"

아슬아슬할 때까지 회전을 최대한 줄여서 4번째 회전을 어떻게든 넘어가 보자!!

우우웅

"쿨럭! 쿨럭!!"

우우웅

"끄에에엑…… 하으으윽……."

…….

나는 수십 번의 시도를 하면서 수 백 일 내내 피를 토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시도가 백여 번을 훨씬 넘었을 때에서야 피를 토한 채 바닥 에 누워서는 깨달았다.

'안 되는구나…… 회전을 아무리 적게 해도…… 일단 한 번 가속이 시작되면 4번째 회전에서는 압도적인 소모량이 시작된다…… 즉…… 처음부터 회전을 0으로 하지 않으면 안 돼는데…… 그러면 원운동을 시도할 수 없잖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으아아아아!!"

퍼엉

나는 화풀이하듯 전력으로 회전을

가속 시켰다가 또 주화입마에 빠져 죽었다.

* * *

"또 왔네."

"……."

덜컹 덜컹

전뇌자는 너구리인형 수납장을 뒤 적거리다가 선글라스를 낀 너구리인 형을 손에 들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 * *

번쩍

나는 너구리 인형을 받아든 후 다시 깨어났다.

'제길.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 같 은 기분이군…….'

이번에는 몸이 축 처져서 기분이 더럽다. 나는 잠시 내공을 운용해서 몸을 회복한 후 전뇌자의 말을 되새 겼다.

'발상의 전환? 어떻게 발상을 전환 하라는 거야.'

지금 문제는 무작정 노력으로 계속 도전해도 절대 안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이라는 얘기가 나온 건 알겠지만 어떤 식으로 발상 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인가?

'음…… 회전을 시작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가속을 시키는 것도 해야 하고…… 여기서 발상의 전환을 할 게 있긴 한가…….'

단순한 구조라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내가 알쏭달쏭해서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 나는 일단 뇌신지혼을 시 도해보기로 했다.

번쩍!

뇌신지혼의 큰 그릇과 함께 3개의 다른 형질이 공전한다. 나는 이 상 태에서 가속을 시작시키기만 하면 또 지옥 같은 한계가 닥쳐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생각이 막혀서 더이상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후우. 젠장…… 내가 뭔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이런 수법들이 실전에선 어떻게 쓰일까……."

그 순간 나는 번뜩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 실전?"

잠깐…… 설마?

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전신에 힘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여태껏 거의 시전하지 않았던 뇌령(雷靈)의 전개를 몸 안에서 끌어당겼고, 이윽고 빠르게 원구가 몸 안에서 회전하는 기분이 들었다.

'되는구나.'

이것도 주화입마에 들까 봐 걱정했 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역시나 같은 뿌리에서 나온 무공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호환이 되는 것이다.

이윽고 나는 힘을 모아서 외쳤다.

"구궁파천뢰!!"

번쩍!!

파지직!! 파직!

그 순간 몸 안에서 휘돌던 뇌령들 이 마치 한순간에 연쇄폭발하듯 거대한 휘광을 뿜어내었고, 내 몸은 그 휘광과 함께 강렬한 뇌전(雷電) 에 휩싸였다. 나는 내 인간의 몸뚱이가 윤곽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고 마치 광인(光人)으로 변한 듯 한 상태가 되자 크게 놀랐다.

[이건!!]

목소리 또한 육성이 아니라 마치 자연속에서 뇌명이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되었다.

웅웅웅웅

뇌전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내 몸 주위에 회전하는 3개의 소구는 멈추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그 소구들은 내가 뇌전으로 변했는데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 자신의 형질을 유지하고 있었다.

치징

혹시나 해서 가볍게 주먹을 뻗어봤는데 보통 육체상태에서 뻗어내는 주먹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마치 내가 주먹을 뻗는 경로 그 자체가 뇌로(雷路)처럼 빛의 선으로 변해 있었다.

가칫!!

다음 순간 마치 번개인간처럼 변했던 내 몸 상태는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내가 펼치고도 믿을 수가 없어서 눈을 껌벅이며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이럴 수가……."

틀림없다.

방금 그 전개상태는 이청운이 펼치던 뇌신지혼!

아니, 전력의 양이나 안정된 상태만 본다면 그 힘을 훨씬 더 넘어서는 뇌인(雷人)의 상태였던 것이다.

'사신지혼을 쓴 상태로 구궁파천뢰만 써도 미래의 뇌신지혼과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는 말인가?!'

이게 의미하는게 대체 뭐지?!

나는 언뜻 해석이 되지 않아서 크게 고민하며 그 자리에 앉아서 며칠 동안 밤을 새며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가능해."

나는 이윽고 풍혼화(風魂化)를 시도했고 사신지혼이 발동하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고는 긴장한 채로 눈앞의 빈공간을 바라보며 자기최면을 걸듯 입을 열었다.

"풍신지혼(風神之魂)."

할 수 있다.

마치 이청운의 뇌신지혼처럼, 풍신(風神)의 힘을 지닌 자연지체(自然之體)를 손에 넣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할 수 있다…….

파지직 파직

다시 내 몸에 뇌신지혼을 형성한다. 방금전에는 갑작스럽게 뇌인으로 변하면서 뇌신지혼이 풀렸지만 아무래도 그건 구궁파천뢰와 맞물리는 부분이 사라져서라는 생각이 든 다.

'그래. 맞물려야 해…….'

사신지혼과 구궁파천뢰를 동시에 시전할 때 느껴지는 그 감각.

그것은 바로 서로의 다른 2개의 톱니바퀴가 우연찮게 맞물리는 느낌 이었다.

그리고 두 개의 절학이 공명(共鳴) 하면서 톱니바퀴의 속도가 빨라지자 일순간 내가 통제할 수가 없게 되어서 맞물리지 못하게 된 게 분명했다.

맞물리는 그 감각만 좀 더 유지할 수 있다면, 구궁파천뢰의 힘을 남긴 채 사신지혼을 쓴다면…….

나는 그렇게 내 스스로 되뇌이면서 가부좌를 튼 채 집중했다. 그리고 뇌신지혼과 함께 3개의 구가 형성되

자, 나는 즉시 구궁파천뢰를 끌어올렸다.

파지지직!!

'좋아. 구궁파천뢰를 유지한 채 지금!!'

풍신지혼!

쿠구구구

'뜨겁다!!'

내면에서 활화산 같은 기운이 웅혼 하게 용솟음치면서 심장 부근에 열기를 전달했다. 나는 이 심상치 않은 열기에 약간 놀랐지만 이게 직접 내 몸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용기를 가지고 계속해서 풍신지혼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짧지만 긴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전신에서늘한 한풍(寒風)이 뼛 속까지 불어대는 느낌이 들었다.

파칭

'됐다!!'

나는 뇌신지혼이 풍신지혼으로 변하는 순간 구궁파천뢰의 감각이 그대로 맞물려서 풍신지혼의 변화와 이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와 동시에 내 몸을 내려다보자, 나 는 내몸이 지금까지와 달라져 있음 을 알 수 있었다.

키이이잉…….

[투명하군.]

역시 뇌인으로 변했을 때처럼 내 몸은 풍인(風人)이 되어 있는 듯했다. 풍인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풍신 지혼의 몸은 일렁이는 바람이라기보다는 마치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듯 극한까지 투명(透明)해져 있는 상태였다.

'만일 풍신류가 풍신지혼을 만들어 냈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런데 투명하다는게 과연 전투에서 얼마나 이득이 있는 걸까?

나는 풍신지혼의 위력이 긴가민가 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투명하다는 게 굉장히 큰 장점인 것 같았지만 절대지경의 수준에선 딱히 그렇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절대고수들은 시각에만 의 존하지 않는다. 청경(聽經), 심안(心 眼), 육감(大感), 의념(意念), 기감(氣感) 등을 이용해서 원래 인간의 동체시력으로는 불가능한 싸움을 하는 게 기본인 것이다. 그래서 투명 하다는 이점은 나 정도의 경지에서 는 어찌 보면 사소할 지경이다.

퓨웅

시험 삼아서 뇌신지혼 때처럼 주먹 을 휘둘러보았는데 뇌속(雷速) 그 자체였던 뇌신지혼의 주먹과는 달리 풍신지혼의 주먹은 투명할 뿐 그냥 평범했다. 당연히 주먹의 속도가 음 속 정도는 돌파했지만 뇌속에는 절 대 비교할 수 없다. 역시 이 풍신지 혼은 뇌신지혼처럼 육체의 잠재력을 극한으로 올리는 무공은 아닌 듯 싶었다.

'흠. '맞물리는' 감각도 아까보다 좀 더 익숙해졌어…….'

방금전에 뇌신지혼과 구궁파천뢰 를 쓸 때는 처음이라서 당황해서 빠르게 뇌신지혼 상태가 풀렸지만, 지금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풍신지혼의 상태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나는 이 정도면 반 식경 정도는 풍신지혼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풍신지혼을 유지한 채로 중얼거렸다.

[역시 그렇군. 구궁파천뢰를 쓴 상태로 사신지혼으로 그릇을 변화시키면 구궁파천뢰의 힘이 사신지혼의 능력을 증폭시켜주는 것이다.]

그리고 증폭된 사신지혼은 딱히 복잡한 구결 없이도 마치 후대 이청운의 뇌신지혼과 같이 사대무류의 속성을 근본으로 한 초인화(超人化) 변신이 가능하게 해준다!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후대의 뇌신류는 똑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 천재 중의 천재들만 익힐 수 있는 어려운 상승구결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상승구결만 익히면 뇌신지혼을 쓸 수 있었 지만, 그나마도 천령단이 없으면 오래 발동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었다. 그런데 설마 구궁파천뢰와 원본 사신지혼을 같이 쓰는 것만으로도 최상승의 구결을 무시하고 위력만 내보일 수가 있다니?

쉬익

나는 풍신지혼의 변신을 풀고는 흥 미로워져서 그 자리에 앉아서 골똘히 생각했다.

'그렇다면 화신지혼, 수신지혼의 변신도 가능하다는 말이겠군! 근데 문제가 있어…….'

나는 내가 생각한 '문제'가 실제로 그러할지를 확인해볼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두 차례 사신지혼을 발 동하면서 소모했던 체력과 기력을 충분히 회복한 후 이번에는 화신지혼의 변신에 도전해 보았다.

화르르륵!!

화신지혼을 쓰자 내 전신은 마치 지옥의 불꽃처럼 쉴새 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아니, 내 물질적인 몸은 사라져 버리고 심장과 몸뚱아리 전부가 화염이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화신지혼을 쓰다가 별생각 없이 손을 앞으로 향해서 장풍을 한 번 써 보기로 했다.

쿠와아앙!!

[호오!!]

그러자 어마어마한 열을 가진 원기 둥이 장심에서 뻗어 나가서 앞에 있던 산을 타격했다. 열이나 광선공격을 많이 접해봤던 나는 이 정도 위력이면 미래에서 플라즈마 에너지로 공격하는 것보다 훨씬 강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왜냐하면 화신지혼의 장풍이 지나간 것은 단면조차 깔끔하게 녹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사마령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억도 짜리 열 공격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나는 팔짱을 끼고는 중얼거렸다.

[그래도 부족해. 이번에는 수신지혼.]

촤르륵…….

수신지혼의 몸뚱이는 전신이미끈 한 물 덩어리로 이루어진 인형처럼 변하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유리세공으로 만들어진 듯한 반투명한 몸 뚱이는 굉장히 이질적인 기분이 들 었다.

나는 수신지혼을 쓴 상태로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멀뚱하니 서 있었다.

'음…… 물의 힘은 대체 뭘까? 번개나 화염은 손쉽게 그 위력이 연상 이 되는데…….'

나는 한참 동안이나 수신지혼을 유지했다. 그리고 유지하면서 종종 주먹을 뻗어보거나 무공초식을 써 봤는데 그다지 장점이랄 만한 게 느껴 지지 않았다. 그냥 맨몸인 것과 다 를 게 대체 뭔가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연습하자 간신히 수신 지혼의 장점을 알아챌 수가 있었다.

'사신지혼 중에서 가장 변화를 유지하기가 쉽군. 심지어 뇌신지혼보다 더…… 수신지혼이라면 반 시진 이라도 버틸 수 있겠다.'

물의 힘이 가장 원소 중에서 안정 되어서인가?

슈욱

나는 사신지혼의 변신을 다 한 번씩 겪어보고는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 털썩 앉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젠장! 그래도 뇌신지혼이 제일 쎄 잖아."

그렇다. 이게 바로 문제다.

다른 3개의 사신지혼의 변화가 뭔가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을지 기대 하면서 지켜봤지만 역시 전투력에 있어서는 뇌신지혼을 따라올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화신지혼의 열광선이나 화염공격이 물리적 파괴력에서는 따라잡을지도 몰랐지만, 속도에 있어서 너무 큰 차이가 났다. 풍신지혼은 그냥 투명해지기 만 하는 거였고 수신지혼은 유지력 이 좋다는 장점 외에는 왜 써야 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결국 사신지혼 중에서 쓸 만한 건 뇌신지혼 뿐이란 말인가?

나는 괜히 불만스러워서 내심 투덜 거렸지만, 이윽고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내가 아직 3개의 사신지혼 에 존재하는 특성을 발견하지 못한 것뿐일지도 모르잖아.'

어쩌면 화신지혼, 수신지혼, 풍신지 혼에는 뇌신지혼에 비견할 만한 가공할 위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한 방법으로는 그 특성을 못 찾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원래 문제로군. '4번째 회전'을 어떻게 해야 넘 어갈 수가 있을까? 소 뒷발질하다 쥐 잡은 격으로 사신지혼의 변신방 법을 깨닫긴 했지만 원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어.'

빙빙 돌아서 원래 문제로 되돌아오자 약간 답답해졌다. 하지만 조금이지만 성취를 얻었다는 사실 덕분에 그다지 크게 절망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순간적 으로 생각했다.

"그래. 구궁파천뢰를 쓴 상태로 회전을 시키면 어떨까?"

지금까지는 그저 단순히 원운동을 위해 회전을 위해 의념을 불어넣었 을 뿐이다. 하지만 단순한 의념이 아니라 구궁파천뢰를 쓴 상태로 그 힘을 그대로 3개의 그릇에 불어넣는 다면 어떻게 될까?

'오호. 나 혹시 천재 아닌가?'

나는 이 수련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고 뭔가 기가 막힌 생각을 했다는 기분에 실쭉 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구궁파천뢰를 발동 시켜서 3개의 소구에 회전을 위한 와력(溫方)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뇌신지혼에서 풍신지혼으로 변화한다. 그와 동시에 뇌인의 형상에서 풍인의 형상으로 바뀐다.

나는 일련의 변화 속에서 동반된 회전의 압력이 3개의 소구를 가속시 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3개의 소구에 가속이 붙는 속 도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엉?! 아주 조금만 힘을 넣었는데 뭐 저렇게 빨…….'

쿠구구구구

회전이 딱 1번만 돌았는데도 순식간에 전력으로 3번은 돈 것처럼 빨 라지자, 나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회전에 감응하듯이 풍신지혼의 몸뚱이가 갑자기 크게 부풀어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눈앞 이 새하얗게 변하는 걸 알 수 있었다.

퍼엉

* * *

"이번엔 비명도 못 지르고 풍선처럼 터져 죽었네."

"……."

내가 멍하니 앉아있자 전뇌자가 나 한테 커피잔을 슥 내어주었다.

"뭐야, 이건."

"죽음의 충격을 줄여주는 신비한 음료지."

"하……."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따끈한 커피 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자 죽을 때의 고통이 약간 잊히면서 정신력이 회복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죽음에 익숙하더라도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면 정신력이 마모되는데 그게 저절로 회복된 것 같았다. 몇 모금을 더 마시니 정신이 번쩍 들었고, 나는 전뇌자에게 말했다.

"전에 말했던 불청객이란 건 뭐야?"

달각

전뇌자가 맞은편에 앉아서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러고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두 종류가 있어. 하지만 어느 쪽도 지금 당신에게 도달할 개연성이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돼."

"두 종류?"

"적어도 당신이 수백 번은 죽어야 걱정할 만 한 일."

그렇게 말한 전뇌자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사신지혼의 위력은 그 유파를 배운 사람이 가장 잘 알거야."

* * *

번쩍

나는 눈을 떴다. 그러고는 일어나 자마자 전뇌자의 말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그 유파를 배운 사람이 사신지혼의 위력을 가장 잘 안다고?'

그렇다면 나는 뇌신류를 배웠으니까 뇌신지혼의 위력을 가장 잘 안다는 뜻이 되는 건가?

하지만 내가 다른 유파를 아예 안 배운 건 아닌데…….

나는 전뇌자가 내 수련을 도와줄 겸 충고를 한마디 해줬다는 걸 깨닫고 고민했지만, 그 말의 뜻을 손쉽게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벽에 막혔군."

지금 상태에서 더 시도하든 아니든 원운동을 시도하려는 계획이 중간에 막힌 건 사실이다.

뜻밖에 사신지혼으로 변신하는 걸 터득했지만 이건 부수적인 성과일 뿐, 구궁파천뢰를 이용해서 원운동을 구현화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벽을 뚫기 위해서는 또 다른 영감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

나는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심수력이 준 권법서를 손에 잡았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새로운 걸 한 번 익혀보는 거지 뭐!"

투두둥

나는 정신없이 심수력의 권법서대로 내가 여태껏 익혀왔던 권법을 망라하여 무아지경으로 수련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망아의 지경에서 뭔가 를 하다보면 뜻밖에 좋은 생각이 툭 튀어나올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벽에 막혔다고 무작정 골머리를 앓고 있기에는 내 타고난 무공의 재능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차라리 이렇게라도 하는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 내내 나는 부족했던 권법의 기초를 닦게 되었고, 그런 내 무아지경의 수련이 멈춘 것은 어느 날 들려온 목소리 때문이었다.

"열심히 수련하고 있어서 기쁘군!!"

"심수력."

심수력이 어느새 수리된 청룡무관의 옥상에 앉아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웬 술병을 들고 술을 벌컥벌컥 마시다가 내게 말했다.

"잔말할 거 없고 삼 초식만 겨뤄볼까?"

투웅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가 들고 있던 술병이 손가락에 튕겨서 내게 똑바로 날아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날아오던 그 술병에는 엄청난 내공이 담겨 있음이 분명했고, 나는 내공에 자신이 있었기에 피식 웃으면서 그 술병을 정면으로 받아 주려고 했다.

꾸우웅

"……?!"

아, 아니 진짜 이거 장난 아니네?!

나는 뜻밖에 묵직한 기운 때문에 순간적으로 무릎이 굽혀졌고 기가 막힌 기분이 들었다. 여태껏 알고 있었던 심수력의 내공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내공이라면 심수력의 원래 내공에서 최소 수십 배는 강해진 게 틀림없었다.

빠지직

결국 상당히 진심을 다해서 술병을 움켜잡았고, 간신히 술병을 받아내자 심수력이 껄껄 웃으며 덤벼들어 왔다.

"크하하하!! 일 초식 받아라!"

금강천지쇄!!

나는 정면으로 날아오는 금강천지쇄에 그대로 삼보절기를 응용해서 피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금강천지쇄에 엮여 있는 강대한 기의 파장이 장난이 아님을 알아챘고 더이상 회피가 아니라 방어만 할 수 있음을 알아챘다. 나는 그대로 그의 금강천지쇄를 흘려내면서 타경(打經)으로 도리어 그의 몸에 반격하려고 했다.

꽈릉!!

한 차례 뇌음(雷音)이 울려 퍼졌고 심수력의 공격이 내 장법에 막혔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심수력의 다리가 검은 잔영을 남기며 내 천령개를 쪼개 버릴 듯 내려차기를 했고, 나 는 그 기세가 너무 패도적이라서 정상적인 초식으로는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슬격(睦擊)으로 중간에 흐름을 부딪혀서 끊으려 했다.

휘리릭

그러자 마치 심수력의 다리가 나비 처럼 유연하게 그의 퇴법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을 노리는 게 아닌가? 나는 비로소 권장으로만 막으려 하지 않고 등과 어깨를 같이 쓰면서 더욱 안으로 파고들며 고법(索法)으로 대처했다. 심수력은 자신의 목젖과 내 갈비뼈를 교환하는 상황에 잠시 고민하다가 그대로 쌍장으로 장력을 날리며 뒤로 빠졌다.

투두둥

순식간에 끝난 삼 초식의 교환.

심수력이 크게 놀란 듯 말했다.

"뭔가? 자네 재능 없다더니 겨우 십 년 사이에 권법에 약간 도가 튼 것 같군."

"원래 정해진 권장법의 틀에서만 움직이더니 이제 전신을 이용한 권법을 쓸 줄 알게 되었어."

나는 심수력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당신이야말로 내공이 최소한 열다섯 배는 증대되었구려. 절대지경이 의념으로 싸운다지만 그 정도 되면 내공의 힘 또한 바로 무공격차가 되는 것…… 대체 뭘 했소?"

지금 심수력의 내공은 어마어마했다. 나 정도는 아니지만 틀림없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내공의 한계치가 분명했다. 고금제일내공을 다툴 정도가 된 심수력을 보자 나는 기가 막혔지만, 이윽고 심수력이 대답했다.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건가?"

"무슨 소리요?"

이어진 심수력의 말에 나는 할 말 을 잃었다.

"자네가 말해줬던 내공기연을 다 먹고 왔네. 흑백련도 다 먹고 천년설삼도 먹고 백련교 본진에 있던 성련밭도 다 찾아 먹고 소림대환단 등 등을 다 찾아 먹었지."

그, 그렇다면야 강할 만한데…….

나는 황당해서 말했다.

"그게 다 그 자리에 있었소?!"

"그렇다니까. 여긴 사람만 없이 원 래와 똑같이 복사된 세계라 하지 않았는가?"

"으음."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닐세. 이거 받게."

휙 하고 심수력이 던져준 물건을 받는 순간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상당히 크고 두터웠으며 사람 팔만 했지만, 그 원래 크기를 안다면 이건 아주 조그맣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헉, 이건……."

심수력이 킬킬 웃었다.

"어때? 군침이 돌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이건 화요의 봉인지에 있던 용화 수의 묘목!! 근데 이건 왜 갖고 왔소?"

"……."

"……?!"

이윽고 심수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챈 나는 뜨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심수력은 히죽 웃더니 말했다.

"세계수란 걸 먹으면 내공이 얼마나 늘어날지 시험해보고 싶네만 나도 죽으면 살려줄 수 있겠지?"

나는 심수력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뭐요? 세계수 먹고 죽겠다는 것이오?"

"죽는다는 법은 없지. 근데 죽으면 되살려 줄 수 있느냐고."

"아니 그게……."

"되는지 안 되는지만 말해보게."

나는 머리를 짚고 잠시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솔직히 모르겠소. 전륜성왕의 권능을 쓸 수 있긴 한데 되는지 안 되는지 여기서 시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오."

"그 정도면 됐네. 일단 살려보고 안 되어도 자네를 원망치 않겠네."

덜컹

그렇게 대꾸한 심수력이 어디선가 가져온 커다란 냄비를 꺼냈다. 그러고는 나를 멀뚱히 바라보곤 말했다.

"그래도 나무를 생으로 씹어먹긴 싫으니 물을 끓여서 달여먹을까 싶군. 불 좀 피워보게."

"……."

나는 뭐라해야 할지 몰라서 멍청히 심수력을 바라보았다.

"지금 장난치는 게 아니라 진심이오?"

"내가 언제 장난친다고 한 적이 있나? 먹으면 먹는 거지."

"아니 그게…… 하…… 세계수를 달여먹는다니 어떤 미친 인간이 그런 생각을 한단말이오."

"그럼 못 먹을 이유는 또 뭔가? 반대를 한다면 그럴 이유가 있겠지."

"먹으면 죽……."

"그러니까 죽으면 되살려달라고."

"……."

어 젠장…… 갑자기 말문이 막히네…… 먹으면 죽는다는 전제가 무의미해지면 대화가 이렇게 되는 건가?

나는 황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정신 차리고는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세계수라는 건 혼돈 덩어리요. '알에서 깨어나지 못한' [옛 지배자]이자 혼돈 그 자체요. 겉으로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우주에서 가장 칠흑같은 혼돈 덩어리인데, 이걸 먹느니 차라리 맹독을 들이켜는 게 나을 수도 있단말이요."

"그러니까 무척이나 유해(有害)한 물질이란 말이지? 하지만 아무리 유해해봤자 먹으면 죽는 것밖에 더하겠나. 그리고 죽고 나서 되살아날 수 있다면 아무리 유해해도 무의미 하지."

"아니 너무 극단적이잖소. 갑자기 이걸 먹으려는 생각을 한 이유가 뭐요?"

그러자 심수력은 나를 멀뚱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더 강해지고 싶어서."

"……."

"반대로 이걸 왜 그동안 먹으려고 시도해보지 않았는지 모르겠군. 이번 기회에 내가 먹는 것을 보고 먹어도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해 보게나."

나는 심수력의 의지가 무척 확고한 것을 느끼고는 더 말려봤자 소용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떫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한번 먹어보시…… 잠깐."

"또 왜?"

나는 의혹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기억하는 용화수는 그냥 살아 있는 듯한 시꺼먼 덩어리이며 씨앗이었는데 그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뻗은 묘목이군. 용화수의 씨앗과 기운이 같아서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설마 찾았을 때 이미 묘목이었던 거요?"

"그렇네. 뭐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

"……."

그 말은 혼돈의 씨앗인 세계수가 내 원래 세계와는 달리 싹을 틔워 생장할 계기가 따로 존재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30번 전생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원래 세계에서 용 화수의 씨앗이 알아서 싹을 틔운 적 은 한 번도 없었다. 여기에 뭔가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는 이윽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오. 그럼 어디 달여먹어 봅시다."

화르륵

나는 먼저 신력으로 물을 창조해서 냄비에 넣고는 화신지혼을 발동시켜 강대한 화염의 기운을 불어넣으며 용화수를 끓였다. 화신지혼의 불꽃은 냄비와 물 따위는 금방 녹여 버릴 정도로 강력했지만 내가 냄비와 물 또한 신력으로 보호했기에 가능 한 일이었다. 그리고 신력에 둘러싸 인 용화수의 묘목은 금방 반응하는 듯 서서히 껍질이 녹으며 황금빛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나는 일순간 황금빛 안쪽에서 상상 할 수 없는 어둠의 힘이 느껴지자 흠칫했다. 그것이 무척이나 순수한 혼돈 그 자체라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물질의 겉모습이 벗겨지면서 순수한 혼돈이 곧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황금빛이 가장 밝아 지는 바로 그 순간이 용화수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때라는 걸!

그리고 나는 마음이 약간 급해져서 옆에 있던 심수력에게 외쳤다.

"내가 신호하면 바로 용화수를 꺼 내서 생으로 씹어먹으시오!"

"달여먹지 않고?"

"그럴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소."

"알았네."

"…… 지금!!"

덥썩하고 빠르게 심수력의 손이 강맹한 내공을 담고서 용화수를 잡아 챘다. 그러고는 심수력이 그대로 묘목을 와그작 하고 씹어먹는 게 보였다.

와그작 와그작

심수력은 열심히 용화수를 먹어치웠는데 다 먹어치우는데는 눈을 열 번 껌벅일 정도의 시간밖에 필요하지 않았다. 빠르게 용화수를 먹어치운 심수력이 속이 더부룩한지 꺼억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생각보다 속살이 무척 부드러워서 먹기 좋군. 퍽퍽한 닭고기 먹는 느낌인데……."

"괜찮소?"

"흠…… 기다려 봅세."

나는 심수력과 마주 앉아서 한참 기다렸다. 그러나 심수력에게서 이상 반응은 느껴지지 않았고 그가 갑자기 죽지도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기에 나는 의혹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부, 분명 심층의 혼돈이 배어 나왔을 텐데. 그 순수한 혼돈을 먹고도 멀쩡하단 말이오?"

"거 이상하구만. 내공이 별로 늘어난 것 같지도 않은데……."

고개를 갸우뚱하던 심수력이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으으으읍!!"

"괜찮소?!"

뿌웅

"……."

"……."

"험험. 급하게 먹어서……."

나는 살짝 코를 막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다.

"괜찮소. 아무튼 별일 없으니 다행이오."

정말 심수력은 용화수를 먹고도 별로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심각할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기에 도리어 내가 맥이 빠질 정도였다.

'뭐야? 확실히 죽거나 병신이 되어 도 이상하지 않은데…… 용화수가 사실 세계수가 아니었단말인가?'

아니, 그렇다기엔 방금 보았던 순수한 혼돈은 진짜배기였다. 보통 인간이라면 그만한 순도의 혼돈을 단 한 방울만 마주쳐도 수천 명이 몰살 당하리라. 순수한 혼돈은 방사능폐 기물 따위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 로 유독했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심수력은 그 혼돈 덩어리를 생으로 먹어치운 게 틀림없다.

어째서 심수력은 멀쩡한 거지?

내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심수력이 말했다.

"계속 속이 더부룩하구만.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 방구만 뀌지 마시오."

"한번 뀌었다고 너무 뭐라는 구만."

심수력은 투덜거리다가 말했다.

"나도 호월처럼 강해지고 싶었는데 역시 웬만한 방법으론 안 되는 것 같군. 제길."

"그렇다고 세계수를 먹는 인간은 이상한 것 같소만……."

"뭐 아무래도 좋네. 그러면 자네가 그동안 뭘 수련했는지 얘기나 들어 볼까?"

"좋소."

나는 심수력에게 그동안 내가 수련 해왔던 경과를 말해주었다. 그 얘기 를 한 시진 내내 심도 있게 듣고 있던 심수력이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군. 어디 화신지혼을 발휘해보겠나?"

화르륵!

내가 화신지혼을 발동하여 화염의 인간으로 변하자 심수력은 놀라운 듯 크게 눈을 떴다.

"오오!! 사신지혼으로 이런 게 가능하다 그 말이지!!"

그러고는 한참 동안 요리조리 살펴 보던 심수력이 갑자기 말했다.

"자네 저번에 얘기할 때 후대의 화신류 종사 한백령이란 자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녀가 발휘했던 화신지혼과 자네의 화신지혼은 다른 것 인가?"

[잘 모르겠소. 나도 혼자 수련하는 동안 계속 생각했으나 한백령은 지금 나처럼 화염의 육체를 발휘하기 보다는 황혼의 빛 같은걸 발휘했었소……]

그래. 한백령이 쓴 화신지혼은 내가 쓴 것과는 뭔가가 달랐다. 순수한 화염이라기 보다는 그 단계를 초월한 무언가로 변해 있었다고 표현 하는게 맞으리라. 그래서 나는 그 동안 한백령의 화신지혼을 참고하지도 못하고 화신지혼을 연구한다고 머리를 끙끙 싸매고 있었던 것이다.

심수력이 말했다.

"그래도 화신지혼으로 발휘했던 기 술이 하나라도 있지 않겠나? 뭐 기억나는 거 없나."

[…….]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그 당시에 뇌구를 전륜시키면서 집중하고 있을 때 내 천령개를 내리치며 화신지혼에 수룡융합을 하며 내게 일격을 가했소. 그게 나에게 사대신기를 부활시키게 도와주었소.]

"수룡…… 융합?"

순간 심수력이 머리가 욱씬거리는 듯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심지어 비틀거렸는데, 나는 그걸 보자 놀라서 말했다.

[괜찮소? 아까 먹은 용화수가…….]

"아…… 아닐세. 갑자기 뭔가 기억 같은게…… 아무튼."

심수력은 말을 얼버무리더니 말했다.

"그거 말곤 또 없나?"

[화신지혼을 원영신과 결합하여 진 화신지혼이라는 기술을 썼소. 그 기술은 사대신기 아그니를 극한으로 강화시켜 주었고…… 또 한 가지는 황제 공손헌원과 옥좌 앞에서 대결 할 때 화신지혼의 기운이 내 내면에서 끓어올라 뇌혼을 소모하며 열광 의 힘을 뻗어내었소.]

"……."

[하지만 어느 쪽도 화신지혼의 구 체적인 공능을 알아내기엔 정보가 부족해서 그동안 벽에 막혀 있었소.]

"아니야. 이미 답이 나왔군."

[응?]

심수력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심수력은 내 화신지혼의 몸에 손을 뻗었다. 내 명치 부근에 살며시 손바닥을 갖다 댄 심수력이 이윽고 말했다.

"나는 화신류의 초기무예를 모두 익힌 자일세. 그래서 화신류가 갖고 있는 진짜 속성이 단순히 화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

[화염이 아니면 무엇이오?]

"바로 물질의 질서를 조종하는 능력이라네."

[……?]

"직접 보여주지."

화르륵!!

순간 심수력의 몸 또한 나와 같이 화신지혼의 상태로 변했다. 순식간에 화염인간으로 변한 심수력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자네의 화신지혼 상태는 구궁파천뢰의 힘으로 증폭된 덕에 가능한 것. 하지만 그 '그릇'은 달라지지 않았으니, 자네의 그릇에서 내 그릇으로 힘을 옮겨오는 것도 가능하지. 내가 화신지혼을 발동시키기만 하면 접촉해서 화신지혼 상태를 공유할 수 있으리라는 내 예상이 맞았군.]

[……!!]

[자, 이제 화신류의 화염이 가진 진짜 공능을 보여주지]

두웅

심수력이 내 명치에 뻗은 손바닥을

고정시킨 채 다른 쪽 팔을 맞은편으로 뻗으며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크게 눈을 흡뜨며 외쳤다.

갈(渴)!

스아아아아!

그 순간 맞은편 손 근처에 있던 모든 공간이 갑작스럽게 왜곡되며 쪼그라드는 게 느껴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겉으로 보이는 물질은 그 대로이지만 그 물질을 이루는 극미한 무언가가 모조리 변화한 듯했다. 나는 그 형이상학적인 변화를 체현하여 느끼며 생각했다.

'화신지혼 상태이기에 느낄 수 있는 건가?'

내가 그걸 보고 있을 때 심수력이 말했다.

[이 형용할 수 없는 공백, 무시무 시하지 않은가? 이 공백이 현실에 덧칠될 때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하다네.]

[그게 설마…….]

[화신류의 무공을 극성으로 익혀 파괴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때 생기는 현상을 우리는 공염(空炎)이라 부르네. 그리고 무극용왕참이나 다른 무공들이 강력한 이유는 강기를 쏘아낼 때 그 강기에 공염을 섞어서 날리기 때문이지. 왜냐하면 공염은 강기는 물론이고 어떤 무공으로도 제대로 막을 수 없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야.]

[방금 쓴 게 바로 공염이오?]

[그래. 하지만 공염은 화신류의 오의나 비기가 아닐세. 왜냐하면, 이건 그냥 전력을 다하면 저절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호월 조차 공염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전혀 몰랐어.]

[…….]

[하지만 자네의 화신지혼 상태를 빌리니 공염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군.]

심수력의 이어진 말에 나는 사신지혼 하나하나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 끼게 되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열(熱) 그 자체를 조종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공염이며 화신지혼이 지닌 진짜 위력일 걸세!]

나는 그때쯤 화신지혼의 변신상태가 풀려서 원래 몸으로 돌아왔고 내게 손을 맞닿아 있던 심수력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인간상태에서 심수력에게 되물었다.

"열을 조종한다고? 그게 화염을 조종하는 것과 뭐가 다르단말이오."

"흐음. 이게 잘 설명은 되지 않지만…… 다시 한번 화신지혼을 써보지 않겠나?"

화륵!

다시 한번 내가 화신지혼을 발동했고 심수력이 내게 접촉해서 화신지혼 상태를 옮겨받았다. 심수력은 화신지혼을 받은 상태에서 말했다.

[자, 그 상태에서 나를 전력으로 주먹으로 때려보게]

콰광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심수력 의 대가리를 후렸다. 그러나 파괴음 과 함께 그의 대가리가 터지지 않았으며 도리어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

화염으로 이루어져 있던 내 주먹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심수력이 빙긋 웃는 듯했다.

[같은 화신지혼이니까 가능한 거지만, 열의 총량을 조종할 수 있다는 건 이런 거지.]

슈욱

나는 내 주먹이 사라지자 놀랐지만, 이윽고 나와 심수력의 화신지혼이 동시에 풀리자 육체가 멀쩡하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어떻게 한 것이오?"

"흠. 사신지혼을 펼칠 때의 그 육체가 지금 우리 상태처럼 피와 살로 이뤄진 건 아니잖은가? 원소의 속성을 지닌 몸뚱이니까 설령 갈가리 터지더라도 원래 몸은 멀쩡할 수 있어."

화르륵

심수력이 말을 이었다.

"단순히 자네가 때리는 방향에 맞춰서 내 전신에 공염(空炎)을 일으켰을 뿐이야."

"공염…….을 일으켰다는 건 전신에 호신강기를 내뿜었다는 말인가?"

"비슷하지. 다만 화신류의 무공을 극성으로 익혀 공염을 자유자재로 발출할 수 있는 고유한 감각이 따로 필요하다네."

"……."

나는 그 순간 전뇌자의 말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사신지혼의 위력은 그 유파를 배운 사람이 가장 잘 알거야.]

그 말은 바로 이런 의미였던가?

내가 생각에 잠겼을 때 심수력이 말했다.

"그리고 공염을 일으킬 때는 화염 이 무형(無形)으로 잦아드는 걸 종종 느끼곤 하지. 그래서 내가 열(熱)이라고 표현을 한 걸세. 화신류의 기술을 극으로 연마하게 되면 열의 영역에 손을 뻗게 되는 것이야."

"어렵군. 화염이 무형화하면 열이 된다는 말이오?"

"쩝, 그렇게까지 단순하진 않고…… 이런 심득(心得)을 말로 표현하기가 구차하군."

심수력은 입을 쩝쩝 다시면서 뭔가 생각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나한테 화신류 무공 좀 배워보지 않겠나?"

"화신류 무공을?"

"그래. 자네도 기본 무공과 쌍검술 정도는 익히고 있는 것 같지만 화신류 무공이 추구하는 걸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군. 어찌 보면 자네 시대의 기준으로 내 화신류 무공은 고류(古流)라 할 수 있으니 그 시대의 화신류가 갖고 있지 못한 걸 갖고 있을 수도 있네."

"……."

혼자 힘으로 수행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심수력의 도움을 받아서 또 타성에 젖게 되는 건 아닌가?

나는 그런 걱정이 들어서 입을 열 었다.

"사대무류를 조금씩 다 익히긴 했지만 내 주력은 여전히 뇌신류요. 권법은 익숙지는 않으나 어쨌든 뇌신류에 귀속되어 있어서 열심히 수련해본 것이고 타 유파의 무공까지 섣불리 도전할 정도로 내 재능이 좋지는 않다고 생각하오."

"일리 있는 얘기군. 정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떤가."

"뭔가 생각이 있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수력은 다시 손을 뻗어서 내 명치에 갖다 대었다. 나는 그 자세만 보고도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깨닫고는 중얼 거렸다.

"실전(實戰)을 위주로 수련하자는 건가."

"그 수밖에 없지. 단계를 밟아 화신류의 오의를 점잖게 깨달을 자신이 없다면 수천수만 번을 겨루면서 자네가 맨바닥에 머리가 깨지는 수 밖에 없어. 물론 보통 인간이라면 목숨이 아까워서 이런 수련법은 하 지 않겠지만 자네라면……."

"……."

"해 보겠나? 하겠다면 자네의 수련 에 수십 년이라도 어울려 주지."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좋소."

나는 그가 어떤 수련을 하자는지

알고 있었다. 결국 내가 저절로 공염의 감각을 터득할 때까지 계속해서 화신지혼을 겨루면서 대련을 하자는 것이다.

슈슈슉

잠시후 내가 다시 화신지혼과 구궁파천뢰를 발동하여 염인(炎人)으로 변했고 심수력 또한 내 변화를 전달받아 염인이 되었다. 방금전과 같은 구도가 된 상태에서 심수력이 말했다.

[서로 한쪽 팔만 써서 각자 공격을 삼 초식, 방어를 삼 초식 번갈아 해봅세. 권법초식은 굳이 화신류가 아니라도 되네.]

나는 내 명치에 올라와 있는 그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권법을 쓰게 되면 당신이 내 명치에 대고 있는 이 손을 뗄 수밖에 없을 텐데 수련이 안 되잖소?]

[크흐흐. 지금의 자네 실력으론 어 림도 없어. 명치에서 손을 뗄 수 있 게 하면 칭찬해 주지.]

[…… 후회하지 마시오.]

나는 심수력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내심 화가 났다. 아무리 그가 권법의 일대종사라지만 설마 이렇게 지근거리에서 내 명치에 손을 대고 있는 것까지 뗄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것인가? 나도 겉핥기긴 했지만, 무예를 수련하면서 꾸준히 권법을 연마했고 심지어요 몇 년간에 권법에 빠져 살았기 때문에 심수력의 자신감이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선공하게.]

[그럼.]

나는 선공제안을 받자마자 지체하 지 않고 곧장 일직선으로 주먹을 뻗었다.

뇌신권(雷神奉)!

치지징

번개가 화염을 머금으며 타들어가는 듯한 기묘한 소리를 낸다. 강권(鋼奉)의 기운을 머금은, 가장 단순 하고 호쾌한 일격!

하지만 단순한 만큼 그 속도는 지금 내가 낼 수 있는 권법지르기 중에서 가장 빨랐으며 보통 강호에서 초절정이라는 자들도 내 일권에 반응하지 못하는 자가 태반일 것이다. 무량단을 터득하면서 가장 단순한 공격이 가장 빠를 수밖에 없다는 이치에 따라 뇌신권에도 적용해본 것이다.

[느려터졌군.]

퍼엉

그러나 심수력의 심어(心語)와 함께 그의 얼굴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내 주먹은 아까처럼 공염에 걸려서 그대로 터지듯이 소멸해 버렸다. 아까보다 훨씬 더 전력을 다한 공격이 었는데도 통하지 않자 나는 내가 지닌 쾌권(快奉)의 수준으로는 심수력의 반응속도를 넘지 못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심수력이 말했다.

[본래 공염은 이렇게 빨리 전개되지 않네. 그러나 내가 절대지경이니 의념천주의 도움을 빌려서 생각보다 더 빠르게 전개할 수 있지. 자네가 권법으로 무량단 수준의 숙련도를 쌓지 않는 이상 내게 기습공격을 할 순 없을걸세]

[재밌구려.]

[재밌다고 입만 털 때가 아니네. 빠르게 주먹을 재생시켜 보게나.]

우우우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공염에 걸려서 소멸된 불의 주먹을 되살렸다. 그걸 본 심수력이 실망스러운 듯 말했다.

[그게 뭔가? 다 회복시키는데 다섯 호흡을 넘는다니 실전에서는 너무 느린 재생속도군]

[끄응]

[화염의 속성은 불멸(不滅)에 가깝네. 아마 자네라면 더 빨리 재생시 킬 수 있을걸세. 연구해보게]

[잔말 말고 이거나 먹으시오.]

나는 이번에는 공격방식을 바꾸어서 장삼봉의 권기(奉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굴공천축권(屈空天軸奉)

척인지력(反引之方)

부웅!!

[호오!]

갑작스럽게 굴공천축검의 묘리가 권법에 적용되어 공간이 왜곡되듯 빨아들이는 힘과 튕겨내는 힘을 불 규칙하게 토해내었다. 그리고 그 굴공천축권을 이용해서 공격하자 그 자체로 상대를 절망시키는 극강의 환권(幻拳)이 되어 있었다. 굴공참과 천축검의 이치만 깨달으면 검법, 창법, 권법에 모두 응용할 수 있었기에 이 정도 기술이라면 심수력을 당황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심수력은 마주 화염의 주먹을 들더니 주먹을 쫙 펴서 손바닥을 크게 드러내었다. 그러고는 마치 파리를 내려치듯 타장(打掌)을 날렸다.

파앙!

갑작스러운 반탄력과 함께 내 굴공 천축권은 튕겨 나갔고 이번에도 공 염이 적용되었는지 내 화염의 주먹 이 사라져 버렸다.

[방금은 뭘?!]

[그 인척력의 이치를 바로 간파하진 못할 거 같아서 공간 전체를 의념으로 잡고 공염을 써서 금강장을 썼을 뿐이네.]

[…….]

[힘을 통째로 밀어내듯 튕기는 거지.]

그런 게 되나?

그 누구도 천축의 묘리를 공간째로 쳐서 날리는 건 하지 못했는데.

[마지막 공격을 해보게.]

[재촉하지 마시오!]

나는 역정을 내며 이번에는 삼보절 기로 파고들면서 그의 턱을 장저로 올려치는 공격을 가했다. 설령 이 공격이 먹히지 않아도 보법절기를 쓰면 최소한 그가 내 명치에 대고 있는 팔을 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파앙

그러나 심수력은 마지막 공격도 가 볍게 쳐내면서 끝까지 막아내었다. 그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 차례군. 삼 초식을 받아보게.]

[……!!]

온다!

퍼퍼퍼펑!

나는 크게 긴장하며 무쌍패라도 쓸 준비를 했지만, 생각 외로 심수력은 그냥저냥 평범한 초식을 써서 내게 삼 초식의 공격을 했고 나는 무난하게 막아낼 수 있었다. 나는 심수력이 날카로운 공격을 할 거라 생각했기에 의아해서 말했다.

[뭐, 뭐요? 극성의 공력으로 공격 하지 않고…….]

[깨닫지 못했나? 나는 자네의 명치에서 공격방어 총 6초식 내내 손을 뗀 적이 없어.]

[…….]

[자네가 권법을 쓰는 숙련도는 아 직 미숙해. 화신지혼도 미숙한 상태 에서 내가 날카로운 공격을 해봐야 뭐하겠나? 자네가 극강의 절기에만 의존하는 버릇만 키울 뿐.]

슈욱

잠시후 화신지혼이 동시에 풀렸다. 내가 떫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극강의 절기? 칠대절학과 팔선신공을 말하는 것이오?"

심수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직접 접해보니 그것들은 과연 천하제일을 다투는 절기야. 백련교 최상승 절학으로도 자신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무공이군. 허나 그건 그…… 누구냐…… 자네가 말했던 장삼봉의 향기가 너무 강하게 나는 군. 무술에서 창안자의 얼굴이 느껴질 정도라니."

"당연하지 않소. 장삼봉에게서 유래된 절학이고 파생절기니까."

"후, 그럼 장삼봉의 권법이 우주팔황(字苗八荒) 모든 권법의 극한이라 말할 수 있는가?"

"……."

어…… 그건…….

나는 뜻밖의 질문을 듣자 머뭇거렸고 심수력이 말했다.

"말할 수 있을걸세. 왜냐면 자네의 권법세계에서 이미 장삼봉은 절대자이기 때문이야. 장삼봉의 권학(奉學) 이외의 다른 권법은 모두 쩌리에 불과하지 않나?"

약간 신랄한 비웃음을 머금은 심수력의 말에 나는 내심 발끈해서 말했다.

"사실이지 않소? 나는 백련교의 절 학 대부분을 접해보았고 전 세계의 수많은 무공을 익혀봤소. 그러나 그 중에서 권법 하나에 있어서 장삼봉의 칠대절학과 무쌍패보다 탁월한 권법은 본 적이 없소."

"장삼봉의 권법이 뛰어나다는 걸 부정하려는 게 아니야. 자네가 그걸 넘어서려고 하지 못하는게 문제인 거지."

"……?!"

어? 뭐라고?

"왜 놀란 표정을 짓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 아닌가."

"음, 그건……."

"물론 자네의 지금 수준으로는 지난한 일이야. 자네가 천년을 수련 하고 연마해도 칠대절학이나 무쌍패 보다 더 뛰어난 권법은 못 만들 게 뻔해. 장삼봉은 딱 봐도 천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권법의 천재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게 정말 다인 가."

심수력은 팔짱을 낀 채 노려보는 듯했다.

"나는 백련교의 권사(奉士)이자 권법의 정점을 노리는 종사(宗師)로서 속이 상하고 화가 나네. 어쩌면 백련교의 모든 무공을 익힐지도 모르는 사내가 장삼봉이라는 벽에 막혀서 자신의 권법세계를 한정한다는 게…… 우리 백련교의 권법이 그자 에게 상대도 안 된다고 공공연히 생각한다는 게 말일세."

"……."

"분명히 말해두겠네. 자네가 검의 극한을 추구하듯 나 또한 권법의 극 한을 추구하네. 그리고 극한을 추구 하는 자가 하나의 태두(太斗)를 정해놓고 안분지족하는 것만큼 역겨운 일은 존재치 않는다네. 그것도 그게 본류가 아니라 타 유파의 것이라면."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오?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정말 극단적인가? 자네는 검법에 있어서도 그렇게 생각하겠는가? 검호(劍豪)로서 자네의 검술이 장삼봉의 아류일 뿐이라고 단정 지어도 똑같은 소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아……."

나는 그 순간 심수력이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는지를 알아차렸다.

내가 할 말을 잃자 심수력이 말했다.

"무예는 마치 생명과도 같은 것일 세. 존중하지 않는다면 자네는 결코 극한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일세. 남의 뒤꽁무니나 쫓아서 도달할 만큼 만만한 게 아니니까."

"……."

나는 그에게 크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하오. 나는 여태 잘못 생각하 고 있었던 것 같소."

심수력이 하고자 하는 말.

그것은 장삼봉의 칠대절학과 무쌍패에 갇혀 버린 내 권법세계 자체에 대한 비판이었다.

세계최강의 권법이 장삼봉의 권법 이라고 하는 걸 무의식중에 인정해 버린 나는 앞으로도 절대 장삼봉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비판 - 그런 자는 결코 권법의 극한에 도달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그건 여태 장삼봉을 절대적인 권법의 종사로 존경만 해왔던 내가 생각지도 못 했던 비판이다.

'심수력은 내게 기대를 하고 있다.'

동시에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심수력은 백련교의 권법 또한 결코 장삼봉에 못지않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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