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406-1412화 (1,374/1,615)

내 질문에 복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인간]을 제작해 보게. 신력을 수련한다면 이만큼 좋은 과제가 없지."

"……?!"

뭐, 뭐라고?! 말도 안 돼!

나는 당황하다가 말했다.

"이, 인간을 어떻게 만듭니까? 아무리 신력이라도……."

"응? 무슨 소린가? 애초에 인간을 만든 방법이 신력인데."

"지금의 인간은 과거 만들어진 원류 인간을 신력을 이용해서 변형시킨 것들이야. 완전히 무(無)에서 만들어내는 건 공이 들겠지만, 이 정도는 [옛 지배자]들이 봉사종족을 만들 때 종종 하는 일이지. 자네도 충분히 할 수 있을걸세."

"아, 아니 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

"자, 따라 해 봐."

내가 생각지도 못한 과제에 멍하니 있자 복희가 부채를 촤르륵 펼치며 앞으로 내뻗었다.

"인간이여, 생겨나라!"

쿠구구구구

잠시 후 땅바닥에서 흙덩어리가 뭉글거리며 중력을 역행해서 솟아올랐다. 마치 막대기처럼 변한 그 흙덩어리는 잠시 후 혼돈의 빛에 휩싸여 흑백의 역광을 방출하더니, 빛이 사그라들자 완전히 알몸의 인간으로 변해버렸다.

복희는 부채를 탁 하고 접으며 말했다.

"아주 간단하지?"

"……."

나는 입을 쩍 벌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삼황이구나!!’

설마 말 한마디로 흙덩어리에서 인간을 창조해낼수가 있다니!

나는 놀라워하다가 문득 새롭게 창조된 인간의 눈에 아무런 빛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의식이 없는 것 같았기에 나는 요리조리 뜯어보다가 복희에게 말했다.

"영혼이 없는 겁니까?"

"당연히 그렇지. 인공혼을 만들어서 일부러 집어넣지 않는 한 이런식으로 만든 인간은 영혼이 없네."

"그럼 영혼도 신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겁니까?"

"당연히 만들 수 있지. 그게 안 되면 봉사종족들은 아예 행동을 못 하지 않는가? 뭐 쌍으로 다 만들어서 넣는 건 공이 드니까 보통은 영혼제조기를 따로 만들어서 욱여넣거나 술법으로 영혼을 복사한다네."

"……."

"흐음. 이제 보니……."

복희는 약간 이해를 못 하겠다는 말투로 말했다.

"자네는 신이 뭔지 잘 실감을 못 했 모양이군. 그저 힘센 괴물이라고 여겼던 건가?"

"……."

"정작 자네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 말이야."

나는 복희의 한마디에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 말대로다. 나는 여태 신을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잘 인정하려 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가볍게 생명과 영혼을 창조하는 것을 보니 당황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야....’

복희가 한 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직감 때문에 내 힘이 신의 영역에 도달해가고 있다는 걸 실감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불안감을 느끼며 서서히 상장을 앞으로 내뻗으며 중얼거렸다.

"인간이여, 생겨나라……."

우우웅

그 순간 배운 것도 아닌데 신력이 수많은 갈래로 움직여서 제멋대로 요동치는 흐름을 알 수 있었고 그걸 창조에 맞도록 자연스럽게 배열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앞에는 복희 때와 마찬가지로 흙이 솟아올라 흑백의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이윽고 알몸의 인간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인간의 형태는 내가 모르는 것이었다.

"어?"

이건 누구지? 이렇게 생긴 놈이 내가 아는 중에 있었나?

그리고 옆에 있던 흑웅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도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게 누구요?]

정말 이거 누구지?

확실한 건 정말 처음 보는 놈인데도 왠지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은 든다는 것이었다. 기시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복희가 말했다.

"나 복희가 명한다. 피조물이여,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저건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복희의 신력을 담은 언령(言靈)이었다.

잠시 후 내가 만들어 낸 [인간]이 그 언령에 반응해서 입을 열었다.

"나는... 심수력(審壽力)…….이다!!"

"……?!"

"뭣?!"

복희도 놀라도 나도 놀라고 흑웅도 놀랐다.

지금 막 창조한 존재가 자기의 이름을 말할 줄이야?!

그러나 이어진 심수력의 말에 나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고 말았다.

"나는 화신류(火神流)의 심수력…… 호월의 친구다!!"

화신류?!

사대무류의 고수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몸이 탄탄한 게 오랜 기간 무예를 수련한 몸이 분명하군’

기공의 수련도도 바로 느껴진다. 강호에서 위맹한 명성을 날렸을 법하다.

아니 그런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인간을 창조했는데 왜 화신류의 고수가 자기 의지를 갖고 튀어나온단 말인가?!

나는 당황하면서도 그에게 말했다.

"어…… 심수력이라 했소? 호월의 친구라니 설마 백련교주 호월을 말하는 거요?"

그러자 심수력이라 자칭한 그 인간은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엄청나게 당황한 목소리였다.

"뭐지? 내가 왜 여기 있지? 너희는 누구냐!"

아무래도 얼떨결에 자기소개를 했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뒤늦게 상황 파악이 된 듯했다. 심수력의 의문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나는 호월의 의지를 이은 백웅이라 하오. 그리고 내 뒤에 있는 이 녀석은 흑웅이고, 저기 있는 건 복희요."

"뭣이? 네가 호월의 의지를 이었다고? 근데 너나 저 복희라는 놈이나 똑같이 생겼는데 형제지간이냐!"

나는 나도 모르게 복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지금 내 모습과 마치 거울처럼 빼다박았고 차이점이라면 입고 있는 옷과 외팔이 여부 뿐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누가 봐도 나와 복희를 쌍둥이 형제라고 여길 게 분명했다.

나는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하는 게 더 의심을 살것 같아서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으음, 여긴 대체 어디냐!"

"여긴 탁록의 숲속에 있는 동굴이오."

"탁록? 난 분명히 마지막에…… 백 두산(白頭山)에서…… 끄응……."

"백두산?"

"……."

심수력은 자신의 머리를 크게 흔들었다. 그러고는 버럭 외쳤다.

"기, 기억이 혼란스럽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알고 있는가?"

"그게……."

"아니 지금 보니까 왜 옷을 안 입고 있어! 미치겠구만!"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성기를 가리는 심수력을 보자 나는 어이가 없었다. 기억이 온전치 못한데 수치심은 여전한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기억상실이거나 기억이 혼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여하튼 옷은 드려야겠군. 백웅, 옷을 만들어보게."

"음…… 될까나."

나는 복희가 한 말이 내게 신력으로 옷을 창조하라는 뜻이라는 걸 곧장 이해하고는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생각에 따라서 내가 흔히 보곤하던 남자의 복식이 눈앞에 나타났다.

퍼엉

'와, 이게 되네.’

일반 옷 정도 만드는 건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듯 했다. 나는 옷을 심수력에게 건네주었고 심수력은 경계하면서 말했다.

"뭐지?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떻게 옷을 만든 거냐! 술법사인가?"

역시나 신력으로 창조했다고 설명 하기가 더 귀찮았기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렇소, 술법사요."

"설마 술법으로 나를 붙잡아온 건가!"

"아니 그게 아니니까 좀 옷이나 얼른 입으시오. 덜렁거리는 걸 언제까지 보여줄 셈이오."

"끄응."

심수력은 투덜거리면서 옷을 입었고 신기하게도 옷이 딱 그의 체형에 맞았다. 의식한 게 아니었는데도 심수력에게 맞는 옷을 만들려고 생각한 게 창조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심수력은 옷을 다 입고는 말했다.

"이건 특이한 옷이군. 이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

그야 그럴 것이다. 내가 만든 건 대명 시대의 옷이기 때문이다. 심수력이 호월의 친구라면 그는 아마도 내 시대보다 천 년 이상 과거의 인물일 게 분명하다. 시대가 다르니 대명제국의 옷이 그에게 낯익을 리가 없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심수력에게 말했다.

"나는 술법수련을 하다가 인간을 창조하는 술법을 썼는데 당신이 갑자기 튀어나왔소. 내 예상과 완전히 다른 일이 생겼기에 나도 혼란스럽소."

"뭐라고? 술법이란 건 대단하구나. 사람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근데 내가 왜 탁록에 왔단 말이냐."

"나도 모르겠소. 확실한 건 내가 당신을 납치하거나 한건 아니오. 혹시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게 있소?"

"으음……."

심수력은 골똘히 머리를 굴리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그래. 호월이 산신령(山神靈)의 도움으로 태백신공(太白神功)을 연마하여 광룡(狂龍)의 기운을 잠재우는 의식을 진행하고 있을 때 호법을 서고 있었다. 맞아, 나는 그 때 호월을 지키고 있었다!"

"……?!"

"근데 내가 왜 여기 와 있는 거지? 탁록이면 관중 근처에 있는 장소가 아니냐? 중원은 한참 전에 떠났을 텐데...."

뭐, 뭣이라?!

난데없는 말에 나는 더더욱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말 속에서 한 가지 단서를 발견해내곤 외쳤다.

"태백신공! 그건 분명히 권성(拳聖)이혼(李揮)의 독문절기가 아니오?"

틀림없다!

내가 얼마 전 외우주에서 권성 이혼의 클론과 대련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이혼이 쓰던 무공의 이름이 분명히 태백신공이었던 것이다! 이혼의 말로는 원본의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오는 독문신공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근데 어째서 호월이 이혼의 이씨가 문에 전해져오는 태백신공을 연마했단 말인가?

그러자 심수력이 머리가 아픈듯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으르렁거렸다.

"제, 제길…… 시끄럽다. 나도 지금 다 생각이 나는 게 아니다. 머릿속의 실타래가 엉키는 것 같아서 뭐가 뭔지 모르겠구나!"

"……."

"아니 그런데…… 내가 왜 네놈한테 이런걸 얘기해야 하지? 네가 호월의 의지를 이었다는 걸 어떻게 믿느냐! 네놈은 술법사이지 무인이 아닌 것 같은데!"

"보시오!"

투두둥

나는 즉시 내가 알고 있는 사대무류의 모든 권법을 그 자리에서 물 흐르듯이 전개했다. 그 모습을 본 심수력은 시선을 내게 고정했고, 나는 얼추 권법시연이 끝나자 칼 한 자루를 허공에서 만들어낸 후 뇌신류의 검술을 빠르게 전개했다.

파파파팟

그렇게 약 반 식경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자연스럽게 검식을 수납했고 심수력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다시피 나는 본디 뇌신류의 검사이지만 다른 무류의 무공도 조금은 습득했소. 그리고 호월 교주에 대해서도 그의 사제인 성진에게 들어서 알고 있소."

"음. 확실히 뇌신류의 무공…… 그것도 대단한 고수구나!"

찬탄하듯 외친 심수력이 이윽고 놀란 듯 말했다.

"서…… 성진! 그래, 그 이름도 기억난다! 호월이 중원에 두고 온 사제가 있다 했었어!"

"이제 날 믿어주겠소? 성진은 호월이 해동(海東)으로 떠난 후 소식이 사라졌다 했는데 백두산에 있었구려."

"아니…… 그게…… 크으윽……."

심수력은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양 손으로 부여잡고는 크게 괴로워했다. 그러고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백두산에 세워진 의문의 마도사축(魔道四軸)을 발견했을 때…… 우리 다섯은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 들어갔고…… 아유타 공주에게 구원을 청했…… 하지만…… 광룡의 기운이 또 폭주…… 으아…… 아아아악!!"

쿠구구궁!!

그 순간 심수력의 전신에서 혈광(血光)이 강하게 일어났고 그의 피부가 시꺼멓게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심수력에게서 몇 걸음 뒤로 빠르게 물러났고, 심수력의 몸이 잠시 후 크게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빠지직

그리고 시꺼멓게 물드는 것 같던 피부는 흑색의 용린(龍麟)으로 변화하는 게 보였으며 그의 몸 전체가 마치 용인(龍人)이나 다름없게 변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서서히 그의 몸에서 꼬리가 돋는 것을 보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저건 뭐지? 황궁에서 만들었 던 용인병? 아냐...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용인병이 갖고 있던 사악한 마력보다 더욱 상위에 있는 어둠이 심수력을 감싸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심수력의 몸이 빠르게 용인으로 변하고 있을 때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복희가 말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저건 진정한 용의 힘이다. 신력의 일종이기도 하지."

"단순한 용인과는 다른 겁니까?"

"그래. 진정한 용은 거신족과 마찬가지로 최상위 종족이므로 물질계를 반쯤 벗어나서 자유로이 우주를 날아다닐 수 있는 육체를 지니게 되지. 지상의 용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인데, 어떻게 한건지는 몰라도 저자는 진룡(眞龍)의 힘을 내면에 갖고 있었는데 지금 갑자기 주화입마에 드는 바람에 통제력을 잃고 폭주하는 중인 것 같군."

"아니 지금 분석할 때가 아니잖습니까! 멈출 방법은요?"

아마 흑웅의 힘을 쓰면 죽일 수는 있겠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못 얻고 죽이면 너무 찝찝하다고!

"흐음, 심수력은 그대의 창조물일 진대 내게 뒤처리를 하라고 시키는 것인가? 건방지군."

"어 그게 아니라……."

서늘한 복희의 목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찔끔했다. 호의적이라서 잊고 있었지만 눈앞의 존재 또한 [지배자]의 일원이며 삼황이라는 신화적 존재인 것이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복희가 훗하고 웃었다.

"한 번 정도는 무상으로 도와주지. 지금 이 사태도 제법 흥미가 생겼으니까."

그리고 복희는 잠시 숨을 들이쉬더니 갑자기 커다란 사자후를 터뜨렸다.

태룡후(太龍吼)!

투쾅 - !!

갑자기 거대한 소리의 기둥이 생겨 나서 심수력을 감싸듯이 뻗어나갔다. 태룡후의 범위에 있던 심수력은 잠시동안 발버둥을 치는 듯하더니 이윽고 다시금 몸이 인간으로 되돌아왔고, 잠시 후 혼절하여 뻗어 버렸다.

"꺼억."

쿠웅

기절한 심수력의 맥을 짚어보자 다행히도 신체는 정상이었다. 그냥 기절한 것뿐이었기에 나는 안도의 한 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감사합니다."

"자네는 정말 운이 좋군. 진룡의 각성을 제대로 막을 수 있는 건 전우주를 통틀어 열 명도 안 될 텐데 그중 한 명이 자네 앞에 있었던 거야."

"……."

그렇게 말한 복희는 천천히 걸어서 기절한 심수력 근처로 왔고 그의 용태를 살피는 듯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진룡으로 각성하려 한 이유를 알 것 같군."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자는 '누군가가 갖고 있던 강대한 진룡의 힘을 나눠받았어. 이 자에게는 술법이나 마도의 역량이 없으니 강탈한 건 아닐테고 자의적으로 나눠받는 의식에 동의한 게 틀림없겠군. 그래서 나눠받은 진룡의 힘이 내면에 잠자고 있었던 걸세."

"음…… 그렇다는 건 설마……."

내 얼굴이 굳어지자 복희는 얼굴을 끄덕였다.

"아마 내 생각이지만, 이건 나눠 받은 진룡의 힘의 일부에 불과해. 호월이란 자가 광룡의 힘을 각성하면서 엄청난 힘이 폭주하려 했고, 그 과정에 옆에 있던 호월의 동료들 이 호법을 서는 상태로 호월의 힘을 4등분 하듯 나눠 받아서 광룡의 폭주를 멈추려 했던 모양이군."

"……!!"

"그리고 자네는 그런 상태에 있던 호월의 호법, 심수력을 갑자기 소환한 것이지."

나는 복희의 말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소환요? 저는 그냥 창조를 한 게 아니었습니까?"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가 신력으로 창조를 했다기엔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야. 이 우주의 모든 마법과 주술의 법칙에서 위배 되는 상황이지. 창조를 하면 물질과 영혼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으나 인과를 자유자재로 생성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자네가 창조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소환]을 시전 했다고 보는 게 맞을 걸세."

그럴 수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그, 그렇다는 건 제가 [큰 굴레]를 넘어서 다른 시대에 존재하는 심수력의 몸과 영혼을 동시에 소환했다는 뜻이 되는 겁니까?"

"일단 그렇게 되지."

"말도 안 됩니다. 그것도 있을 수가 없는 일 아닙니까? 지금은 초고대인데 그래도 인류문명시대에 있던 자를 여기에 소환하다니……."

"……."

복희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 말대로일세. 소환 쪽이 좀 더 가능성이 높지만 그 또한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 아무래도 심수력이라는 이 자를 깨워서 좀 더 얘기를 들어봐야만 의문이 설명이 될 것 같네."

"음…… 당장 깨우겠습니다."

"잠깐 기다려보게. 진룡의 힘이 내면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으니 겉으로는 멀쩡해도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어. 기운이 진정될 때까지는 최소한 칠 주야의 시간이 걸릴 테니 그때까지는 정양하게 내버려 두는 게 나을 걸세."

"알겠습니다."

그때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흑웅이 불쑥 말을 꺼냈다.

[주인. 다시 한번 창조를 시전 해 보시오. 이번에도 뜻밖의 존재가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지 않겠소?]

"아니 이 난리를 겪었는데……."

[한번 해보시오. 나중에는 더 하기 힘들 거요.]

흑웅이 힐끔 복희를 쳐다보는 걸 보자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나마 방금처럼 수습을 해 줄 수 있는 복희가 있을 때 시도해보는 게 낫다는 소리 이리라.

"인간이여, 창조되어라!"

파앗.

그리고 이번에는 방금 전과 달리 평범하게 넋이 없는 인간이 만들어졌다. 그 모습을 본 복희가 말했다.

"아무래도 그동안 응축되어 있던 인과가 첫 시도에서 창조를 소환으로 바꿔서 시전해 버린 모양이군. [굴레]를 돌리는 전생자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 말씀은."

복희가 바닥에 있던 심수력을 내려 다보며 말했다.

"이자는 우연히 소환된 게 아니야. 아마 자네와 구면(舊面)일 걸세."

심수력이 기절한 후 나는 그를 대충 목갑에 집어넣었다. 구면이라고 해도 전혀 기억나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진룡의 힘이 들끓는 자에게 굳이 더 손을 댈 필요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다시 신력으로 창조를 하는 연습을 했다.

우웅!!

벌써 [인간]을 만든 지 10번째. 내가 10번째 인간을 만들어낸 모습을 본 복희가 부채를 촥 하고 접으며 말했다.

"이제 연습은 그 정도면 됐네. 더 해도 의미가 없을걸세."

"네? 아직 실패도 좀 하는데……."

무려 20번 이상 시도해서 10번을 성공한 셈이라 성공률은 사실 높은 게 아닌 듯했다. 반타작보다 조금 낮은 정도로 느껴졌기에 이제야 연습을 열심히 할 시기라고 느낄 즈음 인 것이다. 그러자 복희가 말했다.

"자네가 지금 실패하는 경우는 숙련도가 부족한 게 아니라 거부감 때문이야."

"거부감요?"

"내가 이런 신적인 힘을 가져도 되나 싶은 회의감과 인간의 경계를 넘 어 버리는 두려움이 실패율을 만들고 있을 뿐이야. 그런 게 없다고는 말 못 하겠지?"

"……."

나는 침묵했다. 복희가 정곡을 찌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렇게 맘대로 인간을 뚝딱 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미 인간을 한참 전에 벗어나 버린 게 아닌가? 단순히 힘만 강해진다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크게 고민할 일이 아니었지만, 인간을 화수분처럼 찍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직접 발휘할 수 있게 되니 두려움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복희가 느긋하게 말했다.

"애초에 신은 이런 걸 굳이 연습하지도 않아. 신이 연습과 노력을 하다니 그것도 웃긴 일이지 않나? 신은 처음부터 정점에 도달해 있기에 노력으로 강해지는 것도 거의 불가 능하고 한다고 해도 잡기술을 많이 익히는 것일 뿐이야. 단지 자네가 인간의 정체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겠군."

나는 그 말에 움찔하며 대답했다.

"저는 인간입니다."

"그래. 자네는 자기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인간이라는 세계관을 갖고 있는 걸로 보이는군. 가장 보편적이고 타당한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사견(私見)일세. 그 보편성에 비춰보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은 그저 말장난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

복희는 빙긋 웃었다.

"허나 용신인 내가 볼 때 자네는 이미 명실상부한 신이야. 그것도 상위 신에 가까워지고 있는 재능있는 신격이지. 인간이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벌레라고 외치고 다니는 꼴이니 우스울 수밖에 없다네."

"……."

은근히 독설이 강한 복희였다. 나는 복희의 말을 더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머리를 강하게 저으며 말했다.

"아무튼 좋습니다. 그 거부감만 떨치면 이제 저는 뭐든 창조할 수 있다. 그 말이 되겠지요?"

"바로 그걸세. 다만 창조를 하는 만큼 자신의 인과율과 신력이 동시에 소모되지. 강력한 창조물을 만들수록 더 소비가 커. 그런 기본원칙만 알고 있다면 신으로서 존재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으음…… 혹시 영혼도 만들 수 있는 겁니까?"

"이제 와서 그런 질문을? 당연히 할 수 있지. 이거 보게나."

후와악

잠시 후 복희의 손끝에서 아지랑이 같은 불빛이 피어올랐다. 나는 그 불빛이 둥실거리며 떠다니는 걸 쳐다보았고, 복희가 나직이 말했다.

"이게 영혼일세. 아주 간단한 거니까 한번 만들어 보게."

"아, 아니 만들라고 해도 뭐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긴 그저 언령만 뿌리면 되는 육체생성과 달리 영혼은 본질적으로 무형(無形)이라 조금 더 난이도가 있긴 하군. 간단히 요령을 가르쳐 줄까."

팅 하는 소리와 함께 복희가 손가락을 튕기자 아지랑이 같은 영혼이 내가 만들어놓은 [인간의 육체로 새어들어갔다. 눈코귀입을 통해서 흡수된 영혼이 잠시 후 사라지자 이 윽고 [인간]이 제정신이 들었는지 비틀거렸다.

"우어. 어…… 나는 누구인가……."

나는 그걸 보자 신기해서 복희에게 말했다.

"역시 영혼이 육체를 움직이는 거군요."

"그렇네. 여기에서 혼백(魂魄)이라는 개념을 추가하여 좀 더 움직이기 쉽게 조정할 뿐일세. 다만 신은 굳이 혼백 하나하나를 설정할 필요가 없으니, 혼돈에서 막 뽑아 올린 영혼의 덩어리는 저절로 그 균형이 맞춰져 있지."

"어렵게 생각할 거 없네. 그저 호수에서 국자로 물을 푸듯이 아무렇게나 끌어올리면 그만이야. 영혼에 굳이 별개의 인격을 생각하고 만든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 어차피 혼돈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뒤죽박죽 이고 창조된 후의 일은 신이 생각할 게 아니니까."

나는 복희의 말에 눈을 감고 정신 을 가라앉혀 보았다. 그러고는 오감이 아닌 육감의 영역으로 들어가서 한없이 머릿속을 비웠고, 영혼이란걸 혼돈 속에서 끌어내 보려고 했다.

…….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그러자 복희가 말했다.

"그건 인간이 혼돈과 반대되는 영역을 느끼려 할 때 쓰는 방식이니 완전히 반대로 하고 있잖은가."

"자, 잘 이해가 안 됩니다."

"흑웅도 말했지. 이건 집중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자네는 숨 쉴 때 들숨과 날숨을 전부 집중하면서 하는가? 물고기가 물을 헤엄칠 때 아가미를 펄럭거리는 일에 하나하나 신경을 쓰지 않듯, 혼돈이라는 바닷속을 헤엄치며 숨을 쉬는 것에 불과 하다네."

"으으음……."

"아무래도 기와 의념을 너무 오래 수련해서 버릇이 그렇게 들어 버렸나 보군…… 그럼 진짜 요령을 알려 줘야겠어."

"진짜 요령이요?"

복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건 놀이니까 그냥 대충대충 하게."

"…… 네? 놀이라고요?"

"신이라는 건 대충 살아도 위대한 것이라네. 이딴 건 그냥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가며 심심풀이로 하는 것뿐이고 필멸자처럼 노력해서 위업을 달성하려는 의지도 동기도 없네. 실패하면 또 하면 되잖은가."

"……!!"

"신에게 있어서는 그냥 모든 게 유희이고 놀이일 뿐이야."

유희(遊戲)....

나는 그 단어를 듣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마치 지금까지 잊어왔던 것을 떠올린 것처럼 즐거워졌다. 특히 실패해도 다시 하면 된다는 말에서 강한 자극을 받아서, 나는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래.

나는 지금 즐기는 중이었지.

"얍!"

영문모를 도야감에 휩싸여서 나는 히쭉 웃은 채 그대로 손바닥을 앞으로 향했고, 그러자 손바닥 앞에는 새파란 영혼의 불꽃이 나타나 있었다. 수박만큼 커다란 크기였으므로 복희가 만들어낸 것보다 훨씬 컸고, 복희는 약간 놀란 듯했다.

"이런! 그건 영혼이 아닌 것 같은 데 뭘 퍼낸 건가?"

"네? 영혼 아니라구요?"

"좀 더 밑바닥에서 끌어온 뭔가로 군……."

호기심어린 눈으로 내가 만들어낸 불꽃을 쳐다보던 복희가 고개를 까닥했다.

"육체에 한 번 넣어보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흥미가 생겼네."

슈욱

나는 복희의 말대로 내가 만든 불꽃을 육체에 넣어보았다. 그러자 방금 전처럼 영혼이 육체로 새어들어가는 듯했는데, 이윽고 전신이 검붉게 물들더니 그 육체의 주변에 일렁거리는 듯한 총천연색의 힘이 촉수처럼 발현되었다.

쿠구구욱

어어어아

그와 동시에 인간의 육체 위에 진흙색의 가면이 덧씌워졌다. 가면에는 마치 생명체의 혈관 같은 게 돋아나서 꿈틀거리고 있었기에 기괴하게 느껴졌다.

"으앗."

그 괴기스러운 모습을 보며 내가 약간 놀라고 있자 복희가 말했다.

"이것도 방금 전 심수력 같은 현상으로 보이는군. 자네의 인과가 너무 크기 때문에 첫 시전 때는 변형되어서 이상현상을 일으키는 거야. 심수력은 창조가 소환으로 발현된 경우 라면 이번 것은 우주의 심층에서 너무 깊은 존재를 퍼 올려 버린 듯싶네."

"우주의 심층이라니요?"

"평상시에는 신들도 손을 못 대는 억겁의 무간(無間)…… 경계(境界) 의 혼돈이라고 부르는 것들이지. 이런 건 확실히 영혼이 아니라 인간들의 표현으로는 외계의 악령이라고 부를 듯싶어. 저 정도 힘이면 하위 차원 하나 뭉개는 건 일도 아니겠군."

"……!!"

"그런데 오래 살아온 나조차 저건 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도 안 가는 걸. 진짜 뭘 어떻게 한 거지?"

차분하게 말한 복희가 부채를 휘둘렀다.

"아무튼 이 자리에 필요 없는 놈이니 추방한다."

퍼엉!!

끄아아악 - !!

다음 순간 불꽃이 끔찍한 비명 소리를 내며 사라져 버렸고 동시에 인간의 육체도 마치 소금기둥처럼 변해서 무너져 버렸다. 나는 인간의 육체가 부숴지자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 죽어 버리다니……."

"영혼도 없는 거였으니까 죽었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네."

"……."

나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아까 부터 신의 힘을 다루는 요령을 배우고는 있지만 정말로 인간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방금 전 외계의 악령을 불러내 버렸을 때는 내가 아닌 또 다른 나가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다시 해 봐."

"네."

나는 이번에는 제대로 영혼을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인간에게 불어넣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복희가 말했다.

"이것 참 전생자라는 건 골치 아프 군. 신의 힘을 쓸 때마다 일일이 이상현상이 일어난다면 이 세계가 남아나지 않을걸세."

"…… 죄송합니다."

"이렇게나 적성이 뛰어난데 마도사가 안 된게 정말 신기하군……."

그렇게 중얼거린 복희는 흑웅을 돌아보며 말했다.

"정령이여. 너는 주인의 인과율에 대해 짚이는 게 없는가? 일단 가르칠 건 다 가르쳤다만 그대의 주인이 품고 있는 혼돈은 범상치 않은 것 같구나."

[……]

흑웅은 아까부터 팔짱을 끼고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뒤늦게 복희의 말에 반응하고는 대꾸했다.

[내 주인은 무척 아슬아슬하게 태극(太極)의 균형을 이루고 있소. 그러나 세상에서 이르는 태극과는 완전히 다른 것일지니, 나는 머지않아 그 균형을 위하여 전신전령을 다할 생각이오.]

"호오, 그런가……."

[아무튼 신력수련은 이정도면 될 것 같군. 그럼 이제 신술을 가르쳐 주면 될 것 같소.]

"그거 말인데, 순서를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네."

[선신의 가호를 먼저 주겠단 말이오?]

"그래. 신술은 혼돈과 완전히 반대되는 재능이 필요하니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지 몰라. 얻을 건 빨리 얻어놓고 움직이는 게 나나 그대들이나 편하지 않겠는가?"

[일리 있군. 주인이여, 어쩌시겠소?]

흑웅이 내게 대답을 구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일단 가호부터 받겠어."

"좋네. 그러면 나를 따라오도록 하게."

저벅

복희가 몸을 홱 돌려서 밖으로 나가려 하자 나는 순간 당황해서 말했다.

"잠깐! 여기 만들어놓은 인간들은 어떻게...."

"음? 영혼을 넣어서 탁록촌에 보내도록 하게. 마을 인구가 많아져서 좋겠군."

"여, 연고도 없는 인간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도 됩니까?"

"……? 이 시대에 그게 무슨 상관인가."

"……."

"귀찮으면 내가 영혼을 넣어주지."

복희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건물에 있던 영혼 없는 인간들은 모두 영혼이 생겨나서 의식이 생겨났다. 복희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동굴 바깥을 가리켰고 인간들은 어기적거리며 걸어서 나가게 되었다.

뭔가…… 너무하다…….

내가 멍청하게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자 흑웅이 내게 말했다.

[주인, 정신 차리시오.]

"아니…… 암만 그래도 이건……."

[인간의 영혼이 무가치하다는 건 제갈사에게 이혼대법을 얻으며 이미 알고 있지 않았소? 신에게 있어서 인간 따위는 벌레나 다름없고 원할 때 언제든 찍어낼 수 있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오. 그리고 주인은 인간을 만들어낼 권리를 얻은 것뿐이지.]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겪게 되니 인간의 존엄이란 것에 대한 내 생각이 크게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

'복희도 그렇고 신이란 존재들은 인간 따위는 수백만 명씩 원할 때마 다 찍어낼 수 있는 거야……'

촉룡도 그런 걸 알고 있으니까 죄책감 따위 없이 수천 년 동안 명부가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의 영혼을 마음껏 포식한 것이다. 인간에게 존엄 따위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겪게 되니 좀 더 충격이었다.

이런 하찮은 인간을 지키려고 굳이 노력할 필요 있을까?

이 원한다면 수백 수천 번도 더 인류를 만들었다가 없앨 수 있는 건데.

그리고 죽음과 삶조차도 신에게 무의미하다는 걸 이미 여실히 느껴 버렸다.

내가 혼란스러워할 때 흑웅이 나직이 말했다.

[주인. 태극의 균형이란 빈말로 한 게 아니오. 오로지 천상천하에 주인 만이 [끝]을 볼 수 있을지니, 주인에게 진짜로 중요한 건 강대한 힘 따위가 아니라 업(業). 나는 주인이 자신만의 해답을 낼 수 있도록 끝까 지 도와주겠소.]

"…… 고맙다."

[별말씀을.]

흑웅의 말을 듣자 적잖게 위로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복희를 따라서 밖으로 나가자 복희는 곧장 차원문을 열면서 말했다.

"그럼 가호를 받으러 가볼까."

"어디로 갑니까?"

"우선 내가 아는 가장 가까운 신격에게로 가봅세. 아마 말한 대로라면 자네도 구면이겠지."

파앗!

복희를 따라 차원문을 넘어가자 우리는 이윽고 신비한 바람이 가득 불고 있는 고산준령(高山峻靈)의 대지에 도착했다. 인간 세상과 달리 어마어마한 절벽이 가득했고 기화요초가 가득 피어 있었으며, 곤륜산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후우웅

그리고 여기저기에 용이 많이 날아 다니는 게 보였다. 내가 이 기이한 장소를 열심히 구경하고 있을 때 복희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오는군."

파앗!!

하늘에서 거대한 용이 떨어지듯이 활강하여 내려앉았고, 내려앉음과 동시에 인간의 형상으로 변신해서 대지에 섰다. 물흐르는 듯한 변신술 처럼 보였고 나는 상대의 모습을 보자마자 강대한 압박감을 느꼈다.

빠지직

'강하다!!

신력을 좀 더 자유자재로 다루게 된 지금은 상대가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상대는 어마어마한 신력을 응축해서 인간의 형상에 내재시키고 있었고, 그 힘은 틀림없는 삼황오제급으로 보였다. 그리고 상대는 굳이 인간을 배려하여 힘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으니 평범한 인간이 보면 아마 즉시 미치거나 죽었으리라.

나타난 존재는 준엄한 외모를 하고 있는 백색 옷의 장년인이었다. 장년인은 복희와 나를 번갈아서 쳐다보더니 말했다.

"복희여. 똑같이 생긴 저자는 대체 무엇이오? 어마어마한 정령을 거느리고 있군."

"후후, 역시 자네도 흑웅에게 반응 하는군. 하긴 자네 입장에서는 신경 쓰이겠지."

"무슨 일로 찾아왔소."

"별다른 일은 아닐세. 그저 자네가 예전부터 나와 황제 사이에서 어느 편에 붙을지 지속적으로 갈등하고 있지 않았는가? 오늘은 그 대답을 듣고 싶군."

그러자 장년인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우리는 이 별의 자식이며 수호자. 어느 한쪽의 편에 서지 않겠소. 끝까지 중립을 지키겠다고 의사를 표명했소만."

"압도적인 약육강식의 논리 앞에서 그런 어설픈 중립이 통하겠는가? 어느 쪽이 이기든 간에 자네들은 결정 해야만 해. 그래야 이 별에서 생명체가 살아남도록 유지를 시킬 수가 있겠지."

"그 어떤 협박에도 우리는 굴하지 않소."

"그래?"

복희는 짓궂은 미소를 짓더니 힐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백웅. 인(印)을 되살려서 보여주게. 그러면 눈앞의 못된 풍룡(風龍)도 마음이 바뀔 것 같군."

"네?"

무슨 소리야?

그러자 나 대신에 내 옆에 있던 흑웅이 눈치챈 듯 말했다.

[과연…… 맨입으로 선신의 가호를 줄 리가 없지. 처음부터 일거양득을 노리고 나를 데려왔구나.]

"하기 싫은가, 흑웅?"

[아니오. 주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하겠소.]

그렇게 중얼거린 흑웅이 갑자기 자신의 쌍장을 마주치더니 권능을 발휘했다.

성라회천(星羅回天)

재귀발현(再歸發現)

응룡왕(應龍王)의 인(印).

파앙!

다음 순간 내 손등에 화끈한 느낌이 들더니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기묘한 문장이 새겨졌다. 그리고 그 문장이 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복희가 다가와서 내 손등을 휙하고 들어서 백의의 장년인에게 보여주며 말했 다.

"보게. 이자는 자네에게 인정을 받은 게 아닌가?"

"……!!"

그러자 백의의 장년인은 눈을 부릅뜨고 경악한 듯했다. 그러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희는 누구냐!"

이어진 말에 나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누구이길래 나 응룡(應龍)이 준 적도 없는 왕의 인장을 갖고 있는 가!!"

응룡왕의 인!

그것은 과거 전생하는 동안 우연히 암천향으로 넘어가게 되었을 때 화룡진인에게 받았던 가호였다. 나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이 능력은 인과율을 조작하는 계열의 술법이다. 그대에게 존재하는 인연의 단말을 복구시키거나 강화시킬 수 있으며 제약을 없앤 채 소환할 수도 있다. 또한 공격용으로 쓴다면 천계의 대라신선에게 만신전의 낙인을 찍어서 즉시 소멸시킬 수도 있다.]

[아마 응룡이 내게 천계를 감찰시킬 목적으로 준 능력이겠지. 다만 천계 소속에 한정되며 삼황오제 같은 대신격에게는 쓸 수 없고, 한번 사용하면 10년은 못 쓴다. 그래서 저 신공표에게는 쓰지 못했다.]

다만 그 당시에는 응룡왕의 인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제일 유용했던 순간은 아마도 암천향을 지키는 거미가 응룡왕의 인을 보자마자 통과 시켰던 때였을 것이다. 그 이후로는 화룡진인의 힘을 원상복구시키기도 힘들뿐더러 다른 가호나 능력도 많았기에 거의 잊고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 흑웅이 응룡왕의 인을 부활시킬 줄이야! 아마 흑웅의 권능인 성라회천이 내가 과거에 얻은 적 있던 가호를 되살리는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인 듯했다.

‘그, 그래…… 확실히 응룡왕의 인은…… 신수 응룡의 것이겠지!'

또한 왕의 인장이라면 응룡에게 있어서 더없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틀림없다. 왕의 옥새나 다름없는 것 인데 생판 처음 보는 외인이 이 권능의 인장을 갖고 있으니 응룡으로 서는 놀랄 수밖에 없으리라.

응룡의 질문에 내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흑웅이 말했다.

[주인. 이건 기회요. 우리 힘으로 가호를 받아냅시다.]

"……!!"

나는 흑웅의 말에 내가 뭘 해야 할지를 알아차렸다. 지금은 바로 평소 하던 때처럼 응룡과 교섭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마치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표정을 바로 고치고 씩 웃으며 응룡에게 말했다.

"응룡이여! 당신이 우리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나는 황제 앞에 가서 이 인장을 동맹의 증거로 들이밀겠소!"

"뭣이?"

"응룡왕의 인장까지 갖고 있는 자가 자신에게 적대한다면 황제가 뭐라 생각하겠소. 당신은 어차피 황제의 적이 되는 것일 텐데 감당할 수 있겠소?"

"……."

응룡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대꾸했다.

"그럼 굳이 이 공구산(恭丘山)까지 날 찾아와서 협박할 필요가 있나? 그냥 날 무시하고 황제 앞에 가서 너희의 계책을 실행하면 될 게 아닌가."

어 그것도 그렇네?

내가 잠시 말문이 막히자 복희가 나를 거들려는 듯 입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 가볍게 계책을 부려 봤자 응룡 그대의 진심 어린 도움은 얻을 수가 없지. 도리어 그대는 현명하기에 우리를 돕는 척하다가 황제와 내통하여 우리 측을 협공할 수도 있겠지. 이 정도는 알고 있으니 너무 화내지 말게, 응룡."

"이미 화는 났소. 허나 그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어서 참고 있을 뿐이오."

응룡이 무뚝뚝하게 대꾸하자 복희는 싱긋 웃었다.

"방금 했던 말은 빈말은 아냐. 실제로 황제 앞에 가서 작당하여 그대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지. 다만 그 전에 그대가 알아뒀으면 하는 게 있어서 말일세."

"뭘 알아야 한다는 거요?"

"보다시피 우리는 신의 가호조차 복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또한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인간 중에 혼돈의 재능을 강하게 각성한 자는 신에게 도전할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어. 우리 신의 힘만으로는 황제의 진영에게 확실히 이길 승산이 부족 할지도 모르지만, 이 힘을 더한다면 충분히 황제와 싸워서 이길만하다 생각지 않는가?"

"으음……."

응룡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더니 뭔가를 생각하다가 말했다.

"돌아와라."

뜬금없는 소리를 말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날 쳐다보고 있던 응룡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그 인장은 나의 것이지만 나의 것이 아니구나. 나는 언제든 내 권능을 회수할 수 있으나 네게 있는 그 인장은 회수할 수가 없다."

오, 그렇단 말인가?

뜻밖의 사실에 내가 신기해서 눈을 크게 뜨자 응룡이 말했다.

"여태까지 그대의 회유 시도 중에서 가장 흥미롭긴 하오, 복희. 저 인간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오?"

"그의 이름은 백웅. 내가 새로이 받아들인 제자일세. 그리고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

"그래 보이는군. 저런 정령을 거느리고 있는 걸 보면……."

응룡의 시선이 다소 호의적으로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응룡은 잠시 후 말했다.

"정령이여. 너의 이름은 무엇이 냐?"

[나는 흑웅이오.]

"너의 근원은 이 지구(地球)가 아닌 듯싶구나. 너는 어디서 온 존재인가?"

[나는 내 주인에게서 비롯되었소.]

"믿을 수 없다. 일개 인간이 너만한 정령을 탄생시킬 인과(因果)가 존재한다는 건 우주가 뒤집혀도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혹여 저 머나먼 은하계에서 온 게 아니냐?"

[내 이름을 걸고 말하겠소. 나는 내 주인에게서 비롯되었소.]

"……!!"

그 순간 응룡이 눈을 크게 뜨고 놀랐다. 그러고는 명백히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름을 걸고 맹세하다니! 정녕 인간이 네 근원이란 말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믿는 믿지 못하는 사실이오. 그리고 이제부터 내 주인을 무시하는 언행에는 나도 참지 아니하겠소.]

후웅

흑웅이 약간의 적의를 발휘하며 어둠의 기운을 방출했다. 그와 동시에 흑염(黑炎)이 넘실거리는 게 느껴졌다.

"……."

응룡은 멍하니 있다가 문득 내게 말했다.

"인간... 백웅이여. 그대는 어찌하여 복희와 손을 잡고 황제를 타도하려 하는가?"

나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황제가 승리하게 놔두면 미래에 결국 이 세상은 멸망하기 때문이오. 지금 망하나 나중에 망하나의 차이 밖에 없다면 당연히 바꿀 수 있을 때 도전하는 게 맞지 않소?"

"무척 확신에 차 있군. 내가 볼 때 너희 질서진영이나 황제진영이나 어차피 혼돈의 신이라는 사실은 다르지 않다. 너희가 이긴다하여 이 지구가 멀쩡하리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음."

"질서의 신들도 너희 인간을 벌레 취급하긴 마찬가지다. 굳이 힘을 써서 눌러 죽이지 않을 뿐이지."

정말 맞는 말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허나 질서의 신들은 적어도 외신(外神)에게 이 세계를 인신공양하지는 않을 것이오."

"...황제는 그럴 것이란 말인가?"

"나는 확신하오."

왜냐하면. 직접 봤으니까. 지구가 [옥좌]에 빨려들어 가서 마치 배설물처럼 튕겨 나오는 장면도, 황제가 기어코 니알라토텝의 봉인을 풀어서 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가게 하는 꼴을 보고 말았으니까.

그러자 응룡은 미미하게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좋다. 너희의 말이 맞는 듯하니 황제와 협력하지 않겠다."

설득한 건가!

그러나 옆에서 듣고 있던 복희가 말했다.

"말장난을 하는군. 황제와 협력하지 않겠다 하여 우리와 협력한다는 뜻도 아니지. 결국 계속 중립은 유지하고싶다 이거 아닌가?"

"당신들의 말에 마음이 움직인 건 사실이오, 복희. 허나 내게는 모든 용족과 이 땅의 정령들의 운명이 걸려 있소. 쉽게 결정할 수 없음을 이해해주시오."

"뭐... 그대처럼 완고한 자가 그 정도로 말하는 것만 봐도 만족이긴 하군. 원래는 황제 측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나 보지?"

"부정하진 않겠소. 허나 내가 움직이면 '그녀'도 함께 움직여야 하오. 그리고 그녀는 이미 황제측에게 손을 들어주고 있소. 내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녀 또한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지."

"……."

복희는 잠시 침묵하다가 중얼거렸다.

"구천현녀(九天玄女)가 이미 기울었을 줄이야. 황제가 생각보다 손이 빠르군."

"……!!"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구천현녀!

미래에 일요의 수호자이자 천계의 대신격으로 추앙받는 그녀는 사실 이 별의 태초부터 함께해 온 수십억 년을 살아온 정령신이었다. 당연히 이 시대에도 있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벌써 황제의 편을 들고 있을 줄이야!

복희가 말했다.

"그런 극비정보까지 말해주는 걸 보니 마음이 움직였다는 건 거짓이 아닌 것 같군."

"구천현녀는 대전(大戰) 이후의 질서에서 모든 지성체의 안정과 번영을 약속받았다 했소. 황제가 그 자신을 축으로 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것이고 다른 외계의 [지배자]들을 깡그리 물리칠 것을 호언장담했다더군. 그녀는 황제의 커다란 양보에 마음이 움직인 걸로 보이는 구려."

"……흐음, 칠요의 계약이로군. 이미 황제는 판을 다 짜고 있었던 건가. 과연 백웅의 말대로인가."

"무슨 말이오?"

"아무것도 아닐세."

복희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거 좋군. 그러면 나도 황제와 같은 것을 약속하겠네."

"그대들은 원래부터 주장하던 바가 아니었소?"

"아니. 선신(善神)이라 하는 자들은 벌레 같은 인간들이 그냥 살아가기만 하면 족할 뿐 그들이 어떤 문명을 구축하고 삶의 의미를 찾을지에는 관심이 없었네. 허나 황제는 그걸 넘어서서 신이 없는 인간만의 세상까지 만들어주겠다 했던 모양이군. 그렇다면 나 또한 황제와 대등한 조건을 내세워야 하지 않겠나."

"…….진심이오? 황제의 조건은 공허한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아보이는데. 그대는 섣불리 허언을 하지 못하오."

"황제도 혼돈의 신이지만 적어도 자기가 한 말은 지킬테지. 진허(眞虛)를 섞을 수 있기에 그가 무서운 존재인 걸세."

그렇게 중얼거린 복희가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앞으로 칠요(七曜)를 제작하여 이 세계를 지키는 결계를 만들 것을 약속하겠네. 또한 응룡 그대를 비롯한 모든 지성체의 일족을 나 복희가 최선을 다해 보호할 것을 약속하겠네!"

"……!!"

"또한 [계시]의 때까지 모든 문명이 안정적으로 지복을 누릴 수 있게 전폭적으로 지원하도록 하지."

응룡은 깜짝 놀란 듯했다. 그는 한 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이윽고 서서히 복희에게 고개를 숙였다.

"설마... 우주의 용신인 그대가 그만큼이나 결단할 줄은 몰랐소. 나 응룡은 그 의지를 존중하여 그대들의 휘하로 들어가도록 하겠소."

"고맙네."

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약간 놀라고 말았다. 기어코 복희가 중립을 완강하게 주장하던 응룡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것보다 더욱 놀라운 점은 방금 전 복희가 했던 말이었다.

'칠요를?’

황제가 칠요를 만드는 것과 복희가 칠요를 만드는 게 어떤 차이가 있는 거지? 응룡은 왜 그 사실에 놀란 것인가?

아무래도 복희가 내게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칠요를 만들겠다는 결론을 낸 거 같긴 한데 이유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으로 알쏭달쏭하여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였다. 응룡이 내 쪽을 쳐다보며 말을 걸어왔다.

"백웅이여. 그 권능을 계속 쓸 생각인가?"

"응룡왕의 인 말이오?"

"그렇다. 네가 그 능력을 쓸 때마 다 단말을 통해서 내 힘이 빠져나간다. 남용할 거라 생각되진 않으나 자제해주었으면 좋겠다."

응룡의 부탁에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응룡왕의 인 대신에 쓸 수 있는 가호를 내게 주시오."

"뭣이?"

"그래야 그 가호를 쓴다고 응룡왕의 인을 덜 쓰게 될 게 아니오?"

"……일리 있구나."

응룡은 팔짱을 끼더니 이윽고 갑자기 크게 입김을 불었다.

후오오오오!!

갑자기 거대한 광풍(狂風)이 일어나더니 강대한 신력이 허공에서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신력이 뭉친 결과 한 명의 절세미인의 형상이 서서히 빛무리 속에서 나타나는 게 보였다.

화아아앗

나는 그 절대적인 미모의 여인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서 외쳤다.

"으아앗?!"

어째서 저 사람이?!

응룡은 입김으로 절세미녀를 창조해내고는 말했다.

"놀랐나 보군. 하긴 내 화신이 너희 인간들의 기준으로는 복희에 못지않은 절세가인일 것이다."

"……."

"내 화신을 빌려주어 네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 저 아이는 나 응룡이 가장 아끼고 있으며 가장 큰 힘을 담은 화신이니 너를 크게 도와주는 가호로써 기능하게 되리라."

나는 멍하니 그 절세미녀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맞았기 때문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는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는 응룡에게 말했다.

"호…… 혹시 저 화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소?"

"본디 나의 힘은 바람과 비를 다루는 것이지만 이 지구의 내핵에서 끓어오르는 극강의 열염(熱炎)을 먹어치워 새로운 힘을 불어넣은 화신일지니."

이어진 응룡의 말에 나는 역시나 내 생각이 맞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화신의 이름은 화룡진인(火龍眞人)이라고 한다."

"……."

심지어 화룡진인은 눈을 뜨자마자 내게 익숙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앞으로 내가 도울 자는 바로 그대인가?"

나는 멍하니 있다가 한참 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이오. 앞으로 잘 부탁하오."

그렇다.

화룡진인이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검선 여동빈의 스승이자 내가 전생 하면서 숱하게 마주치며 도움을 받았던 신적 존재!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그녀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큰 굴레]의 과거에서 떡하니 마주칠 줄은 몰랐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복희는 이미 내 상황을 알아챈 듯 재밌어 보인다는 눈빛으로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후후, 재밌는 여행이 되겠군."

"그럼 이만 가보겠네, 응룡. 다음에는 구천현녀를 대동해서 얘기하지."

"잘 가시오."

파앗

잠시 후 나는 복희, 화룡진인과 함께 차원문을 타고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복희의 인도에 따라서 도착한 다음 장소는 웬 거대한 섬이었다.

"여기는?"

섬 주변에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고 쨍쨍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의문의 장소에 도착한 내가 어리둥절하자 복희가 내게 말했다.

"그대에게 선신의 가호를 주겠다고 했지. 허나 선신 중에는 방금처럼 완전중립을 외치는 자들이 태반이야. 그중에서 그나마 내게 호의적인 자는 한정되어 있으니 사실 가호까지 받을 정도로 친한 자는 많이 없네."

"음…… 그렇습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신은 자기가 제일 잘났으니 사실 우리처럼 뭉쳐 다니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해."

"그래서 여기는 어디입니까?"

"그 중립을 외치는 선신 중에서도 가장 꼬셔 볼 만한 자들이 바로 신수(神獸)들이란 말을 하고싶은 것일 세. 왜냐하면, 아예 이 세상에 관심없는 자들과 달리 생명체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이야."

"……?"

대답은 안 하고 웬 엉뚱한 소리를……

바로 그때였다.

"오늘 귀인(貴人)이 온다는 점괘를 봤었는데 과연 그대였군요, 복희. 방금 했던 말은 제게 들으라고 한 말씀이시겠지요."

어느새 맞은편에서 의문의 괴인이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괴인 또한 낯이 익었기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저자는!’

화룡진인도 그렇고 오늘은 아는 얼굴을 계속 보는 날이란 말인가?!

내가 내심 당황하고 있을 때 복희는 빙긋 웃으며 그 괴인의 말에 대꾸했다.

"바로 그렇네. 자네들 사령(四靈) 린봉귀용(麟鳳龜龍)이야말로 가장 착한 존재들이란 말이지."

"과한 해석이군요. 당신은 인간을 크게 사랑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인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허나 산천초목의 가녀린 동식물은 무척 사랑하지 않는가?"

"……."

"우리가 서 있는 그대의 이 등딱지 말일세."

복희가 부채를 촥 하고 접었다.

"남해바다에 사는 동식물들이 [옛 지배자]의 마력에 죽지 않게 보호하려고 일부러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중이라는 걸 다 알고 있다네, 영귀."

"하하……."

사령(四靈), 혹은 사대신수(四大神獸)의 하나로 불리는 영귀(靈龜)는 그 말에 그만 피식 웃어 버린 듯했다.

"설마 응룡의 화신까지 대동하고 오실 줄이야. 아무래도 오늘은 작정하고 오신 듯하군요, 용신 복희."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문득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구나.'

복희가 내게 주겠다고 한 선신의 가호.

그것은 삼황오제에 버금가는 사대 신수, 린봉귀용(麟鳳龜龍)의 가호인 것이다.

영귀와 마주한 복희는 이내 부채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용건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이자는 백웅이라 하는데 백웅에게 그대의 가호를 내려주게."

그러자 영귀는 흑웅을 보고 다소 놀란 듯했다.

"엄청난 정령을 거느리고 있군요…… 정말 인간입니까?"

"일단은 인간일세. 아직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인과(因果)…… 우주의 섭리를 벗어난 게 분명할 텐데도 섭리는 저자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군요…… 과연 용신 복희가 인정할 정도의 기인(奇人)이 분명합니다."

영귀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복희님의 의도를 알고 싶군요. 황제와의 싸움에 사대신수를 모두 참전시켜서 승리를 얻어내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뻔한 질문을 하고 있군. 사실 황제와의 싸움에서 그대들이 모두 우리 편이 된다 해서 꼭 황제를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야. 단순히 신격의 쪽수만으로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다면 예전에 결판이 났겠지. 황제도 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경우 동원할 수 있는 아군이 많이 있으나 그래 봐야 피차 남는 게 없으니 어느 정도 정해진 판 내에서 싸울 예정이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타계(他界)의 지배자들도 많고."

"역시 그렇겠지요. 그러면 무엇을 바라고 저 백웅이란 인간에게 가호를 몰아주려 하는 것입니까?"

"후후, 그건 자네가 직접 얘기하면서 느껴보지 않겠는가?"

훗 하고 웃은 복희가 나를 슬며시 쳐다보고는 말했다.

"백웅. 자네가 영귀와 얘기를 해보게."

"제가요?"

"그래. 나보다는 자네가 할 얘기가 많겠지. 어떤 결과가 나오는 받아들이겠네."

"……."

나는 복희가 무슨 의도로 말한 건지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복희는 내 기억을 받아들인 건 아니고 단편적인 설명만으로 영귀와의 관계를 짐작하고 있기에, 나는 알지만, 복희는 모르는 과거의 기억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귀를 설득하는 일에 있어서는 내가 훨씬 더 나을 수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영귀에게 말을 걸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어…… 막상 영귀 앞에 서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영귀는 사대신수이지만 응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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