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렇다 해도 전 모든 전후사정을 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건 당신이 오기 전의 전후사정.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르니 섣불리 말할 수가 없군요."
"무슨 소리지? 미래는 몰라도 과거 를 이미 알고 있다면 충분히 내게 그 사정을 말해줄 수 있는 게 아니요."
"말했듯이, 미래를 아는 건 꼭 이득이 되는 게 아니라 독(毒)이 될 수도 있어요. 과거의 지식 또한 마찬가지. 그리고 정보를 말해줄지 아닐지는 예언자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선택권."
유소가 약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 당신이 소녀 언니를 구출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당신에게 그에 관련된 정보를 주진 않겠어요."
"……."
그녀는 왠지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언니는 죽지도 않을 거고 제 힘으로는 감히 그녀의 운명을 측정할 수도 없으니까요."
나는 황당해져서 유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즉…… 자기 혈육을 구출하든말든…… 나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서 하라? 지금 상황설명도 알면서 안 해주는 거고?"
"그런 셈이죠."
"미친 것 같군! 황제나 서왕모가 얼마나 난폭한 놈들인지 알고 하는 말이오? 그들은 인간세상따위 손가락 하나로 뒤집어엎는 놈들인데 일개 인간의 목숨이 끝까지 보증될 리가 없소."
"알아서 하세요. 더 할 말이 없어요."
빠직
나는 속에서 열불이 나는 걸 느꼈다. 왜인지 유소가 자꾸 내 속을 긁는 소리를 하니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알았소, 내 맘대로 하지!!"
이렇게 되면 오기로라도 구출해주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것 이다!
유소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으로 두 번째 의뢰인 동방삭의 거취가 필요하겠군요."
"명계에서 그놈은 찾기는 쉽다고 했는데 잡기가 어렵다고 하더군. 천하제일의 신법을 쓰기에 빨라서 못 잡는 건가?"
"빠르기도 하지만 못 잡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요."
"그게 뭐요?"
이어진 유소의 말은 뜻밖이었다.
"동방삭 또한 혼돈의 재능을 지닌 자예요. 그가 지닌 재능은 바로 무문(無門)이라고 해요."
"무문? 그건 뭐하는 능력이오?"
"동방삭이 '문'이라고 인식한 모든 것을 무시하고 통과해 버릴 수 있는 능력이에요."
"……?"
"직접 상대해보면 무슨 능력인지 알 거예요."
"알았소. 뭐 엄청 세서 못 잡는 건 아니란 거겠지."
"그건 그래요."
그냥 좀 특이한 초능력자 하나 상대한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겠지!
내가 동방삭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 할 때 유소가 말했다.
"동방삭은 지금 남미대륙에 있어요."
"남미대륙?! 당신이 어떻게 그런 표현을 쓸 수 있소."
"미래를 봤으니까요."
"아무리 미래를 봤다지만…… 그런 것까지 알 수 있소? 어떻게."
유소가 미래의 지식과 어휘를 쓰는 게 이상해서 반문하자 유소가 말했다.
"미래를 미리 안다는 건 책을 미리 읽어보는 것과 같아요. 게다가 눈앞의 당신은 미래의 지식을 일부러 숨기지 않고 공유하는 사람이니 당신이 겪은 미래의 일을 간접적으로 해석해서 지식을 얻는 건 이상하지 않 죠. 그리고 당신이 만나서 누군가에게 정보를 듣는 것 또한 제 예지에 있기 때문이에요."
"음…… 근데 그놈은 뭐하러 거기 까지 갔지?"
유소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당신에겐 시간이 많이 없어 보이니 약간 천기를 누설해 보죠."
"응?"
"잠시만요."
그러자 유소가 잠시 눈을 감고 정 신을 집중하는 듯했다.
'미래를 읽는 건가?'
내가 신기해서 유소를 쳐다보자 유소가 잠시후 눈을 뜨며 말했다.
"…… 미래에는 [마야]라고 불리는 장소인 것 같군요. 그는 거기에서 뭔가를 얻으러 남미대륙에 찾아갔어요. 이 정도만 말해도 당신은 알아서 찾아갈 수 있는 것 같네요."
"!!"
마야?
나는 그 단어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좀 예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고,
나는 나중에 다시 정신을 맑게 해서 기억을 떠올리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유소에게 말했다.
"알았소. 나는 전륜성왕이 말한 과업을 하러 갈 테니 다음에 봅시다."
"그러세요."
저벅
내가 유소의 집을 나서자, 몇 걸음 가지 않아서 웬 거대한 장한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물끄러미 그 장한을 쳐다보자, 그는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밖에서 얘기하는 걸 다 들었다. 그래서 두 장소 중에서 어디에 먼저 갈 것이냐?"
나는 팔짱을 끼며 대꾸했다.
"남의 얘기를 엿듣다니 비열하구려, 열산."
"질문에 대답해라. 나는 내 혈육의 이야기이니 결코 좌시할 수 없다."
"소녀 말인가?"
"그래."
열산은 험상궂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유소가 말한 대로 나는 저 두 아이를 어릴 때부터 업어서 키웠다. 그런데 몇 년 전에 난데없이 황제 공손헌원이 소녀를 유혹했고 소녀는 어째서인지 놈을 따라가고 말았지. 염제 신농의 직접적인 가호가 돌보는 이곳에 있으면 아무리 황제라도 소녀를 데려갈 수 없는데."
"……."
"네가 따라오지 않아도 좋다. 나는 방금전 소녀가 서왕모의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즉시 탁록촌을 나가서 그 아이를 되찾아 올 것이다."
"그럼 혼자가면 될 것인데 굳이 내게 행선지를 묻는 이유가 뭐요?"
열산이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말했다.
"유소에게 들어서 네가 무척 강력한 전사라는 걸 알고 있다. 아무리 나라도 강대한 대신(大神)을 상대로 는 두려운 게 사실이니, 너와 힘을 합치고 싶다. 당연히 소녀 주변에 황제의 심복들이 호위하고 있을 것 이니 그자들을 상대해 다오."
"……."
"그러니 동방삭 같은 놈은 내버려 두고 바로 나와 소녀를 구출하러 서왕모의 집에 가자. 빨리!"
나는 열산이 무척 조급해하는게 느껴졌다. 여태껏 유소가 열산에게 소녀의 행방을 한번도 말하지 않다 가 이제 와서 내게 행방을 말해주자 마음이 급해진 것 같았다. 언제 소녀가 강력한 신들에게 해를 입을지 두렵다는 마음으로 보였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도 구출할 생각이 굴뚝같소. 그러나 우선순위는 동방삭을 먼저 상대하는 것이라 생각하오."
"뭣이!! 영 알지도 못한 곳에 있는 비렁뱅이 같은 놈을 찾으러 가는 게 어째서 먼저란 말이냐!"
열산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유소는 소녀가 당장 해를 입지는 않을 거라 했소. 그 말은 시간이 아직 많이 있다는 소리이고, 시간이 있다면 이쪽이 준비를 든든히 해서 가는 게 더 구출에 성공할 확률이 높단 얘기 아니겠소?"
나는 이런 비슷한 경험이 워낙 많아서 이제는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있었다. 보나마나 소녀를 구출하는 일은 엄청난 난이도가 있기에 지금 당장 도전하려 하면 계란으로 바위치기 꼴이 될 것이다.
"음……."
"난 동방삭을 찾으러 가면서 내 나름대로 수련을 해서 더 강해질 생각이오."
나는 열산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랑 같이 갑시다. 나라면 당신에게도 더 강해질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소."
"……!!"
열산은 혹하는지 무척 고민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잠시후 고개를 끄
덕였다.
"좋다! 대신 네 말대로 되지 않는 다면 나를 기만했으니 가만두지 않 겠다!"
"그땐 맘대로 하시오."
이로써 잠재적으로 열산이 동료가 된 건가?
그 때 낯익은 목소리가 멀리서 들 려왔다.
"후우. 역시 백웅 당신은 열산 아 저씨를 쉽사리 세치혀로 농락해 버리는군."
저벅
마을 한편에서 근육질에 앞머리를 가린 푸른 머리칼의 청년이 한숨을 쉬며 걸어 나왔다. 한 손에 작대기 를 들고 있던 그 소년은 일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었기에 나는 그의 이 름을 불렀다.
"청양(靑陽)이라 했던가?"
"맞습니다."
"그리고 그 옆은 상아(婦姚)……."
어느 새 청양을 뒤따라오고 있던 적발적안의 소녀, 상아가 소리를 빽질렀다.
"친한 것처럼 이름 부르지마!"
상아가 성질을 내고 있자 청양이 나를 주시하며 말했다.
"사실 우리도 당신과 촌장님의 대화를 다 들었습니다."
"…… 이놈의탁록촌은 엿듣기가 취미인가? 개나소나 다 엿듣고 있군."
내가 어이가 없어서 투덜거리자 청양은 멋쩍은 듯 말했다.
"이 탁록촌에 사는 모든 인간은 [바깥] 인간들보다 훨씬 신체능력이 뛰어나니까요. 게다가 가진 능력이 뛰어나면 미세한 소리까지 다 잘 들려서 본의 아니게 다 듣게 된 겁니다."
"그래, 잘 엿들었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이 어디를 가든 간에 사실 알 바는 아닙니다. 소녀 님을 구출하는 일에는 관심이 있지만 유소 님이 우리의 관할이 아니라 하셔서 잊고 있기도 했고요. 하지만 당신이 방금 열산 님과 얘기하던 게 신경 쓰이는 군요."
청양이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아…… 그 말이군."
"당신이 가진 특별한 기술을 우리 에게 전수해줄 수 있다면 우리도 당신을 돕겠습니다."
"흠……."
특이한 놈이다. 소녀를 구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는데 왜 강해지는 것에 욕구가 충만한 거지? 나는 이유를 물어보기로 했다.
"넌 상대의 시간을 멈추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던데 어째서 더 강해지 고 싶은 거냐?"
"그래 봤자 인간이니까요."
"음."
"이 탁록촌에서야 그럭저럭 살 만 하지만, 대륙을 돌아다니면 저는 순식간에 죽고 말 겁니다. 그러니 더 강해지고 싶다는 것뿐입니다."
나는 그제야 청양이 가진 욕심이 뭔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이 녀석은 탁록촌에서 벗어나서 살고 싶어 하는군…….'
나는 힐끔 옆에 있던 상아도 쳐다보았다. 그러자 상아가 말했다.
"나도 청양과 마찬가지야. 언제까지고 신농님의 보호에만 의존하긴 싫어."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들에게 말했다.
"나도 어차피 당분간 이 마을에 머 물면서 수련을 할 것이오. 그동안 당신들에게 무공(武功)을 좀 가르쳐 주겠소."
어차피 나도 동료들의 봉인을 풀면서 신력 수련을 해야 하던 참이다.
이들에게 무공을 가르쳐서 강한 동료로 성장시키면 임무를 하기 좋으리라.
"무공? 그게 뭐지?"
"자연의 기를 수련하여 체내에 흡수하여 더욱 빠르고 강하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오."
내가 무공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 해주자 열산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건 나도 할 수 있는데?"
"응?"
"흐오오옵!!"
쿠구구구구
열산이 크게 숨을 들이쉬자 폭풍 같은 기의 흐름이 몰아치며 순식간에 열산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그 순간 눈에 내공을 집중 해서 열산의 모습을 살폈는데, 놀랍게도 자연지기는 단 하나의 거부반응도 없이 그대로 열산의 몸 안에 곧이곧대로 들어간 것이다!
'뭐, 뭐야?! 이 새끼는 혈도나 단전 같은게 따로 없나?!'
세상에 자연의 기가 숨 한 번 들이쉬니까 그대로 자기 힘이 되는 게 가능할 줄이야?!
대라신선도 그렇게는 못 한다!
그 무시무시한 축적율에 내가 경악하고 있을 때 열산이 숨 들이쉬기를 멈추고는 전신에 힘을 팍 주며 근육을 불끈거리기 시작했다.
"끄그극!"
우드득 우드득!!
잠시후 열산의 전신이 시뻘겋게 물들더니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어
마어마한 기를 증폭시켜서 내뿜기 시작했다. 그건 실로 내가 가진 내 공을 몇 배나 뛰어넘을 정도의 가공 할 기력이었기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열산이 말했다.
"숨을 쎄게 들이쉬면 힘이 쎄지는 건 기본상식이지!!"
"……."
나는 혹시나 해서 청양과 상아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둘도 눈을 꿈벅이더니 말했다.
"열산 아저씨만큼은 아니지만 비슷 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나도."
"……."
나는 그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놈들은 단전호흡이나 기공수련이 아예 필요 없다…….'
혼돈의 재능을 각성한 고대인들은 아예 신체구조 자체가 현대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나는 좀 더 고대인들이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열산과 청양, 상아 셋에게 직설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 무공은 내가 아는 한에서 가르쳐주지. 대신 당신들도 자기가 어 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내게 알려주 시오."
그러고는 힐끔 열산을 쳐다보았다.
"당신부터 상세히 말해주면 좋겠군."
지금까지 봐온 경험으로 보면, 틀림없이 이 중에 가장 강력한 존재는 열산이다. 열산의 능력부터 파악하고 있어야 이 탁록시대에서 살아나갈 활로를 찾을 수 있으리라.
"음?"
열산이 어리둥절하다가 말했다.
"나야 뭐 힘쓰는 걸 잘 한다."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는 건 좋지 않소. 저번에 보니 만귀전의 귀신들 이나 외계의 사도를 입으로 빨아들 이던데 어떻게 하는 것이오?"
"숨을 크게 들이쉰다."
"……."
나는 열산이 나를 놀리나 싶어서 쳐다보았지만 열산의 눈빛은 진심으로 보였다. 남을 속일 성정으로 보 이지도 않았기에 내가 혼란스러워하 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청양이 한숨 을 쉬며 말했다.
"후우 - 열산 아저씨는 자기 능력을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개발한 적 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볼 때 아저 씨의 능력은 육체 그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체?"
"네. 적어도 제가 봐왔던 싸움 중에는 열산 아저씨가 남에게 피해를 입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냥 힘을 세게 주면서 싸우면 대부분 끝장이 났죠. 아저씨 본인도 저 무식한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는 모르는 것 같네요."
"으음……."
정말로 그냥 힘이 엄청 센것뿐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건 도무지 인간의 육체, 아니 초상기인이나 대응제국에서 개발한 인조병기나 안드로이드조차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다. 말 그대로 우주적인 존재들과 필적할 수 있을 정도의 천문학적인 용력(勇方)이 있어야 할 터인데, 그런 존재는 항우 정도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유망이 말한 '괴물 같은 인간'은 이 열산을 일컫는 말이었던 것 같군…….'
내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청양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 능력은 알고계시겠지만 지정한 공간의 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정지시 킬수도 있고 가속시키거나 둔화시킬 수도 있죠."
"흠. 옆에 있는 상아의 능력은?"
"그건……."
그러자 상아가 못참겠다는 듯 끼어 들었다.
"내 능력은 내가 말할 거야. 나는 무게를 조종할 수 있어."
"무게?"
"이걸 봐."
스윽
상아가 손을 앞으로 내뻗자 청양이 뭔가 깨달은 듯 깜짝 놀라서 외쳤다.
"상아! 그건 촌장님이 하지 말라고 하셨잖아!"
"뭐 어때. 이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거야."
퉁명스럽게 말한 상아의 손에 새하 얀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후 커다란 소리와 함께 대지가 크게 진 동했다.
쿠구구구!!
그와 동시에 마을 전체는 물론이고 약 오 리(五里) 근방의 모든 대지가 동시에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상당 한 면적이었고 지형 자체를 바꾸는게 느껴졌기에 나는 살짝 놀라서 눈 을 크게 떴고, 상아는 손을 거두면 서 훗하고 웃었다.
"이렇게 물건을 떠오르게 하거나 더 무겁게 할 수 있는 게 내 능력이다!"
쿠우우우
'강하군.'
이윽고 주변 오 리 일대의 대지가 삼 장이나 띄워지자 나는 꽤나 속으로 감탄했다. 상아는 힘든 기색은커 녕 마치 손가락을 움직이듯 가볍게 유지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내 옆에서 함께 능력시연을 보고 있던 건달파가 중얼거렸다.
"중력조작(重方造作)…… 허나 이 정도 수준의 초상능력자는 수천 년 평생 본 적이 없습니다. 전혀 전력을 다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 니."
"그렇군."
나도 건달파의 말에 동감했다.
중력조작!
그것은 사실 살면서 전혀 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거신족의 피를 물려받은 서문혜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고, 역대 대웅제국의 역사 속에 출현한 수많은 초상능력자들도 중력을 조종하는 자들이 더러 있었다. 또한 미래의 대응제국에서 만난 무천룡 주현성도 마룡쇄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면 비슷한 사이코키네시스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상아가 가진 중력조작능력은 그 차원이 다른 것 같았다. 보통의 인간능력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마을 하나 들어올리면 모든 힘을 소모할 게 뻔했는데 눈앞의 상아는 숨 쉬듯이 이런 기적 같은 일 을 해낸 것이다. 인간의 초상능력은 물론이고 대라신선조차 한참 전에 초월한 수준이 분명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청양이 말했다.
"다 했으면 천천히 내려놔. 너 나 중에 촌장님한테 혼날 거다."
"윽…… 알았어."
찔끔한 듯한 상아가 손을 내리는 동작을 취했고 아주 천천히 떠올랐던 대지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말했다.
"이곳의 마을사람들은 오십여 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들 모두가 당신들처럼 강한 초상능력을 갖고 있는 건가?"
"두세 명 정도는 저희와 대등하고 나머지는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물론 강하지 않다고 해도 외지에서 온 인간들보다는 더 강하죠."
"평소에는 그 힘을 이용해서 신족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던건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청양이 문득 슬픈표정을 짓는 듯했다.
"하지만 강해봤자 우리는 인간입니다. 정말 강력한 신족이나 악마들이 쳐들어오면 죽을 뻔한 적도 많고, 이 힘을 발전시키는 것도 한계가 느껴집니다. 거신족의 가호와 유망님 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린 예전에 전멸했겠지요."
"……."
"그래서 백웅 님이 갖고 있는 무공 이란 힘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야 이 마을을 더욱 발전시키고 인간들을 지킬 수 있겠지요."
무척 꿈이 큰 놈이군.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 솔직히 말해서 보통의 인간이 무공을 극성으로 터득하더라도 지금 너희들보다는 약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무공이 필요할지도 잘 모르겠고."
"네?"
내가 무심결에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 청양이 반문했고, 옆에 있던 건달파가 깜짝 놀랐다.
"주군!"
"있어 봐."
건달파가 놀란 이유는 왜 그런 걸 솔직히 말해주냐는 것이리라. 솔직 히 말해주지 않고 이용해먹으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건달파를 가볍게 제지 한 채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무공을 전수한다고 해서 너희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보장은 해줄 수 없어. 하지만 전투기술이 더 늘어나면 너희도 알지 못했던 잠재력이 깨어날 수도 있겠지. 그러니 무공을 익혀서 단시일 내에 강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란 거다."
"음…… 무공이란 걸 익히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까?"
"재능이 있다면 십 년 내에 절대고 수가 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반평생 을 무공에만 정진하는 편이지……."
"…… 알았습니다."
청양은 마지못해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이 정도는 말해놔야 나중에 불만이 적겠지.'
나는 이렇게 해두는 게 차후의 균열이 적으리라 생각하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더 말해 뭣하겠어? 당신들을 포함 해서 무공을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을 사람들을 한 시진 후까지 모아와. 그러면 무공의 기초를 가르쳐줄 테니, 대신 당신들도 내 일을 도와줘야 하는 거다."
"알았다."
열산의 대답이 이어졌고 이윽고 그 들은 거의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을 모아왔다.
"좋아, 시작해볼까."
나는 그들에게 기초적인 내공심법 을 한 번 운용하게 해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내 예상대로였다.
쿠구구구!!
고대인들은 모조리 내공심법을 시전하자마자 전신에서 폭포수 같은 힘이 넘쳤다. 그들은 약간 어리둥절 하는 듯했다.
"평소에 집중하면 다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뭐하러 굳이 호흡을 다듬는 거야?"
보통의 무림인들은 인간의 체내에 있는 단전에 기를 쌓고 기혈에 보조적인 기력을 응축시키며 시간이 갈 수록 내공이 쌓이면 중요세맥과 혈도를 타통(打通)해서 진기의 흐름을 용이하게 하는 식으로 내공수련이 진행된다. 그러나 고대인들은 혼돈의 재능을 각성했을 때부터 상단전이 개방되어 전신에 막혀 있는 세맥과 혈도따위가 존재치 않았다.
'선천적인 것도 있겠지만, 혼돈의 재능을 각성한 대가로 저절로 벌모 세수(伐毛洗髓)나 환골탈태(換骨奪 胎)에 준하는 육체를 손에 넣는군!!'
어찌보면 무림인들의 이상과도 같 은 육체!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는 걸 곧장 깨달 을 수 있었다.
'이 자들은 축복받은 천혜의 육체를 갖게되는 대신 의념(意念)을 깨닫는 게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내공수련이란 단순히 기를 축적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내공수련을 위해서 향상시키는 집중력, 암기력, 인내력 등등이 수십 년간 축적되며 그 의지력이 일점관통하는 효과가 생겼을 때 의념으로의 길이 트이는 것이다. 그 고난은 또한 수련이라고 할 수 있었으며, 어찌보면 고대인들은 그 수련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마 무공기술만 좀 가르쳐주면 지금 당장에라도 절정고수나 다름없는 힘을 낼 수 있겠지만 절대 최상승의 경지나 기술은 흉내조차 낼 수 없으 리라. 심지어 심오한 역학(方學)과 투합(請合)이 담겨 있는 내가중수법 을 가르쳐주기도 힘들다. 혈도도 모 르고 필요도 없는 인간이 어떻게 내 가중수법을 익힐까?
"끄응…… 어렵군……."
나는 나도 모르게 곤란해서 신음 소리를 냈다.
'난감하군. 최상승에 이르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전투력 차이도 없을 텐데…… 어떻게 해야 이들에게 은혜를 느끼게 해줄 수 있을까?'
나는지금 단순히 가르치는 게 좋 아서 무공을 가르치려는 게 아니다. 앞으로 이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탁록촌의 도움이 필수적이라서 우호 관계를 쌓고 은혜를 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무공이 이 자들에게 쓸모없다는 인식이 생겨 버리면 당연히 나 또한 불이익을 보게 되리라.
내가 곤란해하고 있을 때 건달파가 말했다.
"주군. 제가 볼 때 이들에게는 태극권(太極拳)부터 가르치는 게 맞을 듯 합니다."
나는 뜻밖의 소리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태극권? 어째서?"
"제가 생각하는 건 다 생각하셨으리라 믿고 말씀드리자면, 저들은 유능제강(柔能制剛)조차 모르는 단계 입니다. 강능단유(剛能斷柔)만이 전부가 아니란 걸 가르쳐주고 무학의 묘리를 익히게 해야 입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렇군. 네 말이 맞아."
너무 기초적인 거라서 잊고갈 뻔 한 거였지만 건달파가 잘 짚어주었기에 나는 그의 의견에 공감했다. 그래서 나는 고대인들에게 태극권을 비롯해 기초 권각술부터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고대인들은 태극권에 흥미를 갖고 잘 익히는 듯했다. 사실 심오한 단계의 태극권은 그 자체로 뛰어난 절정무공이기에 이런 흐름이 나쁘지도 않았다. 심지어 열산이나 청양, 상아도 새로운 배움에 신기해하는 듯했다.
나는 그렇게 약 사흘 동안 그들에게 기초를 가르쳐주었고 어느 정도 때가 되자 건달파와 의논을 했다.
"건달파. 이제 낯도 익혔겠다 저들에게 무공을 가르쳐주는 건 네가 해라."
"알겠습니다. 주군께서는 따로 신 력과 권능을 수련하시려는 것이지요?"
"그래. 어차피 기초만 가르쳐주는 거라면 도리어 나보다 네가 더 잘할 수 있겠지."
건달파가 빙긋 웃었다.
"맡겨주십시오. 무림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수백 년 이상이니 남을 가르치는 건 자신 있습니다."
아마 소을촌까지 다 뒤지더라도 건달파보다 더 적임인 부하는 없으리라. 왜냐하면 건달파는 인간일 적에 는 무려 정파 삼대기인인 걸선이자 개방의 전대방주였던 자! 어쩌면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나보다 더 잘하리라.
나는 시간을 번 후 근처의 가까운 동혈을 찾아서 들어갔다. 동혈에는 박쥐가 많이 살고 있었고 박쥐 똥이 그득했기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쳇. 이걸 좀 치우고 해야 까……."
그 때였다. 나는 문득 다른 생각이 났다.
"…… 상업(商業)의 귀갑이여! 모습을 드러내어라!"
우웅
다음 순간 내 손에 상업의 권능이 담긴 귀갑이 소환되었다. 나는 귀갑을 소환한 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이 동굴에 있는 박쥐똥을 팔겠다! 얼마로 쳐주냐."
그러자 귀갑에는 잠시후 글자가 떠올랐다.
[박쥐똥이 사용자의 소유임을 입증 해야 합니다. 채집과정을 거쳐주십시오.]
"아 제기랄! 역시 안 되나?"
하긴 상업이라고 치면 '내 것'을 남에게 팔아야 하니까 그냥 땅에 널려 있는 자연지물을 바로 팔 수는 없는 거겠군! 그렇다 해도 이 권능의 특징을 하나하나 알아나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으리라.
"흐아압."
큰 바람이 일어나면서 굴공천축검(屈空天縮劍)이 극성으로 펼쳐졌고, 강대한 흡인력이 내 의념에 따라서 동굴에 가득하던 박쥐똥을 모두 모아서 바깥으로 내던졌다. 나는 근처 에 장력으로 큰 구덩이를 만든 후 천공에 있던 박쥐똥을 쏟아부었다.
"이제 팔 수 있지?"
[매도가능. 총 5502 마두입니다.]
"으…… 그거밖에 안 주나?"
나는 동굴에 가득한 박쥐똥을 다 팔아도 마두가 찔끔 나오자 왠지 수지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마물을 잡아서 사냥하는게 훨씬 나은 거 같군. 채집해서 파는 건 무척 대가가 짜다.'
어찌되었든 지금은 돈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판다!"
짤그랑!
다음 순간 동전이 찰랑거리는 듯한 소리가 귓전에 울렸고 구덩이에 가득 차 있던 박쥐똥이 남김없이 사라 졌다. 그리고 내가 가진 마두가 5502 늘어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흠, 하고 턱을 매만졌다.
"오호라. 채집이든 뭐든 한 번 팔아 버리면 이 세상에서 소멸한다는 건가……."
왠지 이 속성은 써먹을 데가 있을 지도 모른다. 일단은 내 목갑에 맨날 쌓여 있던 보물들을 처리하기가 무척 편해질 것이다.
이윽고 나는 깨끗해진 동굴 안에 들어가서는 흑웅을 불러내었다.
"흑웅!"
퍼엉
[주인. 부르셨소.]
정령체로 변해서 날 따라다니던 흑웅이 딱 내 키만한 인간형태로 변해 서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나는 흑웅을 보며 씨익 웃었다.
"신력을 수련하고 싶어. 나한테 신력을 가르쳐 줘!"
[알겠소.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
"뭔데?"
[일전의 전투로 인해 주인의 마두 가 상당히 쌓였을 것이오. 그걸 이 용해서 동료를 한 명 석화에서 풀어 주는 게 낫지 않겠소?]
"동료?…… 설마 이광과 이환웅을 말하는 거냐?"
[그렇소.]
"으음…… 잠깐 있어봐."
우웅
나는 귀갑을 소환해서 정확한 마두 의 양을 확인해보았다.
"호오. 1509만 마두 정도인가
일만 이하의 자리는 별로 의미없어 서 세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많이 모 인 것 같았다. 그러자 앞에 있던 흑웅이 말했다.
[주인은 얼마 전에 흑룡 무리들 중 에서 열다섯 마리 정도를 해치웠소. 그놈들이 지금 쌓인 마두의 대부분 일터이니, 용 한마리에 대략 100만 마두 정도로 쳐주는 모양이군.]
"많이도 쳐주는군. 용은 용이라서 그런가?"
[다만 전륜성왕에게 기연을 얻은 일이나 유망과 무승부를 이룬 전적 같은건 주인의 돈이 늘어날만한 요 소로 치지 않는 듯싶소. 철저하게 마물을 얼마나 쓰러뜨렸느냐에 집중 하나보군]
"이해했어. 대충 이게 어떤 능력인지 감이 오는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힐끔 다 시 한번 석화해제요건을 확인했다.
'이광은 6억, 이환웅은 1억5천 만…….'
나는 이대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깨닫고는 흑웅에게 말했다.
"안 돼. 지금 가진 돈의 10배가 있 어야 이환웅을 석화해제시켜줄 수가 있겠어."
[그럴 것이오.]
"뭐야. 안 될 걸 알면서 해보라고 한 거야?"
나는 약간 비아냥거렸지만 흑웅이 말했다.
[주인이 지금 갖고있는 1500만을 이용해서 소림사 서고에 있던 마도서의 저주를 최대한 풀면 되오. 그렇게 하면 10배인 1억5천만까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의 돈이 마련 되겠지.]
"오호!! 그렇군! 그럼 지금 당장."
내가 흑웅의 계책에 탄복하며 바로 목갑을 열려고 했지만 흑웅이 그 순간 나를 제지했다.
[기다려 보시오.]
"엉? 뭐 잘못된 거 있냐?"
[마도서의 가치도 모르는데 대충 다 팔면 일단 곤란하오. 그리고 그 전에 주인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소만…….]
"뭔데? 중요한 일이냐."
[그렇소. 신력수련을 하기 전에 무조건 들어두고 싶은 각오요.]
나는 흑웅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일단 목갑을 닫으면서 진지한 눈으로 대꾸했다.
"말해봐."
흑웅은 잠시후 팔짱을 끼며 말했다.
[주인. 혹시 신(神)이 될 생각이 있소?]
신이 되겠냐고?
나는 잠시 멍해져서 흑웅을 쳐다보았고, 이내 황당해져서 말했다.
"야, 흑웅!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네가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하냐? 지금 까지 내가 살면서 비슷한 질문을 몇 번이나 받았던 걸 알고 있잖아."
흑웅은 뻔뻔할 정도로 태연하게 대 꾸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이번엔 어떤 대답을 할지 알고 싶소. 나라고 질문 못 할 건 없잖소?]
"흐음."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당연히 신이 될 생각은 없지."
[어째서요?]
"일단 뭐, 신이 되어봤자 신중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외신(外神)이 있으니까 큰 의미가 없잖아. 게다가 난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게 왠지 싫어. 틀려먹은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고/
내 대답에 흑웅이 갑자기 웃었다.
[프흐흐…… 주인은 여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매번 부정이었지만 그 이유가 매번 달랐던 걸 알고 있소?]
"그랬던가?"
[사실 주인은 신이 되는 것에 딱히 별다른 집착도 생각도 없소. 단지 대답은 늘 '싫다'로 고정되어 있소. 그래서 매번 충동적으로 변덕스럽게 '이유'를 선택하는 것에 불과하지. 마치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수준의 고민밖에 되지 않는 것 같소.]
"……."
그런 거 같긴 하네.
[그러나 그렇기에 도리어 주인의 사고방식이 인간과 동떨어져 있는…… 아니 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오. 주인이 근본적 으로 신격을 부정하는 길을 택하는 이유는 주인의 심층심리에서 비롯된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으니.]
나는 흑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를 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퉁명스럽게 대 꾸했다.
"젠장. 박쥐 똥은 치웠어도 여긴 여전히 거미도 있고 냄새나는 곳이라고. 빨리 수련하고 나서 나가고 싶으니 본론을 말해줘."
흑웅이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그렇다 해도 최근 주인은 어느 정도 힘에 대한 갈망이 강해졌기에 신격(神格)이란 자리를 '시켜주면 하는' 정도로는 염원하고 있소. 그렇지 않소?]
"그래. 가능하면 신의 힘만 얻은 채 본질은 안 바뀌었으면 좋겠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바로 그 점이오.]
흑웅의 눈이 시꺼멓게 빛났다.
[주인이 신(神)이 되면 실질적으로 큰 불이익이 2가지 존재하오. 주인 이 이대로 신력을 수련하면 그 2가지를 맞닥뜨려야 하기에 미리 말하 고자 하는 것이오.]
"2가지 불이익?"
그게 뭐지?!
내가 놀라서 흑웅을 쳐다보자 흑웅 이 말했다.
[첫 번째. 주인이 신격이 되면 인과율(因果律)의 제약에 걸릴 가능성 이 높소.]
"인과율!"
[그렇소. 기신 미호가 각성하여 삼황오제에 버금가는 강대한 힘을 얻었음에도 직접 현계하지 못하고 바라만 봤던 이유를 알고 있지 않소? 너무 큰 힘을 가진 신격은 인과율 때문에 세상의 일에 개입하기 힘들어지고 잘못하면 인과율의 역풍을 맞을 수 있소.]
"으음."
[그리고 이 단점은 전생자에게 있어서 무척 치명적인 단점이오. 왜냐하면 주인은 아무런 행동의 제약 없이 아무 짓이나 저지르고 다니는 게 장점이었는데 그런 자유를 잃게 되기 때문이오.]
맞는 말이었다. 여태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그런 단점이 있는 게 틀림없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렇구만. 두 번째 불이익은 뭐지?"
[두 번째. 불로불사(不老不死)가 되어 버리는 게 단점이오.]
"엉? 그게 왜 단점인데."
[28번째 생에 제갈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주인을 살해했던 이유를 벌써 잊었소?]
"아!!!"
나는 흑웅의 말을 듣자마자 깨닫는 게 있어서 눈을 크게 부릅떴다.
'그렇구나!'
내가 깨달은 표정을 짓자 흑웅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안광을 흘리며 말했다.
[상위신격이 되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데다가 설혹 적에게 소멸당해도 영혼이 한참 후에 부활해 버리 지. 이런 식이면 전생자는 빨리 죽어서 전생(轉生)하는게 몹시 힘들어지게 되오. 제갈사가 말했듯, 죽지 못하는 건 전생자로서 약해진다는 거지.]
더 설명해주지 않아도 이미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죽기 힘들어지게 되면 겉으로는 전생을 쉽게 이어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전생의 횟수를 누적시키는 게 힘들어진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별이 일렬이 되어서 세상이 멸망하는 걸 강제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시간 낭비가 반복되면 결국 내 정신력부터 먼저 피폐해질 가능성도 높다.
나는 흑웅의 말을 다 이해하자 머 리를 긁적이며 투덜거렸다.
"젠장. 요새 하도 별의별 일이 많아서 깜박하고 있었구만. 그러면 나는 절대로 신이 되면 안 되겠군!!"
[그런 셈이지만.]
흑웅이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리는 자세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주인이 신력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주게 되고 완숙 단계에 이르게 되면 주인은 좋든 싫든 강력한 신격으로 승화하게 될 것 이오. 왜냐하면 이미 상위신격에 버금갈만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신력을 수련한다는 건 물질계의 법칙을 벗어나 상위차원의 정령체(精靈體)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오.]
"……?!"
[대라신선이 대부분 영체이며 반신(半神)인 걸 보면 알 수 있을 것이오. 상위차원의 힘을 수련하면 하찮은 물질계에서 벗어나게 될 수 밖에.]
나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뭐?! 그러면 강제로 신이 된다는 소리냐?"
[그런 셈이오.]
"미친!! 그럼 나는 신력수련도 하면 안 된다는 소리잖아! 이거 어떡 하냐고!"
설마 이런 함정에 걸리다니!
앞으로도 흑웅한테만 모든 신력 전투를 맡겨야 한다는 소리인가?!
내가 크게 당황하자 흑웅이 씨익 웃는 듯했다.
[프흐흐. 물론 해결책도 두 가지가 있소.]
"빨리 말해봐."
[첫 번째…… 신력수련을 하면서 주인의 영성(靈性)이 흘러넘쳐 승화 하려 하면 내가 그 전에 주인의 신력을 흡수하겠소. 이 방법을 쓰면 기초단계에서는 신화(神化)를 막을수 있겠지만 임시변통에 불과하니, 두 번째 방법이 필요하오.]
나는 약간 이상함을 느끼고 반문했다.
"임시변통? 그냥 네가 하던 대로 계속 내 신력을 대신 흡수하면서 버티는 걸로는 완전한 해결책이 안 된다는 건가?"
[주인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사실 나는 주인의 신력을 완전히 다 쓰고 있는 게 아니오.]
"뭐?"
[내가 주인의 신력 중에서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건 전체의 7할이오. 나머지 3할의 신력은 아직도 미처 활용되지 못하고 주인의 영혼을 맴돌고 있소. 앞으로 신력을 수련하게 되면 그 3할의 힘이 넘쳐흐르게 되기에 내가 그것까지 다 흡수하려 하면 큰일이 벌어지게 되오.]
"큰일이라니 무슨?"
흑웅은 약간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이여. 주인의 잠재력이 원체 강하기에 내가 신이나 다름없는 힘을 쓸 수 있지만, 내 본질은 신력을 정령화시킨 술법이오. 즉 나는 아주 강력한 정령이나 다름없고 덤으로 신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지. 그러나 이 술법의 한계를 더 넘어서게 되면…… 나는 더이상 정령 의 형태로 이 힘을 다룰 수 없게 되오.]
"정령의 형태로 다룰 수 없다면 죽는 건가?"
[아니오. 나 자신의 자아가 붕괴 되면서 또 다른 상위신이 등장하겠지. 마치 저 삼황오제와 같은…….]
"……!!"
[아무리 강력한 언령을 갖고 있어 도 이 이상 신력을 다루는 건 불가능하오. 왜냐하면 지금도 우주를 주무르는 대신(大神)에 항거할 능력을 갖고 있기에 실질적으로 나야말로 우주 최강의 정령 중 하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오. 이 틀이 깨어지면 나는 혼돈의 신이 될 수밖에 없소.]
"흐음."
정말 처음 듣는 소리다. 흑웅에게도 한계라는 게 있었단말인가?
흑웅이 내 신력을 더이상 흡수하는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건 처음 알게 된 듯했다.
[그러므로 두 번째 해결책이 앞으로의 과제가 되겠지.]
"그 두 번째 해결책이 뭐냐?"
[바로 전륜성왕의 권능이오]
"전륜성왕?"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흑웅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주인, 기억하고 있을 것이오. 주인 이 처음으로 전륜성왕의 권능을 각성했을 때 금성의 코토아마츠카미들을 어떻게 분쇄했는지를.]
"…… 아!!"
[전륜성왕은 우주의 [죽음]을 형상 화시킨 신격. 그러므로 그는 같은 [옛 지배자]를 실질적으로 살해할 수 있는 권능을 보유하고 있소. 그리고 그 권능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보물이 바로…….]
"생사부(生死簿)!"
[바로 그렇소.]
흑웅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생사부는 사용자가 강하다면 신을 죽일 수가 있소. 신격이 된 주인이 만일에 그 생사부에 스스로를 기입 해서 자살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소?]
"어?! 주…… 죽겠지?"
[아니오. 난 죽지 않을 거라 생각 하오.]
"왜?"
[아까 말했잖소. 신은 불로불사불멸이라고. 게다가 생사부는 처음부터 전륜성왕이 만든 보물이니, 자신 의 칼로 자신을 해하는 건 제약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오.]
"……!!"
[시험해봐야 알겠지만, 생사부를 써서 주인을 죽이려 하면 죽는 대신 큰 타격을 입어 신성이 와해 될 가능성이 높소. 그리고 주인이 신이 되는 속도는 크게 늦춰지겠지! 어쩌면 나중에 신의 위치에서 인위적으로 스스로를 박탈할 수도 있을 것이오.]
"오오!!"
[또한 신성이 와해되더라도 주인이라면 그 와해된 신력을 이용할 방법이 있을 것이오.]
이런 방법이 있었단말인가?!
나는 흑웅이 내놓은 뜻밖의 계책에 감탄했지만, 이윽고 뭔가를 깨닫고는 말했다.
"다 좋은데 만일에 충격을 받지 않고 그냥 생사부에 죽으면 어떡하냐?"
[…….]
"……."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흑웅이 뻘쭘 한 듯 대꾸했다.
[뭐…… 빨리 죽으면 빨리 죽는 대로 좋지 않소? 빠르게 전생하는 것도 이득인데 뭐.]
"아 그래……."
뭐라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어느 쪽이든 이득이긴 한 것이다.
[흐흠. 어쨌든 이제 수련을 시작해 봅시다.]
흑웅이 뻘쭘해진 분위기를 되돌리 려는 듯 자신의 쌍장을 내 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나중에는 전륜성왕의 신력을 다루 는 법을 깨달아야겠지만 지금은 신력이 무엇인지 기초부터 다져야 할 것 같소.]
"나도 쌍장을 내밀면 되나?"
[해보시오.]
스윽
서로 쌍장을 앞으로 내민 자세를 취하게 되자 혹웅이 말했다.
[내공을 끌어올릴 때는 이 상태에서 단전의 힘을 끌어올리고 혈도와 세맥을 타고 기가 넘어와서 장풍을 날리게 되지. 요력 또한 전신의 요기를 끌어모아서 방출하는 것. 하지만 신력은 그런 하계의 방식으로 쓰는 것이 아니오.]
"어떻게 쓰는 건데?"
[바로 상상력(想像方)이오. 원리 따위는 상상하지 말고 이 양손에 커다란 공이 붙어 있다고 생각해보시오.]
두웅!
다음 순간 흑웅의 쌍장에는 말 그 대로 주먹보다 커다란 공 같은게 손바닥에 붙어 있었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똑같이 상상해서 따라 해 보려 했다.
……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안 되었다. 상상력을 끌어모아서 손바닥에 공이 붙어 있다는 생각을 아무리 강하게 염원해도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의념을 쓰는 요령으로 해 보았는데 도 되지 않았다.
"안 되는데?"
[왜 안 되는 것 같소?]
"모르겠어."
[원리를 상상하지 말라고 했소. 주인은 상상을 할 때 그 원리가 어떻게 되는지를 무의식중에 떠올려서 하계의 물리법칙이나 힘의 운용방식을 대입하게 되는 것이오. 그러나 진정으로 고급차원의 능력은 아무런 원리가 필요 없는 것이니, 그저 순수한 욕망만을 드러내시오.]
"으으윽."
[신력이란 단전에서 비롯되는 힘이 아니니 기존의 내공 방출 같은 느낌 으로 생각하면 더 아니 될 것이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까부터 그렇게 상상을 하고 있는데 안 된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잘 생각해 보니 무의식중에 다른 상념이 나를 방해하는 건 맞는 것 같았다.
[힘내보시오. 지금 내가 소환되어 있는 동안 주인의 신력통제력이 크게 강화되어 있으니 걱정 말고.]
내가 한참을 낑낑대는데도 잘 되지 않자 흑웅이 말했다.
[혼돈의 존재들이 신력을 잘 쓰는 이유는 그들은 혼돈 그 자체에서 태 어났기에 이 세계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오. 상상력이야말로 이 세계의 본질과 가장 가까운 개 념…… 주인은 좀 더 정신을 공허하게 비워볼 필요가 있겠소.]
"아무리 그렇게 말을 해도 이거 왠지 나랑 안맞는 것 같……."
그 때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원(圓)이 떠올랐고, 그걸 놓치지 않고 나는 그대로 신력을 발현시켜서 원을 내 눈앞에 구현화시켰다.
'이렇게?'
지잉
새하얀 신력의 원이 내 앞에 떠오르자 나는 내가 해놓고도 놀라서 쳐다보았다.
"허엇! 이, 이렇게 하는 거 맞냐?"
흑웅이 크게 놀란 듯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오오!! 하면 할 수 있구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원이오?]
"아무래도 선검술 수련한다고 미친 듯이 원을 그렸던 기억 때문에 그런 것 같다."
[…….]
흑웅이 한동안 말이 없자 나는 흑웅이 내심 나를 비웃지 않는지 초조 해졌다. 그러나 흑웅은 나를 비웃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한참 후에 자신의 턱을 괸 자세로 말했다.
[주인. 그 원을 이용해서 무엇을 하고 싶소?]
"엉? 뭘 하고 싶냐니……."
[여기서부터가진짜 중요하오. 신력이란 사실 부정형의 혼돈이나 다 름없기에 그걸 무엇이든 할 수 있소. 자신의 성향에 따라 신력을 어떤 식으로 구현화시킬지 정할 수가 있는 것이오.]
"흐음."
[주인이 어떤 적성을 갖고 있는지 그 원을 통해서 보고 싶소. 그러고 나서 신력을 개발하는 걸 도와주겠소.]
원을 이용해서 뭘 할지라.
나는 원을 보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냥 둥근 원일 뿐인데 저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원은…… 둥글다…….'
둥근게 사과였나? 사과 먹고 싶다…….
'사과 먹으려면 사과나무가 있어야 하나? 근데 탁록에 사과나무가 있었나…….'
지금 사과나무가 있다면 고대의 사과니까 엄청 맛있지 않을까? 나중에 사과 다 먹고 나서 땅에 씨앗 뿌려서 또 먹으면 그것도 좋고…… 제철 사과면 술 담가서 사과주 만들어 먹을까.
내가 멍하니 아무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였다.
우우우우 -
갑자기 신력으로 만들어낸 원이 크게 진동하더니, 그 원에서 갑자기 뭔가가 쑤욱 하고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튀어나온 것은 혼돈의 총천연 색 덩어리였는데, 그것은 잠시후 길고 커다란 형태로 빠르게 생장하며 물질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쿠구궁
잠시후 오 척 크기의 막대기 기둥 같은게 나타나자 그걸 본 흑웅이 말했다.
[사과나무를 소환했구려.]
"어?!"
[보시오. 여기 사과가 매달려 있소.]
흑웅이 사과를 따서 내게 건네주 자, 나는 얼떨결에 사과를 받아들었다.
생각만 했는데 진짜 사과가 나오네?!
내가 당황해하고 있을 때 흑웅이 사과를 한 입 와삭 베어 물더니 말했다.
[내가 볼 때 주인은 소환(石映)과 창조(創造)에 적성이 있는 것 같소.]
소환과 창조?
나는 눈앞의 조그마한 사과나무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원에서 이 사과나무가 내 생각 때문에 튀어나온건 소환이란 말이겠지. 그런데 창조는 또 뭐야?"
[주인이 사과나무를 생각하기 전에 이 사과나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잖소?]
"그랬겠지."
[즉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후 에 그 창조물을 신력으로 소환한 셈이오. 그러니 주인의 속성은 2가지요.]
"……."
뭔가 굉장히 대충 해석하는 것 같은데…….
그러나 신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흑웅의 말을 의심해봤자 남는 게 없다. 적어도 이 수련에 있어서는 흑웅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마음먹은 채 나는 흑웅에게 말했다.
"좋아. 그럼 내 속성이 소환과 창조라면 이제 그쪽 능력을 수련하면 되는 거냐?"
[그 전에 생각해봐야 할 게 있소. 소환과 창조를 이용해서 싸운다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겠소?]
"어…… 방금 했던 것처럼 뭘 만들어서 현실에 소환하면 되지 않냐?"
[그 소환물이 나보다 강할 수 있겠소?]
흑웅의 반문에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난데없이 정곡을 푹 찔린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불가능하겠지."
이런건 굳이 수련을 안 해봐도 알 수 있다. 흑웅은 신력의 결집체이자 수많은 권능을 다양하게 사역할 수 있는 궁극의 정령인데, 아무리 신력을 수련해도 흑웅보다 강한 소환물을 만들어낼 뚝딱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것은 내 그릇의 한계이며 논리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었다.
흑웅의 말이 이어졌다.
[모든 신격이 소환능력을 갖고 있으나 그걸 주된 전투능력으로 삼지는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오. 아무리 강력한 소환물이라도 본체인 [지배자]보다 강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 나무로 비유하자면 몸통이 되는 줄기가 가장 굵을 수밖에 없으며 잔나무가지는 결코 그보다 굵을 수 가 없는 것.]
"뭐야…… 그러면 소환능력은 쓰레 기라는 소리냐?"
[최상위 존재들의 전투에 있어서는 매우 약한 계통이 틀림없소. 필멸자 나 반신 수준에서는 소환능력이 더욱 우세일 수 있겠지만 주인처럼 [지배자]의 수준에서 따지자면 그저 상대가 물량전으로 덤빌 때 상쇄하는 용도에 불과하지. 그마저도 귀찮아서 그냥 봉사종족을 부리는 [지배 자]들이 훨씬 많고.]
…… 하긴 삼황오제나 [옛 지배자] 들이 그냥 주문을 날리거나 정면으로 때리는 일이 대부분이었지 나한 테 소환수를 덤비게 한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으음."
내가 침음성을 흘리자 흑웅이 팔짱 을 꼈다.
[허나 이건 전투용으로 한정했을 때의 이야기. 주인은 완전한 신격이 아니며 아직 능력을 발전시키는 성장단계요. 그렇다면 성장측면에서 소환능력과 창조능력을 따져본다면…… 굉장한 효과를 낼 수도 있소.]
"어떻게?"
[그건 좀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우선 제일 먼저 해야 할 과제는 단 하나요."
흑웅의 안광이 번쩍 빛났다.
[상상력!! 주인은 그 상상력을 더욱 확장시키고 원리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하오. 틀에 박힌 생각을 벗어던지고 결에 따라서 자신의 무의식을 해방시키다보면 길이 보일 것 이오.]
"상상력이라…… 음……."
[과제를 주겠소.]
"과제?"
흑웅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가장 불러내고 싶은 것'과 '가장 만들고 싶은 것'을 각각 하나씩 생각해서 최대한 신력으로 빚어내 보시오. 이걸 하다보면 상상력이 확장될 것이오.]
"호오!"
[그럼 시작하시오.]
나는 흑웅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으음. 가장 불러내고 싶은 것? 내 가지금 제일 불러내고 싶은게 뭐지?'
닭 먹고 싶다!!
그 순간 머릿속에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생각을 신력으로 구현화시켰다.
퍼엉!
[음…… 이것은!!]
"……."
[계삼탕(難參湯)이구려]
그랬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계삼탕이었다. 따끈따끈한 계삼탕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서 뚝배기 안에 가득 담겨 있으니 참으로 먹음직 스러워 보였다. 나는 저게 나올줄은 몰랐기에 나도 모르게 쑥쓰러워서 말했다.
"그냥 괜히 먹고 싶어서……."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소. 이왕 소환한 거니 드셔보시오.]
쩝쩝쩝
나는 맛있게 계삼탕을 먹었다. 다 먹고 나서 뼈를 땅바닥에 버리자 그걸 지켜보고 있던 흑웅이 갑자기 말했다.
[주인. 그 계삼탕은 예전에 먹어본 맛이오?]
"어? 그야 그렇지. 이건 아마 예전에 망량, 진소청과 함께 다니던 시절에 먹었던 그 계삼탕 맛일 거야."
[즉 주인은 자신의 기억을 매개물로 삼아 비슷한 계삼탕을 창조하여 소환한 것이겠군. 그렇다면 과거의 기억 중에서 음식이 아닌 다른 것을 소환할 수도 있지 않겠소?]
"……!!"
그 생각을 못 했네!
'해 보자!'
나는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어서 눈앞에 신력의 원을 만들어내고는 거기에 손을 뻗으며 외쳤다.
"나와라…… 수요(水權)!!"
치지지징!!
잠시후 신력의 원을 통해서 수요 신기가 소환되는 게 보였다. 수요의 손잡이를 잡은 나는 그 순간 너무 기뻐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크하하하!! 칠요를 내가 창조해서 소환할 수 있다는 건가!!"
[…… 아닌 것 같소.]
"어?"
[잘 보시오. 그 수요에는 갑골문이 새겨져 있지 않고 또한 칠요만이 지니고 있는 신기(神氣)도 전혀 없소. 그저 모양만 수요와 똑같은 검(劍) 에 지나지 않소.]
"……?!"
나는 흑웅의 말에 눈이 둥그래져서 소환된 수요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흑웅의 말대로 수요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 없었고 칠요가 내뿜는 특유의 강력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당혹해서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칠요는 삼황오제가 직접 만들어낸 약속의 증표이자 신기. 그에 상응하는 신력과 제작비용, 그리고 강대한 주술이 새겨져야만 제작할 수 있소. 단순히 신력을 때려부어서 소환하려 하면 모양만 똑같은게 튀어나올 뿐이라는 거지.]
"으윽! 날로 먹는 건 안 된다는 건가……."
[당연한 말이오. 그런 식으로 칠요를 복사할 수 있으면 누가 안 했겠소.]
그렇게 대꾸한 흑웅은 내 손에 있 던 수요를 가져가서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러나 신력으로 소환했기에 신력 만큼의 강도(鋼度)를 머금고 있군. 이 자체로 충분히 명검(名劍)이니 유사시에 검이 없을 때 이 방법으로 검을 소환하면 될 것 같소.]
"젠장…… 그렇게 쓸모있는 것 같진 않은데."
흑웅이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렸다.
[주인. 내 말을 오해 한 것 같은데 소환능력은 이런 식으로 발전시켜서 는 안 되오. 여기서 이 가짜수요보 다 더 강력한 검을 신력으로 만들려 하면 소환능력이 아니라 [제작]능력 이나 [강화] 능력을 발전시켜야 하지. 그렇게 다른 계통의 수준을 올리면 언젠가는 칠요급의 무기를 신력으로 창조소환할 수 있긴 할 거요.]
"가능하긴 한건가?"
[주인이 가진 나머지 3할의 신력을 다 쓰면 가능할지도…… 그러나 주인은 이미 원할 때 최강의 무기인 칠요를 전생지식으로 습득할 수 있으니 이제 와서 따로 신기를 만들 필요가 없소. 애초에 사대신기도 갖고 있잖소. 게다가 자기 적성에 맞지않는 능력을 억지로 늘려봐야 재능낭비만 할 뿐이오.]
"그렇긴 하지."
[강력한 무기를 소환할 필요 없소. 지금 주인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시오]
"……."
나는 무척 깊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왠지 지금 내가 무엇을 잘못하 고 있는지 그 잘못 자체를 깨달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평소 의 흐리멍텅한 상태 중에는 거의 있 을 수 없는 일로 머릿속이 견명하게
하나의 활로(活路)를 찾아낸 듯한 기분에 필사적으로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후 나는 결론을 내고는 나도 모르게 외쳤다.
"나는 돈을 벌어야 해!!"
[호오!! 그게 결론이오?]
"그래. 지금 나는 최강의 무기나 방어구가 필요한 게 아냐. 하루라도 빨리 마두를 많이 모아서 석화저주 도 해제시켜주고 목갑에 있는 보물들의 저주도 해제해야 하잖아. 그리고 그걸 다 하고 나면 상인의 수준도 올려야 하니까 상납금도 모아야해. 그렇다면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