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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369화 (1,36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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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대라멸진을 써서 전신의 능력이 증폭하는 순간, 육요(六曜)의 영기가 마치 체골(體骨)에 스미듯이 진하게 들러붙는 게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겉돌면서 그저 몸 외부의 신외지물(身外之物)처럼 작용하던 신보(神寶)들이 적극적으로 힘을 내게 몰아주는 체감!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육요에 존재하던 제각각의 독특한 영기들이 사지(四肢)에 안개처럼 쏵 내려앉자 머릿속이 시뻘겋게 물드는 기분이 들었다.

뇌 속의 공간이 넓혀진다.

그것은 여태껏 겪었던 대라멸진 과정과는 굉장히 달랐다. 지금 정식으로 시침(施鍼)과정을 거치지 않고 약식으로 삼대단전 - 상중하(上中下) 단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데 신력(神力)을 도구로 써서일까? 평소처럼 기가 증폭하는 해방감보다는 내면에서 사고(思考)의 영역이 넓어지는 아찔함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치지징

갑자기 수많은 실선이 비쳐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춘 채로 시간이 하나도 흐르지 않는 체감과 함께 내 몸을 제 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듯한 상태가 되었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사용자 편의를 위하여 뉴런(neuron) 전개도를 시전중.]

[대라멸진 시전자는 원영(元靈)의 격발(激發)에 성공했으나 칠요(七曜) 6개체의 영기흡수로 인하여 삼대단전 균형유지에 실패.]

[상단전(上丹田) 오버슈팅(overshooting) 현상 진행중.]

[대뇌의 폭발가능성이 45.29%에 도달하여 뉴런전개도를 전시하여 사용자에게 경고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나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멈춘 듯한 체감 속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별개로 찢어지는 듯한 이런 경험 속에서는 제대로 머리를 회전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무심(無心)에 가까운 상태로 고정되어있을 때 반투명한 창이 갑자기 휙휙 회전하더니 새로운 창을 띄웠다.

[오퍼레이팅 시스템 전뇌자의 판단으로 대라멸진의 시전을 멈추기를 강하게 사용자에게 요청. 승인하시겠습니까?]

…….

그럴 수 없어….

죽을 때 죽어도 한 방 먹이고 죽지 않으면….

내 의지가 전달되자 창에 있던 글자가 갑자기 전부 지워졌다.

멍청이

그런 목소리가 잠시 들려왔던 건 착각이었을까? 그리고 마치 보이지 않는 무형의 손이 글씨를 쓰듯 글자가 새롭게 창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폭주재개를 승인합니다. 어드바이스 시스템의 종료와 함께 홍몽(鴻濛)의 권능을 함께 해방합니다.]

화르르륵!!

다음 순간, 나는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면서 내 시점이 제 3자의 시점에서 다시 내 몸으로 되돌아옴을 느꼈다. 그리고 들고 있던 수요(水曜)가 마치 내 왼쪽 손과 같은 일체감을 보이는 걸 깨닫자마자 그대로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최초의 일격을 내질렀다.

대라멸진(大羅滅盡)

무량단(無量斷)

무심지경(無心之境)속에서 날린 일섬(一殲)이 흉신의 목을 향해 짓쳐들어갔다. 그러나 흉신은 막으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고 내 무량단을 그대로 맞았으며, 이윽고 원근감(遠近感)이 상실된듯한 이 우주공간 속에서 흉신에게 날아간 무량단이 마치 쪼그라드는 빛처럼 변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덜컹, 하고 마음속이 크게 내려앉았다. 너무나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옛 지배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학살한 흉신에게 내 대라멸진따위가 어찌 통하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으으아아아아아!!”

나는 그저 분노에 몰입한 채 이번에는 멸혼보(滅魂步)를 쓰면서 흉신의 정면으로 돌진했다. 어찌되었든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아까부터 뇌의 뚜껑이 열린 듯한 기묘한 개방감이 더더욱 확장됨을 느꼈고, 멸혼보의 세 번째 걸음을 딛는 순간 일이 벌어졌다.

투웅!!

멸혼보를 써서 돌진하는 나보다 더욱 빠르게 여섯 개의 영체(靈體)가 전방으로 튀어나가는 게 보였다. 나는 그 여섯 개의 영체들 중 두 개의 모습이 익숙하다는 걸 알아챘다.

[우리의 주인이시여!]

[그 강대한 힘에 스스로 해방을 맞이하였나이다!]

수요의 정령과 화요의 정령! 마치 인간화된 듯한 모습을 한 그들이 그렇게 외치더니 허공에서 서로 얽혀서 합체를 했다. 그러자 날아가는 내 양쪽 옆에 마치 어검(御劍)처럼 두 자루의 광검(光劍)이 소환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광검은 예전에 황제에게 달려들 때처럼 어마어마한 신력(神力)으로 감싸여 불타는 중이었다.

대해방(大解放)

검신지세(劒神之勢)

과거 산하사직도에서 느낀 적 있었던 쌍요 대해방의 상태! 나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대라멸진으로 끌어올린 내 힘이 육체능력상승보다는 영격(靈格)의 상승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상단전이 균형을 잃고 폭주하는 대신…. 영적인 힘을 다루는 능력이 수백 배로 증폭된 거구나!’

대라멸진에 의해 강제로 각성하여 대해방을 맞이한 건 수요와 화요뿐만이 아니었다. 이윽고 생전 처음보는 네 명의 정령들의 의인화 형상이 얼핏 내 눈에 비쳐보였고, 그들이 제각기 한 마디씩 했다.

[이길 수 없는 대적(大敵)에게 달려드는 어리석은 선택.]

[허나 그조차도 우리의 선택이오.]

[그저 충성을 바칠 수 있음에 만족하오니.]

[부디 그대의 앞길에 발판이 될 수 있게 하소서.]

대해방(大解放)

사요성(四曜星)

치지징

네 개의 영체는 나를 호위하듯 사각의 형태로 둘러쌌고 잠시 후 반투명한 별 네 개가 내 주위를 공전하는 것처럼 변했다. 어떤 효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이 효과가 여태 보아왔던 칠요의 그 어떠한 위력보다 강력하리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어느 새 멸혼보의 마지막 걸음이 이뤄졌을 때 나는 한 달음에 흉신을 벨 수 있는 거리까지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성간(星間)의 어마어마한 거리를 대라멸진의 위력으로 한달음에 접듯이 날아가며 그대로 손을 휘둘렀다.

쌍천검무(雙天劍舞)

한 순간 대해방 수요와 화요가 내 어검지결(御劍之決)의 수형(手形)에 따라 빛을 넘는 속도로 날아갔다. 흉신은 이 공격 또한 무시하겠다는 듯 그저 가만히 있었지만, 칠요 쌍천검무가 그를 가격하기 직전 사요성의 기운이 날아가서 쌍천검무에 적광(赤光)을 일으키며 합세했다.

진(眞) 칠요(七曜)

육요신살(六曜神殺)!

꿈틀….

자신의 목젖까지 대라멸진의 기운을 머금은 육요의 힘이 합체하여 날아들자 그의 촉수같은 밑턱이 떨리며 무언가를 [말]하는 듯 했다.

봐줄 만 하군.

번쩍

콰과광!!

자광(紫光)의 폭발! 육요신살에 격중된 흉신은 그대로 폭발음과 함께 주춤거리며 한 걸음을 뒤로 물러섰다. 나는 그와 동시에 아까 비슈누가 만들어냈던 수천 개의 차원의 잔흔(殘痕)까지 육요신살의 영기에 휘말려서 터져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육요신살이 격중되었던 그 자리에는 마치 아까 소호금천이 소환했던 것 같은 시꺼먼 구멍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와 흉신의 거리차이는 금세 벌어져서 사실 필멸자의 거리감각으로는 감도 잡히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이곳은 혼돈의 시공간이라서 제대로 된 거리를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다.

츠츠츠

흉신의 핏자국으로 보이는 초록빛의 무언가가 우주공간을 유영한다. 어떻게든 그에게 피해를 입히긴 한 모양이었다. 다만 흉신의 부상은 육안으로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생채기 정도일 거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휘청

“……!!”

나는 순식간에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벌써?!

벌써 대라멸진이 다 끝났단 말인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끝나버린 대라멸진에 내가 당황하여 머뭇거리는 동안에 머릿속에서 빠르게 분노가 소멸되고 커다란 허탈감이 찾아왔다. 동시에 나는 더 이상 쓸 만한 패가 남지 않았으며 이번에야말로 끝장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굳어있을 때 뒤에서 관전하고 있던 황제의 놀라운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칠요의 잠재력을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끌어낼 수 있을 줄이야. 거기에 홍몽의 권능까지 무리 없이 섞을 수 있다니 가히 신적인 감각이구나.]

“…….”

[과연, 그 정도는 되니까 삼제가 너에게 기대를 걸었던 거군….]

뭔가 알겠다는 듯 중얼거리던 황제가 문득 흉신에게 말을 걸었다.

[재밌지 않은가? 그래서 그대도 벌레를 짓눌러 죽이지 않고 한번 맞아준 걸 테지.]

[…….]

황제가 말을 걸자, 그제서야 여태껏 한 마디도 안 하고 있던 흉신이 처음으로 대답을 했다.

[너라고 벌레가 아닌 줄 아는가.]

쿠우우우우 -

다음 순간, 흉신이 눈에서 혈광을 뿜어내더니 박쥐날개가 더더욱 피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육요를 모두 대해방시킨 기쁨도 잠시, 전신이 마력 때문에 뒤틀리고 우겨넣어지는 압도적인 왜곡(歪曲)이 우주 전체를 뒤흔드는 걸 느끼자마자 절망감을 느꼈다.

“이… 이건….”

믿기지 않는다.

‘더 강해지고 있다!!’

방금 전까지 내보였던 건 마치 장난이었다는 듯, 흉신은 지금 계속 강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나 강해지고 있는지는 측정이 되지 않는데, 원래부터 나와 너무 큰 차이가 있어서 그 단위가 너무 아득해서 쳐다볼 수조차 없게 된 것이다! 그 마력과 존재감은 숨을 겨우 열 번 쉬는 사이에 몇 배로 불어났고, 이내 나는 마치 태양을 쳐다보는 인간처럼 변하여 압도적인 무력감을 느꼈다.

…….

이게 말이 되는 걸까?

설마 숨만 쉬어도 강해진다는 농담같은 얘기가 하필이면… 가장 위대한 신격 중에서도 최강을 논하는 존재에게 적용되다니.

이게 무슨 악몽이란 말인가!

우드득!!

“으윽.”

나는 육요를 대해방한 상태에다가 대라멸진의 힘이 아직 다 빠지지도 않았는데 흉신의 마력 때문에 압력을 못 버텨서 전신의 뼈가 부숴지는 실감이 들자 기가 막혔다. 한 순간이지만 내 역량은 황제조차 인정할 정도로 상승했는데 그런 내 수준으로도 이 자리에서 숨쉬기조차 벅찼다.

그리고 이런 악몽 같은 기분을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닌지 그제서야 옥좌에 앉아있던 황제 공손헌원이 자신의 팔짱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흉신에게 말했다.

[전생자가 사라진 이 세계에서도 승천이 가능할지 무척 많은 고민을 했었지. 그러나 위대한 [아버지]와 외신들이 판을 회수하지 않는 걸 보고는 이 뒤틀린 상황조차 종말의 일부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대는 어떠할지 모르지만….]

[…….]

[종막(終幕)이 다가왔구나. 최후의 무대에서 가장 위대한 사신(邪神)과 마주치거라, 흉신이여.]

후우우웅

갑자기 묵연(墨煙)이 황제 공손헌원의 전신을 뒤덮었고 그런 황제의 몸에서 천마(天魔)라고 불리는 황금짐승의 형상이 영기처럼 변해서 떠올랐다. 그리고 황제 공손헌원은 마치 과거 산하사직도에서 보았던 것처럼 서서히 어둠 속에 묻혀서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나는 황제가 무엇을 하려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기어오는 혼돈]을 소환하려는 거구나!’

산하사직도에서 이미 보았던 황제 공손헌원의 한 수!

그는 종말에 흉신을 힘으로 당해내기 힘드니 [기어오는 혼돈]의 힘을 직접 소환하여 상대하려는 계책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계책이 통한다면 이 자리에서 흉신과 황제의 승부는 결말을 알 수 없으리라!

스스스스 - !!

복희와 함께 저 묵연덩어리를 보며 초조하게 기다렸던 경험이 생각났다. 결과적으로 산하사직도 내에서 황제의 한 수에 삼황사제가 모조리 전멸당했었기에 그 불안감은 괜한 게 아니었다.

심지어 흉신도 저 묵연덩어리를 힘으로 헤칠 수는 없는지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는 중이었다. 나는 황제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멈칫했다.

‘막을 필요가 없지 않나?’

이 자리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흉신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런 흉신에게 황제가 맞서싸워서 백중세를 보여주게 된다면 어쩌면 지금 내 상황에서도 탈출구가 생겨날지 모른다. 나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계책이 실현되리라는 생각과 기대감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푸확

[……아니.]

황제가 만들어낸 묵연덩어리가 통째로 소멸하고 그때까지 주문을 외우고 있던 황제의 신형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린 것이다. 천하의 황제 공손헌원조차도 이 상황은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외쳤다.

[정당한 계약이 어째서 무효가 되었단 말이냐!!]

우두둑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흉신은 자신의 우완에서 다시금 용암같은 힘줄을 드러내며 힘을 주었다. 그리고 흉신이 날개를 촥 펴면서 그대로 황제에게 뛰어들었고, 황제는 막으려는 듯 자신의 쌍장을 내뻗었지만 그것은 미약한 발버둥에 불과했다.

쿠콰쾅

황제의 쌍장은 그대로 흉신의 손톱에 찢겨나갔고 그대로 그의 상반신이 절반이상 난도질당했다.

[노옴!!]

그러나 황제는 황제인지 비명소리도 내지 않았으며 바로 반격하여 흉신의 몸통에 무려 여덟 개나 되는 장인(掌印)을 만들어냈다.

쿠구궁

흉신이 비틀거리며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섰다. 약간 피해를 입은 건 사실인듯 흉신이 투레질을 하듯 머리를 빙빙 돌리며 정신을 차리려는 듯 했다.

쿵!

결국 흉신은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황제가 그에게 상당한 타격을 준 게 틀림없었다.

[…….]

그러나 그런 흉신에게 황제는 추격하여 덤벼들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방금 전의 한 초식 싸움에서 황제는 치명상을 입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황제가 자신의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떨고 있는 동안에 흉신은 정신을 차린 듯 몸을 곧추세웠다. 누가 보아도 압도적인 힘의 차이였다.

이윽고 대지에 선 흉신의 한 마디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네가 한 짓이구나, 전생자여.]

흉신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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