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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365화 (1,362/1,615)

1365====================

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놈의 말에 도리어 씩 웃으며 말했다.

“[기어오는 혼돈]의 가면인 주제에 내 도발을 무시하는 거냐? 벌써부터 쫄다니.”

“……호오.”

스파앗!

갑자기 권능을 겨루던 상황에서 시퍼런 역장(力場)같은 게 생겨나더니 홍균도인의 신형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다만 존재감이 무척이나 옅어져서 마치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처럼 변한 것 같았고, 저건 일종의 고차원적인 회피법일 듯 했다.

홍균도인이 다시금 눈을 감고는 내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안 거지?”

음…?

“네가 지금 그걸 궁금할 때냐?”

되려 나는 놈이 이성적으로 반문하는 상황에 의아함이 생겼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가면]들 특유의 성향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문할 수도 있는 거긴 하지만 뭔가 이상해.’

뭐라고 표현해야할지는 모르지만 놈들에게만 감돌고 있던 ‘광기’가 잠시 소멸된 것 같은 이질적인 기분!

원래 내가 아는 가면들이라면 유쾌하게 받아주거나 아니면 그냥 다짜고짜 공격하거나 둘 중 하나일텐데 저 반응은 이상하다는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그러자 홍균도인은 움찔하더니 히죽하고 웃었다.

“생각보다 [가면]을 많이 만나본 놈인 듯 하구나.”

나는 그대로 손가락을 까닥거려서 가면을 벗기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어쩔거야? 나라면 네 가면을 단숨에 벗길 수 있는데 혹시 무서워서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

방금 전까지 홍균도인을 공격하던 소호금천은 물론이고 제곡과 전욱도 나와 놈의 대치상황을 쳐다보는 듯 했다. 그들도 내 도발에 홍균도인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러자 홍균도인이 잠시 후 말했다.

“가면의 가면을 벗긴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다니, 그게 되겠느냐? 내가 지금 쓰고있는 가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번에는 팔짱을 끼고 콧방귀를 뀌었다.

“흥, 쫄았구나.”

“……그런건 아니지만.”

홍균도인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지만 이내 대꾸도 하지 않고 대화를 넘기려 했고, 그 순간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전욱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한탄스럽구나. 황제 공손헌원과 손잡은 [기어오는 혼돈]의 사도라는 자가 이리도 겁쟁이였단 말인가?]

“전욱이여! 내가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인단 말이냐?”

[그렇지 않다. 다만 꼬리를 만 개새끼처럼 보일 뿐이다.]

“……!!”

홍균도인이 그 순간 확실히 치욕감을 느낀 듯 자신의 손을 꽉 말아쥐는 게 보였고, 나는 전욱이 저렇게 도발을 잘 한다는 걸 처음 알고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내 도발을 무시하던 놈이 갑자기 저렇게 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윽고 홍균도인이 마음을 정한 듯 내게 말했다.

“좋다. 어디 해 보아라. 너따위 잔챙이에게 쓸 시간이 아까워서였을 뿐, 죽고 싶다면 받아주지 못할 이유는 없지.”

우웅

홍균도인의 옅은 존재감이 서서히 짙어지더니 불쑥 현실로 튀어나온 듯 생생하게 변화했고 그와 동시에 그가 지닌 막대한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두세 발자국을 더 걷자 그 마력은 점차 증폭되어, 단숨에 팔다리가 저릿저릿해지며 마비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파지지직! 파직!

‘크윽.’

진짜 장난이 아니다. 삼황오제를 전면에서 보아도 이젠 버틸만한 역량이 되었다 생각했는데 놈은 그들과 동급의 마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내게 선명한 살의를 쏘아보낼 수 있었다. 대라신선이라도 마력에 말라죽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내가 지금 버티고 있는건 아마 전뇌자의 도움과 사대신기, 신력의 보조 덕일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여기서 밀리면 절대로 다음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없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압박을 억지로 밀어내며 씨익 웃었다.

“야. 그냥 하기엔 조금 재미없는데 서로 뭔가 걸어볼까? 내기였잖아.”

“호오…. 어차피 네놈이 죽을텐데도 은상(恩賞)이 눈에 들어온단 말인가.”

“또 쫄았냐?”

그러자 홍균도인은 이번엔 확실히 자존심이 상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 말해봐라.”

“내가 이기면 네놈은 뭐든지 내 소원을 하나 들어줘야 한다. 반대로 내가 지면 영겁토록 네 노예가 되어주마.”

“수지가 맞지 않는 제안이구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당장 네놈을 쳐죽이면 노예로 만들 수 있는데 뭐하러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느냐?”

“…….”

아, 이게 아닌데….

이 새끼는 뭐 이렇게 빼는 거야?

뭔가 내가 생각했던 대결과 좀 달라져갔기에 나도 이번엔 도발이 아니라 진짜로 조금 실망해서 나도 모르게 500년 후 대웅제국에 존재했던 욕설을 하고 말았다.

“아 찐따새끼….”

“……!!”

“관둬라. 너같은 쫄보놈이랑 내기를 하려고 했던 내가 병신이지!”

이렇게 된 이상 당초 생각대로 사대신기나 쓰면서 싸워야지!

내가 도리어 물러서려고 하자 이상한 기음(奇音)이 울렸다.

끼기기기….

끼기긱…!!

“헉, 크윽, 윽…. 크윽!!”

뒤틀림.

홍균도인의 선량해보이던 얼굴에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뒤틀림’이 생겨났다. 마치 물결이 허공에서 이지러지는 듯한 그 괴이한 뒤틀림은 마치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듯 홍균도인의 피부와 혈관을 찢었고, 잠시 후 푸슉푸슉하고 그의 얼굴가죽이 뜯겨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푸화악

“끄으으윽!! 서, 설마 이런 제약이….”

홍균도인은 뜯겨져나가려는 자신의 얼굴가죽을 억지로 부여잡듯 양손을 얼굴에 거의 쑤셔박듯이 붙들었고 그 와중에 선혈이 질질 새어나와서 그를 괴롭게 하는 듯 했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홍균도인이 외쳤다.

“알았다…. 위대한 의지여…. 이것이 ‘나’의 업(業)이라면… 받아들이지!! 덤벼라….”

엥? 덤비라고?

…갑자기 왜 저러는거지?

‘이상한 놈일세.’

나는 의아했지만 나도 사실 속이 상해있었기에 퉁명스럽게 거절했다.

“하기 싫은데?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을 때는 다 씹어버렸으면서 이제와서 뭐냐고.”

그러자 홍균도인은 약간 당혹한 듯 했다.

“크으윽…. 그래…. 아까 조건에서 좀 더 덧붙이겠다.”

“뭘 덧붙인다는 건데.”

“네놈이 이기면 내가 ‘3가지’의 소원을 들어주마. 이걸로 되었느냐?”

3개?!

나는 너무 조건이 좋았기에 놈이 절실하게 몰려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대로 받아들이면 놈이 또 엄한 소리를 할까봐 일단 못을 박기로 했다.

“꼼수로 대충 넘어가거나 말바꾸면 안 돼. 네놈 [이름]을 걸어.”

그러자 홍균도인이 마치 정곡을 찔린 듯 움찔했다.

“…[이름]은 못 건다.”

“뭐? 이거 안되겠구만. 안할테니까 꺼져.”

우드드득!!

홍균도인의 얼굴가죽이 거세게 뜯겨나오려는 기색이 심해졌다. 홍균도인은 억지로 마력을 이용해서 그걸 붙잡으려는 듯 했고 잠시 후 선혈이 범벅이 된 채 필사적으로 내게 말했다.

“아, 아니다!! 진실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면]은 원래 이름을 걸 수 없어!! 네놈은 나 말고도 [가면]을 만나본 것 같은데 그걸 아직도 몰랐느냐!”

“뭐?”

“제길! 그 때 태허천존으로 되돌아갔어야 하는데 괜히 종말을 지켜보려다….”

뭔가 중요한 소리를 한 것 같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왠지 비슷한 얘기를 들었던 기분도 들었지만 나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니 이름이 아니면 니 본체의 이름이라도 걸던가.”

“이놈… 멍청한 거냐? 그게 더 근본적인 이유란 말이다.”

“모르겠고 난 지금 네 약속을 못믿겠어. 쫄보새끼야.”

“…어쩌다 이런 상황이….”

홍균도인은 기가 막힌 듯 한탄하다가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네게 공짜로 나의 권능을 하나 주겠다. 이러면 되겠느냐? 손해볼 건 없지 않느냐.”

“권능?”

“이것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더 이상 교섭은 없다.”

“흠.”

나는 놈의 말에서 약간의 진실성을 느꼈다. 오랫동안 교섭을 해온 직감에서 우러나온 감각이었다. 나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떤 권능인데?”

“내가 [각성]하며 얻게 된 홍몽(鸿蒙)의 권능이다.”

우웅

홍균도인의 손 위에 총천연색 빛을 내뿜는 구체가 떠올랐다. 그 구체를 내 쪽으로 슬며시 내민 홍균도인이 짤막하게 설명을 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불확정(不確定)으로 뒤바꾸는 능력이다.”

“……? 불확정? 그래서 이걸 어떻게 쓰는데?”

“정해진 법칙에 침투해서 강제로 혼돈으로 만든 후 발산(發散)한다. 본디 [옥좌]에서 무한의 춤을 추는데 쓰이는 능력이다.”

“……?”

뭔 개소리야?

나는 알아듣지 못해서 어리둥절했지만 도리어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제곡이 깜짝 놀라서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아니!! 일개 외신의 [가면] 따위가 그런 권능을 지니고 있었단 말인가?!]

놀란 건 전욱도 마찬가지인듯 그는 무척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참으로 놀랍군…. 황제는 [기어오는 혼돈]에게 숙여가며 계약을 했을 터인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나는 그런 반응이 신기했기에 전욱에게 질문했다.

“전욱 님. 저거 좋은 겁니까?”

[…설마 홍몽의 권능이 뭔지 이해를 못한 것이냐, 나의 사도야?]

“모르겠는데요….”

[…….]

전욱은 팔짱을 낀 채 깊고 낮은 탄식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너라면 그 쓸모없는 머리통을 용암에 넣어서 백만 년 정도 녹여서 부드럽게 만들 것이리라. 그러면 조금쯤 굳어있는 머리가 쓸만해지지 않겠느냐….]

“…….”

너무나 말하고자 하는 게 잘 느껴졌기에 나는 상처받은 표정을 지은 채 홍균도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알았어! 받아들일 테니까 줘 봐!”

“받아라.”

우웅!

잠시 후 홍균도인의 손을 떠난 총천연색 구가 내 심장에 부드럽게 흡수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심장이 잠시 두근거리면서 눈앞에 뜬금없이 반투명한 창이 떠오르는 듯 했다.

[경고. 연산력으로 해석불가능한 초월급 권능이 흡수됨.]

[배출불가능함을 확인. 이대로 해방되어 흡수될 경우 사용자에게 치명적인 위해(危害)가 올 가능성 99.924%로 인해 봉인 작업을 개시합니다.]

[기억의 심연(深淵)에 봉인시키지 못합니다. 기존의 봉인내용물과 연쇄작용 측정불가.]

[무의식공간 동결식 봉인에 동의. 지속적 연산력 소모 중…. 한계시간 26시간 24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당장 쓸 수 없다는 얘긴 것 같았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홍균도인에게 말했다.

“자, 그럼 해볼까!”

“와라.”

스으으

홍균도인이 각오를 굳힌 듯 자신의 양팔을 벌리며 눈을 서서히 떴다. 그러자 아까 소호금천과 싸울 때처럼 그의 텅빈 눈 뒤편으로 총천연색 우주가 펼쳐져있는 괴이스러운 풍경이 보였고, 나는 저 괴물새끼한테 달려드는 이 상황이 무척 위험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저 놈은 무조건 자기가 이기리라는 확신이 있으리라. 애초에 실력의 체급차이가 코끼리와 개미 수준으로 나는데다가 놈은 자기에게 가면이 또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게 홍몽의 권능을 선뜻 준 것도 나를 죽여서 도로 빼앗아오려는 생각이 분명하다.

이제 죽음이 코앞이다.

겁이 나는가?

나는 나 자신에게 되물은 후 문득 피식 웃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자문하는 순간 내 눈앞에 황제 공손헌원이 서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홍균도인이 무서워도 황제 공손헌원만큼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황제 공손헌원에게도 정면으로 덤벼든 적이 있다.

어찌 무서울 것인가!

만상지투(萬象之偸)

가면 훔치기!

파앗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신형이 찰나지간에 홍균도인과 거리를 좁혀서 그의 얼굴을 향해 우수(右手)를 내뻗었다. 홍균도인은 원래라면 묘한 권능을 써서 나와 거리를 벌릴 수 있을 텐데도 그냥 거리를 준 듯 했다. 마치 할 테면 해 보라는 듯한 태도가 틀림없었다.

정말로 가면이 없단 말인가?

내 오른손이 홍균도인의 얼굴윤곽에 닿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원래 전뇌자의 도움으로 느껴져야 할 가면의 윤곽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홍균도인의 선량한 맨얼굴만 만져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덜컥 겁이 나기보다는 다른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외우주에서 신투지존과 했던 가면쟁탈전!

그 때 나는 신투지존과 배수(掱手)의 속도가 같았기에 서로 맞찌르기의 결과 육체를 교환하는 걸로 결론이 나 버렸다. 만상지투의 소유주끼리의 대결이라면 당연히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대결이 과연 단순히 만상지투의 성격만으로 결정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간이고 신투지존은 가면이었다면 당연히 그런 본질의 차이 또한 대결에 반영되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인간 대 인간으로 만상지투를 겨룬 적은 없었기에 나는 의심이 갔다.

만일 인간 대 인간으로 겨루더라도 똑같은 결과라면 충분히 의심할 만 하다.

가면에게도 어쩌면 가면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그것은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대도(大盜)의 직감이 말해주는 무언가였다.

‘있을 거야... 분명히 있어.’

그 때 나는 분명히 신투지존의 가면을 훔쳤다. 그 때와 상황이 다른 거라고 한다면 신투지존은 내게 만상지투로 반격을 했으며 눈앞의 홍균도인은 내게 반격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잠깐… 반격?

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가면의 위치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깊숙한 곳에 있으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어이가 없지만 반격의 유무를 생각하게 되자 홍균도인과 신투지존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가 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에라이… 씨발! 네놈의 자업자득이다.’

그리고 나는 절초의 시전 도중 내가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망설여졌지만 지금 내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만상지투(萬象之偸)

변초(變招)

우드득!

의념에 따라 근육이 세게 뭉치면서 내 손이 마치 짐승의 손마냥 혈관과 근골이 크게 드러났다. 그리고 나는 본디 배수의 기본 손동작인 편익수(片翼手)에서 조구지수(鳥口之手)로 손동작을 바꾸었다.

조구지수는 도둑질의 달인인 백면신군(白面神君)에게 알음알음 배운 배수의 손동작 중 하나로써, 편익수와는 달리 좁은 구멍에서 물건을 훔칠 때 잡는 자세였다. 총 여덟 개 정도 존재하며 수련기간도 필요한, 나름대로 도둑들의 비전절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이 새끼 가면은 얼굴가죽에 안 붙어있을 거야!’

다음 순간 나는 눈빛을 빛내었다.

‘더 깊은 곳이지!’

눈깔따기(奪眼之手)!

푸욱!!

“……!!”

조구지수로 하나의 끝을 향해 모아진 내 손이 단숨에 뻥 뚫려있던 홍균도인의 안구로 짓쳐 들어갔다. 놀랍게도 그 작은 눈두덩으로 내 손이 남김없이 쑤셔 박혔고, 그것은 홍균도인의 육체가 보이는 것과 달리 영적인 실체라는 걸 의미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잔혹해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눈을 크게 부릅뜬 홍균도인의 시선을 직시하며 놈의 안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살폈다.

느껴진다.

우스운 일이었다. 놈의 눈 뒤편에는 우주가 펼쳐있었지만 정작 대도인 내 눈에는 ‘눈동자’라고 할만한 무형의 흐름이 읽히고 있었다. 무형의 존재를 하도 많이 훔쳐보았으니 그 감각도 어느 새 생겨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무형의 흐름이 향하는 의지의 종착점이 어딘지를 감각적으로 알아내고는 그 곳을 향해 그대로 팔을 쭈욱 내뻗었다.

“우오오!!”

쿠드드득

곧이어 손에 이어서 팔의 상박까지 죄다 홍균도인의 안구로 흡수되듯 관통했다. 홍균도인은 너무 놀란듯 그저 입만 벌리고 있었고, 나는 그런 홍균도인을 아랑곳하지 않고 심혈을 기울여서 계속 손을 내뻗었다.

아직은 위치를 모르겠지만 의념(意念)이 알려줄 것이다.

이 놈의 눈동자가 가리키는 진짜 위치를!

‘찾았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손끝에 가면의 윤곽이 걸렸다. 그런데 그 가면의 형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윤곽을 손으로 잡은 순간 나는 전신에 으스스한 한기가 맺히는 것을 느꼈다.

‘추, 춥다…. 윽….’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 가면은 다른 가면과는 뭔가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걸 꺼내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하지만 나는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였기에 그 본능을 무시하고 그대로 조구지수를 편익수로 홱 바꾸며 가면을 강제로 벗겼다.

뿌드드득!!

마치 인간의 살갗에 눌러붙은 접착제를 강제로 떼는 듯한 불쾌한 기분과 함께 점액이 올올이 손끝에 튀었다. 나는 가면을 반쯤 벗긴 상태에서 홍균도인이 경악하며 손을 마구 휘젓는 걸 볼 수 있었다.

“으아아아!! 안 돼, 안 돼!! 내가… 나 정도면 이미 진정한 [기어오는 혼돈]이 아니란 말인가?! 설마 내게도 가면이 있었…?!”

“닥쳐!”

뿌득!

나는 그대로 몸을 반회전하며 손을 빠르게 빼내어 가면을 회수했다. 홍균도인의 눈깔에서 팔을 빼는 순간 홍균도인은 멍청히 서서 마치 맥빠진 인형처럼 흔들거렸고, 나는 내 팔이 끝에서부터 매캐한 연기를 내며 썩어 들어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치지지직

“크아아악!! 저, 전욱 님! [작은 굴레]로 이것 좀 치료해주십쇼!!”

나는 재빨리 훔친 가면을 좌수로 옮기면서 전욱에게 내 팔을 들이대었다. 신이니까 당연히 이 정도 부상은 치료해 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전욱은 물끄러미 내 팔을 보다가 말했다.

[근원의 혼돈으로 오염되었구나. 이런 건 시간을 되돌린다 하여 고칠 수가 없다.]

“……?!”

[작은 굴레]를 써도 못 고치는 부상이라고?!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우우우….

갑자기 이 공간 여기저기에서 세 개나 되는 차원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제각기 다른 위치에서 열리는 그 차원문에서 무언가가 불청객이 나올 것이라는 건 확정적이었고, 그걸 지켜보고 있던 제곡이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드디어 오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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