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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홍균도인!
나는 그가 어떤 존재인지 기억 속에서 생각해냈다.
‘과거 영보천존이었다가 복희의 가면을 각성시켜 미치게 만들었고, 전대 통천교주와 원시천존, 태상노군을 암살한 자!’
또한 그는 영보천존의 화신인 태허천존이기도 했으며 사실은 항우의 연인인 우희의 영혼을 납치하여 태허궁에 가둔 진범이기도 했다. 이 수많은 음모의 주재자가 난데없이 눈앞에 나타날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나는 긴장한 채 그의 생김새를 살폈다. 그리고 뜻밖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영보천존이나 태허천존과 상당히 달라. 아니 완전 다른 사람이잖아?’
선이 여리고 무척 세심해보이는 선량한 외모의 미청년(美靑年). 그것이 바로 홍균도인에게서 처음으로 느낀 인상이었다. 개미새끼 하나 못 죽일 것 같은 선량한 인상이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와 사실상 동일인물이라 할 수 있는 영보천존이나 태허천존 모두 내가 직접 만나본 적이 있다. 영보천존은 선풍도골(仙風道骨)의 근엄한 신선이었으며, 태허천존은 선풍도골까지는 아니었지만 전형적인 신선 그 자체다. 지금의 눈앞에 있는 젊은 홍균도인과는 딴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홍균도인은 이윽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제곡 님께서 저를 부르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소?”
아직도 홍균도인은 눈을 감고 있다. 그런데도 마치 다 보이는 듯한 말투였다.
홍균도인의 말에 제곡은 움찔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는 대꾸했다.
[왜 그리 생각한 건지 모르겠군.]
“반역(反逆)을 도모하여 승리를 탈취할 정도의 의욕을 지닌 자는 귀하뿐이라 생각했소만….”
[…….]
“묘하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구려.”
그렇게 중얼거린 홍균도인은 아리송하다는 듯 자신의 얼굴을 갸우뚱거렸다. 나는 놈이 하는 말이 의미심장했기에 뜨끔한 기분이 들었다.
‘젠장… 뭐지….’
홍균도인에게서 강대한 마력이 느껴지진 않는다. 아니, 힘이나 압박은커녕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홍균도인이 서 있는 곳만 텅 비어있는 것 같았다. 강대한 마력이라 하면 좌중에서는 힘을 각성한 소호금천이 가장 강력한 게 틀림없었고 홍균도인의 힘은 벌레 이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의 존재감.
무(無)이기 때문에 도리어 모든 힘을 빨아들이는 공백으로서의 존재감이 장내에 가득 차 있었다. 그 존재감을 느끼는 건 아마 나 뿐만이 아니리라.
그 때 전욱이 입을 열었다.
[네놈은 불청객이다. 어디로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났는지는 몰라도, 이 자리에 머무를 인과(因果)가 없다면 이만 가거라.]
준엄한 축객령(逐客令).
나는 그것 또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홍균도인이 고대신선이며 복희의 제자라고는 하지만 삼황오제 전욱은 그따위 항렬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존재였다. 내게 했던 짓을 보면 당장 팔을 걷어붙이고 패려고 들어도 모자랄 텐데, 저렇게 예의있게 퇴장을 요구하다니?
‘전욱은 홍균도인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는 건가?’
내가 분위기를 살피고 있을 때 홍균도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소.”
[뭣이?]
“보아하니 황제 공손헌원을 치려고 다같이 준비한 것 같은데 그건 사실 나와는 상관없는 일…. 내가 이 자리에서 물러날 수 없음은 당신들이 [가면]을 벗겼기 때문이라오.”
[…….]
전욱은 무슨 말인지 이유를 되묻지 않았다. 대신 팔짱을 낀 채 섬뜩한 살기를 내뿜으며 흑염(黑炎)이 전신에 일렁이는 게 보였다.
[정말로 네놈이 황제 공손헌원의 [가면] 그 자체란 말이더냐? 설마 복희의 제자가 황제 공손헌원의 화신이었다니!]
“오오… 과연 영민하구려, 제왕이여. 일리있는 추측이오.”
홍균도인은 그렇게 대꾸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허나 그렇지 않소. 나는 그의 가면이 아니오. 또한 화신도 아니지.”
[아니라고?]
“그렇소. 가면은 가면…. 황제 공손헌원은 [거래]했을 뿐 내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자가 아니야.”
스윽
문득 홍균도인의 얼굴이 내 쪽을 향했다. 눈을 감고 있음에도 마치 내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는 듯 싸늘한 기운이 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그러더니 약간 웃음기 섞인 말투로 말했다.
“하하…. 무척 재밌군! [가면]이 아니면서도 [가면]의 기술을 시전하여 삼황오제의 가면을 벗길 수 있는 인간이라? 너는 대체 뭐지.”
홍균도인은 내가 가면을 벗긴 자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홍균도인. 내가 알기로 당신은 달기와 싸운 적이 있소. 그 이후로 어디론가 가버린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가면에서 튀어나온 이유가 뭐요?”
얼마 전 이 세계의 달기의 기억을 본의 아니게 본 적이 있었다. 그 때 달기가 마주쳤던 게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홍균도인이었고, 그 때 보았던 홍균도인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달기의 기억에 선명하지 않아서 내가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보니 홍균도인은 달기와 싸워서 패대기친 적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자 홍균도인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아, 그 때 말이로군. 달기도 강하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별로라서 그냥 흉신한테 갔어.”
“……!!”
나는 깜짝 놀랐고, 나 뿐만 아니라 장내에 있던 제왕들도 상당히 놀라는 기색이었다. 특히 제곡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홍균도인에게 말했다.
[흉신과 손을 잡았느냐?]
“글쎄…. 나랑 흉신이 동맹같은 걸 할 사이는 아니오. 어쨌든 그는 가장 유력한 존재인 게 틀림없으니까 그냥 한 마디 들어보러 갔지.”
[무엇을 위해서?]
그러자 홍균도인은 의미심장하게 뇌까렸다.
“이번에는 그가 어떻게 할 셈인지 듣고 싶었을 뿐…. 후후.”
저게 무슨 뜻일까?
그 때 가만히 있던 소호금천이 자신의 날개를 홍균도인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더 이상 헛소리를 듣기 싫다. 썩 꺼져라.]
두웅!!
그 순간 홍균도인의 이마와 심장 부위에 하나씩 고대의 인(印)이 떠올랐다. 그 인은 마치 글자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무척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있는 듯 했다. 나는 저게 무슨 효과인지 몰라서 멍하니 쳐다보았는지 정작 홍균도인은 꽤나 놀란 듯 경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역시 [가면]을 벗고 원래 힘을 찾으니 만만치가 않구려. 설마 혼연(渾然)의 속성을 다룰 수 있게 될 줄은….”
그 목소리에는 엄살이 아니라 진심으로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호금천의 한 수는 저 홍균도인에게도 절대 만만한 게 아닌 것이리라.
[경고는 한 번뿐이다.]
“…….”
홍균도인은 고민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히죽하고 웃었다.
“한 번뿐인 경고를 무시하는 것도 재미있겠어.”
스으으 -
그와 동시에 홍균도인이 서서히 자신의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눈을 모두 떴을 때, 나는 그의 두 눈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만유(萬有)!
마치 눈 너머에 아무것도 없는 총천연색의 혼돈이 일렁이고 있었고 그것은 실로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게 물결치는 듯한 엄청난 밀도를 흘리고 있었다. 눈동자 따위는 당연히 존재치 않았으며 홍균도인의 몸은 그저 통로에 불과해 보였다.
나는 홍균도인의 눈 너머에 끔찍한 악몽의 세계가 존재함을 감지하고는 몸을 떨었다
‘저건’ 대체 무슨 존재인가?
[경고를 무시했구나.]
소호금천은 홍균도인의 행동을 좌시하지 않았다. 그는 나직이 말하고는 그대로 파멸의 안광을 빛내었고, 그와 동시에 홍균도인의 머리통과 심장이 갑작스럽게 소멸(消滅)했다.
후와악
마치 허무(虛無)가 원형으로 번져나가서 홍균도인이라는 존재를 통째로 지워버리는 듯한 형상! 물질적인 파괴와 열상(裂傷)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궁극적인 파괴가 홍균도인에게 덮쳐오고 있었다.
“……!!”
홍균도인은 뭔가 하려다가 그대로 굳어져버린 채 버둥거렸다. 방금 전 만유의 시선을 이용해서 소호금천의 공격을 막아내려 한 것 같았지만 예상외로 소호금천이 더 강력했기에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허무에 먹혀버린 몸뚱이 이외의 몸체가 버둥거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허무가 공간속으로 번져 나오며 홍균도인을 소멸시키고 있었다.
‘저러고도 안 죽는 게 대단하긴 하군….’
나는 우주적인 존재들의 전투를 보자 기가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권능이 너무 고차원적인 수준이 되면 대결을 파악하기조차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전욱이 감탄했다.
[과연 오랜만에 보는 멸라(滅羅)의 권능이구나. 그간 멸절밖에 쓰지 못하다가 성라를 쓰게 된 소감이 어떠한가?]
그 감탄에 소호금천이 냉막하게 말했다.
[한쪽 팔로만 싸우다가 양팔을 다 쓸 수 있게 된 느낌이로군. 진작에 이랬어야 했거늘….]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랬구나! 원래 소호금천은 우주를 누비는 [옛 지배자]일 때 멸절(滅絶)과 성라(星羅)의 권능을 둘 다 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황제 공손헌원의 뜻에 따라 가면을 쓰게 되면서 그 중 성라의 권능이 가면으로 봉인된 것인가…!!’
그리고 예측컨대 권능 한 개가 늘어났다는 건 단순히 기술의 숫자가 늘어났다는 뜻이 아닐 것이리라. 두 개의 권능이 합쳐져서 멸라 라고 하는 새로운 상위의 권능을 해금시켰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또한 그 사실은 소호금천 뿐만 아니라 다른 오제인 제곡, 요순, 전욱 또한 가면의 봉인이 해제되면 그에 못지않은 힘을 되찾으리라는 걸 뜻했다.
과연 삼황오제!
아무리 홍균도인이 대단한 놈이라지만 그들까지도 압도적으로 찍어누를 수는 없는 것이리라.
그 때였다.
“곱게 퇴장해주고 싶지만 이제 곧 무척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말이오.”
머리의 상단이 모두 소멸된 채 하관만 남아서 홍균도인의 입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입으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아쉽지만 이 자리에서 버티면서 관전(觀戰)이라도 할 수밖에.”
그 말에 소호금천이 비웃음을 지었다.
[네놈은 이미 멸라에 혼백을 다 먹혀가고 있다. 아무리 [옛 지배자]라고 해도 내 공격에 그만큼 당했으면 강제로 죽음을 택해야 할 것인데 어디서 허세를 부리느냐?]
“혼돈의 신이라면 그렇겠지.”
슈슈슈슉
슈슉…!!
홍균도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갑자기 그의 전신이 끓어오르는 혼돈처럼 물방울이 튀기는 끔찍하고 매캐한 기름물처럼 변했다. 듣기만 해도 불쾌해지는 기름 튀기는 소리와 함께 인간의 형상이 완전히 사라졌고, 그 대신에 기름물 속에서 수천 개의 눈알이 뻐끔거리면서 쉴 새 없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한참을 슈슉거리던 그 기름물은 잠시 후 다시 홍균도인의 모습으로 변했고, 이번에 그는 처음부터 만유(萬有)가 담겨있는 불길한 시선을 뜬 채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
“허나 나는 [가면]이기에 편법으로 당신의 권능을 빠져나올 수 있다오.”
믿기지 않는 일!
해방된 삼황오제의 권능에 먹혀서 다 죽어가던 홍균도인이 난데없이 부활하자 당황한 것은 소호금천뿐만이 아닌지 전욱과 제곡도 어이없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소호금천이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어떻게 한 거지?]
“후후후, 어떻게 한 것일까?”
[괘씸한 놈….]
홍균도인이 약올리듯 말하자 소호금천이 재차 아까처럼 고대의 인장을 홍균도인의 몸뚱이 위에 띄웠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그 인장이 직접 홍균도인을 침범하지 못했고 마치 물과 기름이 분리되듯이 일정공간 이상 침투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 모습에 소호금천이 경악했다.
[이, 이럴 수가.]
“당신은 이제 내게 해를 입힐 수 없소. 대신 나도 [동기화]되어서 더 이상 이 공간에 간섭할 순 없겠군.”
그렇게 대꾸한 홍균도인이 쿡쿡 웃었다.
“이렇게까지 몰려본 건 복희와 싸울 때 이래로 처음이군. 과연 삼황오제는 꽤 상대할 만 하다니까.”
“……!!”
역시 저 놈은 복희를 암살한 진범이 맞구나!
나는 저 말을 듣는 순간 복희의 원수를 갚고 싶은 생각에 양손의 화요와 수요를 꽉 붙잡았다.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이 곧장 놈에게 달려드는 걸 막았다.
‘제길…!! 소호금천의 권능도 묘한 방법으로 무효화시키는 저 괴물한테 과연 반쪽짜리 육요의 힘 따위가 통할까?!’
사대신기를 써야 놈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사대신기를 어떻게 쓸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좋아. 육요의 마력을 다시 한번 크게 공명시킨 후 거기서 파생된 마력을 사대신기에 바쳐서 아그니나 바즈라를 소환하면….’
내가 어떻게든 사대신기로 한방 갈겨서 놈의 방어를 크게 뚫어주면 나머지는 이 자리에 모여있는 삼제(三帝)들이 홍균도인을 퇴치해줄 수 있으리라.
웅웅
내가 육요를 공명시키려고 힘을 불어넣고 있던 그 때였다.
[기다리는 게 좋아, 백웅.]
전뇌자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 목소리에 흠칫했다.
‘기다리라고? 저 홍균도인이란 놈이 제일 사악한 흑막인 게 뻔한데 힘을 모아서 저놈부터 해치워야하지 않아! 삼제도 도와주는데 이만한 기회가 어딨겠어…!!’
[…맞아. 그건 옳은 판단이야. 연산력을 이용해서 당신의 지능(知能)을 일시적으로 높여서 상당한 수재급으로 만들었으니 당연히 옳은 판단을 하겠지.]
‘뭣….’
[당신은 내 서포트(support) 덕에 지금 인류 상위 5퍼센트 이내에 드는 지능을 보유하고 있어.]
…….
전뇌자의 말은 내가 약간은 짐작했던 것이었다.
…역시 그랬구나.
왠지 전뇌자를 만난 후부터 머리가 잘 돌아간다 싶었는데 역시 전뇌자가 날 도와주고 있는 거였어.
그리고 전뇌자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더 큰 시선으로 볼 때 지금 홍균도인에게 전력을 다하는 건 악수(惡手)야. 단순히 이성적인 판단만으로는 이렇게 복잡한 판에서 헤쳐 나가질 못해. 조금 똑똑해진 인간의 시선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아.]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나는 전뇌자가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어진 말에 약간 당황했다.
[내가 어설프게 당신을 똑똑하게 만든 바람에 당신이 원래 갖고 있던 커다란 장점 중 하나가 둔화되어 버렸구나.]
‘뭐? 내 장점이 둔화되었다고?’
[전생자의 직감.]
‘……!!’
[당신은 똑똑해진 후 이성과 판단으로 평균이상의 성과를 거뒀지만 그와 동시에 이성적이지 못한 혼돈의 직감으로 들이박는 능력이 떨어져 버렸어…. 이건 내 실수야.]
‘그게 뭐가 잘못된 거냐?’
[정말 모르겠어?]
전뇌자가 한탄하듯 말했다.
[‘평범하게 똑똑하면 하지 않을 짓’은 이제 하지 못하게 된 거야.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혼돈의 의외성이야말로 당신을 절망적인 위기에서 끌어내주는 원동력이었던 거지.]
‘…….’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지금은 뜻하지 않은 위기상황이고 당신이 머리를 잘 굴리는 것만으로는 이겨낼 수가 없을 가능성이 너무 높아.]
‘많이 위험하냐?’
[이대로라면 강인공지능의 연산력으로 볼 때 당신은 92.9842% 실패해서 죽어. 곧이어 또 다른 변수들이 난입하기 때문이야. 그 전에 선택해야만 해.]
‘뭘 선택하라고.’
그렇게 말한 전뇌자의 이어진 말에 나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음을 알 수 있었다.
[이대로 똑똑해진 채 진행하겠어, 아니면 지능을 회수해서 전생자의 직감을 살리겠어? 이번에 당신의 지능을 보조하던 연산력을 회수하면 뇌에 부담이 가서 2번은 도와줄 수가 없어. 다음번에 연산력을 보조하면 뇌사(腦死)하게 될 거야.]
“…….”
[7퍼센트 정도라면 완전히 바닥치는 확률은 아니기에, 이성에 의존해서 진행해도 살 수는 있을지도 몰라. 어느 쪽인지는 당신의 선택이야.]
확률이 낮긴 하지만 그래도 이성적인 판단을 믿고 계속 가볼 것인가.
아니면 어쩌면 소숫점 이하의 확률일지도 모르는데 지능을 버리고 전생자의 직감을 되살릴 것인가.
나는 전뇌자가 요구한 선택에 잠시동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후자로 하겠어.”
[진심이야?]
“당연하지.”
나는 자조적인 표정을 지으며 수요를 잡은 팔에 힘을 꽉 주었다. 이제부터는 머리가 아니라 힘을 쓸 때라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친놈들 상대하려면 나도 미쳐야하지 않겠어?”
[좋아…. 한 번 연산력을 회수하면 당분간은 당신과 대화할 수 없을 거야. 그건 알아둬.]
“알았어.”
[간다!]
번쩍!
다음 순간, 나는 내 머릿속에 섬광이 스쳐지나간 후 지금까지 나를 영민하게 만들던 활발한 연상작용과 논리, 선행후행의 구별속도가 모조리 사라진 걸 알아차렸다. 마치 팔다리를 잃은 채 허우적대며 어둠 속에 빠졌음을 알 수 있었다. 번뜩이듯 이어지던 추론은 사라지고 쓸데없이 좋은 기억력만 남았다.
마치 대가리를 마차 밑에 깔고 수십 번 갈아댄 후 벽에 수십 번 꽝꽝 박아대서 정신이 없다면 이 정도로 멍청해질 것 같다.
…….
아…. 왜 천재들이 날 보고 답답해했는지… 뭔가 알 것 같다….
나는 엄청난 자괴감을 체감하면서 잠시 우울해졌지만 이윽고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잘 떠오르지 않았던 직감이 대번에 떠오르는 걸 알아차렸다.
‘오! 그렇구나! 딱히 이유는 없지만….’
나는 곧장 직감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홍균도이이이인!! 이 씨발놈아!”
나는 큰 소리로 한창 삼황오제와 권능을 겨루고 있던 홍균도인을 외쳐 불렀다.
“……?”
홍균도인은 물론이고 삼제의 시선도 내게로 향하자 나는 이윽고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소리를 했다.
“내가 니 가면을 훔칠 수 있을지 없을지 내기하자!”
“…….”
홍균도인이 이윽고 멍하니 있다가 당황한 듯 말했다.
“너 미쳤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