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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362화 (1,359/1,615)

1362====================

사신지혼(四神之魂)

덥석

나는 순간 제갈현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약간의 분노가 잠시동안 내 손가락 끝으로 흘러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냉정해진 머리가 그 이상의 행동을 하는 것을 막았다. 이전의 나였다면 멱살을 잡고 소리지르며 따지기라도 했겠지만 지금은 마치 머릿속에서 청령한 물결이 소리없이 흐르듯 무척 안정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아직 확실한건 없다.

그리고 확실해질때까지 따지기에는 헤르메스를 확실히 해치운 상황도 아니다.

아직 강적과 생사결을 벌이고 있는 급박한 상황 - 이런 사소한 일에 시간낭비할 수 없다.

파지지직….

[크아아아악.]

저만치 떨어져서 바즈라에 고통받고 있는 헤르메스는 아직 풀려날 기색이 없다. 아니, 바즈라라면 내가 차후 일격을 먹일 때까지는 헤르메스를 붙잡고 있어 주리라. 나는 곁눈질로 그 사실을 확인한 후 다시 멱살에서 힘을 서서히 풀며 제갈현에게 말했다.

“따지는 건 나중에 하겠소. 내 요구는 당신에게 빌려준 바즈라를 되돌려달라는 거요.”

내가 필요한 것만 요구하자, 제갈현은 약간 어두워진 안색으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바즈라는 내가 계약을 이행하기 전엔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오.”

나는 냉소했다.

“웃기는 얘기군. 날 죽이는 계약을 이행하면 바즈라가 돌아올 필요도 없을텐데.”

“…….”

“그렇다면 합리적으로 생각해 볼때 지금 당장 당신의 목을 쳐야겠소.”

제갈현의 말대로라면 ‘백웅을 죽인다’는 계약이행이 이뤄지기 전에 바즈라를 돌려받을 방법은 그것뿐이다. 계약자가 죽으면 더 이상 바즈라는 갈 곳이 없기에 사대신기의 좌로 되돌아올 것이리라.

스윽

내가 화요의 칼날을 제갈현의 목에 갖다대자 그는 움찔했지만 이내 체념한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천하의 악인보다 더욱 가혹하게 처벌되는 게 바로 반역자이지. 전생자에게 반역했으니 각오는 되었소.”

“마지막으로 묻겠소. 왜 날 배신한 것이오?”

바즈라를 달라고 나를 설득한 것은 바로 제갈현이다. 그리고 그 계약내용은 처음부터 제갈현이 바즈라 측에 제안한 것이었다. 나를 죽이고 싶은 뇌신기 바즈라가 호쾌하게 그 계약을 받아들였다는 건 어렵지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즉 - 그 시점부터 이미 제갈현은 내 목을 치려는 살의(殺意)를 갖고있었다는 뜻이고 나를 세치 혀로 속여서 계획을 실행한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그런 반역의 뜻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내 질문에 제갈현이 또렷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원래세계로 귀환하면 이 세계는 버려지기 때문이오.”

“뭐라고?”

“그렇지 않소…? 당신은 고향을 구하고 싶어하지 이곳은 수많은 외우주 중 하나일 뿐이니 끝까지 구원해주진 않을 것이오. 단적으로 당신이 원래 세계로 귀환하자마자 이 외우주는 멸망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잖소.”

“…….”

“나는 외계인에게서 내 생명과 인류를 구해준 당신에게 고마웠지만 그와 동시에 당신을 따르기만 해서는 이 세계의 운명을 구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소. 당신을 죽여서라도 뇌신기를 이용해 운명을 타파하고 나아가 닫힌 결말을 열리게 만들 생각이었소.”

긴 얘기같았지만 무척 직관적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선명하게 하고 있어서 말 뜻을 파악하는 건 쉬웠다. 나는 제갈현의 말을 듣자 한숨을 쉬었다.

“후우. 당신과 헤어진 후에 알게된 거지만, 나일라토프는 이 외우주가 정해진 결말속에서 무한히 반복된다고 했소. 설마 그것까지 눈치챘던 거요?”

“내 예상대로구려. 나일라토프가 당신을 배신하려는 게 느껴졌기에 그 이유라면 이 세계가 [닫힌 세계]이기 때문이리라 여겼소.”

과연 이 세계에서도 제갈현은 천재로구나.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엄정한 예기(銳氣)가 스며있는 칼날에 뜻을 불어넣으며 말했다.

“제갈현. 당신의 생명은 내가 한 번 구해준 것. 그러니 내가 거두어 가겠소.”

“옳은 말이오.”

“…후우.”

하지만 언뜻 죽일 수가 없어서 나는 한숨을 한번 더 쉬었다. 아무리 동명이인이라지만 망량과 똑같이 생긴 자를 다시 베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 부담스러운 기색을 느꼈는지 제갈현이 입을 열었다.

“패자는 유구무언이나,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게 해주시오.”

“하시오.”

이어진 말은 뜻밖의 조언이었다.

“남미(南美) 대륙으로 가시오.”

나는 그 말에 어리둥절해서 반문했다.

“남미…? 어째서?”

“나는 대학원생으로서 잡학다식한 편이었소. 그리고 테스카틀리포카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감이 왔소. 당신은 남미로 가서 그의 단서를 찾아야하오….”

“……!!”

“그래야만 흑요석의 비밀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오.”

테스카틀리포카!

뜻밖의 이름이 나오자 나는 흠칫했다.

“백웅이여. 유언을 남기게 해주어 고맙소.”

그리고 제갈현은 눈을 감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고, 그것은 틀림없이 자신의 목을 베라는 뜻이었다. 마지막까지 비굴한 빛이 없는 제갈현을 보자 나는 도리어 고마운 기분이 들었고,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화요를 휘둘렀다.

“가시오.”

슈악

이윽고 순식간에 검뢰(劍雷)에 그의 목이 베여서 떨구어졌다. 화요의 화기가 순식간에 절단부를 익혀서 피도 흐르지 않았고, 나는 그를 고통없이 보내어주었다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당신을 욕하진 않겠소, 제갈현.”

외우주의 제갈현이 날 배신한 이유가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그의 입장에서는 목숨을 구원받은 은혜보다 이 종말의 세계를 구해야한다는 사명감이 더 강했으리라. 나라고 해도 그랬으리라.

운명적인 선택의 순간에 자신의 뜻대로 했을 뿐이니 어찌 그를 욕할 수 있겠는가? 다만 배신당한 내 입장에선 그를 칭찬해줄 수 없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어깨에 짊어진 게 많았기에 목숨을 양보해줄 수가 없다.

제갈현의 목숨이 날아간 순간, 갑자기 사대신기의 좌(座)에서 공명이 울려퍼지는 게 느껴졌다.

우우우웅 -

그리고 비어있는 뇌신기 바즈라의 좌(座)에서 커다란 흡인력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를 빨아들이듯 맹렬하게 [부름]을 연신 외쳤고, 그 공명이 바깥 세상에까지 전달되자 바즈라가 먼 곳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아!! 저 애송이 뒤통수 한 번 치기가 그리 어려웠느냐! 설마 그리도 망설일 줄이야!!]

제갈현을 원망하는 말이 틀림없었다.

슈와악!

잠시 후 뇌신기 바즈라가 두둥실 내 눈 앞에 소환되어 왔다. 눈이 아릴 정도의 백광(白光)이 뇌전과 함께 바즈라를 감싸고 있었고 그 뇌력은 틀림없이 나를 죽이고 싶은 듯 살기가 넘쳤다. 잡는 순간 감전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도리어 씨익 웃으며 바즈라를 콱 하고 붙잡으며 외쳤다.

“잘 왔다 개같은 새끼야!”

파지지직!!

나는 이빨에 전류가 흐르면서 전신이 드드득거리며 떨리는 걸 느꼈다. 그러나 익히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코피가 흘러도 끝내 참아내었고, 관자놀이가 울긋불긋해질 때쯤 바즈라를 붙잡아서 도로 좌에 집어넣을 수가 있었다.

우웅!

마치 빠져있던 조각이 맞춰지듯이 바즈라가 사대신기의 정해진 위치에 들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바즈라를 회수하자 한숨을 돌렸지만 그때 바로 옆에 있던 이광이 말했다.

“사부. 할 말이 있소.”

나는 이광이 비장한 기색으로 말을 걸자 흠칫해서 대답했다.

“뭐냐?”

“평소에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길래 만나는 놈들마다 전부 뒤통수를 치려고 하는 것이오?”

“…….”

아 제기랄….

할 말은 없는데 이광이 저 말을 하니까 열받잖아!!

“으윽, 너….”

내가 갑자기 빡쳐서 이를 갈자 이광이 딴청을 부렸다.

“확실히 방금 전은 운이 좋았소. 신급 주술사를 상대로 대비책도 없이 싸우면 이제부터는 바로 죽을 것 같군. 사부가 싸우고 있으면 멀리서 원호하겠소.”

“뭐?”

“그럼 사부의 건투(健鬪)를 기원하리다.”

파앙!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어마어마한 속도로 이광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뇌신지혼에 근접한 속도로 뒤도 안 돌아보고 전장을 이탈한 것이다!

“아…. 씨발….”

이광의 판단은 옳았다. 이광의 실력이 급증한 덕에 방심하고 있는 헤르메스를 상대로 기습을 한두 번 정도는 가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절대적인 실력차가 적용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제대로 싸우는 헤르메스를 상대로 이광은 말 그대로 벌레처럼 죽을 텐데 이제는 그걸 당해낼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고 전장을 이탈한 것이다.

하지만 옳은 판단이고 내게는 편한 상황임에도 나는 괜히 이광이 주는 것 없이 미웠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털고는 육요의 영기를 다시 강하게 이끌어냈다.

우웅!

‘이광은 저 정도면 할 만큼 한 것이다.’

이제부터 싸워서 이기는 건 내 책임일 것이리라!

나는 그렇게 각오하고는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의식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공공에게 말했다.

“공공! 미안하지만 의식을 조금만 더 유지해 주시오. 부탁하겠소.”

공공은 의식에 자신의 모든 마력을 소모하고 있었기에 헤르메스가 출현해서 난장을 쳐도 개입할 수가 없었다. 양 팔을 들어올린 채 의식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공공이 신언으로 내게 말했다.

[정말 괜찮은가? 그대들에게 한 방 먹긴 했지만 저 자는 틀림없이 삼황오제에 맞설만한 신격이다. 방금 전 신기(神器)에 당한 것도 본체가 아니었기에 치명상을 피한 것 같다. 저 존재가 전력을 다하기 시작하면 그대만의 힘으로는 당해내기 힘들 터….]

공공이 걱정하는 걸 보니 아직까지 헤르메스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생각보다 더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았지만 나는 공공에게 말했다.

“나도 아직 정공법으로 혼자서 저만한 거물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지 않소. 하지만 전장(戰場)을 바꾸게 되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오.”

[……!! 과연! 하지만 자네가 죽을 확률은 훨씬 더 올라갈 터인데 괜찮은가? 늑대를 피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격이다.]

“걱정 마시오. 처음부터 들어가려 했던 호랑이굴이니.”

[알았다. 의식의 통과점이 출현하기 전에 그대에게 신호를 주겠다.]

“부탁하오.”

타닷

나는 곧장 육요를 소환한 채 영기로 몸을 띄워 허공을 날았다. 영기를 조금만 다룰 줄 알면 육요의 강대한 영기를 이용해서 하늘을 나는 것 정도는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먼 곳에 있던 헤르메스가 아직까지 잔류해 있는 바즈라의 뇌기에 고통스러워하는 곳에 도착했다.

파지지직

[크… 으윽….]

그리고 그런 헤르메스의 주변을 호위하듯 의식없는 팔부신중 넷이 철통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팔부신중을 직접 마력을 써서 조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놈의 주된 아티팩트인 수정지팡이가 깨졌으니 마왕들을 자유롭게 조작할 수 없겠지. 마왕을 조작하는 대신 자기자신의 운신은 포기해야 할 터.’

헤르메스가 팔부신중과 동시에 공격해오는 경우의 수가 봉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자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끼며 헤르메스에게 말을 걸었다.

“헤르메스.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용서해주마. 네놈을 동료로 만들 일은 없겠지만 전생 내내 해코지는 하지 않겠어.”

내 항복제안에 헤르메스가 스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크흐흐…. 나는 전생자에 대하여 전생자 네놈보다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 결국 그 모든 게 승천(昇天) 앞에서는 무의미해진다는 걸 모를 줄 아느냐? 내가 바보라서 네놈을 지금 거스른 줄 아느냐?]

나는 헤르메스의 말에 심상치 않은 단서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흠칫했다.

“뭐?”

[네놈은 모른다…. 진정으로 흉신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그리고 그런 흉신조차도 이 판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없게 하는 새로운 [규칙]의 존재를….]

“…….”

헤르메스가 혈광을 뿜어내며 포효했다.

[아직… 네놈은 완전히 서(書)에게 인정받은 게 아니다…. 나, 마도종사(魔道宗師) 헤르메스가 승천할 기회가 충분함을 모르겠느냐!!]

쿠와아아악!!

그때 헤르메스의 심장부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 폭음과 함께 그의 몸이 갑작스럽게 거대화하기 시작했고, 꾸불텅거리는 혼돈이 사방으로 나무줄기처럼 퍼져나가는 게 보였다.

콰지지직 -

콰지직

[우오오….]

[으으어.]

동시에 헤르메스의 ‘줄기’에 몸을 관통당한 팔부신중들이 무의식중에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잠시동안 발버둥쳤지만 이내 팔다리가 축 늘어졌고, 계속 거대해지고 있는 헤르메스에게 힘을 빨아 먹히는 듯 서서히 마력이 줄어드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저건….’

팔부신중을 꿰뚫어죽여서 힘을 흡수하는 것인가?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그 혼돈이 계속해서 거대해졌고, 잠시 후에는 마치 천지를 메울 듯이 거대한 기둥처럼 변한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무기둥이 아니었고, 도리어 마치 동물처럼 느껴졌다.

흑사(黑蛇) - 저것은 틀림없이 검은 뱀이다.

천제단이 있는 오악을 마치 뒷동산처럼 느껴지게 할 정도로 거대화한 헤르메스는 이윽고 천지간을 메우는 거대한 동체를 꿈틀거리며 자신의 몸뚱이에서 수백 개의 눈을 만들어냈다.

헤르메스가 한층 요악(妖惡)해진 신언을 내뿜으며 외쳤다.

[외우주에서 섣불리 힘을 쓰면 인과율이 어찌될지 몰라서 몸을 사렸지만 이젠 되었다…. 내게도 더 이상 뒤가 없으니, 진정한 마신(魔神)의 힘을 맛보아라 전생자!!]

콰칭

그와 동시에 헤르메스의 몸 주위에 화염, 냉기, 산(酸), 어둠, 빛, 바람, 대지를 상징하는 문양이 떠오르는 게 보였다. 나는 제갈사에게 마도를 공부한 적이 있었기에 저게 뭔지를 알아챘다.

‘룬(Rune)!’

마법의 일종이자 보통 마법사는 쓸 수 없으며 정령과 계약한 자만이 쓸 수 있다는 비전마법! 룬마스터라 불리는 인물이 조디악 멤버 중에 있었으며 룬의 위력은 굉장히 광범위하고 강력하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룬마법이라 하더라도 헤르메스가 삼황오제에 버금가는 힘을 보이기에는 부족하다 생각했다.

‘아무리 강력해도 마법은 마법일 뿐…. 혼돈 그 자체를 다루는 권능에는 비할 수 없는데 저게 전력을 다하는 거라고?’

뭔가가 있다.

나는 방심하지 않고 곧장 방금 전에 건달파를 흡수해서 축적된 마력을 소모해서 바루나를 불러내었다.

“바루나여! 헤르메스에게서 나를 지킬 방어막을 만들어 주시오!”

바루나가 소환한 물의 방어막이 내 전신에 씌이는 순간 - 헤르메스의 몸 주위에 소환된 일곱 개의 룬이 서로 이어지면서 원형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전하고 있는 일곱 개의 룬 한가운데에서 피빛안광을 내뿜는 [눈]이 소환되었고 그 눈이 나를 노려보았다.

콰과과광!!!

“……!!”

당했다!

폭발음과 함께 나는 영문도 모르고 튕겨져서 뒤로 날아갔다. 내 몸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져서 혈인(血人)이나 다름없게 변해 있었으며 아직까지 살아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뭐?! 사대신기 바루나의 방어막을 일격에…?!’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에 내가 경악하고 있을 때 헤르메스가 비웃듯이 말하는 신언이 귓가에 들려왔다.

[아무리 사대신기라 해도 외신(外神)의 주문인 [심파(心破)의 칠죄(七罪)]를 어설픈 대가로는 막을 수 없다! 네가 사대신기를 갖고 있는 걸 모르고 반역하려 든 줄 아는가, 전생자!]

“크윽….”

외신의 주문이라니!

주욱

헤르메스가 자신의 어둠의 촉수를 마치 산맥처럼 크게 만들더니 난데없이 내 쪽으로 날려서 후려치는 게 보였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전신의 잠력을 터뜨리며 구궁파천뢰를 시전해서 정면에서 막았다.

콰광!!

다행히 이광에게 전해받은 요령 덕에 단숨에 삼점원을 만들어서 위력을 향상시킨 절기로 한 번을 막아냈지만 그와 동시에 몸의 칠공에서 피가 터져나오는 걸 느꼈다.

울컥

“우웁.”

미치겠다. 벌써부터 체력과 기력이 다 고갈되려는 것 같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대신기를 빼면 헤르메스와 수준차이가 너무 나는 것 같았다.

콰칭!

콰칭!

[한 번 더 받아보라!!]

그 순간 나는 헤르메스가 또 다시 허공에 룬을 띄우면서 이번에는 또 알 수 없는 어둠의 주문을 하나 더 준비하는 걸 알아챘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암담함이 느껴졌다.

‘저것도 틀림없이 외신의 주문…. 씨발…. 어떻게 동시에 두 개를 순식간에….’

괴물이다.

마법의 신이라더니 시몬 마구스조차 온갖 준비를 다 해야만 한번 쓸까말까 하는 외신의 주문을 마구잡이로 날리는 놈이었냐?!

나는 저걸 정면으로 막으면 틀림없이 사대신기고 뭐고 그대로 죽을 거라는 걸 알아채고는 재빨리 양손을 펼치면서 사도의 권능을 시전했다.

“이 세계의 [작은 굴레]여! 되돌아가라!”

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의 시공간이 일그러지며 헤르메스가 준비한 주문의 마력이 원점으로 회귀하는 게 보였다. 나는 이걸로 헤르메스의 한 수를 막아내었다 생각했지만 그 순간 헤르메스가 비웃듯이 말하는 게 들려왔다.

[후흐흐흐. 혹시나 했지만 너는 별로 전생을 많이 하지 않았구나. 상위신격과 싸우는 도중에 이렇게 뻔한 수를 써 주다니…. 이렇게 경험이 부족할 줄은 몰랐다. 아주 고맙다!]

뭐?

[내가 어째서 수정구를 작은 굴레로 회복하지 않았는지 이상하지도 않더냐?]

우웅!!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거대한 검은 뱀이 자신의 육중한 동체를 한번 크게 뒤틀었다. 그리고 내가 되돌린 [작은 굴레]때문에 시공간이 한번 회복했을 때 갑자기 뱀의 전신에 떠올라 있던 수백 개의 안구들이 동시에 눈을 뜨는 게 보였다.

후와악

‘이게 뭐지?!’

그와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역풍(逆風)의 감각이 느껴지면서 나는 뒷덜미가 크게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마치 사신(死神)의 낫이 바로 목덜미에 얹어진 듯한 살벌하기 그지없는 기분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게 무척이나 안 좋은 상황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재빨리 아그니를 소환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일 것이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총의 형태로 소환된 아그니를 손에 쥔 나는 그대로 아그니의 흉탄을 놈에게 발사했다.

타앙!!

아그니의 흉탄은 여지없이 큰 뱀의 동체를 관통했고 산맥만한 혼돈의 뱀은 잠시동안 비틀거리며 고통을 느끼는 듯 했다. 틀림없이 아그니의 위력은 건재한 것이리라.

하지만 이윽고 헤르메스가 광소를 터뜨리는 게 보였다.

[흐하하하하…. 나 헤르메스, 내게 문신(紋身)된 외신의 주문으로서 명하나니 [인과율 역전]을 선언한다!]

응?!

타앙!!

“…….”

나는 갑작스럽게 눈앞에 있던 뱀의 커다란 상흔이 소멸되고 그 대신에 내 왼쪽 어깨와 가슴팍을 크게 관통한 새로운 치명상이 생겨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말 그대로 서로의 피해가 완전히 뒤바뀐 듯한 모습이었기에 나는 크게 혼란을 느꼈고, 그 혼란과 함께 격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악!!”

헤르메스가 가학적인 웃음을 짓는 게 사방에 울려 퍼졌다.

[하하하… 하하하하…!! 상위신격끼리 서로 작은 굴레를 돌리며 놀 수도 있지만 이렇게 조건부에 공격을 유도해서 역행의 피해를 가할 수도 있단 걸 몰랐나? 정말로 한 번도 비슷한 수준에서 싸워본 적이 없나 보구나!]

“……!!”

그 순간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설마…. 내가 비슷한 방법을 써서 역류시킬까봐 [작은 굴레]로 수정을 되돌리지 않은 건가?’

그 때까지도 방심하지 않고 내 전력을 탐색하고 있다가 내가 경험이 없다는 걸 알아채자마자 역전을 시도한 것인가!

[크흐하하하하…. 뇌신기로 입은 부상도 이걸로 네게 약간 되돌려줬다. 가뿐하구나, 백웅.]

울컥

나는 그 말에 대꾸도 못하고 연신 입에서 선혈만 흘렸다. 너무 치명상이라서 의식조차 가물가물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지금 내가 삼황오제와 싸우기에는 무엇이 부족한지를 현저히 깨달을 수 있었다.

‘대신전(對神戰) 경험부족…!! 사대신기가 부족한 게 아냐!’

신격들이 신력을 이용해서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에 대해 익숙치 않다.

기껏해야 전욱이나 축융을 상대로 흑웅이 싸웠던 경험뿐인데 그마저도 흑웅만의 전술이기에 나는 그걸 따라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외신의 주문을 남발해대는 저 마신은 특히 더 전술적으로 교활하기에, 초보나 다름없는 나로서는 절대 당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그저 동료들과 함께 다같이 신에게 들이받는 게 일상이었고 제대로 상위신격의 수준에서 전투를 체험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더 상위존재의 가호를 받아서 칼만 휘둘렀는데 어떻게 이런 걸 알 수 있단 말인가?

못 이긴다.

나는 그 사실을 선명하게 깨닫자마자 동시에 내가 해야 할 선택이 하나뿐인 걸 깨달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는 마력을 짜내어서 억지로 사대신기를 소환했다.

‘크윽…. 제발….’

이게 실패하면 뒤가 없다…!!

[가련하구나. 하지만 방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끝장내 주마!]

웅웅거리며 다시 한 번 일곱 개의 룬이 떠올라서 외신의 주문이 구현화되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그 압도적인 화력에 기겁을 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냉정해졌다.

‘바즈라는 안 돼…. 그러면… 이것 뿐!’

나는 필사적인 마음으로 사대신기를 소환했고, 이윽고 내 염원에 응답해서 사대신기가 소환되었다.

터업

익숙한 감촉의 뿔피리가 내 손에 들렸다. 그리고 그 뿔피리를 보는 순간 헤르메스는 뭔가를 알아차렸는지 당황했다.

[……?! 이런! 설마 그걸….]

나는 곧장 뿔피리를 불었다.

후웅!!

한 줄기 바람과 함께 마치 거짓말처럼 산맥만한 크기의 흑사 헤르메스가 깔끔하게 이 세상에서 소멸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소멸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허억… 허억….”

풍신기(風神器) 바유.

그 진짜 능력은 상대를 [과거]에서 [미래]로 보내는 것.

단순해 보이지만 이 능력은 다른 신격의 권능에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작은 굴레]를 무시하고 상대를 미래로 보내버릴 수 있다!

‘제길…. 처음부터 바유를 쓰려고 생각은 했는데… 어떤 놈인지 알아보려고 싸워본다는 게… 너무 강했어….’

헤르메스의 전투방식을 알아본 건 좋은데 죽을 지경이라니.

나는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냉정하게 놈이 언제 돌아올지를 추측해 보았다.

‘바유에 바친 마력량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 길어도 일각 내에 되돌아올 것이다. 그 전에 빨리….’

나는 사도의 권능을 이용해서 서둘러 내 몸의 부상을 치료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파지지직

파직

“크윽….”

과거로 회귀해서 치유가 된 현실과 그렇지 못한 현실이 환상처럼 교차하면서 아른거린다. 아까 헤르메스에게 인과율 역전으로 일격을 당했던 피해가 남은 탓인 듯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권능을 소모해서 몸을 치유했고,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힘없이 지상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내가 땅에 내려앉자마자 멀리에서 공공의 말이 들려왔다.

[육요의 의식이 완결되었소. 의식의 문을 소환하겠소!]

쿠웅

그와 동시에 어디론가 향하는 어둠의 문짝이 내 앞에 나타나는 게 보였다. 나는 가물거리는 눈으로 그 문짝을 쳐다보다가 힘을 주어서 문을 당겨 열었다.

끼익 -

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준엄하게 울려 퍼지는 걸 알 수 있었다.

[끝까지 내게 실망만을 안겨주는구나, 백웅.]

나는 천천히 무릎을 꿇은 채 눈을 들었다. 그리고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왜 아니겠습니까?”

혼돈의 옥좌 한가운데 전욱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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