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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그러자 헤르메스가 자신의 깨진 수정을 살피다가 갑자기 다른 손을 하늘로 들어서 외쳤다.
[셰파(shefa)의 흐름이여, 역류하라!]
치지징
그 외침과 동시에 깨진 수정구가 다시 붙으려 했다. 올올이 깨져나간 조각들이 마치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듯 했는데, 나는 그 광경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간조작주문! [작은 굴레]를 통째로 움직이지 않고 시간만 역류시킨다!’
아무래도 [작은 굴레]를 움직이기엔 헤르메스에게 부담이 가기 때문에 시공간조작이라는 하위권능으로 수정지팡이를 복구하려는 듯 했다. 원래는 이렇게 상대의 마법이 가진 성향을 바로 알아채지 못할테지만 나는 대번에 헤르메스가 하려는 걸 깨닫고는 그대로 이를 악물며 권능을 시전했다.
“전욱의 사도로써 명한다! 그 시간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으리라!”
츠아아악…!!
그러자 반쯤 붙던 수정지팡이가 그 자리에서 조각이 붙는 게 멈춰버렸다.
‘좋았어! 권능끼리 충돌해서 수정지팡이의 복구를 막았다.’
나는 쾌재를 불렀지만 이윽고 헤르메스가 자신의 손을 좌우로 한 번 휘두르며 말했다.
[허공(tehiru)이여! 세계(mundi)여! 조하르의 흔적을 이어라.]
쿠궁
“크악…!!”
그 순간 나는 갑자기 내 몸 전체에 알 수 없는 영적인 폭풍의 파장이 날아들며 내 몸이 엄청난 압력과 함께 튕겨나가는 걸 알아차렸다.
‘이, 이건 또 무슨 주문….’
이 또한 인과조작계 공격인지 전조가 없어서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튕겨나가면서 내 육체와 정신이 마치 찢어지듯이 강제로 분리되려는 걸 느꼈다. 너무 강대한 마력이 내 전신을 옭아매면서 마력 그 자체가 사슬이 되어서 육체와 정신의 간극을 계속 벌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끼기기긱!
끼긱!
[크흑… 윽… 어엇.]
나는 어느 새 육성이 아니라 영혼이 반쯤 찢겨나간 채로 영언을 발음하는 걸 알아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육체와 영혼을 찢어버린 정신나간 주문! 나는 이 주문이 진짜 무서운 이유를 알아챘다.
‘신력으로 몸을 둘러싸고 있었고 칠요도 들고 있었는데 그 마법저항력을 한번에 뚫고 나를 즉사상태로 만들었다고?!’
수많은 마도사들을 보아왔지만 이 정도 위력을 지닌 주문을 맞이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마도사라 자칭하는 자들도 겨우 수요 정도만 들어도 마법저항력에 막혀서 쪽도 못쓰고 죽게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인간계의 대마도사에 비하면 수백 수천배나 되는 위력이 틀림없었다.
헤르메스의 주문이 진실로 초월자의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아챈 나는 급히 사대신기부터 꺼내려 했다.
[제길! 바루나여, 방어막을….]
하지만 나는 바루나를 소환하려다가 멈칫했다. 그것은 내 머릿속에서 그게 전술적으로 옳지 못한 선택이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지출비용이 큰 기술을 쓰도록 유도당하고 있다!’
저 놈은 장기전을 원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사대신기를 아무렇게나 퍼부을 경우 저만큼 강대한 적을 상대로는 후반으로 갈수록 불리해지리라는 걸 깨닫고, 이 상황을 좀 더 효율적으로 타개할 필요를 느꼈다. 이윽고 나는 마음을 결정하고는 다른 수단을 썼다.
[이혼대법!]
치리링 -
내 영체의 좌수와 우수에 각기 혼력과 백력이 모이는 게 느껴졌다. 태극의 음양을 상징하는 듯한 두 개의 잠력(潛力)을 끌어올린 직후 나는 이혼대법을 써서 내 자신의 영체를 향해 터뜨리듯 합장했다.
파앙!
경쾌한 박수소리와 함께 나는 눈을 감은 채 현실의 육체로 되돌아왔음을 알아챘다. 상대가 강제로 영체를 찢으려는 주문에 대항해서 이혼대법의 백력(魄力)에 잠재된 흡인력을 이용해서 영체의 연결부터 봉합한 것이다.
‘이러면 주문의 위력과는 상관없이 육체로 귀환할 수 있지!’
그리고는 눈을 반개하면서 합장한 채 정신을 집중했다.
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귓가에 사슬이 철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 헤르메스가 쓴 주문을 통해 소환된 영체의 사슬을 감지하고는 그대로 의념을 내뻗어서 영체의 사슬을 내 손에 잡는 염상(念想)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우득!
‘잡았다…!’
거칠지만 굳세게 영체의 사슬을 내 의념의 손이 잡았다! 나는 그 순간 이것 또한 의념천주를 이용한 의념절기라는 걸 깨달았고, 곧장 의념의 손을 이용해서 사슬을 꽉 거머쥔 채 외쳤다.
“이게 네놈의 사슬이냐!”
콰광
영체의 사슬이 날아가서 헤르메스의 주변 공기를 때렸다. 그러나 헤르메스를 타격할 수는 없었는데, 헤르메스의 몸 주변에는 어느 새 오색 빛깔으로 빛나고 있는 방어막이 소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것도 틀림없이 신급 주술이 틀림없었기에 영체의 사슬 정도로는 어쩔 수 없다.
그러자 헤르메스가 자신의 이마에서 갑자기 시뻘건 피빛 보석을 돌출시키더니 시뻘건 안광을 함께 내뿜으며 말했다.
[주술전투에 익숙한 대응이군. 누가 네게 조언을 해 주고 있느냐?]
“조언은 무슨! 나 혼자 싸워도 너 정도는 이겨.”
[크흐흐…. 확실히 이혼대법의 숙련자라면 영살(靈殺)계열 주문은 안먹히겠군.]
헤르메스는 광소를 흘리다가 갑자기 다른 방향을 홱하고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광은 이혼대법을 모르지.]
아차!
나는 그 순간 전신에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헤르메스의 시선이 정확하게 저만치 떨어져서 피해있는 이광에게 향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헤르메스가 사법(邪法)을 시전하면 이광이 무슨 수를 써도 즉사한다는 걸 알아채고는 외쳤다.
“이광!! 도망쳐라!”
파지직 -
다음 순간, 이광이 서 있던 자리에 붉은 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인간의 반응속도로는 무슨 수를 써도 피할 수 없는 뇌전이었기에 나는 이광이 죽었으리라 생각했다. 보나마나 번개의 물리적 파괴력은 물론이고 막으려고 할 경우 그대로 영체살(靈體殺)의 권능이 따라붙어서 방금 내가 겪었던 것처럼 강제로 영혼이 찢어지리라!
하지만 그 찰나에 이광은 어디론가 피해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러리라고 예상하고 미리 구궁파천뢰를 응용한 극한의 신법으로 움직였다 하는 게 옳은 표현이리라.
[소용없다!]
그리고 이광이 피한 곳은 내 근처에서 머지않은 곳이었으며, 헤르메스의 붉은 뇌전은 땅을 한 번 때리고는 그대로 다시금 날아서 이광을 빛의 속도로 격중시켰다.
콰광!!
헤르메스는 비웃음을 지었다.
[뇌신류의 번개같은 속도로 내 주문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권능으로 유도되는 마도의 적뢰(赤雷)를 맞으면 거신족이라도 즉사한다.]
“……!!”
[날파리같은 이광을 처리했으니 이제 제대로 상대해주지, 전생자…. 응?]
그 순간 헤르메스의 얼굴이 뒤틀리듯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왜냐하면 이광이 멀쩡히 살아서 자신의 옷을 툭툭 털면서 일어서고 있는 게 모두의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광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좋은 방패로군.”
이광의 앞에 서 있는 것은 바로 대조영이었다. 뜬금없이 벌어진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살피고 있던 대조영의 바로 후면까지 날아들어간 이광이었고, 그런 이광의 뒤를 따라서 적뢰가 날아들자 대조영이 막은 게 틀림없었다.
파지직
파지지직….
대조영의 갑옷 전체가 시뻘겋게 익어있었고 어깨부분과 옆구리 부분이 뇌전때문에 타들어간 게 보였다. 심지어 대조영 본인조차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는지 얼굴이 시꺼먼 안색이 되어있었으며 선혈을 울컥 토했다.
“크윽…. 흐억.”
비틀거리던 대조영이 잠시 후 무릎을 꿇으며 전신을 떨었다. 헤르메스가 자랑하는 적뢰주문의 위력은 일격에 그를 전투불능으로 만들 정도였던 것이리라. 그 광경을 본 헤르메스가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이광, 네가 마음에 드는군.]
“그런가?”
뜬금없이 봉변을 당한 대조영은 무시한 채 이광이 훗하고 웃으며 갑자기 어디론가를 향해서 외쳤다.
“언제까지 상황을 살필 셈인가? 나오지 않는다면 다음은 네 쪽으로 가서 피할 것이다!”
누구한테 하는 소리일까?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순간적으로 어디선가 기척이 느껴지는 걸 알아차렸다. 헤르메스에 온통 정신이 집중되어 있어서 몰랐지만 아주 미세한 기척이 있었다. 그리고 이광은 나와 달리 좀 더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있었으므로 그 제3자가 와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광의 외침에 대답은 없었고, 헤르메스가 붉은 안광을 흘리며 말했다.
[한 번 더 피해보아라!]
파지지직!!
다시 한 번 적뢰가 전조없이 빛의 속도로 발출되었고 이광의 신형 또한 그에 앞서서 움직였다. 나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확실하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틀림없어.’
이광은 지금 헤르메스가 날리는 살기를 예측하고 그 살기부터 먼저 피한 것이다! 물론 초절정고수라면 다들 하는 일이었지만, 이광이 하는 일은 적어도 세 수를 앞서서 공격의 방향을 예측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무리 의념지경의 고수가 절대적 육감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망상이나 다름없는 영역이었고, 절대지경 고수조차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아니, 지금 이광이 하는 회피법이야말로 주술사나 마도사를 상대로 무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회피법이 아닐까? 나는 그와 동시에 이광의 순간속력이 뇌신지혼에 근접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차렸고, 그게 구궁파천뢰 덕분이리라고 생각했다.
‘보고만 있을 순 없지!’
나는 그 때 바로 헤르메스를 공격했다. 육요의 영력을 끌어올리며 수요와 화요를 들고 헤르메스에게 짓쳐들어가서 무량단을 날렸다.
까앙!!
“……!!”
뭐?!
나는 육요의 힘으로 증폭된 수요의 일참(一斬)이 헤르메스의 방어막을 깨지 못하고 튕겨나오자 눈을 부릅떴다. 헤르메스가 여유를 부리며 말하는 게 들렸다.
[삼황오제와 싸워도 자신있는 최강 방어주문이다. 네가 이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이번에는 허공에 띄운 토요 팔괘도를 한쪽 손으로 조종해서는 그대로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리고는 의념을 이용해서 눈을 부릅뜨며 토요의 권능을 발휘했다.
술법 무효화!
토요만의 고유권능이라면 헤르메스의 방어막을 해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헤르메스의 방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토요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
뭐지? 아무리 마법이라고 해도 토요의 술법무효화에는 당해낼 수 없는데….
설마 저 놈의 마법은 뭔가 다르단 말인가!
콰과광!!!
그리고 잠시 후 이광을 추살하려던 적뢰의 타격과 함께 방금 전과는 다른 둔중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폭발음이 울린 곳은 약 삼십여 장 밖으로 보였고 언뜻 육안으로는 바로 보이지 않는 숲 속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면으로 막은 건가?’
하지만 그러면 이광은 반드시 죽는다. 헤르메스의 저 마법은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갖고 있었고 주술에 대한 마땅한 대비책이 없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나는 긴장한 채 상황을 살폈는데 이윽고 뜻밖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쒸잉 -
‘무언가’가 날아오는 게 보인다. 빛의 속도인 적뢰와 달리 그 속도는 보통 일류고수의 눈에도 잘 보일 정도로 느렸다. 그러나 그 느린 속도에 어울리지 않게 궤도는 무척이나 안정되어 있었고, 그 투척된 무언가가 헤르메스를 향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헤르메스는 무표정하게 그 투척물을 보다가 이윽고 붉은 안광을 일그러뜨리며 당황했다.
[아니…!!]
투콱!!
다음 순간, 헤르메스의 방어막이 통째로 관통당하며 헤르메스의 전신이 마치 꼬치처럼 꿰뚫려서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폭발음이 터졌다.
콰과과과광!!
[크아아아악!!]
헤르메스의 몸에서 시꺼먼 연기가 피어오르며 그가 발광하는 게 멀리에서 보였다. 그리고 어느샌가 이광이 내 옆으로 착지하며 말했다.
“이 자도 사부의 동료요?”
“…….”
나는 이광의 옆구리에 끼여오듯 따라서 온 자의 얼굴을 익히 알고 있었다. 모든 힘을 다 써서 핼쑥해진 안색이었지만 모를 수는 없었다.
“제갈현. 바즈라를 썼구려.”
그랬다.
나타난 것은 바로 제갈현!
은밀히 숨어있다가 갑자기 이광이 제갈현 쪽으로 가는 바람에 적뢰가 그를 추격해오자 바즈라를 써서 반사적으로 반격한 듯 했다.
제갈현은 창백한 안색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흐… 흐흐. 설마 이런 곳에서 바즈라를 쓰게 될 줄은….”
“…….”
“원통하구나….”
나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차마 입 밖에 꺼낼 생각은 들지 않아서 제갈현의 맥을 짚어보며 그의 남은 명줄을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았다.
‘바즈라가 그의 생명력과 힘을 모조리 뺏아갔다. 마치 벌이 한번 침을 쏘면 죽어버리듯, 제갈현도 머지않아 죽겠군….’
이미 예측했던 상황이다. 그렇기에 제갈현은 바즈라를 나일라토프라는 강적을 상대로 쓰려고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헤르메스에게 시전한 것이다.
나는 제갈현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말했다.
“당신이 여기 천제단까지 일부러 따라와서 바즈라로 죽이려 한 건 나였겠구려.”
“…….”
내 추측에 제갈현은 이윽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나와 바즈라의 계약이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