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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357화 (1,35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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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전뇌자의 기이한 공간에서 되돌아오자 점차 정신이 또렷해지고, 동시에 또렷해지는만큼 진실이 구름 속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의심스러워.’

전뇌자의 말대로 황제 공손헌원을 믿어야 할까? 사실 이것부터가 너무 의심스럽기 때문에 온갖 생각이 다 나버리는 것이다.

나일라토프도 의심스럽다.

헤르메스도 의심스럽다.

설마 이 세상 그 누구도 믿지 못할 상황이 찾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이 기가 막힌 상황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중얼거렸다.

“…제갈현에게 물어볼… 아니….”

나는 크게 고개를 휘저었다. 그리고는 한층 또렷해진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더 이상은 의지해선 안 돼.”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 직감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부턴 혼자서 나아갈 시간이라고.

제갈현이 나보다 훨씬 똑똑한 게 분명한데도 나는 스스로 그런 결론을 내린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던 파우스트 박사에게 말했다.

“파우스트 박사. 이혼 총사령관을 만나고 싶으니 안내해주시오.”

“머리는 괜찮소?”

“별것 아니오.”

나는 파우스트 박사를 따라서 인류연합군의 총사령관인 이혼에게 찾아갔다. 그는 원래 절대지경의 고수인 권성 이혼이 죽은 후 클론으로 재탄생한 존재였고 얼마 전에 나와 비무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이혼을 마주친 상태에서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당신과 이환웅 소령은 어떤 관계요?”

“……?”

이혼은 어리둥절해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뒤에 있던 블라디미르 부사령관도 마찬가지였다. 난데없이 뚱딴지같은 질문을 들었다고 여겼는지 이혼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꾸했다.

“그게 왜 궁금한지 모르겠군. 꼭 알아야하는 일이오?”

“난 당신들 인류연합군을 위해서 수많은 외계인들을 절멸시켰소. 내가 세운 공적으로 그 정도 질문하는 게 안 될 일이오?”

“음….”

“도리어 이렇게 망설이는 이유가 궁금할 정도군.”

내가 쏘아붙이듯 말하자 이혼은 당황한 듯 침음성을 흘리다가 힐끔 옆에 있던 블라디미르 부사령관을 쳐다보고 고개를 까닥했다. 그러자 블라디미르 부사령관이 인상을 쓰며 장내에서 뚜벅뚜벅 걸어서 밖으로 나갔다.

위잉

블라디미르가 퇴장하자 그제서야 이혼이 탁자 위에 손깍지를 낀 채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환 소령… 본명 이환웅. 나일라토프의 제자인 그는 사실 내 아들이오.”

“…….”

“내가 이혼의 클론이기에 아들이라고 하기엔 어려울 수도 있겠군. 이혼이 생전에 가진 자식이 바로 이환웅이오.”

역시 혈연(血緣)이었던가?

나는 수수께끼의 연결고리가 조금 이어지는 걸 느끼면서 말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소. 당신과 이환웅이 어떤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워낙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정신이 없어서 물어볼 겨를이 없었소. 아니,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에 가깝겠지.”

“허면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서 나와 이환웅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오?”

“그렇소. 왜냐하면 조선(朝鮮)이라는 나라 때문이오.”

“조선? 조선이 왜….”

“…….”

나는 거기까진 이혼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건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위화감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는 원래 세계에 조선이라는 반도의 왕국은 존재하지 않아. 고려왕국만이 계속 존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외우주에는 당연한 듯이 존재하고 있다….’

사실 이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는 너무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외우주에서 귀환하고 싶다는 마음이 급하고 칠요모으기에다가 삼황오제도 맞닥뜨리면서 별의별 짓을 다하고 있으니 정신이 없었다.

그런 내가 조선에 주목하게 된 것은 다름아닌 서문공백 덕분이었다. 서문공백이 내게 과거의 광검마의 이야기와 더불어서 현대까지의 역사 흐름을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었는데, 그 역사 속에서 굉장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다른 역사는 다 같은데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지 않았다는 차이.

이 차이는 결국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내가 사는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다는 거 아닐까?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조선과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고 내 세계에서도 십대고수로 얼굴을 들이밀었던 권성 이혼에 대해 정보를 캐내는 게 맞다.’

그리고 이혼과 나일라토프의 연결고리라고 하면 결국 이환웅 뿐.

성도 같겠다 둘에게 모종의 관련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미치게 된 것이다.

‘어? 왠지 나 엄청 머리가 잘 돌아가네….’

이상하게 전뇌자와 만난 직후에 이 모든 사고속도가 빨라졌으니 나는 순간 기이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 후 이혼이 한숨을 쉬었다.

“후우! 사실 이환웅이 권성 이혼의 아들이라는 건 극비(極秘)요. 또한 나도 이환웅에게 내가 클론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으니 협조해 주시오.”

“극비라고? 왜 그 사실을 숨기는 것이오?”

“당연히 이환웅 본인에게 큰 심적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요. 그가 나이에 비해 조숙하며 뛰어난 전사라고 해도 아직 어린나이지 않소. 또 하나는 천부문(天符門) 때문이오.”

응?

나는 처음 듣는 단어가 나오자 반문했다.

“천부문이라고? 그게 뭐지?”

“천부문을 모르시오?”

“모르니까 물어봤잖소. 내가 당연히 알아야 할 만큼 유명한 문파인가?”

“아…. 그렇겠군. 사실 천부문은 단군신앙(檀君信仰)을 모태로 하는 수천년 역사의 무림종파(武林宗派)요. 반도의 역사 속에서 최고수들은 무조건 천부문에서만 배출했으며 그 실력은 중원무림 최고수들에 뒤지지 않았소.”

“……?”

그런 문파가 있었다고? 나는 아리까리한 기억을 열심히 더듬으며 질문했다.

“혹시 십이율(十二律)이라고도 하지 않소? 내가 알기로 반도 최강의 문파는 십이율이오.”

“……? 십이율은 내가 알기로 전통 음률의 열두 음계를 말하는 것이오만. 그런 기이한 이름을 가진 문파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소.”

“어…. 그러면 단(檀)의 일족이나 만하령문(萬河靈門)은 모르시오?”

“모르겠구려. 처음 듣소. 조선과 고려, 그 이전부터 반도의 무맥(武脈)은 모두 천부문이 계승했으며 그 계승자가 세상에 가끔 내려와서 무공의 가르침을 베풀었을 뿐이오.”

“…….”

십이율, 단의 일족, 만하령문이 없는 세상이었군.

그럼 당연히 십이율주도 없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성 이혼은 그대로 존재한다는 말인가?

‘뭔가 이유가 있나….’

뭔가 심상치 않은 위화감에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이혼이 말을 이었다.

“그 천부문은 사실 과거 외계인의 첫 침공 후 몇 년 안에 절멸(絶滅)했소. 유일한 생존자였던 천부문주 하서린은 남편인 권성 이혼과 함께 같은 전장에서 전사(戰死)했으며 사실상 맥이 끊긴 거나 다름없는 셈이오. 이 상황에서 천부문의 데릴사위였던 이혼이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천부문 출신의 모든 무림고수들이 절망하게 될 것이오.”

“응…? 그게 그렇게 중요한 사실이오? 이혼이 죽었다고 알려지면 사기가 크게 떨어진다는 말인가?”

아무리 절대지경 고수라지만 단 한 명일뿐이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크나큰 절망을 불러올 수 있단 것일까? 그러자 이혼이 쓴웃음을 지었다.

“절대지경 한 명의 무력이 먹힐 정도로 녹록한 판은 아니지. 그러나 이혼은 천부문의 또 다른 후계자로 여겨졌으며 반도 무림인들의 정신적 지주였소. 그가 실제 가졌던 무력과는 별개의 문제요. 천부의 맥이 끊긴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지.”

“흠….”

“아무튼 당신은 이런 비밀이 무의미해질 정도의 신화적인 전공을 세웠기에 말해주는 것이오. 그래도 가능하면 내가 클론이며 이혼이 이환웅의 아버지라는 건 비밀로 해 주시오.”

“뭐 사실 그다지 궁금한 일도 아니긴 했소만….”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정말 그다지 안 중요한 것 같은데…. 이 얘기를 물어봐야겠다고 직감이 든 이유가 뭐지?’

이혼이건 이환웅이건 이제 곧 원래세상으로 돌아갈 내게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이 문제를 제대로 밝혀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 그런데 한 가지 또 궁금한 게 있소만.”

“무엇이오?”

“단군신앙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천부문주가 바로 단군이오?”

“……?”

그러자 이혼은 그야말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요? 단군이라는 건 말 그대로 전통설화일 뿐이오. 무림문파에서 제정신이면 단군이라고 자칭할 리가 없잖소.”

“응? 그러면 삼사(三師)도 천부문에 없었다는 거요?”

“사… 삼사? 풍백, 운사, 우사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소만. 굉장히 강력한 술법사였는데….”

“그것도 그냥 전설이오. 마치 그런 게 현실에 있다는 듯 말씀하시다니…. 허허.”

이혼이 너무 황당한지 도리어 웃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가 껄껄 웃는 것에 같이 웃을 수가 없었다.

“…….”

뭐?

십이율은 당연히 단군이나 삼사같은 신적 존재의 영험한 힘을 받아서 싸우고 있었는데 여기의 천부문은 아예 그걸 전통설화로밖에 취급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는 내가 여태껏 느끼고 있던 간질간질한 위화감이 단 하나의 단어로 집결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전뇌자의 공간에 갔다 온 직후 내 두뇌의 회전속도가 빨라진 것과 연관이 있는 듯 했다.

“환인(桓因)….”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환인에 대해 알고 있소?”

저 모든 위화감을 집속시키는 건 환인이라는 단어가 분명하다.

이전부터 정도령, 십이율주, 대조영 등에게 들었던 모든 기억의 편린이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흐름을 타고 단어 하나로 모여드는 게 느껴진다.

“……!!”

흠칫!

그러자 갑자기 이혼이 정색을 했다. 지금까지보다 더욱 긴장한 듯 얼굴이 딱딱해져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정적이 잠시 흐르고, 이혼이 마치 나를 탐색해 보려는 듯 말했다.

“혹시 나일라토프의 의뢰로 당신도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오…? 그래서 나와 이환웅의 관계를 물었던 건가.”

응?

이건 무슨 뜻이지?

계획이란 건 또 뭐야?

‘잘은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맞춰주는 게 좋겠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교섭을 해 봤던 경험으로 빠르게 분위기를 읽고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일라토프는 내게 당신에게 가서 물어보라 했소. 외계인을 다 처치한 다음 할 일이 없냐고 하니까 그렇게 말하더구려.”

“흐음…. 과연… 당신이라면 어쩌면 계획을 크게 앞당길 수도….”

뭔가 선망과 동경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이혼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따라오시오. 내가 오늘 무척 많은 결단을 하게 되는구려.”

위잉 -

이혼은 자동개폐문을 몇 번이나 지나서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가 가는 곳은 파우스트가 있던 연구동과 완전히 반대방향이었고, 개폐장치를 넘을 때마다 점차 조명이 어두워지고 더욱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듯 했다. 나는 이미 이 기지 자체가 남극의 심처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얼마나 깊은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엄청나게 내려오는군…. 그런데 안 덥네.’

땅 밑으로 내려갈수록 지열(地熱)이 뜨거워져서 무척 더워진다는 걸 상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도리어 차가운 냉기가 서려서 가만히 있으면 춥다고 느낄지도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왔을 때 이혼이 흑색과 자색(紫色)이 교차된 기이한 철문 앞에 멈춰서서 말했다.

“전 인류 중에서 나와 파우스트밖에 모르는 장소요. 이곳을 보게 되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거요.”

“돌이킬 수 없는 게 한두 개여야지. 죽기보다 더하겠소?”

“후후. 과연 영웅호걸이군!”

이혼은 유쾌하게 웃더니 삑 하고 카드를 내밀어서 철문을 열었다.

우웅 -

육중한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문이 열렸을 때, 나는 전방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 말았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공간!

이곳은 절대 남극의 지하가 아니라 별개의 이공간일 것이다.

그리고 신록이 우거진 거대한 대양(大洋)과도 같은 숲 너머에는 무시무시한 크기의 나무가 보였다.

나무는 정말 컸다. 저걸 나무라고 표현하기도 그런 게, 아름다리 나무 수준을 넘어서서 줄기가 지평선을 가득 채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놀란 건 나무의 크기 때문이 아니다.

본 적이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뭐...?! 어째서 저게 여기에?!

내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때 이혼이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바깥의 기지와 달리 이 공간은 말도 안될 정도로 넓소. 이계(異界)의 고대주술로 만들어진 공간이기 때문이지. 눈에 보이는 저 나무까지 가려면 최소한 오십 리는 가야하오.”

“자, 잠깐… 이 공간… 그리고 저 나무는 대체 누가 만들었소?”

내 질문에 이혼이 대꾸했다.

“이 공간을 만든 것은 아홉 개의 뿌리를 이용해서 이 세계에 도달한 이계의 선각자(先覺者)들이라고 들었소. 그리고 이 공간이 남극에 출현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5십만 년 전이라고 파우스트 박사가 그러던데…. 인류역사 따위보다 훨씬 아득한 과거라고 할 수 있겠지.”

“아홉 개의 뿌리….”

“…뭐 나무야 그 선각자들이 만든 게 아니지. 저건 원하는 장소에 출현할 수 있었고 그게 우연히 우리 세계였다고 들었소. 선각자들은 그 나무를 찾아서 이 세계에 도달했을 뿐.”

“5십만 년 전이라….”

엄청난 세월이었지만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제갈사가 말하기를 마도서는 그 이상의 세월을 다룰 때도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만큼 신비한 유적이라면 5십만 년이 아니라 1백만 년이라 해도 믿을 수 있다.

잠시 후 이혼이 시야에 보이는 - 마치 하늘을 꿰뚫어버릴 듯이 자라있는 초거대 거수(巨樹)를 한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저기에서 말세(末世)를 역전하기 위한 궁극의 계획! 우리들의 환인계획(桓因計劃)이 시작될 것이오.”

“…….”

“따라오시구려.”

이혼이 앞서서 경공을 써서 뛰어갔지만 나는 시선을 나무에 고정시킨 채 떼지 않았다.

‘이럴 수가….’

거대한 나무.

아니, 내가 보았던 그 ‘원래 나무’와 비교하면 상당히 작은 편이지만 -

‘틀림없어.’

저건 신단수(神檀樹)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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