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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건달파를 부하로 받아들인 후 말했다.
“헤르메스한테 갑자기 불려온 것 같은데 너희 일행은 지금 여기와 다른 외우주로 갔다는 말이지? 다 같이 몰려다니고 있었나?”
“그렇습니다.”
“거기는 어떤 세계였지?”
나 이외의 누군가가 가 본 외우주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도 알고싶다.
말투가 존대로 바뀐 건달파가 말을 이었다.
“황무지 뿐인 세계였습니다.”
“황무지?”
“아예 문명이 존재했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파괴된 곳을 다같이 헤매이고 있었습니다. 또한 신(神)의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
그런 황량한 외우주도 있단 말인가?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뭐지? 외우주는 일단 내가 있는 원래 세계와 역사가 비슷한 줄 알았는데…. 천차만별이로구나.’
팔부신중들이 간 외우주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저 말 외에는 단서가 없다. 나는 또 다시 질문했다.
“또 하나. 너희는 도중에 [주시자]라는 존재를 마주치지 않았나?”
“……? 모릅니다. 저희는 경매가 끝나고 나타난 그 [문]을 통해서 바로 이동했는데 그 와중에 다른 누군가를 만난 적은 없습니다.”
“흠.”
뭔가 이상한데?
‘원래 나일라토프같은 예외적인 존재를 통하는 게 아니라면…. 무조건 외우주로 갈 때는 주시자의 허락을 맡아야하는 거 아닌가.’
주시자가 어째서 팔부신중을 굳이 대면하지 않고 외우주를 여행하게 허락해준 것일까?
왜 팔부신중은 주시자를 만나지 않은 거지?
‘주시자는 은하에서 제일 잘 나가던 강대한 종족조차도 외우주여행을 허가하지 않고 소멸시켰다는 얘기를 신농의 화신인 수인(燧人)에게 들은 적 있었는데….’
아무리 팔부신중이 마왕이라도 은하급 종족보다 더 위일것같진 않다. 아니, 외신 앞에서 그딴 하찮은 격이 먹힐 리가 없다. 어쨌든 벌레같은 존재로 취급될 뿐일테니 격을 따져봤자다.
‘…나중에 알아보자.’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여기에 또 다른 비밀이 숨어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단 풀리지 않는 의문은 뒤로 하고 건달파에게 말했다.
“나는 잠깐 여기서 나갔다 오지. 너는 이광의 연습상대가 되어주고 가능한 모든 걸 가르쳐줘라.”
“존명.”
나는 명령을 내리고는 헤르메스를 불러서 나가게 해 달라고 했다.
“나가게 해 줘.”
그러자 헤르메스가 말했다.
“백웅이여. 조언 하나 해주지.”
“어떤 조언?”
“나일라토프는 극히 조심해야할 인물이지만 동시에 최고의 지능을 지닌 존재. 그대의 행적에 대한 시선을 돌릴 겸 그 자에게 궁금한 것을 몇 가지 물어보는 것도 쏠쏠한 이득을 줄 것이다.”
“흠…. 어떤 걸 말이냐.”
“그건 나로서는 인과율에 걸려서 말하기 힘들군. 알아서 생각해 보라.”
“알았어.”
“앞으로는 굳이 내게 출입을 부탁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을 것이다.”
파앗!
나는 다음 순간 목갑에서 나갈 수 있었다. 목갑에서 나가자 원래 들어갔던 지점인 동북아해방군의 호텔숙소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일어서서 바로 메피스토를 다시 손목에 착용하며 말했다.
“메피스토. 나일라토프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괜히 시간 끌 이유가 없다!
[사용자의 명령을 실행합니다.]
슈욱
나는 바로 전함 가이아의 내부, 고풍스러운 양식의 방 안에 도착하게 되었다.
‘역시 메피스토는 나일라토프의 영향력이 미치기 때문에 바로 놈이 있는 곳으로 나를 전송해줄 수 있군.’
예측대로였기에 내가 참나무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자, 잠시 후 맞은편의 고풍스러운 의자에 나일라토프가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달각하는 소리와 함께 나일라토프가 새하얀 찻잔을 우아하게 들며 말했다.
“커피 한 잔 하겠나?”
“됐어. 나는 커피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그럼 커피우유라도 먹겠나? 맛있는데.”
“…….”
커피우유는 또 뭐야?
쓸데없는데서 집요한 나일라토프의 말을 무시하고는 나는 내가 할 말을 하기로 했다.
“나일라토프. 사실 나는 네가 맡긴 이환웅 소령의 과업을 다 해냈다. 게다가 처음에 네가 말했던 [기한]도 훨씬 넘어서, 지금쯤이면 세계수를 찾아내고도 남았어야하는 거 아닌가?”
“그렇군.”
“그렇군이 아니잖아. 지금 나는 너한테 따지러 온 거라고. 나는 내가 할 일을 다 했는데 이제 네가 약속을 행할 차례야.”
내가 약간 화난 표정을 짓자 나일라토프는 살짝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커피를 음미하는 듯 했다. 잠시 후 나일라토프가 입을 열었다.
“세계수는 이미 찾았다.”
“뭐!! 언제?”
“네가 오악의 천제단을 한창 공격하고 있을 때였을까? 바쁜 것 같아서 굳이 말을 걸지는 않았을 뿐이다.”
“…그럼 세계수의 핵이나 열매는 당장 얻을 수 있는 건가?”
“사실 그게 문제였지. 기생목(奇生木)을 핵의 표면에서 생장시키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고보니 핵에 기생목을 자라게 해서 무난하게 떼내는 방법을 쓴다고 들었던 것 같다. 나는 과거의 정보를 되새기며 다시 질문했다.
“얼마나 걸리지?”
“앞으로 일주일 정도?”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인상을 찡그렸다.
“이봐. 너 혹시 거짓말 하는 거 아니냐? 처음에 세계수 얘기를 하던 것과 자꾸 얘기가 달라지고 있잖아. 처음에는 당장이라도 핵을 뽑아줄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더니.”
“그랬던 기억은 없군. 예상기한이 한 달이라고 했을 뿐 거짓말을 하진 않았어.”
“제기랄…. 말장난하자고 온 거 아냐. 만일 네가 날 기만하고 있는 거라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나는 일부러 살기를 강하게 내뿜었다.
‘내가 화내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시켜야해.’
실제로는 헤르메스와 뒤에서 손잡았다는 사실이 들켰을까봐 조마조마하지만 그걸 티내선 안된다. 단순히 티내지 않는 걸 넘어서 놈에게 따지면서 화내는 척 한다면 그 사실에 집중하게 되어 나를 도리어 추궁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자 나일라토프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이런…. 내가 너무 희망적으로 말했다는 건 인정하지. 그렇다해도 일주일 정도면 기다리기 어려운 시간은 아니잖은가? 도리어 짧다고 보는데.”
“젠장. 지금 심정으로는 세계수의 핵을 이용해서 똑똑해지는 것도 필요없어. 당장 원래 세계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흐음. 하긴 외우주에서 뭘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없을테니 현명한 판단이군.”
뭐?
나는 방금 나일라토프가 했던 말이 의미심장했기에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 말을 추궁했다.
“방금 그거 무슨 뜻이냐? 바뀌는 게 없다는 게 무슨 뜻이지?”
나일라토프가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했다.
“말 그대로다만. 이 세계에서 아무리 칠요를 모으고 역사를 바꿔도 너희 세계의 역사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아. 별로 대단한 얘기도 아닌데….”
“…….”
“그런건 너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텐데? 그래서 난 그간 네가 칠요를 모으고 삼황오제와 대화를 하고다녀도 그러려니 했지.”
아냐. 내 직감으론 아니다.
‘뭔가 있어!’
방금 나일라토프의 저 말에는 뭔가가 숨겨져있는 게 틀림없다. 저 녀석은 실수로 그 속내를 노출시켰다가 얼버무린 거야. 나는 무수한 상대와 대화를 해봤기에 직감적으로 그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나일라토프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렇군. 아직은 좀 더 간을 봐야 해. 이 녀석이 뭘 숨기는지 알아내야겠어.’
나는 최대한 가면을 쓴 채 표정과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러면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
“뭐지?”
“나는 이 외우주의 역사에 이미 깊게 끼어들었어. 그리고 기왕 깊게 끼어든거 확실하게 마무리짓고 떠나려고 한다.”
그러자 나일라토프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삼제(三帝)가 육요결집의 순간 황제 공손헌원을 암살하는 계획에 도움을 달라 이건가?”
“다 알고 있으니까 편하군. 도와줄 수 있겠지?”
“물론.”
“거침없군. 거절해도 어쩔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의외라는 눈으로 나일라토프를 쳐다보자 나일라토프가 피식 웃었다.
“왜 거절하겠나. 아무리 내가 하나의 세계에 매이지 않은 방랑자라고 하더라도 전생자(轉生者)의 권위를 무시할 순 없지. 황제암살에 한 손 거드는 것 정도는 세계수의 마력을 얻게 되면 별로 큰 일도 아니야.”
“그런가.”
“다만 왜 그런 헛된 짓을 하는지는 과학자로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해두지. 어차피 원래세계의 황제 공손헌원은 지금 봉인되어있지 않은가?”
“그냥 예행연습이야.”
내 대꾸에 나일라토프가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과연. 황제 공손헌원이 전생도중에 언젠가는 부활할 테니 그 때를 대비해서 부담없이 한번 더 싸워보겠다 그 말이겠군. 멍청해보이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이야.”
“…내 속을 다 읽은 것처럼 말하지 마.”
“후후.”
낭랑하게 웃던 나일라토프가 뜬금없는 말했다.
“아무튼 좋아. 그럼 일주일은 기다려주게. 그 후에 황제암살을 시도하면 돕겠네.”
“알았….”
그 때 문득 나는 방금전에 헤르메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일라토프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라고 했었지?’
지금까지 했던 말은 그냥 놈과 교섭을 하는데 필요한 말 뿐이었다. 헤르메스의 말뜻은 순수하게 궁금한 걸 질문해보라는 제안이었으므로, 나는 지금이야말로 헤르메스가 말한 그 때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뭘 물어보지….’
책사가 있으면 편할텐데 갑자기 이런걸 생각하려니까 머리에 쥐가 난다. 나는 크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고, 나일라토프는 계속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다가 말했다.
“커피우유가 싫으면 콜드브루 라떼는 어떤가.”
“아 안마신다고.”
“흠…. 아쉽군.”
“…….”
이새끼 커피 엄청 좋아하네….
나는 별 시덥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나일라토프한테 어떤 질문을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을 열었다.
“넌 외우주를 자주 돌아다닌다고 했었지? 그럼 돌아다니는 외우주마다 삼황오제와 흉신이 존재했냐.”
아까 건달파가 했던 ‘황무지 외우주’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든 생각이었다. 그런 황무지 외우주에도 삼황오제나 흉신같은 신격들이 반드시 존재할까? 일단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거의 그런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직접 돌아다니는 외우주 방랑자의 입으로 확인하는 건 다를 것 같다.
그러자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보던 나일라토프가 말했다.
“전생자여. 그건 아주 재밌는 질문이군.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기도 하고.”
“핵심?”
“흐음…. 이거 인과율에 걸릴 거 같은데…. 대답을 할까말까. 내가 맘대로 데리고 온 탓이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할까?”
진지하게 뭔가를 고민하던 나일라토프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다른 외우주에 삼황오제는 늘 존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흉신은 언제나 존재했지.”
“삼황오제가 없어도 흉신이 있는 외우주…. 그런 건 나도 본 적 있긴 한데.”
달마가 있던 외우주가 딱 그랬다.
역시 내 생각대로라는 걸 확인하는데 그친 것 같다.
‘쳇…. 모르는 걸 질문했어야 했는데 잘못 질문했네. 질문을 잘못 선택했나?’
나는 내심 아쉽게 여겼다.
그러자 나일라토프가 뭔가 짖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큭큭큭. 전생자여. 흉신은 네 생각보다 더 특별한 존재다.”
“응?”
“흉신, 그의 종말은 정해져있으나 시작이 어디인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다른 [옛 지배자]와 흉신이 다른 점은 바로 그거야.”
“응? 신좌 출신이 아니야?”
나일라토프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는 진정으로 특별하지…. 아마 신좌 출신조차도 흉신의 진면목을 모를 수도 있다.”
“……?”
“그대가 나의 흥을 돋궈주었기에 특별히 인과율을 소모해주었으니 고맙게 여기게.”
무슨 개소리야?
나는 알쏭달쏭한 수수께끼같은 말에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도저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떫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아무튼 일주일 후에 보자.”
“살펴가게.”
파앗!
나는 나일라토프의 면전에서 나와서 동북아해방군에 있던 제갈현을 만나러 갔다.
‘젠장. 또 마력이 그새 쌓였군….’
흑요석을 쓰면 위험할거라는 판단에 흑요석을 쓰지 않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짤막하게 이야기해주자 제갈현이 깊게 고민을 했다.
“즉 일단 세계수의 핵과 열매부터 손에 넣은 후 황제암살에 도전할거란 말이구려. 핵을 녹여서 재능의 열매로 만들어 당신이 섭취하고, 세계수의 열매인 선악과는 당신이 이 세계에서 원래세계로 되돌아가는데 쓸 것이고.”
“그렇소.”
“순서는 틀리지 않소만….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소.”
“그게 무엇이오?”
제갈현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부터 나일라토프는 당신의 세계에 확정적으로 세계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이 외우주에 있을 세계수를 찾아다니며 이 세계에서 이환웅이라는 제자를 들였소. 당신의 세계에 세계수가 있다면 그냥 거기서 핵과 과일을 따 가면 될 텐데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단 말이오?”
“…….”
어, 그렇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말했다.
“이환웅이라는 제자 키우기가 재밌어서 그런 거 아니었겠소?”
“그럴 리가… 이환웅은 그냥 재밌는 필멸자이자 장난감 이상도 이하도 아니오. 나일라토프가 생긴것만 사람이지 신적인 존재라는 걸 알고 있잖소.”
“흠.”
“그 자의 비합리적인 선택…. 그건 그가 지금 당신에게 [원래 세계]와 [외우주]의 시간차가 난다는 걸 숨기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오.”
“어떤 연관 말이오?”
“어쩌면 그는 당신의 뒤통수를 치려하는 걸지도 모르오. 사실을 숨길 이유라면 뒤통수 치는 것밖에 더 있겠소?”
“으음….”
일리있는 말이다. 뭔가 조잡했지만 내가 제갈현이 제기한 의심에 동조해서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현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나중에 황제를 암살하기 전 세계수에 갈 때 나도 데려가 주시오.”
“당신을?”
“내가 옆에서 나일라토프를 관찰하면서 경계하겠소. 만일의 경우 내가 당신에게서 받은 바즈라를 이용해서 그를 공격하면 크게 도움이 되지 않겠소?”
“으음…. 당신에게 바즈라가 생겼다 해도 당신은 얼마전까지 힘없는 일반인이었소. 나일라토프가 작정하고 싸우면 당신은 벌레처럼 죽을텐데.”
“걱정 마시오. 바즈라가 그렇게 두지 않을테니까.”
“바즈라가 그렇게 두지 않는다니?”
이어진 제갈현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뇌신기 바즈라는 나와 생명의 계약을 맺었소. 내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이면 강제로 바즈라가 내 몸을 조종하게 되어있지. 바즈라가 직접 싸운다면 아무리 나일라토프라도 날 한 방에 죽일 순 없을거요.”
“……!! 무슨 짓을! 그렇게 되면 한 번 싸우고 나면 무조건 죽잖소!”
“아무 힘도 없는 일반인이 힘을 쓰고자 하면 그 정도 대가는 치러야겠지.”
제갈현이 믿음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큰 은혜를 입었소. 끝까지 돕고 싶으니 따라가게 해 주시오.”
“…알았소. 그렇게 하지.”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결의가 굳다면 같이 가지 않는 게 더 그의 의지를 무시하는 것이리라.
나는 제갈현과의 대화가 끝나자 이젠 어디로 갈지를 고민했다.
‘흠. 바로 목갑으로 되돌아갈까?’
목갑에 들어가서 한 두어 달 동안 열심히 수련하고 나면 나일라토프와 약속한 때가 올 것이다. 그게 제일 무난하고 간단하리라.
그런데 왠지 지금 바로 들어가기엔 애매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문득 뭔가를 깨달았다.
“아…!! 그래!”
나는 곧장 외쳤다.
“메피스토! 낙양으로 가자!”
[사용자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파앗
나는 곧장 날듯이 메피스토에게 명령을 내려서 낙양으로 갔다. 그리고는 낙양 인근에 있는 마을의 위치를 어림짐작으로 찾아다녔고, 머지않아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 위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있다.’
왜 나는 이걸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지?
‘…운무나 술법의 기운이 없다.’
역시 천우진은 이 세계에 없나보군.
나는 시골마을 초입에 도착해 있었고 황량한 마을 입구로 걸어들어가자 예상하던 게 눈에 띄었다.
어둡고 좁은 사당.
그 입구에는 여동빈(呂洞賓)이라고 적혀 있었다.
“…….”
바로 그 때였다.
“여기는 왜 온 것이냐?”
익숙한 목소리.
나는 등 뒤를 돌아보았고, 그 곳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는 얼굴이 존재했다.
경국지색의 요염한 백의 절세미녀 -
나는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달기(妲己).”
그랬다.
달기가 또 다시 나를 쫓아서 여기로 온 것이다.
달기는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그 외계의 사도와 싸운다고 꽤나 힘을 뺐다. 본녀를 그런 험한 곳에 놔두고 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느냐?”
“웃기는 소리하지 마. 너 정도면 그 놈과 정면으로 싸워도 이길 수 있잖아.”
“후후후.”
달기가 낭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정색을 하곤 말했다.
“다시 묻겠다. 왜 갑자기 여기 온 것이냐? 여기 무언가 중요한 게 있느냐?”
“…….”
나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달기에게 질문했다.
“달기. 망량선사를 아느냐?”
이 곳은 바로 내가 아는 망량선사의 마을.
여동빈의 사당까지 있는 걸 보면 내가 아는 그 곳이 맞다.
그러나 천우진은 보이지 않았고 늘 들어올때마다 나를 꿈의 세계로 초대하던 망량선사가 보이지 않아서 긴가민가하던 중이었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달기에게 질문해본 것이다.
달기가 모르겠다는 듯 대답했다.
“그게 누구냐?”
“…….”
“강력한 신인가?”
정말 모르나보군….
나는 힐끔 여동빈의 사당 안쪽을 쳐다보았다.
‘그럼 저건 왜 있지…?’
여동빈의 사당 안쪽.
망량선사는 없으나 녹슨 철검(鐵劍)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