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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엄포를 놓은 덕에 머리에서 힘을 풀고 이광의 설명을 들을 수가 있게 되었다. 이광은 서서히 자신의 몸에 구궁파천뢰의 기운을 끌어올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보시오. 구궁파천뢰의 시전단계가 바로 보다시피 심령(心靈)에 박아둔 뇌혼(雷魂)을 일깨우는 작업이오.”
“그렇지.”
파지직!
그리고 이광의 중단전과 전신요혈에서 알 수 없는 뇌기가 번쩍이자 뇌혼이 한층 더 강하게 빛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사부가 우리에게 가르친 천랑뇌신결(天朗雷神決)이 뇌혼의 운용때문에 심신이 손상되는 걸 방지해주며 회복력을 강화시키고, 그런 천랑뇌신결을 다시금 팔황경천신공(八荒驚天神功)이 보조해주는 방식. 팔황경천신공은 자칫 뇌기가 체내에 응축될 경우 바로 힘을 해산시켜주는 해갈(解渴)의 역할을 해 주오. 단 하나의 과정도 서투르거나 낭비가 없기에 과연 절세신공이오.”
무언가 감탄하듯 중얼거리던 이광이 말을 이었다.
“헌데 소청이와 나와 독고성, 우리 셋은 사부가 없는동안 구궁파천뢰를 익히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소. 그것은 바로 경지에 오르면 오를수록 천랑뇌신결과 팔황경천신공의 필요성이 줄어든다는 점이었소.”
“……?!”
나는 처음 듣는 소리였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소리냐? 나는 아직도 틈날 때마다 그 두 개의 신공을 수련하고 있고 성취가 나아질 때마다 뇌혼을 다루기가 쉬워지는 걸 느끼는데.”
“음, 사부가 엄청나게 노력을 해서 그저 정공법으로 산의 정상에 도달하는 유형이기에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우리의 가정이 사실이었구려. 사부와 달리 우리는 인간이며 수련시간을 무한정 사용할 수 없었기에 쓸데없는 적공(積功) 시간을 피하며 효율적으로 산을 오르는 방법을 찾아보았던 것이오.”
“효율적으로…?”
“그렇소. 사부는 환골탈태와 반로환동을 겪어 수백년의 삶이 보장되었을지 몰라도 우리까지 그러라는 법은 없잖소? 우리는 길어도 10여년 안에 구궁파천뢰로 대성(大成)의 경지를 볼 수 있으면 좋을 거라 생각했소.”
“10년…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구궁파천뢰를 내게 전수해준 이설표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이 무공이 무구한 시간을 지닌 ‘나’를 위해서 예비된 것이었으며, 편법이나 효율의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이설표는 구궁파천뢰의 대성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만 어물쩡 넘어갔었고 그 이야기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광은 강하게 주장했다.
“사부. 빠르든 늦든 산의 정상에만 오르면 그만 아니오? 오른 다음에야 신선처럼 유유자적해도 상관없지만 후발주자들은 그렇게 여유부릴 수가 없소. 왜냐하면 구궁파천뢰란 이론상 수련시간을 무한정 늘릴 수가 있기 때문이오.”
“무한정 늘릴 수 있다고?”
“그렇소. 구궁파천뢰를 익히기 위해서는 일단 이혼대법(移魂大法)의 근본원리 중 하나를 통달해야하며, 천랑뇌신결(天朗雷神決)과 팔황경천신공(八荒驚天神功) 또한 사실은 각각이 절세신공이오. 거기에다가 구궁파천뢰를 익히기 위해서는 최소한 뇌신류의 무공을 서너 가지 통달해야하니 사실상 대여섯 개의 무공을 동시에 숙련도를 올려야하는 게 아니오?”
“…그렇긴 하지.”
“그 모든 걸 극성으로 익혀도 천랑뇌신결과 팔황경천신공으로 뇌혼을 돌리는 순간 그 운용법은 또다시 수천 가지로 분화할 수 있소. 그리고 운영법에 따라서는 또다른 신무공(新武功)을 또 만들 수 있소…!! 이론상 그것까지 극한을 보고자 한다면 먹고 자고 수련만 해도 최소한 수백 년이 걸린단 말이오.”
“…….”
“우리 뇌신류 제자들은 그렇게까지 수련할 시간이 없소. 독고성은 그것도 상관없다 하긴 했지만 적어도 나와 소청이는 아니오.”
나는 여태껏 생각지 못했던 점을 지적받자 약간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으음…. 내가 전생자라서 이런건 그냥 언젠가는 다 이루겠지 하고 생각했던 건데.’
아니,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둔재인 내가 저것까지 신경쓰면서 알아서 심력을 소모하면 안그래도 개같이 힘든 전생여정에 도저히 못버틸 것 같았을 뿐이다. 어차피 신적인 존재들과 드잡이질하다보면 수십 번 정도는 가볍게 죽을테고 수백 년도 어느 새 흘러있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광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튼 본론으로 되돌아가서, 그러면 이 무식한 수련시간을 줄일 방법이 뭐가 있을지 연구를 해 보았소. 그 결과 천랑뇌신결과 팔황경천신공을 꼭 극한까지 연마하지 않더라도 구궁파천뢰의 수련속도를 가속시키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거였소. 약간만 요령이 있다면.”
“어떻게 그게 가능하단 거지?”
“…아직도 못 알아들은 척 하더니 아주 작정을 하셨구려. 둔재인 척 하는 건 생각보다 보기가 괴롭군.”
씁쓸한 표정으로 입술을 꽉 깨물던 이광이 다시금 구궁파천뢰를 끌어올리며 자신의 몸에 뇌전을 감돌게끔 했다.
파지직
“잘 보시오! 내가 구궁파천뢰를 시전하는 것을.”
꾸웅 하는 소리와 함께 이광이 진각을 밟았다. 그와 동시에 아까처럼 이광의 미간과 단전에 하나씩 뇌령이 선명하게 생성되더니 그 사이에 일직선이 만들어지는 게 보였다. 이광은 그 상태로 창을 안쪽으로 감아치며 나(拿)의 수법으로 딱 한 초식을 시전했다.
치징
마치 번개가 울부짖는 듯한 짧은 소음과 함께 이광의 창이 지나간 곳에는 뇌전의 궤적이 생겨나 있었다. 그리고 이광은 그대로 창을 거두는 척 하면서 왼발을 축으로 빠르게 한 바퀴를 회전하면서 이번에는 회륜창(回輪槍)의 초식을 써서 지나간 뇌전의 궤적을 관통시키는 듯 했다.
쩌엉!
회전이 돌개바람처럼 맺히고 마지막으로 이광이 찰(札)의 수법으로 천공을 재차 휘저었다.
이광이 총 세 초식을 사용하고는 말했다.
“보시오. 나는 지금 구궁파천뢰 중에서 일백(一白)에서 삼벽(三碧)까지의 연환초식을 쓴 것처럼 보이오. 그런데 사실 나는 여기에서 사록(四綠)으로 강제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츠팟 -
다시금 이광이 처음에 시전했던대로 나(拿)의 수법을 시전하는 게 보였다.
“다시 일백(一白)으로 회귀(回歸)할 수 있소.”
“……!!”
나는 구궁파천뢰를 익혔기에 지금 이광이 행한 게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닫고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외쳤다.
“어떻게?!”
구궁파천뢰를 쓸 때는 본래 저렇게 되지 않는다!
일단 일백에서 이흑, 삼벽까지 진행되었을 때 내게 남은 선택지는 구궁파천뢰의 연환전개를 중단시키던가 아니면 강제로 사록으로 넘어가는 것 뿐이었다. 왜냐하면 뇌혼이 날뛰기 때문에 도저히 그 힘을 줄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천리마(千理馬)에 채찍질을 하면 끝까지 더 빨라지거나 멈추게 하거나 둘 중 하나뿐인 것과 같은 이치!’
그런데 이광은 도중에 뇌혼이 증폭되는 현상을 가볍게 소멸시켜버리고 다시 일백으로 회귀했다. 이것은 달리던 천리마가 갑자기 속도를 무(無)나 다름없게 만들고 첫 출발전으로 되돌아왔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심지어 저렇게 되면 뇌혼의 소모도 사라져 버린다!
나는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방법을 쓰면 실전에서 엄청나게 뇌혼의 소모를 줄이고 도리어 위력과 응용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왜냐하면… 일백에서 연환전개의 선택을 잘못했을 경우 처음부터 다시 초식을 선택해서 상대에 맞춰서 더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으니까!’
내가 크게 놀라자 이광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사부. 구궁파천뢰를 끝까지 전개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뇌혼이 공명(共鳴)해야 하오?”
“……? 그야 9개의 뇌혼이 진동해야하지.”
“그렇소. 하지만 9개를 직선으로 실에 구슬을 꿰듯 힘을 잇는 게 아니라, 구슬 3개를 원형(圓形)으로 잇는다는 발상은 해보지 못하셨소?”
“……?”
“흠…. 정말 둔재 연기를 잘 하는군.”
이제는 화내기보다는 감탄한 듯 하던 이광이 말을 이었다.
“보시오. 구궁파천뢰를 시전할 때 전신의 뇌혼은 아무 전신요혈에서나 발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9개의 뇌혼으로 한정짓게되면 그 힘이 격발하는 체내의 장소가 지정되어 있소.”
그가 천천히 자신의 신체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정수리. 미간(眉間). 인중(人中). 명치. 단전(丹田). 좌수(左手). 우수(右手). 좌각(左脚). 우각(右脚).”
“확실한 거냐? 네 말대로 뇌혼은 굳이 그 9군데가 아니라 다른곳에서도 격발할 수 있는데 그렇게 구분지어도 되느냐.”
“확실하오. 왜냐하면 이건 소청이가 알아낸 것이기 때문이오.”
“진소청이?”
“천랑뇌신결과 팔황경천신공의 요체가 심기체를 거스르지 않고 집결하는 장소라 하더군. 사부의 반응이 보니 이건 새로운 발견이 맞나보구려.”
“…….”
할 말이 없다. 진소청이 알아냈다는데 내가 어떻게 감히 트집을 잡겠는가?
‘아니, 그것보다 천랑뇌신결과 팔황경천신공의 요체를 분석했다는 건…. 그 수많은 무공구결이 교차하는 인체의 지점을 그냥 감만으로 알아냈다는 건가?!’
그런 짓을 도대체 인간이 할 수 있는 건가?!
내가 내심 경악하고 있을 때 이광이 말했다.
“아무튼 이 9개의 신체부위에 뇌혼이 집중된다면 이야기는 간단하지. 3부위씩 나눠서 필요할 때는 그 3부위에서 뇌혼이 순환하게 만들면 그만이오.”
“순환하게 만든다고?”
“그렇소. 구슬 세 개를 실에 꿰어서 원형으로 조율하고 힘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
치치칭!
“이렇게 말이오.”
“……!!”
나는 이광이 선명하게 뇌혼을 발휘하며 정수리, 단전, 좌각을 잇는 삼각형(三角形)이 만들어진 것을 보자 흠칫 놀랐다. 일부러 이광이 실전성을 배제하고 내게 보여주려고 의념으로 뇌혼을 더욱 밝게 만든 것이다.
나는 이광이 뭘 했는지를 깨닫고는 중얼거렸다.
“의념(意念)을 미리 뇌혼에 주입한 것인가! 다음 뇌혼이 발현할 장소에 미리….”
“바로 그렇소. 본디 구궁파천뢰의 연환전개를 시도한다면 그때그때 필요한 초식에 따라 뇌혼을 발휘할 장소가 달라져서 신경쓸 필요는 없소. 하지만 그 불규칙성을 놔두지 않고 의식하여 뇌혼을 통제한다면….”
파파팟
다시 한 번 이광이 삼 초식을 쓰고서 일백으로 회귀했다. 이광의 눈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삼재(三才)의 원리로 뇌혼의 효율성은 더더욱 증폭되는 것! 우리의 공력 또한 별로 소모하지 않고 계속해서 구궁파천뢰로 상대하는 게 가능하지.”
“과연….”
“심지어 이 방법을 쓰면 다음번에 후삼재(後三才)를 겹쳤을 때 연환절기의 위력이 더 강화되오. 그렇기에 억지로 사록이나 오황 육백까지 이어서 최강의 절기를 쓰는 것보다 적당한 위력으로 적을 압박하는게 훨씬 효율적이지. 종합했을 때 위력의 총합은 삼재로 모아서 여러번 쓴 게 훨씬 높으니까.”
“뭐?! 더 강화된다고?”
“그렇소.”
이광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만 삼재를 겹칠수록 뇌혼이 체내에서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던 게 적토마(赤兎馬)처럼 더욱 강력해지지. 그래서 소청이의 말로는 일단 삼재를 3번 이상은 겹치면 큰일난다고 했소.”
“3번이라….”
“3번을 채웠다 싶으면 일부러 한 번은 잉여뇌혼을 방출하며 처음으로 완전히 되돌아가면 되오.”
“흐음.”
“이해를 다 한 것 같군. 그럼 어디 해 보시구려.”
나는 이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이해했던 대로 삼재의 원리로 뇌혼이 머무는 9군데의 급소에 내공과 의념을 집중했다. 그러자 구궁파천뢰를 발현함과 동시에 의식적으로 그 뇌혼이 정해진 곳으로 움직이게끔 할 수 있었다.
‘이런 말이로군….’
파치칭!!
하지만 정작 이광처럼 해 보려니 단번에 일곱 군데의 뇌혼에 힘이 들어가 버려서 정확한 모양이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광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미친… 사부의 내공은 대체 얼마나 많은 거요? 설마 내공과 의념이 넘쳐나기 때문에 뇌혼을 정밀하게 다루기 힘들 줄이야….”
“내가 실패한 게 이상한가?”
“삼점(三點)을 찍는 게 힘들지 의념을 불어넣는건 힘들지 않소. 별 희한한 꼴을 다 보겠군.”
“흠….”
“힘의 가감(加減) 정도는 사부가 알아서 하리라 보오. 이걸로 내 가르침은 끝났소.”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광. 새로운 걸 가르쳐준 건 고마운데…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구궁파천뢰의 극한을 보는 시간이 단축된다는 건 억지가 아니냐? 이건 따지고 보면 그저 실전성의 효율을 추구했을 뿐 구궁파천뢰의 깨달음이 더 빨라진다는 뜻은 아닌 것 같은데.”
“당연히 깨달음 자체가 더 빨라지는 건 아니지. 하지만 초절정의 수준에서 절대지경으로 올라가는 시간은 무척 단축되오.”
“……!!”
“이 삼재(三才)의 공정(工程)을 반복하는 동안 뇌혼이 응축되는 속도도 활용되는 속도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소. 그래서 절대지경의 깨달음도 어렴풋이 손에 닿을 정도요. 그래서 아까 무슨 수를 쓰든 산을 빨리 올라가는 게 중요하다 했던 것이오.”
이광이 큭 하고 웃었다.
“그리고 사부에게는 큰 약점이 하나 있소. 그걸 개선하지 못한다면 이후에 소청이를 절대 당해내지 못할 것이오.”
“큰 약점?”
“듣고 싶소?”
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자 이광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럼 칠대절학을 전수해 주시오. 잘 가르쳐주면 알려드리리다.”
“…….”
이런 제기랄… 어떻게든 약점을 잡아대는구나!
나는 내심 짜증이 났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약속했던 일이기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나는 그로부터 체감시간으로 약 30여일 동안 이광에게 칠대절학의 기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칠대절학이라 해도 이광이 현재 초절정 수위 내에서도 무척 깨달음이 높은 편이라서인지 그는 마치 물을 빨아들이듯 빠르게 무공을 배우는 듯 했다. 나는 이광의 진도가 여태껏 가르쳤던 자들 중에 진소청 외에는 비교할 자가 별로 없다는 걸 깨닫고는 놀랐다.
‘빠… 빠르다. 엄청!’
30여일이면 보통 사람이라면 칠대절학 중 하나의 기초를 떼기만도 벅찬 시간이다. 그러나 이광은 그 시기동안 칠대절학 중 여섯 개의 기초요결과 초식을 싸그리 다 외우고 그 중 칠성둔형(七星遁形)의 응용원리까지 어느정도 깨우친 듯 했다.
내가 깜박하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약간 실감할 수 있었다.
본디 뇌신류 종사로 낙점되었던 뇌신류의 기린아이자 천재!
이광의 무재(武才)가 실로 천재적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어보였다.
아마 이 속도라면 일 년 정도면 육대절학을 대부분 숙련시키고 무쌍패까지 손이 뻗을지도 모른다.
반면 나는 그 시간 동안 이광이 가르쳐준 삼재의 원리로 힘의 가감을 틈틈히 수련했는데 잘 되지가 않았다.
치치칭!
‘제길. 또 이러나?’
삼재의 원리가 무엇인지는 잘 알겠다. 세 군데의 뇌혼에 미리 의념을 불어넣고 거기에 맞춰서 공정을 돌린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했단 말이다. 그런데 막상 해 보려고 하니까 세 군데가 아니라 너무 많은 뇌점(雷點)이 찍혀서 도저히 삼각(三角)이 만들어지지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러지?
무예의 근본을 이해했는데도 감각이 이렇게까지 딸리다니, 설마 내가 둔재라서 그런건가?
내가 혼란스러워할 때 한켠에 앉아서 쉬고 있던 이광이 말했다.
“참 사부는 이해가 되지 않는구려. 오성(悟性)이 그리도 어설픈데 도대체 어떻게 절대지경이라는 지고한 무술경지를 이뤘단 말이오?”
“닥쳐라. 이런 건 요령만 잘 이해하면 할 수 있다.”
“…언제까지 그럴 셈이오? 둔재 연기는 작작 하시오.”
“뭐?”
이광이 왜인지 기분나빠하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대원칙을 이해하여 큰 흐름에 자신을 맞추는 게 그리도 어렵소? 소론(小論)에 집착해 대국(大局)을 이해하지 못하는 얼빠진 흉내를 내다니…. 기인(奇人) 짓도 적당히 하는 게 좋소.”
“…….”
“설마 날 그렇게 놀리고싶은 건가.”
이광은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감고 다시 내공을 회복하려 명상을 시작했다. 나는 그런 이광을 어이없이 쳐다보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저 새끼 혹시 나한테 조언을 해 준 건가?’
말투는 띠껍지만 분명히 내 상황을 해결하기에 충분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나는 이광에게 화를 내기 전에 일단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소론에 집착해 대국을 이해하지 못한다라…. 그 말은….’
내가 이 삼재의 운용을 그저 요령이라고만 생각해서 그 근본적인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대국(大局)이란 무엇이지?
나는 생각에 잠겨서 침잠해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윽고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신경질을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기라알!!”
무공이란 건 대체 뭐야!!
난 왜 이렇게 재능이 없지?!
나는 화가 나서 마구잡이로 허공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종류의 무공을 하나씩 쓰면서 난무했다. 칠대절학부터 시작해서 뇌신류 무공, 검마의 무공, 그리고 신투지존의 무공 등등 일단 알고 있는 건 전부 닥치는대로 쏟아부었다.
콰과광
난 왜 절대지경인데도 아직도 깨달음의 힘이 부족한거지?!
재능이라는 게 이토록 차이가 극단적이란 말인가!!
재능 그 자체에 대한 분노는 물론이고 이렇게 멍청한 내 자신에 대해서도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나라고 해서 멍청하고 싶어서 멍청한 게 아닌데 나는 왜 이리도 우둔하다는 말인가!
“으아아아아!!”
부우우웅 부웅
부우우웅
결국 미친듯이 수천 초식을 쏟아내다가 나는 약간의 광기에 사로잡혀서 초식조차 없이 그냥 칼을 계속 휘두르기만 했다. 아무 초식이 없어도 일단 절대지경이라서 내 검섬의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지만 그 품세와 절도를 모조리 잃어버린 까닭에 조잡하기만 했다.
부우우웅
내가 미친듯이 칼을 휘두르는 걸 멀리서 보고 있던 이광은 이윽고 나를 무시하고 자기 혼자서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한테 배운 것만 갈무리해도 수련하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나는 그런 이광의 모습을 보자 더 짜증이 났다.
‘천재란 것들은 그냥… 타고난 재능만으로도 저렇게 강해지기 쉬운데! 난 도대체 몇 백 년을 더 노력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전생자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손이라도 닿였을까?
아니, 도대체 무(武)란 무엇이길래 사람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든단 말인가!
“으아아아아아…!!”
나는 말 그대로 체력과 근육이 다 끊어질 때까지 계속 칼을 휘두르기로 했다. 예전 십만 번 수련과는 달리 목적성이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때문에 아마 많이 휘두르지 못하고 끝나리라. 하지만 내 광분(狂憤)은 도저히 억제할 길이 없었기에 나는 그저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얼마나 그렇게 쏟아냈을까?
땡그랑!!
바닥에 칼이 떨어져서 볼품없이 굴렀다.
내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것이다.
“허억… 허억… 허억…….”
나는 마침내 겨우 체력과 기력을 다 소모할 수 있었고 헐떡이며 바닥에 주저앉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쓰러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을 때 저 멀리에 있던 이광이 계속 수련하는 게 보였다.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이광에게 추태를 보인 것도 모자라 이렇게 귀중한 수련시간을 낭비하다니.
하지만 내면의 격정이 마구 끓어올라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수라 빼고 나만큼 무공을 수련한 자가 있었을까?
이렇게 미친듯이 하는데 절대지경 이상의 경지는 아예 보여주지도 않는다니 너무한 게 아닌가?
신력이나 권능은 별로 어렵지 않게 쉽게 얻어서 강해지는데 언제까지 이 무공이란 것에 목을 매달아야 하는거지?
“…….”
지금 나는 아수라의 심정이 무척이나 이해되었다.
왜 그가 무신(武神)을 미친듯이 증오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지금의 내 비참한 심정을 수천 년동안 계속 느끼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내 안에서 뭔가가 깨어지는 느낌이 든다.
무심(武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환영이나 허상이 아닐까 하는 우울한 기분에 휩싸였다.
세상은 이다지도… 적막하고 희망이 없는데.
울고싶은데 눈물조차도 바보처럼 느껴져서 흘리지 못하는 이 비참함은 차마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들었다.
‘난… 왜 무공을 수련하는 거지?’
신역절기조차 황제 공손헌원에겐 상대도 되지 않았는데.
무공이 제대로 신을 죽이기 위해 내놓은 해결책도 변변찮은데.
그저 무공을 관성으로 수련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심마(心魔)가 내 정수리 끝까지 차올라 있다는 사실을.
“후우… 후우우…….”
직감이 더욱 선명하게 가지를 뻗친다.
지금은 아주 중요한 순간이라는 게 느껴졌다.
여기서 ‘한 걸음’.
어느 쪽으로 내뻗는지에 따라, 내 남은 전생여정이 극단적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가공할만한 직감이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나는 그 직감이 막연하지 않고 무척 선명하게 내 눈 앞의 미래로 다가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선택은 딱 두 가지.
검을 들겠는가? 들지 않겠는가?
“…….”
결국은… 그거다.
내가 무(武)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해답.
그 해답이 없으면 지금 눈앞에 떨어져있는 검을 들어봤자 똑같은 상황만 반복되리라. 그저 재능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무수한 숙련도부족을 한탄하는 것만으로는 답이 되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내 재능이 어쨌든 간에 그 답이 내려져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자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무(武)란 무엇인가?
‘무예란 힘이 아닌가.’
하지만 힘만은 아니다. 단순히 힘을 추구한다면 무공보다는 신력과 권능을 추구함이 옳다.
‘무예란 기술이 아닌가.’
절대 그렇지 않다. 기술의 극한에 도달해봤자 신역에는 도달할 수 없으리라.
기술만으로 될 거라면 수천 년 무술의 역사동안 무수한 천재들이 신역에 도전해서 도달치 못했다는 게 설명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질문을 되뇌이자마자 마음속에 뜨끔해지는 한 가지 경험이 떠올랐다.
‘옥좌에서… 황제 공손헌원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시전했던 상상절도… 그걸 두 명은 무(武)가 아니라 했지만.’
회색(回色)의 무인(武人).
그 자만은 상상절도조차도 무공이라고 인정을 해 주었다.
왜일까?
다시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내가 생각해도 상상절도는 무공이라기보다는 권능의 영역에 있는 기술이었고, 망량선사와 마도사가 무공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린 건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무인처럼 보이는 회색의 무인만큼은 상상절도조차도 무공이 맞다고 인정해 준 것이다.
어쩌면 그가 생각하는 무공의 정의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게 아닐까?
“…….”
나는 문득 내가 너무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재들과 나의 차이는 일단 습득하는 속도의 차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력이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나는 익히는 것만으로도 급급하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갇혀있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나 또한 나의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제부터 요구되는 건 기술의 숙련보다는 그런 상상력의 강화가 아닐까?
그리고 그 상상력을 깨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은 아마 내가 가진 강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리라.
덥썩
나는 앞에 떨어져있던 검을 주워서 다시 집었다. 그리고는 잠시동안 내 힘을 회복한 후, 의념을 실어 평소처럼 의식하지 않고 뇌혼을 발동시켰다.
치지징
역시 삼각형으로 모아져서 회전한다는 그 요령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문득 그 요령보다 중요한 게 따로 존재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 삼각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저 삼재(三才) 내에서 힘이 순환하며 완결(完結)한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닌가?’
힘을 내적으로 순환시켜 완결시킬 수 있다면 굳이 삼재나 삼각이 아니어도 된다.
사각이어도 되고 오각이어도 되는 것이다.
단지 삼재로 한정지은 것은 한 번에 발동하는 뇌혼의 횟수가 최소한일수록 유리하다는 효율성 때문이다. 뇌혼을 많이 발동할수록 내공과 의념또한 많이 소모되기에, 순환을 이룰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인 삼재로 한정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 원리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단숨에 삼재의 요령으로 뇌혼을 다룰 수가 없다. 이광은 간단한 것처럼 말했지만 수백 수천번을 연습하는 동안, 사실 그게 천재적인 감각이 반드시 필요한 - 바늘에 실을 꿰는 듯한 기술이라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저 맹목적으로 연습하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그 기술을 터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게 맞는 수련법을 찾아야 한다.
부우웅!!
나는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구궁파천뢰의 수련이 아니라 전혀 다른 수련에 진입한 것이었다.
부웅! 부웅!
내가 몇 시진 내내 말없이 검만 휘두르고 있자 멀리서 수련하고 있던 이광이 다가왔다. 그는 내 수련을 보고는 뭔가 알아차린 듯 말했다.
“이제야 대국을 깨달았구려.”
나는 이광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고, 이광은 다시 혼자서 수련하러 갔다. 내가 방향을 잡았다는 걸 알았으니 더 이상 말해봐야 서로에게 손해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휘둘렀을까?
족히 수만 번을 휘둘렀을 때 약간 팔이 아파서 멈추었다. 나는 조금 더 쉬었다가 다시 한 번 내가 아는대로 검을 휘둘러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은 원을 한 번.
큰 원을 한 번.
이렇게 무작정 계속 휘두르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원(圓)의 의념을 놓치지 않는다. 정말로 따분하고 무식하기 그지없는 수련이었지만 나는 이 수련이야말로 지금 내게 가장 잘 맞는 수련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지루하다.
하지만 길을 못 찾고 방황하느니 지루한 게 차라리 낫다.
그렇게 다시 한 달 -
나는 수백 만 번을 휘두르던 끝에 머릿속에서 탁 하고 뭔가 감각이 오는 걸 느꼈다.
‘이… 이건!!’
뭔가 느껴진다!
나는 그 순간 원을 따라그리던 반복수련에서 전환하여 빠르게 전신에 뇌혼을 일으켰다. 그리고 뇌혼의 숫자에 집착하지 않고 내가 머릿속에 인식하고 있는 원의 의념에 따라 최대한 자연스러운 뇌혼의 전체 윤곽을 그렸다.
파지지직
‘총… 여섯 개인가!’
첫 시도라서 그런지 쓸데없이 숫자가 많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고 다음 순간 뇌혼에 의념을 집중하여 처음으로 일백의 초식을 운용했다.
촤앗!
검으로 펼쳐낸 찰(札)의 창식(槍式).
나는 그 한 번의 초식을 똑같이 세 번 반복했고, 마지막으로 거둬들이며 자세를 원상복구시켰다.
위이잉!
뇌력의 힘이 응축되면서 뇌혼의 잠재력이 갑자기 강화되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제서야 이광이 말했던 새로운 비법이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전율했다.
“이런 거였군…!!”
확실하다. 이제 이걸로 나는 이광이 말한 새로운 구궁파천뢰의 운용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리고 멀리서 내 수련을 지켜보고 있던 이광이 질린 듯 말했다.
“삼재의 근원이 순환이며, 순환의 근본이 원(圓)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설마 무식하게 원을 그리면서 의념을 도야시켜서 이뤄내다니.”
“틀린 건 아니잖나?”
“…거꾸로 되었단 말이오.”
이광은 뭔가 불만인지 마뜩찮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사부는 완전히 반대로 깨달아 버렸소. 왜 굳이 그렇게 한 것이오?”
이광의 말대로였다.
본디 이렇게 원으로 자기완결을 한다는 근본원리에서 시작할 것도 없이 삼재의 요령만 깨달으면 바로 이룰 수도 있는 기술! 하지만 천재적인 감각이 수반되었기에 나는 역으로 [순환]을 이룰 수 있다면 최소한의 단위인 삼재가 아니라 오각이나 육각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네 말대로 일단 산에 오르는 게 중요하지 않나? 이제 필요 없는 각(角)을 빼면서 내게 맞춰서 이 기술을 개량시키면 그만이지.”
지금은 육각이었지만 점차 숙련될수록 오각, 사각으로 쓸데없는 뇌혼을 빼서 종래에는 삼각삼재로 구현할 수 있으리라. 기술을 원형에서부터 깨달을 수 있다면 최대효율성은 나중에 추구해도 되잖은가.
“사부는 설마 진짜로….”
이광은 문득 뭔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윽고 그럴 리 없다는 듯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는 약간 험상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튼 됐소! 한 단계 올라선 걸 축하드리오.”
“고맙군.”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살다살다 이광에게 축하를 다 받다니.
‘별로 무공이 크게 진전된 것도 아닌데….’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겨우 이 정도 요령을 터득했다고 해서 내가 압도적으로 강해진 것도 아니리라.
하지만 나는 지금 단순히 힘을 늘리는 것을 넘어서서 내가 무(武)를 어떻게 대해야할지를 깨달은 느낌이었다.
‘나는 둔재다.’
그냥 그 사실은 인정하자.
절대지경을 찍었다고 해서 내 재능이 극단적으로 늘어나는 건 아니다.
너무 어려운 소론(小論)이나 천부적인 감각을 필요로 하는 영역은 여전히 죽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 달리 말하자면 둔재로서 절대지경에 도달한 나이기에, 정상적인 과정으로 절대지경에 도달한 자와는 다른 방법으로 수련할 수 있지 않은가?
압도적으로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근본부터 짚어가는 그런 방법일지라도.
‘상상절도’처럼 권능같은 영역으로 적을 상대하는 치사한 방법일지라도.
요령을 쉽게 깨닫지 못해서 다른 무류(武流)에 손을 댄다고 할지라도.
“…….”
이광의 말대로 - 나는 둔재로서 추구해야할 영역이 따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어찌되든 일단은 산을 오르고 나서 생각하고 말리라.
지금 마음을 정했다.
‘이게 바로 전생자(轉生者)의 무(武)가 아닌가?’
남이 비웃어도 좋다.
수천 수만 번을 구르는 한이 있어도 나는 비효율적이라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비효율조차도 나만의 강점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아.’
언젠가는 반드시 무신(武神)을 보고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