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349화 (1,346/1,615)

1349====================

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이광의 말에 흠칫했다.

구궁파천뢰!!

그것은 내가 미래의 세계에서 내 동료들의 도움으로 배워온 것으로, 500여년간 뇌신류의 고수들이 갈고닦아 끝내 내게 전해진 절세무공이었다. 어찌보면 뇌신류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그 구궁파천뢰로 이광이 내게 이만큼 선전할 수 있다니!

다시 보아도 이광은 아직 의념천주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은 순수한 기교만으로 절대지경의 목에 칼을 들이댈 정도로 기술이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이광에게 말했다.

“무슨 말이지? 구궁파천뢰라니, 내가 너에게 가르친 구궁파천뢰의 운용법은 그런 게 아니었을텐데.”

“사부가 가르친 건 구궁파천뢰의 기초와 운용원리, 수련법 뿐이었잖소.”

“그래.”

“허나 사부가 떠난 후 나와 독고성, 소청이가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며 알게 되었소. 사부는 수련법만 알고있을 뿐 제대로 된 구궁파천뢰의 전개방식은 하나밖에 모른다는 사실을.”

“……!!”

나는 움찔했다.

‘어떻게 알았지?!’

내가 아는 구궁파천뢰라고는 기초적인 뇌령을 연마하여 전신을 회전하는 구체를 만드는 수련법, 그리고 그 구체를 이용해서 일백에서 구자까지 연환하여 펼치는 운용법 뿐이다. 사실 그것만 배워도 구궁파천뢰의 위력은 충분하고도 남았기에 다른 무공을 수련하기도 바쁜 상태에서 더 파고들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

“우리 앞에서 구궁파천뢰의 상승경지를 거의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오. 연환전개(連環展開) 하나를 소청이 앞에서 펼친 것 외에는 없었잖소. 그나마도 전혀 숙련되지 못했다는 소청이의 말에 우리는 감을 잡았소. 사부는 구궁파천뢰에 대해 수련법과 기초전개만 알 뿐 이 구궁파천뢰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익혔다는 사실을.”

“…….”

“힐난하거나 할 생각은 없소. 어찌되었든 사부는 우리에게 절세무공을 전해주었고 은(恩)을 비난할 처지가 아니니까. 세상 그 누가 구궁파천뢰같은 걸 남에게 전해주겠소이까.”

슈욱!

이광의 창끝이 나를 가리켰다. 이광은 고고하게 창을 든 채 말을 이었다.

“허나 사부를 오만하다 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요. 분명 천하의 무예천재이기에 절대지경에 이른 것일 터! 그 재능을 믿고 다른 절세무공을 많이 갖고 있어 구궁파천뢰의 연마에 소홀하였다 볼 수밖에 없으니 우린 안타까웠을 따름이요!”

“뭐, 뭐야?”

“내가 틀린 말을 했소? 사부가 구궁파천뢰에 못지않은 장삼봉의 절학을 지니고 있음을 들었소. 그리고 현천도인에게 들어보니 그 절학의 숙련도는 구궁파천뢰와 달리 확실한 숙련단계더군.”

이광이 약간 인상을 찡그렸다.

“…우리 뇌신류의 종사를 자처하는 거 아니었소? 본파의 정수를 놔두고, 아무리 대종사 장삼봉의 것이라지만 무당파의 무공에 더 힘을 쏟다니 실망스럽구려!”

“…….”

나는 당황스러워서 잠시 넋을 놓고 탈력한 웃음을 지었다.

“하, 하하… 그건….”

세상에 이런 식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니.

‘내가 무예천재…?’

이광의 눈에는 내가 천재로 보였다고?

나는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문득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내 경지에 절정을 넘어 초절정을 넘을 당시에도 내가 성취한 경지와 외견나이가 맞지 않아 종종 반로환동으로 오해받거나 혹은 실력을 숨긴 천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 당시에는 내가 일부러 그 위화감을 이용해서 기존의 기라성같은 고수들에게서 비전절학을 빼내는 기만용도로 썼다면, 이번에는 내가 가르쳐주는 입장이기에 딱히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아무리 반로환동이라지만, 백련교주와 맞먹는 무공을 지닌 천하제일인급의 고수가 사실은 둔재이며 수십번 전생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을까?

‘당연히 이광이나 제자들 입장에서는 내가 사실 천재지만 자파의 비전무공인 구궁파천뢰에는 소홀하고 타 문파의 무공을 탐했다고 여길 수 있겠군….’

내가 전후사항을 파악하고 당황을 추스리고 있을 때 이광의 말이 이어졌다.

“사부가 소을촌에 있다가 망량과 함께 이런 별천지까지 와 버린 저의는 모르겠으나, 당신이 없는 동안 우리 제자들은 나름대로 구궁파천뢰를 연구하고 개선하는데 주력했소. 그리고 보다시피 꽤나 성과를 보았던 것이오.”

“음….”

“아마 나는 머지않아 절대지경에 이를 것이오.”

이광의 말에서 상당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나는 멍하니 듣고 있다가 뭔가를 깨닫고는 급히 물었다.

“자, 잠깐. 내가 여기로 떠난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텐데? 그 사이에 구궁파천뢰를 이만큼이나 발전시켰다는 말이냐.”

“……?”

내 질문에 이광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무슨 낮술 처먹은 소리요? 사부가 떠난지 2년하고도 반이 지났소. 뇌신류 최고수들이 모여서 연구하면 충분한 시간이지.”

“엥?!”

“얼마 전에 또 망량이 파순 등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길래 어디가나 싶었는데 사부를 도우러 이 별세계로 왔었나보군.”

뭐라고?!

“2년 반?! 정말이냐!”

“그렇소만.”

“으으윽.”

나는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나일라토프 이 개새끼가!”

시간의 흐름이 안 흐를 거라고 하기에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소을촌의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버렸잖아!

‘제기라아아알!! 여기서 시간 오래 보내면 큰일나겠네!’

보나마나 시간의 흐름이 최소한 열 배는 빠르다!

이 외우주에서 일 년만 보내도 소을촌에서는 최소한 십여 년은 흐른 후이리라.

내가 보이지 않는 나일라토프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을 때 이광이 태연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소을촌은 정식으로 소을성(小乙城)으로 승급했으며 섬서성주가 당신에게 성주의 직책을 내렸소. 일개 성에는 일정수준의 군대가 주둔해야한다는 대명제국(大明帝國)의 법칙에 따라 망량이 천 명의 주둔군을 만들었고 그들 모두에게 뇌신류의 기초무공을 가르쳤소.”

“…….”

“과거 경험을 살려 진법과 군단전술도 가르쳤지. 일당백의 병사를 만들라는 망량의 지시가 있었소.”

망량이 나 없는 동안에도 열심히 소을촌을 운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문득 망량에 생각이 미쳐서 말했다.

“그러고보니 망량이 얼마 전에 떠났다고? 그래서 여기에 왔다고 생각한 거라고?”

“그렇소.”

“…행선지를 어디로 간다고 밝히지 않던가.”

“안 밝혔소. 그는 마을 내에서 파순 외에는 누구에게도 자기 비밀이나 계획을 밝히지 않더군.”

“음….”

나는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 아까는 제갈현이 망량이라고 둘러대었지만 사실 제갈현은 외우주의 제갈현일 뿐 망량이 아니다. 당연히 이광이 짐작하는대로 망량이 외우주를 넘어와서 내 곁에 와있는게 아니니, 아마 실제 세계의 망량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망량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수라만 대동하고 그가 갈만한 곳이 어디지?

‘감이 안 좋아….’

느낌이 온다. 내가 빨리 되돌아가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거라는 직감이었다.

그 때 이광이 말했다.

“아무튼 사부는 확실히 나일라토프나 저 헤르메스를 제압할 자신이 있소?”

나는 뜬금없는 이광의 질문에 눈을 꿈벅였다.

“갑자기 그건 왜 묻지?”

“결국 서로의 이해가 충돌하는 이상 무력을 겨루게 될 상황이 오게 되지 않겠소. 사부는 아까 일이 무던하게 진행되는 양 이야기했으나 숨길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낄 수가 있었소.”

“…….”

“사실은 저 자들을 확실히 제압할 자신이 없는 게 아니오?”

정말 눈치가 귀신같구나.

나는 정곡을 찌르는 이광의 말에 잠시 입을 닫고 있다가 힐끔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는 헤르메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그러자 내 시선을 받은 헤르메스가 킬킬 웃었다.

“후후…. 너무 겸손한 거 아닌가? 백웅 너 정도면 목숨을 걸면 우리와 대등할 수 있을텐데.”

“겸손은 개뿔이….”

나는 짜증을 느꼈다. 헤르메스가 나를 올려쳐주는 것 같았지만 사실 놈도 나도 알고 있었다. 헤르메스든 나일라토프든 신적인 존재며 우주적인 단위에서 놀고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사대신기나 칠요의 힘을 있는 대로 동원하지 않으면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초강자들이다. 행성을 괴멸시키는 대괴수조차 저 두 놈에 비하면 하루살이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세상에 손을 뻗는 것만으로도 인과율이 필요할 정도의 대존재라는 건 그런 의미인 것이다.

이광이 다시금 창술의 기수식을 잡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제안하겠소.”

“뭘 제안하겠다는 말이냐?”

이어진 이광의 말에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는 사부에게 우리가 연구해 낸 구궁파천뢰의 응용을 가르쳐 주겠소. 대신에 사부는 내게 칠대절학을 비롯한 모든 무예의 정수를 가르쳐주시오!”

“뭣…!!”

“시간이 열 배로 느리게 가는 이 수련공간에서 최대한 힘을 길러서 나가야 할 것 아니오?”

나는 황당해서 대꾸했다.

“너와 나는 사승관계가 아니냐! 당연히 네가 얻게된 걸 스승인 내게도 가르쳐줘야지 그게 조건까지 걸 일인가?”

이광은 되려 당당하게 말했다.

“사부는 사승관계를 잘못 알고 있지 않소? 내가 당신에게 사사했다 하여 제자의 모든 성취를 스승에게 넘기는 강호의 도리는 없소. 그런 식이면 제자가 문파를 독립시키는 걸 다 부정하는 셈이 아니오.”

“아니, 그게… 하….”

말이야 맞는 말 같은데 왜 저렇게 싸가지 없게 하냐고!

내가 뭔가 반박하려 할 때 이광이 말을 이었다.

“싫으면 마시오. 난 혼자서도 구궁파천뢰로 강해질 방법이 선명하게 느껴지니까. 하지만 스승은 이미 정점에 오른 실력이라 무척이나 아쉽겠군.”

“으윽.”

제길! 이광 이새끼는 뭐 이딴 식으로 약점을 잡는거냐?!

나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사실 칠대절학을 일부러 뇌신류 고수들에게 안 가르쳐줬던 것은 그들이 뇌신류 무공을 일정수준 이상 소화하기 전까지 타 문파의 절세무공을 알려주면 무류의 순수성이 오염될까봐 했던 일이었다. 흑요석 또한 같은 이유로 주지 않았었다.

나중에 필요하다 하면 알려줄 생각이었는데 굳이 멱살잡히듯이 제안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옆에 있던 헤르메스가 호오, 하고 감탄했다.

“…과연. 제자 하나 잘 뒀군. 부러워.”

“닥쳐 좀!!”

“네 제자는 이쪽으로 와도 대성하겠군….”

“아니 닥치라고!!!”

나는 진심으로 빡쳐서 소리를 내질렀다.

저 개새끼는 반어법이 아니라 진짜로 감탄하고 앉았네!

뭐 이런 새끼들이 다 있어?!

나는 잠시 후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이광을 노려보았다.

“오냐, 이광. 원한다면 네가 원하는대로 칠대절학을 비롯해 내가 알고있는 무공절학을 알려주지. 하지만 네 말대로 구궁파천뢰 하나도 아직 대성하지 못했는데 네가 그 잡다한 무공들을 다 소화할 수 있겠느냐?”

그러자 이광이 자신만만하게 대꾸했다.

“나는 당신 생각보다 더 천재니까 괜찮소. 사부 걱정이나 하는 게 좋을거요.”

“아오 씨….”

나는 욕지기를 내뱉을 뻔 하다가 겨우 참았다. 저 놈의 말이 아예 틀린게 아니라는 게 더 열받았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다가 말했다.

“다만 조건이 있다. 네가 먼저 나한테 구궁파천뢰의 새로운 응용법을 알려줘야 해. 그래도 내가 스승이니 먼저 알 권리는 있지 않느냐?”

“일리있군. 좋소.”

휘리리릭

이광은 창을 거두어 자신의 팔 뒤에 붙이듯이 자연스럽게 착(着)의 자세를 잡았다.

“시작해도 되겠소?”

“해라.”

자연체를 잡은 이광이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구궁파천뢰의 연환전개는 어렵지 않게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었소. 일백에서 구자까지 하나하나의 절학을 배치하여 펼칠 때마다 그 위력이 증폭되거나 혹은 상승작용을 발휘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실 강호에 백련교주 외에 적수는 없을거요. 사부가 연환전개 이상 연마하지 않은 것도 이해는 되오.”

“그래. 하지만 네가 아까 펼친 건 연환전개가 아니었다. 그건 뭐였지?”

“생각해보시오. 구궁파천뢰의 진정한 핵심이 무엇인지.”

“……?”

핵심?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이광이 잔잔하게 말을 이었다.

“바로 뇌혼(雷魂) 그 자체요. 이만큼 얘기했으면 알아들으셨을 것이오.”

“음…. 뇌혼이 왜?”

“천랑뇌신결(天朗雷神決) 덕에 구궁파천뢰의 수련성취가 높아질수록 뇌혼의 양도 질도 상승하지 않소. 동시에 뇌정이 몸 안에서 회전하는 속도도 늘어나지. 허나 그 뇌혼의 회전을 꼭 아홉 번이나 대륜(大輪)시키며 위력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냐는 말이오.”

“…….”

음…. 무슨 소리 하는건지….

이해가 안 간다….

“…….”

이광이 한숨을 쉬었다.

“사부, 내가 그렇게 싫소?”

“응? 갑자기 무슨 소리냐?”

이광은 크게 정색했다.

“내가 당신에게 대드는 게 싫을 순 있으나 적어도 수련할 때는 이러지 맙시다. 따지고 보자면 당신이 먼저 내 평생의 권위를 깔아뭉갠게 시작이 아니오? 내 나름대로는 최대한 예우를 다해주는 것이니, 일부러 못알아듣는 척 나를 놀리지 말란 말이오.”

“어…. 그래. 안 놀릴게.”

“아무튼 당신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그럼 다음 설명으로 넘어가서 극대화가 필요없다면 대륜이 아닌 소륜(小輪)의 공정(工程)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소. 이건 내 제자였던 소청이의 발상인데, 뇌혼은 세 개만 모여도 안정되는 성질이 있었고 성취가 더 나아지면 두 개만으로도 절학의 재창조가 가능하다 했소. 그리하여 뇌명(雷鳴)을 조합에 넣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수많은 가짓수가 생겨나오.”

“…….”

“이만하면 설명할 건 다 한 것 같군. 이제 당신 차례요.”

나는 이광의 말에 눈을 꿈벅였다.

“뭐? 겨우 그 설명으로 끝이냐? 좀 더 자세히 알려줘.”

이광이 어리둥절해했다. 저건 연기가 아니었다.

“……? 무슨 소리요? 도리어 난 사부가 첫 설명에 다 알아들었는데도 일부러 내가 확실히 아는지 알아보려고 부가설명을 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아…. 그게….”

“설명이 과해서 미안하다 여기던 참이었소. 이 제자의 오지랖을 넓게 이해해주시오.”

도리어 이광이 진심으로 미안한 듯 포권을 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그 이광이 내게는 어느정도 인정하고 대접해주는 것도 사실인 듯 했다.

나는 그 포권을 받으며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제기랄… 큰일났다.

‘정말 모르겠는데.’

이광은 내가 본인 이상의, 아니 진소청급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틀림없었다. 단서 한 마디만 턱하고 던져주면 바로 깨달아버릴 거라 생각한게 틀림없으리라!

헤르메스는 옆에서 뭔가 눈치챈 듯 쿡쿡대며 웃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너무 제자를 괴롭히지 말게, 천상에서 내려온 위대한 무술천재 백웅이여.”

쉬익

씨발…. 저 개새끼는 반드시 목과 몸통을 손으로 분리시켜버리겠다.

내가 헤르메스의 조롱에 내심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을 때 이광이 나를 재촉했다.

“자, 이제 당신 차례요. 내게 칠대절학을 알려 주시오.”

나는 크게 고민했다.

이대로 알아들은 척 하고 그냥 차례를 넘기는 게 나을 것인가?

아니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광에게 구궁파천뢰의 가르침을 청할 것인가?

상식적으로는, 아니 전생자로서는 당연히 전자를 택해야 할 것이다. 전생하면서 시간을 아껴도 모자랄 판이니 잠시 굴욕을 무릅쓰고 모르는 걸 습득해야만 몇십년치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가 이광이라는 게 문제다. 내 자존심상 도저히 스승의 자리까지 차지해놓고 저 놈 앞에서 체면 떨어지는 구걸을 하고싶지는 않다!

‘…그래!! 그거야!’

나는 크게 고민하다가 제 3의 방법을 찾아내고는 이광에게 준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광.”

“말씀하시오.”

나는 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넌 아직 멀었다!”

이광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대꾸했다.

“잘 알고 있소만 무슨 의미로 말하시는 거요?”

“내가 왜 멍청한 척하면서 네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은 척 한 줄 아느냐?”

“……?”

“그것이 바로 종사(宗師)에게 필요한 자세라는 것이다.”

내 말에 이광이 약간 당황한 듯 했다.

“무슨 미친 소리요? 우리 뇌신류 종사에게 대체 그런 게 왜 필요하단 말이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채 일단 말을 이어나갔다.

“넌 전대종사 이청운의 제자로 있으면서 줄곧 느끼지 않았느냐? 이청운은 직계제자에게 엄혹하고 냉정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자애롭고 따스한 자였다. 인정하는가.”

“…그랬소.”

“그리고 무공을 잘 모르는 초급제자나 평제자에게도 유순하게 가르쳤지. 너도 무관주를 해본 경험이 있으니 왜 그랬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적통을 이은 자일수록 엄하게 가르치는 법이오. 반대로 초심자와 적통에서 먼 자에게는 신경을 쏟지 않소. 지극히 당연한 얘기를 왜 이리 장황히 하시오?”

“그러니까 니가 종사가 못 된것이다!!”

“……!!”

내가 갑자기 외치자 이광이 당황한 듯 했다. 동시에 상당히 역린을 찔린듯 내 앞에서 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이를 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종사와 무슨 상관이냐 했잖소!”

“바로 그 태도다! 이청운이 너처럼 평제자나 초심자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더냐? 그는 적어도 초심자에 대한 애정이 있었으며 자라나는 새싹 하나하나가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에 너는 재능있는자만 대우하고 나머지는 그저 무관에 돈 바치는 현금줄 정도로 여기지 않았느냐.”

“…….”

“종사란 무릇 자신의 무술종파를 자기자신처럼 소중히 아끼는 법! 나는 네가 그런 종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하기에 전부터 널 깨우쳐주려 하는 것이다.”

“…입은 정말 잘 터는군. 그래서 그게 지금 칠대절학을 전수해주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소?”

“이건 또 다른 수련이다!”

“수련?”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는 지금부터 재능이라곤 눈꼽만치도 없고 멍청해서 하나도 못 알아듣는 바보 제자인 척 연기를 하겠다!”

“……?!”

“너는 그런 제자를 상대로도 끝까지 종사의 품위를 유지하며 구궁파천뢰의 상승요결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내가 너에게 내리는 수련과제다.”

그러자 이광이 당황해하며 말했다.

“무슨 또 쓸데없이 병신같은 짓을…!! 대체 내게 왜 그러는 거요?”

“왜냐고 물었나? 정말 단순히 네가 싫어서인 것 같으냐?”

나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다! 나는 이래봬도 뇌신류의 종사를 자처하는 자! 네게 차기종사의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내가 만일에 갑자기 세상을 떠날 경우 네가 새로운 종사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키워내야하지 않겠나.”

“……!!”

“나를 믿어라!”

나는 끝까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당당히 말했다.

“네 거지같은 성질을 누르고 둔재를 가르칠 수 있을만한 인성이 될 때 나는 비로소 너를 종사의 자격이 있다고 볼 것이다.”

“…….”

“앞으로의 뇌신류는 백련교에 대항하기 위해 약자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광은 한참동안이나 그 자리에 서서 아주 깊게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어려울 것 같지만 어디 해 보지.”

“후후. 좋은 자세다.”

나는 근엄한 웃음을 지으며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살았다.’

이걸로 이광한테 둔재가 아닌 척 제대로 구궁파천뢰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