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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348화 (1,34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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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잠시 후 이광의 팔을 내 멱살에서 걷어내며 말했다.

“일단 진정해봐라. 어떻게 된건지 설명해줄테니까.”

“…….”

이광은 마뜩치 않아하면서도 일단 물러나주는 기색이었다. 놈도 아직은 나를 이길 수 없다 생각하고 있기에 방금전에는 그저 위협적인 시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거냐면….”

나는 막상 이광에게 설명을 하려고 생각하니 말문이 턱 막혔다.

‘팔부신중을 쫓아내려는 계략을 세웠는데 갑자기 바유의 권능 탓에 이환웅이란 놈이 나타나서 경매가 시작되었고 경매하다보니 나일라토프가 출몰해서 놈 때문에 외우주로 납치되었으며 이 외우주에서 돌아갈 방법을 찾던 중에 헤르메스가 또 튀어나와서 제 3의 탈출로를 모색하던 중에 갑자기 소을촌으로 되돌아가서 니가 딸려왔다고 설명하면….’

…….

으아… 이걸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하지?

나는 무척이나 난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이 이야기의 맥락을 추려서 전달할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내가 겪었던 일들 하나하나가 워낙 보통사람들, 아니 웬만한 신격조차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흑요석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흑요석은 양날의 검이나 다름없으니 내 기억을 받은 동료는 동시에 내 치명적인 약점을 알고있는 셈이 되어 나를 배신할 경우 나는 큰 치명타를 입게 된다. 그렇기에 여태껏 흑요석의 기억은 되도록 신뢰할 수 있는 자에게만 줬던 것이다.

‘이, 이광은 도저히 믿고 흑요석을 줄만한 놈이 아냐….’

애초에 잠깐 소을촌에 모습을 드러냈는데도 그 찰나를 참지못하고 날 공격해올 정도로 호전적인 놈이다. 내가 약점을 노출시킬 경우 어떤 식으로 배신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광을 믿느니 차라리 헤르메스나 나일라토프를 믿는게 나을 지경인 것이다.

나는 잠시 황망하게 고민했고 이광이 내 말을 재촉했다.

“사부, 빨리 말하시오. 나도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아야할것 아니오.”

“아… 그러니까….”

씨발…. 이광한테 외우주가 어떻니 나일라토프가 어떻니 해봤자 씨도 안 먹힐 것이다. 나조차도 전생을 몇십번씩 하며 얻게된 우주적인 경험을 어찌 단숨에 이해시킬 수 있을까? 이광은 세계의 이면에 마왕 팔부신중이란 존재가 있다는 것부터 믿기 힘들어할 것인데 외우주 얘기는 도저히 할만한 게 아니다. 나일라토프나 헤르메스는 나조차도 그 정체가 잘 이해 안되는 괴인들이니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놈이 귀담아 들을 말만 하는 게 정답이리라.

다 얘기할 필요도 없고 놈도 다 이해하길 원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이윽고 어떻게든 이광을 설득할 말을 찾아내고는 진중하게 말했다.

“…이 세계에서 절대지경을 넘어설 단서를 찾아냈기에 원래 세계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중이었다…!!”

힘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하면 귀가 솔깃하겠지!

“……!!”

내 말에 이광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는 약간의 호기심이 생긴 듯 말했다.

“그게 정말이오?”

당연히 아니지.

하지만 나는 이왕 구라를 치는거 끝까지 치기로 마음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는 이 자들은 내가 원래세계로 돌아가는 걸 협력해주는 임시 동료들이다. 이쪽은 헤르메스, 이쪽은 제갈현.”

이광이 내 말에 그들을 각각 쳐다보았다. 헤르메스는 기분나쁘게 히죽 웃었고 제갈현은 정중하게 이광에게 인사했다.

“반갑소.”

이광은 제갈현을 보더니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저 자는 책사 망량인 듯 싶소만. 같이 외우주란 곳에 간 것이었소?”

“어? 그… 그게.”

제갈현이 내가 어물쩡할 때 선수를 치듯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렇소. 간만에 보는구려, 이광.”

그 말에 이광은 전혀 의심없는 말투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나는 그리 반갑지 않군. 본디 우린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

“서로 친해지자고 예까지 온 건 아니잖소? 맡은 일만 잘 합시다.”

“…….”

이광이 곱지못한 눈으로 제갈현을 바라보았다. 나는 제갈현도 태연히 거짓말을 하는 것에 놀랐지만, 생각해보니 그도 내게서 흑요석을 전승받았으니 당연히 원래세계에 있는 망량이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외모도 똑같으니 이광이 제갈현의 정체를 의심할 수는 없었다.

나는 대화가 더 길어지기 전에 맥락을 자르기로 했다.

“아무튼, 헤르메스의 술법에 도움을 받으면 방금 전처럼 소을촌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저 자는 신(神)적인 존재이기에 그걸 가능하게 해 준다. 다만 완전히 귀환하기 위해서는 [세계수의 핵]이라는 게 필요하다고 하더군.”

“그건 어디에 있는 물건이오?”

“세계수를 찾아내면 거기에 기생목을 박아서 적출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수는 지금 나일라토프라는 자가 찾아내는 중이고 조만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일라토프? 그 자도 사부의 동료요?”

나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여기선 확실히 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니, 그 놈이 나를 이 외우주로 납치하듯 끌고온 장본인이다. 사실 놈이 나를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미덥지 않아서 여기 헤르메스와 손을 잡기로 한 것이지.”

“흐음.”

이광이 뭔가 이해했다는 듯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공간 밖에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나일라토프가 세계수의 핵을 건네줄 때 그걸 갖고 헤르메스에게로 온다는 계책이겠구려.”

“…어? 그, 그래!”

뭐지?! 순식간에 상황파악을 해 버리네?!

내가 약간 당황했을 때 이광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좋소. 그래서 사부가 귀환할 때 나 또한 같이 귀환할 수 있다는 거겠지?”

“물론이다.”

“그럼 문제가 없겠군.”

이광도 더 듣고싶은 얘기가 없다는듯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려 하자 갑자기 제갈현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니, 큰 문제가 있소.”

“뭐가 문제인가?”

“바로 당신이오.”

“나라고?”

처억

제갈현은 손가락으로 이광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소. 당신은 지금 백웅에게 합류하기엔 너무 약하오. 그게 바로 문제란 말이오.”

“……!!”

이광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지금 당신의 힘으로는 백웅이 귀환할 때까지 마주치게 될 적들에게 이쑤시개만큼의 상처도 줄 수 없소. 사실 그 정도가 아니라 백웅이 당신을 보호해줘야 할 지경이란 말이오.”

이광이 약간 짜증난 목소리로 대꾸했다.

“사부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고 그래서 나도 사부를 따라잡으려고 연마를 많이 했다. 적이 얼마나 강한지는 몰라도 입만 나불대는 백면서생에게 개소리를 듣고싶지 않군.”

“아니, 당신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오.”

제갈현이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 세계는 종말을 앞둔 세계. 그렇기에 마왕을 넘어선 신적 존재들이 횡행하고 있고 그 자들은 일격에 대륙을 쪼개고 시공을 뒤틀어버릴 수 있단 말이오. 절대지경조차 한끼 식사취급하는 자들을 상대로 대체 뭘 할 수 있단 거요?”

“…….”

“경고하겠소. 백웅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만히 몸을 사리시길 바라오.”

“웃기는군….”

마치 비웃듯 이광의 입술 끝이 뒤틀렸다. 그는 잠시 살기를 응축시킨 눈빛으로 제갈현을 쏘아보더니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부. 나도 이런 취급 받으면서 굳이 도우려 할 생각은 없소. 나대지 않고 병신처럼 웅크려있는 것도 꽤 잘할 듯 싶으니 조용히 수련할 공간이나 마련해 주시오.”

“어….”

나는 난데없이 제갈현이 이광에게 공격적으로 굴자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물론 제갈현이 틀린 말을 한 건 없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망량이라면 아무리 이광이 상대라도 저렇게까진 말을 안 했을 텐데?’

물론 동명이인일 뿐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뭔가 크게 엇나간 기분이 든다. 나는 이 심각한 위화감 때문에 혼란스러움을 느끼면서도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말했다.

“그래. 안전하게 수련할 공간이라 하면 어….”

나는 말을 하다가 무척 곤란한 기분이 들었다.

‘어 제기랄…. 말세니까 세상천지에 괴물과 외계인이 날뛰고 있잖아…. 안전한 데가 없어!’

이광의 실력으로 충분히 이겨낼만한 외계인도 많겠지만 내가 겪어본 바로는 강대한 초능력과 마법을 지닌 놈들도 무척 많았다. 잘못 걸리면 무공 한번 못 펼쳐보고 죽어버릴 가능성도 높았다. 이렇게 흉흉한 세상에서는 설령 천제단에 있는 외계인 몇 마리 죽였다고 안전지대가 생기는 게 아닌 것이다.

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정 그렇다면 이광이여, 목갑 안에 있는 건 어떤가?”

모두의 시선이 말을 꺼낸 헤르메스에게로 향했다. 헤르메스는 여전히 묘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나도 심심하니 말상대가 좀 필요하고 말이지.”

나는 황당해서 헤르메스에게 말했다.

“이봐! 이 목갑 안에 있어봐야 의미가 없잖아. 애초에 여기선 무공수련을 못 하기도 하고!”

“왜 못 하지?”

“그야 여기서 시간을 보내봐야 현실의 시간은 훨씬 더 많이 흘러버리니까!”

나도 목갑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생각해본 적이 많았지만 포기했던 이유다.

목갑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게 아니라 빨리 흐른다!

여기서 잠깐만 있어도 밖에서는 반나절이 흘러버리는데 전생자인 내게는 이만큼 쓸데없는 시간낭비가 어딨겠는가.

“후후…. 그건 내가 목갑에 나타나기 전의 얘기였겠지.”

나는 헤르메스의 말에 흠칫했다.

“뭐?”

“내가 바로 이 목갑의 제작자이자 마법의 신 헤르메스. 내가 원한다면 이 목갑에 걸려있는 시공간의 제약을 바꾸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위잉

다음 순간 헤르메스의 손바닥 위에 신비한 무지개빛의 기운이 떠올랐다. 헤르메스가 흡족한 눈으로 그 기운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북두칠성의 성좌 셋이 친히 내려준 가호까지 있으니까 더더욱 쉽지.”

“그 가호, 남아있었던 건가.”

“내려받은 가호를 뭐하러 버리지? 기왕 이렇게 된거 이 가호의 성질변환을 해 주마.”

“뭘 할려는….”

파앙!!

헤르메스가 손뼉을 치자 그의 손바닥에 있던 무지개빛 성좌의 가호가 그의 양손에 퍼져나가서 일렁였다. 헤르메스는 서서히 쌍장을 떼면서 주문을 외웠다.

“[용량확장]의 가호여. 나 헤르메스는 세피라의 이름으로 깨달음의 파쓰(path)를 여노라. 그 형질을 이루는 근원에 생명의 나무가 현현(顯現)함은 용승(湧昇)하는 파도의 소리를 들음과 같노라. 나 제 7계의 이름으로 성좌의 가호를 변환하노니 - ”

치지지직!!

마치 폭죽이 타기 직전의 소리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무지개빛은 어느 새 시꺼먼 흑암으로 변해있었으며 헤르메스가 마지막으로 외쳤다.

“[시간변속]의 가호로 바뀔지어다!”

쩌엉!

다음 순간, 새하얗기 그지없던 목갑의 내부공간이 온통 회색으로 변했다. 우중충한 회색이 아닌 밝은 회색이라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헤르메스가 말했다.

“자아…. 네가 늘 바라던 식으로 목갑이 변했다.”

“변했다고? 어떻게?”

“특별히 이 외우주에 체류하는 동안은 내 마력을 써서 이 목갑 내부의 시간을 조종해주겠다.”

이어진 말에 나는 물론이고 옆의 두 사람도 놀랐다.

“이 공간에서의 10초는 바깥에서의 1초! 열 배나 시간이 느리게 가는 공간으로 바뀌었노라.”

“……?!”

“이제 시간걱정 말고 마음껏 수련을 하면 된다.”

“진짜?!”

나는 전생하는 내내 바라왔던 수련공간이 생겨나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들뜨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제갈현이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이런 마도구 내부에서 수련을 하면 기의 충돌때문에 내구도가 닳는다 들었는데 그건 또 어찌할 생각이시오?”

“내가 대신해서 마도구의 소모를 감당해주마. 어차피 기의 출력이 내 마력에 미치지 못하면 별로 힘들 것도 없겠지. 그리고 말해두자면 지금 백웅의 내공으로도 내 마력에는 아예 못 미칠 것이다.”

“과연…. 마법의 신이 직접 마도구를 움직인다는 게 대단한 거구려.”

제갈현이 뭔가 감탄한 듯 말했다. 그러더니 내게 말했다.

“백웅. 어쩌겠소? 이광을 여기서 수련하게 할 수도 있고 같이 데리고 나갈수도 있소만….”

“…….”

나는 뜻밖에 괜찮은 상황이 찾아오자 고민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말했다.

“나도 당분간 여기에 머물겠소!”

그러자 그가 깜짝 놀랐다.

“……!! 진심이오?”

“그렇소. 당신은 신기 바즈라를 써서 자기몸을 지키시오. 호신용으론 충분하겠지.”

“으음….”

제갈현은 뭔가 당황스러워하는 듯 했다. 아니, 불만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관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파앗

이윽고 제갈현이 목갑에서 빠져나가자 장내에는 헤르메스, 나, 이광 셋이 남았다.

헤르메스가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

“백웅, 이광을 꽤나 아끼는가보군. 굳이 여기서 수련하지 않고 바깥세상에서 신력이나 유물을 모으는 게 훨씬 이득일텐데 말이야.”

“내가 얼마나 제자를 아끼는데!”

이광의 표정이 험상궂게 변하는 게 보였다. 나는 내심 히죽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어차피 나도 너무 달렸기 때문에 조금 수련할 시간이 필요했어.”

육요까지 모았으니 이제 남은 건 나일라토프와 세계수로 향하던가 아니면 황제를 암살하는 계획에 참여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2개의 계획 중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할만한 게 아니다.

나도 조용한 곳에서 수련이나 좀 하고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열 배의 시간이라면 아마 이 안에서 한두 달 정도는 수련할 여유가 나겠지….’

그 한두달 동안이라도 뭔가 수련에 진척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러자 이광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부가 얼마나 복잡한 사정에 얽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아까 하던 걸 마저하고 싶구려.”

“그래?”

“준비하시오.”

스윽

이광이 창술의 기수식을 잡았고 나 또한 검을 들어서 만승검법의 기수식을 잡았다.

그런 우리 둘을 옆에서 보던 헤르메스가 이죽거렸다.

“하필이면 제일 약해빠진 무공이나 잡고 있다니. 그런데도 황제 공손헌원을 봉인했다는 게 정말 기적같은 일이군.”

“좀 닥쳐줄래? 나중에 네가 무공에 한 방 먹을 수도 있어.”

“후후후후…. 무신(武神)이라는 신기루가 정말 있다면 말이지. 하지만 내가 외우주를 넘은지 수만 년 내내 그 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

촤악!!

내가 번개 같은 일섬으로 헤르메스의 목이 있던 곳을 베어버리자 헤르메스의 신형이 훨씬 멀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헤르메스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안 통한다고 했을 텐데.”

나는 헤르메스에게 칼날을 겨누며 말했다.

“경고 하나 해두지. 무공 그 자체를 모욕하지 마.”

“뭐?”

“네놈이 뭘 믿고 까부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나는 눈빛에 새파란 살기를 머금고 놈을 노려보았다.

“나는 조지겠다고 마음먹은 놈은 포기하지않고 작살낸다고. 몇 번을 구르고 칼을 맞아도 절대 포기하지 않아.”

“…….”

“이번에 그게 네놈 차례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게 좋을 거다.”

내 말에 헤르메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더 이상 나를 자극해서 좋을 게 없으리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광이 나와 헤르메스의 대치를 보고 있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술사와 뭣하러 얘기를 섞소? 어차피 누구든 간에 달인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자기가 익힌 게 제일 잘났다고 콧대를 세우는 법인데.”

“그건 그렇지. 하지만 무공에 평생을 바쳤으니 넘길수가 없군.”

“역시 사부는 오만하구려.”

“오만하다고? 내가?”

뜻밖의 말에 반문하자 이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무공에 진심인 것도 아니면서 모든 무인을 대표하는 양 지껄이는게 오만하지 않다 할 수 있겠소?”

“뭐…?”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내가 무공에 진심이 아니라고! 내가 얼마나 구르면서 무공에 전심전력을 다했는지 알긴 하는거냐.”

“물론 알고 있소. 모르긴 해도 십만 번 수련은 사부가 과거에 직접 했던 거 아니오?”

“…….”

“사부가 그 누구보다 노력했다는 건 알고있소.”

눈치챘단 말인가?

내가 묘한 눈으로 이광을 쳐다보자 이광이 서서히 뇌령(雷靈)의 기운을 끌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노력하는데도 진심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사실같구려.”

“웃기지 마라.”

나는 이광을 노려보았다.

“그만큼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거면 자기 무공으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물론!”

다음 순간 - 이광의 의념이 강하게 터뜨려지듯이 퍼져나왔다.

그리고 이광의 이마, 단전에 두 개의 둥근 뇌령이 떠올랐고 그 두 개의 뇌령 사이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게 보였다. 나는 그게 뭔지 몰라서 의아해했지만 이광의 창격이 뻗어져 나오는 순간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콰과광!!

너무 빠르다!! 어떻게든 감지한 다음에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 전혀 아니다. 그저 절대지경의 의념천주에 의존해서 치명상만 피하면서 반격을 해야만 했다. 나는 이 속도의 의념절기를 평생 하나밖에 보지 못했으므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뇌속(雷速)?!’

서, 설마 이광이 뇌신지혼을 터득했단 말인가?!

아니 어떻게 그럴수가!

하지만 내가 경악을 추스리기도 전에 이광의 창 끝이 휘어지듯 내 요혈을 노리고 날아들었고, 나는 그 습격을 빠르게 막아내었다. 다행히 이것도 절초이긴 했지만 첫 선공처럼 극속은 아니었던 것이다.

따당

그러나 내가 삼격 째를 막아내는 순간 또다시 이광의 창끝이 번개처럼 변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뇌속을 미리 의념으로 감지해서 아슬아슬하게 막아내었는데, 그 찰나에 이광의 창끝이 격렬하게 회전하는 게 느껴졌다.

치치칭!

여섯 개의 뇌점(雷點)이 내 진기요혈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고하듯 찍혔다. 나는 안좋은 예감이 들어서 급히 삼보절기를 썼는데, 삼보절기의 천의 걸음과 지의 걸음을 마무리짓기도 전에 내 전신이 회전창의 기세에 말려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결국 회피동작을 온전히 마무리짓지 못하고 마지막 삼보를 위태로운 자세로 밟았고, 다음 순간 뇌점에 살기가 틀어박히며 동시에 회전창이 날아들었다.

꽈과과광

투웅!!

나는 여섯 번의 창격이 동시에 날아드는 걸 호신강기와 검뢰를 써서 간신히 다 막아내고는 튕겨나갔다. 나는 잠시 숨을 골랐고, 이광의 전신이 땀에 가득 젖어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이광은 체력과 기력이 단시간에 크게 소모되었는지 숨을 몰아쉬었다.

“후욱, 후욱.”

“…그건 뭐냐? 설마 뇌신지혼을 터득했나?”

“크흐흐흐….”

내 질문에 이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히쭉 웃었다.

“이러니까 오만하다는 것이오. 보물을 두고도 썩히고 있었으니까.”

“뭐?”

“뇌신지혼은 무슨 놈의 뇌신지혼이란 말이오.”

이어진 이광의 말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건 구궁파천뢰(九宮破天雷)요. 사부는 이런 절세무공을 갖고 있으면서도 개발할 생각도 하지 않고 삽질이나 하고 있었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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